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단편소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진연주

 

 

 

    난 걷는 데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난 걷는 데 재능이 없다. 없는 재능으로 무언가를 할 때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진다. 창백해진다는 말이다. 걸을 때마다 그랬다. 창백해졌지. 난 창백한 채로 흰 벽돌담으로 갔다. 나의 개들을 따라. 나의 개들은 흰 벽돌담으로 갔다. 나와 달리 나의 개들은 걷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매우 경쾌하고 활기차고 단호한 발걸음으로 잘린 꼬리를 흔들며, 나의 개들은 숨구멍이 막히기도 전에 꼬리를 잘렸는데 위생상 그래야만 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나는 나의 개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꼬리를 자른 것에 어떤 죄의식 같은 것을 느낀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릴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정신을 파는 법 없이 흰 벽돌담으로 갔다. 벽돌담으로서는 드물게 흰색을 갖게 된 흰 벽돌담은 아담한 이층집을 제법 폭넓게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러한 대담함은 아담한 이층집을 더 아담하게 만드는 데 충분했고 한편으로 아담한 이층집에 어떤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입히고 증폭시켰다.
    흰 벽돌담은 내 집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있다. 2.7km/h 속도로 걸었을 때 40분 정도가 소요되고 약 3,500 걸음이 필요한 거리다. 물론 이것은 최선을 다해 재능을 발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 걷는 데 재능이 없는 사람은 걷기 위해 필요한 근육을 시의 적절하게 사용하거나 근력을 끌어 쓰거나 동적이고 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에 절대적으로 무지한 것을 넘어 걷기라는 동작이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서조차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40분 정도 걸어 나가면 다시 40분 정도를 걸어야 돌아올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조차. 이러한 무지로 나는 매일 대가를 치렀다. 1시간 20분을, 늘 최선을 다해 없는 재능을 발휘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때로 1시간 30분이 되기도 하고 2시간이 되기도 하는 시간을 걸으면서 녹초가 됐다. 걷는 데 재능이 있는 나의 개들도 1시간 20분, 아니면 2시간이 되기도 하는 시간을 걸어오면 녹초가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녹초가 된 채로 각자의 자리에 널브러져 잠에 들었다. 녹초가 되는데도, 녹초가 되면서까지 나의 개들이 흰 벽돌담으로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계속 모르겠지. 하나 분명한 것이 있다면 나의 개들이 흰 벽돌담 아래에서 오줌 누는 일을 즐긴다는 것이다. 나의 개들은 흰 벽돌담 아래에서 뒷다리를 굽히거나 한쪽 다리를 슬며시 들어 올린 채로 오줌이 적당한 속도와 양으로 쏟아지도록 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일이 다 끝나고 나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익살맞기는. 만족스러운 웃음은 어찌나 익살맞은지.
    나의 개들이 흰 벽돌담으로 가는 이유와는 별개로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 그곳으로 가는 일에 집착했다. 특별하고도 별것 아닌 이유로. 어느 날 흰 벽돌담 아래 흰 백합이 놓인 것을 발견했다. 봄이었다. 햇볕이 지붕이며 담장이며 길바닥으로 너울졌고 좁은 골목에 그을음을 만들며 지나가기도 했다. 막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얼떨떨한 표정을 한 사람이 지나쳤고 치킨집 전단지가 휙, 휘릭, 휘이익,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나의 개들도 전단지가 떠오를 때마다 꺙, 하며 덩달아 떠올랐는데 태생이 짧은 다리를 지녀서인지 떠오른다기보다는 버둥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처럼 귀엽고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경쾌해졌어. 나는 내가 걷는 데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잊고 경쾌한 나의 개들과 함께 경쾌하게 나아갔다. 경쾌하게 걷는 일은 지루하게 걷는 일과는 비할 게 못 됐다. 세포 하나하나가 시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기분까지 가뿐하고 깔끔해졌다. 그곳은 어디예요 흰 벽돌담은 왜 흰 벽돌담인가요 아담한 이층집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나는 되도 않는 문장들에 멜로디까지 붙여 흥얼거리며 경쾌하게 나아갔다.
