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5월 1일, 스프링클러 씨에게

[단편소설]

 

 

21년 5월 1일, 스프링클러 씨에게

 

 

전하영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란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요?”
“영화관에 새 필름이 들어온다는 걸 의미하죠.”

– 『페스트』, 알베르 카뮈

 

 

    어느 날 최사해는 이십삼 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났을 때, 그는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신의 두 다리가 문득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상체에 무게를 싣고 있었다. 스텝이 엉켜버리면 바로 한 바퀴 굴러 나동그라질 것이다.
    전혀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생각해 내려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머릿속에서는 어두운 방의 이미지 하나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래, 그곳으로.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 걷다 보면 도착하리라. 발끝이 이끄는 대로 그는 다시 몸을 기울였다.
    언덕이라든가 가로등, 주황색 벤치 같은 것들이 눈에 익었다. 그대로네 하고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맑은 공기. 소리가 에코를 만들 듯 조금씩 지연되면서 보이지 않는 작은 회오리바람처럼 거리를 훑고 사라졌다. 나무들은 원본을 백이십 퍼센트로 확대해 놓은 것처럼 확연히 자라 있었다. 좀 더 어깨에 힘을 주고 그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그는 바닥에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를 조심스럽게 피하며 땅을 밟았다. 나무 그림자 위로 발을 디딜 때마다 작은 불운이 따라올 거라는, 어릴 적에 들은 짧은 이야기 하나 때문에 그는 나무 그림자를 밟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런 미신들은 행복한 유년기의 기억보다 더 또렷이 그의 몸에 새겨져 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 사람의 기질적 특성을 입력해 놓았듯이, 선명한 상흔을 남긴 채. 이런 것들을 강박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둠의 영역이 시간의 물결에 따라 출렁거렸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걸어온 길을 흘끔 돌아보며 어쩐지 사물의 비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그만 해버리고 만다.
    한동안은 걷고 있는 상태에서도 졸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어느샌가 정신이 또렷해졌고, 그는 극장으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한참 전부터, 아마도 이십삼 년 전부터 그곳으로 가려 했었다. 쉽게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거리는 여전히 한산했고, 사방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부터 부근에서 목격한 유일한 사람의 형상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건물 유리창에 비친 그 자신의 창백한 얼굴뿐이었다. 그는 틈틈이 유리창을 흘깃거리며 자신의 실루엣을 확인했다. 반사면 속에서 아른거리는 그를 닮은 사람은 빠르게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 보고, 이어서 얼굴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양 턱을 쓰다듬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자라지 않았다.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정수리 부분을 원래대로 헝클어트리자 남자는 더 자기 자신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유리창 앞에서 얼마간 멍하니 멈춰 선 채로 언젠가 읽었던 한 편의 글을 기억해 냈다. 소수의 인류만이 경험한다는, 심연과도 같은 깊은 단계의 수면 활동에 대해.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정 부류에게만 발견된다는 정신적인 현상-몽유병-에 대하여…….

 

*

 

