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 1편

[신작시]

 

 

파리

 

 

이정록

 

 

 

    파리채 위에서 놀자.
    파리채를 들어 올리면
    그때 사뿐 날아가자.

 

    놈의 주먹 위에서 놀자.
    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말자.
    손은 열심히 비비는 척하자.
    손에 피가 돌면 머리가 좋아지니까.

 

    주먹을 들어 올리면
    순간 높이 날아오르자.
    주먹만 믿는 놈에게는
    날개가 없다는 걸 보여주자.

 

    내가 높이 날아오를수록
    놈은 코딱지처럼 작게 보인다.
    도망치면 내가 작아지지만
    날아오르면 놈이 바닥이 된다.

 

 

 

 

 

 

 

 

 

 

육감

 

 

 

 

    출발점이 중요하다며
    아빠는 우리 관계를 무시한다.
    첫 만남이 수준 떨어지게
    오락실이 뭐냐며 혀를 찬다.
    오락실이 아니라 피시방이라고
    게임하다가 만난 게 아니라 수행평가 때문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이상한 눈으로 혀를 찬다.
    아빠는 한 핏줄이라서 육감적으로 안다며
    용돈이 넘쳐나서 오락실까지 다닌다고 엄포를 놓는다.
    살이 맞닿는 우산 하나로 엄마를 꼬신 아빠는
    육감부터 사랑이 시작된 까닭에, 그때
    그 짜릿한 감촉이 이성 교제의 잣대가 됐다.
    다 너를 위해서 충고한다는, 라떼는
    비닐우산처럼 뒤집히지도 않는다.
    하여튼 출발점이 중요하다.

 

 

 

 

 

 

 

 

 

 

이정록ⓒ 조용호 기자
작가소개 / 이정록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동심언어사전』,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까짓것』, 『어머니학교』, 『정말』, 『의자』, 산문집 『시가 써지지 않으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인의 서랍』.

 

   《문장웹진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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