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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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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서

 

 

 

    화성의 바람소리를 들었어. 먼지바람이 이는 화성 표면이 보였고 바람소리가 들렸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이. 미국에 사는 어떤 새들 얘기인데. 회오리가 오기 몇 달 전에 그들은 멀리 날아간대. 몇 달 뒤에 회오리가 올 것을 알아차리고. 사람들이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회오리가 올 것을 예측한다고. 당신은 말하고 있어. 새들은 무리 지어 날아가지. 인간도 다시 무리 지어 살게 될 거래. 누구였더라. 당신은 듣고 있어. 모른 척하고 싶다. 그럴 때 있잖아. 그게 뭐든. 넌 꼭 그러더라. 나니까 너를. 나는. 그런 말 싫더라.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우수수. 당신은 웃어. 웃음소리는 나지 않아. 한 달 동안 매일 기도했어. 기쁘다. 당신은 창밖을 내다보고. 구름을 처음 통과한 바람은 생각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그런데 구름은 어떻게 생긴 거지? 바람은 구름의 생성 원리를, 구성 성분을, 역사를 생각했다. 역사라니. 이건 우리만 아는 이야기. 당신이 턱을 괴고 생각할 때, 바람은 구름을 통과해. 당신 가까이. 구름 속은 차가워. 뿌옇고. 밝지만 어두웠어. 이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야. 바람은 생각했다. 당신은 바람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바람은 순식간에 사라져. 빈 페이지를 부르는 파편들. 당신은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구름은 무심히 흘러가다, 비가 되어 내려. 바람에는 시작과 끝이 없고, 구름은 뭉게뭉게고. 고집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 믿음과 맞붙고 싶지 않아. 당신은 말하고, 구름은 뭉게뭉게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모여 살지. 지금은 당신과 맞붙어 있어.

 

    기다리고 있어. 계속 움직이면서 기다리고 있어. 도착할 때까지. 과거가 미래가 될 때까지. 계속 움직이면서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어. 되뇌는 당신의 눈에 오른발과 왼발이 번갈아 나타나. 바람이 불어. 꽃잎이 펄펄 날려. 바닥에 연분홍 꽃잎들이 떨어져 있어.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누군가 다녀간 자국. 맺힌 데 없는 사람을 보고 싶다. 당신은 바닥을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어. 막힌 길 위에 고가가 나타나. 고가를 오른쪽에 두고 돌아서. 오른쪽에서 전철이 지나가. 불을 환히 밝힌 전철 안이 보여. 당신을 보고 있는 것은 당신만은 아니야. 언제나 당신 가까이. 저 고가는 전철이 다니는 길인가. 당신은 말하고, 고가 위를 달리는 전철을 봐. 당신 옆에는 아무도 없어. 저기로 올라가는 길이 분명 있을 텐데. 당신은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자꾸 하고. 방금 지나온 골목을 돌아봐. 어둠 속 빌라의 1층 공동 현관으로 당신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어. 현관 위에 노란 불. 당신은 그곳이 아주 먼 어떤 곳이라고 느껴. 불 켜진 현관은 당신으로부터 200미터쯤 떨어져 있는데. 당신은 그곳이 몇 해 전 방문했던 도시의 빌라, 현관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비슷한 건 네 사람의 키. 저들은 각자의 방으로 가는 걸까. 당신은 서서 세 개 층 빌라의 모든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 있어. 왜 여기까지 왔지. 현관 아래 등은 곧 꺼지고. 텅 빈 골목. 사람은 한 명도 다니지 않아. 100미터쯤 간격으로 가로등이 켜 있고, 멀리 초승달이 떠 있어. 구름이 달 위를 지나가는 중이야. 달은 구름 속에 들어갔다가 조금 전보다 더 선명하게 나타나. 구름과 달은 만난 적이 없지만. 만나지 않고도 당신 안에 머물렀다 가는 것들이 있지. 컹, 컹 어디선가 개가 짖고. 바람이 불어. 계절이 바뀌었나. 당신은 어디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당신의 발을 내려다봐. 오른발, 왼발. 이제 꽃잎은 보이지 않아. 술집은 10시에 문을 닫았어. 식당과 카페도 10시에 문을 닫았어. 당신은 그중 한 술집에 누군가와 함께 있었고. 10시 5분 전에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섰어. 줄을 서서 차례로 계산을 하고 밖으로 한 사람씩 빠져나갔지. 잔디밭을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늘어선 술집과 식당과 카페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어.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당신은 바라봐. 그리고 사람들이 가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나.

 

