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번지

[단편소설]

 

 

386번지

 

 

이광재

 

 

 

    엄마 생일에 맞춰 고향에 내려간 날 서울에서 딸이 온다고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장만했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엄마표 동태찌개 같은 것. 아마도 엄마는 나를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엄마의 지인들은 자신의 딸에게 관심을 갖듯 걸핏하면 나에 관해 물었다고 한다. 늬 딸은 사학년이 되었겠구나, 벌써 대기업에 취직한 건 아닌지 몰라, 외국유학을 보낼 생각인가……. 그때마다 엄마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고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고 했다. 군 단위 소읍도 아닌 도청소재지에서 그해에 내가 간 대학교에 합격한 학생은 세 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적을 둔 동사무소와 내가 다니던 고교 정문에 나의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일 년 내내 걸려 있었다고 말하면 누가 믿겠는가.
    집에 내려간 지 이틀째 되는 날 아빠가 출근한 후 엄마와 드라이브를 했다. 난데없이 엄마는 자기 태어난 곳을 보고 싶다며 동행을 요구했다.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는 팔린 지 오래여서 외가 마을에 남은 거라곤 뒷산의 산소뿐이었다. 엄마는 당신의 부모에게조차 나를 자랑하고 싶었을까. 그날 외조모부의 산소를 거쳐 다시 시내에 들어섰을 때 엄마는 간절한 것이 이루어졌을 때 나오는 게으르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커다란 날숨에 으흠 소리가 섞여 나오는 안도와 이완의 문양, 감창소리와도 비슷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을 간파한 내가 뭔데 그래? 그렇게 묻자 운전하는 엄마의 얼굴에 금방 홍조가 드러났다. 팔십육년돈가 칠년돈가, 이곳에서 데모를 하는데 최루탄이 터져 눈썹에 파편이 박혔지 뭐야. 그래서 지금 엄마 눈썹이 짝짝이란다. 그때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엄마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간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은 다른 이야기 틈새에서 확인된 사실이었다. 어쨌든 엄마의 오른쪽 눈썹이 세로로 그어져 분단선처럼 잘려 나간 것을 눈썰미 좋은 사람은 대번에 알아챌 수 있다. 그럼 문신을 하지 그래. 내가 문신을 왜 하니? 훈장인데! 그때 속으로만 말하고 입 밖에 내지 않은 소리가 있었다. 어휴, 꼰대!
    엄마 고향에 다녀와 내 방에서 한숨 자고 났더니 칼도마소리가 들리고 내가 좋아하는 새우튀김 냄새가 났다. 문을 열자 엄마가 우리 딸 일어났냐며 간을 보라고 튀김을 입에 넣어준다. 엄지 척을 해주고 많이 못 먹으니 조금만 만들라고 하자 엄마는 친구들이 방문하기로 했다며 겸사겸사 만드는 거라고 했다. 아항, 그 무슨 프로젝트. 그즈음 엄마의 대학 동기 몇은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출연해 진행하는 무슨 프로젝트를 맡아 뻔질나게 의견을 나누고 회의를 하는 눈치였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엔 만나기만 하면 정권을 성토하더니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자 광화문 앞까지 몰려와 촛불을 들고 이제는 프로젝트 때문에 머리를 맞대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 동지들이 집을 방문한다는 것인데 생일을 빙자했을 수도 있지만 역시 나를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여간 어른들 유치한 거 누가 모른단 말인가. 샤워를 하고 났더니 그새 창밖에 어둠이 깔리고 헤어드라이어 소음 사이로 초인종 벨이 울린다. 헤어드라이어를 끄고 빠끔히 열린 문을 닫으며 다시 버튼을 누른다. 다시 초인종 소리, 또 초인종 소리. 야, 잘난 딸은? 위잉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 엄마가 친구들에게 인사라도 하랄까 봐 가슴의 뼈마디가 조여지며 숨이 가빠 온다. 졸음이 밀려오겠다는 신호였다. 정상적이었다면 지난번 시험에서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는데 뼈마디가 조여지고 숨이 가빠지면서 졸음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시험감독이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모든 상황은 끝나 있었다.
    침대에 파고들어 유튜브를 연다. 철 지난 유행가인데 최근 열심히 듣는 곡을 클릭한다. 어떤 절대적 순간이 지났을 때 그것을 적나라하게 환기시키고 위로해 주는 것은 유행가밖에 없다. 특히 당대를 지배하는 노래가 아니라 사람들 시선에서 멀어진 곡일수록 더욱 강력하게 그 절박함을 눈앞에 끌어다 댄다. ……이런 몹쓸 병 몹쓸 병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지독한 병이지 어제도 오늘도 너무 아프기만 해 그냥 멍하니 눈물만 흘러…….

