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의 유기견

[단편소설]

 

 

그라나다 유기견

 

 

한지수

 

 

 

    아마도 그 고해성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신부님, 저는 한때 거미였습니다. 거미의 눈은 시력이 형편없지만, 다리에 3천 개가 넘는 센서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것으로 진동을 느끼고 주변을 감지하면서 페로몬을 분출해 나방을 유인한답니다…….’ 너는 그 페로몬에 걸려든 운 나쁜 나방이였다.
    지금 너는 웃고 있다. 너를 향해 걸어가는 신부는 크림색의 매머드 라인 드레스를 입고 있다. 눈부신 햇살이 드레스에 반사된다. 나는 네 웃음을 보기 위해 하객들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너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되는 중이다.
    드디어 신부와 너는 하객들을 향해 나란히 선다. 그 순간, 네 슈트 주머니에 꽂힌 튤립 맵시꽃이 꿈틀거리며 활짝 피어난다. 하객들은 네 가슴의 만개한 튤립을 보며 놀라움과 환호를 보낸다. 폭죽이 미리 터진다. 나는 아랫배에 손을 얹고, 하객들 사이를 빠져나오며 중얼거린다.
    “네 가슴이 뜨거워서 그래. 튤립은 온도에 예민하거든.”
    네가 피운 꽃은 많았다. 내 웃음도 그중 하나였고, 우리가 지나온 그라나다의 꽃들도 너 때문에 웃는 듯했다. 예정대로 사제 서품을 받고 미사를 주관했더라면, 너는 더 많은 사람을 웃게 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고해성사로 미안함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

 

    삼 년 전, 나는 스페인 중서부의 살라망카Salamanca에 있었다. 번역원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유럽 최초의 대학인 살라망카 대학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한국어학과 학생들에게 몇 차례의 특강을 하면 되었다. 요한이 죽은 지 일 년이 안 된 시점에서 얻은 행운이었다.
    요한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았다. 요한의 회사 노조 측에서는 회사를 상대로 싸우면서 나를 그 중심에 세웠다. 그런 주변을 모두 물리치고, 나는 일상으로 도망쳤다. 그 과정에 살라망카가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학교 안을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살라망카 대학 정문 앞은 개구리 조각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렸고, 모든 상점의 진열대에서 청개구리를 볼 수 있었다.
    돈키호테나 콜럼버스가 그 대학 출신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도서관에 있는 천 년 전의 양피지 책은 못 보았을 것이다. 식물에 색을 입혀 프린팅한 것이 원색 그대로 남아 있는 18세기에 만든 식물도감도 있었다. 그곳의 오래된 모든 것이 내게는 새로웠다. 어지러운 가슴이 차분해지는 그런 시간에 감사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감탄스러운 것들이 곧 일상이 되었다.
    오후에는 학생들이 드나드는 바에 앉아 있기도 했다. 높은 테이블이 늘어선 바 안에 의자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서서 한 잔씩 마시고는 곧 다른 바로 가서 2차, 3차를 했다. 하루에 다섯 번이나 식사한다는 스페인 사람들다웠다. 선 채로 마시다가 취하기 전에 돌아가는 그 문화에 나도 익숙해졌다. 나는 주변의 바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스페인 바텐더가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와인과 타파스로 저녁을 때우고 있을 때였다. 그 바텐더는 태권도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웃었다. 한국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던 그는, 내 앞에 타파스 한 개를 슬쩍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다른 테이블로 가버렸다.
    살라망카는 발길 닿는 곳이 관광명소였고, 오래된 것들로 가득했다. 걷다가 눈이 부셔 바라보면 벽에 붙은 조개들이 햇살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조개의 집’ 안에 공립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내 방에는 하몽과 와인이 비상식량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들을 내 일상에서 몰아내 줄 무엇이 필요했다. 요한과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너였다. 나는 네가 필요했다. 간헐적 혹은 부분적으로.
    여행이 유화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갔던 곳을 다른 사람과 다시 가면, 이전의 사람은 지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감을 덧칠하면 이전의 그림이 덮이면서 새로운 그린이 되는 것처럼, 너라는 물감을 덧입혀서 요한과 왔던 길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래, 요한과 걸었던 그라나다의 골목을 모두 지워버리자…….

