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

[단편소설]

 

 

위해

 

 

이주란

 

 

 

    예전에 수현은 친구 부부의 셋째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그들이 사는 신도시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남의 동네를 헤맨 적이 있었다. 정오가 막 지날 무렵 버스에서 내렸고 건너편 저 멀리에 108동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하지만 막상 단지 안으로 들어가서는 108동의 입구를 찾느라 애를 먹었고 현관 앞 최신식 화면을 보면서는 조작할 줄 몰라 버벅거렸다. 세대 호출 방법은 친절하게 쓰여 있었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나 친구는 수현에게 일 년에 한두 번쯤 연락을 해왔다. 친구는 수현에게 집으로 놀러 오길 제안했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수현은 만남을 미루곤 했다. 그렇게 메신저로 늘 보자 보자 말만 한 게 벌써 몇 년이었다. 수현은 친구가 사는 도시로 갔다. 부부의 아이들은 자꾸만 엄마 아빠를 찾았고 바쁘지 않은 듯 바빠 보이는 그들을 돕고 싶었으나 뭘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앉지도 서지도 않은 자세를 취한 게 여러 번이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이는 소파 위에 올라서서 자꾸만 무야호 라고 외치며 수현에게 호응을 유도했는데 미안하게도 전혀 반응해주지 못했다. 저녁엔 친구 부부의 여자 쪽 부모님이 오신다고 해서 일찍 그 집에서 나왔다. 긴 인사를 나눈 뒤에 겨우 현관문에 다다른 수현은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 도어락의 버튼 이것저것을 누르고 돌려보았으나 결국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주차장이었다. 흰색 SUV 차량 아래에 홍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응? 웬 홍시가 여기에? 치우지 않으면 차를 움직였을 때 바퀴에 묻을 것 같았다. 홍시를 주우려 허리를 숙여 자세히 보니 토마토였다. 깨끗하고 신선해 보이는 빨갛게 완숙된 토마토. 수현은 토마토를 주워 대충 턴 다음 가방에 넣었다. 미로 같은 주차장에서 또다시 입구를 찾아야 했다. 친구네 집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단순한 일정이 이렇게 헤맬 일인가? 108동 앞에 나와서는 횡단보도 쪽이 어디였더라 하며 또다시 곤란함을 느꼈다. 하지만 수현은 길을 모르면서도 일단 걷고 있었다. 수현은 구경하는 마음으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단지 내 사람들의 모습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같은 동을 두 바퀴째 돌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마침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수현은 어딘가로 이동 중인 주민들을 따라 호수공원을 빙 돌아서 신작로로 들어섰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헤맸는지는 모르겠으나 바람만은 정말 좋았다.
    가파른 경사면 아래로 난 신작로엔 공휴일을 맞아 오후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러 찍은 사진 한 장처럼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계절이 바뀌며 무성하게 자라는 중인 풀들은 벌써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깊이를 알 수 없었으나 얕지는 않을 거란 기운을 풍기는 수로엔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여섯 개의 돌이 놓여 있었다. 그 돌이 꽤나 크고 묵직하여 안심이 된 것이 아니라 왜인지 오히려 겁이 조금 났다. 이 정도 되는 돌을 받쳐야만 하는, 만만한 수로가 아니란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혼자 건너다가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뎌 빠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야 할지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 들었다. 일단 수영을 못했으며 큰 위험에 빠질 정도의 깊이는 아닐지라도 옷이 다 젖는다면 집까지 두 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일이 깜깜했다. 홀딱 젖은 채로 다시 친구네 집으로 간다? 그건 안 되지. 이 돌다리는 건너지 말자. 수현은 반대편으로 가야 버스정류장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앞에 나타난 돌다리를 건너지 않고 계속 쭉 걸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저 멀리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으므로 계단을 오른 다음에 다리를 건너가면 되었다. 위험에 빠지긴 싫었다.
    경사면을 지탱하는 돌 사이사이엔 키가 작고 잎이 여린 조경수들이 띄엄띄엄 심겨있었고 또 그사이로는 잡초들이 무성했다. 웃자란 쑥이며(쑥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민들레며 토끼풀, 제비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는데 실제로도 그랬긴 하지만 그건 수현이 그것들 말고 다른 풀들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 것이었다. 이런 작은 풀과 꽃에 대해서는 대체 어디서 배우는 걸까? 수현은 스마트폰으로 하트모양 잎을 가진 작은 풀꽃에 카메라 렌즈를 갖다 대보았다. 비슷한 잎을 가진 식물들이 순식간에 주르륵 나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수현의 눈앞에 있는 풀과는 미세하게 달랐다. 이름을 꼭 알고 싶다. 눈앞에 있는 풀과 화면 속의 풀을 천천히 비교해보기로 마음먹은 수현은 넓적한 돌에 앉아 화면에 뜬 풀들을 하나하나 클릭해 아무튼 여러 풀들을 찍어 올린 사람들의 블로그를 한참 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이걸 찍어서 올린 사람은 없나 보다. 수현은 그 후로도 한참을 여러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하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 것 같았다. 다시 사진을 찍어두려 렌즈를 가까이 대었더니 잎의 형태가 커지며 뭉개져 보였다. 조금 멀리서 다시 렌즈를 대었더니 잎의 형태고 뭐고 조금도 알아볼 수 없이 온통 초록일 뿐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풀 가까이 숙였던 허리를 편 수현 옆으로 일가족으로 보이는 사람 셋이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수현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자 잡초들 사이를 종종거리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보였다. 새는 땅에 부리를 박았다가 고개를 드는 동작을 반복하였는데 그 종종거림이 조금 느리고 어딘지 어색해 보였다. 다리를 다쳤나 보다. 그러게. 저거 산비둘기인가 본데. 새끼인가 봐. 스스로 날아온 걸까? 잘 못 날 것 같은데. 저 작은 것이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저렇게 다닌다. 어떡하지. 어디다 신고를 해야 하나. 어디다? 그들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고 뒷짐을 지거나 팔을 흔들며 가던 길을 갔다. 마음이 쓰였는지 가면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들과 잠시 눈이 마주친 수현은 다시 절뚝이며 먹이 활동을 하는 새를 바라보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다른 가족들은 어디 있는 걸까. 날 수는 있을까. 저들은 내가 아까부터 여기 앉아 있는 게 새가 걱정되어서 그런 걸로 여기진 않았을까. 난 그런 사람은 아닌데. 이제라도 신고를 해야 하나. 그런데 대체 어디다. 저들이 멀어진 뒤로 지금 새가 아프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인데. 수현은 가방 안에 있던 토마토를 꺼내먹다가 작게 여러 번 베어 물어 손바닥에 뱉은 다음 새 근처에 던졌다.

