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통 - 김개영
목록

 

[단편소설]

 

 

뷔통

 

 

김개영

 

 

    아직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맥도날드 매장 2층, 바 테이블에 앉아 K는 귀를 기울인다. 어제 K는 같은 자리에 앉았다가 소리를 들었다. 지하 깊은 곳을 맴돌던 소리는 순간, 사정권에 든 먹잇감을 덮치듯 지상으로 솟구쳤다. 땅이 꺼지며 도시의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릴 것 같은 소리였다. 매장을 울리던 팝음악과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의 음성은 싹 지워졌다. K는 오늘 그 소리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매장에 들어온 지는 20분 정도 지났다. K는 차갑게 식은 햄버거의 포장을 벗긴다. 속을 조금이라도 채워 놔야 한다. 소고기 패티와 피클, 양상추, 토마토 등의 내용물 사이로 머스터드소스가 흘러내린다. 배를 가른 생선 속 내장처럼 비릿한 냄새가 풍긴다. 욕지기가 솟는다. 억지로 햄버거의 가장자리를 한입 문다. 두어 번 씹고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긴다.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햄버거를 문다. 위장이 더 요동치기 전에 K는 햄버거를 목구멍 속으로 우겨 넣는다.
    창 아래 매장 앞으로 시선을 던진다. 두 명의 청년이 화살표 모양의 광고판을 든 채, 현란한 춤동작을 선보인다. 새로 출시된 메뉴를 알리는 사인스피닝 광고다. 비보이 동작과 연동된 고난도의 트릭과 퍼포먼스에 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춘다. 도로 건너에는 사각의 거대한 건물이 웅크리고 있다. 어둠에 휩싸인 그것은 불야성을 이룬 주위와 뚜렷이 대비된다. 창문 하나 없이 대리석으로 마감한 외벽은 중세의 성벽처럼 견고하다. 정기세일이라고 적힌, 빛바랜 거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이었던 건물이다. 건물 앞에 작은 광장이 있지만 역시 어둡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통행과 차량 주차를 막기 위해 볼라드를 촘촘히 박고 그 위로 쇠줄을 연결했다. 광장 한편, 건물의 오른쪽 주차장 입구에 경비실이 있다. 예전에는 주차관리실로 쓰였던 백화점의 부속 건물이다. 경비실 창 너머에서 김씨가 소주잔을 홀짝이며 티브이를 보고 있다.
    누군가 뒤에서 K의 어깨를 두드린다. 고개를 돌리자 트레이를 든 남자가 서 있다. 뭐라 뭐라 말하고 있지만 매장 전체를 울리는 음악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다 먹었으면 자리를 비켜 달라는 말인 듯하다. K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크르릉
    소리였다. 굶주림에 지친 육식동물의 울음소리. K는 갑작스런 현기증을 느끼며 의자에 주저앉는다. 소리의 진동이 K의 발을 통해 위장까지 전달된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것처럼 메스꺼움과 울렁거림이 소리가 끝나고도 지속된다. K는 두 손으로 양쪽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다.
    – 어디 불편하세요?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남자가 말한다. 주위 사람들도 전혀 동요가 없다. 그러나 K의 귀에는 또렷이 들렸다. 거대한 H빔이 서로 맞부딪쳐 빈 공간을 공명하는 소리. 지하 어딘가가 아득한 허공 속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지상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소리. K는 바 테이블에서 일어난다. 남자가 잽싸게 자리를 차고앉는다. 트레이의 음식물과 컵, 포장지 등을 쓰레기통에 넣고 매장을 나온다. 마침 푸른 신호등이 들어온다. 수많은 인파가 일제히 횡단보도로 내려선다. K도 발걸음을 서두른다. 근무시간까지는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바로 경비실로 향한다.
    K가 문을 열자 김씨는 마시고 있던 소주병을 잽싸게 책상 아래로 감춘다. 눈의 초점이 흐릿한 것을 보니 이미 꽤 마신 눈치였다. 거 기척 좀 하지, K임을 확인한 김씨는 책상 밑에서 다시 병을 꺼낸다. 김씨 앞에는 국물만 남은 짬뽕 한 그릇이 놓여 있다. 한잔 할 거냐며 종이컵을 들어 보인다. K는 손사래를 친다. 김씨가 남은 소주를 물마시듯 들이켜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이 쉰을 앞둔 홀아비의 퀴퀴한 냄새가 코끝에 머문다. 알코올 병동을 제집 드나들 듯이 했던 사람이었다. 구청 직원 백으로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났지만 아직 용케 버티고 있다. 김씨는 경비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는다. 비똥은 이냥 돌아오지 않을 모양이야, 허리띠를 채우며 김씨가 말한다. 경비실에서 맡아 키우던 고양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확한 이름은 ‘뷔통’이지만 김씨는 ‘비똥’이라고 불렀다. 고급종인 러시안 블루이다. 얼굴에 밴드 좀 떼라, 조폭 똘마닌 줄 알겠다, 문을 열다 말고 김씨가 말한다. 며칠 전 뷔통에게 할퀸 자국이 여태 아물지 않는다. 경비실을 나선 김씨는 허우적거리듯 손을 흔들며 도로를 건넌다. 그의 뒷모습이 퇴근길의 인파에 묻힌다.
    K는 머리를 거울에 갖다 대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소주잔 크기의 희고 둥근 모양이 거울에 비친다. 갑작스레 나타난 탈모 증상이었다. K는 머리 한가운데 푹 꺼진, 흰색의 환부가 어쩐지 인터넷상에서 본 적 있는 싱크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상의 것을 일거에 삼켜버린 채 침묵하는 텅 빈 공간. 한참 후에야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탈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뇌의 CT 사진을 보여줬다. 의사는 조속한 수술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컴퓨터 화면에서는 십 원짜리 동전만 한 흰색 덩어리가 성운처럼 빛나고 있었다.