    최사해는 이십삼 년 동안 잠들어 있었고, 지금은 미술관을 향해 걷고 있다. 왜 미술관 안이 아니라 밖에서 깨어났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잠들지 않은 곳에서 깨어나는 일에 대해 언젠가는 깊이 생각해 볼 것이다. 그는 비스바덴에서 배송되어 온 외장하드가 담긴 작은 메신저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방금 떨어져 나간 몸통의 일부처럼 그는 멀뚱히 그것을 쳐다보다가 어깨에 다시 걸쳐 멨다. 외장하드에는 암호화된 파일의 형태로 영화 한 편이 담겨져 있었다. 최사해는 영화를 극장으로 가져가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이 그의 일이었다. 미술관 내부를 돌며 이런저런 물품과 우편물을 배송하는 일. 이런 걸로 돈을 벌어 왔군. 그는 무심하게 인정했다. 흥미로운 직업이라 할 순 없겠지만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염려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그는 극장으로 가야 했다.
    극장은 미술관 안에 있었다. 미술관은 하나의 단일한 건물이 아니라 여러 개의 건축물이 맞물려 확장되듯 복잡한 구조를 가진 단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큰 공간 안에 보다 작은 공간들이 듬성듬성 들어차 있는 것처럼 여러 개의 큐브가 나선형처럼 연결되어 이어졌다. 하얀 벽면은 매끄럽게 연결되다가도 갑작스러운 경사면으로 단절되었다. 때문에 안에서는 그 구조를 잘 파악할 수 없었지만 멀리서 보면 비정형의 큰 육면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미술관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아름답게 부서진 성이나 반쯤 조각난 거대한 사기그릇 같아 보였다. 형태 외에도 이 미술관만의 특별한 점을 하나 더 언급하자면, 정교하게 결합된 큐브 – 외부 형태야 어떻든 내부가 모두 화이트 큐브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 를 이동시키면 완전히 새로운 조합의 공간을 연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바로는 개관한 이후 단 한 번도 초기 구조가 바뀐 적은 없었다. 그건 그다지 합리적인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우선 예산상의 문제. 얻을 수 있는 무형적, 미학적 가치에 비해 낭비되는 세금이 너무 막대하다는 것. 둘째로, 미술관의 구조를 바꾸고 싶다고 요구한 작가 혹은 큐레이터가 현재까지 전무했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가장 인간적이고 누구든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로서, 변형되고 개조된 임시 구조에서는 누군가 어떻게든 반드시 길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보이지 않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물론 그런 혼란과 무정형성 자체가 설계자의 기본 의도였을 것이다. 가장 현대적인 현대 미술관.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작동하는, 상상의 미술관. 하지만 애초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최사해는 큐브를 움직인다는 것이 일종의 ‘가설’로서, 그러니까 도시괴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괴담의 종류는 여러 가지로 제시될 수 있다. 그중 이 업계에서 가장 선호되는 것으로는 실현되지 못한 천재 건축가의 독창적인 설계 같은, 약간의 비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비화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어쩌면 학교나 병원, 도서관, 박물관처럼 여백이 발생하는 공공시설에서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어떤 공통적인 결핍 같은 게 존재할지도 모른다.
    최사해에게 맨 처음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늙은 영사기사였다. 영사기사는 오래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는 왼쪽 눈에 안대를 둘러서 해적처럼 험상궂은 인상이었지만 실은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선한 사람이었다. 혹시 ‘인간문화재’라는 개념이 아직까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영사기사를 해당 리스트에 가장 우선적으로 등록시켜야 한다. 새로운 아카이브 폴더를 생성해 그의 말과 태도와 지식과 기술을 모조리 기록하고, 전수하고, 기념하고, 제자를 들이고, 또 그에게는 죽을 때까지 합당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시대가 문화라는 것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말이다. 아무튼, 늙은 영사기사는 극장에서 하루 종일을 보냈다. 극장은 미술관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떤 벽면으로도 햇빛이 닿지 않는 장소였다. 햇빛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외진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 수장고만큼이나 접근성이 떨어졌다. 극장에서 미술관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성인 남자의 빠른 걸음으로도 이십 분이 넘게 걸렸다. 영사기사는 언젠가부터 똑같은 크기로 썰린 피넛버터 샌드위치를 낱개로 포장해 와서는 냉동실에 차곡차곡 보관해 두고 매일 하나씩 꺼내 먹었다. 가끔씩 최사해가 극장에 들를 때면 이미 영사기사는 극장 옆 창고 – ‘사무실’이라 불리는 – 에 틀어박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쓴 차와 함께 단숨에 점심식사를 해치운 뒤 커다랗고 오래된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곤 했다. 그는 매일 조금씩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읽었던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건 축복이야. 영사기사는 콜록거리며 최사해의 등에 대고 혼잣말처럼 외쳤다. 그의 청력이 시력만큼 좋진 않다는 사실은 꽤나 명백해 보였다.
    미술관에서도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내부에, 인적이 드물어 조명등조차 켜놓지 않은 안내부스 부근에 블랙박스가 있었다. 지금은 ‘미디어박스’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그것을 ‘극장’이나 ‘영화관’처럼 관습적인 이름으로 불러도 무방하겠다. 긴 복도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극장 입구부에는 C I N E M A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지만 불이 들어오는 건 오직 M뿐이었다.
    퇴락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는 매일 오후 네 시에 영화를 상영했다. 네 시 정각이 되면 아주 오래된 영화 한 편이 시작되었다. 영화는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영세하게 운영되는 1인 배급사로부터 암호화된 파일로 보내졌다. 원래는 필름으로 찍혔지만 21세기 초에 대부분 디지털화된 영상이었다. 영사기사는 대략 세 시 삼십 분부터 영사실에서 대기했다. 프로젝터와 사운드 시스템을 점검한 후 남는 시간엔 멍하니 맨 뒷좌석에 앉아 관객들을 기다렸다. 관객이라고 해봤자 보통은 서너 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끔씩은 백 명이 넘는 관객이 올 때가 있기도 했다. 유명한 감독의 영화가 상영되면 백 명의 관객이 몰려왔다. 미술관 극장이 소화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었다. 사람들은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유명한 감독의 유명한 영화를 좋아한다. 영사기사는 그런 경향에 대해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어찌 됐든 매일 오후 네 시에 영화를 시작시킨다는 루틴뿐이다.
    극장을 찾는 이들은 매번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영화 초반부를 놓쳐버렸다. 관객들은 극장으로 접근하는 길이 무한에 이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각각 다양한 방식으로 극장에 도달했다. 헤맨 끝에, 멀리서 깜빡이는 M을 발견하면 그들은 구조신호를 발견한 듯 안도했다. M……! 서너 명, 혹은 백 명의 사람들은 먼 복도 끝을 향해 허겁지겁 뛰어가 극장 입구부의 무거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그 문은 작은 상자로 통하는 더 작은 구멍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기도 잠시, 그들은 빛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검은색 암막 커튼에 휘감겨 한참을 허우적대다가 어둠 속으로 한 걸음씩 발을 뗄 수 있었다. 사방과 구분되지 않는 시커먼 벽을 손바닥으로 짚어 가며 긴 통로를 지나, 희미한 실루엣 정도로 구분되는 의자 쪽으로 팔을 뻗어 더듬거리며 겨우 객석의 쿠션 위에 엉덩이를 안착시킨다. 늦게 입장한 사람들은 방금 그들이 경험했던 유일무이한 어둠의 체험에 대해선 완전히 망각한 채, 그들로부터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밝은 스크린 위의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만 오천 안시로 흔들리는 거대한 형상들. 마취된 것처럼 미동 없이 한 방향을 응시하는 굳은 뒷모습들. 단체로 돌입한 최면 상태. 개별적인 광기와 망상 들이 하나의 시선으로 수렴되는, 영화 관람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취미. 이 모든 동시적 사태의 아름다움이 경이롭다. 이것은 매일 오후 네 시 무렵 극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괴담’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어느 봄날 오후.
    최사해는 홀로 산책하고 있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어 세 번이나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깊은 잠에서 깬 기분이 들었다. 종종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저에겐 한 가지 특별한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애초에 그의 계획은 점심을 먹은 후 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무인우편함에 들러 외장하드를 픽업해 올 생각이었다. 그는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산책길을 정했다. 미술관 주변에는 작은 골목들이 많아서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다양한 조합의 새로운 루트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조금은 설계자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름 모를 천재 건축가의 수고에 감사하고 싶다. 그 덕분에 알려지지 않은 출구를 찾아내는 기쁨을 느끼곤 했다. 마찬가지로 길을 쌓아 가는 마음으로 틈새에서 시작되는 전혀 다른 산책길을 고안해 냈다. 그는 자신이 이 분야의 대가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미술관을 둘러싼 정원을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이곳은 쓸데없이 넓어서 공원처럼 느껴졌다. 매일매일 좀 더 넓어지는 것 같았다. 거대한 나선형을 그리는 구름다리를 지나면 미술관과 정원을 구분 짓는 낮은 성벽이 나왔다. 성벽 옆으로는 군도를 이루는 섬처럼 한 줄로 일정하게 떨어져 배치된 돌 화분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었다. 각각의 돌 화분 안에는 세 가지 색의 양귀비가 빽빽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오랜 버릇처럼 활짝 핀 노란색 양귀비 꽃잎을 살며시 톡톡 건드렸다. 걸음을 멈추진 않는다. 오른편으로 돌 화분 섬들을 스치며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언젠가 그에게 그 꽃들의 이름이 ‘양귀비’라고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반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양귀비라니. 그건 정말 이상한 선택이 아닌가. 하지만 그 꽃들을 양귀비가 아닌 다른 것으로 부를 방도가 없었다. 그는 그때의 감각을 떠올려 보듯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미소를 머금은 직원들이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친절한 얼굴. 그와 마주치게 될 것을 예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인사를 해야 할 만큼 그들에게 근접하기 전에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점심시간만큼은…… 혼자가 필요하다. 일할 때도 그는 대개 혼자였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혼자였다. 오픈된 공간에서, 자신을 모르는 타인들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 때 밀려드는 아늑한 종류의 혼자. 태양빛 아래서 나른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혼자. 조금쯤 시를 쓰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않는 혼자.
    시를 써볼까……
    시.
    시 같은 것.
    나는 시를 썼었나.
    시를 써왔던 걸지도 모른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왜 갑자기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지.
    최사해는 자신에 대해 골몰했다. 그리고 어느 때처럼 모든 사물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자 별로 애를 쓰지 않았는데도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무심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어릴 적 가장 아끼던 잃어버린 구슬을 발견했을 때처럼. 상상의 주머니에는 빛나는 구슬 하나와, 그것이 빠져나가지 않을 만한 크기의 작고 검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블랙홀 같은 구멍과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 삭제된 기억들.
