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납

[단편소설]

 

 

용납

 

 

이현석

 

 

 

    “이런 빌어먹을 놈들!”
    일반외과 주임과장이 두 손을 위로 향한 채 열불을 내며 수술장 안으로 들어왔다. 스크럽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일회용 수술 가운을 입은 과장은 수술대 맞은편에 있는 보현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미친 거 아닌가? 윤 선생, 그렇지 않나? 시국이 어느 땐데 파업 같은 소릴 하고 자빠졌어!”
    2020년 8월 26일 수요일. 보건복지부는 수도권 전공의와 전임의에게 업무복귀를 명령했다. 다음날 오전, 대한의사협회는 예정대로 총파업을 개시했고 전공의 대부분과 전임의 일부가 사표를 냈다. 보현이 일하는 공공의료원의 전공의들 역시 그날 아침 정문 앞에 가운을 쌓아 두고 병원 밖을 나섰다.
    “김 과장님, 거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애들이 얼마나 기가 차면 이렇게까지 하겠어요? 사람이 원, 응원은 못 할망정…….”
    수술포로 벽을 친 경계 너머에서 마취과 과장이 말했다.
    “기가 차긴 뭐가 찹니까? 제가 어디 틀린 말 했어요? 의사들은 저들끼리 딴 세상 산답니까?”
    “아니 과장님은 의사 아니세요?”
    “됐습니다! 거기서 환자나 잘 재울 일이지, 뭔 말이…….”
    “네? 지금 말씀 다 하셨어요? 저 나갑니다? 혼자 환자 재우시고 혼자 깨우실래요?”
    마취과 과장이 마취기 모니터를 검지로 톡톡 치면서 물었다. 과장들끼리 다투는 모습이야 7년차 간호사인 보현에게 낯설지 않았으나 정치적 쟁점을 두고 고성까지 오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외과 과장이 멸균장갑을 끼고서 두 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마주 잡은 손가락을 조몰락거리며 장갑을 밀착시킨 그가 공손히 모은 손 그대로 환자를 내려다봤다.
    “아이고…… 뭘 또 그렇게까지. 제가 말이 헛나왔습니다. 요놈의 조동아리, 컨타 때문에 때릴 수도 없고.”
    외과 과장이 장갑 낀 손으로 제 마스크를 치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마취과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시작하세요.”라고 불퉁하니 말했다.
    “자- 윤 선생. 시작하지.”
    “예, 과장님.”
    복부 피하지방을 가르는 외과 과장의 메스를 따라 보현이 거즈를 대면서 대답했다. 하기야 과장님이 원체 빨간 맛이었지, 라고 보현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과장은 회식 때도 빈 소주병을 휘두르며 화염병 투척법에 관해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다. 물론 과거가 그랬다고 지금 속한 이익집단에 반하는 말을 하는 게 당연하지는 않았으나, 또 그렇다고 소수의견을 낸다는 이유만으로 과장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뇌를 거치지 않고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말 뿐이었다.
    그런데 대경에게는 왜 그게 안 되는 걸까.
    보현은 수술 내내 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오전 8시에 시작한 수술은 다섯 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환자를 회복실로 옮긴 보현이 남자 탈의실로 허적허적 걸어갔다. 탈의실 입구 양옆에는 높다란 신발장이 늘어서 있었다. 초록색 벽, 초록색 수술복, 초록색 수술모. 크로마키마냥 온통 초록색인 수술실에서 각기 다른 사람임을 티낼 수 있는 유일한 소품은 크록스 실내화였다. 알록달록한 크록스마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지비츠가 몇 개씩 붙어 있었는데 보현은 갖은 색상의 향연 가운데 ‘윤보현’이라 적힌 칸을 찾아 지비츠 하나 없는 진회색 크록스를 집어넣었다.
    라커로 가는 길은 언제나처럼 지뢰밭이었다. 탈의실 바닥에는 제멋대로 내팽개쳐 둔 수술복과 젖은 수건이 널브러져 있었다. 손톱을 바짝 깎아 쓰리지 않는 날이 없고, 수술 전이면 손등이 벌겋게 되도록 솔질을 하는 보현으로서는 매일 보아도 매일 토가 쏠리는 풍경이었다. 얼굴을 찌푸린 보현이 깨금발을 들어 라커로 갔다. 수술복을 벗은 그가 라커 안에서 폰을 집어 에어플레인 모드를 해제시켰다. 한꺼번에 도착하는 메시지들 사이로 카톡 한 통이 눈에 띄었다.
    공짜로 생긴 우리 큰아들.
    모자란 우리 아이 곁에 보현 군처럼 듬직한 짝꿍이 있어서 늘 고마워요.

    보현은 화면을 멀거니 내려다봤다. 어쩌면 대경이 공기처럼 느껴 온 부담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대경과 함께 고향에 다녀온 뒤로 보현은 대경의 아버지로부터 가끔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그때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는데 지금처럼 대경과 완전히 틀어진 때라면 더욱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보현이 대구광역시로 내려간 때는 감염병의 확산세가 주춤했던 2020년 7월의 어느 날이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동대구역 앞에 휘날리던 ‘새누리당’ 현수막이 ‘국민의 힘’ 현수막으로 바뀐 것만큼이나 변해 있었고, 또 변하지 않아 있었다. 대경과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명덕역에서 내려 환승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간 보현은 말로만 듣던 3호선 모노레일을 탔다. 퇴근 시간과 겹친 탓에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둘은 출입문 좌우에 등을 기대어 마주 섰다. 노을이 지는 대봉교를 지나 수성구민운동장으로 가는 동안 그들은 차창 밖을 구경하다 서로를 슬그머니 바라보며 찰나의 눈웃음을 나눴다.
    “벌써 어린이회관이네.”
    대경의 말에 보현이 창밖을 내다봤다. 언덕배기까지 울창한 녹지 사이로 꾀꼬리극장이 보였다. 보현도 여느 대구 아이들처럼 가족과 함께 저곳에서 아동극을 본 적이 있었다. 퇴색되고 바스러져 희미해진 기억이었다. 물리적으로도 돌아갈 수 없고, 죽음만이 출구라 여기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들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그리움 비슷한 것이 밀려와 보현은 몸서리를 쳤다.
    어린이회관 옆으로 대구과학고가 지나갔다. 그 옆으로 보현이 다닌 재수학원도 스쳤는데 재수학원 건물은 요양병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황금역에서 내린 그들은 대로변을 따라 아리아나 호텔 방면으로 걸었다. 랜드마크 같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프렌치 레스토랑,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수제 햄버거집 같은 가게가 들어차 있었다. 아파트 상가가 끝나고도 외제차 전시장과 스테이크하우스 따위가 이어지는 그 길을 따라 십여 분 걷고서야 시야에 들어온 호텔은 보현에게도 추억으로 남은 곳이었다. 호텔 지하의 아리아나브로이는 한때 생맥주를 무한으로 제공했다. 장수생 형들과 같이 백일주랍시고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댄 보현은 냅다 들이켠 끝에 다음날 술병이 났다. 기껏 공부한다케가 쌩돈 들였디만 술이나 처마시고 지랄이고. 술 땜에 지랄하는 건 이 염병할 새끼나 저거 애비나. 오후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찬 어머니가 방문을 쾅 닫고는 자신이 운영하는 안지랑의 막창가게를 오픈하러 집을 나섰다.
    “형. 그쪽 말고 이쪽.”
    대경이 호텔 근처의 좁은 길목 하나를 가리켰다. 한 블록 안은 오래된 연립주택의 1층마다 술집이 즐비한 골목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불야성이었을 고요한 골목을 지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니 휘황하게 빛나는 모텔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모텔들로 빽빽한 거리가 나타났다.
    “이야, 이 동네에 이런 데가 있었어?”
보현이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이 형이 왜 이러실까? 벌써 놀라면 안 될 텐데?”라며 실실 웃은 대경이 가벼운 걸음걸이로 앞장섰다. 대경은 모텔촌 한편에 자리한 미용실로 향했다. 미용실의 흐릿한 통유리 너머로 출근 준비를 하는 접대원들이 비쳤다. 대경의 본가는 그 미용실이 있는 연립주택의 꼭대기 층이었다.

 

    “저게 콜트콜텍 동지들이 만든 거라예. 함 들어 보실랍니꺼?”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얼큰하게 마신 대경의 아버지가 바닥에서 일어나 좁은 거실에 진열해 둔 기타를 집었다. 보현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그는 불콰한 얼굴로 기타를 튕기며 민중가요를 열창했다. 난생처음 듣는 곡이었음에도 보현은 왠지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갓 마치고 시공을 초월해 온 듯한 그의 행색에 딱 들어맞는 노래라 생각했다. 대경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천주교 학생회를 시작으로 지하조직에 투신했다. 친구들의 연이은 분신자살 이후 생명운동으로 전향한 그는 동지로 만난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계시를 받은 것처럼 험지로 돌아가야 한다며 귀향했다. 식사 내내 꼬인 혀로 삶의 이력을 읊는 그에게 대경이 “아부지, 쫌! 히야는 그런 얘기 관심도 없어요!”라며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사투리로 한소리를 했다.
    “왜? 나는 재밌는데?”
    미소를 지은 보현이 눈치껏 끼어들고는 시선을 돌려 거실을 둘러봤다. 해고노동자들이 만든 기타처럼 상징적인 물건과 포스터로 빼곡한 거실은 꼭 대경 아버지의 페이스북 계정을 인테리어로 형상화한 듯이 보였다.
    연초에 만난 대경과의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간간이 그의 계정을 훔쳐보던 보현은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는 사람이 바로 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아 링크를 타고 아버지의 계정에 들어가 보니 회한과 결의와 지지의 전시장이 펼쳐졌다. 이를테면 존 바예즈의 유튜브 동영상 링크 위에는 귀향 직후 생태운동 조직을 재건하던 때의 결의가 적혀 있었고, 꽃다지의 라이브 동영상 링크 위에는 진보신당 분당 사태에 대한 회한이 쓰여 있는 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올라온 게시물은 대부분 아들에 대한 것으로, 대경이 작성한 성명서나 대경이 상근하는 단체의 기자회견 기사를 공유한 그는 긴 촌평을 덧붙였는데 그렇게 덧댄 글은 언제나 이 운동에 ‘후더운 지지’를 표하는 걸로 끝이 났다.
    첫 번째는 아니더라도 네댓 번째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따금 대경은 이렇게 말했다. 가시화된 퀴어 의사로 살아가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고. 커밍아웃은 했으나 온 세상에 다 알리고 싶은 것은 아니라며. 때문에 아버지의 열의에 찬 홍보가 스트레스를 주는 듯이 보였음에도 보현이 속내를 떠볼 때마다 대경은 괜찮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는 답만 반복했다. 알다시피 자기는 정말 운이 좋은 거라며,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다름 아닌 부모라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하다고.
    발화된 것과 감각한 것 사이에서 보현이 아슬아슬함을 느끼고 있던 그 무렵, 보현의 직장에서도 파업에 관한 소문이 돌았다. 몇 주가 지나 실제로 실력행사 돌입을 예고하면서 여러 의사 단체에서 내놓은 선전물이 인터넷에 범람했다. 그들의 의도와 달리 선전물은 시민 다수로부터 분노와 냉소를 야기할 뿐이었는데 대경의 아버지가 그간 활발히 알려 온 아들의 활동을 갑자기 공유하지 않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보현은 아슬아슬함 속에 품었던 의심 중 하나가 확신으로 빠르게 변해 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라고 보현은 생각했다.
    이건 너무 비겁하지 않나.
    어깨에 수건을 걸친 보현은 답장을 않은 채 전화기를 라커에 도로 집어넣었다.

