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테이션

[단편소설]

 

 

그래비테이션

 

 

윤치규

 

 

 

    어느 집안에나 아웃사이더가 한 명쯤 있다면 우리 가족 중에는 작은누나가 그런 역할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미용실에 딸린 방에서 네 형제가 함께 지냈는데 그 방은 누군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다 함께 리듬을 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그렇게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는 아주 작은 충돌도 곧 폭발로 이어졌다. 불이 꺼지면 졸리지 않더라도 잠드는 게 그 방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하지만 작은누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고 가끔은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지겨워. 목적어가 없는 그 한마디는 모두의 잠을 달아나게 했다. 그렇게 불이 다시 켜지고 큰누나와 형이 화를 내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몸을 모로 돌리고 누워 잠든 척 끝까지 눈을 감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누나는 곧바로 집을 떠났다. 혼자서 학비를 벌며 대학교 기숙사와 하숙집을 전전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굳이 혼자 사는 걸 고집했다. 가족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저 함께 있는 게 불편할 뿐이라고. 우리가 자신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이 괴로움을 느끼는 거라고. 타인은 반드시 어떤 행동을 통해서만 자신을 괴롭힐 수 있는데 가족은 존재만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작은누나는 집을 떠난 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작은누나는 언제나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싶어 했지만 모든 중대사마다 우리와 함께 있었다. 큰누나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라든지, 아버지가 결국 객사했을 때, 형이 군대에서 폭행 사건에 연루됐을 때, 그리고 어머니가 폐암 선고를 받았을 때도 어느새 돌아와 둘째의 책임과 역할을 다했다. 그래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연락이 완전히 끊겼어도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여기며 지금이라도 부디 원하는 대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랐다. 작은누나의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날 찾아와 중력파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정말로 그런 마음뿐이었다.
    “중력파를 이용하면 우주 전역에, 아니 그 이상을 넘어 전혀 다른 차원과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대요. 중력파는 그 모든 곳에 어떤 저항도 없이 퍼지니까요.”
    그는 작은누나와 연인이었다는 걸 증명하려고 사귈 때 찍었던 사진을 내게 몇 장 보여주었다. 딱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그동안 작은누나가 만났던 사람들과 너무나도 비슷한 분위기라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누나와 이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도 동생인 내게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다음 날 곧바로 회사 앞에 찾아올 만큼의 미련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저는 할 만큼 했어요. 설득도 해보고 화도 내고 다 해봤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작은누나는 중력파를 통해 다른 차원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한 단체에 빠져 있었다. 그는 내가 따지지도 않았는데 그런 사이비 단체에 빠진 건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변명부터 했다. 그건 어쩐지 내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작은누나와 사귀었던 사람은 그 상대가 누구였든 모두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호소했다.
    “혹시 때리기도 하셨나요?”
내가 묻자 그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졌다. 모욕적이라는 듯 나를 노려보았고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끝까지 때리지 않았다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이 얼마나 작은누나를 사랑했는지와 자신이 기울였던 모든 노력에 대해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 그런 말은 작은누나와 사귀었던 다른 상대들에게서도 정말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작은누나가 왜 이렇게 형편없는 상대만 만나는지 안타까웠지만, 나이가 들어도 계속 되풀이되는 반복에 어느 순간 나조차도 넌더리가 나버렸다.

 

    중력파와 중력의 차이점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중력장 실험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고 노는 방방 있죠? 그 위에 볼링공을 하나 올려놓을게요. 그러면 그 자리가 질량으로 인해 움푹 들어갑니다. 그리고 옆에 야구공을 하나 더 올려 봅시다. 당연히 야구공도 그 질량만큼 트램펄린을 짓누릅니다. 하지만 옆에 있는 볼링공이 더 무거우니까 자연스럽게 기울기를 따라 야구공이 볼링공 쪽으로 끌려가게 될 거예요. 그게 바로 우리가 아는 중력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야구공이 볼링공을 빙빙 돌면서 미끄러지다가 결국 볼링공에 부딪히면 어떻게 될까요? 두 공이 충돌하면서 트램펄린 위에 어떤 진동이 퍼지겠죠? 중력장이 위아래로 요동치면서 시공간을 흔드는 어떤 파동을 만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중력파입니다.