    이쁜이들 오늘도 산책 나왔어? 옷걸이 집게를 든 세탁소 주인이 나의 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개들 대신 목례를 하며 동네 주민이라도 된 것 같은 따뜻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 동네는 대부분 담장을 허물고 그곳에 꽃밭을 가꾸거나 지붕이 달린 작은 그네를 매달아 놓거나 빨간 우체통을 세워 놓거나 평상을 내다놓거나 커다란 나무를 심어 놓기도 했는데 그런 소소한 풍경의 변화가 동네에 정겹고 여유롭고 그윽한 분위기를 감돌게 했다. 잠깐이었으나 세탁소 주인과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그런 멋진 동네의 주민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개들의 목줄을 조금 늦추고 불현듯 구부러지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이라고는 해도 차 두 대 정도는 여유롭게 오갈 수 있는 넓이인 데다가 양쪽으로 담장 없는 집들이 앉아 있어 더 넓어 보였다. 넓은 골목을 얼마간 걷다가 나와 나의 개들은 흰 벽돌담에 다다랐다. 담장을 허문 동네에서 유일하게 서 있는 담장이었으나 이질감을 주거나 고압적인 느낌을 풍기지는 않았다. 흰색 벽돌 자체가 밝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담장을 미끄러지며 은은하게 빛나는 햇빛과 벽돌 틈에서 소담스레 자라고 있는 녹색 식물들이 제법 한적한 전원의 정취를 자아낸 탓인 것 같았다. 나의 개들은 담장 밑에서 삐죽 솟아난 풀과 그 풀을 감싸고 있는 작은 흙더미에 코를 박고 킁킁대다가 오줌 눌 채비를 했다. 나는 나의 개 한 마리가 뒷다리를 굽히고 또 다른 개 한 마리가 한쪽 다리를 슬며시 들어 올린 채로 오줌 누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등에 짊어진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이고 나의 개들이 마실 수 있도록 작은 컵에 물을 따랐다. 그때 발견했지. 그때 발견했다. 흰 벽돌담 아래 흰 백합. 그 모습은 매우 묘하고 기괴했는데 그 모습은 뭐랄까, 점점이 꺼지는 지상의 불빛들을 바라볼 때처럼 뿌옇고 침침하고 어두컴컴한 기분이 들게 했고 순식간에 추운 방으로 나를 돌려보냈다.
    나는 추운 방에 누워 백합을 상상하고는 했다. 그을린 벽을 타고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고 그리고 입김은, 방을 가로질러 묶어 놓은 빨랫줄 위를 구르며 반대편 벽으로 가 사라졌다. 백합! 백합이 어떻게 생겼더라. 릴리. 나리. 알뿌리 식물이고 여름에 꽃을 피운다. 씨앗으로 시작해 꽃을 피우기까지 4년이나 걸리는 꽤나 까탈스럽고 도도하고 수줍은 식물로. 나는 백합이 약용수이고 세 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왕가나 수도회, 대학들의 문장에 많이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생김새는 도통 떠올리지 못한 채로 백합을 상상하며 밤을 보냈다. 백합 향기에 질식해 숨졌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였을 것이다. 죽어야 한다면, 죽을 수 있다면, 백합이야말로 닳아빠진 생을 마감하기에 가장 우아한 방법 같았다. 어떻게 생겼더라. 아무려면 어떤가. 꽃으로 죽을 수 있다면야. 나 그때는 정말 엄청 죽고 싶었다고. 아주 오래전에 말이다. 백합 향기에 질식해 죽는 것보다 웃다가 죽는 게 더 쉬울 거라는 말을 듣고는 잊었지. 백합을 잊었다. 그러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나는 창백해진 얼굴을 어루만졌다. 핏기가 빠져나간 얼굴. 잔뜩 긴장했어. 잔뜩 긴장했다. 나는 상실할 것이니까. 나는 무언가를 상실할 것이다. 그것은 예정되었고 예정된 수순이다. 그것이 나를 겁먹게 한다. 이러한 상태로 모든 날을, 예정된 상실을 살아내야 한다니! 나는 상실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한 것은 아니나 완벽하게 이해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완벽하게 균질한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험이 거듭된다고 해도 그것이 완벽하게 균등한 이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상실과 상실로부터 오는 새삼스러운 절망을 거듭 경험해야 할 것이다. 지나간 경험을 토대로 상실에 대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한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상실을 예상하고 상상하면서 남은 날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인간적이지 못하다. 더불어 그것은 격조에 어긋나는 짓이다. 나는 예정이 실현될 날을 불현듯이 느닷없이 걷잡을 수 없이 맞을 것이다. 그것이 맥박을 잃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아무렴. 맥박을 잃고 온도를 잃고 부드럽게 밀착해 오는 육체의 유연성과 호흡을 잃고 느리게 누설되는 숨의 행방과 신경의 팔딱임을 잃고, 다. 시. 상. 실. 하. 고. 비좁은 곳에 갇혀 더디게 웃으면서 그 뒤에 숨은 그림자를 더 멀리 더 깊은 곳으로 보내면서 온몸으로 상실을 맞아야지. 예정은 취소될 수 없다. 이전의 경험에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어떤 상실은 슬픔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분노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단지 화가 났다. 화가 나서, 잘 가요 엄마 가서 다시는 오지 말아요, 말했다. 사랑한다거나 용서해 달라는 말 대신. 그런 말들은 너무 늦게 왔다. 그렇게 불현듯 갈 일이냐고. 나는 굳은 엄마를 끌어안고 말했다. 잘 가요 엄마. 가서 다시는 오지 말아요.