    K는 생각났다는 듯이 가방에서 약을 꺼내 물 없이 삼킨다. 단추를 풀어 상의를 벗는다. 앙상한 상체가 드러난다. 목과 팔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가늘다. 러닝셔츠를 가슴까지 걷고 몸을 돌려 본다. 등뼈가 일직선으로 튀어나와 있다. 원형탈모가 생긴 후로 10킬로그램이 빠졌다. 그만큼 몸이 세상과 닿는 면적이 줄어든 셈이었다. 그건 만나는 사람이 적어지고 움직이는 동선이 좁아지는 것과 궤를 같이했다. 줄어들고 좁아지다가 마침내 점 하나의 마침표로 남는 것. 죽음이 그렇게 깔끔하기만 하다면 죽음 따위 전혀 두렵지 않을 거라고 K는 생각한다. 캐비닛에서 경비복을 꺼내 입는다.
    K는 김씨가 찍어 놓은 순찰 카드를 꺼내 근무일지에 붙여 놓는다. 새 카드를 순찰 시계에 넣고 태엽을 감는다. K가 아르바이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건물은 신도시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백화점은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었던 데다, 증축 공사로 균열이 생기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결국 3년 전 최종부도 처리되었다. 아직 건물 소유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건설 브로커들에 의해 숱한 개발 계획이 세워지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 수익성을 이유로 도중에 계획을 철회했고 일부는 사기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건물의 터가 좋지 않을뿐더러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보조 공사가 늦어지면서 건물은 왼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
    K는 일 년 전부터 야간 경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원 파트타임 게시판에 올라온 것을 겨우 따낸 것이다. 주간에는 공무원시험 대비학원을 다닌다. 두 사람이 하루 2교대로 일하지만 사정이 있으면 서로 합의하에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야간 근무는 주간 근무에 비해 페이가 높을뿐더러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가끔 근태관리라는 명분으로 법적 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 사무실로부터 전화가 오지만 다분히 형식적이다. 네 시간마다 한 번씩 건물과 야외 주차장을 둘러보며 순찰 시계에 초소 키를 펀칭하는 게 주된 일과이다. 순찰 시계를 조작해 미리 찍는 등의 융통성만 발휘하면 잠도 충분히 잘 수 있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다가 경비실 앞에서 멈춘다. 인근 중국집의 노랑머리 배달원이다. K와 같은 고향 출신인 그는 서울에 상경한 지 반년 남짓 된다. 그는 경비실에 들를 때마다 뷔통을 찾곤 했다. 뷔통을 쳐다볼 때면 평소의 불량스러운 태도는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김씨는 노랑머리가 뷔통을 훔쳐갔을 거라고 의심했다. 눈으로 알은체를 한 노랑머리는 경비실로 들어와 짬뽕 그릇을 챙긴다.
    – 중국집에서는 무슨 소리 같은 거 안 들려?
    돌아서는 노랑머리의 뒤에 대고 K가 묻는다.
    – 네?
    노랑머리가 휙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두 눈에는 호기심이 어려 있다. K는 고개를 흔들며 별거 아니라고 손을 흔든다. 노랑머리는 실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경비실을 나간다. 헬멧조차 쓰지 않은 채, 달리는 차 사이를 곡예 하듯 사라진다. 오토바이 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배달 일을 시작했다는 노랑머리의 말에 김씨가 혀를 두르던 일이 떠올랐다.
    습관처럼 수험서를 편다. 아무렇게나 펼친 책장에 명함 한 장이 꽂혀 있다. 고급스런 재질의 종이 위에 달랑 전화번호만 적혀 있다. 상호도 주소도 심지어 이름조차 인쇄되어 있지 않다. 번호의 주인은 몇 달 전 열렸던 바자회에서 내레이터 모델로 일하던 여자였다. 여자는 뷔통의 주인이기도 했다. 시의 한 여성 단체가 주최한 바자회는 건물 앞 광장에서 일 주일간 계속되었다. 수십 개의 야외행사용 텐트를 치고 의류와 일용품, 식료품 등을 팔았다. 무지개 모양을 본 딴 입구에는 성능 좋은 오디오가 설치되었다. 그 앞에서 A급 내레이터 모델들이 번갈아가며 행사 홍보를 맡았다. K는 경비실 너머로 춤을 추는 여자를 흘끗 훔쳐보곤 했다. 12월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흰색 부츠와 핫팬츠, 배꼽티를 입었다. 팔등신의 마른 몸과 긴 생머리, 유독 작은 얼굴을 가졌다. 춤을 추고 있지 않았다면 백화점 마네킹과 얼핏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행사가 열리던 첫날, 여자 일행이 경비실에 찾아왔다. K가 김씨와 임무 교대를 할 즈음이었다. 자신들의 소지품을 맡아 달라고 했다. 여자의 손에는 박카스 두 병이 들려 있었다. 여자는 나름대로 붙임성이 있었지만 표정은 어딘가 비어 있었다.
    – 사시끼가 있어.
    여자들이 나가자 김씨가 말했다.
    – 사시끼요?
    K는 박카스 병을 두 손으로 말아 쥐며 물었다.
    – 사팔뜨기 말야, 심한 건 아니지만.
    점퍼를 몸에 걸치며 김씨가 답했다. 아무것도 주목하지 않는, 공허한 눈동자의 모습이 스쳐간다. 마치 허공에 뜬 마네킹의 시선처럼. 언젠가 K는 여자의 가방을 뒤져 본 적이 있었다. 여자의 가방은 꽤 알려진 명품 브랜드였다. 지갑과 생리대 두어 개가 먼저 눈에 띄었다. 폴더형 지갑을 꺼내들었다. 가방과 같은 브랜드 제품이었다. 학생증이 꽂혀 있었다. 여자가 다니는 학교는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대학이었다. 지갑을 닫고 다시 넣으려 하자 뭔가가 우수수 떨어졌다. 같은 모양의 명함들이었다. 이름도 주소도 상호도 없이 전화번호만 적힌 붉은색 명함이었다. K는 명함 한 장을 책에 꽂아 놓았다.