 

    수현아, 조용히 살거라. 아무래도 그게 좋지 않겠니.

 

    어릴 적에 그 말을 해준 사람은 수현의 할머니였다. 수현은 할머니의 그 말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난 조용히 살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난 조용히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 생각을 할 때의 감정을 발설한 적은 없다. 감정이란 건 비밀로 해야 좋다. 억울하다고 말해선 안 된다고 배웠다.

 

    할머니는 올해 칠십사 세가 되었다. 할머니에겐 아들 둘이 있었고 그중 하나는 삼십 대 중반에 출가했다. 그는 출가한 지 이십 년이 되던 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를 위해 전부터 해왔고 그 후로도 계속된 할머니의 기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너를 위해서도 기도를 한단다.
    제가 조용히 살라고 기도하시나요?
    잘 아는구나.
    저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현의 두 손을 맞잡곤 했고 수현은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어차피 조용히 살았을 것 같아서였다. 해볼 수 있는 게 없을 때는 체념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긍정은 가끔 사람을 짜증 나게 한다, 라고 수현은 생각하지만 역시 마지막엔 억울한 마음이 들곤 했다. 조용히 살지 않아도 되는데 조용히 사는 거랑 조용히 살아야 해서 조용히 사는 것은 다르니까. 그 지점이 평생 수현을 조용히 화나게 했다.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수현은 일정 시기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받아들인 것 같았다가 억울했다가 하는 감정의 징검다리를 오가곤 했다. 수현의 마음은 수심을 알 수 없어 위험해 보이는 수로 같았다. 그런데 나의 이 억울한 마음은 사실상 긍정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고 수현은 골똘히 생각해보곤 한다.
    사람들은 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수현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수현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은 어느 정도 행복하고 자신이야말로 긍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중요한 건 몰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거나 외려 부정적이라고 지적을 받는 등 여러모로 좋지 않으므로 몰래, 몰래 왔다 갔다 한다. 여러 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몰래 해야 한다.