 

    작은누나가 중력파에 빠져 있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보다도 중력파 자체가 무엇인지 나로서는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작은누나가 소속되어 있다는 한반도 중력파 측정 연구소의 웹사이트를 들어가 봤다.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는 수많은 별이 담긴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우주 밑에는 작은 글씨로 ‘차원을 넘어서’라고 적혀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화면은 다른 사진으로 바뀌었다. 어떤 세미나를 기념하면서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작은누나는 그들 중 맨 앞줄에 서 있었다. ‘12th Gravitational wave Experience Group Completion’이라고 쓰인 현수막 밑에서 작은누나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너무나도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홈페이지에는 연구소장이라고 소개된 교수의 인터뷰 영상이 실려 있었다. 구글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교수는 실제로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천문학을 가르친 이력이 있는 과학자였다. 물론 허위 경력일 수도 있고 또는 실존인물의 약력을 도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주와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의 정식 연구협력단 출신이었으며 인류가 처음으로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을 때 그게 진짜 신호인지 아니면 잡음이나 인공적으로 주입된 가짜 파동인지 검증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영상이 끝나기 직전에 짤막하게 붙인 교수의 사견은 확실히 과학자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트램펄린 위에 야구공 당구공 탁구공 같은 것을 전부 올려 봅시다. 트램펄린이 찢어질 때까지 공을 수없이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질량이 커지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지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밑으로 축 늘어져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주 작은 구멍처럼 보이겠죠? 그게 바로 블랙홀입니다. 중력파는 블랙홀과 블랙홀이 부딪힐 때도 생겨납니다.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지만 그 충돌에서 발생한 중력파는 우주 전역으로 퍼지죠. 중력파는 차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메신저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걸 이용할 수 있다면 전혀 다른 차원과 소통하게 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외계인이나 신과 직접 연락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조사해 본 결과 한반도 중력파 측정 연구소는 강릉 어딘가에 있었다. 그곳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분기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중력 아카데미라는 강좌에 등록하는 것뿐이었다. 중력 아카데미는 무려 12주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들어야 했으며 그중 네 번 이상 결석하면 제적당하는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수료한 사람은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중력캠프에 참가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고 그다음 코스인 어드밴스드 과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작은누나는 현재 어드밴스드 과정에 참여 중이었다.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중력 아카데미에 선뜻 등록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작은누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고, 하나 더 이유를 덧붙이자면 퇴근하고 할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정식으로 별거를 시작해 이혼 소송 중이었고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재산 분할 문제로 집을 구할 수 없어 회사 근처 고시원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퇴근하고 작은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침대 위에 누우면 아내가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계속 떠올랐다. 그 모진 비난은 불을 꺼도 사라지지 않았고 창문도 없는 방 안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며 나의 잠을 방해했다.
    변호사를 통해 전달받은 아내의 답변서에는 외도의 이유가 내가 가진 특유의 ‘쪼’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쪼’라는 것은 아내가 지어낸 용어인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 새겨진 무형의 표식 같은 것으로, 유년 시절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서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성격적 결함을 의미했다. 그렇게 ‘쪼’가 있는 인간은 무슨 일이든 한번 꼬아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한번 꼬여버리면 그 이후로는 상대방이 어떤 짓을 해도 계속 상처받는데 그것은 풀어 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꼬이기 때문에 관계가 절대로 개선될 수 없으며 그렇기에 바람을 피운 건 전적으로 내 탓이라는 논리였다.