 

    요한을 처음 만난 건 유기견 동아리에서였다. 나는 유기견 동아리의 총무를 맡으면서 동아리 방을 편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과제를 하고 밥을 먹으면서 회의를 준비했다. 시험 기간에는 친구와 밤을 새우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동아리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동아리 부원인 친구와 주말에 나갈 봉사 물품을 챙기고 있었다. 그는 문 앞에서 동아리 입회 양식을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목소리만큼이나 큰 글씨로 이름을 썼다. 나 좀 봐달라는 듯 ‘손요한’이 진하게 쓰여 있었다.
    입회 양식을 받아든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모태신앙인가 봐요?”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더니, 이번 학기 교양과목 하나를 같이 듣는 중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엄지를 치켜 보이고는 다시 봉사 물품을 정리했다. 할 수 없이 내가 동아리의 활동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유기견들의 성격이 다르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유기견들도 우리와 같아요. 버려졌다고 해서 모두 사람을 경계하지는 않아요. 유난히 살갑게 달라붙는 녀석들도 있지만, 더 사랑받기 위해 싸움을 벌이기도 해요. 그럴 땐, 물을 뿌려서 싸움을 멈추게 해야 해요. 손으로 말리면 안 되거든요.”
    “사람들 싸움 말릴 때도 찬물 끼얹는 게 효과적이죠.”
    나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하는 일은 간단해요. 유기견들 밥그릇 씻고 사료를 주거나 산책을 시켜요. 목욕이나 대소변을 받아 주기도 하고요. 견사를 청소하는 일은 주로…….”
    그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유기견 한 마리 입양하실래요?”
    그때 친구가 끼어들더니 요한에게 받아쳤다.
    “지금 얘한테 개, 수작하시는 거죠?”
    그는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다가 반려견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 후, 유기견 동아리에서는 우리를 개수작 커플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사랑과 필요를 혼동한다. 특히 오래된 관계에서의 사랑과 필요는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너는 내 연락을 받고 과속으로 달려왔다. 인천공항에서 그라나다행 직항을 타라고 했지만, 너는 스무 시간에 걸쳐 온갖 경유지를 지나 살라망카로 왔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의 시간을 건너 마요르Mayor광장에서 만났다.
    너는 16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회랑 아래 서 있었다. 남색 반코트를 입고 네 덩치만큼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너의 등 뒤로 늘어선 상점들 앞으로 다국적 얼굴들이 부산하게 지나다녔다. 그 장소만큼 내 속도 복잡했다. 왜일까. 나는 야외 카페에 앉아 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너는 벌써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잠시 구시가의 황토색 거리를 걸었다. 너는 그 거리에서 자주 멈춰 서서 건축물을 유심히 살피곤 했다. 인구의 96%가 가톨릭인 나라에 왔으니, 네게는 좀 특별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걷는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지니까.
    나는 너에게 재빨리 물었다.
    “너도 혹시 개구리 조각 보러 가고 싶니? 아니라면, 이걸 줄게.”
    나는 청개구리가 매달린 연필을 내밀었다.
    너에게 살라망카를 오래 보여줄 수는 없었다. 나는 다음 주에 있을 특강 전에 학교로 돌아가야 했고, 마드리드를 거쳐 그라나다로 들어가는 일정도 만만치 않았다. 버스에서 1박을 하며 7시간을 달려가야 말라가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그라나다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요한과는 인천공항에서 직항을 타고 그라나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프리힐리아나와 네르하, 말라가, 코르도바, 톨레도를 거쳐 마드리드 공항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너와의 여행은 그때의 동선을 역주행하는 셈이었다.

 

    스무 살이 넘은 너를 다시 만난 건 ‘반려동물 사랑 나눔 걷기대회’에서였다. 잔디광장에서 열린 그 행사에 우리 대학의 유기견 동아리도 참가했다. 각 대학의 유기견 동아리가 모여 서로의 역할을 분담할 때 네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일찍 왔구나?”
    너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내 기억에 너는 없었다. 너는 신학생이 되었다며 신부가 될 거라고 말했다.
    “어쩌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지만, 너는 모태신앙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서야 너를 알아보았다. 우리는 같은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너는 조용히 상대의 말을 듣다가 위트 넘치는 한마디를 던지곤 했다. 너의 재치 있는 말솜씨는 언제나 주변을 따듯하게 전염시켰다. 안경을 쓰고 키가 훌쩍 자랐지만, 네 미소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요한을 소개했다.
    “요한 선배는 세례명이 본명이야. 그래도 성당에는 안 나간대.”
    그 후, 우리 셋은 자주 어울렸다. 요한과 내가 계약 결혼이라는 걸 할 때까지.