 

    수현아, 네 말 생각해봤는데…
    응.
    네 말대로 우리 헤어지자.
    내 말 대로라기보다는…
    응?
    네 생각이…….
    그래. 누구 생각이든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래.
    이유를 말하기는 좀 그래.
    아무래도.
    안 듣는 게 나을 거야.
    그러고 보니 난 묻지 않았어.
    그래. 그냥 너를 위해서야.
    음료가 담긴 유리잔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을 매만지던 정호가
    아니 나를 위해서인가.
    라고 말했다.
    말이야 방구야.
    수현이 말했고 정호의 손으로 옮겨간 물방울들이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졌다. 정호의 시선은 차갑게 변한 손바닥에 가 있었다.
    아무튼.
    아무튼.
    연락하고 지내자.
    그래.
    마음 바뀌면 연락하고.
    응.
    지난 계절에 수현에겐 이런 일이 있었다. 썩 매끄럽진 않았으나 헤어짐에는 합의했다.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하나,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하나, 사장이 노트북을 올려두고 개인 용도로 쓰는 일인용 테이블이 하나 있는 작은 동네 카페에서였다. 말없이 팥과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스무디를 먹던 두 사람. 유리문 바깥으로 구급차와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다. 잠시 후에는 경찰차가 지나갔다. 수현과 정호는 육 년 동안 만나왔는데 서로의 가족을 본 적은 없었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략 알고 있었으나 가족에게 서로를 소개하지는 않았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었으나 수현이 넌지시 얘길 꺼내면 정호가 미뤘고 정호가 넌지시 얘길 꺼내면 수현이 미루는 일이 일이 년마다 반복되었다. 왜 그랬을까? 수현과 정호가 원래 만나는 사람을 가족에게 소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그 둘이 만나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지는 당사자인 둘도 잘 모른다. 아직도 모르지만 이젠 몰라도 된다. 아무튼 그런 순간에 둘 다 넌지시 얘길 꺼낸다는 점에서 둘은 닮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도… 그래서 마지막에 시킨 메뉴도… 같았다. 수현은 정호를 많이 좋아했다. 정호도 수현을 많이 좋아했다. 두 사람은 헤어짐을 말하고서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애꿎은 팥 맛 스무디만 휘젓고 있었다.
    다 녹겠다. 얼른 먹어.
    너도 먹어. 먹던 건 먹고 가련다.
    지금도 좋아하고 있구나, 두 사람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해.
    어떤 걸.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는 거.
    수현도 알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똑같아.
    정호가 말했다.
    그런 말을 왜 할까.
    너를 위해서.
    수현과 정호는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 눈빛이었다. 수현이 좋아하는 정호의 눈빛. 정호가 좋아하는 수현의 눈빛. 두 사람은 그 순간 각자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감정들을 참으며 그렇게 얼마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와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크로플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카페 안엔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퍼졌고 그 메뉴와 냄새들로 수현은 그날을 기억했다. 결국 수현과 정호는 크로플을 주문해서 나눠 먹었다.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혼자 걸으며 수현은 결국 남산서울타워에 못 가보고 헤어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늘 가고 싶었는데 못 가봤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인데 언제든 가면 된다고 생각해서 가지 않은 걸까. 가고 싶지만, 사람도 많고 뭐… 참 이렇게 별다른 이유도 없는데 왜 가지 않았을까. 정말 가고 싶었는데 왜 안 갔나. 수현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이상하네.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 중 몇은 막상 별거 없다며 특히 돈가스는 먹지 말라고 말하곤 하지만 수현은 그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경험해본 다음에야 할 수 있는 말. 별거 아냐. 재미없어. 뻔해. 맛없어. 먹지 마. 그거 줄 서서 먹는 사람들 이해가 안 돼. 그런 말을 들으며 이해가 안 되고 싶었고 하지 마. 해. 그거 먹어봐. 별거 아냐. 그거 배워봐. 잘 될 거야. 할 수 있어. 무언가가 좋다. 싫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그걸 하고 싶었다. 해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들. 그걸 하고 싶었다. 우월하려고 한 말이 아닌데 우월해 보인다면 그런 시선 따위 너그러이 이해해줄 여유도 있지.