 

    건너편 맥도날드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하다. 매장 출입구는 M자형의 노란색 로고로 장식되어 있다. 마치 입을 크게 벌린 입술 모양이다. 형광 조명이 매장 안의 사람들을 녹여버릴 기세로 쏟아진다. 매장 안의 사람들은 위 속에서 소화되는 음식물처럼 꾸역꾸역 서로를 파고든다. 사인스피닝을 하던 청년들은 사라지고 없다. 맥도날드가 입점해 있는 7층 건물은 피부과 병원, 약국, 교회, 외국어학원, 마사지 숍, 미용실, 편의점, 네일 스토어 등이 마구 뒤섞여 있다. 맥도날드는 그 모두의 출구, 혹은 입구인 양 노란 입을 벌리고 있다. 그 입으로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먹고 토한다.
    8시를 알리는 시계의 전자음이 들려온다. 순찰을 돌 시각이다. 순찰 시계와 휴대용 전등을 들고 경비실을 나선다. 전자키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건물 1층에 들어선다. 불을 켜자 3층 높이의 드넓은 홀이 펼쳐진다. 곧이어 호화로운 샹들리에와 황금빛 타일로 장식한 거대한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 위쪽에는 ‘Empress avenue’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백화점 명품매장 이름이다. 대리석과 고급 원목으로 마감된 매장 내부가 눈부시다. 화장품이나 각종 시계, 액세서리가 전시되었을 유리 판매대가 차갑게 반짝인다. 매장 입구마다 새겨진 갖가지 명품 로고가 빛난다.
    에스컬레이터가 위치한 기둥 사이로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격조 있는 상류문화’ 현수막 지지선 하나가 끊겼다. 전시 거치대와 판매대 모두 텅 비어 있다. 바닥 곳곳에는 버려진 화장품 용기와 포장박스, 쇼핑백, 깨진 거울 들이 즐비하다. 발밑에서 유리조각들이 으스러진다. 초소 키는 매장 중간에 위치한 에스컬레이터에 설치되어 있다. 순찰 시계에 초소 키를 펀칭한다. 철컥, 펀칭 소리가 홀을 울린다.
    2층 여성복 매장으로 올라 전등 스위치를 올린다. 순간 선도 면도 느낄 수 없는 흰색 그 자체로 빛나는 거대한 큐브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2층 매장은 바닥과 벽면 내장이 모두 흰색 인조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다. 천장도 표면이 매끄러운 플라스틱 재질의 흰색이다. 어둠이 새어드는 창문 따위는 없다. 곳곳에 나체의 마네킹이 서 있거나 쓰러져 있다. 옷걸이가 마네킹의 머리와 함께 뒹군다. 한쪽 편에는 미처 팔지 못한 옷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그 위로 하얀 가루가 내려앉았다. 얼마 전에 천장 타일이 떨어져 내리면서 생긴 거였다.
    전시대 밑단의 문을 연다. 각종 명품 브랜드의 종이 쇼핑백이 가득 차 있다. K는 얼마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쇼핑백을 팔고 있다. 명품을 살 수 없는 여자들이 명품 로고가 새겨진 쇼핑백을 찾는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였다. 건물에는 수천 장의 쇼핑백이 널려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질 좋은 종이로 만든 쇼핑백은 흠 하나 없이 깨끗하다. 장당 만 원씩 거래되었다. 다섯 장의 쇼핑백을 챙긴다. 내일 퇴근하면서 택배로 보낼 것들이다.
    딸랑 딸랑
    어디선가 뷔통의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며칠 전 K는 순찰을 돌다가 이곳에서 뷔통과 마주쳤다. K의 출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우아한 발걸음으로 매장을 거닐었다. 태연을 가장한 녀석의 눈빛에는 K에 대한 경멸이 서려 있었다. 뷔통은 온갖 시중을 드는 김씨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연 것 같았지만 K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K는 잡히는 대로 옷걸이 하나를 주워 뷔통에게 던졌다. 뷔통의 머리통을 정확히 가격했다. 뷔통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전시대 사이로 사라졌다.
