먼 곳에서 온 이야기 외 1편

[신작시]

 

 

먼 곳에서 온 이야기

 

 

한준석

 

 

 

    잘 지내?

 

    물어보면 안 될까

 

    너도 가끔 운다는 소식을 듣는다

 

    우리는 바다에 빠져 놀아 본 적이 없다
    검정 우산이 바람에 날아가 웃었던 날이 생각나
    젖은 머리카락을 털고
    계획에 없던 가게에 들어가 따뜻한 밥을 먹었다
    다시, 투명한 우산을 사서 바깥을 걸었다

 

    혼자서 간 노래방에
    동전을 몇 개 집어넣고 가만히 앉아 있어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이미 시작한 노래들처럼
    목소리에는 부스러기가 많다
    세 곡은 부를 수 있었다

 

    가사는 쉬웠다 새와 수화기, 비밀에 대한 이야기
    일인용 의자에 한 사람이 더 앉을 수 있다
    옆방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러볼 조명 빛의 색깔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7월이 끝날 무렵에 그랬다

 

    나도 가끔 웃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제는 집에서 키우는 개가 하얀 털을 다 밀었어
    간지러워서 자꾸 발을 핥는 루이
    엄마한테 혼이 나는 모습이 어딘가 사랑스러워

 

    자취방에서 좋아했던 시집을 정리한다
    너에 대해 썼던 메모가 번져 있는 것을 본다
    밑줄을 긋는다
    모른 척하면 지나칠 수 있었다

 

    나는 잊고 싶은 일은 노트에 꼭 적어
    그러면 잃어버릴 수 있으니깐
    여름을 적는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슬프지 말고 잘 지내

 

    혼잣말하자 이 시에 적혀 있다

 

    길에서 들려오는 가사 같다

 

 

 

 

 

 

 

 

 

 

분홍색 서랍장

 

 

 

 

    소년의 서랍에는 마개가 없는 물병이 굴러다닌다
    사랑하는 해양동물 백과사전 속 이름들을 소년은
    하나, 둘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눈먼 기린, 속눈썹이 긴 외국인, 멀리 사는 그녀
    비스듬해서 서랍장의 서랍은 혼자서 가끔 열린다
    찰랑, 구르는 물병의 남은 물기가
    서랍의 안쪽을 느리게 적신다
    물 자국을 견딜 수 있었나
    서랍장은 고장 나기 쉬운 입안이다

 

    서랍장은 기울어져 있다
    수평을 위해 모서리에 두 번 구겨졌던
    해양동물 백과사전의 찢겨진 페이지들
    서랍장 밑 깊숙이 사라진 그 페이지들은 아가미가 없다
    둘, 셋 그런 종種들은 소년의 맨발로 잡을 수 있나
    새카맣게 먼지 묻은 찢어진 양말
    바다에 가라앉는 잠수부의 부서지는 호흡
    별 모양 형광 스티커의 흐려진 빛
    이런 기척들이 남아 어제와 자주 섞인다
    제자리에서 종아리가 붓는다

 

    소년은 긴 손가락으로 서랍장 밑을 뒤적인다
    둥글게 뭉쳐 있는 새떼들이 손끝에 가볍게 묻어 나온다
    끔찍한 운명을 피할 수 없어요
    태양의 수명을 다룬 책의 페이지를 펼친다
    창문이 열린다
    여러 겹의 걸음소리가 들린다

 

    서랍장은 빨간색에 가까운 분홍색
    서랍은 앞으로 몇 번이나 혼자 열릴까
    모래를 손에 쥐어 본 일이 생각나

 

    소년은 입을 벌리고 고장 나 있다

 

    소년은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낸다

 

 

 

 

 

 

 

 

 

 

한준석
작가소개 / 한준석

202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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