 

    저 쥐새끼들 좀 치워, 씻기든가. 쥐새끼 아니고 개새끼거든? 엄마는 나의 개들을 쥐새끼라 했고 엄마의 쥐새끼들은 씻고 며칠만 지나도 개 비린내를 풍겼다. 그리고 나의 개들은 나와 살기 위해 개처럼이 아니라 쥐새끼처럼 지냈다. 꼬질꼬질하고 달큼한 냄새, 꼬질꼬질해서 달큼한 냄새를 숨기기 위해 작은 방에서 숨어 지냈다. 나의 개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납득하고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처럼 포기가 빠른 개들과 사는 것이 슬펐으나 왜 슬픈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의 개들이 잘 숨을 수 있도록 나마저 잘 숨기는 일에 몰두했다. 작은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엄마는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속에 있는 말을 속에만 두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엄마가 타고난 수다쟁이였던 것은 아니다. 12세대가 사는 빌라에서 12세대 주민과 거침없는 대화를 나눈 정도랄까. 작은 방에 앉아 있으면 간혹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에서, 저쪽에서, 위에서, 아래서. 대부분 공동주택에 사는 입주민들이 지녀야 할 태도와 수칙에 관련한 것이었는데 예를 들자면 계단에 화분을 놓지 말라거나 옥상에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라거나 지정된 곳에 주차를 하라는 요청 같은 것들이었다. 대뜸 목소리를 높이는 통에 혼쭐을 내는 것처럼 들리는 게 문제였으나 엄마의 요청은 대부분 정당했고 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두루 잘 지내기도 했다. 나와 601호를 제외하고는.
    내가 601호 아주머니를 처음 본 것은 본가로 합가한 지 6개월 남짓 되었을 때였다. 잠깐만요오. 같이 가요오. 잘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나는 서둘러 열림 버튼을 누른 후 나의 개들을 품에 안았고 아주머니는 나와 나의 개들을 흘깃거리고는 내게 등을 보인 채로 문에 바투 붙어 섰다. 딸인가 보네에.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것이 아주머니의 말버릇인 것 같았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말똥가리 울음소리 같네에, 생각했다. 목소리 톤이 높고 가는 데다가 말꼬리를 길게 늘여 말하는 것이 말똥가리 울음소리를 떠오르게 했던 것이다. 아주머니의 차림새는 무엇 하나 지나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자에 달린 챙은 목을 덮을 정도로 길고 넓었는데 물결치듯 구불거리는 모양새라 휴양지에나 어울릴 법했고 타탄체크 무늬의 녹색 투피스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비즈가 장식돼 있었다. 올리브그린색의 벨벳 구두에도 하얗고 파란 구슬이 어지럽게 박혀 있어 화려함에 화려함을 더했다.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채도 높은 붉은색 립스틱과 그 때문에 더 돋보이는 아주머니의 입가 주름이 문에 얼비쳤다. 녹슬고 깨진 양동이에 온갖 화려한 꽃들을 마구잡이로 꽂아 놓은 것 같은 차림새였다. 어딜 가나 개새끼이 고양이 새끼이.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아주머니는 말똥가리 울음소리를 내며 황급히 달아났다. 개새끼들아아 가자아. 나는 아주머니의 잰걸음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나의 개들과 함께 나의 개들이 좋아하는 흰 벽돌담으로 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희한하게도 그 후 601호 거주자들과 연달아 마주쳤다. 그래 봤자 두 사람이었는데 두 사람 다 남자였고 두 사람 다 연령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니 두 사람이 비슷한 연배로 보여서 관계를 어림짐작하기 어려웠다는 게 맞을 터였다. 두 사람 모두 백발에 피부는 팽팽했고 폴리에스터 재질의 군청색 바지 차림이었는데 다른 게 있다면 한 사람은 회색의, 한 사람은 검정색의 아노락을 걸쳤다는 것과 검정색 아노락 차림을 한 남자의 걸음새가 제법 특이하다는 것뿐이었다. 검정색 아노락 차림의 남자는 한 자리에 서서 몸을 앞뒤로 몇 번 흔들고서야 겨우 한 걸음을 내디뎠는데 그때마다 다시 한 걸음을 되돌리는 통에 매우 힘을 내 두어 걸음을 내딛지 않는 이상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어 보였다. 엄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어디가 아프다는데 어디가 아픈 건지는 빌라 사람들 누구도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에미가 저러고 다니니까 아들이 저 모양이지. 엄마는 남자와 마주친 후에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아픈 사람 쪽이 아들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혹여라도 601호 아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앞집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잠잠해질 때까지 현관 문고리를 잡고 있는 식으로. 601호 아들의 행실이 기이해서가 아니라 눈빛 때문이었는데 뭐랄까 끈적해. 기분 나빠. 601호 아들의 눈빛에서는 축축하고 진저리쳐지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영혼까지 으깨지는 것 같았다. 그 탁하고 잔인한 공기. 601호 아들은 구석에 기댄 채로 웅얼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요란한 숨소리를 내뱉었고 중간 중간 으흥 으흥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빨 뒤에 도사리고 있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듯 짓눌린 소리와 내 목덜미로부터 등으로 둔부로 다리로 이어지는 시선 때문에 나는 얼어붙었다. 물어! 물어! 나는 사색이 되어 돌아온 후 혹여라도 있을 불상사를 대비해 나의 개들에게 무는 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웬걸. 나의 개들은 물라고 던져 준 인형을 볼 때마다 식겁을 하고 달아났다. 나의 개들은 착해도 너무 착했다.