 

    있으나 없으나 어차피 그럴 수 없다.

 

    그러기 힘들다.

 

    수현은 조용히 살아야 한다. 불행해지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동정이나 도움을 받을 만큼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 너 같은 애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 정도를 지키며 살도록 노력하라고 사람들에게 배웠다. 수현이 그걸 잊었다고 여겨질 때마다 할머니가 열심히 상기시켜주었다. 이를테면 그림을 잘 그려서 대회에 나갈 기회가 생겨도 내보내 주지 않았다. 수현은 어릴 적엔 잠자코 할머니의 지시에 따랐다. 하지만 할머니는 바보. 수현이 다른 기억도 가지고 있다는 건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수현의 불행을 빌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는 않겠다 다짐할 때 도움을 주는 따뜻한 기억 하나가 있다는 걸. 자신을 안심시키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수현에겐 그게 있었다. 할머니가 그걸 잊었다고 여겨질 때도 굳이 말하지 않고 혼자만 갖고 있는 기억. 말하고 나면 어떤 이유로든 훼손될까 봐 몰래 하는 기억. 그거 하나 못 참고 말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수현은 할머니의 진심이 그 기억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더라도 그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생각할 거야. 어차피 사람은 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니까. 남의 삶도. 자기 마음대로. 십 대 후반의 수현은 그렇게 다짐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남의 땅 위에 지어 살던 비닐하우스가 드디어 철거되면서 수현과 할머니는 살만한 집을 보러 다녔다. 할머니는 건강했고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선택권은 없었지만 늘 수현을 대동했다. 하우스란 것은 이제 들어가 살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반지하나 옥탑에 가야 했는데 아무래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옥탑을 오르긴 어려워 반지하를 주로 보러 다녔다. 드디어 집의 외형을 갖춘 곳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집과 학교밖에 몰랐던 수현으로서는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가본다는 자체가 내심 좋았다. 할머니는 왜인지 동네를 뜰 생각이었고 버스로 한 시간 이상씩 되는 곳으로만 집을 보러 다녔다. 집을 계약한 날 저녁엔 소식을 통보받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버럭 화를 내자 그럼 따로 나가 살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알겠다고 했다가 다시 으이구 내 팔자야! 하면서 같이 살자고 했다. 친구가 많았던 할아버지는 아마 동네를 떠나기가 몹시 싫었을 테지만 어차피 그 사람들도 모두 어딘가로 떠나야만 했고 그마저도 한 해가 멀다 하고 돌아가시니 달리 방법이 없었을 터였다. 그 마을엔 원래 하우스도 사람도 개도 아주 많았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 되어갈 무렵 세 식구는 그렇게 비닐하우스를 떠났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에 정착했다. 당시 수현은 구직활동 중이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일을 했으나 버는 돈은 많지 않았다. 특히 할아버지는 걸핏하면 일을 그만두기 일쑤였다. 대체 나이를 어디로 쳐드신 건지 원. 할아버지가 출근을 하지 않으면 할머니는 그렇게 한 마디씩만 던지고 말았다. 딱히 할아버지를 향해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러다 수현이 취직을 하고 조금씩 돈을 모아 삼백만 원이었던 보증금을 이천만 원까지 올려놨을 때부터는 할아버지가 아예 일을 나가지 않았다. 원래도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아픈 데가 점점 많아져서 사실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이 양이 점점 늘어갔다. 수현은 노란 고무줄로 둘둘 말린 몇 달 치 약봉지와 잠든 할아버지의 야윈 몸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 야윈 몸에 저 많은 약들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그거 운반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겠다, 그런 생각도 했다. 할머니는 종일 일을 하였다. 정정한 편이었으나 써주는 곳은 없어서 폐지를 주웠다. 원체 성실한데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서 몇몇 야채가게나 과일가게에서 할머니에게 고정으로 박스들을 가져가게 해주었다. 그중 하나의 가게와는 가게 청소와 정리를 맡아야 한다는 거래가 있었고 그러지 않은 가게도 있었으나 할머니는 모든 가게의 청소와 정리를 해주었다.
    수현은 통근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가야 하는 박스 공장에서 사무 일을 보았다. 큰 문제 없이 일했다. 정호는 공장장이 소개해준 사람이었고 사실상 모르는 사이니, 부담 갖지 말고 만나보라고 했다. 그전까지 수현은 누군가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그럴 생각은 없이 살아왔다. 어차피 잘 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냥 한번은 나가보자 해서 나간 자리에서 정호를 만났다.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를 좋아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미지근해 보였지만 꾸준하게 만나왔다. 어느 날엔 꺼내지 않던 화제로 대화도 나누었다.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별 거부감 없이 나누는 것, 아니 부모가 살아있다고 말한 적은 처음이었다.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셨어?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응.
