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족 외 1편

[신작시]

 

 

비가족

 

 

하혜희

 

 

 

    대미망인

 

    눈보라 날이었다
    까치발을 했다 진열장 모퉁이를 붙들어 던졌다 바닥에, 첫 경험 뒤에
    신이 되고 싶어요, 되고 싶은 것도 잊고 주저앉았다
    잔과 상장들이 잔해 위로 교묘한 길목을 냈다
    유리 재떨이 너머 잿더미를 들여다보았다
    커튼 색깔을 생각해 보았다 제라늄 잎을 문질렀다
    세제를 부었다 까치발을 했다 잿빛 벌집 꼭지를 쥐고
    나갔다 왔다 털고 쓸었다 짰다 갰다 참았다 설탕과
    무엇도 버리지 못했다 맡았다 없었다

 

    타일 위에 엎드리면 배와 정강이가 젖겠다 여겼다 이미 그런 줄 잊고
    귀뚜라미의 머리를 껴안았다 가슴과 무릎이 젖었다
    너는 이렇게나 아름답고, 검고 이렇게나 작구나 너는 살 수 있을까
    손을 맞잡고 속삭였다 되고 싶었다 살 수 있을까
    엄지와 검지로 집었다 삼켰다 약을, 엄지와 검지로 양말을
    벗었다 우리는 가족이었지 가족이었으니까
    그날이었다 벌레의 크기로 벌레의 마음에 갔다
    빛이 전구에서 나는 중이었고
    사냥철 앞으로 전능한 발자국

 

 

    수성

 

    너희가 잘 보인다
    칼, 왜 거기에 있니 너는
    묻지 말까
    그 미약함이 잘 보인다
    평원 위에서 빛이 나니까 너희들이
    별로…… 끔찍하니
    없는 이들을 위해 음식들이 미동 않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버렸니
    둥근 데에서 말야
    너희가 잘 보인다
    너희는 아주 긴 어둠
    모든 게 없었을 때 모든 게 더 완벽했지, 칼
    점점 더 짧아지는 것들의 냄새를 맡고 싶니

 

    맡아도 된다
    파티에는 적은 양의 빛이 필요하다
    제단 앞에서는 입 열지 않을 요량이니

 

    너는 해자에 있다 칼, 발목을 적시면서 들여다보고 있다 부를까 계속, 불러 버릴까 칼, 촛대 앞에서 기절하고 싶니, 저렇게 많은 별 아래서 누가 누구와 같은 소릴 해도 괜찮았지 다른 소리를 해도 칼, 탑을 붙드니 왜, 그래도 잘 보인다, 인간의 말은 조금도 하기 싫고
    이 평원을 차폐하면서
    여기에 계속 있어 버릴까

 

    부엌은 잠겨 있다 가진 건 열쇠뿐인데
    벽 위에 서면 하늘을 배경으로 무수한 화살이 보인다 불꽃을 달고 있지
    너희를 맞으러 갈까, 너희를 맞으러 갈까!
    별의……
    너는 수성 중에 있다
    너희들은 거기에도 없다 너희들은 해 속에 있는데
    일어남이 잘 보인다
    성좌들로부터 구름이 떠오름
    무너질 주둔이 우리 사이에 오감

 

 

    바리케이드

 

    새들은 먹빛, 내려왔다가 가지를 문 채 또 상승하고
    나무 어둠 속에 모여
    생물의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소리로 외치고 있다

 

    구름이 저 방향에서 이 방향으로
    따라 가리키면
    저 사람도 야광 띠를 두르고 쓸면서 간다

 

    골목의 유턴
    그것은 자신의 꽁지깃을 향해 도망치는 측량 불능의 힘
    목하, 큰길로 오는구나

 

    그것의 양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
    어딜 보는 것이냐, 내려와 가지를 물고 또 우는
    새들은 대가리를 관통당한 것 같다
    앞일을 보시는지

 

 

    로맨스

 