     인용된 노래는 러브홀릭의 〈러브홀릭〉

 

*

 

    내가 사라졌다. 내 기억이 아니라 내가 통째 사라졌다.
    그날 이후 나에 대한 것들은 오리무중에 빠진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졌다. 카톡이나 메일의 비밀번호 같은 것, 휴대전화의 패턴이랄지 가까운 사람의 전화번호까지. 심지어 내가 누구와 친하게 지냈는지, 또 그들과 어떤 식으로 교류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카톡에 온 문자메시지를 보거나 메일을 열기 위해 숫자와 기호를 조합해 봤지만 끝내 비번을 찾지 못했다. 휴대전화 상단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는 알림창이 밤낮없이 뜨곤 하지만 그것들을 확인하지 못할 때의 답답함을 뭐라 말해야 할지. 단톡방에 들어가 수다를 떨고 이것저것 검색도 해야 하는데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기억이 아니라 내가 통째 사라진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 어떻게 나를 알아낼까.

 

    노량진역 3번 출구에서 올라와 고시원과 독서실과 학원, 저렴하게 배를 채울 식당, 삼각김밥이 진열된 편의점을 지나 내가 기거하는 곳으로 돌아왔다. 고시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눈에 띈 것은 벽에 붙은 일인용 침대와 맞은편 벽에 면한 책상, 그리고 책상이 끝나는 곳에 유리벽으로 구획돼 있는 화장실. 벽에 부착된 책꽂이는 책상 오른쪽에 놓인 붙박이 수납장으로 연결된다. 외방창은 없고 붙박이 책꽂이 옆에 손수건만 한 내방창이 복도의 파리한 불빛을 받아들인다. 책꽂이에는 몇 권의 문제집과 한국사 교재가 꽂혀 있는데 비어 있는 책꽂이 바닥에 일직선으로 그어진 먼지 자국이 최근 빠져 나간 몇 권의 책들을 암시하고 있다. 그 책들은 침대 발치에 놓인 상자에 담겼을까. 택배상자는 테이프로 봉해지고 겉면에 집 주소가 적혀 있다. 안덕원로 386번지 삼경아파트 3동 506호. 그리고 그 밑에 엄마의 이름. 시험을 보다 가슴이 뻐근해져 잠을 자버린 날 낙향을 결심하고 짐을 꾸렸을까.
    의자를 물리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컴퓨터 옆에 놓인 경제학 기출문제집을 펼쳐 본다. 문제를 풀고 붉은 펜으로 채점을 했는데 틀린 문제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어쩌다 틀린 문제 옆에는 오답에 이르게 된 사고 과정을 깨알같이 메모해 놓고 있다. 너의 사고가 아니라 그들이 요구하는 답변을 들려줘.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연안의 자연이나 그곳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이익 말이야. 이쪽의 세련된 탐욕. 나는 머리칼 속에 손가락을 넣어 두피를 긁적거린다. 다시 문제집을 넘기다 찢어진 노트에 휘갈긴 메모를 발견하고 스탠드 불빛에 비춰 본다. 영어번역문이 우리말로도 좋은 글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반복하기, 관련 논문과 외교부 보고서를 꾸준히 챙겨 볼 것, 내 생각은 집어치우고 PSAT가 요구하는 사고패턴에 나를 맞출 것.
    노트북에 전원을 넣는다. 노트북이 부팅되는 동안 책상에 놓인 휴대전화 상단에 카톡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알림창이 뜬다. 카톡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는 전화기의 패턴을 해제해야 하듯 컴퓨터를 이용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내 생일일까. 그러나 오류. 아라비아 숫자 열 개를 조합하는 일만으로도 생애가 부족할 텐데 알파벳과 여타 기호를 포함한다면 목숨 열 개로도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그 조합들만큼이나 세계는 복잡하고 다층적인가. 세계는 실물의 연계와 총합이 아니라 기호와 추상의 알고리즘일까. 누구와 어떤 문자를 주고받았는지 파악할 수 없으므로 내 대인관계가 어느 수준으로 직조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타인에 대해 이해했던 것보다 언제나 더 나를 몰랐던 것 같다. 걔는 이기적이고 냉정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냉정한지 따뜻한지, 예쁜지 평범한지.