    한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처럼. 건반 위를 지나가는 손가락들이 있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이 있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앉은 남자가 있어. 2021년 2월 9일 칙코리아가 세상을 떠났다. 칙코리아는 1941년 6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의 첼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퓨전 재즈 그룹 Return To Forever를 결성했다. 칙코리아의 마지막 앨범은 Plays다. 당신은 술집에서, 대략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어. Return To Forever. 이때 칙코리아가 잠깐 당신을 스쳐 지나갔나. 마주 앉아 있던 사람이 화장실에 갔을 때, 당신은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창밖으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고. 잔디밭 건너 저 편 술집의 작은 전구들이 반짝거렸지.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꽤 오래되었는데. 칙코리아 죽었다며? 당신은 들었고. 아침에 방에서 들었던 피아노 소리가 떠올랐어. 건반 위를 움직이는 작은 손가락들. 당신은 아침에 무심히 피아노 소리를 듣고, 연주자가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어. 도에서 도까지. 한 옥타브도 되지 않는 엄지의 끝에서 새끼손가락의 끝까지. 손을 벌리려고 애쓰던 당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지. 그런 시절이 있었나. 당신은 칙코리아를 검색하려고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어. 읽지 않은 메시지가 1072개를 넘어가고 있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칙코리아를 검색했지. Plays. 당신은 칙코리아의 연주를 들은 적이 없어. 당신에게 떠오른 건 다시. 아침에 들었던 피아노 소리. 몇 개의 음이 반복돼. 메아리처럼. 도미솔도라도솔. 당신은 도로부터 솔까지 소리가 도착하는 속도보다 빨리 음들을 떠올려. 소리를 완성하는 것은 당신의 기억. 속삭임 같은. 칙코리아의 사진이 떴을 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화장실에서 돌아왔어. 나는. 그러니까 나는. 몇 시간 전에 당신에게 자신을 소개한 사람. 동주를 닮았네. 당신은 당신의 계획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어. 파도가 밀려와. 파도가 밀려와. 기억을 밀어내려고. 당신은 확신, 증명 같은 단어들을 떠올렸고, 대신 유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어. 어제 꿈에 열이 나는 사람이 두 명 나왔는데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제 손을 잡고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꿈이라서 이미 한 시간쯤 들은 얘기구나 했죠. 널 어쩌면 좋니. 어떻게 해야 네가 내 말을 믿을까. 그 사람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손을 빼고 싶었어요. 그때 그 사람의 손이 너무 뜨겁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열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말했는데. 그 사람이 웃으면서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신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저는 두려웠어요. 열이 있는데 왜 내 손을 잡았지? 왜 계속 잡고 있는 거지?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 사람이 반복해서 말했는데, 뭐가 괜찮다는 건지 묻지는 못했습니다. 열이 나면 시야가 흐려지고, 정신이 없고, 속이 울렁거리고, 사지가 아픈데.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하품을 해. 당신은 유행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하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 요즘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물었어.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입이 움직여. 고점에 물려서. 당신은 그 사람의 입과 눈을 번갈아 보다가. 동주를 닮았네. 증명이나 확신 같은 단어들은 잊었고.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창밖을 보다가. 당신은 걷고 싶었어. 창밖으로 사람들이 한쪽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게 보였고, 당신은 여기에서 나가면 저기로. 저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겠다 생각했지.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바닥을 보고 걷다가. 당신은 술이 깨는 걸 느껴. 초록이 눈에 좋다던데. 당신은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 멀리 초승달이 떠 있고, 달 위로 흰 구름이 지나고 있어. 아까 본 구름과 같은 구름인가. 다른 구름인가. 당신은 괜히 구름 생각을 하다가. 당신이 구름을 통과하는 상상을 하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고. 당신이 잠깐 하늘에 뜬 상상을 하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 흰 하늘에 흰 구름. 검정 하늘에 흰 구름. 같은 구름이 다른 구름이 되는 상상을 해. 흰 하늘에 먹구름. 검정 하늘에 흰 구름. 다른 구름이 같은 구름이 되는 상상을 해. 당신은 뻥 뚫린 구멍의 색깔이 바뀌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 이름을 떠올려. 있다고 믿으면서. 오른발, 왼발.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다시 바닥을 보고. 당신의 구멍도 색깔을 바꾸지. 허기, 분노, 서러움. 닮은 것들이 너무 많아. 목이 뻐근하다. 술이 더 깨기 전에 소주 몇 병을 사서 들어가야겠다. 당신은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보이네. 혼자 걷고 있는 사람. 당신은 편의점 앞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봐. 당신이 탔던 차와 같은 차. 당신은 몇 달 전 1박 2일 여행을 갔었어. 당신이 탔던 차는 바다 앞에 멈춰 서 있어. 당신이 탔던 차와 같은 차의 꺼진 후미등을 노려보다가. 파도가 밀려와. 당신은 이제 몇 번이고 돌아왔던 차 안이야. 몇 달째 꼼짝 않고 이 바다 앞에 서 있는 차 안. 파도가 가까이 밀려왔다가 밀려 나가기를 반복해. 당신은 차가 멈춰 서 있는 이 해변에 전날 오후에 도착했어. 검은 모래 해변. 모래 속에서는 미라나 도시가 발견되기도 하지. 미라나 도시.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 나가기를 반복해. 사람들은 그 도시가 몇 년 전의 도시인지 밝히고 싶어 하고. 예외 없이. 모든 해에 사람들은 죽어. 아무도 죽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지. 검은 모래 아래에는 미라도 도시도 없지만. 당신은 전날 오후 검은 모래 해변 바로 앞에 서 있는 호텔방에서. 사람들 몇이 같은 방향을 향해 걷다가 같은 곳에 멈춰 서는 것을 몇 번이나 봤어.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났고, 작은 섬이 마주 보이는 해변의 끝까지 걸어갔다가, 사진을 찍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당신은 보고 있었어. 아이와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가족들이 나타날 때면, 왜 가족들은 멀리서 보면 다 화목해 보일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나. 아니, 그건 당신이 들은 말. 당신이 뭐라고 대답했더라. 침대가 바다를 향해 놓여 있어서, 누워 있으면 파도가 발끝까지 밀려왔고. 당신은 거기 누워서 바다와 하늘이 점점 같아지는 것을 봤어. 캄캄한 창 밖에서 규칙적인 파도소리가 들려왔고. 당신은 부드럽게 규칙적으로 움직였지. 가장 오래된 움직임. 밤사이 해는 수평선 위로 서서히 솟아올랐어. 하늘은 조금씩 붉어지다 하얗게 색을 잃었고. 당신은 잠들지 못했지. 파도소리와 낮은 숨소리 사이에서 돌아눕기를 반복하다가, 잠들기를 포기하고 바닥에 내려와 침대에 기대어 앉았어. 파도가 밀려와. 파도가 밀려와. 생각해 봤어? 질문에 밀려. 당신은 해야 할 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빨간 눈으로 호텔방을 빠져나왔어. 생각해 봤어? 질문에 끝내 답을 찾지 못해서. 네가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그런데. 당신은 들었어. 차는 바다 앞에 멈춰 서 있었는데. 핸들을 잡고 있던 사람이, 그런데, 그런데, 반복했고. 내가 돈키호테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가 뭔지 알아? “산초, 다이아몬드 하나보다 이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해.” 당신은 들었어. 당신은 돈키호테를 읽은 적이 없지만. 맨 오브 라만차의 노래들이 차례로 떠올랐고. 그때 당신, Dulcinea를 부르고 싶었나. 막막하다. 당신은 생각했어. 이 하나가.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생각해 봤냐고? 대답 대신 당신이 이 하나를 손에 꼭 쥔 순간. 파도가 호텔을 넘어가. 검은 해변이 온통 물에 잠겨. 이 하나가 물에 떠. 당신은 당신이 아무것도 결심하지 않으면 당신이 물에 잠길 걸 알아. 당신은 결심을 하고 싶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결심이 없다는 걸 알아. 당신은 결심이 없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 당신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도망치고 싶어. 당신은 집 대신, 노려보던 차의 후미등 앞으로, 편의점 앞으로, 길가에 서 있는 당신으로 돌아와. 자신이 없어. 나 자신이 없어. 당신은 기억을 멈추지 못하고. 몇 달째. 파도가 밀려와. 파도가 밀려와. 당신은 기억해. 당신은 눈을 떠. 당신은 눈을 감은 적이 없지만. 당신의 발이 어떤 차의 바퀴 바로 앞에 멈춰 서 있어. 당신이 탔던 차는 아니야. 운전자가 창을 내리고 당신에게 욕을 해. 미친. 뒤지려면 곱게 뒤져. 눈 똑바로 뜨고 다녀. 확. 찢어지는 구멍. 잠깐 마음을 본 것도 같았는데. 당신은 멀어지는 흰 차를 바라봐. 뒤지려면 곱게. 방금 들은 말들을 복기하다가 멈춰. 당신은 손에 아직 어쩌지 못한 이 하나를 꽉 쥐고 있고. 당신의 손톱이 당신의 손바닥을 파고들어. 손바닥이 뜨겁다. 고가 위로 초록 버스가 지나가는 게 보이네.