 

    착한 것들과 실없는 농담이나 해가며 하루하루 나이 먹는 일. 오래된 집을 손보는 것처럼 오래된 육신을 돌보는 일. 늙은 개. 더 늙은 개와 덜 늙은 개. 더 늙은 개는 더할 나위 없이 깡말라서 등뼈가 드러나 보인다. 공깃돌 같은 등뼈. 공깃돌보다 작은 등뼈. 늙은 개야, 밥을 먹어라. 더 늙은 개는 밥 먹는 걸 자꾸 잊는다. 듣지도 못하고, 듣지 못해서 밥 먹는 걸 또 잊는다. 듣지 못하면 입술이라도 읽으면 되겠는데 더 늙은 개는 보는 것도 잊은 듯하다. 눈동자는 탁해졌고 한 곳을 오래 응시하는 법도 없다. 나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지 못하는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면서 늙은 개야 밥을 먹어라 말하지만 더 늙은 개는 밥을 먹는 대신 이부자리를 찾아간다. 공포에 떨며. 시각이 아니라 익숙한 사물들과 사물들이 만들어낸 지형 같은 것에 의지하여. 남아 있는 희미한 밝기에 의탁하여. 가끔 헛딛고 간혹 부딪히면서. 더 늙은 개에게 세계는 조금 더 협소해졌을까.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만큼, 들리고 보이는 만큼, 딱 그만큼 세계는 협소해졌을까. 나는 더 늙은 개의 늙은 발걸음을 바라보며 가급적, 가능하면, 상실의 속도가 느리기를 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무형의 존재에게. 한줌인 몸을 바라보며, 한줌이 된 몸을 바라보며 더 늙은 개가 조금 더 늦게 죽음을 결정하기를 빈다.
    덜 늙은 개는 자주 사라져 있다. 어떤 연민이 거대하게 팽창해 저와 나 사이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자주 사라져서 사라진 채로 한 인간이 예정된 상실을 대하는 자세를 지켜보고 있다. 밥맛 떨어지는 일일 테지. 이기적인 허약함을 읽는 일은 밥맛 떨어지는 일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덜 늙은 개도 끼니를 줄였다. 허리가 좁아지고 대퇴도 얄팍해졌다. 수술한 다리는, 덜 늙은 개는 얼마 전 삼각인대 파열로 다리를 수술했다, 여전히 땅을 밀어내는 일에 서툴다. 오래 자고 피곤이 응축된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눈에서 곧잘 원망이 읽힌다. 당신의 사랑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아, 라고 말한다. 하지만 있잖아, 우리는 우리를 우리라고 불러야만 하리라. 서로 달라서 이끌리고 지속적인 지루함을 견디고 모종의 기쁨을 이어 왔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산책 가자. 더 늙은 개는 강보로 싸안고 덜 늙은 개는 유모차에 태운다.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우스꽝스럽다. 낯설고 우스꽝스러워서 곧잘 화가 난다. 화가 많아졌다. 엄마를 잃었을 때부터인 것 같다. 상실이란 것이 너무 쉽고 어이없게 도착해서 내내 화가 났다. 그때에도 나는 불현듯이 느닷없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 일을 어쩌지도 못 하고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너무 쉬워서 며칠이고 몇 날이고 화가 났다.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늦게 왔지. 너무 늦게 와서 나는 고작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 따위나 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나의 개들처럼 걷는 데 재능이 있었어. 걷는 데 재능이 있었다. 꽃 피면 꽃 핀다고 비 오면 비 온다고 눈 내리면 눈 내린다고 집을 나섰고 하염없이 시간이 흐른 후에야 돌아오고는 했다. 엄마에게도 흰 벽돌담 같은 곳이 있었던 걸까. 가서 오줌을 누는 그런 곳 말이다. 나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같은 걱정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엄마는 매번 돌아왔고 무엇보다 엄마가 집을 나선 후에 찾아온 격렬한 고요가 내게 기쁨과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없어야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높고 큰 목소리가 없는 곳에서 나는 기꺼이 찾아온 자유와 함께 커다란 숨을 몰아쉬었다. 내내 비탈길에 서 있다가 가까스로 평지로 내려온 느낌이었다. 나의 개들과 함께. 엄마가 집을 나서면 나는 작은 방의 문을 열고 소몰이하듯 개들을 몰아냈는데 나의 개들은 얼떨떨한 채로 몸을 잘게 떨면서 한 발 두 발 전진하다가 낯선 구역에 당도해서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라도 된 듯 뱅뱅 돌며 광분했다. 오 마이 갓. 나의 개들이 몸속에 감춰 둔, 감쪽같이 감춰 둔 야생이라니. 엄마가 없는 곳에서 엄마의 쥐새끼들이 마침내 개가 되어 날뛰는 모습을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왜 저래. 나의 개들은 웃음이 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고함을 지르며 우다다 와다다 혼비백산 도망치는 시늉을 했고 바닥을 정신없이 긁다가 갑자기 달렸다. 서로 양양거리며 목이나 등에 앞발을 얹고 무는 시늉을 하며 놀았다. 목줄을 매지 않았을 때의 위용을 원 없이 과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과장되게 웃으며 개답구나, 했다. 목줄을 매지 않은 나의 개들은 어느 때보다 더 개다워 보였다. 이제 그런 시간들은 굳어버렸지만. 엄마의 의자처럼.
