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숲 기억 외 1편

[신작시]

 

 

베란다 숲 기억

 

 

남수우

 

 

 

    1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란 말은 썩 괜찮았다

 

    단추는 빛나다 사라지고
    내게는 빈 들판이 남았다

 

    그곳에서 내 뒤를 밟으며
    사냥감들은 여러 날을 살았다고 한다

 

    빈손을 보고도 말이 없던 마망

 

    숲을 흔들며
    쌀뜨물 같은 안개를 흘려보내던 마망은
    어느 날 자신의 녹슨 총구를 닦고 있었다

 

    그날 마망이 겨눈 사냥감들이
    새벽 내도록 내 발 앞에 척척 쌓여만 갔다

 

 

    2

 

    내가 태어날 때 마망은 울고 있었다
    그날 움켜쥔 소맷자락이 손금으로 남았는데

 

    어린 내가
    어린 숲에서 주워온 것들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마망,
    여기 반짝이는 것들을 봐요

 

    마망은 차갑게 식은 총구를 고쳐 매며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 숲은 자라야겠구나

 

    내가 다 자라 숲을 떠맡았을 때
    마망은 노을을 끌고 맴을 돌던 기억이었다

 

 

    3

 

    여기 내 빈손을 좀 봐요

 

    이제 이곳은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태어나는 그늘
    잠자는 녹색 그림자

 

    죽은 가지를 매달고 달리는 이파리들이
    두 손을 펼쳐도 드릴 게 없네요

 

    밤에는 양털 언덕을 이마 끝까지 끌어 덮었다

 

 

    4

 

    단추를 채우던 내가
    공터를 늘리는 동안에도 나무는 서서 죽는다

 

    들판을 가로지른 검은 새들이
    숲으로 뛰어들어 날개를 버리고
    날갯짓을 버리고
    꽃대처럼 흔들리면

 

    총소리는 오래오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빈 가지에 걸터앉아 내가 말했다

 

 

 

 

 

 

 

 

 

 

 

물 아래 저녁

 

 

 

 

    졸린 눈을 비비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 안개가 다 지나면 올 거랬다 목소리는 나를 잠 속에 밀어 넣고 연거푸 문을 닫았다 세 번 닫았다

 

    물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물소리는 닫히고 너는 안 들리고 너는 안 보이고 내가 속삭인 쪽부터 사라지는 눈사람이 있었다

 

    너는 저물녘마다 붉은 망토를 걸치고 난간에 걸터앉아 구구단을 외우던 작은 아이, 불러 세우기엔 모자란 두 손이 등 뒤에서 마주칠 때

 

    철썩이고 있었다 들이쉴 때마다
    발치가 젖는 모래 위

 

    누군가 집을 그리라고 했다 나무를 그리라고 했다 누군가 사람을 그려 보라고 했다 나는 그리고 그리면서도 자꾸만 지우개에 눈이 갔다
    누군가 이제 집과 나무와 사람을 시작하라고 한다

 

    산책자는 왼쪽에서 태어나 오른쪽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가 지나친 창속에는 물푸레무늬목으로 엮은 책장이 보이고 책상과 의자가 놓입니다 여러 날씨를 오가며 창문은 하나뿐인 얼룩을 기를 테지만
    물가에 정박한 누운 나무를 그가 두고 갑니다

 

    더미는 시작되고 있었다 굽은 등으로부터

 

    물가의 나무는 멈춰 있지 그곳에 못을 박았지 누운 나무 곁에 누워 오래 미뤄 둔 잠에 들었지 백지를 넘기다 보면 언제나 너는 4 곱하기 9를 마저 닫고 있었다

 

    그림 속을 헤집던 누군가 눈 비비며 묻는다
    벽으로 뛰어든 햇살은 오늘의 것입니까

 

    모래 아래 두 손을 두고 너는 떠났다 두 번 떠났다 마지막 문턱이 안 보이고 안 닫히는 동안 그림자 같은 비밀을 끌며 등 뒤가 자랐다

 

 

 

 

 

 

 

 

 

 

남수우
작가소개 / 남수우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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