    매직 거울로 된, 피팅룸의 문을 연다. 수험서와 옷가지, 신발과 가방, 컴퓨터와 게임기 등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고시원을 나오면서 가져온 K의 이삿짐이었다. 야간 근무를 서면서 굳이 고시원에서 지낼 필요가 없어졌다. 어차피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대부분을 학원과 도서관에서 지냈다. 잠은 경비실에서 자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부족하면 인근 찜질방을 이용했다. 옷걸이에 빨래가 널려 있다. 어제 세탁기로 돌린 것들이다. 빨래는 바싹 말라 있다. 피팅룸 의자에 앉아 빨래를 개어서 박스 속에 넣어 둔다. 바로 옆에는 턴테이블이 놓여 있다. 빈티지 콘셉트로 쓰였을 매장 전시품이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 턴테이블은 놀랍게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크르릉
    소리가 텅 빈 매장에 울려 퍼진다. 동시에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K는 벽에 손을 짚고 마른 몸을 떤다.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온다. 햄버거의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어지럼증이 일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하다. 눈앞이 하얘진다. K는 문을 닫고 룸 안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두 팔로 두 무릎을 끌어안는다. 두 무릎 사이로 머리를 묻고 힘을 준다. 어지럼증이 다소 진정된다. 전원을 켜 레코드판 위에 카트리지를 살짝 올려놓는다. 이름 모를 올드 팝송이 잡음을 내며 울려 퍼진다.
    김씨의 말에 의하면 소리는 지하 저수조에서 들려오는 대형 펌프의 기계음이라고 했다. 지하수가 일정 수위까지 차오르면 자동적으로 펌프가 작동했다. 지하에 내려가지 않는 이상 보통 사람은 잘 들리지 않는 소리라고 했다. 그러나 K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그 소리는 지하에서 올라와 중앙 에스컬레이터의 통로를 따라 분수처럼 각 층에 고루 퍼져 나간다. 소리가 솟구칠 때마다 건물의 균열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지하주차장은, 기둥은 물론이고 천장에 금이 가 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더구나 요즘 들어 그 소리는 더 자주, 더 크게 들린다. 요즘에는 건물 건너편 맥도날드 매장에서도 들을 수 있다. 기계음과 회전음이 뒤섞여 있지만 왠지 인공이 만들어낸 소리 같지는 않다.
    – 니가 밥을 안 먹어서 그래.
    언젠가 김씨가 소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전에는 교대시간에 맞춰 김씨와 아침, 저녁을 함께 들곤 했다. 경비실 한편에 간단히 요리를 할 수 있는 싱크대가 마련되어 있다. 김씨가 음식을 만들고 K가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점점 식사량이 줄어들더니 언제부턴가는 한두 숟가락 먹기도 힘들어졌다. 그나마 억지로 먹은 음식은 토하기 일쑤였다. 원형탈모증에 이어 어지럼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K의 머릿속에서는 아득히 성운이 퍼져 나간다. 뇌신경의 오작동이 분명하다. K는 유투브에서 우주가 한 화면에 담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별과 성운들로 가득한 그 사진은 뇌의 뉴런 집합체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K는 어쩌면 우주는 형용할 수 없이 거대한, 어떤 유기체의 뇌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뇌 또한 각각의 우주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K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성운이 퍼질 때마다 하나의 우주가 종말 하는 상상을 한다. 우주가 K의 머리 밖으로 팽창하는 광경을 그려 본다. 붉은 뇌수가 빈 허공으로 솟구친다.
    한우 농장을 운영하던 K의 부모는 차례대로 인근 바위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소 값이 폭락해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뇌수가 바짝 마를 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의 사체를 확인했을 때, K는 머릿속 어딘가가 폭삭,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유도 없이, 어떤 전조도 없이 멀쩡했던 세계가 눈앞에서 순간 사라지듯이. 성운은 아마 그때부터 나타나고 있었을지 모른다.

