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섭을 만나다 외 1편

[신작시]

 

 

중섭을 만나다

 

 

손세실리아

 

 

 

    이중섭을 만났다
    흰자위 뒤집히고 상기된 사람 얼굴에
    주요 부위를 거친 붓으로 표시한
    황소 몸뚱이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생전엔 괄시하던 자들이 반세기도 지나기도 전 돌변해 현대미술사의 걸작 운운해 가며 살점과 뼈는 물론이고 터럭 한 가닥까지 바르고 잘라 팔아먹고 그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지 숫제 대놓고 가난과 이별과 행려병자로 처리될 뻔한 최후까지 호당 값에 얹어 부풀리자 골이 난 거다 돌진해 들이받고 싶은 거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뽑힌 흰 소만 해도 수십억을 호가하고 하다못해 곁다리로 등장하는 까마귀와 게와 복숭아도 수천일 텐데 정작 중섭 수중엔 그때나 지금이나 화구와 아내의 폐결핵약과 아이에게 약속한 세발자전거를 살 단돈 몇 만 원 현해탄을 건널 여비 기십만 원이 없으니 왜 아니겠나

 

    화가의 비운까지 환대하는
    미친 세상을 향해 빅엿을 날린
    소듕섭 *에서
    중섭이 소 울음 토하며 달려 나왔다

   *  홍성담의 그림 제목

 

 

 

 

 

 

 

 

 

 

누나라는 말

 

 

 

 

    밥 한번 먹잘 때마다 미적거렸더니
    아예 예약 일시를 못박고 나선
    후배의 메시지에 두말 않고 나가
    늙은 조리장의 농익은 손맛과
    끝 모를 정담을 향유 중인데
    반으로 접힌 봉투를 불쑥 내민다
    역병 와중이라지만
    모친의 빈소에 못 간 게 내내 걸렸다며
    누나, 로 시작해
    고통도 애도도 시와 함께하길 바란다는
    당부 편지와 신권이 들어 있다
    용돈은 더 늙으면 받겠다며 물리치자
    시선을 창밖으로 향하더니
    누나, 그때는 그때고요 눈이 오네요
    올해는 풍년일 거 같아요 누나도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아도
    상심할 이 없어진 고아에게
    자꾸만 누나, 누나, 하고 불러
    오래 울지도 크게 아프지도 말라
    단속하고 다짐시키는
    전생의 육친과 마주한 날
    대설주의보가 발효됐다 그래그래
    어거리풍년 들겠다 아우도

 

 

 

 

 

 

 

 

 

 

손세실리아
작가소개 / 손세실리아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기차를 놓치다』, 『꿈결에 시를 베다』,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

 

   《문장웹진 2021년 05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