    아내는 화를 낼 때면 내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훼손된 인간이야. 한번 훼손된 인간은 절대로 회복될 수가 없어. 당신과 당신네 식구들, 그놈의 집구석은 아버지라는 트라우마 때문에 모두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없는 거라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그건 지금까지 당신이 아버지만 보고 살아왔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인 거야. 그렇게나 집착하는 대상과 어떻게 닮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니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만 봐도 놀라는데, 그건 그 순간의 충격이 어떤 반복 가능한 역량을 가진 습관이 되어 인생 전반에 계속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흐려지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되어 버리는 거라고. 그래서 더 좋아질 수가 없고 계속 나빠지기만 하는 거야. 그런데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당신한테 휘말려서 나도 계속 그 소용돌이 속에 빠져 죽을 수는 없는 거잖아.
    아내의 지적대로 나는 유년 시절 내내 아버지는 나쁘고 어머니는 좋다는 이분법적인 강박 속에서 살았다. 게다가 실제로 형제 중 첫째와 셋째는 어머니를 닮았고 작은누나와 나는 아버지를 빼닮았다. 아버지의 유전적 형질을 눈에 띄게 물려받았다는 건 내면의 무책임함과 나약함까지 닮았을 가능성을 내포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 안에 나쁜 피가 흐른다고 믿었다. 어머니가 폐암 4기 확진을 받았을 때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곧바로 취업하게 된 이유도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때 형제 중 어머니의 병시중을 자처해서 전담한 건 나와 작은누나였다. 우리는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효도를 경쟁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더 어머니의 병실을 오래 지켰는지 같은 것을 따졌고 경제적으로든 정성적으로든 누가 더 희생하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지를 계산했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결심 때문에 결국에는 ‘쪼’ 있는 인간밖에 되지 못했다는 건 나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결말이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기 마련인데 나 같은 경우는 흐린 날의 모습은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건 아내와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내게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은 진짜 나라기보다는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게 가짜라거나 속였다는 의미는 결단코 아니다. 그때는 노력만 하면 끝까지 그런 모습만 보여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게는 지나치게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에도 과도할 정도로 부정적인 결말을 먼저 떠올렸다. 예를 들어 조금만 말다툼을 벌이면 세상이 끝난 듯 이혼을 생각했고, 상대방이 정말로 이혼하자고 하면 곧바로 죽어버려야지 생각했다. 물론 그쯤 되면 보통은 아내가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해 줘서 실제로 죽으려고 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화해를 해도 관계가 더 단단해지지 않고 오히려 나빠지기만 했다. 나중에는 말다툼만으로도 곧장 죽음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렇게 한번 회로가 연결되면 좋아지는 일 없이 나쁜 쪽으로만 더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중력 아카데미가 진행되는 곳은 중력 센터라고 불렸다. 의외로 번화가 중심에 있었고 시설도 깔끔한 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트러스 향이 가득했고 조용하고 반복적인 연주의 뉴에이지 음악이 은은하게 흘렀다. 첫날 강사는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4주차까지는 이론 수업이 진행되고 그 이후에 각종 호흡법과 기도법, 명상법을 익히는 중력 수련이 시작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강사는 서먹한 공기를 풀어 보려고 수강생들에게 지원 동기를 물었다. 딱히 분위기를 망치려는 건 아니었지만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이혼 소송 중인데 잡생각을 줄여 보려고 지원하게 되었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자 주변이 술렁거렸고 강사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더니 두 손을 왈칵 붙잡았다.
    내가 괜한 말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첫 수업 내내 강사가 날 의식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설명하는데 뉘앙스가 묘했다. 뉴턴이 증명한 첫 번째 운동 법칙에 따르면 우주에는 공기나 마찰 같은 저항이 없으므로 한번 총을 쏘면 그 총알은 영원히 같은 방향으로 운동한다. 하지만 강사는 아무리 우주에서 총을 쏜다고 해도 그 총알이 영원히 같은 방향으로 비행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우주에 공기나 마찰은 없어도 중력은 있다고. 그 총알은 언젠가 중력에 의해 자신을 이끌어 주는 곳에 도착하게 될 거라고. 강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태우려고 혼자 건물 밖으로 나가자 강사가 따라오더니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강사는 자신도 이혼 소송을 경험해 봤다며 나를 전우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이 강좌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할 수 있어도 이곳에서 배우는 것들이 분명히 지금 상황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그런 관심은 사실 아주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게 필요했던 것이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이혼하게 되었다고 말해도 다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나를 배려해서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게 아니라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의 결과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친구 중 어떤 녀석은 누가 유책 배우자인지조차 묻지 않았다. 그냥 알겠다는 듯 고개만 몇 번 끄덕였는데 그 모호한 태도가 내게 알 수 없는 모멸감을 주었다.
