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프레스

[단편소설]

 

 

프렌치프레스

 

 

이서안

 

 

 

롱 테이크(Long take)

    이팝나무 가지 사이로 짙푸른 호수의 물빛이 드러났다. 롱샷의 화면처럼 물새 한 마리가 천천히 선을 그으며 지나갔고 게으른 바람이 잠시 시선을 흔들었다. 이 씬을 볼 때마다 장은 한낮을 정신없이 태우다 지쳐 스러져 가던 캘리포니아의 그늘진 바다가 떠올랐다. 각인된 기억에는 그 어느 누구도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풀어 놓을 듯 장의 기억은 또렷했다. 오늘도 그는 어김없이 각도 하나 틀리지 않고 평소 앉던 자리에서 창을 통해 이 경치를 직시했다. 옅은 태양은 벌써 산언저리를 물들였고 숲의 짙은 장막은 호수 아래로 드리웠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휑한 카페에는 직원들이 뒷정리로 바빴고 빈자리에는 기약 없는 시간의 타종이 울러 퍼졌다. 오후 5시 35분, 폐점 시간 25분을 남겨 두고 여러 사람이 가려진 식물 잎사귀에서 보였다 가려졌다. 장은 일순간 어린 시절의 숨바꼭질이 떠올라 속으로 피식 웃었다. 카페가 문을 닫으면 에어컨이 멈춤과 동시에 히터가 가동돼 환풍기와 함께 실내공간을 누빌 거였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사소하게 여길지 몰라도 잔뜩 움츠렸다가 다시 잎사귀를 늘어트릴 녀석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임에 틀림없었다.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하기 위한 배려라지만 장은 하루 종일 냉기에 혹사당한 식물들을 생각하니 정수리가 찌릿했다. 카페가 자리를 차지하기 전 이곳은 열대식물로 빽빽했던 식물원이었다. 위에서 결정 내린 사항이라 받아들여야 했지만 공간의 변화로 인한 대가는 언젠가는 치르게 될 터였다. 호숫가를 따라 빛의 잔영들이 서늘한 유리에 실루엣처럼 아른거렸다. 그러면서 30분 동안 이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자신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년간의 수목원 폐쇄조치는 생태계를 눈부시게 바꾸어 놓았다. 인간의 발걸음이 뚝 끊어진 곳에는 언제든 식물과 동물의 무한한 안식이 누려졌다. 어떻게 보면 자연은 내버려두는 게 보존과 회복을 더 빨리 돕는 거였다. 그 바람에 장도 꽤 큰 실적을 건질 수 있었다.

 

페이드인(Fade in)

    먼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 한 줌이 장의 볼을 가볍게 스쳤다. 동풍이었다. 지난주부터 바람의 세기가 잔잔해지면서 급격히 포근해졌다. 주변이 온통 기지개를 켜듯 바람에 한껏 들떠 순식간에 숨죽이던 모든 게 아우성칠 것 같았다. 백신이 공급되면서 사람들은 맑은 공기에 목말라했다. 생존 전투를 겪어 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갈구하는 이들은 생명 공급을 절실히 느꼈기에 떼거리 지어 밀려올 거였다. 사람들로 가득 찰 수목원을 생각하자 그의 머릿속에 종내 바빠질 일정이 그려졌다.
    유리천장까지 솟은 종려나무 가지 아래로 은엽 아카시아가 유리 전체를 에둘러 가지를 뻗어 나간다. 초록과 노랑의 조화는 마침맞게 싱그러움을 선사했다. 개점 시간에 맞춰 들어온 관람객들은 일제히 고개를 쳐들고 봄의 제전을 알리는 노랑의 속삭임에 탄성을 자아냈다. 조경을 맡은 담당자들의 섬세한 배치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생 사진을 안겨 주었다. 장의 발걸음은 바삐 복주머니란 전시관으로 향한다. 은엽 아카시아가 지고 나면 바깥 자생지 코너에 자리 잡은 특별관에서 다양한 복주머니란들이 각양 꽃들을 피워댈 거였다.
    그녀는 은엽 아카시아를 노랑 아기라고 불렀다. 학명에 익숙한 장과 달리 아카시아 데알바타로 부르기를 사양했다. 그건 익숙함이 주는 이름이었다. 5월의 하얀 꽃잎이 주절이 달린 국내의 흔한 아카시아와도 상치되었기에 그녀는 노랑 아카시아라고도 부르지 않고 노랑 아기라고 불렀다. 식물원의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데알바타를 그녀를 위해 이식해 심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집 울타리 전체가 짧게나마 개나리 담장처럼 넝쿨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개나리가 피었다고 하다가 가까이에 와서는 어머, 개나리가 아니네. 뭐지? 또 어떤 이는 산수유야, 하고 지나갔다. 그녀는 담 울타리에 덩굴져 핀 노랑 아기가 맞는 봄을 두 번 맞이하고 향기에 젖어 눈을 감았다. 장은 지금도 그녀가 불쑥 어디에서 고개를 내밀 것 같아 화들짝 고개를 창밖 정원으로 돌릴 때가 있다. 살아서나 잠들었으나 집 안 가득 온통 그녀의 체취였다.
    그녀의 정원에는 씨들이 날아와 자연스럽게 터를 잡지 않는 이상 야생화나 야생초가 없었다. 자생지에서 캐온 식물들을 집 정원에 옮겨 심었을 경우 거의 사멸이었다. 식물 애호가들은 야생식물이 자란 그 자체로 보기에 만족했으나 애정이 빗나간 사람들은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곤 했다. 어느 날 그녀의 지인이 귀한 야생화라며 등반 중 캐온 식물을 그녀에게 가져왔다가 절교를 당할 뻔했다. 지인은 그녀를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그렇게 화를 낸 얼굴을 처음 봤다고, 식물을 아끼는 마음도 컸지만 아무래도 이국땅에서 원하지 않던 삶을 살아야 했던 당신의 아들을 그 야생화에 이입하지 않았나 싶었다며 장례식장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포코 아 포코(poco a poco)