    그리고 어떤 거리감.
    마취에서 깨어난 뒤 찾아온 갑작스런 고통 속에 놓인 사람처럼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잠들기 전엔 분명 스물 셋이었는데 깨어나니 사십육 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으리라는 것도. 혼란스러운 가운데에서도, 그는 스스로가 무려 이십삼 년이나 잠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새롭게 인식했다. 시간을 건너뛰는 것. 어떤 식으로든 간에. 원체 죽은 듯이 자는 편이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또한 원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증폭된 자신의 재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어설픈 초능력자처럼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낯선 세계를 바라보았다. 잘 정돈된 정원에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만이 이따금씩 멈춰 서서 서로의 냄새를 맡으며 킁킁대는 개들을 기다려 주었다. 개들이 서로를 향해 짖으면 그제야 주인들은 때가 되었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줄을 당겨 방향을 틀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마름모꼴 모양의 구름이 서서히 뭉개지고 있었다. 평화로운 날씨. 순조로운 산책.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더라도 전혀 알아챌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별히 더 나이를 먹었다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여전히 세계와 거리를 두고, 가난한 기분으로 혼자 서 있었다. 그런 기질만큼은 계절의,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기질…… 그는 자신의 기질에 대해 생각하길 좋아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스스로를 견딜 수 없는 척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 끔찍이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도무지 변할 줄을 모른다.
    그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기분으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멀찍이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네 명의 남자들이 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위성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조금씩 이동해 가며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운데 선 남자는 하나의 세트처럼 위아래가 동일한 색으로 된 반바지와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피팅 모델처럼, 아니 피팅 모델이었고, 미술관 외벽을 배경으로 연속적으로 몇 가지 포즈를 취하는 중이었다. 그중 덩치가 큰 남자는 벽돌 같은 카메라를 들고 그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나머지 두 사람은 인간 옷걸이 역을 맡은 모양으로 엉거주춤 여러 벌의 셔츠와 바지 등을 어깨와 팔에 걸쳐 들고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들이 네쌍둥이마냥 서로를 무척 닮아 있었기 때문에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한 사람의 얼굴밖에 그리지 못하는 고집스런 작가의 캔버스 속에서 조금씩 체격만 달리한 채로 부여받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저 미술관을 한 바퀴 도는 동안에만도 비슷한 광경을 두 번이나 더 목격할 수 있었다. 야외 조각공원 입구에서 또 다른 남자 네 명이 비슷한 구도로 촬영을 하고 있었고, 원형 광장을 마주하고 세워진 사자상을 배경으로는 여자 넷이 뭔가를 찍고 있었다. 두 번째 남자들 무리는 그냥 지나쳤지만 여자들 네 명이 촬영하는 모습은 멈춰 서서 조금 더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여자들은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한 사람이 촬영을 하고 세 사람은 나란히 서 있다가 이해할 수 없는 몸부림을 치다가 또 가만히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아마추어 예술가들을 바라보던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그는 그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자마자 다시금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잠시 원 밖으로 걸어 나가지만 금세 원 안으로 회귀하는 자동적인 움직임같이. 그런 것을, 제어되지 않는 어떤 힘을 느끼곤 한다. 더 큰 것에 소속되어 있는, 압도적이고 거대한 혼돈 가운데 놓인 상황을.
    여자들이 서로를 닮지 않은 것이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보다 더 수상한 점은 그가 여전히 미술관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술관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미술관이 나타났고, 먼 방향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미술관 정원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경계지점에 이르러 제자리걸음을 하면 이내 다른 내부에서 정신을 차리듯이.
    그가 다시 두 번째 촬영팀과 마주쳤을 때에는 그들에 대해 전보다 호기심이 일었고 걸음을 멈추고 촬영하는 상황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들도 사실 옷과 모델을 촬영하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영상을 찍고 있었다. 촬영팀이 단출하고, 아무도 대사를 치지 않았기 때문에 첫 번째 남자들과 구별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들은 똑같은 장면을 열다섯 번도 넘게 찍고 있었다. 모델 역을 맡은 남자가 멀리서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 반복들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은 진지했다. 반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깊이, 그 자체가 그들의 목적인 것처럼. 남자들이 잠시 촬영을 멈추고 담배를 피우며 쉬는 동안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뭘 하는 거예요?
    뻔히 영화를 찍는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는 그렇게 물었다.
    그냥 뭐 좀 찍어요.
    뭘요?
    영화.
    옷걸이 역 비슷한 것을 맡은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제목이 뭔데요?
    옷걸이가 귀찮다는 표정을 바로 지었지만 역시 대답해 주었다.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전진한다.
    그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마스크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환기했다. 왜 모든 모임이 네 사람으로만 이루어졌는지도 단번에 이해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적한 기분에 휩싸여 그는 남자들을 떠나 한적한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서늘한 벤치에 반쯤 걸터앉았다가, 이물감을 느끼고 일어나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노트 하나를 꺼냈다. 그가 항상 지니고 다녔던 것으로 파란색 표지에는 흰색 구체 세 개가 허공에 떠 있듯 그려져 있었다. 노트 안쪽에는 두 번째 손가락 길이만 한 얇고 매끈한 검정색 볼펜이 책갈피처럼 꽂혀 있었다. 맨 앞 페이지에는 “나는 무작정 걷기를 좋아한다. 거리의 이름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 쓰여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좀 더 작은 글씨로 ‘프란시스 피카비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때 그의 마음을 대변했을지도 모르는 말이겠지만 이제는 그가 그 출처를 완전히 잊어버린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적어 내려갈 때의 그 느낌만은 순식간에 되살아나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것을 쓴 때는 아주 오래전이었고, 온통 유쾌한 마음뿐이었다. 매우 젊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 젊을 거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 기분은 이제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 사건들에 대한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그때의 기분과 감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은 뜬눈으로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고, 가려던 길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린 상태였다. 가려던 길, 하고 노트에 적으려다 말고 문득 낯익은 기분이 들어 앞부분을 뒤적여 보았다. 바로 몇 페이지 앞에 똑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어서 써보려 했던 내용의 같은 곳에서 문장은 끊겨 있었다. 그는 조금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노트를 덮었다. 어떤 반복이, 수상한 반복이 그를 따라다닌다. 아직도 자고 있는 걸까. 꿈속인 걸까. 그렇다면 어서 깨어나고 싶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 꿈의 파편들을 맞춰 보려 골몰한다. 꿈속의 꿈일지 모르는 것들에 대하여. 애써서 노력하는 것은 아니고, 생각의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이리저리 조각모음을 해보는 정도였다. 그것이 그를 다시 상쾌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라고 생각한다. 한 점의 기억도 없는 것. 오늘 아침에는 책이 너무 잘 읽히는 바람에 약간의 어지럼증조차 느끼지 않았던가. 눈에 바로바로 사로잡히는 글자들을 뇌가 다 처리하지 못하는 정도였다. 현기증, 현란함. 찬란함. 찰랑거리는 의미들, 물결들에 대하여…… 그는 떠오르는 단어들이 아무렇게나 머릿속을 부유하도록 내버려뒀다. 하지만 볼펜을 붙잡고 있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겨우 현기증까지밖에 적어내지 못하고 그 뒤의 말들을 모두 잊어버렸다. 볼펜이 무척 얇아서 쥐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이십삼 년 전에 열린 한 작가의 회고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굿즈 중 하나였는데 눈에 쏙 들어오는 디자인이었지만 여러모로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볼펜대에는 죽은 작가의 이름이 필기체로 비스듬하게 새겨져 있었고, 테두리가 희미해져서 작가의 이름은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다. 작가는 죽고, 전시는 끝나고, 도록은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아카이브에 모셔진다. 이제 그 흔적은 상품으로서 삶의 주변에 남아 있다. 이름. 그는 문득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출입증을 살펴보았다.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경미한 뇌졸중. 각성된 상태의 기면증. 감염병이 잦아들고 찾아왔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면병의 대유행. 인류세의 대단원에 들이닥친 난데없는 멜랑콜리. 지금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 내고 싶다. 그는 단어 몇 개를 입안에서 중얼거려 보다 그만둔다. 나는 아주 예민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 섬세하고 바보 같은. 아주 잘생기고 늠름한 어지럼증. 커다란 휠 기구 안에서 제자리를 전 속력으로 뛰어가는 고양이의 발 같은 기억력. 그는 그날 오후 산책길에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미술관 정원에 있는 작은 호숫가를 배회하면서.
    이십삼 년 동안 꾸는 꿈이라면, 그런 게 단번에 떠오를 린 없겠지.
    아마도 말이야.
    그는 두 손가락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이십삼 년 전에도 똑같은 고양이를 만진 적이 있었던 것 같아 조금 몸서리쳤다. 작은 몸집의 삼색 고양이가 갸르릉 거리며 그의 손에 머리를 비비다가 살짝 고개를 돌려 허공에 멈춰 있는 최사해의 손가락을 가볍게 깨물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어디선가 여자 두 명이 다가와서 고양이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제 고양이가 아닌데요.
    그럼 그냥 잠시만 가만히 계셔 보세요.
    최사해는 아무 포즈도 취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얌전한 반려견이 된 것처럼 반듯한 자세로 카메라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일이 초간 멈춰 서 있었다. 잠시라고 했지만 여자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공들여 고양이 사진을 찍었다. 그는 삼색 고양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또 다른 피사체가 된 것처럼 고양이 옆에 계속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사이에 그가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신을 잃으면서 그는 미술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순식간에 깨우쳐 버리지만 그것을 필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곧바로 그 느낌을 잃어버린다. 그것들은 모두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