 

    숙취 때문이었을까. 다음날은 아침부터 이상한 날이었어. 어쩌면 꿈부터 이상한 날. 물이 서 있어.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산중턱. 산의 정상으로부터 당신이 서 있는 중턱까지. 물이 서 있어. 폭포는 아니야. 물은 산에 걸쳐 분명 서 있어. 쏟아지지 않아. 고여서 넘실거려. 당신은 물의 깊이를 알 수 없지만. 초록에 가까운 물은 더없이 맑아. 당신은 넋을 놓고. 서 있는 물을 바라봐. 물이 저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고여 있다니. 바다를 가르고 그 앞에 서면 이런 기분일까. 당신은 물을 바라봐. 그보다 초록에 가깝고 투명한 물. 파도 없이 고요한 물. 고요하다. 산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물 주변으로 나무들과 바위들이 보여. 물은 그 사이를 넘실거릴 뿐 흐르지 않아. 당신은 물빛에 숨이 막히고 물은 햇빛을 받아 빛나.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물 위에서 일렁이고. 물은 규칙적으로 숨을 토해 내듯 적은 양의 물을 아래로 흘려. 당신은 홀린 듯이 서 있는 물을 보고 있어. 이상하다. 당신은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아. 당신은 물을 바라봐. 물이 서 있어. 물이 한 줄기 흘러, 당신의 발을 적셔. 당신은 절벽에 서서, 젖은 발을 내려다봐. 물은 당신 가까이 있고. 당신은 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맑고 깊은. 물은 서 있어. 이렇게 큰 물이 서 있는 것을 당신은 처음 보는데. 알람이 울어. 순식간에 물은 사라지고 천장이 나타났지. 천장은 떠 있어. 천장은 벽이 받치고 있고.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벽들을 가늠해 보려는 당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붙박이 가구들. 책상, 옷장, 냉장고, 침대. 키도 부피도 작은 것들. 세로로 긴 직사각형 방 안에 당신은 누워 있어. 당신은 눈을 감아. 서 있는 물을 떠올려. 물빛을 기억해. 다시 물 앞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알람이 울어. 당신이 일어날 때까지 알람은 울어. 당신은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켜. 천장이 사라지고 불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욕실 벽이 눈앞에 서 있어. 당신은 그 벽에서 밤새 보았던 물빛의 잔상을 보고, 불투명한 유리에 물이 넘실거리는 것을 봐. 물이 서 있어.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물을 지우고.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 밤새 몸에 모인 물을 흘려보내고. 몸에 물을 흘려보내고. 옷을 갈아입고. 당신은 방문을 열고 나왔어. 복도에서 누군가 마주쳤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아니었어. 안녕하세요, 그 사람이 인사를 건네서 당신은 당황했어.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한 말은 그게 전부. 당신은 놀라서 그 사람의 눈을 보았는데, 날 아는 사람이었나. 저 눈빛. 당신은 조금 전보다 더 당황했고 괜한 경계심이 생겨서 고개를 숙이는 듯 마는 듯 인사를 했어. 당신의 입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그 사람은 당신을 지나쳐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지.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어. 책상 의자를 빼는 소리도. 음음. 목을 가다듬는 소리도 들렸어.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도 들렸어. 어떤 소리가 그 사람의 소리일까 생각하며 당신은 평소보다 길어진 복도를 걸었어.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고 조용히 내려놓고 발을 신발 속에 넣고 잠깐 물빛을 떠올렸나. 2층 현관문을 여는 동안 그 사람의 눈빛은 잊었어. 당연하잖아. 당신은 아르바이트를 가는 중이고, 오늘 몇 명이나 진상 손님들을 만나야 할지 알 수 없고, 걸어서 출근할 편의점은 지하철로 세 정거장 떨어져 있는 역 앞에 있었으니까. 당신은 계단을 빠르게 그렇지만 소리 없이 내려갔어. 경계심은 이상한 불쾌함으로 바뀌었고. 인사를 받았을 뿐인데. 찜찜한 마음이 자라기 시작한 이유를 당신은 알 수 없었지. 이미 수백 번도 더 내려간 계단. 기분은 쉽게 바닥을 드러내. 가파른 계단 끝마다 시든 화분들이 놓여 있어서. 당신은 빠르게 마지막 계단에 도착해. 1층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오다가 주인을 만났어. 안녕하세요. 당신은 놀랐어. 누구에게도 절대로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는 주인이 당신을 보고 허리를 폈는데, 당신은 너무 놀란 나머지 주인과 눈을 마주쳤어. 주인은 부서진 콘크리트를 살피는 중이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지. 나를 아나. 당신은 주인이 왜 그런 눈으로 당신을 보는지 알 수 없었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오래 생각에 머물지는 않았어.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소리를 냈던가. 고개를 숙였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났어. 뭔가 어긋나고 있는데. 뭔가. 불안한 마음으로 당신은 골목을 빠져나가. 경계심 때문에 불안해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괜히 귀찮게. 서 있는 물. 물빛이 떠올라. 밤새 바라본 물빛을 생각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골목 끝에서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와, 외투를 여미고, 큰길로 빠져나가. 그러니까 그때.