    우중충한 날씨를 예견했건만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까지는 괜찮을 거라고 유민은 생각했다. M역 5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빗방울이 두두둑 떨어졌다. 백팩을 열어 우산 펼치기가 어중간했다. 버스정류소까지 무작정 뛰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장조 같은 맑은 날을 비집고 단조 같은 비의 음계도 괜찮아, 그건 소소한 변화야’ 자신에게 세뇌를 걸자 32번 버스가 스포르찬도(sforznado)로 그녀를 환영하며 기다려 주는 것 같았다. 근무지에 도착하기까지 50분 정도의 여분의 시간은 오늘의 선곡 듣기였다. 메트로놈마냥 랜덤 재생을 몇 번이나 눌러 보아도 버스와 달리 딱히 귀가 멈추는 노래는 없었다. 창밖의 차와 사람처럼 몇 초의 다른 인트로 듣기로만 바쁘게 지나갔다. 무엇보다 노래의 분위기에 기대어 돼먹지 않은 기분 코스프레는 사양하고 싶었다. 공연은 끝났고 유민은 고개를 창가에 처박고 소리와 상관없이 스모르찬도(smorzando)로 잠들어 있었다.

 

    리저브 바의 바리스타들이 오늘의 커피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일곱 종류의 커피 원두가 매장을 찾을 손님들에게 선보일 거였다. 에스프레소 머신 쪽에는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디저트와 식기류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번 달부터 폐점 시간이 한 시간 늘어난다는 공지를 매니저로부터 들었지만 나의 1시간을 9천 원으로 보상한다는 그 소식을 반겨하는 사람은 없었다. 몇 군데의 산 능선에 걸쳐 있는 수목원의 어둠은 까무룩 찾아왔다. 문 닫는 시간에 가깝게 그늘진 산은 슬그머니 산 아래 호수까지 짙은 그늘을 만들었고, 그러다 온통 깜깜함으로 덮어버렸다. 경계를 확인해 주고 실팍하게나마 마음을 밝혀 주는 건 여지없이 센서 가로등뿐이었다, 현진은 유민이 1시간 늦게 마친다고 하자 자기 퇴근 시간과 얼추 맞아떨어졌다고 환영했지만―유민은 수목원 입구 벤치에서 스마트폰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자주 현진을 기다려야 했다―그녀는 한 시간 더 서 있어야 하는 다리의 통증이 묵직하게 당겨 왔다. 군청에 근무하는 현진은 그녀의 퇴근 카풀 친구였다. 그들은 대개 서울로 진입할 때까지 하루의 가십거리들을 몽땅 꺼내 재잘거리다 도로 위에 탈탈 털어버렸다. 스트레스는 그렇게 가볍게 날려 보내는 거였다. 내일의 가십거리는 또 생길 테니까.
    에스프레소 머신을 맡은 맥스가 필터의 찌꺼기를 손으로 탁탁 털어내는데도 한 번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최근 손목터널증후군에 시달린다며 손목이 싸하다 못해 이제 시리다고 말했다. 유민도 S 매장에 있을 때 겪어 보았기에 그가 엄살을 부린 말이 아니란 걸 모르지 않았다. “손의 각도를 수평으로 잡아 봐. 잠글 때는 반대쪽으로 해야 무리가 덜 가. 손목만 움직이지 말고 몸 전체를 움직여.” 마스터가 넌지시 일러주어도 50잔부터는 요령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목과 어깨, 등 쪽이 뻐근해지다 미세한 통증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오늘 그가 뽑아낼 커피의 양은 쌓인 잔여물을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머신 코너보다는 덜 바빠도 리저브 바라고 커피 찌꺼기가 덜 나오는 건 아니었다. 싱크대에 추출기 필터를 씻자 찌꺼기들이 싱크대 표면에 들러붙어 지저분하다. 일상에서 걸러지는 것과 남는 것은 무엇일까? 가라앉은 찌꺼기들을 말끔히 제거하고 싶은데도 이렇게 덕지덕지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며 유민은 부담스러운 눈길로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샤워기로 개수대 둘레를 몇 번 헹궈내자 점처럼 박혀 있던 찌꺼기들이 겨우 씻겨 나간다. 그래도 손가락 사이로 가슬가슬한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유민은 찝찝했다.
    옆의 바리스타가 드립포트를 높이 들어 시계방향으로 그리자 이내 방울들이 주르륵 떨어졌다. 연갈색의 방울들이 조명을 받아 더욱 투명하다. 지켜보던 고객의 눈빛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본다. 모든 것을 걸러낸 결정체는 그렇게 깔끔하게 빛난다.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디감이 깔끔하고 과일의 어우러진 신맛일 것이다. 필터가 없는 전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맛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이렇게 깔끔하려면? 스마트한 관계의 전제는 필터가 있어야 한다고 유민은 단정 짓는다. 그래야 오래 지속되고 끝까지 산뜻할 수 있다. 전지전능한 신은 인간이 원래부터 연약한 존재임을 전제하고 인간을 바라본다지만 유민은 분명하려고, 투명하려고, 직시하려 할수록 여과 없이 들어오는 걸 수습하지 못해 멍들고, 부서지고, 망가져 찌꺼기가 되곤 했다.
    리저브 바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커피 마니아나 커플들이었다. 커피 마니아들은 추출 방식에 따른 맛의 차이를 음미하려고 왔지만, 커플들은 대체로 연인과 있는 시간을 더 로맨틱하고 분위기 있게 만들 요량이 컸다. 지금 이 커플도 눈빛으로 서로 애정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케멕스에서 추출한 명료함에 매료돼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바디감에 눈웃음을 잊지 않았다. 커피 마스터가 킬리만자로 커피라며 탄자니아 AA를 추천했다. 커피의 순하고 깔끔한 풍미가 어우러진 커피였다. 자신들 앞에 이 커피의 영롱함같이 평탄한 날들이 저들의 앞날일 거라고 믿을 거였다. 추출된 한두 잔의 황홀함보다 찌꺼기의 삶이 더 많을 거란 걸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거라고 유민은 마음속으로 주절거렸다. 마스터는 그들이 쏟아내는 애정을 뒤로 하고 묵묵히 한 손으로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내렸다. 리저브 매장에는 프렌치프레스를 마시는 사람보다 케멕스나 푸어 오버, 사이폰 추출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면 프렌치프레스는 카페의 매뉴얼을 갖추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커피 맛을 아는 애호가 중에는 프렌치프레스를 특별히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김없이 오늘도 그는 호수를 바라보며 프렌치프레스를 마셨다. 유민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또렷이 기억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케멕스와 사이폰을 뛰어넘어 처음부터 프렌치프레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래전 W 회사의 박 부장이 생각났다. 그는 말보다 턱으로, 혹은 눈짓으로, 손가락으로 지시를 내렸다. 비언어적 표현은 박 부장의 손가락 방향과 달리 유민을 퇴사로 향하게 만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박 부장은 눈짓과 손짓이 일치했는데 이 남자의 눈빛은 눈앞의 현실을 떠나 다른 차원에 머문 것 같았다. 근무한 지 6개월이 되도록 그가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매번 동절기에는 4시 30분, 지금은 5시 30분에 허겁지겁 와서는 프렌치프레스를 들고 호수가 보이는 테이블로 가서 마시다가 폐점 정각에 일어나 급히 나가는 게 그의 일정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러니까―휴무일만 빼고―모든 날이 자동기계처럼 이 남자에게 똑같은 나날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처음 한두 번 손가락으로 지시하던 것을 멈추고 이제 그조차도 하지 않고 세팅된 프렌치프레스를 들고 가는 거였다. 눈치가 아주 더디지 않다면 매일 오는 고객의 필요를 모르는 바리스타는 없을 것이다. 유민은 언제부터 기다리게 하지 않고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프렌치프레스를 들고 가도록 준비를 마쳤다.