 

    K는 턴테이블의 전원을 끄고 밖으로 나온다. 마네킹 하나가 허공에 시선을 던진 채 서 있다. 공허한 시선이다. 벌거벗은 마네킹의 몸이 조명 아래 탐스럽게 빛난다. K는 마네킹 앞으로 다가가 순찰 시계와 휴대용 전등을 내려놓는다. 뱀파이어처럼 입을 크게 벌려 마네킹 목을 무는 시늉을 한다. 마네킹을 끌어안고 한 손으로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마네킹의 유방에 입을 맞춘다. 서늘한 기운이 입술로 전해져 몸을 훑는다. 아랫도리가 고개를 든다. K는 서둘러 허리띠를 푼다.
    이봐 뭐하는 거지?
    K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든다. 건너편에 서 있는 마네킹 하나가 비웃음을 흘린다. 그쪽으로 다가간다. 연달아 두 번 훅을 날린다. 마네킹이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날카로운 통증이 주먹 전체에 퍼진다. 고개를 돌리자 여러 개 금이 간 매직 거울 속에 K가 유령처럼 서 있다.
    3층 스포츠 용품 및 신사복 매장과 4층 전자제품을 거쳐 5층 침구류 및 생활용품 매장까지 차례차례 순찰 시계에 펀칭한다. 펀칭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시간은 죄수처럼 감금된다. 6층 식당가를 훑고 마지막으로 옥상의 하늘정원에 올라선다. 3월의 찬 공기가 K의 폐 속 깊숙이 들어찼다가 빠져나간다. 하늘정원은 한때는 값비싼 꽃과 정원수가 가득하고 분수와 물길이 있었다. 밤에는 로맨틱한 조명이 켜지고 감미로운 음악이 흘렀다. 지금은 제멋대로 자란 잡풀과 잎 하나 없이 검게 말라죽은 나무, 무너진 인공 구조물들을 덮은 담쟁이 넝쿨이 전부이다. K는 가끔 김씨와 이곳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그럴 때면 인류 중에서 그들만이 살아남은 기분이 들었다.
    – 걸신들린 듯이 처먹어대더니만.
    언젠가 김씨가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백화점 건물을 증축하면서 지반이 내려앉은 걸 말하는 거였다. 언제 무너질지 몰라, 김씨는 덧붙였다. K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 연기를 깊이 들이쉰다. 포만감이 느껴진다. 입맛을 잃으면서 흡연 양은 배 이상 늘었다. 연기를 길게 내뱉는다. 옥상 너머로 펼쳐진 스카이라인이 마치 미래 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도시는 어둠 속에서 더 큰 생명력을 발휘한다. 아마 상공에서 바라본다면 도시는 온통 화려한 빛의 향연처럼 보일 것이다. 자동차 불빛과 가로등, 쇼윈도와 간판, LED 조명으로 치장한 거대 건물과 광고 구조물들. 그 한가운데에서 이곳만이 검고 깊은 입을 벌리고 있으리라.
    크르릉
    열린 옥상 문으로 소리가 솟구친다. K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소리는 한 마리 굶주린 맹수가 되어 옥상 정원으로 뛰쳐나온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맹수는 K에게 다가간다. K의 마른 몸이 떨린다. 그런데 맹수는 K를 지나쳐 옥상 정원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른다. 그러곤 그 너머로 힘껏 몸을 날린다. 거대한 포효소리가 밤의 허공을 가른다. K는 담배를 비벼 끄고 그쪽으로 달려간다. 도로 한가운데에 맹수가 서 있다. 피투성이의 사람 하나를 입에 물고 이쪽을 바라본다.