    4주간의 이론 수업이 끝나자 중간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수강생은 알아서 도망쳤고 남은 인원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중간에 그만둔 사람을 강사는 글리치라고 불렀다. 글리치는 중력파를 측정할 때 끼어드는 모든 잡음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중력파는 빛의 간섭계를 이용해 측정할 수 있었다. 수직으로 된 진공의 터널 양 끝에 거울을 설치하고 가운데에서 레이저를 쏴 똑같이 빛을 보낸 후 반사되어 돌아오는 광자의 개수를 세어 확인하는 것이다. 빛은 속도가 언제나 일정해서 도착하는 광자의 수는 항상 같아야 하는데 중력파가 지나가면 아주 미세하게 시공간이 출렁거리기 때문에 광자의 수가 똑같지 않고 약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물론 중력파 말고도 지진이 나거나 기기적 잡음으로 인해 위상 차이가 발생하는 때도 있었다. 따라서 중력파를 관측한다는 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글리치를 없애고 오직 중력파만을 남기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도 선입견을 품고 있어서 모든 사람을 지나치게 경계했는데 나중에는 그런 긴장마저 완전히 풀려버렸다. 수강생 대부분이 그저 견문을 넓히고 싶다거나 저녁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지 않으려는 직장인들이었다. 그들은 호기심과 심심풀이로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강사는 전자기파를 이용해 전화와 라디오를 발명했듯 가까운 미래에 중력파를 이용해 차원과 차원, 더 나아가서는 신과도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지만 그런 말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조금 이상한 단체라는 건 확실했지만 그다지 위협적이거나 해로워 보이지는 않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은데 고작 중력파를 이용해 다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게 그렇게까지 정신 나간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중력 센터에서 명상법과 호흡법, 그리고 기도법을 익히며 나날이 영혼의 감도를 높이는 동안 나는 두 번의 조정심리와 한 번의 가정조사를 끝마쳤다. 이제는 다툼과 협박, 그리고 회유의 시간이 전부 지나갔고 가사조사관의 보고서에 따라 판사가 올바르게 판결해 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멸렬한 과정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건 중력 아카데미 덕분이었다. 문과 출신인 내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웠던 물리학 이론은 주말마다 몰두할 수 있는 좋은 과제가 되어 주었고, 그뿐만 아니라 괴상하기만 했던 중력 수련마저도 속는 셈 치고 몇 번 따라 해보니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중력 수련이라는 말이 너무 촌스러워서 처음에는 생활 한복 같은 걸 입고 단전호흡이라든지 기체조 같은 걸 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VR 기기를 이용한 최첨단 방식이 도입되었다. 강사는 이십 분 정도 참가자들과 환담하며 몸과 마음을 이완시켰고 그간 힘들었던 일이나 앓고 있는 고민 같은 주제를 자연스럽게 물으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수강생들은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에 허리를 곧게 세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고 나서 한 십 분 정도는 횡격막 호흡을 했다. 들숨을 폐와 복부까지 충분히 차오르게 마시고 날숨은 그보다 빠르게 풍선 안의 공기를 쥐어짜듯 복부에서부터 진기를 끌어모아 한꺼번에 내뱉었다. 그렇게 호흡을 안정시키고 나면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명상에 들어갔다.
    컨트롤러를 쥔 양손을 무릎 위에 편안하게 올려놓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화면에 떠오른 소프트웨어 중 LIGO라는 아이콘을 선택하면 어느새 주변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내가 거대한 진공관 속에 앉아 있게 되었다. 진공관 속에는 소리가 없었다. 실제로는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소리가 없는 것 같은 소음이 헤드셋 가득 흘러나온 것이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기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속에는 빛도 없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불규칙적으로 붉은빛이 한 번씩 점멸할 뿐이었다. 그 빛은 ㄱ자 진공관의 교차점에서 분배되었고 내 뒤쪽에 있는 거울에 닿았다가 다시 분배기 속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그저 빛이 한 번씩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눈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사람의 기억에도 질량이라는 게 있을까? 명상 도중에 강사는 한 번씩 가장 무거운 기억을 단 하나만 남겨 보라고 했다. 모든 기억을 끄집어내서 천천히 중력을 낮춰 무거운 것만 남기고 가벼운 것들은 전부 흩어지게 내버려 두라고. 그렇게 기억을 하나하나 허공 위로 띄우다 보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큰 덩어리가 있었다. 