 

디졸브(Dissolve)

    유리잔에 떠도는 커피들의 유영을 장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떤 녀석은 아프리카 산악의 토지에서 공기와 비와 양분을 먹고 자랐다. 또 다른 알갱이는 남아메리카, 너무도 다른 토양에서 자랐다. 토양이 다르니 맛도 다르고 녀석들이 자란 자질도 다를 거였다. 파헤쳐야만 볼 수 있는 토양의 세계를 유리잔을 통해 바라보며 장은 오늘 하루 배양 과정에서 힘들었던 일들과 실험 과정의 시행착오를 정리한다. 가라앉은 알갱이들이 자신의 뇌 속에 정리된 지식의 축적 같아 마음이 안정되었다. 여러 나무의 수액을 마시듯 그는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흙을 뚫고 자란 커피나무의 붉은 열매들이 알알이 박혀 장의 시야로 겹쳐졌다. 남아메리카에서부터 아프리카의 대지까지, 향기를 머금은 나무들이 바람을 따라 난분분했다.
    간절한 갈망 끝에 낳은 아들을―그녀의 나이 40살 때―그렇게 빨리 낯선 나라로 떠나보낼 줄 몰랐다고, 25년 만에 만난 장의 얼굴을 더듬으며 한 서린 숨을 내쉬었다. 지금 와서 부모의 결별을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도 못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미안하다”라는 한 마디의 말로 갈무리했다. 그게 그렇게 한 문장으로 납득이 되는 게 아닌데도 그는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작별 인사를 택했다. 그렇다고 그 말에 훅을 날리기에 그는 너무도 늙었고 몇 숨조차 남지 않아 보였다. 이국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저 해원의 끝을 향해 가면 언젠가는 그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다짐이 어린 마음에 차곡차곡 새겨졌었다.
    수목장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건 암묵적인 그녀와 장의 약속이었다. 그녀가 기다린 시간만큼, 장은 한 그루의 나무로만 그녀를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무들마다 그녀의 체취를 담아 주고 싶었다. 사람을 떠나보낸다고 보내지는 게 아니었다. 땅속 깊숙이 켜켜이 쌓인 이 지층처럼 그리움의 또 다른 변주로 쌓여만 가다가 돌연, 생각지도 못한 생명이 그 자리에서 싹트고 피어났을 때 재회의 신비가 이루어졌다. 기다림에 대응해 그녀를 오랜 시간 버티게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꽃잎들의 향내를 장에게 내밀었다. 그가 수목원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수락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근처에 그녀가 살던, 그가 태어난 오랜 집이 있었기에⋯⋯.