 

    하루 만에 마흔여섯이 된 최사해는 몸을 쭈그리고 앉아 한데 뭉쳐 있는 꽃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양귀비는 아니고 더 작은, 이름 모를 꽃들이었다. 팬지꽃. 아마 그럴 것이다.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꽃잎의 부드러운 살결. 그는 꽃의 소멸을 생각한다. 꽃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경사에 의해 다른 꽃으로 교체되었다. 구역별로 나뉘어 단체로 뿌리까지 무자비하게 뽑혀 나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같은 자리에는 그 계절에 만개하는 다른 식물군이 이식되었다. 그런 활동이 매 계절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는 기억한다. 무척 오래전.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물었다. 그때는 그가 열 살하고도 팔 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마흔여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지게 된 첫 번째 아이였다. 마흔여섯이라니, 어린 그에겐 그것이 끔찍한 나이였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기엔 지독히도 많은 나이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그의 아버지였을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던 것도 그는 기억해 냈다.
    아버지. 인생의 반을, 그 이상을 살아버렸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혹은,
    앞으로 남은 삶이 지나간 삶보다 더 짧아졌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아버지?
    네. 맞아요. 죽을 날이 태어난 날보다 더 가까이 있는 상태 말이에요.
    아버지,
    하고 그는 자꾸 부른다.
    상대는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 듣지 못하는 상태였을 수도 있다.
    아예 질문 자체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난 건 무척 오래전이었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깊이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제 그는 아흔두 살이 되었을 것이다. 몸은 아흔두 살이고 정신은 마흔여섯 살인 채로.
    아버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다는 건…… 아무 느낌도 아니군요.
    그는 몸의 무게 중심을 왼발에서 오른발로 옮겼다. 꽃잎들이 그의 그림자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대로 얼마간 고개를 숙인 채 멈춰 있었다. 아주 작은 부분을 오래도록 쳐다보았고, 태양빛이 그의 뒤통수를 통과하지 못하고 땅 위에 까만 영역을 만들고 있는 풍경을, 또 그것을 쳐다보는 자신의 실루엣을 멀리서 다시 들여다보는 것처럼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 다리 저림과 함께 쭈그린 모습이 조금 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쭉 펴고 일어나 고개를 한번 크게 젖혔다가 다시 꽃밭을 내려다보았다. 똑같이 생긴 작은 꽃들이 한데 뭉쳐 피어 있었기 때문에 방금 전까지 마음을 주고 쳐다보았던 하나의 꽃잎이 개중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아볼 길이 없었다. 알아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그를 조금 슬프게 했다.
    꽃잎 찾는 일을 아주 빠르게 단념하고 그는 다시 걸었다. 멀리까지 걸어온 것 같은데 아직도 미술관 안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때 갑자기 잔디밭에 숨어 있던 스프링클러가 일제히 작동하는 바람에 한 시 정각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한 시는 아주 빠르게 다가왔다. 그 무엇보다 빠른 것은 한 시다. 그는 먼 곳을 바라봤다. 한 시보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 일 분이 되기 전에 미술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을. 아니, 그런 것은 과장이고, 겹겹이 회귀하는 개미떼처럼 출입증을 목에 맨 사람들이 줄지어 미술관 안으로 복귀하는 장면을 쳐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되도록이면 가장 천천히 극장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찌 된 일인지 밖으로 나갈 순 없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방향은 열려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확신을 가진다. 오늘의 일정은 내부로의 실험적인 산책. 반항적인 산책. 있어서는 안 되는 시간에 그곳에 있기. 비어 있는 극장, 혼자 울리는 전화벨. 투덜거리는 영사기사, 넘어지는 찻잔. 쓰러짐 깨짐, 혼자 남음. 아무도 제자리에 있지 않음. 영화는 네 시에 시작합니다. 한 시를 맞추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극장은 미술관 입구에서 가까운 쪽에 두는 편이 좋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아마추어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는 천재 건축가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생각한다. 평균값에서 초과되는 그의 재능을 생각한다. 극장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많은 나선형들에 대해 생각한다. 쓸모없는 아름다움과 정오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네 시에 관해서도 생각한다. 천재도 아니다, 그 자는. 그의 오류를 오직 최사해만이 의식하고 있었다. 절친한 친구의 배신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그는 갑자기 깊은 허무감에 빠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온 길이 뒤돌아보는 순간 낭떠러지가 되어 사라지는 영화가 있었다. 그런 이미지들은 언제나 순간적으로만 스칠 뿐. 그의 기억력은 그것들을 붙잡지 못한다.

