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팜람 외 1편

[신작시]

 

 

휘파람

 

 

전문영

 

 

 

    지옥불은 더 이상 유황의 냄새를 내지 않는다
    사과나무 찍어내리는 도끼소리를 들은 지도 오래-
    버릇처럼 죽은 사과나무 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모닥불에 둘러앉아 천국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면
    세상은 모두 우리의 것- 그러나 우리 모두의 것은 아니라
    그저 내 자리가 있음에 웃음이 절로 나와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분다
    대지는 넓고 분주해 어딘가에선 반드시 뱀을 기르고 있고
    내일 죽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려는 심술궂은 친구들도 있다
    불이 죽을 때쯤 이젠 아무도 탈옥을 감행하지 않는다고 듣는다

 

    홀로 방 안에서 어제 간신히 완성한 스웨터를 뜯어
    다시 둥글게 뜨개실로 감아야만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언제나 쉭쉭
    누군가 사과나무를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사과는 굴러굴러 우리 모두의 침대맡에서 고개를 들고
    우리의 발아래를 걸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에
    언제나 침대 밑을 확인하고서야 잠들 수 있는 자들은
    자청한 기아 속에서 썩어 가는 사과 냄새를 신처럼 견디고
    아침이면 그 모든 걸 다시 시작하기 위해 남은 실오라기들을 바닥에서 집어 올린다

 

 

 

 

 

 

 

 

 

 

외륜선

 

 

 

 

    좌초라는 말은 배가 한순간은 땅을 달렸다는 뜻이다

 

    이발사에겐 수염이 아니라 목숨을 맡긴다고 생각하며
    모르는 기사와 자주 버스를 달린다
    우리는 누가 받을지 받아 줄지도 모르면서
    옛 주소의 골목 공중전화에 전화 거는 사람들
    철로에 딱딱하게 눌어붙은 빵 조각을 보며 사라진 소풍객의 안부를 묻고
    공동묘지를 흘러 지나며 허물어진 비석에 기댄 유령들의 말곁을 한다
    모두가 우리의 마음을 산 뒤 되팔지 않고
    구근만 남은 겨울 밭에 봉헌한 모든 상념은 영원히 미뤄지는 회합
    바람이 불지 않아도 닭들은 언제나 제 몸을 파고들지만
    이발사가 집에 돌아가 거울과 맞상하고 면도기로 제 턱을 긁어 올리는 순간 우리는 질끈 눈을 감고
    가끔은 책장을 훑으며 난간이 곧 절벽이 되는 작은 생물들을 떠올린다

 

    부서진 뱃조각에서 어린 따개비들이 자라났다는 소식만을 기다린다

 

 

 

 

 

 

 

 

 

 

전문영
작가소개 / 전문영

2013년 창비 신인시인상으로 등단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졸
통번역가로 활동 중

 

   《문장웹진 2021년 06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