    엄마는 한동안 앉아 지냈다. 엄마 자신이 의자인 것처럼. 잘 때마저. 누우면 숨이 가쁘다고 했다. 실내 공기가 숨을 뺏는다고 했다. 엄마는 주차장 한편에 의자를 내어놓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 있기만 했다. 주차장으로 바람이 몰아쳐도 앉아 있기만 했다. 겨울이었고 생명이란 생명은 다 저물어 꼼짝도 않았다. 모두 굳은 곳에서 엄마는 엄마만의 시간을 살았다. 그 계절 내가 제일 많이 내뱉은 말은 굳이였다. 굳이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해? 굳이 밖에서? 굳이 먹지도 않고? 짜증이 나고 번거로웠으나 가족의 도리로, 가족 된 의리로 나는 종종 주차장으로 내려가 엄마를 살폈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있다기보다는 얹혀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반 토막 난 몸집 때문에 부피감이 느껴지지 않았을 뿐더러 한 톨의 의지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와 나의 개들에게 화를 낸 지도 오래였다. 엄마는 모든 것에 무심하거나 모든 것을 연민하면서 나무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흐트러짐 없이 단호하게, 그러면서도 온화하고 감미로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 모습은 선뜻 다가설 수 없는 근엄하고 장중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나는 그러한 의외의 모습에 당황하며 멀찌감치 서서 엄마를 지켜보았다. 엄마는 정면을 주시한 채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두어 번 무언가를 향해 손을 내뻗고는 다시 툭 떨어뜨렸는데 무엇을 잡기 위해 손을 내뻗은 것인지는 당최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장면이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의 내 생을 지배하겠구나 막연하게 짐작했을 따름이다. 쥐새끼들 밥 멕일 시간 아니야? 엄마가 말했다. 나 있는 줄 어떻게 알았데? 쳐다보지도 않고선. 나는 엄마에게 가는 대신 뒤돌아 도어 록 키패드를 눌렀다. 손발이 떨릴 만큼 배가 고팠다.
    601호 아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그맘때였다. 601호 아들은 말문이 막힌 채로 살았고 601호 내외는 가벼운 인사 외에는 그 누구와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601호의 삶은 심연으로 가라앉았으나 소문만은 무성했다. 개중에는 낯 뜨겁고 볼썽사나운 추문도 더러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드나듦에는 확실히 낯설고 이상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혼했나? 엄마가 말했다. 601호 아저씨가 짐 몇 개와 아들을 챙겨서 나갔다는 것이다. 어디 가시냐니까 대답은 않고 잘사시라고 하데. 엄마는 이랬나 저랬나 하며 결론도 나지 않을 궁리를 이어 갔는데 나는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앞으로 그 집 아들 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그 후로도 엄마는 간간이 601호 아주머니가 젊은 사내를 들였다느니 그 사내가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느니 그 집 아들이 죽었다느니 죽였다느니 하는, 그럴 법도 하고 얼토당토않기도 한 말들을 전하곤 했다. 나로서는 그 말의 진위를 가릴 재간이 없는 데다가 엄마 말을 믿고 안 믿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어서 흘려듣는 게 일이었으나 밥통 사건 이후로 엄마가 601호 얘기를 꺼낼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엄마가 내게 전화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는데 그 드문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안이 벙벙하다. 엄마는 빨리 들어와서 이것 좀 보라며 화를 내고는 대뜸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저 너머의 엄마가 그토록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이유도 모른 채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명치에서부터 끌어 모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또 한 번. 다시 한 번. 그리고 숨은 내가 영원히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리란 절망으로 어쩌면 증오로 이어졌다. 나는 유리창에 머리를 밀착시킨 채로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지친다. 정말 지쳐. 나는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울 뻔했잖아. 울 뻔했네. 나는 다시 중얼거렸다. 엄마가 분통을 터뜨린 이유는 너무 뜻밖이고 기가 막혔다. 밥통을 속아서 샀다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고 도무지 열릴 생각을 않는다는 것이다. 새 밥통이 아니라 헌 밥통이야 헌 밥통. 왜 저러지. 왜 저러는 걸까. 압력을 해제해야지. 시계 방향으로 돌려야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조목조목 알려준 후에도 같은 일이 두어 번 더 일어났다. 조마조마했다. 엄마의 마지막 숨결이 먼지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엄마는 생각이 꺼지는 끝에 앉아 있었다. 나무 의자에.
    언제 왔대? 다시 왔대? 완전히 왔대? 나는 공기처럼 앉아 있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는 그저 웃었다. 그러고는 한참 후 말했다. 모르겠다 나도. 601호 아들은 그날부터 매일 엄마가 앉아 있는 의자 주변을 맴돌았다. 한 자리에 서서 몸을 앞뒤로 몇 번 흔들고 겨우 한 걸음 내딛고 한 걸음 되돌리고 다시 한 걸음 내딛으면서. 엄마는 멈춰 있고 601호 아들은 멈춘 채 움직이고. 그 모양새가 매일 반복됐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의 손에 꽃이 들렸다. 파꽃, 동국, 패랭이, 풍로초, 화소국, 여우꼬리, 양귀비, 살거나 죽은 꽃들을 들고 엄마는 애연하게 앉아 햇볕을 즐겼다. 기묘하고 이상했다. 기묘하고 이상했는데 그게 그리 나쁘지 않았단 말이야.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정면만을 응시하던 엄마는 601호 아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간혹 웃었다. 엄마가 웃었다.