 

U=U

 

    2020년 1월 23일 목요일. 서울특별시 교남동 재개발 단지 근처에는 나지막한 노후 건물이 몇 채 남아 있다. 그 건물 중 하나를 십여 개의 시민단체가 같이 썼고 대경은 2층 공동회의실에서 위와 같은 수식을 스크린에 띄웠다. 평일 저녁에 모인 열댓 명은 보현을 빼면 서로 아는 듯이 보였다. 공익법인에서 일한다는 변호사의 첫 번째 발제가 끝나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거나 담배를 피우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오랜 시간 앱과 트위터로만 만남을 가져온 보현은 이렇게 많은 동류의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게 어색했다. 중간 열에 외따로 앉아 트위터 타임라인을 내리고 있으니 대경이 마이크를 두드렸다.
    “아니, 너무 웃기지 않아요? 법이 얼마나 이상했으면 현직 판사가 직접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고 했겠어요?”
    대경은 변호사가 직전에 발표한 내용을 언급하며 두 번째 발제를 시작했다. 한 달 전인 2019년 12월 말, 한 사건을 심리하던 판사가 피고의 기소사유가 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에 부조리를 느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그날의 토론회는 바로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이 조항의 위헌성을 논하고자 감염인 단체와 성소수자 단체들이 모여 마련한 자리였다. 대경은 빔 프로젝터 화면에 띄운 수식 주위로 포인터를 빙빙 돌리며 발제를 이어 갔다.
    “Undetectable Equals Untransmittable. 검출되지 않으면 전파되지 않는다. 이게 ‘U는 U다’라는 캠페인의 핵심입니다.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가 바이럴로드 200카피 이하로 떨어지면 검출되지 않아요. 약만 잘 먹으면 사람 간 감염은 불가능해진다는 뜻이죠. 이건 과학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야 잘 아시겠지만 HIV 에이즈가 만성 감염병이 된 지도 오래잖아요? 지금은 트루바다도 급여화 됐고 프렙 같은 예방법도 널리 쓰이고 있어서 당뇨나 고혈압처럼 관리만 잘하면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죠. 그런데도 사회인식이든, 법조항이든 「필라델피아」 같은 영화가 나오던 시절에 멈춰 있으니 우리가 한심하겠어요, 안 한심하겠어요?”
    신랄하게 서두를 연 대경은 이어서 ‘체액’과 ‘전파매개행위’ 같은 용어의 부당성을 따졌다. 이것이 얼마나 모호한 단어인지 밝힌 그는 그럼에도 이 조항이 지금껏 존치된 책임은 상당 부분 의료인에게 있다고 못박았다. 대경은 의료인의 무지와 편견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감염인들의 건강을 코너로 몰아간 사례를 열거했다. 입원 병상에 큼지막하게 'HIV'라고 표식을 붙인다든가 1인실 입원을 강제하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제삼자에게 환자의 감염 사실을 누설하거나, 문진 중에 의사가 ‘뭐야? 항문섹스해요?’라고 내놓고 묻거나, 자기 의원에서 썩 꺼지라고 소리친 사례를 대경은 희화화시켜 늘어놓았는데 그 덕에 회의실 안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발제를 이어 가는 대경의 목소리에 보현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발제에 집중할수록 대경의 말은 외려 귓가에서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날카롭고 그보다는 더 자주 부드러운 음성이 언어보다는 음악에 가깝게 들려왔다. 보현은 그 음악을 배경 삼아 처음 보는 남자를, 나름 차려입었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차림새를 살폈다. 빨래건조대에서 그대로 건져 입은 것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연분홍색 옥스퍼드 셔츠. 돌돌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는 줄 모르는 듯 검은 슬랙스진에 눈꽃처럼 붙은 솜털. 그럼에도 옷태를 살리는 건장한 몸은 이 모든 걸 용납케 했고 강의대 옆으로 두꺼운 허벅지가 드러날 때면 보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갈색 뿔테 안경을 쓴 대경을 보는 동안 저 안경을 벗겨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자 보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에라이 미친 새끼야,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냐? 라고 스스로를 꾸짖어 보았으나 눈을 뜨면 그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기란 왜인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럼 피에이라는 말씀이시죠?”
    빈 술잔에 고량주를 채우며 대경이 묻자 보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토론회에 올 때만 해도 뒤풀이는 생각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그는 24시간 중국집에 들어와 있었다. 어디 사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 어떻게 알고 왔느냐는 질문에 주섬주섬 답하는 사이 긴장한 보현의 입으로 술이 빠르게 들어갔다. 몸이 달아오르고서야 입이 풀린 보현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몇 해 전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수술실에 들어온 환자가 감염인이 아니었다면 트위터에 누가 마음을 찍어서 뜬 웹자보를 보고도 못 본 척했을 거라며.
    보현은 서울 중심가의 공공의료원에서 일했다. 준공무원 신분이라는 조건 때문에 입사한 곳이긴 했으나 취약계층에게 최후의 보루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당연히 감염인도 많이 내원했는데 긴급한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드물어 그가 직접 마주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원인불명의 소장 출혈로 응급수술을 받게 된 고령 환자는 남성 노숙인이었다. 수술 전 검사에서 HIV 양성이 나오자 수술실과 회복실 간호사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보현은 노인의 몸에 수술포를 덮으면서도, 거죽만 남은 노인의 배를 가르는 과장의 전기소작기 위에 흡입기를 대고 연기를 빨아 당기면서도, 과장이 수술실에서 나가고 난 뒤 다른 간호사들과 잡담을 나누며 마무리 봉합을 하면서도 이 노인이 자기 같은 부류일 거라는 직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이 나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이후에도 자주 했다. 뉴스에서 고독사 소식을 볼 때, 혹서기에 쓰러진 행려자가 응급실로 와서 곧장 화장장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보증인이 없어 구급차를 타고 여러 병원을 떠돌다 초주검이 되어 의료원까지 온 독거노인을 받을 때. 보현은 그때마다 어쩌면 이 사람도……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한 미래로 향하고 싶지 않아 어문학부에서 간호학과로 편입을 하고, 간호사 면허를 따고, 박봉을 쪼개어 돈을 굴리면서 누구보다 노력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불안은 지워지지 않았고 점차 커지기만 했다.
    우연히 본 웹자보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사연을 보현이 말하니 사람들은 자기도 그렇다며, 너만 불안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고 다독여 주었다. 다정한 말을 육성으로 듣는 게 얼마 만인지 몰라 콧등이 시큰해졌으나 맞은편에서 잠자코 있던 대경이 '피에이'라는 약어를 정확히 언급한 순간 괜한 말을 했나 싶어 후회가 밀려왔다.
    피에이는 ‘Physician Assistant’의 약자로, 의사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임의로 차출된 비의사 인력을 가리킨다. 보현도 신규 때는 중환자실에 배치됐지만 일부 외과계에 전공의 지원자가 끊기면서 의료 공백이 심해지자 간호부에서는 보현 같은 남자 간호사들부터 피에이로 전환시켰다. 웬만한 규모의 병원이라면 이제 어디든 피에이가 있었으나 각 직역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의료 행위는 명백히 불법이었다. 특정 과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싸게 부릴 수 있다는 이유로, 까라면 까는 거 아니냐는 이유로 모두 쉬쉬하기에 영속하고 있는 불법 존재라는 자각은 보현에게도 있었다. 떳떳하지 못한 느낌에 위축되어 있는 그를 보던 대경이 잔을 꺾으며 고량주를 털어 넣었다.
    “에이, 그러면 이분이 나보다 병원 일 훨 잘 아셔. 보현 님한테 큰 도움 받을 일 분명히 있을 거다!”
    대경이 천진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보현을 향해 웃음을 흘린 대경은 고량주 두 잔에 붉어진 볼을 부비며 자기야말로 반(半)의사라고 히죽거렸다. 내과 레지던트를 1년 만에 그만두고 전업활동가로 살면서 생계는 대진 알바로 꾸린다는 그는 크리티컬한 분야라면 보현이야말로 진짜 전문가라고 추켜세웠다. 그 말에 마음이 한결 편해진 보현은 사람들이 주는 대로 술을 위장에 퍼부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설 때마다 몸이 휘청거려 다음날 출근이 걱정됐으나 들뜬 기분이 더욱 부풀어 오른 까닭은 동종업계 종사자라는 것 말고도 대경과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해서였다.
    “만경관 알죠?”
    “완전 알지! 본가가 그 근처거든요. 그럼 동성아트홀 알아요?”
    “말이라고! 받고, 경대병원 옆 골목은? 삼덕소방서 가는 길에 그 가게 있잖아요, 레인보우 스티커 소심하게 붙여 둔 곳!”
    “진짜? 대구에 그런 데가 있었어요?”
    보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대경을 보았다. 재수를 하고 곧장 서울로 올라온 보현과 달리 대구에서 학부를 졸업한 대경은 병원 생활도 2년을 하고 상경했다. 대경은 시내에도 이쪽 가게가 은근 있다며 대구백화점 광장 근처에, 중앙로에서 이어지는 휴대폰 판매점들이 즐비한 거리에, 그 거리를 따라 걷다 왼쪽으로 꺾으면 나오는 클럽 골목에 숨겨진 곳들의 상호를 대는데 누군가 “촌구석도 아니고 ‘시내’가 뭐냐, ‘시내’가?”라며 핀잔을 줬다.
    “넌 인마! 무식한 티 좀 내지 마! 대구 시내가 명동보다 훨 커!”라고 핏대를 세우는 대경에게 다른 누군가가 쟤 너무 짜친다고, 저런 부심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어떻게 이름부터 대경이냐며 질색하거나 말거나 그는 추억의 장소를 신나게 읊어댔고, 보현은 “어, 거기 알아요! 정말? 거기도 있었어요?”라며 연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대경이 수성못 일대가 가로수길을 방불케 변했다는 얘기를 할 때부터 보현의 말수가 줄어들더니 대봉도서관 앞이 한때의 경리단길보다 번화해졌다는 말에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안 내려간 지 너무 오래라…… 잘 몰라요, 이젠.”
    보현이 웅얼거리고는 두 팔꿈치를 모아 테이블에 대고 기도하듯 빈 잔을 내밀었다. 잠깐의 적막이 테이블을 스치면서 고량주 따르는 소리가 작은 중국집을 메웠다.
    “뭐, 우리 사이엔 흔한 일 아냐?”
    누군가의 말에 보현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쪽을 흘겨봤다. 초점이 맞지 않아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보현은 딱히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네가 뭔데 아는 체야……. 그냥 기분이 나빴다. 네가 뭘 알아……. 그저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내고 싶었다. 너 나 알아? 라고 보현이 속으로 말하며 풀린 눈동자에 힘을 줬다. 네가 씨발…… 나야? 왜 아는 척하고 지랄이야…….
    “우리.”
    보현 맞은편에서 대경이 보현과 같은 쪽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다 같다고 일반화시키지는 말지?”
    장난기를 쏙 뺀 대경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보현이 대경에게 불쑥 이때를 말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2020년 3월 말의 저녁이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염천교 밑을 지나온 열차가 서소문고가차로 아래를 통과하기 전, 보현은 선로차단기 앞에 서서 그들의 첫 만남을 상기시켰다. 오심처럼 올라오던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대경이 개입한 때를 말하면서 보현은 그 점이 좋았다고,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까지 세심히 따지는 모습에 반한 것 같다고 하자 대경이 나란히 선 연인의 검지 끝을 잡았다.
    “그래? 난 형 딱 보자마자 바로 침 발랐는데.”
    능글맞게 말하는 대경 앞으로 열차가 지나갔다. 열차 안은 환했고 승객은 보이지 않았다. 철길을 건넌 둘은 횡단보도를 한 번 더 건너 어둑한 서소문성지역사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 초입에 있는 첨탑 양옆으로 비문들이 날개처럼 늘어서 있었다. 이승훈 베드로, 허계임 막달레나,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대경은 비문에 쓰인 성인들의 이름을 보며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공원 지하는 천주교 역사박물관이었다. 카타콤베처럼 땅 아래 자리한 박물관에서부터 지상으로 도톰하게 올라온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화초와 나무가 정갈히 심겨 있었고 간격이 넓은 가로등 덕에 숨기 좋은 어둠이 곳곳에 내렸다. 신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무람없이 깍지를 끼고서 공원을 거닐었는데 별안간 대경이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바로 곁의 벤치에 거적을 뒤집어쓴 사람이 모로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저거 너네 예수님이셔.”
    보현이 제 손을 꽉 잡은 대경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사람 같아 보이는 형체는 동상이었다. 두 발등에 못 자국이 선명히 팬 동상 옆에는 「노숙자 예수」라는 제목이 푯말에 적혀 있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대경이 눈을 감았다. 묵상을 하면서도 적이 민망했는지 실실 쪼개는 그를 싱긋이 웃는 낯으로 바라보던 보현이 마스크를 낀 채 그의 볼에 입술을 댔다.
    “뭐야? 이상하잖아!”
    낯선 감촉에 대경이 웃음을 터트렸다. 보현도 똑같이 웃음을 터트렸고 차츰 커지는 웃음소리를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 그들은 조명마저 가리는 그늘을 찾았다. 캄캄한 나무그늘 아래로 재게 걸어간 그들은 서로의 마스크를 턱 끝까지 내렸다. 서로의 숨결과 까끌까끌한 두 혀가 서로의 입속을 파고들면서 혼미해질 정도로 뜨겁게 체액을 나누고 있는데 카톡, 카톡, 카톡이라며 산통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형. 잠깐만.”
    입술을 뗀 대경이 달아오른 얼굴을 훔치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서둘러 메시지를 확인한 그는 이내 허탈한 얼굴이 되어 보현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카톡창에는 대경의 아버지가 마스크 구매 행렬을 배경 삼아 찍은 셀카가 여럿 떠 있었다.
    만촌동 이마트 앞! 대구는 지금 전쟁터!
    아달! 엄빠는 아들을 항상 응원한다, 사랑한다! RGRG?