 

    경비실로 내려왔을 때, 도로는 경찰차와 앰뷸런스, 정체되어 있는 차들과 이 광경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1.5톤 트럭 밑에 오토바이가 깔려 있다. 트럭 아래에서 오토바이 운전자로 보이는 사람의 다리가 꿈틀댄다. 뒤를 따르던 자동차들이 멈추면서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 간다. 중화루라고 붉은 글씨가 쓰인 철가방과 그릇이 널브러져 있다. 노랑머리가 일하는 식당 이름이다. 들것이 막 앰뷸런스에 실린다. 들것에 누운 사람이 죽었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쓰러진 오토바이 근처에는 피가 흥건하다. 경찰이 곳곳에 흰색 스프레이로 사고 현장을 표시한다. 사고자가 누워 있던 곳에는 사람 형체를 그려 둔다. 그것은 육체에서 갓 떨어진 넋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자 중국요리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토바이의 음식물 통이 넘어지면서 음식물 찌꺼기가 쏟아져 내린 것이다. 냄새 때문인지 현기증이 인다. 도로가 꺼질 듯 출렁인다. 가드레일에 두 손을 짚는다. K는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건물이 어둠 속에서 몸을 뒤척인다. 웅크리고 있던 건물은 금방이라도 일어설 듯하다. 속도 울렁거려 온다. 아까 먹었던 햄버거가 기어코 올라온다. 토사물이 아스팔트 위에 쏟아진다.
    괜찮으세요? 경찰관 한 명이 K에게 티슈를 건네며 말한다. K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관은 K의 신상명세를 기입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고 현장과 관련해서 목격자 진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아까부터 목격자 확보에 애를 먹는 모양이었다. 경찰의 요구에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발길을 돌렸다. K는 경찰관에게서 받은 수첩에 엉뚱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는다. 사고 수습은 신속하게 끝난다. 사고자는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트럭 운전사는 경찰차를 타고 사라진다. 전문 청소도구를 구비한 사람들이 피와 음식물을 치운다. 경찰들은 통행을 막았던 고깔 모양의 라비콘을 하나둘 트럭에 싣는다. 거리는 곧 활기를 되찾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동차의 물결이 사고현장을 삼킨다.

 