 

    적요한 숲을 뚫고 핸드폰 소리가 클로즈업 되었다. 자연에 반하는 기계음은 늘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팀장님, CJT7 쪽으로 빨리 내려와 보셔야겠습니다.” 김 연구원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물을 새도 없이 전화가 뚝 끊겼다. CJT7? 무슨 문제지? 어제 낮까지만 해도 순조로웠는데 왜⋯⋯?
    5명의 연구실 직원이 CJT7 주변에 서 있었다. 표정들이 심각한 걸 보니 사고가 생긴 게 분명했다. 장을 쳐다보는 시선들이 난감하다는 듯 장과 CJT를 번갈아 봤다. CJT의 서식지는 국내에서 몇 군데뿐이었다. 자생지에서 자란 희귀 야생식물을 옮겨 심는다는 건 실패를 각오해야 했다. 꾼들의 무분별한 채취로 희귀종이나 약재가 되는 식물들은 자생지에서 멸종하는 사례가 컸기에 희귀식물의 증식은 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 하더라도 증식 성공 확률에는 기약이 없었고 몇 년의 노고가 따르는 건 허다했다. 주변 흙을 건드리지 않고 떠서 조심스레 심더라도 식물들은 환경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엇보다 CJT는 곰팡이와 공생 관계라 몇 년째 실패를 안겨 주었다. 산의 제일 위쪽과 중간, 아래 여러 서식지에 실험적으로 재배를 시작했다. 문제가 터진 건 산 아래쪽, 즉 일반인 출입이 잦은 곳이었다.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목적상 서식지 환경을 넓혀서 키울 필요가 있었다. CJT7 증식지는 산 위쪽과 중간의 철조망 대신 미관을 고려해 나무 울타리로 경계를 정했으나 꽃 자체가 특이해 조금만 식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연자주색의 꽃잎은 푸르죽죽하게 오그라들어 원래의 색깔을 잃어 갔다. 어제만 해도 날빛에 고운 자태를 내보이던 모습은 어디를 봐도 없었다. 장의 눈길은 CJT에 잠깐 머물다 울타리를 열고 들어갔다. 나무 주변으로 30도의 경사를 따라 CJT는 퍼져 있었는데 꽃잎이 시들어 죽은 듯 보이는 부분은 공교롭게도 울타리 경계선도 아니고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 주변이었다. 여러 추측을 자아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곰팡이의 균사가 가장 왕성한 나무 주위에서 쑥쑥 자랐는데 별안간 죽어간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외부인이 작심하고 무언가를 뿌렸거나 장난을 쳤다면 이렇게 나무 주변만 빼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동물의 침입이 있었다면 울타리로 넘어온 흔적이 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새나 곤충의 습격이라면 잎사귀나 꽃잎에 상처가 생겼어야 했다. 지금 가장 의심해야 할 부분은 나무 주위의 토양이었다. 그러나 장은 그 어느 것도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무언가 외부의 원인이 작용한 게 틀림없다는 것밖에는⋯⋯.
    1차 분석 결과, 시든 CJT7 쪽의 토양은 잘 자라고 있는 CJT7과 성분 함량이 똑같았다. 수치 성분상 달라진 건 안 보였다. 곰팡이 균의 변화 양상도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종자 보존연구팀에게 비상이었다. 학계 보고가 한 달 남짓 남았는데 그동안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지 몰랐다. 뿌리와 줄기, 잎에서 어떤 문제점도 발견되지 않자 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지막 남은 꽃잎들과 곰팡이마저도 밝혀지지 않는다면⋯⋯ 빛이 보이지 않았다. 연구실 밖은 까마득한 우주가 되었다.
    현미경에서 꽃잎 세포는 잔뜩 움츠려 움직임이 둔했다. 오랜 연구의 업적을 이렇게 깡그리 날려 보냈다며 끓어오르는 분을 터트리는 보통 사람들의 반응과는 달리 장은 이 모든 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해 실험 과정을 면밀히 역추적했다. 그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무수히 반복된 실험의 정설을 뒤집는 거였기에 그는 원인을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나무를 둘러싼 한 라인에만 변수가 나타났다는 것에 재차 답답함과 긴장이 일었다. 실험실 창밖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희끄무레한 새벽안개로 자욱했다. 원인불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앞머리가 지끈거렸다. 날숨을 크게 쉬고 다시 스캔한 부분의 함량 분석에 들어갔다. 수백 번의 검토 끝에 추출된 건 예상조차 못 한 성분이었다. 장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타르! 아니, 타르가 검출되다니? 날아왔는지 뿌렸는지 몰라도 수목원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세 꽃잎과 곰팡이에 공통적으로 타르 성분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담배 연기? 그의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그어졌다. 하룻밤 만에 타르에 점령당한 결과물이 발생했다니! 외부 침입자의 소행이 분명했으나 그는 침입자를 찾아내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밝혀진 타르 성분의 결과물이 CJT에 미친 영향 연구에 곧바로 들어갔다.
    카페는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흡족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별관에 딸린 식당 부근에 카페를 개점할 것을 찬성한 직원들의 속내는 식물의 훼손을 막는 거였으나 뜻밖의 결정은 식물원 한 동을 카페로 쓴다는 거였다. 어느 정도 각오한 우려는 당장은 찾아오지 않았다. 2년간 수목원의 폐쇄는 수목원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되돌려 놓았다. 연구실의 성과도 적지 않았다. 자귀나무를 연구한 부서에서는 화장품 개발의 성과까지 끌어올렸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매장과 수목원의 제휴였다. 카페 아래의 호수가 보이도록 전면을 유리창으로 만들어 카페에 앉아만 있어도 숲과 호수의 전망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침에는 호수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와 산에서 내려오는 구름이 뒤섞여 장관을 연출했다.
    문제는 사람의 번다한 출입으로 자생지에서 옮겨온 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상부에서는 몇 년간 숲이 튼실해졌으니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지만 자생지에서 그렇게 힘들게 이식해 정착시킨 CJT에 사달이 났다. 담배 연기라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무거워졌다. 담당 직원들이 CCTV를 검토해도 그 많은 출입자 중에 담배를 피운 사람을 찾아내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찾아본들 이미 손상된 식물을 어떻게 회복시킨단 말인가. 사람이면 주사를 놓든지 약 처방으로 회복시키겠지만 문제는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몇 년 전부터 잠을 설쳐 가며 쏟아 부은 수고들이 장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곰팡이와의 공생 관계를 밝혀내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데 손상이라니, 한 라인만 손상돼 천만다행이었으나 혹여 그 옆 난들까지 파장이 미친다면⋯⋯.
    수목원 입구부터 숲속 구석구석까지 사람들 방문이 가장 많았던 한 달간을 면밀히 조사해도 CCTV에 이상 증후는 없었다. 출입 시 금연 여부도 철저하게 조사했고, 관계자들은 100미터마다 금연 경고문을 눈에 띄게 붙여 놓았다고 했다. 수목원 연구동에 흡연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마지막 남은 곳은 카페, 담당 매니저에게 조심스레 조사를 해보라고 권유하자 거기서도 흡연자는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담배 연기가 아니라면 타르는? 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복주머니란 전체가 손상이 되어야 했고 다른 식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비 담당자가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이 퇴근 시에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본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얼굴은 어두워서 자세히 보지 못했으나 담배 연기는 확실했다고 한다. 매니저를 찾아가 전 직원을 조사하겠다는 보고를 받고서 잠시 장은 서둘지 말고 추이를 살펴보기를 당부했다.
    세 송이의 복주머니란이 장 앞에 놓여 있다. 시든 CJT를 모두 수거해야 했지만 며칠만 경과를 지켜보고 싶었다. CJT 주변에 좋지 않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컸으나 그것도 참고할 상황이었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우려했는데 이렇게 빨리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실험실 테이블에 세 꽃잎이 그의 손길로 모아진다. 현미경 분석 때 둥글고 큰 꽃잎을 한 잎씩 떼어낼 때마다 보드라운 속살의 감촉이 그대로 손에 느껴졌었다. 한 장씩 뗄 때마다 자신의 피부가 떨어지듯 애절함이 전신을 타고 흘러내렸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장의 눈빛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인덕션의 버튼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가장 약한 불로 조절한 장은 꽃잎들을 팬에 올려놓았다. 커피콩을 볶듯 그는 꽃잎들을 천천히 볶기 시작했다. 땅의 기운을 뚫고 줄기를 향해 한껏 피어오른 꽃잎들은 목숨을 다하지 못해 얄궂은 운명에 의해 꺾여야 했다. 꽃잎은 본연의 색깔을 잃고 열기에 습기를 모조리 잃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여태껏 머금은 마지막 향기를 피워 올렸다.