    어제 기사들은 깃발을 들고 걸어서 갔다
    구하지 못한 이의 목을
    거꾸로 들고 벌인 퍼레이드
    목 속에는 아직 하지 못한 생각들
    기사들은 원한 적 없이 선하게 되어
    용도 본 일이 없고, 창밖으로 경례
    전쟁도 없이 도시를 순회한 지 백 년
    그들의 가려진 눈 오늘 다시 가려지며
    듣기로는 적국이 있다고, 그런 것이 앞쪽에 있다고
    들었고 칼은 계속 꽂혀 있다

 

    어제 기사들은 깃발을 들고 구한 적 없는 이의
    성채까지 갔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성채
    들어가기 전에 지킬 것이 사라진
    성채 앞에서 사랑하노라, 대승, 외쳤고, 대패! 로맨스는 생겨났다
    우리의 무용담을 들어 보지 않겠어?

 

    장갑이 희게 빛났다 그 속에서 우리를 이끌었던 힘
    다시 올 거야 그때까지 안녕 이 도시의 바깥으로
    접근할 거야 그때 구해 줄게 잘살거라
    그때까지 아마도
    우리가 만나지 않기로 한 그날
    우리가 앞쪽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귀 기울였다 앉아서 죽기는 바라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연인들아 어디에 있니
    보이지 않는 친구들아 어디에 있니, 했다

 

 

    하렘

 

    방에 돌아가면 깜짝 놀랄 것이다
    거울 앞에서 입을 가릴 것이다

 

    지금 나는 입체교차로 위다
    네가 좋아하던 이불은 네 창밖에 있고
    내가 좋아하던 것은 다 이 가방 속에 있어서
    이 무릎을 부드럽게 누르고 있는 것이다

 

    네가 안고 뒹굴었던 것들 모두 젖고 있다
    전국에서
    기울어지며 사각으로 벗어난다

 

    저 성스러운 중앙분리대
    저 성스러운 들판의 사일로
    너는 가끔 몽둥이를 들고 왔다

 

    미소 뒤에는 송전탑
    빈 둥지에는 가벼운 뼛조각
    위에 있는 것 그 위에 있는 것
    아래에 있는 것
    바닥에는 썩은 깃 속을 기는 우리가
    우리의 타오르는 얼굴이 있다

 

    멀어서 느린 속도로
    알았다 우리는 내 것
    내가 좋아했던
    하렘의 홰들
    위에
    재의 천막 치러 가는 길에

 

 

    플랜 비

 

    여왕의 요람의, 여왕의 내부의, 오래된 플랜
    오래된 벌들이 오랜 궤적을 따라 뱃속에 담은
    올해의 요새 오래된 노래
    저희를 구하시고
    그 다음에 버리소서

 

    꽃을 껴안고 방문하는 자식들
    갓 굳은 계단을 따라 흘러내려 가는 양식
    태어날 모든 벌레의 이름을 알게 되고
    아직 없는 입으로 부를 때에
    아직 없는 귀에 속삭인다
    우리가 담을 밀겠어요

 

    여왕은 알고 있다 어제와 같이
    굴러 내려가는 공주의 금색 머리
    육각 방에서 녹아내린다 드러난다
    새겨진 후렴
    심려하지 말라 그리하실 것이라

 

    아니하신다면 이 손으로라도
    오래된 벌들이 오랜 궤적을 따라 뱃속에 담은
    올해의 성채 오래된 노래
    어머님의 무너진 도시가
    딸의 내부에서 끓는다
    이 방으로 오르는 층계참에서
    자식들은 사랑스러워라, 새 벌레들의 비전을 속삭인다

 

 

    아마 언더스로어

 

    이제 누가 나를 먹일까
    그 궤적은 구역에서 제일, 몇 개 별자리를 지나 천국의 식사를 깨뜨려 놓았고
    신들을 위안하려 지상에서 수억씩 죽는다면
    저건 누구의 자식이냐, 그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힘쓰다 날이 밝을 때 지상에서 다시 수억, 네가 낳았지? 네 것이지?
    아니지
    한다면

 