 

*

 

    그는 다시 깨어난다.
    비슷한 햇빛, 비슷한 습도, 비슷한 건물. 그는 길 위에 서 있다. 보이는 것은 한가한 풍경이다. 다른 날들의 같은 시간 속에서 눈을 뜨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일한 시간대에 촬영된 영상을 앞뒤로 잘라 연속적으로 이어 붙인 타임라인 속에 갇힌 인물처럼.
    그는 힘겹게 어느 한 지점에 도달한다.
    점심.
    어느새 그의 손에는 브라운백이 하나 들려 있었다. 흉측하게 짜부라진 샌드위치를 상상하며 그는 조심스럽게 입구를 열어젖혔다.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쳐다보니 접혀진 구석 한 귀퉁이에 물기가 스며들어 짙은 갈색으로 변한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브라운백 안으로 숨을 불어넣고 코를 넣어 킁킁거렸다. 옅게 음식 냄새가 배어 있는 듯했다.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샌드위치를 먹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찍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 혹은 고양이를 만난 다음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허겁지겁. 기억에서 잊힐 정도로 다급한, 동물적인 필요에 의하여. 아마도 한두 입만으로 샌드위치를 끝장내 버렸을 것이다. 기억의 틈새로 빠져나갈 만큼 단숨에. 그런 일은 놀랍지 않다. 자주 있는 일이다. 샌드위치 하나로는 성이 차지 않는 때가 많다. 그는 주먹보다 작은 크기로 브라운백을 구겨서 대여섯 걸음쯤 떨어져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그것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고, 이상할 정도로 한참이나 후에 작게 ‘툭’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잔디밭에는 여전히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있었다. 최사해는 한동안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중독성 있는 움직임이다. 하려던 생각을 모조리 잊도록 만드는 움직임이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스프링클러는 고장 난 시곗바늘처럼 제자리를 멈칫거리면서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방향을 틀어 사방으로 물을 분사해 나갔다. 물줄기는 나선형을 그리며 힘차게 밖으로 퍼져 나가 주변의 땅을 골고루 적시고 있었다. 미술관을 만든 건축가는 나선형을 좋아한다. 그는 곳곳에서 나선형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도처에 숨어 있었다. 내부에서 외부로 밀어내는 것. 회전하는 것. 입력된 시간이 되면 스프링클러 헤드가 땅 밑에서 일제히 올라온다. 그것들은 한 시가 되면 자동적으로 깨어나 변하지 않을 움직임을 반복한다. 식물들을 위한 자동급식 기계장치. 직원들은 모두 제자리에 돌아가서 일을 시작하십시오.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최사해는 멍하니 물안개를 바라보았다. 영원히 그 상태로 있었던 것처럼.
    그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노트를 꺼내 스프링클러, 라고 휘갈겨 적는다. 그러나 쓰는 동안에 그다음에 올 단어를 잊어버리고 그 옆에 단지 몇 개의 점을 꾹꾹 눌러 찍으며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이어 적기를 포기하고 그는 노트를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갑작스러운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점심시간을 내내 미술관 안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성벽을 따라 돌아와 미술관 정문을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기 전에 최사해는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 직원 출입증을 찾아냈다. 출입증 사진은 몇 년 전 어느 지하철역에서 발견한 포토부스에서 찍은 것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왠지 그 기계가 좋았다. 갑자기 터지는 플래시라이트, 모든 공정을 일 분 만에 끝내버리는 신속하고 퉁명한 일처리 방식, 섬세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싸구려 인화지, 금세 변색되어 디테일이 뭉개져 버리는 피사체 – 그것이 누구든 간에…… 사진 속 얼굴은 새하얀 배경으로부터 오려붙인 듯 분리되어 있었다. 창백하고 누리끼리한 피부는 19세기에서 날아온 흡혈귀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미술관 조직도에도 그 사진이 붙어 있을 것이다. 활짝 웃는 고급스러운 증명사진 사이로 그의 흡혈귀 사진이 음침하게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의심할 바 없이 그중 가장 가난해 보이는 사진이었고, 그 점이 어째서인지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미술관에는 일시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관리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오가는 인물들이 상당수였으므로 사람들은 최사해가 이십삼 년이나 나타나지 않았어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극장이 무엇인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거의 모든 직원들이 대체로 무지하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출입증 사진 아래는 조그맣고 정중한 서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 아주 불안해 보이는 낯익은 글자였다. 다른 형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안정감 있는 모양새였다. 그는 설득된다. 수십 년 동안 운명을 같이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닮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상대가 문자에 불과할지라도…….
    아트리움 아래로 매표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그들을 지나치며 최사해는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화난 얼굴로 서 있던 보안요원이 표정을 풀고 목례하며 알은체를 했다. 최사해도 머리를 숙이는 둥 마는 둥 인사하고 그를 지나쳤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빠르게 그를 스쳐 지났다.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아무하고도 교류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러했다. 그런 것은 기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복적인 인사가 계속됐다. 괜히 화가 났다. 어느 시점에선가는 인사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우악스럽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채 과격한 악수를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성큼성큼 걸어가 길을 막고는.
    제 몰골을 알아보시겠습니까?
    하고 소리친다.
    그러고선 미처 반응을 살피기도 전에 상대로부터 훌쩍 멀어지는 것이다. 단지 상상만 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그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오리라 예상하면서. 머지않아. 아니, 이미 여러 번 그러했을지도.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날에.
    갑자기 나타난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의외의 풍경에 맞닥뜨린 그는 그리운 과거의 한때로 돌아간 듯한 착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 아버지가 여전히 어딘가에서 그가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든지 간에, 어떤 연유든 간에 시간을 놓쳐버린 지금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모든 것이 그때 그대로 온전히 보존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로비에서 가로질러 보이는 넓은 메인 홀에는 아흔 살이 넘은 예술가가 만든 영상작품이 실내를 얼룩덜룩한 빛으로 가득 채우며 루핑 되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의 기억에 의하면 그 작품 – ‘지구’ 또는 ‘Untitled #89’ – 이 처음 설치될 때 아흔 살의 예술가는 생존해 있었고 건강상의 문제로 개인전임에도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지 못했다. 그는 서서히 몸이 마비되어 가는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고통보다는 잠 때문에 이동에 제약을 받았다. 그를 대신하는 충실한 어시스턴트들이 작품을 설치했다. 예술가는 휠체어와 연결된 화상 모니터 앞에 앉아 자기만의 속도로 중얼거리다가 또 잠들었다가 하며 지시를 내렸다. 그가 잠에 들면 어시스턴트들은 간식을 먹거나 각자의 휴대기기를 만지작거리거나 하며 서두르지 않고 작업을 이어 갔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최사해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중앙홀 한가운데에 다다랐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영상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 비스듬히 매달린 네 개의 대형 프로젝터에서 빛이 쏟아져 나와 거대한 사면을 비추고 있었다. 텅 빈 공간은 빛으로 가득하다. 벽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이미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다가 이내 흩어지고 다시 채워졌다. 이제 이곳은 포스트 현대미술관이다. 갓 죽은 것들은 벽면에 매달려 있지 않고 공간을 부유한다. 영상은 중앙홀 사면에 딱 맞춰 제작되어 어떤 빛도 새나가지 않게 효율적으로 매핑 되었다. 어두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네 개의 세로 이미지. 그가 세로로 된 프레임에 적응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잘린 이미지거나, 이상할 정도로 텅 빈 이미지였다. 낯선 것을 싫어하는 마음. 보수적인 마음. 그런 것들로 밀려나는 상황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최사해는 허공을 향해 한 팔을 내밀었다. 손바닥과 손등 위에 빛의 얼룩이 출렁거렸다. 뭔가 어긋나 버렸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암전.