 

리베라멘테(liberamente)

    카페 안은 풍미 짙게 우러난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옆 칸에는 사이폰과 케멕스 추출 기구들이 줄지어 전시돼 있다. 스텐 드립 포터를 잡은 바리스타의 오른손이 조심스럽게 원을 그린다. 커피가 리듬 있게 떨어진다며 젊은 연인들이 속닥거렸다. 바리스타는 그들의 얘기에 무심한 척 마지막 크레마의 기운이 스러질 때까지 집중한다. 연인들의 표정을 살핀 바리스타가 어질러진 기구들을 정리하곤 곧장 블랙이글로 추출한 에스프레소 샷에 리저브 베리에이션 음료를 만든다. 저 음료에 라벤더 향이 짙게 넘어갈 바디감을 떠올리자 유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 쪽으로 향했다. 카페 창 너머로 바이올렛과 팬지가 지천으로 깔렸다. 조만간 저 보라색의 향연에 이어 라벤더의 물결이 호수 나무 아래 드넓게 수놓을 거라던 조경사의 말이 떠올랐다. 5분 뒤에 남자는 틀림없이 나타날 거라 유민은 원두를 분쇄하고 드립 포터로 글라스를 따뜻하게 데웠다.
    어제 느닷없는 현진의 퇴사 질문에 유민은 몇 년 전 아침 정경이 떠올랐다. 이마에 와 닿는 아침 햇살이 맑게 느껴져 눈을 떴다. 마냥 미적거리며 그 환한 빛 속에서 한없이 늘어지고 싶었다. 10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와 함께 11시가 훨씬 넘어 회사에 도착했고, 지각의 사유를 굳이 자신에게 닦달하지 않아도―꿈을 길게 꿨다거나,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 줬다거나, 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될 일상을 누리고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표를 쓰고 나왔다.
    3년간 열심히 일했잖아―난 익숙함이 주는 정겨움과의 별리를 원했나 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것의 비릿함을 맛본다고 해도 결코 익숙하고 지겨운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진짜 속내를 밝히지 않은 건 긴 변명이 스스로에게 지루하기도 했지만 공무원인 그녀의 한계를 알았는지도 몰랐다.
    그래, 다양한 경험도 좋지.
    유민은 현진이 그다음에 덧붙일 말들을 익히 가늠했다.
    남자의 하얀 가운 왼쪽 위 주머니에 ‘자원보존부 장 데이비드 Ph.D’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오는 시간은 거의 적확했다. 5시 30분, 폐점 30분 전이었다.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시간이었다. 수목원 내방객들은 5시쯤 되면 거의 나가고 없었다. 뒷정리를 슬슬 끝낼 즈음에 그는 혼자 해질녘의 호수를 노려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는 유민의 말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처음 방문했을 때 오늘의 커피를 설명하며 커피를 시음하는 그에게 맛을 묻자 그는 청각장애를 앓는 사람처럼 무반응으로 일관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차라리 성가시게 말 많은 고객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30분을 300분같이 느껴지도록 만드는 묘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이 시간에 오지 않았다면 유민의 피곤은 훨씬 가벼워질 거였다. 에스프레소 머신 쪽 사람들은 퇴근 준비로 바빴고 리저브 마스터는 어디로 가버리고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6시 정각에 그는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정신없이 어딘가를 향해 뛰어갔다. 왜 뛰어가는지는 몰랐지만 그에게 뭔가 시급한 일이 있는 건 분명했다. 누구는 30분의 여유를 즐기는 데 반해 유민은 손님이 마신 프렌치프레스의 유리잔과 압력 필터에 묻은 찌꺼기를 씻어내고 있었다. 굳이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삶의 모순은 늘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연스럽게 익혀 가는 거였다.