나는 그 기억을 마주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고 어느 순간 붉은빛이 번쩍하고 내 머리 위를 스치면 나도 모르게 그 기억 속으로 완전히 침전해 버렸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어쩌면 작은누나가 이곳에서 떠올린 기억과 똑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어둑한 논길을 지나 안개가 가득 낀 저수지를 헤치면 길이 끝나는 곳에 늘 경포대가 있었다. 아버지가 바라는 건 말갛게 갠 하늘 위에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아침이었다. 그렇게 완벽한 해돋이를 본 날이면 아버지는 방바닥에 화선지를 깔아 놓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벼루에 먹을 갈고 붓을 물에 적셔 백지 위에 하늘을 그렸다. 아버지가 그린 그림의 모든 제목은 해돋이였지만 그림만 보아서는 그게 해라는 걸 한 번에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보통은 하얀 여백에 해를 그리고 바다를 채울 텐데 아버지는 반대로 붉은 태양과 푸른 바다를 여백으로 두고 하늘만 검게 칠했다.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을 가장자리에서부터 칠하면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먹이 자연스럽게 옅어졌다. 그런 과정을 지루하게 반복하면 어두운 하늘에 층이 생기고 흰 바닥에 불과했던 바다에는 어느새 파도가 일렁였다.
    내가 아홉 살이었고 작은누나가 열세 살이었을 때 우리는 3년 정도 강릉에서 지냈다. 미용실에 불이 났기 때문이었는데 당장 지낼 곳이 없어 어머니는 네 형제를 둘로 나눠 절반은 부천에 계신 외할머니댁으로, 나머지는 강릉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냈다. 광에서 바퀴가 달린 쥐색 이민가방을 꺼내올 때만 해도 강릉에 가는 게 우리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네 형제 중에 우리만 좋아하지 않았다. 첫째는 딸이지만 처음 낳은 자식. 둘째는 아들을 바랐지만 실망스럽기만 했던 딸. 셋째는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아들. 넷째는 피임하지 않은 실수로 생긴 혹. 아버지는 그런 말을 우리 앞에서 노골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큰누나와 작은누나가 다투면 언제나 작은누나가 혼났고 형이랑 싸워도 작은누나가 뺨을 맞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 아주 가끔은 작은누나와 내가 싸우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그런 걸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강릉으로 내려가면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된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되물었다. 할머니가 우리를 싫어해서? 일부러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는 자식을 보내려고? 그것도 아니라면 사실은 어머니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추측을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작은누나는 마지막에는 아닐 거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건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니까 일단 전학 절차를 밟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애를 둘씩이나 데리고 어떻게 그림을 그리느냐며 화를 냈다. 어머니는 그 앞에서 지지 않고 악다구니를 쏟아냈다. 미용실은 불탔고 갚아 줘야 할 배상금은 보증금을 빼도 모자란다고. 그림이 팔리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이제는 화선지 값이라도 스스로 벌어 보라고. 터미널 안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쳐다봐도 어머니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린 채 담배를 피웠고 우리는 그 옆에서 죄를 지은 듯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택시를 타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창문에 매달려 주변의 표지판 같은 것을 외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도로 위에 걸려 있는 커다란 간판 같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택시가 오거리를 지날 때는 오거리. 시청 옆을 지나치면 오른쪽에 시청. 그 노력은 꽤 필사적이었다. 택시는 시내를 빠져나와 사차선 도로를 달렸다. 도로 옆의 가로수는 잎이 붉었고 인도 위에는 낙엽이 쌓여 있었다. 추수가 끝난 논 위에는 하얀 비닐로 감싸 놓은 볏짚들이 여기저기 묶여 있었다. 벼가 베인 논 위에 유난히 높이 쌓여 있던 그 비닐 뭉치들은 마치 화성에 세워진 우주기지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마다 경포대로 나갔다.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동트는 걸 보러 나간다고 해서 매번 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날이 흐렸고 비까지 내릴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방에서 독주를 마셨다. 술에 취하면 그림을 망쳤고 깨어나면 도망치듯 집을 나갔다. 일주일 동안 날이 흐려 해가 뜨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내내 취해 있었고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일도 잦아졌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가끔 자신이 그린 작품을 방바닥에 전부 펼쳐 놓았다. 그리고 그림 속 비어 있는 원을 가리키며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얼른 태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음으로 작은누나를 바라봤다. 작은누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그림을 찢어버렸고 다른 그림을 펼쳐 놓고 다시 한번 물었다. 내가 얼른 대답하라고 눈치를 줬는데도 작은누나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작은누나를 이민가방에 가둬버렸다. 그렇게 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찢어진 그림을 플라스틱 대야에 모두 쑤셔 넣고 그 위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림이 불타면 그제야 그게 조금은 해돋이처럼 보였다.