 

    당신은 사람들 사이를 본다. 큰길로 나온 당신을 사람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 익숙한 소음. 승용차와 오토바이, 버스와 트럭이 나란히 달려가. 서로의 속도를 가늠하면서. 당신은 사람들 사이를 본다. 다 다른 방식으로 나이를 먹어. 골몰은 가속도를 더하고. 더 깊숙이 들어가. 평생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도 하면서. 내면은 이어져 있다. 당신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은 같은 시간이면 침대에 눕고, 곧바로 잠에 들고,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자고,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고, 이어진 시간 속으로 들어가. 당신은 문장으로 생각하지 않지. 사람들의 뇌가 하나의 도시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통로에서 다른 통로로. 상습정체구간을 지나 사고다발지역으로.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 상습안개구역으로. 도시는 순환한다. 도시의 순환은 피와 호르몬의 순환. 기억과 망각의 순환. 이런 방식은 당신의 방식이 아니야. 당신은 무심히 일어서고, 앉아. 당신은 무심히 움직이고, 멈춰. 당신의 꿈도 생각도. 물처럼 흘러. 한 방향으로. 흐르던 대로. 좁고 구불구불한 길. 당신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노래를 불러. 당신의 노래는 엉망이고, 가사는 잘 들리지도 않아. 웅얼웅얼. 맞는 음은 하나도 없어. 음정은 조금씩 자리를 벗어나고 박자는 반 박자씩 늦어.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당신은 무심히 걸어. 바람은 당신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 당신은 앞을 향해 걸어. 하늘도 땅도 보지 않고, 나무도 새도 보지 않고. 앞서 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걸어.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노래를 불러.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와, 외투를 더 단단히 여미고. 조금 전보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 차들은 신호에 멈춰 서고, 전동 킥보드를 탄 사람이 당신을 간신히 피해가. 가로수로 심어진 꽃나무에서 꽃잎이 펄펄 날리고 있어. 몇 미터 앞에 당신이 매일 가는 편의점이 보여. 당신은 무심히 걸어.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노래를 불러. 당신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걸어, 같은 편의점으로 출근해. 바람의 노래를 열한 번 반복하면 당신은 편의점에 도착해. 사람들 사이를 지나. 사람들 사이를 본다. 도시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에 숨이 막힌다. 도시에 마르지 않는 강이 흐르고 있다. 당신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지. 당신은 하나만 생각해. 노래를 부르면 옆에 있을 거야. 이 노래를 부르면 거기가 어디든 당신 옆에 있을게. 당신은 하나만 생각해. 노래만 생각해. 노래를 몇 번 더 부르면 이어진 시간이 끊어질까. 당신은 생각하지 않아. 당신은 하나의 목소리를 포기할 수 없어서. 모든 걸 포기해. 당신은 아무에게도 말 걸지 않고. 당신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당신은 무심히 일어나서 무심히 화장실에 가고 무심히 물을 마시고 아무에게도 실망하지 않지. 당신은 무심히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고,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당신은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고 억지로 죽기를 결심하지 않아. 이어지는 것은 노래. 다만 시간의 속삭임 같은.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당신은 기억해. 바람은 당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당신 옆에 있을게. 편의점 문 앞에 꽃잎이 떨어져 있어. 당신은 기억해. 당신을 부르던 목소리를.

 