    어디에?
    그건 잘 모르겠어.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
    있어.
    그 집에선 언제까지 살 거야?
    그것도 잘 모르겠어.
    다 몰라?
    다 모르는 건 아니야.
    날 좋아하긴 해?
    그런 건 왜 물어.
    모르겠어서.
    엄청 많이 좋아하는데.
    그런데 왜…
    그들은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와. 이런 대화를 하게 되다니. 신기하다. 신기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이 상황에 우와 라니 좀 그렇지만 우와, 하였다. 이런 대화를 아무하고나 하지는 않잖아. 이런 생각을 했다. 앞에서 입술을 벙긋거리며 자꾸만 말을 걸던 정호와 대답을 하고 있는 나.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이런 걸 물었을까. 왜 나를 궁금해했을까. 신기하다. 신기하고 고맙고 미안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이 정도로만 살아야 해. 너무 행복하면 안 돼. 내가 행복하게 살면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긴대. 수현은 그 말은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지 않았던 건 정말이지 정호를 위해서였다. 속으론 자주 억울해하며 이기심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종종 자책을 하던 수현이었다. 자기 자신을 위했다면 말할 수 있었다. 난 그저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고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수현은 할머니의 지침대로 조용히 살아왔으므로 자기 삶이 또 다른 사람에게 또 미안한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할머니 말이 맞았구나. 하지만 역시 억울하다, 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바보 같은가? 혼자서 행복할 땐 어느 정도 통제가 되었는데 누군가와 함께 할 때는 쉽지 않구나.
    새로운 도시에서 세 식구는 월세가 조금씩 오를 때마다 이사를 해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간 차곡차곡 모은 보증금을 날려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할아버지의 약봉지가 급격히 는 것이 바로 그즈음이었다. 예전 마을에서 가장 친했던 할아버지의 친구가 할머니까지 속여 전 재산을 가져갔고 현실을 부정하던 할아버지는 결국 앓아누웠다. 아무 때고 버럭 하던 성질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피해자가 많았다. 할머니는 나도 바보였구나. 분하다. 나까지 속았다 하며 앓아누운 할아버지를 수현에게 맡기고 다른 피해자들과 사기꾼을 찾으려 사방으로 애썼지만, 몸과 마음이 축날 뿐 아무 성과도 없었다. 또 불행해지다니. 이러다 나까지 눕겠구나. 그놈을 잡겠다고 멀리 해안도시까지 갔으나 공을 치고 돌아온 할머니가 세차게 세수를 하며 말했다. 수현은 이유 없이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으나 그런 기분엔 익숙했다. 이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었다. 세 식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죄책감으로 수현은 남들이 하는 것은 잘 하지 않으면서 되도록 조용하게 살고 있다. 물론 할머니도 그랬다. 그러는 동시에 성실했고 그 덕에 세 사람은 길거리에 나앉지 않아도 되었다. 어쩐 일인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온 뒤엔 곧 죽을 것만 같았던 할아버지의 기운이 좋아져 약봉지가 줄어갔다. 그는 할머니를 도와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스스로 일어나 할머니를 따라나선 것이었다. 봐라,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사기꾼 잡는 일을 포기한 할머니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맞댄 채 지금은 안 된다고, 할아버지가 지금은 죽지 않게 도와달라고, 이렇게라도 살아만 있어 달라고 매일 기도해왔다. 큰 시련이 닥치자 오히려 할아버지에게 정신 차리라고 잔소리를 하거나 채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간의 시련에 비하면 그 일은 큰일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고마운 사람. 수현에게도 할머니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지. 나한테 맨날 조용히 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돌아갈 곳은 여기뿐이야. 수현은 종종 할머니가 수현을 거둬주었던 날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들이 지금 사는 곳은 방이 하나였지만 크기가 큰 편이었고 그래서 딱히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닐하우스보다는 작았지만, 어차피 그곳을 떠난 이후에도 늘 방은 하나였다. 이 집은 이 층 주택의 반지하였고 방문을 열고 나오면 주방 겸 거실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거기가 수현의 방이 되었다. 수현에게 방이 생긴 것이었다. 수현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더 늦은 귀가를 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밥상을 차려내었고 세수를 마친 두 사람이 코를 고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종일 폐지를 줍고 돌아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맛있다 맛없다 뭐가 먹고 싶네 마네 하는 말들 없이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정호와 사귄 뒤로 가끔 외박을 했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한 적은 없었다.