 

    엄마가 간 후 작은 방문을 열어 고정시켜 놓았다. 나의 개들은 작은 방에서 해방돼 낯선 구역을 점령했으나 우다다 와다다 혼비백산 도망치는 시늉을 하거나 바닥을 정신없이 긁다가 갑자기 달리거나 서로 양양거리며 목이나 등에 앞발을 얹고 무는 시늉을 하며 놀지는 않았다. 엄마도 없고 목줄도 없었으나 나이가 목줄이 된 것이다. 나의 개들은 늙고 지쳐서, 늙고 지친 모습 그대로 이부자리에 널브러졌다가 간신히 일어나 오줌을 누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어슬렁거릴 뿐 별다른 활기를 보여주진 않았다. 척추가 무너지고 뼈마디가 헐거워지고 피부가 말라 가고 내장이 쪼그라 붙고 활력 징후 역시 점차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개들의 생활 방식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와, 흰 벽돌담 많네? 나는 공간을 둘로 나눠 한편에 배변 패드로 줄담을 만들었다. 막돼먹은 놈처럼 아무데나 오줌을 싸지 말라는 유순한 압박이었는데 더 늙은 개는 자기만의 방식을 따로 개발해 나를 놀라게 했다. 이부자리에 편안히 누워 오줌을 눈 다음 끼앵끼앵 나를 부르는 식이었다. 좋았다. 하루에 몇 차례쯤 이부자리를 빨면 그만이니까. 늙은 데다 백내장에 신부전 환자이기도 한 나의 늙은 개가 다치지 말고 시원하게 오줌 싸는 삶만 살았으면 했으니까. 어쩌다 배변 패드에 오줌을 누면 나는 말했다. 천재 아니야? 천재네. 천재 맞네.
    더 늙은 개는 나의 엄마처럼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신부전 수치가 심전도 그래프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수치가 오를 때마다 더 늙은 개는 더 적막해졌다. 통조림을 으깨서 떠먹여도 도통 입을 열지 않았는데 나는 더 늙은 개와 지내며 늙으면 혓바닥 힘도 약해진다는 걸 알았다. 호기롭게 숟가락을 핥아도 입속으로 말아 넣지를 못했고 손등을 핥을 때마다 느껴지던 찰기도 사라졌다. 찰싹 달라붙어 줘. 그렇게 허둥대지 말고 말이야. 듣지도 못하는 개에게 나는 매번 말했다.
    더 늙은 개에게 밥을 먹이다가 이제 스스로 먹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늙은 개야, 밥을 먹어라. 체에 받쳐 내린 것을 주사기로 밀어 넣을 때마다 더 늙은 개는 헛구역질을 했다. 더 늙은 개는 음식을 토해 내고 나는 심장을 토해 내는 날이 지속됐다. 그 곁에서 덜 늙은 개는 우울증을 앓았다.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나 결국 구석이 되고 졸고 자고 등을 굽혀 느리게 걷고. 덜 늙은 개의 등이 자꾸 굽었다. 낙타처럼 불쑥 솟은 등에 소외감과 슬픔을 차곡차곡 쟁여 두는 일, 그것이 덜 늙은 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복인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붙들고 있지? 봄이잖아. 더 늙은 개가 말했다. 조금만 더 붙들고 있게 해줘. 봄이잖아. 내가 말했다. 다시 봄이었다. 다시 봄 속에서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꽃들은 죽었거나 비로소 죽은 채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는데.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없었어.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러고 보니 질식사 얘기도 엄마에게서 들은 것 같다. 백합을 한 아름 사들고 와서 그랬지. 누군가 백합 향기에 질식해 숨졌다고. 그러니 꽃에 코를 박고 킁킁거려선 안 된다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꽃을 한 아름 사들고 온 엄마도, 엄마 품에 안긴 꽃도 이상했다. 