    딸랑, 종이 울리고. 당신은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가. 어서, 안녕하세요.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앞 타임 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해. 당신은 오늘도 정확히 10분 일찍 도착했어. 빠르게 교대를 하고, 서둘러 학생을 보내. 이미 앞 타임 학생이 다 한 일이지만. 당신은 다시 물건의 재고를 파악하고,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제품들의 열과 오를 맞추면서. 편의점의 일부가 돼. 쌓여 있는 컵라면이나 생수병들, 온장고 속에 들어 있는 뜨거운 음료들, 약장 속에 알약들과 당신이 다르지 않다고 느껴. 딸랑, 종이 울리고, 손님이 들어와. 어서 오세요. 당신은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고, 손님이 물건을 고르기를 기다리고, 바코드를 찍고, 계산을 하고, 원 플러스 원 상품을 챙겨 주고,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해. 그러는 동안 당신은 속으로 노래를 불러. 기다려. 같이 가. 같이 가. 당신이 어디에 있든. 노래를 부르면. 당신은 들어. 빨리 와. 빨리 오라니까. 바람은 당신의 점퍼를 부풀리고. 자전거는 청보리밭 사이를 달려. 바퀴가 빠르게 돌아가. 청보리밭의 보리는 초록. 당신에게는 밭의 끝이 보이지 않고. 같이 가. 같이 가. 당신은 불러. 파란 하늘이 끝도 없이 이어져. 흰 구름이 바람을 따라 움직여. 같이 가자니까. 당신은 온 힘을 다해 부르지만, 앞서가는 자전거는 조금씩 더 멀어져. 바퀴는 빠르게 돌아가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아. 바람이 당신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려. 같이 가자니까. 당신이 온 힘을 다해 소리칠 때. 털이 하얗고 커다란 동물이 청보리밭에서 불쑥 나와. 당신에게로 다가와. 당신 가까이. 당신은 발 구르기를 멈추고. 점점 더 멀어지는 자전거를 바라봐. 계속 멀어져서 이제 점으로 보이는 자전거를 바라봐. 동물은 그 사이 당신 곁에 와 있어. 당신은 동물의 눈을 봐. 개도 곰도 아니고 고양이도 늑대도 아니고. 당신은 그 동물의 이름을 몰라. 당신은 자전거에서 내려. 한쪽으로 자전거를 눕혀 놓고 동물에게 다가가. 청보리가 바람에 흔들려. 멀리 있는. 저 멀리 있는 청보리까지. 이제 사라진 자전거는 점으로도 보이지 않아. 만져도 될까. 당신은 동물의 눈을 들여다보고. 동물은 당신의 눈을 들여다봐. 동물의 눈 속에 당신이 있어. 낯선 얼굴. 처음 보는 당신의 얼굴. 당신의 마음이 작고 단단하게 뭉쳐. 당신은 다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아. 당신의 허리쯤 오는 동물의 등에 손을 대. 당신의 손에 동물의 체온이 느껴져. 순간. 동물의 등에 노란색이 번져. 당신은 놀라서 손을 떼. 당신의 손을 보고 다시 동물의 등을 보는데, 동물의 등은 새하얗고, 조그만 얼룩도 없어. 청보리는 바람에 흔들리고. 당신은 조심스럽게 동물의 등에 뺨을 기대. 당신의 뺨을 따라 푸른색이 번져. 꼬리 끝까지. 짧고 뭉툭한 꼬리에 파랑이 고여. 눈앞에서 청보리는 사라지고. 밤의 끝까지 사라지고. 끝없는 땅. 붉은 흙. 바람에 흙먼지가 날려. 눈에 먼지가 날아들어. 당신은 눈을 감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당신은 젖은 눈을 뜨고. 네 발로 서 있어. 당신의 등에 붉은 지문이. 당신은 숨을 죽이고. 숨소리를 들어. 가만가만 오르내리는 배. 눈앞에서. 자전거가 사라지고. 도로가 사라지고. 빨리 와. 빨리 오라니까. 당신을 부르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당신은 처음 듣는 동물의 울음을 들어. 당신은 이 울음을 흉내 낼 수 없어. 울음은 짹짹도 멍멍도 아니야. 야옹도 음매도 아니야. 당신은 동물의 울음을 들어. 같이 가. 같이 가. 당신은 울지 못해. 당신의 귓속. 노래를 불러. 당신의 노래. 노래를 불러. 당신은 눈을 감고. 눈을 뜨고. 당신은 걷고, 서고. 당신은 허리를 굽히고, 펴고. 당신은 물건을 옮기고, 담고. 어디서나. 당신의 귓속. 노래를 불러. 꿈에서 깨지 않아.

 

