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월간 〈읽는 극장〉 2회 – ‘사라진, 살아진’

[리뷰]

 

 

월간 〈읽는 극장〉 2회 – ‘사라진, 살아진’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월간 〈읽는 극장〉 2회 “사라진, 살아진”
전시 <없는 극장>을 관람한 세 작가의 문학 낭독회

 

“누군가 도와 달라 외치고 있다. 그 소리를 우리가 못 듣는 거 아닌가”(함성호)

 

 

    일반적인 ‘전시’를 상상할 때 우리는 하얀 공간과 작품을 쏘는 빛을 떠올립니다. 이를 통해, 관객이 작품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감상’하게 되지요. 그러나 〈없는 극장〉은 움직이는 관찰자를 참여자로써 잡아끌고 말을 걸며 관객이 관객의 마음으로 관람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선우은실 평론가는 전시를 겪은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우은실 : 이 전시를 돌아보면서 특정한 공간에 일정한 기능을 하는 걸 확인하거나, 일방적으로 좀 수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게 아니라, 나한테 말하고 있는 사람의 얘기를 내가 듣는 거잖아요. 저한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되니까. 그래서 이 극에 참여를 하거나 이 전시가 이렇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내가 지금 반드시 필요한 거구나, 이러면서 이 위치가 왔다 갔다하는 걸 좀 많이 느꼈어요.

 

월간 읽는 극장 2회 “사라진, 살아진”

 

    작품이 관객을 잡아끌며 전하고자 한 것은, 〈없는 극장〉을 함께 만든 함성호 건축가/작가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누군가 도와 달라 외치고 있는데 우리가 그 소리를 못 듣고 있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려진 이야기들을 듣고자 하는 것. 없다고 생각했고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이, 살아가고 있는 소리를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이 〈없는 극장〉의 의미이자 장소성이지 않나 곱씹어봅니다.

 

    아르코예술극장의 4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된 전시 〈없는 극장〉. 그러나 〈없는 극장〉은 ‘아르코’라는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아르코를 둘러싼 사회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아르코’를 지워낸 전시였습니다. 관객을 잡아끌며 이들에게 건네지는 말에는 절실한 이야기, 연극의 주변부 얘기들과 사회에서 소외된 이야기들이 섞여 담겨져 있었습니다.

 

    〈없는 극장〉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없다’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까요. 함성호 건축가/작가는 〈없는 극장〉의 구체성이 만들어진 계기가 권병준 작가가 보여준 만복사의 폐사지를 담은 사진 몇 장이었다고 말합니다. 무언가 있었다가 현재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 빈 터와 또 하나의 이야기들이 각 층을 이룬 이 공간이 곧 〈없는 극장〉이었고 ‘없음’이었던 겁니다.

 

함성호 : 어떤 외국 작가의 전시장에 가면 아무 것도 없어요. 기둥만 몇 개 있고 이어폰 같이 이렇게 꽃혀있어요. 그걸 들으면 그 건물 전체의 진동들 있잖아요. 물 내려가는 소리, 사람 걷는 발자국 소리, 콘크리트가 힘을 받아서 ‘끙’하는 소리가 나거든요. 그런 소리들을 다 듣는데, 굉장히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소리들이죠. … 우리는 이것을 정말 사람의 목소리로 더 구체화 시키기로. … (이 전시는) 내가 움직여야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 움직임에 시간이 개입하면서 그런 것들이 더 구체적으로 살아나더라고요.

 

   ‘없다’라는 우리말이 가진 의미와 독특함도 이 〈없는 극장〉 전시의 맥락에서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있음의 부정형, 반대어로서 없다가 아니라, 즉 ‘있는 걸 전제하는 없다’가 아닌 그냥 ‘없음’. ‘있다’와 ‘없다’는 상호 독립적인 관계인 겁니다. 이는 우리말이 한 문장 안에서 주어진 위치를 벗어나 뒤죽박죽 순서가 섞여도 말이 되고 이해가 된다는 것을 짚으며, 나아가 우리말 안에서는 공간에 따라 시간이 배치되는 시공간성 또한 자유롭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있고 없음의 관계를 바탕으로 함성호 건축가/작가는 〈없는 극장〉이라는 게 “극장이 원래 있었어, 근데 없어졌어”가 아니라며, 이 전제를 무너 뜨리면서 있음과 없음을 같은 시간대에 등치시켜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없는 극장〉 속 ‘없다’의 재미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선우은실 평론가는 등단과 함께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온 세월호 ‘304낭독회’의 경험을 나눠주었습니다. 작가와 시민이 각자의 2014년 4월 16일의 경험을 낭독하고 들으며, 입으로 말하고 소리를 내면서 달라지는 게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선우은실 : 내어놓지 않으면 꽁꽁 싸매서 계속 모르는 채로 고립될 수도 있는 얘기거든요. 자기 안에서의 죄책감으로 이렇게 쑥 가져가버리게 되거나 할 수 있는 내용들이고,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으로부터의 보호감 같은 것들도 사실은 있을 거 같아요. 왜냐면 너무 죄책감이 뒤섞여 있고 그러니까 … 그 사람들은 사실은 어떤 면에선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 하나의 사건을 모두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이 연결고리들이 발생하면서 이 사람들은 여기 와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이후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이 사람들 안에서 다르게 이어져 갈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함성호 건축가/작가의 시 「뒤 돌아 보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된 사람들이 있다」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큰 흐름을 떠올리며 쓴 시입니다. 그의 “그렇게 뒤 돌아 보지 않았으면 이야기가 될 수 없었던 것들… 뒤 돌아 봐야죠”라는 말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는 그 태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아가 사람들을 붙잡는, 뒤 돌아 보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전시와도 함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선우은실(문학평론가), 함성호(건축가/시인), 양경언(진행자/문학평론가)

 

    함성호 건축가/작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양경언 문학평론가와 함께 전시 〈없는 극장〉을 중심으로 사라지는 것들과 그럼에도 ‘살아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없는 극장〉의 전시가 말을 걸어왔듯이 글이나 그림으로 남지 않아도 ‘사라진’ 것들을 ‘살아진’ 것으로 만들며 기억하는 방식으로써, 이 목소리와 소리가 인식되고 말로 전해지는 상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글쓴이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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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기후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대화와 토론, 수다와 위로가 오가는 우리의 시간과 장소들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함께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월간 읽는 극장 5월편 보기

 



월간 읽는 극장 5월편
“우리가 그 ‘여름’으로부터 배운 것”

 

 

 

 

월간 읽는 극장 아카이브

 

▶ 4월 읽는 극장에서 이야기 나눈 전시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전시 〈없는 극장〉
(아르코예술극장, 2021.4.1.-30)

 

 

 

 

 

 

 

 

함성호, ‘뒤 돌아 보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된 사람이 있다’

함성호, ‘이미 끝을 지나 온 것 같았지만’

선우은실, 「보(이)는 자-되기: 전시성(展示性)의 전략 -이소호의 「캣콜링」을 읽는 한 방법」,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1년 봄호

선우은실, 「어디선가 잘 해내고 있을 OO에게 보내는 마음들」 일부, 『2021년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중 서이제, 「0%를 위하여」 해설

▶ 4월 〈읽는 극장〉에서 낭독된 문학 작품

 

 

 

문의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theater@arko.or.kr / 02)3668-0020

 

 

 

 

 

   《문장웹진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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