 

스트린젠도(Stringendo)

    카페 식물원에 배치한 커피나무의 인기가 높았다. 하얀 꽃잎들이 알알이 박힌 잎사귀를 보며 손님들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무래도 카페에서 무심코 마신 커피인데 그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근원을 알게 되자 수목원 담당자나 카페 직원에게 집에서 가꾸는 방법들을 물어댔다. 물론 수목원 관계자들은 이런 효과를 기대한 거였다.
    아무리 사람에게 무관심하다고 해도 몇 달 동안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커피를 마시는 손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직원은 없을 터였다. 봄의 생동을 알아챈 도시의 갈급자들이 오늘따라 유달리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2년 동안의 폐쇄에 따른 여망에서 비롯되었는지 몰랐다. 오전부터 정신없이 바빠서 화장실을 언제 갔다 왔는지 잊을 정도였다. 옆 코너의 에스프레소 머신 팀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무리의 손님들이 빠져나가면 연이어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게다가 쿠폰 사용 손님들이 잦았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주문대 앞에 서 있었다. 그만큼 일의 진척이 느려졌다. 마음이 바빠졌다. 영업점은 최고의 매출일, 우리에게는 최악의 날이라는 눈짓들이 오갔다. 리저브 바의 두 바리스타가 카운터 쪽에 투입되었다. 유민과 마스터만 리저브 바 손님들을 쳐냈다. 그렇게 맡겨진 테이블의 손님을 치르고 쳐다본 시간이 5시 20분이었다. 습관처럼 유민은 프렌치프레스를 내릴 준비를 하였다. 유리컵을 데우고 그가 늘 마시는 커피를 갈아 리프팅을 끝내자 정확히 5시 29분이었다. 30분이 되면 그는 바 테이블에 와서 커피를 가져갈 것이고 ― 그는 한 달분의 커피 값을 늘 미리 결제하였을 뿐 아니라 매니저는 VIP라며 잘 모시라고 거듭 당부했다 ― 그가 테이블에 앉아 삼사 분 뒤 프렌치프레스를 눌러 내릴 것이다. 근데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다. 홀의 직원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웬일이래? 라는 눈짓을 보냈다. 매니저의 지시도 있고 또 고객과의 약속이기에 우리는 5시 55분까지 기다렸다.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6시, 유민은 프렌치프레스에 담긴 커피를 싱크대에 버리고 추출기의 찌꺼기를 씻어 내렸다.
    수목원을 나서는 길이 오늘따라 서늘하게 느껴지는 건 자신의 컨디션 탓이라고 유민은 생각했다. 그가 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하는 호기심이 살짝 스쳐 지나기도 했지만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 사람이 자동기계가 아닌데⋯⋯ 코웃음이 났다. 그도 사람이라는 것에 웃음이 났는지, 네가 언제까지 그러고 사나 보자, 하고 넌지시 장담을 했던 게 맞아떨어져 그랬는지 왠지 맥이 탁 풀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밤 사위는 색다르게 정적이 감돌았다. 흔하게 울던 새소리도 들리지 않아 휑하기까지 했다.
    담배가 유달리 당겼다. 집에 가서 피울까도 싶었지만 이성보다 몸이 민감하게 서둘렀다. 30분 가까이 무반응의 시간으로 몇 달을 고문하더니 이제는 오지도 않는 장 박사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커피를 타놓고 기다리다니, 유민의 혈류 기압은 차오를 대로 올랐다. 멀찌감치 주차장이 보였다.
    빨리 밟아!
    유민은 담배 갑을 꺼내 현진을 향해 흔들었다. 한 개비 피우고 나자 정신이 말짱해지며 소소한 일상의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웬 관심? 너 그 팀장 약간 이상하다고 했잖아?
    응, 근데 몇 달 동안 어김없이 오던 사람이 갑자기 안 오니까.
    사고 났나? 출장 갔겠지.
    그럴지도 몰라.
    그 사람 식물에 미쳤다며?
    연구실 사람들 대부분 그래
    얘, 뭐든 지나치면 안 돼.
    현진은 유민을 흘낏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너무 빠지면 안 돼. 그중에 사람한테 빠지는 게 제일 위험하고.
    맞아, 그건 나도 인정.
    막막한 어둠을 질주하며 유민은 오늘도 소소한 얘기들을 도로 위에 털어버렸다.