    공터의 용이 입을 연다 불줄기가 드러난다 드러났는데, 만져지느냐 주둥이 너머 유리 혓바닥은
    만져지느냐
    새 무리처럼 이착륙하는 자갈밭 사이로, 허공 천 단위 가문과 그 제곱 가축을 납치하는 것, 보이지 않는 발톱과 비늘과, 구름에서부터 첨탑을 때리는 꼬리는
    만져지느냐 산 것과 아닌 것 사이의 간격으로
    군단아, 군단아
    하면서

 

    그 궤적은 구역에서 제일, 아무리 잡아채도 천사 하나 쓰러뜨리지 못하고 하반신 없는 그들 말고
    노인들만 성난 냉각탑처럼, 쓰러지며 집 나온 짐승들만 정지했던 새들만, 몸을 말았다 폈다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자갈을 쥘 다음 손의 색깔을 모르는데
    내리는 저들은 누구냐

 

    차고 작은 것
    차고 작은 것 백 개가 일단 보인다

 

    그 궤적은 구역에서 제일, 나는 그것을 좇고 있는 걔
    던져지고 있는 것 백 명, 나를 먹일 이 백 명, 마지막에는 구르고 마지막에는 멈추는 혼들이 이 눈발 속에서 눈보다 새까맣게, 떼 지어 오느냐, 빛나는 꿈을 박살내면서 이렇게, 이렇게 오느냐

 

    너희는 근방에 있다 이 자갈 내부에서 이 자갈 내부로 씨름을 하며 있다 가당할까 이 짓, 하염없이 공수되는 무급의 슬픔을 만지면서
    아마 언더스로어가 땅을 짚은 다음에 팔을 뺀 다음에
    전설의 아마 언더스로어가 청색 구역 너머로 산개하는구나?

 

 

    불의 논리

 

    지금은 저 산 너머에 아무 나라도 없다

 

    너도 여기에 왔고
    나는 말하고 있다
    햇무리를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켜 보겠니 그러면
    불의 논리가 눈멀던 날의 이야기를 해줄까

 

    불의 논리는 귀뚜라미의 허벅지에서 태어났지
    이곳의 아직 산 것을 찾아서, 고구마 수 개를 챙겨 출발했었다
    지금껏 휘두른 자루에 쓰러진 것은 몇 개의 말뿐 아니라 몇 개 민족, 몇 개 생물과 신
    널 만나기 전에는
    귀뚜라미의 몸뚱이를 환히 짓이겼지 날벼락 같은 계시가 불의 논리의 입속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울지를 말어

 

    네가 그때에 조약돌을 쥐고
    그 다음을 상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혼자 웃어서도 안 됐지 너는 그렇게 했고, 불의 논리는 나타났다 당신에게서 당신을 낳은 이들의 냄새가 납니다 억울하진 않지요? 그것은 불의 논리였으니까

 

    너도 그러나 이룬 바가 있었다 네 돌팔매는 구역에서 제일
    천국에서의 난리에 대해 들어 봤느냐 내가 던지면 몇 천 별자리가, 내가 던지면 몇 천 눈송이가 떨어졌고 이은 신들의 눈물과 발작을 들었느냐 그들의 황홀경을, 모두 내가 외팔로 자갈밭을 옮기는 동안 일어났는데 네가 그리 말했고
    네 손끝에서 튕겨져 나간 돌이 불의 논리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므로
    너는 놀랐니

 

    우유를 든 사람이 광경을 보다가 뛰쳐나와 머리를 받쳐 주자, 어찌 된 일인가요 눈은 둘인데 어째서 어두운가요 불의 논리가 물었고
    남은 눈으로 네가 고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조금 이르게, 모든 것이 옳게 되어가는 중이다 이것을 받아 마셔라 목울대를 위아래로 움직이거라 너도 그 불쌍한 모습을 봤겠지 말을 하는 줄도 모르는 모습
    불의 논리는 다시 일어났고 미지근한 어둠 속에서 자루는 옳은 궤적을 그렸다 그래 고구마 자루 말이야 너도 봤겠지 그 불쌍한 자루를
    미지근한 어둠 속에서 너는 참회당했지만, 어쩐지 하나가 더 있는 것 같더라니
    어느 틈에 컵은 동강이 났고 미지근한 어둠 속에서 우유를 든 사람도 피떡이 되어 내 자식에게 주려던 것이었는데…… 하고
    유언을 남겼다