    경비실에 돌아와 문을 닫자 갑자기 적막이 몰려든다. 낡은 냉장고 소리가 크게 퍼진다. K는 의자에 주저앉는다. 밤 9시를 넘긴 시간, 창 너머 맥도날드 매장은 여전히 붐빈다. 1, 2층 할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까와 다른 게 있다면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빠짐없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거나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한 남자가 창가 쪽으로 난 바 테이블에 앉는다. 앉자마자 하루치 피곤을 악물 듯, 벌린 입속으로 햄버거를 밀어 넣는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남자의 위 속에서 천천히 소화되고 있는 음식물이 K는 왠지 환히 보이는 듯하다.
    책을 펴자 여자의 명함이 여전히 그 자리에 끼워져 있다. 여자들은 매일 경비실에 들렀다. 주로 몸을 녹이거나 소지품 보관과 배터리 충전을 부탁했다. 김씨가 있을 때는 여자들과 함께 중국음식을 시켜 먹었다. 행사 마지막 날, 여자는 뷔통을 사흘만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여자의 품속에는 한눈에 봐도 고급종일 것 같은 고양이가 안겨 있었다. 부드러운 은빛 털과 초록색 눈, 뾰족한 귀를 가졌다. 목에는 장식용 방울이 걸려 있었다. 잔뜩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이사 문제 때문에 데리고 있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 이름은 뷔통이에요. 루이뷔통 할 때 뷔통.
    K는 실소를 흘렸다.
    – 어때요, 기품있죠? 이래봬도 러시안 블루예요.
    처음엔 사람을 좀 가리는 편이지만 한번 친해지면 정이 깊은 고양이라고 했다.
    – 고시생인가 봐요?
    여자가 K 앞에 놓인 행정법 기출문제집을 흘끔거리며 말했다. K는 공무원시험으로 틀기는 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사법고시 준비를 했다.
    – 사실, 이제 그만둘 생각예요.
    K가 말했다. 뷔통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여자는 왜냐고 물었다.
    – 제가 합격하면 마을 잔치하겠다고 아버지가 사놓은 소가 있었어요.
    책상 위를 걷는 뷔통의 모습은 우아했다. 마치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걷는 것 같았다.
    – 그런데요?
    힐끗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니 여자의 눈은 더 사시가 되어 있었다.
    – 그 소가 늙어 죽었거든요.
    K는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말뜻을 알아차린 여자는 숨넘어갈 듯 웃었다. 아버지도 돌아가셨죠, K가 덧붙이자 여자는 웃음을 멈췄다. 뷔통을 맡기고 떠난 뒤, 여자는 종적을 감췄다. 뷔통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김씨와 K는 사료를 먹이통에 놓아두고 경비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질색할 줄 알았던 김씨는 의외로 뷔통을 알뜰하게 챙겼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칠 때마다 도로 위에 그려진 실루엣이 일어섰다가 다시 눕기를 반복한다. 그 실루엣의 주인이 노랑머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중국집에 전화 한 통만 하면 알 수도 있지만 관둔다. 한 치 앞의 어둠만을 비추는 헤드라이트 불빛. K는 그 한 치 너머의 어둠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여자의 명함을 쥐고 망설이다가 K는 휴대폰을 꺼내 든다.
     지금…가능?
     번호를 입력한 뒤 문자를 보낸다.
     어디…?
    채 5분도 안 되어 답장이 뜬다. 왠지 메시지에 경계심이 잔뜩 묻어난다.
     H역 맥도날드 앞.
     N백화점 건너편?
     옙
     숏?
     풀!
     12시 이후, OK?
     OK
    시계바늘이 11시를 가리킨다. TV를 켠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이웃 나라의 도시 풍경이 나온다. 각종 쓰레기가 넘쳐나는 폐허의 한가운데 텅 빈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다. 그것은 언뜻 거대 동물의 뼈대처럼 보인다. 화면은 쓰나미가 도시를 덮치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심해의 바닥이 갈라지면서 올라온 파동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한순간 도시의 살을 발라낸다.
    몸에서 역한 냄새가 풍긴다. K는 팔을 들어 큼큼, 하고 자신의 옷 냄새를 맡는다. 중국요리와 토사물 냄새가 섞여 있다. 아까 경찰이 건넨 티슈로 닦고 나서 제대로 씻는다는 것을 깜박했다. 경비실 안쪽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선다. 변기와 세면대뿐이지만 세탁기도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거울 속에 하얀 얼굴이 떠 있다. 왼쪽 뺨의 밴드를 뜯어낸다. 딱지가 붙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핏물이 비친다. 뷔통이 내고 간 상처다.
    맡겨진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뷔통은 새벽마다 외출을 하곤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러시안 블루는 집 안에만 머물 뿐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잡종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언젠가, 아침에 돌아온 뷔통은 어딘가 발걸음이 어색했다. 뒷다리가 앞다리의 보폭에 반 박자씩 느린, 기묘한 모습으로 걸었다. 낡은 가죽소파 위로 사뿐히 올라갔다. 머리를 숙여 옆구리 깊숙한 곳을 열심히 핥았다. 자세히 보니 뒷다리의 대퇴부 부위가 찢겨 있었다. 뭔가 날카로운 물체에 긁히거나 물린 것 같았다. K는 뷔통의 상처를 자세히 살폈다. 하얀 뼈까지 드러나 보이는 심한 열상이었다. 상처는 약을 발라서 나을 것이 아니었다. 날이 밝으면 동물병원에서 봉합수술을 받아야 할 듯싶었다. 캐비닛 위에서 비상약 함을 꺼냈다. 일단 덧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처 위에 조심스럽게 약을 떨어뜨렸다. 갑작스런 통증에 놀란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K의 뺨을 할퀴었다. 잽싸게 몸을 피한 녀석은 문 쪽에서 털을 세운 채, 갸르릉, K를 노려보았다. 뺨에 손을 갖다 대자 손에 제법 피가 묻어 나왔다. 조용히 살의가 지나갔다. 마침 출근하는 김씨가 문을 열었다. 그 길로 밖으로 나간 뷔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을 씻고 이를 닦는다. 거울에 비친 K의 상의 깃 부분에 토사물이 묻어 있다. K는 상의를 벗어 던진다. 목과 쇠골 부근에 토사물이 말라 있다. 아예 샤워를 해야 했다. 전기포터로 물을 끓인다. 옷을 벗어 선반 위에 놓는다. 마른 가지 같은 몸에 소름이 돋는다. 전기 포트에서는 3분도 안 돼 물이 끓는다. 지하 1층 스낵코너에서 주워온 것이다. 두 번 정도, 끓인 물을 양동이에 미리 담은 찬물에 섞는다. 바가지로 물을 퍼 몸에 뿌린다. 한기가 달아나는 듯하다가 다시 몰려든다. 물을 다시 한 번 붓는다. 전기포터에서 물이 끓어오르며 하얀 김이 새어 나온다. 세면대의 거울이 뿌예진다. 도로 위의 흰 실루엣이 거울 속에 떠오르는 듯하다. 또다시 욕지기가 목을 타고 넘어온다. K는 몇 번 헛구역질을 한다.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 옆의 1인용 소파에 앉는다. 졸음이 몰려온다. 눈을 감는다. 매장 유리 진열대 위에 여자를 올려놓고 하나하나 옷을 벗긴다. 여자의 눈과 마주친다. 아무것에도 주목하지 않는 공허한 눈. 하지만 기이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눈. K가 손으로 여자의 유방을 움켜쥔다. 여자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눈을 감는다. 알몸이 된 여자가 차가운 유리 위에서 꿈틀거린다. K의 성기가 여자 안으로 들어간다. 속은 차갑고 건조하며 딱딱하다. 상체를 들어 여자를 본다. 마네킹이 공허한 시선을 허공에 던지고 있다.