    당신의 꿈은 아니지만. 창문이 열려 있어. 앞 건물의 은빛 연통이 울고 있어. 연통을 통과하는 기체는 연통을 울려. 당신을 통과하는 언어는 기체도 액체도 아니지만. 당신을 울리지. 해는 지고 여명이 남아서 하늘은 검푸른색인데. 점점 어두워지겠다. 물소리가 들려. 책 한 권 크기의 창문이 바깥으로 열려 있어. 당신은 조금 전 하나의 단어를 포기했어. 그것은 단지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당신은 그것을 포기하기로 갑자기, 결정했지. 결정의 순간. 단어가 바뀌었나. 당신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어. 오늘따라 진상 손님이 많아서 걸을 수 없을 만큼 피곤했고, 눈이 뻑뻑했지만 곧 내려야 했기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 씽크 공장, 고전 한복, 함석, 닥트, 밀링까지 간판을 따라 읽다가 골목에 서 있는 목련나무를 봤는데 목련이 환하게 피어 있었어. 바닥에 떨어진 꽃잎은 벌써 까맣게 썩기 시작했고. 시든 목련의 꽃잎이 꼭 타들어가는 것 같다. 당신은 생각했지. 예약 문의, P를, 감염 예방, 사용법, 하루 국수, 위험을. 레미콘, 신축공사, 서울을 가지세요를 지나쳤어. 그것들은 차례로 지나갔어. 버스에 언제부터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지. 당신은 버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봤고. 앞사람의 가마는 둘. 정수리, 정수리, 정수리. 달리는 버스 안에서. 정수리 하나는 냉면, 햄버거, 청국장을 순서대로 맛보고 있었지만. 아직 뭘 먹을지 정하지 못했고. 정수리 하나는 부장의 경솔함을 참을 수 없어.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욕이 쏟아지는 랩을 들으며 이를 갈았고.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읽는다. 당신의 마음은 오락가락하고, 들고 나고, 웃었다가 울었다가 하는데. 버스가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서. 마음이 엉뚱하게 읽힌다. 당신의 극장은 나의 약국. 당신의 산책은 나의 운명. 나는 당신의 산책을 믿지 않아. 목적 없는 반복. 도착 없는 출발. 정수리 하나는 책에 코를 박고 생각했지.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당신은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 모든 생각은 동시에 일어났고. 버스에서 다음 정거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렸어. 미친 듯이 달리던 버스는 신호에 걸려 멈춰 섰고. 견인지역, 전방 70m. 오르막을 올라가는 여자가 있었는데. 당신은 여자가 지나간 긴 담벼락 아래 사철나무들이 나란히 심어져 있는 것을 봤어. 사철나무는 사철 푸르다지. 사철나무를 사철나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먼 나라에서도 서로를 알아봐. 당신은 그들과 가까이 살고. 사철나무에 대해 생각하지 않지. 모두 환영합니다. 아크릴, 액자, 서비스. 당신은 그들과 같은 글자를 읽을 수 있지만. 허기 관리. 같은 것을 보진 않아. 허기도 관리하는. 졸고 있던 앞사람의 전화벨이 울려. 당신은 놀라고. 버스는 어느새 지하 차도에 서 있어. 지하 차도의 벽면에 타일들이 드문드문 빠져서, 꼭 이가 빠진 것 같다, 생각하다가. 이가 빠져서. 당신은 손에 이 하나를 꼭 쥐고. 생각했지. 이 하나가. 이 하나가. 한번 시작된 생각은 멈추지 않아. 당신은 누군가의 생각도 꿈도 아니지만. 모르겠다. 이젠 정말 모르겠다. 당신은 생각했고. 주먹을 더 세게 쥐었어. 생각 속에 눈을 부릅뜨고 있다가 내릴 정류장을 지나칠 뻔했지. 당신이 내리는 정류장에서 다행히 세 사람이 올라탔고, 그 사이 당신은 간신히 내렸어.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다시 몇 개의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몇 개의 계단을 올라. 당신은 조금 전에 집에 도착했어. 창문은 닫혀 있었고, 집엔 아무도 없었어. 세상에 단어는 수없이 많았지만. 당신은 당신이 당신의 방을 자꾸 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달팽이의 집과 거북이의 등껍질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지. 그러니까 그건. 그러니까 그건. 이제 당신은 이렇게 반복하고 있었고. 막막하다. 당신은 생각했어. 주먹을 꽉 쥐고. 그것을 계속 생각하다가. 당신의 손톱이 당신의 손바닥을 파고들어. 갑자기. 그것은 단지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당신은 진심으로 생각했어. 창문을 열어야겠다.

 

    당신은 뛰어들어.
    당신은 뛰어들어.
    당신은 오늘도 당신의 우주로 뛰어들어.
    당신은 매일 뛰어들어.

 

    오우무아무아, 오우무아무아,