 

    어느덧 12주 과정을 전부 끝마치고 중력캠프를 하루 앞두게 된 날 나는 고시원 침대에 누워 작은누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일 년 가까이 서로 연락처도 모르고 지냈는데 이제 와서 불쑥 찾아가는 게 어쩐지 불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걱정이 되어서 건강하게 잘 있는지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오라느니 이 단체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느니 하는 말은 꺼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그럴 자격은 없었다.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와 네 형제가 미용실에 달린 방에 다시 모여 지내면서 우리는 그전보다 더 자주 싸우게 되었다. 작은누나는 한밤중에도 이어폰 밖으로 소리가 다 새어 나갈 만큼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았고 그럴 때마다 큰누나와 형은 작은누나를 비난했다. 왜 너만 그렇게 유독 비운의 주인공인 척을 못 해서 안달이야? 여기 아버지한테 안 맞아본 사람 있어? 우리도 부천 할머니 댁에서 볼꼴 못 볼 꼴 다 봤어. 너만 고생한 줄 알아?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 거야? 큰누나와 형이 작은누나를 그렇게 몰아세울 때마다 나는 작은누나에게 미안했지만, 속으로는 어느 정도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 가정의 모든 불행과 악운의 원흉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다들 독기가 빠져버려서인지 형제끼리 다투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작은누나는 여전히 집안에서 겉돌았고 좀처럼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작은누나는 언제나 불행한 연애를 되풀이했는데 나는 그 원인이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작은누나는 사귀었던 거의 모든 상대방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내가 한밤중에 경찰이나 간호사에게 연락을 받아 작은누나를 데리러 간 것만 해도 여러 번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작은누나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이고 상대방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의심은 상대방이 아닌 작은누나에게로 옮겨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이렇다는 건 사실 누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내가 경찰서에 불려갔던 건 작은누나가 서른 살 때였다. 작은누나는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던 남자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아 멍든 얼굴을 감싸고 지구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나는 감정적으로 꽤 격해져 있었다. 작은누나의 반복되는 연애 실패가 마치 내게 암시를 주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이 모든 게 유년 시절에 큰 상처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고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작은누나가 실패했듯이 나도 그렇게 될 게 빤하다는 복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 나는 작은누나를 지나치게 몰아세웠다. 이제 나이도 충분히 먹었고 예전만큼 불행하지도 않은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인생의 일정 비율을 비극과 비운으로 채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냐고. 그런 불가해한 항상성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냐고. 사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도 않았지만, 작은누나처럼은 더더욱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 블랙홀이 실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과학자는 어떻게 증명했을까요? 블랙홀은 눈으로 관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다른 별은 관측할 수 있죠. 아무것도 없는 어떤 한 점을 항성이 공전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 항성이 돌고 있는 중심에 블랙홀이 없다면 그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블랙홀을 증명한 방법은 이런 간접적인 관측이었습니다. 부재한다면 설명할 수 없기에 그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는 거죠. 마치 우리가 신을 믿는 방식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중력파를 통해 블랙홀을 직접 관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블랙홀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거죠. 이 두 가지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중력캠프가 열린 한반도 중력파 측정 연구소는 강릉 시내에서도 오대산 쪽으로 한참이나 들어간 곳에 있었다. 어떤 기업이 연수원으로 썼던 터를 연구소로 바꿔 놓은 것 같았다. 대강당에서 입소식이 끝나자 곧바로 연구소장의 초빙 강연이 이어졌다. 연구소장은 인터뷰 영상으로 본 것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머리가 잿빛이었으며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강연하면서 빔프로젝터나 화이트보드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시작할 때부터 아무것도 적을 필요가 없으니 눈과 귀만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다.
    강연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분명히 한국어로 초신성 폭발과 중성자별의 형성 과정에 대한 개념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는데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분위기 자체는 압도적이었다. 교수는 말하는 중간에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라는 소설을 일부분 인용했다. 생각나는 건 떨리는 목소리로 “무서워라!”라고 두 번 외친 게 전부였고, 그게 도대체 어느 맥락에서 어떤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것인지조차 모르겠지만 그저 가만히 낭독을 듣고 있으면 어딘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구소 안에는 십자로가 펼쳐져 있었다. 정문에서 시작된 길은 정면으로 언덕 위에 세워진 송신탑까지 뻗어나갔고 동쪽과 서쪽을 가로지르는 길은 연구동과 기숙사로 연결되었다. 연구동 앞에는 운동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도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공터를 지나쳤는데 그곳에 어드밴스드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 사이에 작은누나가 있는지 확인했다. 한 명 한 명 놓치지 않고 얼굴을 꼼꼼히 살폈는데 작은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후 프로그램을 전부 끝내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도 작은누나를 찾을 수가 없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강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강사는 너무나도 친절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어드밴스드 과정 수강생 중에 작은누나가 있는지 확인해 주었다. 그러자 작은누나는 이미 몇 주 전에 이곳을 떠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지나치게 쉽고 간단해 그들이 일부러 작은누나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잠깐 들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곳의 보안이 맥이 빠질 정도로 느슨해서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것 같았다.