    사진 밑으로 이어진 메시지에 보현이 슬며시 웃었다. 니를 낳은 대가고 내 마지막 도리다. 대경이 그의 아버지에게 답장을 보내는 동안 보현은 환청처럼 울리는 소리를 무시하며 멀리 보이는 오피스텔을 쳐다봤다. 그 오피스텔의 여덟 평짜리 원룸은 어머니가 절연을 선언하면서 보현에게 넘긴 유일한 자산이었다. 니가 뭐 땜에 내한테 이래 화가 났는지 몰라도 내도 니 용서 못한다. 전생에 어떤 악업을 저질러가 이래 됐는지 모르겠지만서도 이걸로 니 낳은 업보는 갚은 셈 치자. 그때의 보현은 이 오피스텔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고 여전히 그 선택에는 후회의 여지조차 없다. 저 원룸 하나가 지금까지 그의 유일한 뒷배가 되어 주었으니까. 파하하, 웃고는 “형, 이거 봐봐.”라며 다시 전화기를 건네는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아달~ 그건 그렇고 엄빠한테 애인은 언제 소개시켜 줄텨?
    메시지를 읽은 보현이 눈을 끔뻑였다.
    “나?”
    “그럼 누구겠어?”
    대경이 뾰로통하게 되물었다. 보현은 당혹스러웠다. 물론 좋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무엇보다도 이 가족의 저세상 쿨함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진심이야?”
    “당연하지! 형만 괜찮으면.”
    얼빠진 얼굴로 대경을 쳐다보던 보현이 입가에 서서히 미소를 띠었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경이 활짝 웃으며 “약속한 거다?”라고는 카톡창을 두드렸다.
    상황 나아지면 같이 내려갈게요. 형도 괜찮대!
    마스크 잘 쓰시고 손 깨끗이 씻는 거 잊지 마시구요♥

    보현은 대경이 쓰는 메시지를 훔쳐보다 말고 끅끅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왜 웃어?”
    “야, 너 헤남인 줄?”
    “이건 또 무슨 카테고리의 욕이실까?”
    대경이 보현을 째려보았다. 보현도 마찬가지로 대경을 째려봤는데 가늘게 찢은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깔대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도록 웃어대면서도 보현은 뭐가 이다지도 웃기는지, 자기가 왜 웃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분만큼은 초봄의 산뜻한 밤바람마냥 마냥 좋기만 했다.

 

*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2020년 9월 1일 화요일. 신경외과 응급수술에 투입됐던 보현이 저녁 9시 30분경 수술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보현은 인턴 당직실이 있는 7층으로 올라가면서 지난 세 시간 동안 대경이 계속해서 보내 둔 카톡을 확인했다.
    병원 앞이라고, 잠시만 내려와 달라는 말로 시작한 메시지는 시간이 갈수록 날카로워져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보현은 곧바로 당직실로 향하는 대신 병동 복도에 멈춰 창밖을 봤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과 마찬가지로 넉넉한 사이즈의 베이지색 플리스 재킷을 입은 대경이 가로등만 밝힌 병원 앞마당 벤치에 앉아 다리를 떨고 있었다.
    형이 언제부터 세상을 그렇게 믿었는데?
    언제부터 세상이 우리 같은 사람들 편이었다고?

    검정색 야구모자를 벗은 대경이 머리카락을 벅벅 긁는 게 보였다. 모자를 고쳐 쓴 그가 벤치에서 일어나 주변을 얼마간 왔다 갔다 하더니 캄캄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병원 외측 경계석이 있는 데까지 걸어갔다. 보현은 그가 주차장 끄트머리의 흡연부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서야 메시지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한 번이라도 그런 적 있어?
    그런데 왜 갑자기 사람들 말 철석같이 믿어?
    아니,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그러면 더 의심해야지.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 형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었나?

    파업이 시작된 이래 엿새째 병원 밖을 나가지 못한 보현이었다. 날선 문장들은 그렇지 않아도 예민해진 보현을 더욱 곤두서게 했다. 일반외과처럼 전공의가 없는 과들은 파업의 영향이 덜하리라 예상됐으나 의료원 전체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보현의 업무량도 급증했다. 익숙지 않은 타과 수술까지 들어가면서 며칠 밤을 새운 탓에 한시라도 빨리 당직실에 들어가 드러눕고 싶었지만 이어지는 메시지들은 거듭된 연락에도 무시로 일관해 온 보현을 기어이 자극시켰다.
    형이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데?
    입만 떼면 지겹도록 돈, 돈 거리는 게 뭐 때문인데?
    형 거지야? 아니잖아?
    근데 그따위 푼돈에 목숨 거는 이유가 뭐냐고?

    창밖을 내다본 보현이 눈을 부라렸다. 먼 곳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대경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윤곽만 희미할 뿐 표정은 읽히지 않았으나 꼭 그와 눈이 마주친 느낌에 불쾌해진 보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액정을 두드렸다.
    너 돌았어?
    너 대진 알바하면 얼마 받아?
    그거 며칠만 하면 내 월급인 거 몰라?
    네가 그걸 몰라서 이따위로 지껄여?

    담뱃재를 털던 대경이 움찔거렸다. 그가 폰을 꺼내 고개를 숙이자 보현의 카톡 화면에서 1이 모두 사라졌다. 메시지를 확인한 대경이 머리를 털어댔다. 무어라 소리를 치는 것 같기도 했고, 악을 쓰며 넌더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다시 그가 의료원 건물 쪽을 쳐다봤다. 정면으로 선 그의 윤곽을 마주한 보현은 손바닥부터 간질간질해져 왔다. 불결한 액체에 손을 찔러 넣은 듯한 느낌에 당장이라도 손을 박박 씻어내고 싶어졌다. 아니, 씻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손이든, 입술이든, 허벅지든, 엉덩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저 인간과 닿았던 살갗을 전부 다 뜯어내고 싶다는 충동이 거세게 일었다.

 