    주택의 일 층과 이 층에는 주인집 삼대가 산다. 주인집 할머니 주인집 할아버지 주인집 아주머니 주인집 아저씨 주인집 손주 둘… 주인집이라는 말을 빼고 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식구들이 여섯이나 되어서 가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인집 얘기를 할 때 수현은 주인집이라는 단어를 종일 들어야 했다. 다만 금요일 저녁이 되면 집에는 주인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고 네 식구는 어딘가로 늘 떠났다가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들과 사이가 좋았다. 두 분을 닮아서인지 손녀분도 참 조용하고 침착하네요. 그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그런 말로 수현에 대해 말했다. 그 말을 한 것 외에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좋게도 나쁘게도 간섭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들이었다. 올봄엔 낮은 담벼락에 죽 늘어선 빈 화분들을 가리키며 뭐 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심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뭐 다른 게 축복이겠는가. 수현은 그것을 축복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에 비어있던 옆방에 세입자가 들었다. 그들은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짐을 들여왔다. 수현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잠에 빠져든 뒤 밤 산책을 나왔다가 들어오는 길에 그들과 마주쳤다.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통로의 구실을 하는 작은 마당에서 마주친 집주인 할머니가 이제 들어오느냐며 조금 시끄럽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수현은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를 하고 그들을 빠르게 지나쳐 방으로 들어왔다. 어두운 컬러의 모자를 쓴 남자와 아이들의 키는 잘 모르지만 어림잡아 여덟 살이나 아홉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제 몸집보다도 큰 짐을 남자와 함께 나르고 있었는데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얼른 자거라.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는지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한마디를 했다. 그날 이후로는 옆방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친 적 없이 지냈다. 마주친 적이 없다고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수현은 주말 저녁에 유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등산을 하러 갔다. 옆방에 사는 아이의 이름이 유리였다.
    힐링이 뭐예요?
    힐링?
    저기.
    유리가 힐링 숲 안내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숲의 이름이 힐링이 아니라는 건 유리도 알고 있었다. 힐링 힐링 여행 힐링하고 싶다 힐링하러 가자 힐링이 된다… 수현은 힐링이라는 단어를 수백 번 혹은 수천 번 듣고 보았으나 힐링이 무어냐는 질문에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한 뜻을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검색을 해본 뒤에 대답했다.
    치유래.
    치유가 뭐예요?
    치유?
    수현은 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치료해서 병을 낫게 하는 거래.
    병이요?
    응.
    지도가 꼭 뱀 같아요.
    진짜 그러네.
    저 뱀 좋아해요.
    뱀을?
    네, 뱀을 좋아해요.
    안내도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에겐 등산복이나 등산화가 없었으므로 그냥 편한 옷과 평소에 신는 운동화를 신어도 큰 무리가 없는 산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중간쯤 가서는 도넛을 먹을 예정으로, 산에 오기 전에 두 사람은 같이 도넛 가게에도 들렀다. 도넛 가게에 와서 직접 먹고 싶은 것을 고른 것은 처음이에요. 유리가 말했다. 남으면 집에 가서 먹으면 되니까 여섯 개를 고르라고 하자 유리는 한사코 하나만 골랐다. 그럼 하나만 더. 수현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하나만 더. 세 개 어때? 수현이 유리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이며 말하자 유리는 괜찮아요. 단호한 말투를 써가며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저을 때도 도넛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앞에 도넛이 있는데, 눈앞에 있는 도넛들을 보고도 거기 뿌려진 것들이 무슨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유리는 한참 동안 진열 케이스 안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아마 다 맛있을 거야. 수현의 말에 안심이 된 듯 유리는 도넛을 골랐다.
    그냥 예쁜 것을 골랐어요.
    예쁜 게 좋아?
    네.