꽃이 사람을 죽인다니. 이상했다. 가끔 삶이란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실제로 내가 죽은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는데 그 순간이 딱 그랬다. 다 이상하고 괴이해서 나는 백합 곁에는 가지 않았고, 그러나 백합에 깊이 매료됐다. 이상한 일이지. 이상한 일이다. 더 늙은 개가 엄마를 찾다가 병들어버린 것도 이상했다. 엄마는 나의 개를 사랑한 적이 없는데. 나의 더 늙은 개는 엄마가 사라진 후 엄마를 찾는 일에 맹목적으로 몰두했다. 집 안 곳곳을 기웃거리고, 최선을 다해 고개를 뺀 채 소파나 식탁 의자 위를 살피고, 엄마 방에 잠자리를 펴고, 엄마 옷 위에 앉아 울었다. 뀨우 뀨우 울었다. 저리 비키시지. 다 태울 거니까 저리 비키셔. 말해도. 어르고 달래도 내려오지 않고 한사코 엄마 옷 위에 앉아 뀨우 뀨우 울었다. 그렇게 한 달을 살다가 나의 더 늙은 개는 밥을 끊었어. 밥을 끊었다.
    이제 더 늙은 개는 내가 제 목숨을 좀 더 붙들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 동의한 것 같다. 헛구역질을 멈췄고 주사기로 밀어 넣는 양식도 제법 잘 받아먹는다. 간혹 입안 어딘가에 잘 숨겨 놓고 삼키지 않는 식의 속임수를 쓰는데 슬며시 주둥이를 쥔다든가 코를 막으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삼킨다. 이 사기꾼아! 더 늙은 개는 강퍅한 네 다리를 일으켜 거실 산책에 나서거나 햇빛을 깔개 삼아 앉고 적막한 귓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골몰하기도 한다. 더 늙은 개가 듣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개에게도 비밀이 있겠지. 비밀이 있을 거다. 비밀을 비밀로 남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근데 너 때문에 자꾸 시큰해져. 더 늙은 개의 모든 시간들이 내 몸속 어딘가를 자꾸 시큰하게 한다. 엄마를 볼 때도 그럴걸. 시큰할걸. 다시는 오지 말아요, 라니. 굳이. 굳이 말이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대들지 말걸. 잘 먹일걸. 먹지 않아도 먹일걸.
    엄마가 간 후 나의 개들은 걷는 재능을 더 이상 발휘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반대로 나는 없는 재능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어. 없는 재능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후회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런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내게 인사하는 재능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12세대 입주민들의 얼굴이 그제야 들어왔다. 아이구우 어째애 엄마가 그렇게 가셔서 어째애. 601호 아주머니가 여전한 차림새와 여전한 말투로 알은체를 해도 내게 부과된 지겹고 귀찮은 의무라 생각하지 않고 인사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601호 아들도 여전했다. 아주 답답한 걸음을 답답하게 걷고 별난 말소리와 숨소리와 웃음소리를 흘리고 눈빛도 불안하다. 아픈 사람이니까.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아픈 사람이니까 601호 아들에게도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다소 외롭고 슬펐지만 나도 나의 개들도 다소 외롭고 슬픈 상태에 익숙해지고 있다.