    책꽂이에 붙여 놓은 생활계획표에 단숨에 써 갈긴 글씨가 시간대별로 나열돼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기상 다음에 나오는 돌돌 말린 소시지 도넛이란 글씨와 오후 시간의 도림천 산책, 취침 전 담배 한 대라고 쓰인 글씨였다. 잠에서 깨어 식사 대용으로 돌돌 말린 소시지 도넛을 먹었구나. 하루 한 대지만 자기 전에 담배를 피웠다는 것도 생소하고 매일 도림천을 산책했다는 점도 이물스럽다. 학교 동기나 선후배를 마주칠까 봐 신림동에서 노량진으로 옮겨야겠다는 각오를 엄마에게 밝힌 기억이 나는데 애써 떠나 온 그곳을 산책하려 하다니. 운동 차원이라면 노량진역 건너 사육신 공원이 그럴싸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지하철을 갈아타면서까지 도림천변을 걸어야 했다면 아는 사람과 맞닥뜨릴 위험요인을 상쇄하고도 남을 유혹이 거기 도사리고 있어야 했다. 무슨 미련을 떨궈 놓았을까.
    책꽂이에 압정으로 꽂아 놓은 생활계획표의 일정을 따라가 보는 것이 나를 찾는 한 방법이 되겠다 싶어 거기에 일상을 의탁하기로 했다. 컵밥촌의 컵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다음 산책 시간이 될 때까지 머리카락 같은 나의 흔적을 감식반원처럼 탐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도림천 어느 지점을 걸었는지 알 수 없어 일단 신도림에서 지하철을 갈아탄 후 신림역에서 내렸다. 2번 출구로 나와 먹고 마시는 가게가 압도적으로 많은 큰길을 따라가자 어느 순간 숨바꼭질하듯 도림천이 펼쳐진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 근처 아중천과 폭은 비슷했고, 고적한 분위기랄까 변방의 이미지까지도 닮은 데가 많은 곳이었다. 그런 기시감 때문에 이곳을 산책했다고 말하면 그건 상상력 빈곤일 테지. 철물점과 편의점, 한의원이나 보일러 가게.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이 평범한 거리에서는 나를 특정할 무언가가 찾아질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대편 천변으로 길을 거슬러 내려온다. 길을 재촉해 승리교를 건너 도림천을 버리고 신림로의 인파 속에 몸을 섞는다. 다리도 쉴 겸 길가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이층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는다. 자리를 잡은 곳이 하필 흡연실 쪽이어서 문틈으로 연기가 새나왔지만 옮기기 귀찮아 버티기로 했다. 테이블 하나 건너에 여자애 둘이서 아이스티를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 또래거나 한두 살 아래인 그녀들의 화제가 궁금해 고개를 트는 척 대화를 감청한다. 이야기 전체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중 하나의 입에서 나온 젠더프리라는 말이 귓바퀴에 감긴다. 물론 나는 젠더프리는 아니지만…… 뭐……. 그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뜻이 통하는 사람끼리 은밀한 의견을 교환할 때 신중한 몸짓이 만들어지고 목소리에는 시대의 담론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담기게 마련이다.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선진적이고 절박한 의제를 다룬다는 듯이. 지난날의 엄마나 아빠들이 했을 법한 포즈 아닌가.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사고 내가 태어난 도시 이름을 건 식당에서 순댓국을 먹었다. 고시원에 들어온 후 밖의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공시생들이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벤치가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 구석진 자리를 찾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 한 모금을 흡입한다. 쌀뜨물 같은 게 뇌 주름 사이에 고이면서 머리가 둔중하고 묵직해져 급히 난간을 틀어쥔다. 밤늦은 시각 철지난 노래를 들으며 담배를 피웠을까. ……이런 불치병 불치병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못견뎌낼 거야 내일도 모레도 미칠 듯한 아픔에 그냥 이대로 울고 있겠지…….