 

*

 

    그는 미술관 카페로 들어간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점심을 먹는 것도 잊을 뻔했다. 예전에는 기념품 판매 숍이었던 곳이 카페로 변해 있었다. 카페의 이름은 ‘바로크’. 바로크?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상호가 입구 벽에 돋을새김 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돋을새김은 그저 눈속임 효과에 불과했을 뿐이다. 카페 안은 예술가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18세기부터 22세기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은 듯 복장이 각양각색이었다. 어딘가 복고적이면서도 병적인 분위기였는데, 그래서 이상한 생기와 활력이 넘쳤다.
    그는 하나 남은 베지테리언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큼직한 브리 치즈와 얇게 슬라이스 된 배. 바게트에는 꿀이 발라져 있다. 만든 후 얼마간 시간이 흐른 모양으로 빵을 열어 보니 꿀이 Z자 모양으로 굳은 채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샌드위치와 커피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내부가 번잡하진 않지만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넓은 다인용 좌석을 띄엄띄엄 차지한 바로크인들을 둘러보다가 순간적으로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여자는 어쩐지 눈에 띄게 놀라며 그의 시선을 피한다. 만약 그녀가 잠복근무 중인 형사라면 다른 직업을 찾는 게 좋을 것이다. 그는 여자 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빈자리를 찾아 카페를 반 바퀴 정도 천천히 돌았다. 후미진 곳에 빈자리가 있었다. 안쪽 벽이 전면거울이었기 때문에 구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급히 몰려온 허기에 약간은 게걸스러운 느낌으로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물었고 동시에 머쓱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시선을 피했던 여자가 몸을 완전히 돌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고, 입을 벌린 바로 그 순간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최사해는 그녀를 애써 모른 체하고 샌드위치를 마저 덥석덥석 먹는다.
    경로이탈.
    어느샌가 곁으로 다가온 여자가 머리를 낮추어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그는 깜짝 놀랐고, 적어도 그런 척은 했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본다. 거대한 조각상 같은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로이탈이라고.
    엄격한 목소리여서 최사해는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이상하게도 여자 앞에서는 수동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 같았다. 얌전하게, 그녀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기분. 선선히 투항해야 신상에 이로울 거라는 느낌. 무력함과 긴장. 그는 서서히 마비된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상한 안정감이 뒤따른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신은 그녀의 일부였다는 느낌.
    그녀를 끝까지 마주 볼 수 없어 그는 눈을 내리깔고 만다. 여자는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 그의 측면 얼굴을 한동안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거짓말을 들킨 아이처럼 조마조마해졌다. 주머니에 훔친 돈 같은 게 있다면 당장 꺼내 놓고 용서를 빌고 싶었었다. 무릎을 꿇고 그녀의 양손에 얼굴을 파묻은 다음 자신의 기나긴 죄를 고백하고픈 심정. 그것 역시 아주 오래된 느낌 같았다. 뒤늦게 떠올리는 예감.
    왜 자꾸 오류가 나지?
    여자가 중얼거렸고,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네.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선 다짜고짜 그의 앞이마를 만지작거린다. 그는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앞이마 부분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처럼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매핑인가? 타임 테이블?
    여자는 알 수 없는 손짓을 계속한다. 리드미컬한 움직임…… 드디어 조작을 마치고 ‘문’이 닫히자, 동시에 딸깍 소리가 나서 그는 흠칫한다.
    영화는 언제 시작하죠?
    매일 네 시에.
    기계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그가 가장 빠르게, 무의식적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사고 과정 없이 신체반응이 앞서는 종류의 정보.
    그렇죠.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다정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관리자가 갖기엔 너무 다정한…….
    영화를 보기엔 좀 이른 시간이에요. 안 그래요?
    그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왠지 그녀의 말이 그를 아프게 했다. 그녀는 그를 슬프게 만들 수 있다. 그는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여자가 이어서 말한다.
    뒤돌아보지 말아요. 알겠죠? 그냥 가는 거예요. 앞으로 계속 나아가요.

 

*

 