 

*

 

    우리는 아침 7시에 말라가M´alaga에 도착했다.
    거리의 벽마다 그라피티가 즐비했다. ‘피카소’라는 한 사람이 그 도시에 준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귀에 붉은 카네이션을 꽂은 집시 여인의 그라피티 앞에서 청년들이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들 곁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흥을 돋우는 사람, 사람들. 우리는 그 파도에 휩쓸려 그들 사이로 떠밀려 들어갔다.
    “피카소는 수많은 여인을 만났지만, 결혼은 두 번 했대. 첫 번째 부인 ‘올가’와 재클린. 72세인 피카소가 26세의 재클린에게 첫눈에 반한 날, 재클린을 쫓아가서 그 집 담벼락에 비둘기를 그려 놓았대.”
    “아마 너는 할머니가 되어도 그 얼굴일 거야. 여중생처럼.”
    너는 늘 그런 식으로 나를 칭찬했다. 십 대 초반의 내 모습이 너라는 하드 드라이버에 아에 저장되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와 ‘자비의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피카소가 열 살까지 살았다는 집의 골목이 보였다. 너는 피카소 동상이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피카소는 맨발로 벤치 위에 앉아 있었다. 양손에 크레용과 화판을 들고 말라가 해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하필 맨발일까?”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벤치에 앉았던 유럽 여인이 재빨리 일어났다.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인은 자신의 눈보다 커다란 에메랄드를 목에 걸고 있었다. 나는 좀 과장된 몸짓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도 모르게 요한의 몸짓을 흉내 내고 있었다. 일 년 중, 삼백일 동안 태양을 볼 수 있는 그 도시의 한복판에서.
    “요한은 감히 피카소를 질투했어. 살았을 때 사랑과 부와 명성을 누린 거의 유일한 예술가라는 거야. 불행한 사람에게는 타인의 행복도 폭력이라나…… 그래서 나도 요한을 위해 피카소를 욕했어. 일곱 살부터 유화를 그렸던 피카소의 천재성까지도.”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너의 대답은 늘 명쾌하고 긍정적이었다.
    우리 세 사람이 삼총사를 자처하며 어울릴 수 있었던 건, 너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매사에 의미 있는 독설로 가득한 요한의 말을 너는 부드럽게 순화했다. 말 그대로 ‘모두 까기’ 대명사였던 요한의 말을 네가 ‘돌려 까기’로 재치 있게 받아냈다.
    요한의 생일에 그의 방을 처음 보았다. 열 평이 조금 넘는 원룸 벽에 두 개의 자전거 바퀴가 걸려 있었다. 그 아래는 가로로 길게 만든 투명 아크릴이 있었고, 그 안에 온갖 종류의 공이 들어 있었다. 작게는 탁구공부터 골프공, 축구공, 핸드볼, 배구, 농구공까지. 살아 있는 건 어항 속의 열대어뿐이었다.
    “왜 움직이는 애들을 저렇게 가둬 놨어요?”
    “내가 보내지 않는 한은 제 발로 못 나가는 것들이지. 사람들은 말없이 떠나. 죽어서 떠나기도 하고 그냥 가기도 하고……. 사실 유전적 가족력이 있어. 부모님과 외삼촌까지 폐암으로 떠나셨어. 어느 날부터 앞다퉈 가시더라고.”
    “가족력은 다스릴 수 있어요. 특히 요즘은……”
    “그게 비혼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냐.”
    니체 추종자였던 요한은 철저한 비혼주의자였다.
    “자유와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가 있지. freedom과 liberty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노예와 하인의 차이? 하인은 계약해지로 떠날 수도 있어. 그건 삶과 죽음처럼 엄청난 차이야.”
    나는 요한과 살기로 했다. 그에게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같이 있어 줘야 할 것 같았다.
    “네가 오고부터 집에 들어가면 냄새가 달라.”
    나는 그의 방에 자주 머물렀다. 그의 방에서 오래된 냄새를 몰아냈다. 그때의 나는 ‘힘든 사람과 같이 살아 줄 수 있는 따듯한 사람’이라는 존재증명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요한은 지구본 앞에 서서 나를 불렀다. 그는 왼쪽 관자놀이와 오른쪽, 이마 위를 손으로 짚어 보였다.
    “내가 아픈 곳이 딱 이 지점이야.”
    요한은 가족력과 달리 자주 두통을 호소했다.
    “지구본에서 보니까, 서울과 스페인 남부지방이야. 저런데 가서 깔끔하게 존엄사 하고 싶다.”
    나는 지구본에서 안달루시아를 찾다가 주먹으로 그의 배를 때렸다.
    요한은 이름 있는 건설회사에 취직했고, 나는 프리랜서로 도서편집을 맡아 했다. 그거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나는 요한에게 냉동 정자 보관을 권유했다. 건강할 때 유전자를 보관하라는 내 말에 그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난 항암치료 같은 거 받다가 죽을 만큼 오래 살지 않아. 냉동 정자 같은 희망 고문도 필요 없지.”
    나는 그의 등을 감싸 안고 조용히 말했다.
    “그건 제 발로 걸어 나가지 못하잖아. 그 대신, 결혼하자는 말은 안 할게.”
    넉 달 후, 요한의 유전자는 영하 196˚에 보관되었다. 이름은 ‘주니어 요한’이었다.