 

    유민은 그곳에 그런 희귀식물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수목원에 식물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들에게는 식물이 특별했지만 일반인들에게 식물은 자신이 아는 풀과 꽃 외에 모두 같은 범주였다. 그리고 늘 보는 거라면 더 무관심하고 지루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왼손가락에 담배를 잡고 있었고, 친구의 승진 소식에 배알이 꼴려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잡고 있다는 생각을 못 했었다. 팔을 들었다가 아차 싶어 휴대용 재떨이에 급히 담은 거였다. 재수 없게 그날 재떨이에 담지 않고 휙 던져버렸다면 담배에 묻은 DNA를 조사했을 테고 지금쯤 쇠고랑 신세가 되었을 장면이 연상되어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나마 쇠고랑이 낫지 배상금을 생각하니 모든 게 끝났다고 여겨졌다. 솔직히 바람의 방향이 어땠는지 살필 정신도 없었고, 몇 모금 피운 담배 연기가 하필 그곳으로 날아갔는지는 예측 불가였다. 수목원을 거의 다 벗어났을 거라 여기며―수목원은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다―피운 거였다. 사실 어둑한 밤이라서 그곳이 멸종 희귀식물 서식지인지도 맹세코 몰랐다. 아니, 진짜 그렇게 소중한 식물이라면 야간 조명등을 부착해 근접하지 못하도록 식별할 수 있게 했어야 하지 않았나? 다른 곳은 철조망을 몇 겹을 치고 접근금지라는 위험 경고문도 써 붙여 놓더니만. 그게 일반인들의 탓은 아니지 않나? 연구원들이 하는 일이 뭔가? 곰곰이 생각하면 자신들의 관리 소홀이지 않나? 그날 나만 담배를 피운 것일까? 방문객이 족히 몇 백 명인데 누군가 지나가다 피웠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유민은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삭제 버튼처럼 기억에서 지워졌고 그 일이 수목원 전체를 뒤집는 사건이 되리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김 매니저의 표정은 꼭 유민을 겨냥하고 얘기하는 듯했다. 연기가 심통을 부린 걸까? 하필 넓고 넓은 곳을 놔두고 정체 모를 그곳을 훑고 지나갔을까? 어쩌면 담배 연기의 범인은 다른 사람일지도 몰랐다. 딱 서너 모금 빤 게 다였다. 김 매니저는 주차장을 나올 때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유민을 누군가 봤다는 거였다. 봤다는 그 누군가에 화가 치밀었지만 실상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 1년도 채우지 못한 직장이었다.

 

OST

    카페 직원에게 뭔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에 장은 프렌치프레스 더블을 시켰고 실로 오랜만에 유리잔을 맴도는 커피가 커피로 보였다. 삼사 분의 정지된 시간이 장은 길고 긴 시간으로 여겨졌다. 지금까지 그가 본 건 토양이었다. 그는 토양에서 빚어진 유기물이 만든 결정체를 마셨다. 식물연구를 하는 사람치곤 흙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었다. 대지의 다양한 물질을 코로 냄새를 맡고 혀에 갖다 대고 손으로 느꼈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그들의 실체를 온몸으로 느끼는 건 다른 거였다. 그건 다른 때와 달리 마주한 직원에게 집중한 탓인지도 몰랐다. 그녀의 커피 다루는 솜씨는 오랜 시간이 빚어낸 성과물처럼 보였다.
    일주일 만에 나타난 남자의 모습을 보며 유민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 깊이에서 ‘유민, 너 쫄 것 없어’를 거듭 외쳤다. 유민이 모를 거라고 여겼는지 담배 사건과 관련된 부서의 담당 팀장이라고 마스터가 슬쩍 일러주었다. 마인드 컨트롤에도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걸 그녀는 애써 누르고 눌렀다. 그와 유민의 거리는 1미터 정도였다. 그는 종전과 달리 프렌치프레스를 입을 열어 주문했고 더블 잔을 시켰다. 유민은 조금 당황했으나 ‘같이 마실 사람이 있는가’ 여겼다.
    오늘 추천할 커피가 있나요?
    남자의 입에서 낭랑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유민은 더욱 긴장되고 거북해졌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몰라도 몸이 떨림으로 반응했다. 갑작스럽게 교양 있는 주문을 받아서인지 기시감에 의한 건지 어색해졌다. 무언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최대한 친절한 자세로 유민은 상냥하게 말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원두를 분쇄해 뜨거운 물을 서서히 부었다. 시간이 한없이 더디게 갔다. 남자의 표정은 밝았고 프렌치프레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눈동자는 아이들이 신기한 뭔가를 발견했을 때의 눈빛 같았다. 두 잔에 커피를 담아 그에게 내밀자 남자는 한 잔을 유민에게 쑥 들이밀었다. 유민은 순간, 오래전 상사들이 그녀에게 뭔가 힘든 일을 부탁할 때의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고급 진 음식점을 데려가거나 럭셔리한 카페에서 그들은 거절할 수 없는 애매한 부탁들을 했다. 더불어 그들은 껄끄러운 대화가 필요할 때 대화의 다른 고급 기술들을 동반했다. 마치 혼동 술책처럼 화려한 배경을 펼쳐 놓고 그것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 자가 마음을 놓는 틈을 이용한다고 봐야 했다. 눈치가 더딘 사람이라도 두서너 번 겪어 보면 조금은 감지가 될 터였다. 유민은 수목원은 이렇게 고고하게 직원을 자르는가? 하필, 사람들 있는 매장에서? 그것도 근무시간에 와서 공개처형을 한다는 말인가? 근무 시작 전 매니저의 안색을 살펴봐도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마스터가 사이폰 추출 방식으로 커피를 시현했다. 남자의 시선에 전기램프의 불빛이 달아올랐다. 유민은 일순 복잡한 생각들이 교차했다. 조직사회에 적응하려면 그 조직의 룰을 빨리 익힐수록 편했다. 깔끔하게 걸러지든 불투명하게 걸러지든 늘 침전물은 생겼고 그냥 스치기만 해도 부유물이 남았다. 적당히, 눈치껏, 세상에 완벽하게 걸러지는 건 없는데⋯⋯ 여기서 이렇게 잘리는 건가? 그러나 남자의 말은 유민을 어지럽게 변주했다.
    몇 달 동안 커피를 제시간에 준비해 주어서 많이⋯⋯ 고마웠어요.
    하루에도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지겹도록 감사하다는 말을 남발했다. 어찌 보면 그게 서로 부담을 주지 않는 룰이었다. 그런데 남자의 고맙다는 말은 유민의 가슴에 턱 걸려 내려앉았다. 앞에서 겪었던 모든 일을 부인하게 만들었다. 모를 일이었다.
    장은 장대로 커피를 들이밀면서 감사의 표현으로 너무 빈약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누가 흡연을 했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도 없었고 증명할 길도 없었다. 김 연구원의 보고대로라면 이 카페에서 아니, 이 수목원에서 담배를 피운 사람은 그녀였다. 그러나 하루에 수백 명이 오가는 곳이었다. 장은 이 카페의 직원들은 일어난 일들의 심각성과 결미를 모르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단순한 사건으로 여길지도 몰랐다. 곰팡이와 공생관계에 있던 CJT에게 타르가 스치자마자 오그라들게 했지만 며칠 뒤 오히려 자생력을 키워 CJT는 더욱 강해졌다. 이산화탄소만 생각했지 한 번도 타르와 곰팡이의 관계는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학계에 새롭게 조명되거나 어쩌면 이것으로 또 다른 연구 수확을 얻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담배를 피운 당사자라면 오히려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는 게 마땅하다고 장은 생각했다. 그러면서 장은 처음으로 그녀의 명찰을 찬찬히 살펴봤다. 레아? 들어 본 이름 같았다. 레아⋯⋯ 프린세스 레아? 스타워즈? 장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런 그를 유민은 의아하게 바라봤다. 6개월 만에, 아무 말 없이 프렌치프레스만 마시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리스테쏘 템포(Listesso tempo)