    그녀와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는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반복되는 깨어남으로 인해 그는 점차 지쳐 간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Y동 전시장 입구의 중층 계단 아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니,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녹아내릴 것처럼 소파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잠들었다 깨어났다고 어렴풋이 느꼈지만 그사이에 더 나이가 들어버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마흔 여섯이었고, 또 스물세 살인 것처럼 느껴졌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이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없어짐에 대해서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생생했던 꿈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여자에 대한 기억도 어느새 휘발되어 희미해졌다. 큰 지진 후 일어나는 여진처럼 깊은 잠 뒤에는 작은 잠들이 이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하는 동안 밝은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반대쪽 소파 끄트머리에서 고개를 돌리고 최사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최사해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남자는 깜짝 놀란 듯 자신의 휴대기기로 급히 시선을 옮겼다. 영상을 찍은 걸까. 자는 모습, 자는 남자. 그것은 항상 매혹적이다. 그것이 자기 자신일 때조차. 소파는 무척 길었고,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가 되었다. 그것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얼핏 당황한 것처럼 보였던 남자는 다시금 여유를 되찾은 듯 그에게 윙크를 하고 주머니에 휴대기기를 넣고 일어섰다. 무슨 의미지? 최사해는 허리를 곧추세워 앉았다. 어째서 극장까지 가는 길이 이토록 먼 것인지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남자가 그의 관심을 끈다.
    남자는 어느 틈엔가 전시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걸이 소리가 사방에 울릴 정도로 전시장 복도에는 사람이 없었다. 설핏 불길한 예감이 들어 최사해는 뒷주머니를 확인했다. 파란 노트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안에 겹쳐 둔 볼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모든 주머니를 뒤졌다. 어느 틈엔가 여름용 재킷을 입고 있었다. 자는 동안, 노트와 볼펜이 증발했고 여름용 재킷이 생겼다. 그는 죽은 듯 자는 버릇이 있다. 누군가가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그의 몸을 이리저리 뒤집었다가 팔을 들었다가 하는 장면을 그려 보았다. 그 누군가는 땅바닥에 떨어진 노트를 발견하고 잠시 훑어본 뒤 그것을 기념품 삼아 챙기기로 한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허탈한 심정으로 재킷을 공중에 털어 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잃어버린 개를 찾듯 최사해는 다급하게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갔다. 금방이었는데도 남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전시장은 넓고 미로 같아서 애초에 방향이 어긋나 버린 걸지도 모른다. 정신이 흐릿할 때 남자를 보았기 때문에 생김새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얼굴에서 표정만 떼어낸 것 같은 이미지가 허공에 남아 있었다. 흐려지는 기억을 붙잡고 최사해는 전시장을 헤매고 다녔다. 그가 노트를 가져갔을 것이다. 남자는 수집가이다. 그는 피카비아일까. 그럴지도. 그는 그저 자신의 문장을 수거해 간 것일 수도 있다. 화를 내는 대신 잠자코 잠든 최사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는 노트를 안주머니에 쏙 넣고 자리를 떠났다. 사진은 또 다른 기념품. 거기엔 그의 영혼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소량 담겨져 있을 것이다. 남자는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다. 훔친 쪽은 최사해다. 그렇다면 그는 남자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반성문을 쓰듯 그의 눈앞에서 노트에 적힌 문장을 박박 지우고 돌아설 생각이었다. 아니, 돌아서기 전 노트를 말없이 가져간 것에 대해서 한 번쯤은 따져야 할까, 따지기보다는 대화를 할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사과할 기회를 줘야 할 것이다. 누그러진 남자는 정중하게 사과한다. 갑자기 무릎을 꿇을지도 모른다. 무릎이라니. 무릎 꿇는 것은 꽃을 볼 때나 하는 일이다. 어쩌면 어처구니없게도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쉽게 사랑에 빠져버리곤 했다. 그는 가능성에 끌리는 사람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하며 그는 전시장을 헤맸다. 그와 그의 가능성. 하얀 벽으로 나뉜 공간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끝없이. 그런 것은 참 과장이다, 생각하면서도 그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전시장은 층고가 높아서, 그는 바람 많은 날 땅바닥에 나뒹구는 작고 메마른 꽃잎 한 장처럼 보였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금세 여러 꽃들 사이로 묻혀버리는 그런 꽃. 꽃보다는 풀잎에 가까운. 전시장 안의 사람들은 천천히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다. 간혹 플래시를 터트리는 사람들이 주의를 받았다. 두 번 터트리면 퇴장입니다. 보안요원이 갑자기 나타나 무표정한 얼굴로 제지했다. 최사해가 전시장을 가로지르며 다니자 그를 발견한 직원들이 인사를 시작한다. 자동인형들. 남자를 찾는 데 정신이 팔린 그가 제대로 답을 하지 않고 지나치니, 한 명이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왜 자신의 친절을 무시하느냐며 화를 냈다. 화를 낼 수 있는 자동인형들. 가능태들. 그러나 그 직원보다는 최사해가 더 힘이 셌다. 그는 인사의 도미노를 쓰러뜨리며 전시장 안으로, 더 안으로 침투했다. 아무래도 인사 같은 것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침투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직원들, 그리고 직원들, 어디 숨어 있었는지 도통 모르겠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북적거렸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에게 예의바른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훌쩍 사라지는 인간들. 왜 모든 전시장에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것인가? 작은 로봇 헤드처럼 천장에 고정된 프로젝터에서 푸른색 빔이 나오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화이트 큐브는 공중으로부터 촘촘히 발산되는 빛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뛰어도 이 어지러운 파란 물결에서 벗어날 순 없다.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너무나도 오래. 그는 문득 제자리에 멈춰 섰다. 집중할 것. 그러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는 꿈속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깨어 있는 사이 혼자서, 여전히 꿈속에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깨워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여자를 만날 필요가 있다. 여자는 비밀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뒤를 돌아보면 안 되는지, 뒤를 돌아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혹시 그것은 잠에서 깨는 주문이 아닐는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그는 지쳤다. 너무 지쳤다. 또다시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음을 의식할 수 있었다. 앞선 의식들이 잔상처럼 그의 뇌에 어슴푸레 남았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다리. 낮이지만 단지 환한 밤일지도 모른다. 깨어남이 이토록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머물러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는. 영화는? 어서 극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영화는 시작할 것이다. 아무튼 곧. 시작해야만 한다. 극장에 딸린 사무실의 낡고 작은 책상에서 깨알 같은 글씨를 읽고 있는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겨우 오늘 오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노트를 가져간 남자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노트 같은 것도. 파란색의. 일기 같은 것. 거기에는 그가 끄적거리던 단어들이 낱낱이 흩어져 있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들켜버리길 바라고 쓴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극장은 멀다. 극장이 있는 큐브로 가려면 아직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는 이제야 마흔여섯 살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흔여섯이 되지 않았다면 마흔여섯 살이 되거나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토록 자주 생각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통로가 되는 전시장 안에는 여러 개의 거대한 원기둥 주변을 휘감듯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도 그들 사이에 섞여 천천히 기둥열의 반대쪽을 향해 걸어 나갔다. 벽에 붙어 있는 월텍스트를 읽어 보려 했지만 글자가 조명에 반사되어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원기둥 내부에는 1:50의 비율로 축소된 건축 모형이 몇 개의 단위로 묶여 전시되고 있었다. 미술관의 다른 가능성들. 실현되지 못한 조합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응축된 원자로처럼 허공에 떠서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조용히 모형을 응시하다가 가끔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들이 서 있을지도 모르는 공간이 어디쯤인지 찾아내고 기뻐했다. 원기둥이 끝나는 지점에는 발코니처럼 허공으로 튀어나간 공간이 있었다. 그 앞으로는 심연과 같은 어둠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나가 보려다가 겁이 나 걸음을 멈추었다. 동굴처럼 보였던 그곳은 다름 아닌 그의 목적지, 극장이었다. 그것은 모형이라기엔 지나치게 큰 것이었다. 텅 빈 스크린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래에서부터 차가운 공기가 밀려왔다. 옆에 서 있던 사람 하나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영화가 끝났나 보네요.
    그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온다.
    그럴 리가요.
    최사해는 자기도 모르게 짧게 대답한 후 잠시 침묵했다가 건조하게 덧붙였다.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그는 공간의 모습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극장 안에는 한 사람이 무언가를 찾는 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눈을 가늘게 떠보았지만 사람처럼 보이던 형상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극장을 내려다보던 두세 명의 사람들은 속으로 일제히 ‘유령’이라는 글자를 떠올렸다가, 떠올리기를 그만둔다.
    최사해는 이십삼 년간의 잠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는 중이다. 잠이 그의 기력을 모두 빼앗아갔다. 그는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퀭한 얼굴로 가난하게 서 있었다. ‘가난하게 서 있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 기뻐하지만 노트를 잃어버렸다는 자각에 슬퍼한다.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최사해는 복도에 난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있다. 출입제한구역으로 연결되는 직원용 문을 차례차례 통과하며 안으로, 안으로, 아주 느리게, 하지만 빨려 들어가듯 극장 쪽으로 미끄러지듯 걸어간다. 이 길은 관람객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길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참에서 비로소 그는 그 길 위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가 통과하고 있는 이 길은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 자라지 말았어야 할 이끼들이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미화 직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은퇴한 영사기사가 끝끝내 발견해 내지 못한 방향의 길이기도 하다. 시간을 거스르는 사람만이 찾아낼 수 있는 통로. 그는 이제 너무나도 쉽게 극장 앞에 도달한다.