 

    야간에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강사가 나를 찾아왔다. 강사는 낙담하고 있던 나에게 작은누나가 머물렀던 방이 아직 그대로 있다고 하는데 혹시 가보겠냐고 물었다. 작은누나는 어드밴스드 과정 중간에 이곳을 떠나버렸고 연구소 측에서는 혹시라도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 방을 아직 치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작은누나가 머물렀던 곳은 중력캠프 참가자가 쓰는 일반 숙소와는 다른 곳이었다. 십자로 북쪽에 있는 대형 송신탑이 있는 곳에 만들어진 지하 시설이었고 그곳은 숙소가 아니라 기도실, 또는 카타콤이라고 불렸다.
    강사의 안내를 받아 송신탑 옆 외부에 따로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시설로 내려갔다. 승강기는 마치 광산에서 쓰는 것처럼 외부가 개방되어 있었고 층수 없이 오르고 내리는 버튼만 붙어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하강하는 엘리베이터 안은 어둡고 적막했고 가끔 덜컥거리며 쇳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하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공기였다. 바깥보다 공기가 훨씬 눅진했고 먼지와 암석 내음이 뒤섞여 풍겼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백색 등이 희미하게 켜진 중앙 복도를 따라 걸으며 나뭇가지가 뻗듯 교차하며 연결된 기도실을 지나쳤다. 각 기도실 안에는 어드밴스드 과정 참가자들이 머물면서 수련하는 중이었다.
    작은누나가 머물렀던 기도실의 내부는 내가 지내고 있는 고시원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작은 책상이 전부였다. 기도실 천장에는 붉은색 전구가 달려 있었다. 그 전구는 켜고 끄는 스위치가 없었다. 그 전구의 밝기는 가까스로 글자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수면을 방해할 만큼 눈부시지는 않았다. 강사는 내게 이곳에서 하룻밤 자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했다. 그건 전우에게 베푸는 순수한 호의일 수도 있지만 나를 어드밴스드 과정으로 유인하려는 미끼이거나 함정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혼 소송까지 진행 중인 마당에 인생이 여기서 더 나빠질 건 없을 것 같았고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해볼 수 있는 건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강사가 떠나고 문이 닫히자 복도의 불빛이 끊겼고 기도실 안에는 오직 붉은 등불만 남았다. 천장 위에 매달린 전구는 그냥 켜져 있는 게 아니라 쉼 없이 점멸하는 중이었다. 그저 그 주기가 너무 빨라 켜짐과 꺼짐의 경계가 사라졌을 뿐이었다.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호흡하며 그 붉은 불빛을 더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빛이 단순히 꺼졌다가 켜지는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내 머리 위 어딘가로 날아갔다가 다시 반사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떠오르고 저무는 태양처럼 보였고 나중에는 아버지가 그린 해돋이 그림으로 변해 있었다.