 

*

 

    나는 앨사ALSA앱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그라나다까지 2시간이면 충분했지만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이다. 알바이신 지구에 있는 숙소에 방 2개를 예약했다. 집주인은 ‘제니퍼’ 부부였다.
    숙소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맞은 건 반려견 두 마리와 거실 벽에 붙어 있는 화려한 문양의 접시들이었다. 그다음에 집주인 부부가 간식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잠시 거실에 앉아 집주인과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강아지 두 마리가 자꾸만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제니퍼가 강아지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배낭을 문 앞에 내려놓은 채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아래로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날의 일정과 버스로 달려온 7시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여긴 전망대야~’ 곧이어 알람브라 궁전이 찍힌 사진 두 장이 연이어 도착했다. 창가로 가니, 내 방에서도 궁전이 보였다.
    잠시 후에 너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너한테는 내가 대체 가능한 사람이지만, 오늘의 그라나다는 대체할 수 없을 거야.’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제니퍼 부부가 내준 아침을 먹었다. 식사하는 동안 나는 말없이 그라나다 지도를 보았다. 이동할 장소를 표시하고 너에게 지도를 주었다. 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산니콜라스 광장에서 집시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어디에나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플라멩코를 볼 수 있었다. 검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집시들은 ‘그라나도소 스페인 무곡 제5번, 안달루시아’의 리듬에 온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있었다.
    “너는, 하느님한테 너를 바쳤다고 하지 않았니?”
    내 질문에 너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사크라몬테 수도원을 지나고 ‘슬픔의 광장’을 지나 계속 올라갔다. 5유로면 집시들의 과거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동굴박물관’이 나타났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네가 보낸 간밤의 메시지가 불편했다.
    종교재판을 하던 ‘잊어야 하는 공간’이라는 집에는 온갖 고문 도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살해당한 이슬람교도와 집시들을 고문한 도구였다. 그때 흘린 그들의 피가 오래도록 마을을 적셨다고 한다. 지붕에서 담까지 모두 하얀색인 마을이 유독 담벼락 맨 아래는 석류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아마도 나는 너를 좀 불편하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 담벼락 아래 집시들의 피 흔적을 지울 수 없어서 석류색으로 덮어버린 거라는 말도 있던데?”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이베리아반도를 떠나라고 명령했대.”
    너는 먼 곳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너는 이미 가톨릭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사벨에 대해서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사벨 여왕은 집시들을 이용해서 알람브라 궁전을 함락했어. 철옹성인 알람브라 궁전으로 집시들을 보내 헛소문을 퍼뜨리게 했지. 궁전이 곧 함락될 거라는 소문에 이슬람 군인들은 탈영하기 시작했고, 알람브라 궁전은 그렇게 정복당했어. 이슬람교도들은 여기에서 800년을 살았는데.”
    “알람브라는 이사벨이 아니라, 두려움에 정복당한 거네? ”
    너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뒤꿈치로 바닥을 내리찍는 플라멩코 동작에는 집시들의 한恨이 들어 있었다. 그 격렬한 동작을 단순한 열정으로만 알고 있던 나는 그 춤에 대물림되고 있는 집시의 유전자를 보았다. 알고 보니 모든 춤동작이 아프게 다가왔다.
    요한의 죽음에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그의 입을 빌리면 존엄사였고, 회사 노조 측 의견은 사고사였다. 노조 측에서는 자살을 가장한 회사 측의 농간이라며 나를 부추겼다. 산재 처리가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요한의 유골을 받아들고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인가……. 그의 죽음은 모두에게 의심의 씨를 뿌렸고, 그건 생명을 가지고 자라나기 시작했다. 요한은 죽어서도 미스터리였다.
    요한의 짐은 모두 2박스뿐이었다. 벽에 걸린 자전거 바퀴와 공들을 빼고 나니 겨우 그게 남았다. 그런데 그게 참, 아팠다.
    나는 그날부터 검은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한의 회사에서 건네준 서류를 확인하던 날은 온종일 머릿속이 하얬다. 요한은 이미 ‘연명 거부’ 서류에 사인한 장기 기증자였다. 사실 그건 이해가 안 가는 일이기도 했다. 장기 기증을 결심한 사람이 허공에서 무참히 몸을 날리다니.
    “그것도 신축 중인 자기네 회사 현장에서? 연명 거부도 몰랐던 일이야. 사랑한다면서 나를 그런 식으로 버리다니.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안 되더라.”
    “넌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니? 그건 이해하는 게 아니라 체험이잖아.”
    너는 요한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아니면, 요한을 이해하고 싶은 내 마음을 더 잘 알았는지도 모른다.
    너는 위로라는 걸 했다.
    “아픔은 다른 걸 만들어내기도 해. ‘타레가’는 자신을 버린 여인에 대한 아픔으로 ‘알람브라 궁전’을 작곡했대.”
    “요한의 죽음으로 멀리뛰기라도 하라는 거야? 아니면, 꽃을 바치라고?”
    너는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되물었다.
    “너한테는, 우리가 하는 여행이 요한에게 바치는 헌사니?”
    그 말은 요한의 사고 현장에 놓인 수많은 편지와 꽃을 떠올리게 했다. 무덤만큼이나 커다랗게 쌓인 꽃다발은 ‘켈리’의 시 첫 구절과 매우 닮아 있었다.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바로 내 장례식 날이거든요……