 

    열두 시, 두 번째 순찰을 알리는 전자음이 울린다. K가 눈을 뜬다. 1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잠이었다. 순찰 시계와 휴대용 전등을 들고 일어선다.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자 마침 진동음이 울린다.
    곧 도착해요.
    여자였다. 고개를 들어 길 건너편으로 시선을 던진다. 맥도날드 앞에 택시 한 대가 선다. 여자가 내린다. 하이힐을 신고 보라색 계통의 원피스를 입었다. 꽃샘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계절에 입기에는 얇아 보인다. 여자는 두 팔을 포갠 채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여자는 얼굴을 경비실 쪽으로 향한다. 정면에서 비껴오는 공허한 눈빛. K는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끈다.
     춥네요, 맥도날드 안에 들어가 있을게요.
    다시 여자의 문자메시지가 온다. 여자가 입을 크게 벌린 맥도날드 매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자정을 넘긴 맥도날드는 한산하다. 하지만 아직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는 듯, 농도 짙은 형광 조명이 위액처럼 녹아내린다. 여자는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2층 전면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가방에서 파운데이션을 꺼내 화장을 고친다. 커피를 두어 모금 마시고 휴대폰을 든다.
     왜 답이 없죠?
    K의 휴대폰에 다시 문자메시지가 뜬다.
     이런 거 처음인가 보죠?
     이러시면 저 바로 이동해요.
    연달아 메시지를 알리는 짧은 수신음이 울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K의 휴대폰이 울린다. K는 수신음의 수를 센다. 한 번, 두 번, 세 번…… 스무 번 넘게 울리다가 겨우 멎는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여자는 다시 휴대폰을 든다. K는 휴대폰 전원을 끈다. 여자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움직인다. K에게 건 전화가 아니었다. 여자는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운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매장을 나와 택시를 잡을 때까지도 통화는 끝나지 않는다. 여자를 태운 택시는 빠른 속도로 거리를 벗어난다.
    K는 경비실을 나와 뒤쪽 지하계단으로 향한다. 그곳은 지하매장으로 이어진다. 불을 켜자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수십 개의 철제 보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푸드 코트로 쓰였던 곳이다. 미로를 헤매듯 걸음을 옮긴다. 한식코너 주방 안으로 들어간다. 쌀독으로 쓰였던 항아리의 뚜껑을 연다. K의 허리께까지 오는 큰 항아리이다. 뷔통이 웅크린 채 K를 바라본다. 배설물과 곪은 상처에서 나는 악취가 K의 코를 찌른다. 입을 벌려 우는 듯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아직도 살아 있는 거였다. 며칠 전 K는 순찰을 돌다가 녀석의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녀석은 항아리 속에 들어가 있었다. 마치 죽음자리라도 찾아왔다는 듯이. 전등을 비추자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이내 품속에 묻었다. 그때 K는 주위에 있던 뚜껑을 찾아 항아리를 닫았다.
    K는 버려져 있던 고무장갑을 주워 손에 낀다. 허리를 숙여 뷔통의 뒷덜미를 잡아 올린다. 힘이 빠진 녀석은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몸은 깃털처럼 가볍다. 썩어 가는 뒷다리의 상처에서 검은 피와 진물이 떨어진다. K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간다. 단단히 잠겨 있는 자물쇠를 풀고 기계실에 들어선다. 불을 켜자 기계실은 복잡하게 얽힌 배전관과 구불구불한 파이프, 거대한 물탱크와 닥트, 발전 설비들이 가득하다. 마치 창자와 장기가 가득한 거대 동물의 뱃속 같다. 기계실도 철제 보조물들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지하 저수조의 출입문은 대형 송풍기와 공기조화기 사이에 있다. K는 뷔통을 내려놓고 자동차 바퀴만 한 핸들형 밸브를 돌려 수조 뚜껑을 연다. 뚜껑에 쌓여 있던 먼지가 수북이 일어난다. 아래는 거대한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허공처럼 깊이도 넓이도 알 수 없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K는 그 속으로 뷔통을 던진다. 크르릉, 어둠 너머에서 흰 성운 같은 것이 퍼져 오른다.

 

– 끝

 

 

 

 

 

 

 

 

 

 

 

김개영
작가소개 / 김개영

2013 문예중앙 등단
동국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박사 졸업

 

   《문장웹진 2016년 12월호》

 

목록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