    우습게도 발단은 ‘짤’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전인 7월 말. 보현과 대경은 여느 토요일 오후처럼 보현의 집 근처에서 느지막이 만났다. 저물녘에도 찌는 더위는 누그러지지 않았으나 두 달간 이어진 장마가 그친 주말이라 저녁을 먹은 둘은 산책에 나섰다. 서소문공원을 두어 바퀴 돈 그들은 내처 공원 맞은편 언덕을 올랐다. 약현성당과 부속 건물들을 배회하면서 보현이 얼마 전 대구에 내려갔을 때 계산성당에서 우연히 본 결혼식 풍경을 얘기하자, 대경은 그날 자기가 사준 선물이 왜 아직 박스째로 옷장 안에 있냐고 심통을 부렸다. 보현은 수술실 실내화가 아직 멀쩡하다면서도 수술복 아래 연분홍에 자줏빛에 빨간색이 뒤죽박죽인 카모플라주 무늬 크록스를 신은 자기를 상상해 보라며, 낯 뜨겁지 않겠느냐고 핀잔을 줬다. 신발 한 켤레를 두고 중림동 일대를 거닐며 투덕거리다 웃기를 반복하던 둘은 원룸으로 돌아와 땀범벅이 된 몸을 씻었다. 세정을 하고, 섹스를 하고 다시 샤워를 한 그들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미니 빔으로 철지난 홍콩 영화를 보면서 캔 맥주를 마셨다. 보현이 주중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을 끔뻑이고 있는데, 대경이 “형, 이거 어떻게 생각해?”라며 그의 얼굴 위로 폰을 들이댔다. 가늘게 뜬 보현의 눈앞에 복잡한 도표가 그려진 한 컷짜리 만화가 어른거렸다.
    “좀 이상하지 않아? 의대생을 뽑는데 시민단체 추천을 받는다잖아.”
    “그래…… 뭐, 좀 그렇네.”
    보현이 성의 없이 답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니 무슨 자격으로? 아무런 전문성이 없잖아?”라며 대경이 목소리를 살짝 높이자 보현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보현이 대경을 보면서 “그러는 넌? 아-무 전문성 없이 여태 어떻게 일했냐?”라고 놀림조로 물었다.
    “아니지. 그거랑 이거랑은 엄연히 다르지.”
    폰에 시선을 고정한 대경이 무심히 대꾸했다. 그새 또 다른 짤을 받았는지 “이건 또 뭐야?”라면서 안경테를 밀어 올린 그가 “참 나.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라며 나라 잃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보현은 중독성 강한 게임이라도 하듯 화면에 고개를 박고 눈알을 굴리는 연인을 한참이나 지켜봤는데, 불현듯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무엇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일까.
    그러니까 얘가 말한 ‘그것’과 ‘이것’은 무엇일까.
    설마…… 하는 생각에 갑자기 목이 탔다. 자기는 활동가라서 전문적인 게 아니라는 뜻인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잠이 달아난 보현은 말똥말똥해진 눈으로 영화가 흐르는 벽을 쳐다봤다. 벽을 향한 눈과 달리 신경은 온통 대경에게로 쏠렸다. 스산한 기운에 목 끝까지 이불을 끌어당긴 보현이 옆을 흘긋거렸다. 분명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거기 있었다. 오래도록 사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모습 그대로 그가 곁에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옆얼굴에는 가느다란 금이 세로로 길쭉하게 가 있는 것 같았다.
    “에이. 애들이 그렇게까지 하겠어?”
    보현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대경이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바닥에 누워 땡땡해진 다리를 제 침대에 올린 보현이 의료원 전공의들 사이에도 파업 얘기가 돈다고 하자 침대 프레임에 기대어 보현을 내려다본 대경은 그럴 리 없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하고 앓는 소리를 낸 대경이 보현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말이야. 애들 힘든 건 형도 알잖아?”
    “알지.”
    “나도 많이 힘들었고.”
    “그것도 잘 알지.”
    대경의 허벅지를 가볍게 주무르며 보현이 답했다. 이미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대경이 전공의가 될 무렵 내과의 인기는 최저점을 찍고 있었다. 인기과와 비인기과 사이의 양극화는 지방이 훨씬 심해 대경의 모교 병원은 내과 전공의 티오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이틀은 기본, 때로는 삼일 연속 뜬눈으로 지내다 보면 실수는 필연적이라 교수에게 쌍욕을 먹으면서 정강이를 걷어차이는 걸로 매일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대경이 레지던트를 그만둔 이유는 누적된 과로나 거듭된 모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족한 인력 탓에 내과의사가 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대경은 당직 때마다 병동 한 층을 홀로 담당해야 했다. 그런 날에는 짬이 생겨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의국 침대에 웅크려 손톱을 깨물고 있으면 어김없이 코드블루 사이렌이 사방에서 울렸다. 부리나케 병동으로 달려가 보아도 환자들은 제 마음과 달리 쓰러져 나가기 일쑤였다. 생과 사의 최전선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겨우 유지되던 자존감은 새벽마다 한 움큼씩 부서져 나갔고,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대경은 이렇게까지 살 이유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표를 냈으나 병원 밖을 나서는 걸음은 쫓기는 것처럼 초조했는데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제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울기만 했다.
    보현은 이것이 대경만 겪는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보현이 일하는 의료원의 전공의들도 마찬가지였다. 꼬질꼬질한 가운을 입고 초췌한 몰골로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그들을 보면 없던 동료애가 물씬 피어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파업이 다가오면서 그들 스스로 비대한 자아를 거침없이 드러낼수록 보현의 의식 밑에 가라앉아 있던 나쁜 기억들이 뾰족이 솟아올랐다. 사수 선배의 시도 때도 없는 태움만으로도 버티기 힘들었던 중환자실 신규 시절, 자기가 꼭 해야 할 드레싱마저 하지 않아 지나간 자리마다 따라다니며 드레싱을 다시 하게 만든 진상 레지던트. 급히 받아야 할 오더가 있어 전화를 하면 외래 보는 시간인 거 모르냐며 말단 간호사 주제에 어디 함부로 전화질이냐고 욕을 퍼부어대던 진상 과장. 혈액 샘플링에 사용한 주사기를 통째로 폐기물 봉투에 버리는 바람에 청소노동자들과 영선계 직원들을 오염된 바늘에 찔리게 했던 진상 인턴. 저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지도 모르고 미안하다, 고맙다 말도 없이 콧방귀나 뀌던 인간들.
    대경은 달랐다.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믿었으니까 보현은 그에게 빠져들 수 있었다. 곁에 둘 만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곁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라 여겼다. 종내에는 오래도록 제 곁에 머무르길 바랐다.
    보현은 그래서 회피했다. 파업이 다가올수록 입에서 점점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위험을 감지했다. 처음으로 꿈꿔 본 장기적인 관계가 여기서 무너질까 두려웠다. 여지만은 남겨 두고 싶었다. 그러려면 입을 닫아야 했다. 귀를 막아야 했다. 대경은 보현을 달래려 애를 썼고 보현도 그의 노력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저들이 저러는 게 자기는 이해가 간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귀결되면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두통이 몰려왔다. 울분이 쌓여 갔다.
    “얘네 좀 돈 거 아니야?”
    마침내 보현이 목청을 돋운 것은 소위 ‘덕분이라며 챌린지’가 인터넷을 달군 어느 날이었다. 의대생들이 엄지를 아래로 향한 포즈로 셀카를 찍어 SNS에 인증하자 수어마저 조롱하는 듯한 집단행동에 분개한 농인들이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침대에 앉아 이를 보도하는 기사를 읽은 보현이 매트리스에 폰을 던지며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리고 의료인이 의사밖에 없어? 이게 무슨 민폐야!”
    옆에 누워 있던 대경이 보현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마를 짚고서 기사를 보던 그가 “그러게. 형 말대로 이건 진짜 심했다.”라며 몸을 일으켰다. 분을 삭이고 있는 보현 가까이로 다가간 그가 연인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다정하게 속삭였다. “이건 그냥 애들이 무식해서 이러는 거야. 응? 훌륭한 형이 참자. 알잖아, 애들도…….”
    “대경아.”
    “응?”
    눈을 동그랗게 뜬 대경이 보현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정신 차려. 얘네 ‘애’ 아니야.”
    보현이 차갑게 말하고는 어깨에서 대경의 손을 떼어냈다.

 

    왜 또 이상한 데 꽂혀서 그래?
    형, 내가 지금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잖아.

    흡연부스에서 나온 대경이 병원 건물 쪽으로 다가오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이상한 데 꽂혔어? 네가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보현은 괜히 발끈해서 대꾸했나 싶었다. 더는 통하지 않을 말을 하느라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답장을 않은 보현이 당직실로 가려는데 손에 쥔 폰에서 다시 카톡, 카톡거리며 수신음이 들렸다.
    아니다. 형 말이 맞네.
    맞네, 맞아. 내가 잘못했네.
    아주 떼돈 버는 제가 입을 함부로 놀렸어요.

    비아냥거리는 메시지에 보현이 발걸음을 멈췄다.
    근데 형.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내가 형보다 일당 좀 많이 받는 게 그렇게 이상해?

    보현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런데 왜 나는 하나도 안 이상하지?
    헛소리에 쐐기를 박는 문장에 보현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위악을 떨고 싶어도 그렇지.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게 아닌가. 고개를 홱 돌린 보현이 창밖을 내다봤다. 대경은 어느새 건물 앞까지 다가와 가로등 아래에 서서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사람 새끼니?”
    근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보현이 먼저 건 전화였다. 제발 받아 달라고 숱하게 연락했던 대경이었지만 침착하기만 한 상대방의 목소리에 당황했는지 그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들썩이던 대경의 어깨가 후- 하고 내쉬는 숨소리와 함께 아래로 꺼지는 게 보였다. 숨소리가 잦아들면서 침묵에 빠진 수화기 너머로 대경이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물었다.
    “문자에 답도 없어, 전화도 안 받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냐고?”
    울먹이듯 말하는 대경의 눈은 정확히 보현을 향해 있었다. 대경은 자기가 그렇게 잘못했느냐며, 애들 편 조금 들어 준 게 그렇게 죽을죄냐고 언성을 높였다. 보현은 말을 하면 할수록 커져 가는 그의 음성이 귓전 밖으로 새어 나갈까 두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근처에서 수액걸이 바퀴소리가 드르륵, 하고 나자 보현은 전화기를 쥔 손을 나머지 손으로 감싸며 소리 나는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는 거야!”
    수화기 너머에서 대경이 소리쳤다.
    “나 그냥 여기서 무릎이라도 꿇을게! 어? 그러면 되겠어? 아니 그냥 내가 애들한테 너네 다 개새끼라고 할게. 그러면 되는 거야? 어? 내가 텔방에 욕이라도 써서 올리고 캡처라도 해서 형한테 보여주면 되겠어? 어? 그러면 형 속이 시원할까? 기분 풀릴까? 어? 그러면 돼? 내가 그러면 되는 거…….”
    “할 수 있어?”
    대경의 말을 자른 보현이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가 창가로 어정쩡하게 다가갔다. 창문 멀찍이서 아래를 흘깃 내려다보니 대경이 위를 쳐다보며 좌우를 훑고 있었다.
    “가지 마. 형, 부탁할게. 한 번만 내려와 줘. 얼굴 보고 얘기하자.”
    “할 수 있냐고?”
    다시금 보현이 건조하게 물었다. 수화기 건너편은 조용했고 대경은 저 밑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같잖다는 듯이 툭툭 끊어 웃던 보현이 힘 빠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말했지? 걔들 애 아니라고. 대경아. 너 되게 똑똑하잖아. 한 번 말하면 좀 알아 처먹자…….”
    보현은 대경이 다시 고개를 위로 젖히는 모습을 보면서 전화를 끊었다.
    대경은 귀에서 폰을 떼지 못한 채 창가에 비치는 그림자들을 정신없이 쫓았다. 한동안 주변을 서성이던 그가 체념한 듯 몸을 틀었다. 보현의 눈은 병원 건물에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어둠이 깊어진 만큼 한산해진 주차장을 가로지른 대경이 흡연실을 지나쳐 낮은 돌담을 넘어갔다. 경계석 바깥 인도를 따라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 그가 광고판에 머리를 기댔다. 보현은 붉어진 눈으로 광고판 불빛에 비친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얼마 후 대경이 버스 안으로 사라지면서 보현의 등이 휘청 굽었다. 무너진 자세와 함께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린 보현의 눈앞에 새까만 폰 화면이 들어왔다. 침착하기만 했던 제 말투와 달리 전화기를 쥔 손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가 내뱉은 모든 말이, 메시지가 전부 진심은 아닐 것이다.
    보현은 생각했다. 제게 난 생채기를 봐달라며 시위하는 그저 그런 연극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고통이 감하지는 않았다. 흉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이 위악에 일말의 진심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명치가 콱 막혀 오는 듯했다.
    너무 화가 나면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개같은 기분인지 그 새끼가 알기는 알까. 보현이 당직실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억울했다. 대경이 예외적이었던 것은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그의 인간성을 입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정말 잘못 본 건지, 보고도 무시해 버렸던 건지, 아니면 그가 그냥 그런 척을 했던 건지. 서글펐다. 온통 흐릿했던, 무엇도 구체적이지 않아 불가해한 감정을 그저 찬미할 수만 있었던 시간들이 보현은 서글프도록 그리워졌다.