 

    아버지가 그림을 전부 불태웠던 날 작은누나는 자고 있던 나를 한밤중에 깨웠다. 이미 옷을 챙겨 입었고 신발을 두 손에 들고 있었다. 내가 어딜 가냐고 묻자 잘 있으라고만 속삭였다. 나는 작은누나가 혼자서 어머니한테 가려는 줄 알고 손목을 꽉 붙잡았다. 옆에서 취한 채로 잠든 아버지가 몸을 웅크리자 우리는 숨을 죽였다. 작은누나는 아버지가 여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무작정 작은누나를 따라나섰다. 한쪽 손으로 누나의 옷깃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바지와 점퍼를 주워 입었다. 그사이에 작은누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날 버려두고 가버릴 것 같아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작은누나는 계속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부스럭거릴 때마다 몸을 뒤척였다. 내가 거의 다 옷을 입었을 때는 약간 깬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작은누나는 그대로 내 손을 끌어 잡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논둑길을 지나고 축축한 흙을 밟으며 정신없이 내달렸다. 작은누나보다 보폭이 작은 내가 속도를 맞추려면 더 빨리 발을 굴려야 했다. 온종일 비가 내려 땅이 진흙탕이었다. 발이 닿는 곳마다 흙탕물이 튀었다. 발바닥이 뜨겁고 아파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쫓아오는지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도 못했다. 그저 그곳에서 최대한 멀리 전속력으로 뛰었다. 축대를 쌓아 놓은 마을 입구를 지나 차가 다니는 대로까지 벗어났고 드물게 서 있는 가로등 불빛과 스쳐 지나가는 트럭의 전조등 불빛에 의지해 밤길을 헤쳤다. 그날 밤 작은누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내 손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우리는 강릉역 광장까지 걸었다. 기와로 된 팔각정에 누워 밤을 지새울 생각이었다. 작은누나는 공중전화에 넣을 동전을 구하기 위해 자판기 잔돈 반환 구멍마다 손을 넣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경찰에게 붙잡히고 난 후였다. 내가 먼저 철길 위를 걷다가 순찰 중인 경찰과 마주쳤다. 그 후에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끝내 전화를 걸지 못했던 작은누나가 붙잡혔다. 우리는 파출소로 옮겨졌고 경찰은 우리 몸에 왜 멍이 나 있는지 유리 조각 같은 것에 베인 자국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물었다. 누나는 아버지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서울에서 왔고 길을 잃었다며 어머니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뒤 경찰은 유치장에 모포를 깔아 주었다. 곰팡내가 가득했는데도 신기하게 이불을 덮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철창 바깥에는 아버지가 와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기도실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천장의 붉은빛은 꺼져 있었다. 현실감각을 되찾으려고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손바닥으로 대충 비벼 닦아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는데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주저앉았다. 손을 더듬어 휴대전화를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겨우 상반신을 일으켜 잠시 멍한 상태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있으니 어디선가에서 누군가 중얼거리거나 흥얼거리는 말소리 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벽을 타고 바닥에 내려앉아 내 발밑으로 밀려왔다가 서서히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주변을 감싸며 점점 더 크고 선명해졌다.
    내 귓가에 어지럽게 부서지는 그 목소리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방에서 쏟아지고 있는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겹쳐 지하 시설 전체에 공명하며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 울림 속에서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답을 달라고 매달렸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원망했으며 누군가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흐느꼈고 누군가는 화를 이기지 못해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그 모든 슬픔과 괴로움과 탄식과 염원은 내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기도실을 떠날 때까지도 내 등 뒤에 달라붙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자 동이 트기 직전 일렁이는 마지막 어둠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이내 사라져 버렸다.
    가져온 짐도 챙기지 않고 이대로 정문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딱히 쫓아오거나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깊은 어둠 속을 혼자 걸으며 십자로를 내려왔다. 그러다 갑자기 걸음이 멈췄다. 깊은 구멍에 발목이 빠진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송신탑을 올려다보았다. 송신탑 꼭대기에서 붉은빛이 깜빡이며 반짝였다. 나는 지하에서 작은누나의 기도 소리를 들었다. 그 간절한 속삭임은 송신탑을 타고 우주 어딘가로 날아가 원하는 곳에 닿았을까?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바퀴가 달린 이민가방 속에 갇혀 있을까?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작은누나는 내게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절대로 그 어떤 말도 하면 안 된다고. 이건 오직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작은누나는 내게 다짐을 받듯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었다. ■

 

 

 

 

 

 

 

 

 

 

윤치규
작가소개 / 윤치규

2021년 《서울신문》 및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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