    당신의 우주. 무슨 소리야? 오우무아무아. 당신은 말하고. 이따 영화 볼까? 당신은 들어. 쿠키처럼 생겼대. 뭐가? 당신은 들어. 오우무아무아. 성간 천체. 무슨 일 있지? 당신은 들어. 당신은 줄곧 같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어. 물을 마시고, 다리를 긁고, 손에 쥔 야구공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당신이 기대어 앉은 벽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고. 액자에는 당신과 집주인이 처음 만난 날 찍은 사진이 들어 있어. 청보리밭 사이로 난 길에 자전거의 핸들을 붙잡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어. 조금 떨어진 곳에 그 길을 달려가고 있는 자전거가 있고. 멀리 스쳐 지나가는 사람. 아직 서로를 모를 때, 만나기 몇 시간 전에. 두 사람은 한 사진에 찍혔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수많은 연인들이 같이 가, 빨리 와. 외쳐대는 사이로 당신은 혼자 달렸지. 같이 가, 소리가 들릴 때마다. 커플 자전거를 타면 되지 않나. 당신은 생각했고.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을 그날 저녁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지. 다음날은 같이 가, 같이 가, 괜히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탔고, 내내 웃었어. 주말인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앉아 있어? 집주인이 물어. 오우무아무아. 외계인이 보낸 걸 수도 있대. 당신은 말하고. 오우무아무아가 뭔데? 당신은 들어. 요즘 UFO를 봤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대. 이유가 뭔지 알아? 당신은 물어. 무슨 일이야. 말을 해. 딴소리 그만 하고. 당신은 들어. 밤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래. 당신은 대답 대신, 몇 시간 전에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말해. 잠은 좀 잔 거야? 당신은 들어. 오우무아무아. 4억 년 전쯤, 다른 천체와의 충돌로 행성에서 떨어져 나왔을 거래. 원래 있던 행성계 밖으로 튕겨 나와서 태양계를 스쳐가게 된 거래. 오우무아무아는 어둠 속 태양계를 스쳐가고. 당신은 당신이 알게 된 사실 사이를 스쳐 지나가. 오우무아무아. 멀리 스쳐 지나가는 것들. 당신은 계속 손에 쥔 야구공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지 않고. 오아무아무아. 오아무아무아. 반복해. 아무것도 충분히 기억할 수 없어. 당신은 생각하지 않지. 오아무아무아. 오아무아무아. 같은 생각만 하고 있어. 오아무아무아. 오아무아무아. 당신은 계속 말하고. 오우무아무아라며. 일이 잘 안 됐어? 당신은 들어. 오우무아무아는 32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지나가고 있고. 오아무아무아. 당신은 기다렸어. 계속. 냉장고 문을 열고, 닫고. 오아무아무아. 계속. 이름을 잘못 부르면서. 오아무아무아. 물을 마시고, 오줌을 싸고. 오아무아무아. 야구공이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당신은 같은 벽에 기대어 앉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잊게 되는 게 있다는 걸 알아. 의미나 무의미나 마찬가지. 아드 인피니툼. 무한히. 아드 인피니툼. 무한히. 아드 인피니툼. 무한히. 반복하면. 사라져. 서서히. 희미하게. 당신 그리고 시간. 오아무아무아. 오아무아무아. 망각을 돕는 것들.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어와. 당신은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봐. 오늘 날씨 좋다. 공기 좋은가 봐. 우리 바다 보러 갈까? 당신은 들어. 오우무아무아는 태양계를 스쳐 지나가고. 잊자. 왜지? 잊어. 왜지? 그냥 잊어. 당신은 생각하지 않고. 오아무아무아. 오아무아무아.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희미해진 것은 비슷하게 보이고. 비슷한 기억을 가지면 비슷한 걸 갖고 싶어지지. 당신은 한 가지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지만. 희미한 기억 속에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해. 막막하다. 당신은 생각했어. 오우무아무아를 오우무아무아 오우무아무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오아무아무아로 오아무아무아 오아무아무아. 계속하는 것처럼. 뭐가 잘못됐지. 두 눈을 감고. 오아무아무아. 오아무아무아. 바다나 보러 가자. 당신은 들어. 당신은 전날 오후에 해고 통보를 받았고. 당신은 습관처럼 이 집으로 왔지만 잠들지 못했지. 집주인은 야근을 하고 새벽에 들어와 잠든 척하는 당신을 깨울까 봐 조용히 침대에 올라왔고 곧 잠들었어. 당신은 침대 아래로 내려왔고 벽에 기대어 앉아. 오아무아무아. 사라지는 것을 봤어. 야구공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야구공이 당신의 손으로 돌아올 때. 오아무아무아. 당신은 사라지는 것들을 보았어. 병에 들어 있는 것들. 물. 술. 편지. 마음. 뇌. 심장. 폐. 개구리. 지네. 뱀. 농약. 세제. 거품. 병에 든 것들. 병에 든. 오아무아무아. 사라지는 사람을 보았어. 오아무아무아. 자꾸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는 사람을. 당신은 숨을 쉴 때마다 공기 중에 퍼지는 기체를. 당신이 숨을 내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밤하늘을 봐. 보이지 않는 무언가 끊임없이 당신을 통과해. 몇 달째. 그날부터. 오아무아무아. 당신은 걷고 있어. 오아무아무아. 앞서 걸어가는 사람이 보여. 멀리 스쳐 지나가는. 오우무아무아. 고가 위로 초록 버스가 지나가는 게 보이네.