 

*

 

    대경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깊어져 가던 지난 3월. 보현은 직장에서도 웃음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전까지 워커홀릭처럼 일에만 매달리던 그가 칼퇴에 목을 매기 시작했고 오후 5시 언저리만 돼도 크록스를 신은 맨발을 달달 떨어댔다.
    “또 응급이냐…… 공력이 딸린다, 공력이!”
    오후 늦게 추가된 복막염 수술을 하러 들어온 외과 과장의 볼멘소리가 방호복 안면보호 비닐을 뚫었다. 환자는 발열이 있었지만 확진 결과를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수술장 안의 의료진은 모두 과장처럼 방호복 위에 일회용 수술 가운을 입고서 마취된 환자 곁으로 모여들었다.
    “보비.”
    전기소작기로 환자의 배를 가른 과장이 복벽을 열었다. 보현이 장기들을 부드럽게 들추자 과장은 염증 부위를 찾았다. 과장이 염증의 원인인 충수 돌기를 잘라냈고 보현은 과장을 도와 절제 부위를 신속히 봉합했다. 스크럽 간호사는 생리식염수를 채운 대형 주사기를 과장에게 건넸다. 과장이 복강에 물을 쏘면 보현이 흡입기로 세척액을 빨아 당기길 반복했다. 지루한 세척 과정 동안 스크럽 간호사는 회복실 신규 간호사가 마취과 인턴이랑 만난다는 소문을 조곤조곤 전하다 “고것들 깨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라며 갑자기 말을 꺾었다. 허튼 농담에도 전과 달리 헤프게 웃는 보현을 보면서 스크럽 간호사가 쓰읍, 하고 공기를 잇새로 빨아들였다.
    “윤보현이. 요새 암만 봐도 이상해.”
    “네? 저요?”
    “어- 너. 딱 보면 알아. 너 여친 생겼지?”
    “뭐? 윤 선생 드디어 여친 생겼어?”
    “백 퍼예요 과장님. 요즘 얘 보면 나사 몇 개 풀린 거 같지 않아요?”
    “그래에? 우리 윤 선생, 고자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만, 으하하!”
    과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스크럽 간호사에게 빈손을 내밀었다. 보현이 영혼 없이 하.하.하. 웃는 사이 간호사 선배가 대형 주사기에 생리식염수를 채워 과장에게 줬다. 복강에 물을 쏘면서 과장이 말을 이었다. “윤 선생. 내가 자네랑 일한 게 벌써 몇 년이야? 드디어 여친 생겼다는데 지금 수술이 중한가? 여기 좀 이상한데…… 모스키토.” 미세한 출혈 부위를 발견한 과장이 작은 집게를 찾았다. 보현은 봉합사를 끼운 집게를 수술기구대에서 집어 과장의 손에 쥐어 주었다. 과장이 혈관을 묶은 매듭 끝을 보현이 가위로 잘라내자 척척 맞는 호흡에 만족한 듯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고 흥얼거린 과장은 “어여 말해 보라니까. 어떤 분이신가?”라며 보현을 보챘다.
    “그냥, 뭐…….”
    “뭐? 뭐가 뭔데?”
    머뭇대는 보현을 답답해하며 스크럽 간호사가 대답을 재촉했다. 수년간 이곳에서 산전수전을 같이 겪어 온 선배를 슬쩍 쳐다본 보현이 쌩긋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즈음 보현은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자주 생각했다. 그도 이제 삼십대 중반이었고 남자 간호사로서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간호사 본연의 업무와 동떨어진 일을 해왔기에 간호부 내에서 더는 올라갈 곳도, 내려갈 곳도 없었다. 새로 들어오는 외과계 과장들은 보현 또래거나 더 어렸다. 서로 불편해지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데다 하는 일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부담에서도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니까 보현이 모아 둔 자산을 헤아리며 퇴직 시기를 가늠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누가 아무리 보챈다고 한들 “그냥…… 괜찮은 사람이에요.”라는 대답을 무심결에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왐마? 진짠가 보네! 그런 일 있으면 재깍재깍 보고를 했어야지!”
    스크럽 간호사는 자기가 추리하고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처럼 법석였다. 그러고는 “윤보현이. 나 지금 진짜 섭섭하다.”라며 입을 삐죽였다. “너랑 내가 같이 먹은 병원밥이 몇 공기야? 내가 눈치 안 깠으면 입 싹 닫으려고 했어? 네가 무슨 아이돌이야? 아님 뭐, 우리 다 유부녀라고 내외하는 거니? 인마, 십 년이 다 돼 간다. 이제 우리 좀 친하게 지낼 때도 됐잖아?”
    “어허…… 거 무슨 소린가? 우리 윤 선생이 나랑 얼마나 친한데. 그지이?”
    대장을 들춘 과장이 후복벽을 확인하면서 느끼하게 물었다. 장기들을 들어 올려 과장의 시야를 확보한 보현이 “넵” 하고 간결하게 답했다.
    선배가 느끼는 섭섭함을 보현도 모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보현이 살아온 방식이 그랬다. 직장에서 보현은 친절한 사람으로 통하긴 했어도 곁을 잘 내어주는 편은 아니었다. 조용히 지내는 까닭에 어딘지 모르게 생각 많아 보이는 사람이라는 평을 자주 들었다. 그것이 그가 들키지 않아 온 노하우였다. 말을 하면 거짓 각본이 뒤따랐다. 각본에 맞추려면 평범한 대화를 나눌 때도 머리를 쉼 없이 굴려야 했다. 말수 적은 사람. 진회색 크록스처럼 무색무취한 사람. 그런 사람으로 지내야 들킬 위험을 덜 수 있었다.
    “윤 선생,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건가?”
    환자의 배를 닫으며 과장이 물었다. 수술이 마무리되기까지 호구조사에 시달린 보현은 독서모임에서 만났다고,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무던한 성격에 생각이 바른 사람이라며 즉흥적으로 둘러댔는데 하다하다 결혼 질문까지 나오자 몸이 파르르 떨려 왔다.
    “과장님.”
    “응, 그래. 언제 할 거야?”
    과장이 보현을 보면서 수술 장갑을 벗었다. 순도 백 퍼센트의 호기심만 가득한 얼굴을 보니 보현은 속에서 무언가 치미는 듯했다. 오랜 시간 담아 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와 입안을 맴돌았다. 어쩌면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보현은 생각했다. 하긴, 이제는 말할 때도 되지 않았나. 보현이 결연한 얼굴로 과장을 쳐다봤다.
    “아니, 과장님…….”
    이라고 찬찬히 운을 뗐으나 정작 입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는 “요즘 세상에 저 같은 남자가 어떻게 가정을 꾸립니까. 뼈 빠지게 일해 봐야 뭐가 쌓여야죠. 집은 어떻게 사고, 애라도 생기면 애는 또 어떻게……”였다. 말끝을 흐리며 내가 그렇지 뭐, 별수 있나, 라고 속으로 자학하는 보현 옆에서 스크럽 간호사가 갑자기 핏대를 세웠다.
    “이건 보현이 말이 맞지! 그리고 이 시국에 결혼은 무슨 결혼이에요? 전부 다 취소하는 판이구먼!”
    “맞아요, 과장님. 과장님은 우리 같은 서민들 삶 너무 모르신다. 과장님이 기저귀 값 분유 값 다 대줄 거예요? 그런 거 물어보려면 윤 선배한테 집 사주고 묻기!”
    마취과 간호사 후배도 덩달아 말했다. 수술장 안의 사람들이 단체로 반격을 해오자 과장은 “이 사람들, 지금 뭐래는 건가?”라며 일회용 수술 가운을 거칠게 뜯었다. 폐기물 수거함에 가운을 집어넣은 과장이 부릅뜬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느닷없이 목청을 높였다.
    “이런 시부럴! 나도 전세야!”
    과장이 자동문 센서에 대고 한쪽 손바닥을 펼쳤다.
    “딸아, 이 못난 애비가…… 미아나다!”
    재간을 부리며 수술장 밖으로 나가는 과장의 뒷모습에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바통 터치를 하듯 수술장으로 들어온 마취과 과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묻고는 환자를 깨우기 시작했다.
    보현은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를 카트로 옮겼다. 회복실까지 카트를 미는 동안 그는 수술실 안에서 읊은 각본을 복기했다. 머릿속에 정리해 넣는 거짓말들에는 저마다 뿌리가 된 진실들이 있었다. 독서모임이 아닌 인권세미나에서 만난 회사원 아닌 활동가 애인. 무던한 성격에 생각은 바르지만 여자친구는 아닌 남자친구. 헤테로였다면 육아까지는 몰라도 결혼은 고려해봄 직한 금융자산과 제 명의의 원룸.
    그렇게 실감으로 손에 잡히는 것들을 꼽다 보니 며칠 전 대경과 같이 자기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들이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던 때가 떠올랐다. 보현의 상상 속에서 두 사람은 이미 종로나 이태원 어딘가에 무지개 깃발을 내건 의원을 차리고 있었다. 부동산 앱을 살피면서 타깃 환자 군을 고려할 때 어디가 좋은지, 대략적인 평수와 구조는 어떨지, 필요한 장비는 무엇이고 홍보는 어떻게 할지 신이 나서 주절대는 남자친구의 볼에다 대경이 입술을 맞추고는 그런 것보다는 먼저 성소수자 각각에 특화된 건강 세미나부터 꾸려 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야, 그거 완전 모객 되겠는데?”
    “응? 그게 그렇게 연결돼? 형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대경은 보현이 재빨리 폰 메모장을 열어 아이디어를 적는 것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하고는 피식거렸다. 그런 대경을 보지도 않은 채 “왜? 뭐? 어때서?”라고 중얼거린 보현이 메모장을 닫고서 “인생은 실전이야, 자식아.”라며 고개를 돌리는데 대경은 이미 사랑이 가득 담긴 그윽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이건 반칙이지. 보현은 생각했다. 그 눈빛 앞에서 이 사람과 언제까지나 함께이고 싶다는 열망이 순식간에 솟구쳤다. 종일 같이 일하다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 침대에 바로 뻗으려는 남자친구를 사워실로 보낸 다음 집 정리를 하는데 어느새 다 씻은 그가 샴푸 향을 풍기며 제 뒤로 다가와 허리를 감싸 안는 장면까지 머릿속에서 단숨에 펼쳐지자 맥주잔을 황급히 옆으로 치운 보현이 대경을 확 끌어안았다. 키스를 퍼부으며 옷을 벗은 보현이 남자친구의 옷을 벗기면서 따뜻한 살결에 제 살을 격렬히 비볐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1년 후의, 3년 후의, 10년 후의, 어쩌면 숨이 다하는 날까지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왈칵 터질 것만 같았다. 다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정에 다다른 보현은 제 입을 틀어막은 채 환희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손닿기조차 싫어지는 이 감정은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와 버리는 것. 울컥울컥 차올라 질식시킬 듯 넘실대는 이 감정 앞에서 보현이 인정해야만 했던 사실은 누구도 그처럼 제 안으로 깊이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는 점. 사랑한다는 일은 그만큼 배반의 가능성에도 노출된다는 뜻이었기에 대경 앞에서 취약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된 보현의 분노는 깊고 강했으며 한번 뿜어져 나온 뒤로는 걷잡을 수가 없어졌다.
    입때껏 보현이 누군가를 곁에 두지 않은 까닭은 인생에서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혼자만으로도 버거워서였다. 스스로 깨닫기 전부터 다름이 티가 나면서 놀림과 괴롭힘의 대상이 됐을 때, 보현은 맞서 싸워 보기도 했지만 승리는 늘 그의 몫이 아니었다. 등교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잠자리에서 버티는 그의 등을 걷어찬 어머니는 화장실 변기에 책가방을 처박고는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니는 정신 상태가 썩었다. 니도 너거 애비맨치로 아무 쓰잘데기 없는 잡놈이야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아버지를 비호하는 시어머니를 데리고 살면서도 막창가게로 자수성가한 자신을 보라며, 힘들어도 내 능력으로 내가 노력해 보란 듯이 잘살고 있지 않느냐고 본인 인생의 고달픔을 보현에게 투사했다.
    보현은 그런 어머니에게 정체를 밝혀 볼 엄두를 내본 적이 없었다. 다만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을 뿐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끊어내야 했다. 제대를 하고서 오롯이 자기 힘으로 살리라 결심한 보현은 간호학과로 전과했다. 근로장학생을 신청했으나 가족소득 때문에 탈락했을 때에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미처 배우지 못한 2년 치 과정을 독학하느라 수면박탈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때에도 어머니는 보현의 음성사서함을 끊임없이 채웠고, 협박과 읍소와 시혜의 문자를 보냈고, 가르쳐 주지도 않은 주소를 알아내 고시원을 찾아왔지만 그를 단호히 차단하면서 서서히 포기시킨 끝에 결국 어머니의 입에서 먼저 ‘절연’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러니까 그것은 시시때때로 엄습해 온,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을 몰아내면서 보현이 익혀 온 생존법이었다. 이런 자신이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 여겼으나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대경은 침습해 들어왔고, 언젠가는 식어버릴 것이라는 냉소와 그렇게 연이 끊겨 자기 자신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떨치면서까지 다가간 결과가 고작 이러하다면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라고 보현은 생각했다. 허무했다. 이렇게 끝내고 싶진 않았다. 어떻게든 복구시킬 수는 없을지, 이 순간들이 없었다는 듯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다가도 대경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면 바닥에 깔린 그의 사고방식이 빤히 보여 절박했던 마음이 차게 식어버리곤 했다.
    밤낮없이 일하느라 보현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당직실 인조가죽 소파에 누인 몸은 군데군데 두드려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조금이라도 쉬어 주어야 했지만 머리가 가만 두질 않았다. 잠을 청하면 청할수록 생각이 해일처럼 밀려와 보현은 끊임없이 몸을 뒤척였다.
    “하…… 진짜 이 좆같은 새끼가…….”
    모로 누운 보현이 머리를 감싼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한 문장을 떠올렸다. 그건 ‘내가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이었다. 보현은 그간 그 문장이 대경을 지탱해 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그들이 공유하는 정체성과 태어나 버려 자라게 된 이 땅의 풍토. 그 풍토로 인해 각자의 몸에 남은 크고 작은 얼룩들. 그럼에도 예외적으로 대경의 부모가 그에게 제공한 정서적 지지나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대한 태도, 혹은 지적인 배경 같은 것들. 다 헤아리지도 못할 무수한 우연과 혼돈 속에서도 그가 지금껏 살아 있도록 만든 문장이 저러하다면 보현은 조금의 느끼함 따위야 기꺼이 감수할 만하다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와 분명해진 사실은 ‘사람’의 자리에 그가 스스로 투쟁하여 얻어냈다고 믿는 페르소나를 집어넣어야 그 문장이 완전해진다는 것. 게다가 그 문장의 방점이 ‘내가 의사신데 옳은 일까지 하고 계시다’는 식으로 찍혀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욕지기가 올라왔다. 제 몫이 아니어야 할 부끄러움에 아악, 하고 소리치며 몸을 비비꼬고 있는데 소파 팔걸이에 올려 둔 전화기에서 카톡 수신음이 울렸다. 보현은 화들짝 놀라 폰을 잡아챘다.
    너네 이거 봤니?
    메시지는 스크럽 간호사 선배가 보낸 것이었다. 맥이 빠진 보현이 수술실 간호사 단톡방을 건성으로 확인했다. 선배는 메시지 아래 대경이 보여주었던 선전물들과 비슷한 짤 하나를 덧붙였다.