 

    유리는 올해 열 살이 되었고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 작년까진 다녔어요. 그랬구나. 언니가 와서 절 다시 학교에 보내준대요. 그래. 집을 나간 언니가 간간이 부쳐주는 돈으로 유리가 컵라면이나 빵을 사 먹는다는 이야기를 슈퍼 주인 부부에게 들었다. 그들이 이 정도의 사정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옆방에 사는 아이 말이에요, 하며 수현에게 유리의 사정을 묻다가 도리어 수현이 유리에 대해 모르던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바로 옆에 살면서도 모르던 이야기였다. 유리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슈퍼의 단골손님이 목격한 모양이었다. 그냥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정도로만 여겼던 슈퍼 주인 부부는 종종 유리 혼자서 라면을 사가는 게 몇 차례 반복된 뒤부터 도시락 같은 것을 만들어 주기도 해보았으나 그마저도 처음에는 받지 않고 그대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주민센터에 가서 문의해보았는데 한참 얘길 듣고서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지 뭐예요. 그러면서 지금은 그저 아직 성인이 된 것도 아니라는 유리의 언니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는 거예요. 연락이 닿는 다른 어른도 없다나 봐요. 그 집 할머니가 월세도 안 받고 밥도 좀 챙겨주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말아요. 챙겨줘도 잘 먹지 않는다고 하긴 하던데. 누군가 아이를 찾으러 오겠지요. 저 어린 애를 그냥 두겠나요. 흘러 다니는 얘기들을 들은 뒤로도 수현이 유리에게 말을 걸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미 어른들이 그 애를 신경 쓰고 있었고 내게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대화도 잘 나눠본 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냉장고와 밥솥, 전자레인지가 세워진 벽 너머에서 그 애는 무얼 하고 있을까. 수현은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우리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게 아니라 어디 기사에서 이런 소식을 들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썼을까. 마음만 조금 쓰이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실제로 행동하고 싶어 했을까 스스로 묻고 답했다. 수현은 문득 유리가 조만간 이 집을 떠나게 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뒤로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여러 밤을 망설였다. 어느 밤엔 종종 정호와 안부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으며 여섯 시면 일어나 회사에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엔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밥상을 차려냈다.
    밥 먹었어? 밥 줄까? 그게 수현의 첫마디였다. 아니요, 밥 있어요. 밥이 있어? 네, 괜찮아요. 빈 화분들을 들여다보고 있던 유리는 그렇게 대답하고 집으로 들어갔고 수현만 그 자리에 조금 더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실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화분 안에는 아주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유리는 평일에는 집 안에서 잘 나오지 않았고 일 층과 이 층에 사람이 쑥 빠지고 없는 주말이 오면 종종 작은 몸을 꺼내 집 밖으로 나왔다.
    얼마 후에 할머니는 수현에게 빈 화분에 대파와 방울토마토를 심으라고 했다. 화분을 다 쓰지는 말고 딱 두 개만 쓰라고 했다. 토요일 아침에 수현은 골목길에 있는 오래된 꽃집에서 모종을 샀다. 대파는 시장에서 사다 심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십 센티미터쯤을 심은 다음에 윗부분을 잘라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노란 꽃이 달린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고 있을 때 집에서 나온 유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수현은 유리의 관심이 반갑고 고마웠다.
    언니 이거 뭐예요?
    그거 방울토마토야.
    이게요?
    응. 이제 자랄 거야.
    정말 여기서 토마토가 열려요?
    응. 근데 나도 처음 심어봤어.
    전 일학년 때 학교에서 해봤는데 토마토가 열리기 전에 죽어버렸어요.
    그랬구나. 그럼 이거 네가 키워볼래?
    유리는 대답이 없었고
    물만 잘 주면 돼.
    수현이 말하자
    아 아니요. 괜찮아요.