 

    노량진의 미로 같은 길들을 헤맨 끝에 프랑스 어느 도시의 이름을 딴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돌돌 말린 소시지 도넛을 찾아냈다. 소시지를 가운데 넣고 핫도그처럼 반죽을 입혀 구워낸 빵을 우물우물 씹어 삼키는데 목이 마쳐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물을 조금씩 마시면서 다시 한 입 크게 베어 도넛을 씹는다. 음식이 마치는 건 목인데 이상하게도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렇게 세 입쯤 베어 먹으면 끝인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어디에서 시작할까 궁리하며 고시원을 둘러본다. 어제는 별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뭐라도 건져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치는데 침대 발치에 놓인 택배상자가 보인다. 동전을 꺼내 테이프에 몇 번 금을 긋자 택배상자가 열리면서 화장품 샘플이 담긴 바구니와 머그컵이며 헤어드라이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깨질 위험이 있는 물건을 들어내고 두 줄로 놓인 책을 한 권씩 꺼낸다. 현대 국제관계 이론과 한국, 국제정치 패러다임,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 국제법론, 그리고 경제학 책들. 침대 위에 그것들을 쌓으면서 메모지 같은 게 들어 있지 않은지 책을 탈탈 턴다. 소설책도 있고 암으로 투병하다 젊은 나이에 죽은 여류시인의 시집 한 권이 나온다. 시집을 내려놓고 영문과 불문으로 된 문고판 소설을 꺼내자 플라스틱 스프링으로 철한 노트가 나타난다. 문구점에서 산 건 아니고 복사가게에서 만든 듯한 노트. 노트는 책보다 두툼한 편인데 공부했던 흔적과 영작 에세이를 썼던 기억이며 프랑스의 마리와 통화한 내용을 불어로 써 갈긴 메모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페이지를 넘겨본다. 노트 중간쯤에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낙서가 가쁜 숨결처럼 휘갈겨져 있다. 눈을 감아도 네 모습이 보여. 귀를 막아도 네 소리가 들려. 그렇지만 눈앞에 있어도 돌아서고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거야. 내가 공부를 잘했던 이유는 독했기 때문이야. 엉덩이를 붙이면 떼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는 모습. 엄마가 좋아했지. 그런 엄마의 모습에 나도 기뻤어. 그러다 보니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게 돼버렸어. 나를 뒷바라지하려고 엄마가 교직을 그만둔 순간부터 더욱 책상에 당겨 앉아야 했지. 난 그렇게 독한 애야. 수렵, 아무리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들려와도 이젠 독하게 굴 거야. 엄마의 자랑이 허영으로 끝나지 않게 내게도 그것이 자부심이자 축복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언제 그런 낙서를 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공부의 흔적 속에 남겨진 메모인 걸로 보아 지난번 시험과 이번 시험 중간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시험이 끝나면 공부한 노트들은 내다버렸으니까. 어쨌거나 끝을 기약할 수 없는 공시생 생활에 나는 지쳐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뒤로 고사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졸음이 밀려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뜩이나 부담이 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수렵은 이름일까. 메모에는 그에게서 돌아서겠다는 의지가 강조돼 있지만 그럴수록 돌아서기 싫다는 반어로 읽혀 마음 한쪽이 애잔해진다. 다른 메모를 찾아 손가락에 침을 발라 노트를 넘겨보지만 사적인 메모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나를 확인하는 일은 규칙 속의 경향이 아니라 먼지처럼 사소하고 범속한 것들 속에 담겨 있구나. 밥을 먹을 때 가장 먼저 무슨 반찬에 손을 대는지, 담배 필터는 입술에 무는지 이빨로 깨무는지. 사람들이 의미 있다고 말하는 것 외에 그런 무의미한 것들이 내 시간에는 몇 퍼센트나 쌓여 있을까. 다시 노트 한 권을 찾아낸다. 영문 에세이, 프랑스에서 사귄 친구 마리와 통화하며 휘갈긴 메모. 계속 노트를 넘기다 보니 역시 사선으로 비껴쓴 낙서가 보인다. 수렵, 네 엄마와 아빠가 찾아왔어. 언젠가 말했었지. 토목사업을 하다 사대강 사업 때 토호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비아냥대던. 케피타에서 만났지. 낙서를 읽다 말고 케피타라는 낱말에 눈을 맞춘다. 젠더프리를 말하던 그 여자애들……. 아무리 뇌리에서는 기억이 사라져도 살갗에 새겨져 내 행위를 지배하는 문양은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연기가 흘러나오던 흡연실 옆 그 자리였을까.