 

질문 : 여러분의 생명이 달린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어떤 의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A.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해서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의사 B. 성적은 별로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공공의대에 입학한 의사

 

    아주 잠깐, 보현은 화면을 채운 만화 퀴즈를 무연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리고 곧장 풋,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실소 뒤로 와하하, 하고 진짜 웃음이 이어졌다. 배를 잡고서 당직실이 떠나가라 웃어대는 보현과 마찬가지로 단톡방도 수십, 수백 개의 키읔으로 도배되어 갔다. 누군가 그곳에 이 원본을 패러디한 짤들을 재빨리 공수해 와 업로드 했다.

 

C. 수능은 4등급이지만 의전원에 들어가 어렵다는 의대 시험을 전부 통과한 의사 D. 수년간 대리수술을 하면서도 의료사고를 내본 적 없는 의료기기 영업사원
E. 천 회에 가까운 수술로 실력을 다진 의료사고 0건의 간호조무사 F. 의료사고를 내서 여러 명의 환자가 사망했지만 면허는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의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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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해. 유치하니까.
    보현이 전송한 이미지들 아래로 대경의 답장이 도착했다. 쏟아지는 패러디물에 웃다, 웃다 더는 웃을 힘조차 없어진 보현이 입 꼬리를 씰룩이며 그에게 이미지 파일을 차례대로 보냈다. 이걸 보면 뭐라도 느끼겠지. 네가 사람이라면 뭐라도 느껴야 할 거야. 한 장 한 장 전송이 완료될 때마다 보현의 입가에 미소가 선명해졌다.
    형. 이런 거 보내면서 제 살 깎아먹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그러나 대경은 되레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형도 저기 있네.
    고개를 갸웃거린 보현이 그 메시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모르겠어?
    보현은 카톡창을 올려 이미지들을 하나씩 확대했다. 거기 쓰인 글자를 읽고 있는데 대경이 또 메시지를 보냈다.
    형 눈에는 안 보이나 봐?
    저기 있잖아. E.

    보현이 검지와 엄지를 움직여 E를 확대했다. 어이없어하며 픽, 하고 웃은 그가 저게 어떻게 나야? 라고 입력창에 써넣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전송버튼 누르기를 망설인 보현은 비열하게 이딴 식으로 뭉개려 들지 말라고, 나와는 경우가 다르지 않느냐고,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거 아니라며 다른 문장을, 또 다른 문장을 쳐보았지만 말이 자꾸만 꼬이듯 바삐 움직이던 손가락이 뚝뚝 멈춰 섰다.
    왜? 형 아닌 거 같아?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라서?
    쓰기를 멈춘 보현이 화면을 바라봤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나도 할 만큼 한 거 같거든. 형이 날 엘리트 의식에 찌든 괴물로 생각하든, 입만 열면 공정거리는 인간들이랑 도매급으로 취급하든, 이제는 정말 상관없다는 생각도 들어. 솔직히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이러다 형이랑 영영 못 보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해.
    잠깐의 간격을 두고 장문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보현은 엉뚱하게도 그가 지금쯤 어디를 지나고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래도 형. 나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대경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우리 선별진료소 같이 갔을 때 기억나?
    형 지금 꼭 그때 같은 거 알아?

    보현이 채팅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대경은 그러고도 카톡을 계속 보내왔지만 뜻밖의 말에 머리가 얼얼해진 보현은 소파에 누인 몸을 축 늘어트렸다. 보현은 초점 잃은 눈을 천장으로 향한 채, 제 원룸 방바닥에 주저앉아 분통을 터트린 그때를 떠올렸다.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라도 가야지.” 그날 대경은 그렇게 말했었다. 끝없이 소리치며 몸부림치는 보현 곁에서 그를 다독이고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대경이었다.

 

    2020년 5월 30일 일요일. 방호복을 입은 보현이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건소 앞에 설치된 반원통형 천막 안에서 다음 수검자를 기다렸다. 대경은 방수포 격벽으로 나뉜 천막 한쪽에서 예진을 봤고 외측이 뻥 뚫린 반대편에서 보현이 보건소 직원과 함께 검체를 채취했다. 하얀색으로 무장한 보현은 간이의자에 앉아 격벽에 귀를 댔다. 대경이 조용히 무언가를 물었고 수검자는 “아노-”와 “웰-”을 섞어 가며 대답했다. 대경이 다시 진중하게 무슨 말을 하자 수검자가 “소까?”와 “리얼리?”를 번갈아 쓰며 되물었다. 연인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서 쟤는 일을 할 때 저렇게 환자를 대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예진을 마친 일본인 남자가 검사 공간으로 들어왔다.
    “거기 앉으세요.”
    남자에게 예진 기록지를 받은 보현이 퉁명스레 말하고는 대경이 적어 둔 메모를 훑었다. 개인정보란은 인권보호지침에 따라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 대신 대경은 비고란에 병력과 접촉력을 써두었는데 지난 네 시간 동안 이곳을 다녀간 다른 많은 남자들처럼 이 일본인도 클럽 방문자였다. 둘, 넷, 여섯 군데. 많이도 싸돌아다니셨네. 검사 세트를 들고 다시 남자 앞에 선 보현이 조명을 움직였다. 마스크에 초점을 맞추자 남자가 인상을 구기며 눈을 감았다.
    눈이 부시긴 부신가 봐요?
    남자의 얼굴은 마스크에 가렸지만 보현은 그 남자의 맨얼굴을 알 것만 같았다. 하루살이마냥 현세만 사는 자들의, 물색없고 무지한 데다 주의심마저 없는 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보현은 보안경과 N95마스크 뒤의 제 얼굴을 무지막지하게 일그러트렸다.
    잠시나마 보현은 그런 날들을 꿈꿨었다.
    대경과 더불어 온전한 나로 사는, 더는 황량하지도 않고 잿빛이지 않아도 될 어떤 나날을. 점증하는 사랑과 믿음에 기대어 비현실적으로 부풀어 가기만 하던 환상이 일거에 박살나 버린 것은 클럽에서 일제히 마스크를 벗은 남자들의 영상이 급속도로 퍼지면서였다.
    인터넷 댓글이 난장판인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지만 눈에 들어온 이상 피할 방법은 없었다. 문자로 칼날을 예리하게 갈아 장기를 들쑤셔대는 건 앨라이라고 여겼던 트위터 팔로워들도 다르지 않았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맹렬함에 보현은 극도의 불안에 휩싸였고 보통 때라면 할 리가 없는 실수를 연발했다. 실로 오랜만에 과장의 불호령을 듣게 된 그날, 수술실 간호사 단톡방에도 같은 영상이 올라왔다. 이 괴이한 춤사위는 뭐냐고, 내 환상 어쩔 거냐며, 우리는 놀 줄 몰라서 이 개고생을 하는 줄 아냐고, 얘들은 대체 뇌가 어떻게 생겨먹어서 그새를 못 참고 이러느냐며 모진 언어들이 증폭되고 복제되어 폭주하는 모습을 보현은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무료함에 대한 각오라면 이미 충분히 되어 있는 보현이었다. 대경이 제 삶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는 그런 각오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손바닥 안에서 분노를 날것 그대로 표출하는 이들은 그가 여태껏 작게나마 마음을 연 사람들이었다. 제 감정을 다 나누지 못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자신을 다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보현은 그들 안에서 완벽한 국외자이고 싶지는 않았다.
    상냥하게, 무해하게, 조용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보현은 그렇게 그들 곁에 있었다. 더 다가가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까지 억누르면서 스스로를 유폐해 온 모든 시간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보현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욕설을 내뱉었다. 저주를 퍼부었다. 주먹을 쥐고서 방바닥을 내리쳤다. 저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저들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시킬지, 저들과 같아지지 않기 위해 자기가 무엇을 얼마나 감내하고 살아왔는지를 대경에게 토해 내듯 토로하면서 몸부림쳤지만 그의 화는 영상을 유출한 자를 향하지도, 조롱하고 모욕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향하지도 않았다.