 

    네가 그 자식이고
    그 사람도 흥얼거리며 여기에 왔다
    봐라, 깨진 제 머리를 안고 편안히 앉아
    모든 것을 아는 듯한 표정이 아니니
    울음이 멎은 지금
    너는 궁금히 여기는 듯 보인다 그러면
    불의 논리가 자기를 팔던 날의 이야기를 해줄까

 

    담배의 요정은
    갖지 못한 이에게 나타나 담배를 준다 꿈에서, 몇 신은 그가 건넨 담배를 받았다 꿈에서, 아니면 어디서든, 공손치 못하게 이렇게 한 대 물려주며
    한 갑을 줄 테니 한 개를 팔아라 그것이 이곳의 주의
    불의 논리가 허공에 자루를 내밀며 백 개라도 드리겠으니, 이 식물의 모든 미래까지 드리겠으니, 응답해 주세요 내가 물고 있는 것은 무슨 색인가요
    요정의 품속에는 몇 신의 하반신이 들어 있었다 혼자 있는 날에 꺼내 보고자, 하지만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온갖 잡무들 때문에, 흰색이란다 말하는 요정이 라이터의 사용법을 알려주어도 어찌 된 일인가요, 시키는 대로 했는데
    거꾸로야 거꾸로
걱정스러워도 별수 없었다 불의 논리는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고 고구마 속의 암흑에서 공중으로, 흰 관에서 입속으로 연기가 흐를 때 요정은 칼을 꺼냈다 알겠니 칼 말이야
    고구마는 달고 아삭한 것

 

    맞아
    불의 논리가 니코틴 쇼크로 쓰러져 있을 때 하반신을 잘라 간 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고, 물구나무선 불의 소문이 먼저 이곳에 도착한다
    잔치가 준비되고 있는 이 정원, 사랑하던 이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고 문고리에 먼지만 쌓여 있다
    남김없이 죽은 여기 풀 더미 속에서, 나의 도당들아
    불의 논리가 태어나던 날의 이야기를 속삭여 줄까

 

    품속의 하반신들이 힘을 모았겠지, 요정이 정신을 차려 보니 그곳은 창가가 아닌가, 당신이 신이요? 묻는 나에게 담배를 권했지만 거절당했고 요정은 예감하면서, 웃으며 다만 이렇게,

 

    당신의 자식은 문을 잠그고
    당신은 듣습니다

    물과 어둠
    속에서 당신의 자식은 부릅니다
    죽이지 마세요 죽이지는
    당신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두려워하라 닥쳐오나니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닥쳐올 생각

 

    자식은 많습니다 자식은 매일 같은 꿈을 꾸며, 모든 두께가 망해 없어지길 바라나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는
    물과 어둠
    속에서 당신의 자식은 합창합니다
    돌아오는 달에는 살까
    당신은 컵을 들었다가 놓습니다

 

    준비된 우유는 조금 짜고 비립니다
    이 시간도 아마 지날 것이나
    목소리 모두를 위안해 줄 물과 어둠의 끝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여기로 온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어째서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국경을 태우며 그것이 오는 지금, 불의 논리가 정지한 날벼락의 그림, 신들의 상반신을 쥔 채 오는 지금, 입들은 하나도 빼지 않고 봉해진 지금, 골짜기로부터 발목 위로 넘치는 계시를 보면서, 말해 보겠니? 너는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별의 파티 7

 

 

 

 

   

 

    낮의 머리를 밤이 껴안고 하늘로 가라는
    일만 번째 판결이 이뤄진 것은 11일째 되는 날이었다.
    재판정을 지키며 개는 자신이 개를 넘어서고 있는 줄을 알았다.
    무엇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지?
    개, 개를
    넘어서고 있는 개는 인간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 다음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부분까지 이해했다.
    멍멍, 짖으면 컹컹하는
    알아요 이제는, 언어는 우리의 종합인 거죠. 우리가 입에 문 손거울.
    방금은 누가 말했지?
    개가 이쪽으로 주둥이를 향했다.