    노트를 끝까지 훑어본 뒤에야 엉덩이를 물리며 뒤로 나앉는다. 나에 대한 희미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가슴이 뜨거워졌지만 산책할 시간이 박두해 와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거른 채였다.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좁은 길을 걸어 내려온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신림역 2번 출구로 나와 다시 도림천이 나타날 때까지 걷기 시작한다. 어느새 사람들의 차림은 두툼해지고 무채색 계열이 많아져 거리가 어둡게 느껴진다.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맞은편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걷는다. 이제는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라 주소를 들고 집을 찾는 사람처럼 탐색하는 눈초리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한다. 깨끗한 삼층 건물의 킹크랩․대게전문점 간판을 보면서 한 번이라도 수렵이라는 사람과 저런 데를 가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도림천이 복개된 곳에서 삼성교를 건너 반대편 길을 타고 내려온다.
    커피전문점 이층은 꽤나 넓은 편으로 테이블 만 열 개가 넘고 순환율도 높아 보인다. 자리를 차지한 사람 중 노트북을 켜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필기를 하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아이들은 학생일 것이고 한가하게 담소를 나누는 축들은 졸업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휴학한 처지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내 부모님 또래의 연배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났단 말이지. 머그컵을 감싸 손을 녹이면서 한 모금씩 음미하며 커피를 마신다. 흡연실은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쪽에서 주로 이용하는데 그들이 몰려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연기가 새어 나온다. 실명인지 닉네임인지 수렵이라는 사람과 내가 사귀었다는 걸 마침내 알게 됐지만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은 여전히 맹탕이고 목소리도 떠오르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꺼내 내 생일을 응용해 패턴을 만들어 본다. 실패. 전화번호 뒷자리를 이용해 다시 시도해 보지만 역시나 아니다.
    노량진역에서 내려 이동통신사 대리점의 알바생에게 전화기 패턴을 해제할 수 있는지 물었으나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패턴 오류가 반복되면 전화기에 저장된 데이터가 날아갈 수도 있다며 알바생은 돕지 못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는다. 차라리 전화기를 초기화하지 않겠냐는 말에 성급히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가게를 나온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하나 값에 두 개 사서 가방에 넣고 가로등이 밝혀진 골목을 걷는다. 저편 가로등 아래에서 이곳 고시촌에서만 용인되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 둘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순찰차가 옆 골목에서 나타나자 그들은 담장에 몸을 붙여 길을 틔워 준다. 내가 그들을 비켜 지나가는데 순찰차를 바라보는 그들 쪽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저 차 운전수가 나라면 좋겠다. 경찰직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인가. 고시원에 들어와 삼각김밥 두 개를 먹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PC방을 나와 고시원으로 뚫린 골목을 달리기 시작한다.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은 금세 촉수를 자기 쪽으로 구부리면서 가던 길을 재촉한다. 놓고 온 학원 교재를 찾아 고시원으로 뛰는 일쯤 익히 경험했다는 표정들이다. 내 방으로 뛰어든 나는 노트북에 전원을 넣고 부팅이 되기를 기다리며 호흡을 가라앉힌다. 내가 PC방을 찾아간 것은 엄마의 메일 주소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무슨 일인가로 엄마의 메일을 열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비번이 기억났다. 