 

*

 

    공원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남자에게서 CD 한 장을 샀다. 그 남자의 연주곡이 모두 들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물론 네게 줄 선물이었다.
    알바이신 거리에서 우리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나는 네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넌 포도주를 마셔, 난 와인을 마실게.”
    너는 그날 처음으로 밝게 웃었다.
    네 뒤로 알록달록한 모슬렘 상점이 보였다. 화려한 색을 입힌 냄새나는 가죽 가방들이 입구에 다닥다닥 걸려 있었다. 얼핏 네 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밝은 듯 어둡고, 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색깔이었다.
    우리는 다시 사크라몬테를 향해 올라갔다. 곧 동굴집Cueva들이 나타났다. 언덕에 동굴을 파고 그 위를 평평한 지붕처럼 만든 것이었다. 흰색 페인트를 바른 그 지붕은 윗집의 마당이자 길이 되었다. 모든 동굴집의 지붕은 그렇게 언덕 끝까지 이어져 서로에게 길을 내주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누군가의 지붕 위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는 요한과 돌아다니던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때는 두 마리 유기견처럼 그라나다 곳곳을 어슬렁거렸는데, 너와의 여행은 다른 느낌이었다. 둘이 짝을 지어 돌아다니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형사, 혹은 도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처럼 조심스러웠다. 요한과 걸었던 길을 덮으려는 소심한 복수심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그쯤에서 내려가고 싶었다.
    알바이신에서 구시가지로 내려가는 도중에 운치 좋은 호텔을 발견했다. 층계와 복도, 객실까지 오래된 나무로 된 그 호텔은 가격이 별 세 개짜리보다 저렴했다. 예약 없는 여행에서 어쩌다 만날 수 있는 행운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 호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물론 검색 몇 번이면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끼는 과자 봉지를 뜯지 않고 만지작거리는 어린애처럼.
    그날, 그러니까 너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우리는 호텔의 야외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늦은 아침이었다. 나는 입맛이 썼다. 겨우 빵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오래오래 씹었다.
전날 밤 우리는 플라멩코를 보면서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너는 계단을 오르다가 내 손을 잡았다. 무슨 뜻이냐는 내 말에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입술을 찾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의 거친 피부 안에서 타오른 불씨는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런 정념을 숨기고 무구한 얼굴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네 안에 들인 하느님은 어떻게 된 건지…….
    “무슨 짓이야? 넌 사제가 될 사람이야.”
    “너는? 너는 나한테 무슨 짓이니?”
    나는 못 들은 척 세면대로 달려가 손을 씻었다. 너는 네 덩치만 한 문짝 앞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나는 팔목을 씻고 입술을 닦았다.
    갑자기 내 뒤에서 화난 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씻어낼 만큼 내가 불결하니?”
    “넌 성스러운 사람이잖아, 불결해서가 아니고.”
    그래, 네가 코웃음을 칠 만큼 하얀 거짓말이었다. 너를 신성하게 여겨서였는지, 씻어내고 싶어서였는지는 이미 내 몸과 마음이 알고 있었다.
    전날 밤의 그 불쾌함을 안고 식탁에 앉은 나는 가끔 네 표정을 살폈다. 서로의 표정을 살피다가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때 너는 내 눈길을 붙들었다.
    너는 담담하게 말을 시작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네트워크 세상이 상처일 수 있어. 너를 볼 수 있는 유혹을 차단할 수가 없었어. 쉽지 않더라. 마약처럼. 끊었다가 다시 하고, 버렸다가 줍기를 지겹도록 반복했지. 기도로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너는 그동안 SNS를 통해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나의 모든 과정을 보면서 나와 함께했던 거였다. 네가 애완견 걷기대회에서 스스럼없이 내게 다가온 것도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너를 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불러서는 안 되었다.
    너는 사제 서품을 앞두고 있었다. 그 말은 네가 군 복무를 포함해서 십 년간이나 가톨릭 교리에 몸담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너는 힘든 사랑을 했다. 하느님을 사랑했고, 그보다 더 일찍 나를 사랑했다.
    너는 간절히 기도하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에게서 필요를 조금씩 걷어내 봐. 다 증류하고 소금처럼 바닥에 남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르잖아?”
    “무서운 일이다.”
    나도 모르게 무릎 위에 놓인 냅킨을 움켜쥐고 있었다.