    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등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현은 또 뭔가 실수를 한 것만 같았지만, 이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수를 했다는 생각을 내 마음대로 해버린 거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안내도를 지나친 수현과 유리는 어렵지 않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코스라고 알고 출발했다. 사는 것도 이렇게 그냥 두 시간짜리 높지 않은 산이었으면 좋겠다. 힐링은 바라지도 않아. 수현은 옆에서 걷고 있는 유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제 언니한테 전화가 왔어요.
    어제?
    네. 진짜로 다음 주에 올 수 있대요.
    다음 주에?
    네. 이번엔 진짜래요.
    유리가 수현을 조금 앞서 걷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늦어도 이 시간엔 입구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곁을 지나쳐 걸었다. 수현과 유리처럼 편한 복장인 사람들도 있었고 등산복과 등산화를 제대로 갖춘 사람들도 있었고 정장과 구두 차림의 사람들도 있었다. 정상 근처에 큰 돌들로 이루어진 구간이 있다던데, 구두로 가능할까 싶었으나 그전까지만 갔다가 내려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되고 큰 성곽이래.
    세계에서요?
    응. 전 세계에서.
    우와.
    신기하다. 그치?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쯤에서 수현과 유리는 도넛을 먹었다. 도넛은 가방 안에서 조금 눌려있었다.
    너무 맛있어요.
    응. 진짜 맛있다.
    유리가 웃었다.
    자, 오이도 먹어.
    수현은 가방에서 길게 선 오이가 담긴 통을 꺼냈다.
    오이요?
    그래. 원래 산에 오면 오이를 먹는 거야.
    아 오이는 안 먹으면 안 돼요?
    돼.
    물티슈를 챙겨오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두두둑 하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현은 유리의 옷에 달린 후드를 씌워주었다. 유리는 가만히 있었고 내리는 빗방울에 대고 도넛을 집었던 손가락을 비비며 언니도 이렇게 씻어요, 라고 말했다. 비는 금세 그쳤고 날이 약간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표지판을 보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중간중간 멈춰 서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었다.
    사진 찍어 줄까?
    아 아니요.
    수현과 유리는 다시 걸었다. 해가 졌고 수현은 생활용품 잡화점에서 구입한 헤드랜턴을 장착했다. 가파르고 어두운 길이 나왔다. 두 사람은 줄을 꽉 잡고 천천히 그 구간을 지났다. 유리는 수현과 잘 걸었다. 이 산 안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떤 고지에 오르자 잠시 내리막이었다. 돌아보니 따뜻해 보이는 불빛들이 가득했다.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세요.
    응?
    사진이요.
    응.
    수현은 노란 불빛을 배경으로 유리의 사진을 찍었다.
    언니도 찍어 줄까요?
    아니.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현은 그 풍경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두 팔과 입을 크게 벌리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녁이 된 데다 잠깐 내린 비까지 더해 좀 쌀쌀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는데 유리는 괜찮다고 했다.
    저게 남산타워야.
    유리는 수현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건 롯데월드타워. 알아?
    아니요.
    다음엔 어디 가볼래?
    음 남산타워요.
    완전히 해가 지자 동영상 플랫폼에서 보던 것보다 더 깜깜해졌다. 실제로는 이렇게나 더 깜깜하구나. 수현은 헤드랜턴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이제 내려가요.
    그래. 저녁 뭐 먹을까?
    아직 배가 안 고파서 괜찮아요.
    고기 아니면 회 아니면 피자 아니면 떡볶이? 치킨? 아니면… 햄버거? 원래 산에 갔다 오면 전이랑 막걸리를 먹긴 하는데.
    전에 한번 아빠랑 언니랑 산에 갔다가 파전 먹은 적 있어요.
    그럼 파전 먹자.
    음 회 먹어도 돼요?
    그럼. 사실은 나 회 먹고 싶었어.
    수현과 유리는 산 아래 위치한 동네에서 회를 먹고 다시 조용한 동네로 돌아왔다.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입맛에 맞지 않았던지 유리는 회를 많이 먹지는 않았고 콘샐러드와 매운탕을 잘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와 함께 엄청난 돌풍이 불어왔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잠시 바람을 막아냈다. 너 먼저 가. 네. 버스에서 내려서부터는 따로 걸었다. 유리가 그러길 원했다.

 

 

 

 

 

 

 

 

 

 

이주란
작가소개 / 이주란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와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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