    알람 없이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가슴에 적당하게 내려앉는 햇살의 얼룩을 발견한다. 테라스에서 부는 바람의 향내에 신록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근무가 없는 휴일은 시간의 선물 같았다. 여느 때 같으면 정신없이 손님들에게 커피를 타주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런 값비싼 사치가 있을까, 하고 유민은 생각했다. 그랬기에 고스란히 주어진 시간의 공백에 엄청난 자유와 나긋함이 몸과 머리까지 차올랐다. 포터에 물을 데우고 커피 원두를 수동 분쇄기로 갈고 아주 느긋하게 이 여분의 시간을 즐긴다. 유리 글라스에 간 원두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뜸을 들이다가 다시 물을 붓고 스틱으로 크레마가 생길 때까지 마구 휘젓는다. 한바탕 회오리가 모든 것을 뒤집어 놓듯이⋯⋯ 어제 현진이 보장된 공무원 생활로 작은 오피스텔을 마련했다는, 그러면서 더 늦기 전에 공기업에 이력서를 내보라는 적잖은 권면의 말들이 뒤섞여 휘돌았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민은 커피의 유기물들이 떠도는 글라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프렌치프레스의 말끔히 가라앉지 않는 부유물처럼⋯⋯ 일상의 공기는 지루하게 떠나지 않고 마지막 숨을 멈출 때까지 가벼운 무게로 언저리를 맴돌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의 눌림이 저항을 만들어낸다는 걸 유민은 이미 체득해 알았다. 지금껏 그 저항이 자신을 지탱해 주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몰랐을 때는 압력이 주어지면 그것을 떼어내어 버리거나 도망가려고만 했다. 유민도 얼마 전까지 그랬다. 근데 그게 떼어내려고 애쓸수록 찰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거였다. 밀어내치거나 저항할수록 더 들러붙어 숙주가 되어버렸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의 머뭇거리는 표정과 입술 사이에 새어 나오던 말들을 되새기며 유민은 플런저를 지그시 눌렀다. 천천히 찌꺼기들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고맙다는 그의 고백이 따라 눌러지는 것 같았으나 어째 가뿐하게 날아왔다. 우아한 신맛에 어우러진 달콤함이 입안을 상큼하게 적셨다. 싱크대에 커피 찌꺼기를 버렸다. 여지없이 싱크대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찌꺼기들이 샤워기 물에 씻겨 내려가다가 거름망에 다시 모아졌다. ■

 

 

* 국립수목원 복주머니란속(Cypripedium Japonicum Thunb) 자료를 참고하였다.
* 복주머니란속과 타르는 상관관계가 없음을 밝힌다.

 

   

 

 

 

 

 

 

 

 

 

 

이서안
작가소개 / 이서안

2017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과녁」으로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풍경」으로 목포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 · 「그 섬에 코끼리가 산다」로 202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수상. 소설집 『밤의 연두』가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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