 

*

 

    어느 날 아침.
    지하까지 이어지는 산뜻한 공기. 그는 약간의 여유를 부리며 ‘사무실’에 들어가 물을 끓이고 커피 한 잔을 마실 것이다. 커피를 내려 마신 다음엔 영사실로 들어가 아직 명이 다하지 않은 각종 기계들을 차례로 점검할 예정이다. 남은 오전 시간에는 꼼짝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쓰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빳빳한 문서철에는 필름부터 데이터 포맷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그가 다뤄 온 온갖 영화들에 관한 사적인 일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가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몸을 기대고 있는 이 작은 나무 책상에는 이제 막 잔잔한 물결처럼 흉터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거의 완벽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게 낡아버릴 책상이었다. 또한 책상을 둘러싼 이 한 평의 공간은 늙은 영사기사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상을 들여다보며 추억에 빠지는 일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주 어릴 때부터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너무 자주 부정당했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퇴화되었다고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그는 종종 마주치곤 한다. 환영이나 환각을.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낯익은 기억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사물들에게서. 낯선 사람들에게서. 부채처럼 접혀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손에 잡힐 듯 그것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는 걷는다. 느긋하게 미술관 여기저기를 거닌다. 시간은 충분하다. 아마 오늘은 만날 수 있을 듯하다. 호숫가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그를 맞이한다. 그는 붙임성 좋은 고양이에게 간식을 준다. 저쪽 어딘가에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형제 고양이가 숨어 있을 것이다. 아직 눈을 다치기 전이기 때문에 그는 많은 것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숨은 고양이 몫의 간식을 한쪽에 덜어 둔다.
    미술관 밖으로 연결되는 작은 골목을 향해 그는 천천히 걸어간다. 골목은 도시로 연결된다. 앞으로 한두 시간 정도는 외부 세계를 탐색한 후 아주 효율적이고 익숙한 방식으로 극장에 도달하여 출입문을 열 것이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후 네 시에는 그날의 영화가 상영된다. 관객들이 오기 전까지 그는 자리에 앉아 대기하며 곰곰이 생각할 것이다. 망각과 망상 사이에 존재하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무섭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해서.

 

    오늘의 영화 – 한 줄 줄거리 요약.
    고고학 유적지만큼이나 오래된 묘지. 그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관들이 잠자고 있다.

 

    (커튼)
    이끼가 낀 석회석 묘비 사이로 한 사람이 보인다. 익숙한 얼굴. 예전에 그녀를 잠시 만난 적 있다. 그를 닮은 여자. 화면 속은 평화롭다. 꽃과 그림자, 산책자들. 조용히 하십시오. 안내표지판. 죽은 자들을 방해하지 마시오. CEMETERY EXIT 1KM. 묘지는 네 시에 폐쇄됨. 그녀는 한참을 걷는다. 길을 찾는 것인지, 길을 잃은 것인지, 그저 산책하는 것인지. 표정만으론 알 수 없다. 공원은 넓고 태양은 힘이 세다. 여자가 조금 속도를 내는 바람에 꽃잎들이 떨어져 바닥으로 흩어진다. 소리 없이. 나뭇잎들이 날아다닌다. 나뭇잎들은 상승한다. 묘지 곳곳에는 그녀를 곁눈질하는 조각상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숨을 죽이고. 그중 몇몇은 눈물을 흘린다. 죽은 자들이 조각상에 침입한다.
    영화가 끝나면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항상 네 시에 시작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 속에는 영원히 바깥을 향해 걷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얼굴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벽에 기대선 누군가가 몇 시입니까? 하고 물었다. 몇, 시. 입니까? 그는 입 모양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할 필요를 느낀 듯 자세를 고치고 또박또박 재차 발음해 준다. 그는 한참 동안 시간을 느끼지 못했다. 누구에게서도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중간부터 시작한 영화를 보듯 어중간한 곳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흐느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혹은 그런 모습을 언뜻 상상한다. 이어서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는 몇 가지 단어들이 파편적으로 그의 머릿속에 퍼졌다가 흩어진다. 밤과 끝, 고요와 정적, 몰락과 붕괴, 환영과 환각, 무너진, 그리고 펼쳐진 극장…….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었다. 그는 간신히 어떤 패턴을 찾아내고야 만다. 접을 수 있고, 휘어질 수 있고, 통과할 수도 있는. 기억의 물결들. 그것은 일종의 움직임이면서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빠르게 형질을 달리하면서 동시에 그 무게를 일정히 유지하는 어떤 물리적인 현상과도 같았다.

 

    그날, 그는 졸면서 꿈을 꾸었다. 극장에 아무도 오지 않은 첫 번째 날이었다. 노트가 하나 필요할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꿈을 기록할 만한 노트가. 그는 거기에 ‘최의 사례’라는 이름을 붙여 줄 것이다.

 

 

   *  이십삼 년간의 잠에서 깨어난 스물셋의 몽유병자 모티브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로베르트 비네 감독, 1920)에 나오는 인물 ‘세자르 Cesare’에게서 얻은 것이다. 키틀러는 『축음기, 영화, 타자기』(프리드리히 키틀러, 유현주/김남시 옮김,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음과 같이 그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있다. “영화 제목에 나오는 주인공은 (…) 자신의 도구인 몽유병 환자와 함께 등장한다. 이 몽유병자는 칼리가리에게 돈을 지불한 사람들의 미래를 예견해 준다. (…) 그들의 보는 행위는 목격될 것이고, 그들의 최면 상태는 원격 조정될 것이다.”
   *  『페스트』(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의 문장은 〈모임 Gathering〉(박찬경 개인전, 2019.10.26.~2020.2.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도록 서문(「둘, 모임」, 임대근/성용희)에 인용된 것을 재인용하였다.
   *  소설 속 영화 제목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전진한다’는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조르주 페렉, 김호영 옮김, 문학동네) 부록에 실린 작가 연보에서 차용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1 자서전적 글인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전진한다 J’avance masque』를 집필했으나 (…) 출간을 거절당함. 이 원고는 이후 (…) 다시 재구성되나 분실됨.”)
   *  “영화는 접을 수 있고, 휘어질 수 있고, 통과할 수도 있는 부드러운 스크린이다.” 〈부드러운 스크린 Soft Screen〉(전하영 개인전, 2015.6.16~7.25, 신한갤러리 광화문) 전시 서문 작가의 말을 인용함.

 

 

 

 

 

 

 

 

 

 

전하영
작가소개 / 전하영

2019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021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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