    너는 오래 침묵했다. 어떤 침묵은 저항이기도 하고,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극단적인 대답일 수도 있다. 너는 그 침묵을 깨고서 무서운 말을 했다.
    “가톨릭 좀비가 되는 건 싫어서 정리했다. 하느님은 물론이고 주변에 미안해서라도 더는 못 하겠더라.”
    너는 이미 사제직을 내려놓았다고 말했다. 나에게 오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입에서 또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웠다. 정말이지, 훔친 물건이라면 제자리에 갖다 놓고 싶었다. 나는 네게서 멀어지기 위해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문득 주변이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시에스타Siesta였다.
    상점들도 문을 닫고 거리는 달콤한 낮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가게 앞에 서서 엽서들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거리가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집시 마을 쪽으로 향했다. 카페 안에서 물담배를 빨고 있는 젊은 애들이 보였다. 나는 또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유럽 남자가 바싹 다가오더니 ‘곤니치와?’라며 모자를 벗었다. 나는 이미 놀란 가슴에 손을 얹고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요한과 왔을 때, 그 거리 어디쯤에서 혼자가 되었다. 기타 소리를 듣고 홀린 듯 걸어 들어간 곳은 작은 공연장이었다. 성당처럼 긴 나무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연주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 의자 끝에 슬며시 앉았다. 한참 후, 혼자가 된 걸 깨달았을 때 목덜미에 요한의 숨결이 느껴졌다. ‘미안, 널 버리고 갈 뻔했어.’
    그 공연장 앞을 지나자, 어느 순간 험한 길이 이어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알람브라 궁전이 보였다. 정말이지 애를 쓰며 언덕을 올라갔다. 그렇게 조금 더 올라가 궁전을 마주 보고 섰다. 그때 문득 허전함을 느꼈다. 힙색이 사라졌다. 휴대전화와 약간의 유로, 그리고 지도와 엽서 등이 들어 있었다. 다행히 배낭은 아직 내 등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생수 반병을 단번에 마셨다.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내 직관에 의지해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면 왔던 곳에 도착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갑자기 큰 도로가 나타났다. 그때 나는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내 머릿속 지도에 의지해서 온 길은, 허상이었다.
    나는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목적지를 물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다시 부드럽게 물었다. 영어로 묻다가 스페인어로 말하기도 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호텔 이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한국어로 네 음절이었던 것만 떠오를 뿐, 어떤 말을 조합해도 그 이름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토록 어이없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을까. 택시 기사는 내게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덧없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때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건 호텔 냅킨이었다. 식사하다가 주머니에 넣은 모양이었다.
    나는 호텔 냅킨을 당당하게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 그는 냅킨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여긴 갈 수 없습니다, 부인.”
    나는 택시 기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택시 기사는 내 표정을 보고는 무언가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계속 스페인 말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가. 그가 늘어놓는 낯선 이방의 언어 중에서 어떤 단어가 내 속에 불꽃을 일으켰다. 일단 점화된 불꽃은 잊었던 기억을 더듬어 빠르게 한 단어를 소환했다. 정자, 냉동된 그의 정자, 요한의 젊은 기질을 간직한 DNA, 주니어 요한.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카페로 달려가 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너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중국인들은 이별할 때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 주었다고 해. 버드나무 가지는 한 달 후에도 아무 데나 꽂고 물만 주면 잘 자라니까. 이별 후, 먼 길을 가서라도 다시 뿌리내리고 잘 살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언젠가 너에게 고해성사를 하려고 했는데……. 안녕!’
    기다렸다는 듯 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도 너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라나다라는 버드나무 가지를 주고받았다.