 

    나의 게으른, 늙은 개들을 데리고 집을 나선다. 더 늙은 개는 강보로 싸안고 덜 늙은 개는 유모차에 태운다.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낯설고 우스꽝스럽다. 낯설고 우스꽝스러워서 곧잘 웃는다. 애기 같네. 회춘했네. 회춘했어. 나의 개들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더 늙은 개는 강보에 싸인 채로 두리번거리고 덜 늙은 개는 유모차에 탄 채로 두리번거린다. 이제 내려 달라거나, 내려 달라거나, 내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제 저희도 걸음을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더 늙은 개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열심히 보면서 길을 간다. 들리지 않는 귀로 열심히 들으면서 길을 간다. 덜 늙은 개는 간혹 몸을 돌려 나와 더 늙은 개의 자취를 확인하면서 길을 간다. 하지만 너희는 냄새로 시간의 변화를 알아채는 종족이니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들리지 않는 귀로도 불편한 다리로도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것을 듣고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어. 갈 수 있다. 나는 웃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를 주시하면서 기억하면서 길을 간다. 나는 길을 간다. 예정된 상실을 조금씩 미루면서, 나는 길을 간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과 함께.

 

 

 

 

 

 

 

 

 

 

 

진연주
작가소개 / 진연주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장편소설 『코케인』, 연작소설집 『이 방에 어떤 생이 다녀갔다』를 펴냈다.

 

   《문장웹진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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