 

    나 그때 정말 많이 놀랐어.
    멍하니 소파에 파묻혀 있던 보현이 폰을 들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나 싶었어.
    보현은 대경이 폭탄처럼 보내 둔 카톡을 읽어 내려갔다.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했어.
    형도 억울했을 거라고. 나라도 그랬을 거라고.
    형이 이룬 거, 전부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라면 혼자서는 견디지도 못했을 텐데 형은 그걸 다 감당했으니까.
    그만큼 무언가를 바라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했어.
    똑같이 취급 받고 싶지 않은 마음, 다 이해할 수 있었어. 그냥 그렇게 납득해 버렸어.
    사랑했으니까.
    형을 정말 죽도록 사랑했으니까.

    화면을 내리던 보현이 손가락을 멈췄다. 그 자리에 머물던 보현의 시선처럼, 거기서 잠시 끊겼던 대경의 메시지가 다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형은?
    형이 지금 나한테 하는 행동은 뭐야?
    갑자기 선 긋고, 벽치고, 연락 씹고.
    그래서 형이 얻는 게 뭔데?
    내가 그래도 너보단 나은 인간이다, 이거 말고 더 있어?
    이거 되게 나르시스틱한 거야. 알아?
    형. 형이 미워하는 그 사람. 나 아니야.
    형이 그렇게나 할퀴고 괴롭히고 증오하는 그 사람
    내가 아니라 형이라고.

    보현은 마지막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그저 개소리일 뿐이라고, 내 심리를 조종하려 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무시하려 해보았으나 메시지들을 거듭 읽는 일만은 도무지 멈춰지지가 않았다. 눈동자가 쳇바퀴 돌듯 아래위를 오가는 동안 문자들이 얽혀들었다. 망연히 화면을 바라보는 시야가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급격히 좁아들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나도 이제 모르겠다.
    물 한 방울이 떨어지듯 채팅창 맨 아래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제는 형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모르겠어.
    머릿속에서 피어난 질문들이 좁아진 시야 앞에 차올라 일렁였다.
    우리,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
    대경의 메시지는 거기서 완전히 끊겼다.

 

*

 

    파업은 종료됐다.
    2020년 9월 5일 토요일, 새벽의 일이었다.
    전공의와 전임의들의 사표는 즉시 반려됐고 보현은 그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로비를 지나쳐 의료원 건물 밖을 나섰다. 부쩍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열흘 만에 귀가한 그는 샤워를 한 뒤 알몸으로 침대에 엎어졌다.
    잠깐 눈을 붙인 느낌이었으나 얼굴에 내린 빛을 피해 몸을 뒤척였을 때는 미처 다 치지 못한 커튼 틈으로 저물녘의 붉은 볕이 스미고 있었다. 이불 속으로 숨어든 보현은 머리맡에 둔 전화기를 습관적으로 집었다. 설핏 눈을 뜨니 카톡 알림 하나가 잠금화면에 떠 있는 게 보였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메시지를 확인한 그가 푸- 하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다른 손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메시지를 바라보다 손닿는 곳에 아무렇게나 폰을 엎어 두고는 도로 눈을 감았다.
    열흘이었다.
    원룸은 단 열흘 만에 어디 하나 마음 편히 눈길 둘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침대 옆에는 그들이 신던 슬리퍼 두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슬리퍼 앞에는 그들이 배달음식을 나눠 먹던 평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와 마트에서 같이 고른 토끼 모양 수세미는 싱크대에, 부딪히면 울리는 청아한 소리를 그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와인 잔은 식기건조대에, 그들의 일요일 아침을 책임지던 쪽빛 토스터기는 그들이 편의점 닭발을 데워 먹던 전자레인지 옆에. 화장실 앞의 규조토 매트에도, 세면대의 칫솔에도, 거울 뒤 찬장의 콘택트렌즈 보관함에도, 드럼세탁기 안의 팬티와 양말과 트레이닝복 반바지에도.
    대경과 보낸 시간이 선명히 새겨 있었다. 보현은 대경의 머릿내가 아직 연하게 남아 있는 베개를 빼내 바닥으로 던졌다. 캄캄한 이불 속에 엎드려 매트리스에 손목을 겹쳐 올린 그가 이마를 받쳤다. 억지 잠을 청하는 그의 옆에서 짧은 진동음과 함께 불빛이 번쩍였다.
    보현 군. 아니면 제가 전화 좀 드려도 될까요?
    고개를 돌려 메시지를 확인한 보현이 방금 전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보현은 그 메시지 위로 상대방이 두어 시간 전에 보낸 카톡을 다시 읽었다.
    결례인 줄 압니다만, 보현 군. 시간 될 때 연락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킨 보현이 가슴팍까지 이불을 내리고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두 메시지를 멍청히 번갈아 보던 그가 메시지 왼편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푸릇푸릇한 텃밭 풍경 정중앙에 호미를 든 중년 남성의 사진이 보름달처럼 둥글게 떴다. 양쪽 입 꼬리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린 표정은 그의 아들이 자주 지어 보인 미소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닮아 있었다. 이제는 도래하지 않을 미래를 엿본 기분에 보현은 그의 얼굴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헛기침으로 잠긴 목을 푼 보현이 사진 바로 아래에 있는 전화번호를 꾹 눌렀다.

 