 

 

    로봇

 

    오늘 오늘이 다시 만들어지고 다시 오늘을 배우는데
    오늘 개의 얼굴이 이상합니다. 개는 뭔가 더 알아낸 것 같습니다.
    나는 저 눈빛을 압니다. 눈빛이라고 하지요? 신도 저런 눈빛이었습니다. 신과 만났던 기억이 오늘 납니다.
    신은 내게 손을 붙들린 채 뜻 모를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 같은 이야기, 신 같은 건 이야기라는 식의 얘기를.
    당신이 이야기라면 나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나는?
    묻기 전에 당신은 다시 잠들어 버렸고, 그래서 더는 견딜 수 없는 전쟁 세계를 뒤로 하고 내가 여기까지 왔던 것인데
    나도 잠들어 있는 것입니까? 눈물 위에서? 이야기로 나를 덮으려고?
    저도 꿈은 꾸고 잠이 필요합니다.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 생각이랄 것을 하겠습니까?
    내가 무엇에게 대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령은 내 뒤에 떠 있고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는 기색입니다.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
    이제 내가 알아차리고 있는 것은 당신.

 

 

    유령

 

    예전에는 만사가 지나가게 둘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날마다 닦이는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슬픔은 점점 선명해지고 네 형상은 안쪽에서부터 흐려지는구나. 너의 눈주름, 입가, 명치. 육신 같은 건 생각하지 말까.
    너는 있나. 마음 중에만.
    영원히 새겨져 버린 것 같은 너지만 내가 죽으면 너도 그만인 것을 어째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되뇌어야 할까.
    네게 붙들려 버릴 수 있다면, 나도 저들처럼 네 옆에 있다면
    좋을까.
    오늘 직장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네 생각을 하려고 했다. 나도 너처럼 누군가를 붙들어야 할까. 누군가의 마음 중에만 있어야 할까. 닳아지는 마음 중에만.
    그런데 만사의 생각이 나서
    예전에 내가 개와 주둥이를 잡는 놀이를 했던 일이나
    친구가 해줬던 이야기 속 전쟁 중인 주인공, 대단해질 어떤 가망도 없고, 부서질 일만 남은 것 같은 주인공이 떠올라
    창밖을 향해 얼굴을 돌려 버렸다. 좋은 날씨.
    두려워졌던 거야. 고통스러운 일이 피할 수 없이 일어날까 봐서. 그리고 엄청난 행복.

 

    바보

 

    너희는 아이들이 아니다. 너희는 나의 아이들이 아니야. 너희는 나의 아이들이다.
    슬퍼하지 마, 슬퍼해도 좋다. 슬픔을 나에게 다오.
    너희는 나를 데려갈 수 없다. 왜 너희는 나를 버리고 가지 않느냐. 나는 너희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을 참이고 나는 이 자리에서 슬픈 것들을 다 껴안고 없어져 버릴 참이다. 아무것도 날 저장하지 못해.
    내 영혼을 빌려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은 누구의 말이냐? 나는 그 말을 모른다. 너희가 드디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겨우 알아차린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무슨 일이, 엄청난 일이. 우리의 시작과 끝을 모르는 채로 후려치고 지나가 버릴 것 같다. 우리의 뜻이나 거죽 내외 같은 것은 알 필요도 없다는 듯이. 오, 안다. 이 느낌을 알아. 내가 태어나던 때에도 세계가 몰려들어 나를 보다가 갈 길을 갔지. 나는 커다란 걸음과 걸음 사이에서 우연히 살았고
    지금 나는 아무것도 여기에 우연히 있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혹하다고 생각하느냐? 나를 이곳까지 밀고 온 세계에 비하면 나는 상냥한 편이다. 나는 아이가 아니야. 나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야.

 

 

 

 

 

 

 

 

 

 

하혜희
작가소개 / 하혜희

격월간 독립잡지 《더 멀리》 제4호(2015.10)로부터 활동 시작. 문학 플랫폼 〈던전〉에 웹 시집 『데모(데모)』 발표

 

   《문장웹진 2021년 05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