 

*

 

    나는 살라망카로 가기 전에 ‘론다Ronda’행 버스를 탔다. 내게는 하루의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그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헤밍웨이 산책로를 걷고, 누에보 다리가 보이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가로등이 꺼지면 요한과 보았던 별을 밤새 찾아볼 작정이었다.
    론다 거리에서 웨딩사진을 촬영 중인 사람들을 발견했다. 예비신랑 신부가 낡은 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신랑이 신부를 향해 성난 소처럼 돌진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문은 어둠 속에 갇혔던 소가 빛을 향해 달려 나오는 입구였다. 그곳은 투우 경기장이었다. 투우장에서의 웨딩촬영이라니, 흥미로웠다.
    커다란 원형으로 만들어진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다. ‘올레ole’를 외치는 관중도, 소를 유인하는 삐까도르나 단번에 소의 숨통을 끊어줄 마타도르도 없었다. 오로지 촬영 중인 사람들의 웃음소리만 비현실적으로 아득하게 들려왔다.
    스마트폰에서 지도 검색을 해보니, 그곳은 론다 최초의 투우 경기장이었다. 헤밍웨이가 18년 동안 왔던 곳이었다. 그는 매년 9월에 열리는 투우 경기를 보기 위해 론다에 집을 두고 드나들었다. 언뜻 학대로 보이는 투우 경기가 배려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헤밍웨이 때문에 알게 되었다.
    농장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는 소를 도와주려는 방법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극한의 고통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차라리 죽여 달라고 호소할 때 그렇게 해주듯이, 고통을 빨리 끝내주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그래서 마타도르의 칼은 휘어져 있다. 칼끝이 단 한 번에 소의 심장을 건드릴 수 있도록.
    스페인의 투우 소는 황제같이 자라서 영웅처럼 죽는다고 한다. 투우 소는 가장 좋은 환경에서 가장 좋은 사료를 먹으면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자란다. 그리고 투우 경기 전날에 어두운 곳에 갇혀 있다가, 경기가 열리면 빛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리고 마타도르의 칼날에 죽는다. 때로 투우사가 죽거나 다치면 살아 돌아오기도 한다. 운이 좋은 걸까?
    헤밍웨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누에보’가 보인다. 신도시와 구시가지를 연결하기 위해 절벽 사이를 이어서 만든 다리였다.
    요한은 주연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얘기하며 들떠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실제 촬영지야. “스페인 내전 때 공화당이 프랑코 지지자들을 저 다리에서 던져버렸대”
    “총알을 아끼려고…….”
    ‘누에보’의 아찔한 아름다움에도 숨은 얘기는 있었다.
    사실은 이끼와 시간으로 덧칠해도 변하지 않는다. 나도 너도, 그리고 요한도.

 

 

*

 

    그날 그라나다의 택시 기사에게 내밀었던 냅킨에는 호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냅킨의 가장자리 아래에 짙은 녹색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Gracias por su visita.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지수
작가소개 / 한지수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문학사상》 신인상에 중편 「천사와 미모사」로 등단했고, 소설집 『자정의 결혼식』과 장편소설 『헤밍웨이 사랑법』, 『빠레, 살라맛 뽀』, 『파묻힌 도시의 연인들』, 『40일의 발칙한 아내』를 출간했다.

 

   《문장웹진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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