 

    오아무아무아.
    오아무아무아.
    당신은 목탁 속.
    속을 파서 소리를 만든다.
    속을 파서 소리를 만드는 건 목탁이나 당신이나 매한가지.
    땅속에서 물푸레나무 뿌리를 캐내고 논에 3년간 묻고, 나무의 진을 빼고, 가마솥에 삶고, 그늘에 말리고, 도끼, 자귀, 칼로 자르고 두드리고 파내, 목탁의 형태를 만들고, 목탁 표면에 숯검정을 칠하고, 말리고, 들기름을 칠하고, 칠하고, 칠하고, 칠하고, 일곱 번 칠하면. 목탁이 완성된다.
    목탁의 소리는 십 리를 가.
    목탁 속은 텅 비었고.
    목탁은 울려.
    목탁이 울려.
    목탁이 울려.
    오우무아무아.

 

    별에 찢긴 파편. 우주는 검고, 밤은 어둡지만.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당신은 걷다가 지쳐서 하늘을 봤고, 멀리 뜬 달을 봤어. 숨을 내쉴 때마다 공기 중에 퍼지는 기체. 달 위로 구름이 지나갔던가. 고가 위로 초록 버스가 지나는 걸 봤고. 당신은 초록 버스를 타고 싶어졌지. 몇 달 전에 마지막으로 탔던 노선버스. 수없이 탔던 번호의 버스를 탔어. 버스를 타고 싶었던 건지, 그 집 앞으로 가고 싶었던 건지. 당신은 생각하지 않았어. 같은 생각만 반복하고 있었는데. 버스 안에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고. 뉴스는 계속해서 먼 나라의 소식을 전했어. 먼 나라의 소식이 당신의 생각을 중단시켜. 당신은 창밖을 봤어. 꽃잎이 펄펄 날려. 나무마다 드문드문 꽃이 피어 있어. 바닥에 쌓인 꽃잎들이 버스의 속도가 일으킨 바람에 날려. 당신은 기억해. 연분홍 꽃들. 그때. 당신은 기억해. 거기가 어디든. 빛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얇은 분홍 잎들. 바닥은 떨어진 꽃잎들로 가득하고. 당신은 시위대의 중간쯤 서 있어. 당신과 같은 학교 사람들이 당신 주위에 있어. 당신은 조금쯤 불안하지만 그만큼 안전하다고 느끼기도 해.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당신의 무리 속에 있어. 혼자가 아니다. 당신은 앞에 있는 뒤통수를 봐. 왼쪽으로 가마가 치우친 머리. 목덜미 부분이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어. 일주일 전에 머리를 잘랐다고 했지. 미안, 내가 조금 늦었지. 머리를 자르러 갔는데 손님이 많아서. 그냥 나올까 하다가. 말하는 것을 보면서 당신은 웃었어. 당신도 머리를 자르러 갔었는데. 마침 손님이 없어서 늦지 않게 도착했지. 당신은 웃으면서 이어폰을 가방에 넣어. 뭐 듣고 있었어? 바람의 노래. 좋아? 이 가수를 좋아해. 나도. 당신은 동시에 웃고 동시에 들어. 한 바퀴 걸을까. 인공 호수인가. 당신은 동시에 말해. 공원에 사람들이 많아서 당신은 그만 공원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싫다고 하기 싫어서 걷기 시작했어. 공기 중에 민들레 꽃씨가 날아다녀. 너도 머리 잘랐네. 잘 어울려. 우리 형제로 보일까. 과제는 다했어? 당신은 동시에 말하고 동시에 듣고 동시에 웃어. 나는 어제 냈는데 너무 고생해서 다음 학기에도 이 수업 들어야 할지 모르겠어. 넌 어때? 당신은 말하고 지나가는 하얀 강아지를 보고 호수에 햇빛이 일렁이는 걸 봐. 모르겠어. 다음 학기. 생각하기도 싫다. 당신은 웃고. 당신과 동시에 호수를 보는 뒤통수를 보다, 분수에서 죽은 사람의 심장이 발견됐대. 당신은 들어. 심장이? 당신은 묻고. 심장을 보관함에 넣어서 묻었다나 봐. 당신은 들어. 심장을 왜 분수 밑에 묻었을까. 분수가 마치 심장에서 솟아오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신은 말해. 미라가 발견된 거랑 다르다. 뭐가? 심장이 땅속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게. 처음 듣는 새소리가 들려. 당신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발견해. 이집트에 가본 적 있어? 당신은 들어. 아니, 나 평생 비행기 한 번도 못 타봤어. 나도. 평생. 두 명의 아이가 당신 옆으로 비눗방울을 날리며 지나가. 우리 다음에 이집트에 갈까. 왜? 피라미드 아래 심장을 묻게. 뭐? 당신은 동시에 말하고 동시에 묻고 동시에 웃어. 새싹은 나뭇가지마다 피어나고 아직 바람은 차가워. 당신의 목과 어깨가 경직되어 있어. 어디 들어가자. 어디로 갈까? 서둘러 걷다가. 손을 잡을까, 당신은 생각했지. 당신 손은 주머니 속에 있었는데. 나 긴장하면 눈을 잘 못 봐. 말도 잘 못 해. 손바닥에 땀이 나. 왜 심장을 묻었을까. 당신은 이 말 저 말 떠올리지만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아. 열심히 걸어. 지금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당신의 무리 속에 있어. 혼자가 아니다. 당신은 앞에 있는 뒤통수를 봐.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노래를 떠올려. 이제 이 노래 들으면 너 생각날 거 같아. 당신은 기억해. 혼자가 아니다. 구호를 외쳐. 구호를 들어. 그때. 총소리. 총소리가 들려. 당신은 그 자리에 멈춰 서. 몸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어. 당신은 두 팔로 머리를 감싸. 당신은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로 얼어붙어. 총소리. 탕, 이건 총소리가 아니야. 총소리는 몸을 얼어붙게 해. 심장만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해. 당신의 심장은 무서운 속도로 뛰어. 당신은 앞에 있는 뒤통수를 봐. 당신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는 사람. 단 한 번의 총성으로. 사람들은 멈춰 서. 총소리. 사람들이 뛰기 시작해. 귀를 막고 뛰기 시작해. 당신은 총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 총소리는 계속돼. 하늘을 향해 쏘는 공포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 당신의 손을 잡고 뛰는 사람. 당신은 그 사람의 뒤통수를 봐. 일주일 전에 머리를 잘랐다고 했지. 총소리. 함께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걸까. 비명은 점점 멀어지고. 당신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느껴. 이제 멀리 온 걸까. 막다른 길에 다다른 걸까. 앞서 가던 뒤통수가 당신의 눈앞에서 흔들려. 귓속이 먹먹해. 물속에 잠긴 것처럼. 그때. 꽉 잡고 있던 손.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손을. 당신은 기억해. 당신은 당신의 두 손을 깍지 껴서 꽉 잡고 있고. 라디오는 이제 먼 나라의 소식을 다 전하고, 유행하는 노래를 흘려보내고 있어. 당신은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왼쪽으로 치우친 가마를 봐. 정수리, 정수리, 정수리. 지금 어디 있을까. 당신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봐. 꽃잎이 펄펄 날리고 있어. 찢기기 쉬운 연분홍 잎들. 버스에서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버스는 순환버스. 당신은 내리지 않아. 당신은 기억해.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든.

 

    죽고 싶어. 당신은 거리를 걷고, 무심히 나무의 곁을 지나고, 새소리를 들어. 기억해. 버티고 있어. 당신은 턱을 괴고, 다리를 꼬고, 머리를 쓸어 넘겨. 기억해. 살아 있어. 당신은 웃고, 말하고, 창밖을 내다봐. 바람이 불어. 기억해. 믿고 싶어. 당신은 기대 없이도 실망하고, 닳고 있다고 자꾸 생각하면서 뭐가 닳는지 알지 못해. 미칠 거 같아. 미치겠어. 기억해. 얼마나 더, 대체 얼마나 더.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술에 취하고, 노래를 불러. 기억해. 살고 싶어. 당신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결심하고, 잊고, 잊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숨이 막혀. 당신은 잊은 걸 기억하고, 기억과 싸워. 기억해. 참을 수 없어. 당신은 뭔가에 이유 없이 끌리고, 근거 없는 확신을 갖고, 믿음이라는 함정에 빠지고, 아무라도 원망해. 도망치고 싶어. 도망쳐. 당신은 포기할 수 없어서 전부를 포기해. 겨우. 가까스로. 기어이. 당신은 재채기를 하고, 허리를 돌리고, 창문을 열어.
    당신이 나를 불러.
    당신이 나를 불러.
    당신들이 나를 불러.
    여기는 당신들로 가득해.
    나는 가득해.
    물이 빛나고 있어.

 

 

 

 

 

 

 

 

 

 

윤해서
작가소개 / 윤해서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 소설 『0인칭의 자리』, 『암송』, 『그』가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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