    “아유, 이를 우짜노. 제가 걸라꼬 했는데예.”
    통화대기음이 채 한 번을 돌기 전에 대경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그와 같이 저녁식사를 했을 때의 불콰해진 얼굴이 떠오르는 목소리였다.
    “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깜빡 잠들어서요. 늦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아니라예. 고생 많았지요?”
    “아뇨, 뭐…….”
    우물쭈물 거리던 보현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버님. 저, 대경이랑…….”
    “에이, 말 마시소. 저도 알고 있심더.”
    보현의 말을 가로챈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갸가 자세히는 말 안 해도 대강 들었어예. 우짜겠습니꺼? 지가 자초한 괴로움, 지가 책임져야지예.”
    괴로움. 그 단어가 귀에 꽂혀들었으나 보현이 생각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전에 “오해하지 마이소.”라며 대경의 아버지가 말을 얹었다.
    “제가 통화하고 싶었던 기, 꼭 우리 아 때문은 아이라요.”
    보현은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수화기 저편에서는 쪼르륵, 하고 무언가를 따르는 소리가 났다.
    “그…… 보현 군. 딴기 아이고.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제 얘기 쫌 들어 주실 수 있습니꺼?”
    “네, 아버님.”
    “아이고 고맙심더. 참말로 고마버예.”
    연방 고맙다는 말을 하고도 “그……” 하고 외마디를 길게 빼던 대경의 아버지가 “보현 군 사정을 제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서도…….”라며 말문을 열었다. “대경이 같은 경우에는 중학교 졸업할 즈음인가, 그때부터 많이 힘들어 했심더. 그전만 해도 갸가 빵긋빵긋 잘만 웃고, 재롱도 잘 피우고, 저희 부부한테 곧잘 치근대기도 하고, 마 그런 아였거든예. 근데 어느 날 야가 갑자기 방에 틀어박히가 도통 학교도 안 갈라 카고 밥도 안 묵고 그라데예. 그래가꼬…….”라면서 회고는 장황하게 이어졌지만 그 무렵의 일이라면 보현도 대경과 종종 대화를 나눈 터였다.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에 보현이 집중을 못 하고 있는데 무언가를 또 한 모금 들이켠 그가 사근사근한 투로 물었다.
    “아마 보현 군도 그런 시기가 있었겠지예?”
    보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정의내릴 수 없던 때를 묻는 거라면 보현의 시간은 대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길었다. 착하디착한 아이가 벽장 속으로 들어가던 때를 묻는 거라면 보현은 착한 아이가 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유년기의 그가 스스로를 가둔 이유 또한 부모의 폭력과 폭언 탓이었지 정체성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지는예, 그때 겁이 덜컥 났으예.”
    건너편의 정적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계속 말했다.
    “이카다 아를 잃는 거 아인가 싶었거든예. 지금이야 갸도 우리맨치로 별난 부모 만난 기 다행이라 카지만, 그때는 별에별 생각이 다 드는 기라예. 어디서 맞고 다니는 건 아인지, 옆지기나 저나 운동한답시고 형편 으렵게 산 걸 너무 당연케 여긴 건 아인지, 나름 애를 썼다 캐도 은연중에 저희가 무슨 상처 되는 말을 한 건 아인지. 그 자슥 속을 우리가 못 헤아린 기 당췌 뭔지 알 수가 없더라고예.”
    다시 액체를 쫄쫄 따르는 소리가 들렸고 대경의 아버지는 그걸 바로 들이켰다. 단순히 술주정인가 싶어진 보현은 귀에서 폰을 떼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전화기를 내려놓은 보현이 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키와보이 그렇데예. 부모가 암만 울타리를 너르게 치고 방목한다 캐도 자슥은 결국 그 밖으로 나가삡디더.”
    빨라지는 그의 말에서 술 냄새가 점점 진하게 느껴졌다.
    “그라이께 말입니더. 갸가 솔직히 다 털어놨을 때는 저희가 을매나 기뻤는지 모릅니데이. 저희로서는 답을 얻은 거 아입니꺼? 야가 와 그래 힘들어했는지 겨우 알게 됐으니까예.”
    대경의 아버지가 상기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언제인가 대경이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는 동안 들려준 이야기이도 했다. 이제는 우리만 단도리 잘하믄 된다, 니는 아무 걱정 마라, 누가 뭐라 카든 우리 아는 우리가 지킬 끼다, 라면서 축배를 들었다는 그날을 말하며 대경은 아버지의 말투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냈다. 그때는 보현도 취기가 올라 황당할 정도로 쿨한 그의 아버지를 신기해하며 박장대소했을 뿐이었지만 돌이켜보니 그 확언 속에는 자신의 정의감을 그토록 전시하다 말고 돌연 부작위로서 비겁함을 드러낸 이 남자의 이중성이 이미 예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갑작스레 대경의 게시물을 공유하지 않기 시작했을 때 느낀 불신이 다시금 정수리를 내미는데, 그가 “근데예…….”라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갸가 또 그때처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께 제 속도 문드러지는 기라예.”
    고개를 젖힌 보현이 작게 헛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이 말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뜸을 들인 거였나. 보현은 생각했다. 언제나 아들을 지지했던 그가 할 법한 다음 말들이 보현의 머릿속에서 빤하게 이어졌다.
    “그래도 보현 군. 제가 말했지 않습니꺼. 지가 자초한 괴로움, 지가 책임져야 된다고예.”
    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니까 저도 화해해 봐라, 갸를 한번 다시 만나 봐라, 뭐 이케 어설픈 말 할라 카는 기 아입니더.”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말에 보현이 의아한 눈으로 매트리스 위에 둔 전화기를 쳐다봤다.
    “다만 마음으로라도 갸를 용서해 줄 수는 없는지, 그걸 여쭈어 보는 겁니더. 무례한 줄 알믄서도, 저는 그거를 함 부탁드려 보는 기라예.”
    보현의 시선이 폰 화면 위로 일정하게 늘어 가는 통화 시간에 머물렀다. 용서라니. 그가 허리를 둥글게 말았다. 전하지도 못할 용서가 무슨 소용인가. 그의 배와 가슴에 허벅지가 서늘하게 닿았다. 설령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무엇을 용서한단 말인가. 구겨진 몸에 고개만 치켜든 그가 폰을 응시했다. 그제야 보현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그 물건 안에 대경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의 얼굴과 그와 함께한 자신의 얼굴. 그의 몸과 거기에 엉겨 붙은 자신의 몸. 그의 음성과 습관과 행동. 그리고 메시지들. 그들이 주고받은 수많은 메시지들.
    끝내 그가 매몰차게 날려 보낸 마지막 메시지들.
    내가 아니라 너라는 그 문장 앞에서 보현은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멸을 느껴 보라며 네가 마구잡이로 뱉어낸 말들이 사실은 너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는 그 단언 앞에서 보현은 아직 어떠한 변명도 덧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부적합하고, 불법적이고, 부적절한. 없어지고, 사라지고, 생략되는. 그런 존재이기는 너도 마찬가지면서 네 앞에 상수로 놓인 생의 잔혹함으로부터 너는 항상 눈을 돌려 오지 않았느냐고. 그런데도 너와 같은 혹독한 시간을 견뎌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니 단지 그들은 그럴 것이라 네가 지레짐작한 까닭에 너는 그들에게 한없이 가차 없게 굴지 않았느냐고. 대경이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들은 의문문의 꼴을 하고서 깊숙이 파고 들어와 사위를 헤집었지만 대답도, 변명도 할 수가 없었던 보현은 침묵으로 빠져들어야만 했다.
    아버님. 저는.
    보현이 혀끝으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저는. 대경이를.
    입술을 달싹여 보았지만 이내 입을 닫은 보현이 혀끝에서 아른거리던 말들을 목구멍 안으로 쑤셔 넣었다. 긴 정적 끝에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 대경의 아버지가 날숨소리를 섞어 “그래요…….”라고 읊조렸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에이, 뭔 소리라요? 도리어 제가 죄송하지예. 제가 너무 주제 넘는 말을 해뿟심더.”
    통화를 그만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유들유들하게 민망함을 표하는 그의 지나친 배려에는 빈틈이 없어 보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조용해진 수화기 너머로 다시 술 채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현 군. 일전에 보현 군 내려왔을 때 제가 그 얘기 함 했었지예? 제 친우들 말입니더. 그노무 대의가 뭐라꼬 지 목숨 그래 내던지삣던 녀석들 말이라예.”
    “예, 아버님. 말씀하셨어요.”
    “그지예. 그랬지예.”
    술을 벌컥 들이켠 대경의 아버지가 입맛을 쓰게 다셨다.
    “사실 그거 때문이라요. 저는 말이지예, 그 일 뒤로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한 명도 잃고 싶지가 않았어예. 사람뿐만 아이라! 숨통 붙은 거는 뭐든 간에 절때로 그래 허망하이 잃고 싶지가 않았심더. 그게…… 그렇더라고예. 어떤 상처는예, 시간이 암만 흘러도 도저히 치유가 되지 않는 기 있습디더. 제가 우리 아한테 유난스레 군 것도 그 때문이라예. 딴 이유 없심더. 그러니까 보현 군.”
    고조되어 가던 목소리를 낮춘 그가 보현을 가만히 부르더니 한 차례 숨을 골랐다.
    “저는예, 보현 군도 살았으면 좋겠심더.”
    그가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보현 군도 잘……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으예.”
    보현이 고개를 천천히 떨궜다.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심더. 그래가 보현 군이랑 통화하고 싶었던 기라예.”
    대경의 아버지가 말을 마치고는 후, 하고 옅게 숨소리를 냈다. 두 팔로 정강이를 그러모은 보현의 굽은 몸통 안으로 허벅지 앞쪽이 따스하게 닿았다. 정강이를 더욱 세차게 감싸 안으며 마른침을 삼킨 그가 간신히 입을 떼었다.
    “……예, 아버님.”
    “그래요, 그래요. 보현 군. 전화 주셔서 고맙심니더.”

 

 

   공원 너머는 철길이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염천교 아래를 지나온 열차가 공원 옆을 지나쳤다. 폰을 내려 둔 보현이 엉덩이를 끌어 창가로 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커튼을 슬며시 젖히니 공원 곳곳의 단풍이 노을빛에 울긋불긋 물들고 있었다. 마스크를 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외투를 걸치고서 두셋씩 무리지어 산책을 했다. 짧은 가을을 조심스레 만끽하는 저 사람들처럼 보현도 그와 함께 저 공원을 자주 걸었다.
    열차는 서소문고가차로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보현은 건물에 가려 시야에서 사라지는 열차의 꽁무니를 지켜봤다. 행신으로 향하는 저 열차가 거쳐 왔을 곳들을 떠올리면서 그는 대경과 또 그렇게 무던히도 걸었던 때를 생각했다. 그것은 대경의 본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의 정오 즈음이었다. 상견례라도 마친 듯, 후련한 마음으로 대구 중심가로 나온 그들은 기나긴 장마 사이에 찰나처럼 쨍했던 거리를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계산성당 앞에서 마스크를 낀 결혼식 하객들이 오밀조밀 모인 모습을 걱정스런 눈초리로 구경하던 그들은 성당과 매일신문사 건물 사이의 좁은 길목으로 들어갔다. 약령시의 미로 같은 골목을 정처 없이 거니는 동안 구수하게 코끝을 맴돌던 한약 냄새가 옅어지면서 어린 보현이 술안주 심부름을 하러 종종 오곤 했던 염매시장이 나타났다. 시장 초입에서 풍겨 오는 튀김 냄새에 출출해진 그들은 승용차 두 대가 겨우 비껴 지나가는 종로를 따라 만경관 방면으로 내려가며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대화를 나누었는데 보현이 문득 진골목길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화교학교가 있는 그 일대에는 대대로 이어져 온 중국집들이 몇 군데 있었고 그중에서도 복해반점은 보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애를 하던 시절에 자주 갔었다는 곳이었다.
    그때, 그들이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홍등이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간판을 말없이 쳐다보며 보현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대경을 데리고 그곳으로 들어가 돼지마늘덮밥과 짬뽕을 나눠먹은 다음 둘은 중앙로를 건너 대구백화점 광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조용한 동성로를 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시내는 한산했고 십 년이라는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있네, 맞아, 이런 곳이 있었지, 라며 여전히 그곳을 지키는 다른 많은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다 대경이 그들 옆을 스치는 신발 매장 앞의 좌판을 힐끔거리고는 “이거 잘 어울리겠는데?”라며 보현의 팔을 끌어당겼다.
    “뭐래? 내 취향 아니거든?”
    “왜? 진짜 잘 어울릴 거 같다니까?”
    “야, 됐어. 돈 아까워.”
    손사래를 치는 보현을 두고 쏜살같이 매장 안으로 들어간 대경은 자기가 고른 크룩스 한 켤레를 결재하면서 매장 밖에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친구를 마주보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킥킥거렸다. 그러고서 언제인가, 대경은 왜 아직도 그때 산 크록스가 고스란히 옷장 안에 있느냐고 심통을 냈으나 보현으로서는 아까워서 신지 못한 것도, 부끄러워서 신을 수 없었던 것도 모두 에누리 없는 진심이었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지만 못내 저어되고야 마는 것. 보현은 그런 것들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했고 염천교 밑을 빠져나온 열차의 선두가 공원 옆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대경과는 만나야 할까.
    아마 얼굴은 보고 말해야겠지. 그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겠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보현은 이 말만큼은 꼭 전하고 싶었다. 너를 만나 칠흑 같았던 내 캔버스에 한 번이나마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고. 이 말에는 어떤 회한이나 미화 따위가 담겨있지 않으며, 나는 그저 너에게 잠시 화가 났을 뿐이었다고. 네가 누리는 어떤 것에는 그렇게 감사할 줄 알면서도 다른 어떤 것에는 놀랍도록 무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화가 났었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화가 난 건데, 그런데, 정말 그것뿐이야. 나도 잊고 있었으니까. 내가 딛고 선 자리가 어디인지를 나도 보려 하지 않았으니까. 너를 어디까지 용납해야 하는지, 용납하고 살 수는 있는지 나는 내내 물었지만 어쩌면 네 말대로 내가 할퀴고, 괴롭히고, 증오했던 그 사람은 나였는지도 몰라.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만, 비록 그게 나라고 할지라도, 나는 이제 너와 함께했던 모든 그림이 지워진 하얀 캔버스에 혼자 남아 내가 정말 견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복잡하고, 약하고, 때로는 악할지라도 어쨌든 나는 나를 견딜 거라고. 반드시 견디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보현은 곧 박스를 꺼내어 뜯어보게 될 것이다. 며칠 뒤 그는 제각기 다른 붉은빛으로 화려한 무늬를 그리는 크록스에 동전만 한 지비츠 하나를 꽂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지개 문양의 지비츠가 꽂힌 그 크룩스를 ‘윤보현’이라 적힌 수술실 신발장의 전용 칸에 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공원 옆을 지나가는 열차가 고가차로 아래로 들어가는 모습을 침대에 걸터앉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가슴께로 내려온 선로차단기 앞에 나란히 서서 검지 끝을 맞잡은 채 그들 앞을 빠르게 스쳐가는 저 열차를 바라보았던 지난봄의 찬란한 저녁처럼,
열차 안은 환했고 승객은 보이지 않았다.

 

 

[참고문헌]
마사 누스바움, 『분노와 용서』 (뿌리와 이파리, 2018)
서울퀴어콜렉티브, 『타자 종로3가/종로3가 타자』 (서퀴콜프레스, 2020)
성소수자 부모모임, 『커밍아웃 스토리』 (한티재, 2018)
전주희, 「정동으로서의 ‘공정’ – 누가 고통을 말하는가」 (웹진 인-무브, https://en-movement.net/288)
희정,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오월의 봄, 2019)

 

 

 

 

 

 

 

 

 

 

이현석
작가소개 / 이현석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가 있다. '어' 동인.

 

   《문장웹진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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