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외 1편

[신작시]

 

 

코코

 

 

이근석

 

 

 

   

 

    싱크대 물 떨어지는 소리

 

    머리만 대면 너는 자
    나는 그러지 않고
    연장되는 것들
    네게서 드러난 코
    그 생김을 보다가

 

    물 넘치는 그릇이 있었다
    물은 흐르고 있고
    그릇으로부터
    넘쳐서 흐르는 물이
    그보다 더 작은
    다른 그릇을
    채우고 있었다
    그릇은 물로 채워지고
    물은 흐르고 있어서
    그릇들과
    흐르는 물
    그릇들과
    흐르는

 

    나는 이것을 영원히 말할 수 있고
    그릇을 센다, 물은 흐르는 물

 

    매표소 앞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써커스를 보러 갔다가
    써커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줄을 기다리는 줄
    그 안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써커스를 보는 것에는 이 긴 줄을 기다리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다, 너는 말하고
    기다리는 것에 관해 기다리며 너는 말하고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알아?
    길 안?
    길안이야, 길안
    길안이 어디야
    그렇지?
    너도 그게 길 안인 줄 알았지?
    근데 그게 안동에 어느 면이더라고

 

    길안으로
    택시를 타고 간다
    거기선 택시가 안 잡히니까
    창밖이 프랑스풍으로 지나가고 있다고
    아까 프랑스 소설을 읽어서 그래
    풍경이 아까 읽은 프랑스 소설풍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 난 말한다

 

    눈만 감으면 기도하는 애가 있었어 걔를 좋아했는데 말한 적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눈 감으면 기도했다는 사실밖엔 기억이 안 나고 걔를 좋아했다는 것 말곤 기억이 안 나고 눈을 감아도 감은 눈 속으로 눈을 더 감아도 기억이 안 나고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는데 아무 일 없이 기다리고만 있는데 이런 게 일일까 기다리면서 편지를 쓰는 건 그 편지를 부치지 않는 것도 일일까 여기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 아무 일 안 일어나는 것도 일일까 무사가 일일까 여기라는 말이 거기를 가능하게 한다는데 가능이 일일까 생각하면 이상해 아침부터 현관에서부터 그랬어 이상해 생각하면 이상해 뭐든지 죽든지 자라는 그런 화단이 아니고 이상해 현관에서부터 하루가 이상해 이런 건 묵음 같아 안 들리는데 말하는 것 같아 매일매일 이상해 싫지도 좋지도 않은 지속들에게 피어나는 기분들에게 스텝 안에 두 발이 있듯이 포옹 안에 두 팔이 있고 우리 안에서 우리가 이상해 자는 네가 이상해 안 자는 내가 이상해 이 안에 우리가 숨처럼 있는 게

 

    너는 자고
    나는 무언가 쓰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과 무관한 무엇을
    네게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때

 

    ,
    하고

 

 

   1)  장정일

 

 

 

 

 

 

 

 

 

 

5월

 

 

 

 

    돌을 던지다 왔다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따라오고 있었다 대열을 맞춘 장면 장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길가에 떨어진 돌들
    하나 주워 아무렇게나 던지면
    그것에 맞은 사물과 사물들이
    사정없이 태어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있지 않았는데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다
    걸어가는 만큼 확장되고
    던지는 만큼 생성 생성되는 정물들이
    돌을 던져서 깨지는 창이 있었다
    돌을 던져서 망가지는 화단이
    돌을 던져서 이거 어떤 새끼야 하는
    구체적인 목소리
    쫓아오고 있었다 달아나고 있었다
    사방이 그때 생겼다 과거와 미래가
    유년과 소년 중년과 노년이
    한데 어우러지는 방식이었다
    그 길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의 구별이 없었다
    기억이 없었다 기억이 없어서
    나는 귀신이 아니고
    헤아릴 수 있는 세계에 있었다
    내가 헤아리는 세계에 있었다
    하나와 둘이
    셋과 넷처럼 있었다
    다섯처럼 있었다
    사람이 한 사람의 얼굴로 울고 있을 때
    그 얼굴 안에 그보다 더 울고 있는 얼굴
    생각을 하면 거기 있었다
    거기 혼자 있었다
    꽤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금방이었다 근방이어서 천천히
    나는 돌아오고 있었다

 

 

 

 

 

 

 

 

 

 

이근석
작가소개 / 이근석

2021년 《동아일보》로 등단.

 

   《문장웹진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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