노트북 컴퓨터는 암호부터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PC방을 찾았던 것인데 메일 주소를 적고 비밀번호란에 내 이름을 입력하자 거짓말처럼 메일이 열렸다. 뭔가 떠밀려오는 느낌에 갑자기 어지러워져 주먹으로 머리를 치고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셨다. 아직 읽지 않은 메일을 지나 받은 편지를 검색하다 채집이란 닉네임으로 내가 보낸 메일을 찾아냈다. 아이티에 있는 가발공장으로 떠나기 전에 필요한 서류를 떼어 달라며 보낸 서류 목록 메일이었다. 조심스럽게 메일을 클릭하자 보낸사람란에 채집의 주소가 드러났다. gatherer0606. 로그아웃을 하고 이번에는 내 주소를 적은 후 비밀번호란에 엄마 생일을 입력하고 느낌표 두 개를 달았다. 엄마의 비번이 내 이름임을 확인한 순간 예리한 통증이 전류처럼 머리를 치고 갔는데 예감대로였다. 은밀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나는 PC방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모니터를 보았다. 받은메일함 상단에 경제학을 수강했던 학원에서 보낸 메일과 스팸메일 제목이 굵은 고딕체로 적혀 있었다. 커서를 아래로 내려 수렵이라는 닉네임을 찾아 제목을 클릭했다. 전화기에서 나를 차단시켰니? 연락할 방법이 없어 메일을 보낸다. 만나서 해결하자. 설령 마지막이 될지라도 너를 만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다……. 말줄임표에 놓인 시선을 거두며 다시 식은 커피를 들이켜고 수렵에게 보낸 답장을 확인하기 위해 보낸메일함을 뒤졌다. 기대감과 두려움이 같은 무게로 파들거리는 저울을 쳐다보는 기분. 수렵이 메일을 보내온 다음날 채집의 이름으로 그에게 보낸 편지가 있었다. 기갈 든 사람처럼 메일을 읽었다. 수렵과 채집의 시절로부터 우린 너무 멀리 왔어. 그 시절은 과거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날들처럼 느껴져.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우리가 본 것을 바위에 새기던 시절들 말이야. 바람이 별을 씻고 초원과 산맥이 대지의 모든 것이던 시절. 그러니 수렵, 이제는 안녕.
    노트북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는다. 부팅이 끝나자 노트북 컴퓨터의 까만 액정화면에 비밀번호란이 나타난다. 거기에 커서를 놓고 관절을 푸는 사람마냥 손을 쥐었다 편 뒤 엄마의 생일과 느낌표를 입력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토록 완강하게 나를 퉁겨내던 노트북이 마침내 옷을 벗고 속내를 드러낸다. 나는 인터넷을 연결해 수렵이 보낸 다른 메일이 있는지 검색한다. 메일을 찾을 수 없어 휴지통을 뒤졌지만 수렵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휴지통에서 나와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보낸메일함을 클릭하고 시간을 뒤로 감자 채집이란 닉네임으로 수렵에게 보낸 메일이 나타난다. 마우스를 움직여 우리의 낙원을 떠나며, 라는 제목에 커서를 놓고 눈을 감는다. 중력도 무엇도 미치지 못하는 우주의 심연에 도달한 느낌. 엄마의 태중이거나 깊은 물속 같기도 한 고요. 눈을 뜨고 검지를 딸각거리자 긴 글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니 허락을 받아 부모님이 나를 찾아온 줄 알았어. 그러나 네 부모님이 그건 아니라고 말해 줘 너에 대한 오해를 거두기로 했지. 너의 아버지는 자르르 흐르는 양복 차림에 까맣게 염색한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이마가 시원했고, 어머니는 과하지도 검박하지도 않은 매무새였어. 뭐랄까, 너는 정치권에 줄을 대 사대강 사업 때 토호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비난했지만 첫인상은 꽤나 자신만만하고 세련돼 보였단 뜻이야. 말을 할 때도 최대한 그쪽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듯하더라. 나는 커피를 마셨고 두 분은 라떼였어. 이윽고 간단한 인사치레가 끝나고 아버지가 너를 언제 만났느냐 묻기에 철학연구회에서 만났다고 했지. 네 아버지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다시 물었어. 불문과라고 들었는데 철학에도 관심이 있었나 보지? 이름이 철학연구회이긴 해도 철학만 파는 동아리는 아니었어요. 회원들의 관심은 인문 사회에 두루 걸쳐 있었고, 그게 전통이랬어요. 신화나 동양 고전에 관심을 두기도 했고 토착사상도 인기가 있었어요. 질문이 짧았던 데 반해 대답이 길어졌지만 네 부모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더구나. 하기야 학창 시절엔 그분들도 시위 행렬에서 세월을 보냈을지 모르지. 그땐 다들 그랬다니까. 그러나 예를 갖추기 위한 네 부모님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나 봐. 처음보다는 격식을 걷어낸 목소리로 어머니가 물었어. 부모님은 두 분 다 계시고? 맞선을 보던 선사시대에나 나올 법한 질문이라 웃음을 참으려고 어금니를 깨물었어. 아빠는 교직에 계시구요, 엄마도 그쪽 일을 하시다 그만두셨어요. 빠듯한 살림이었을 텐데 딸을 이리도 잘 키웠구나. 어쩐지 딸을 잘 키웠다는 말보다 빠듯한 살림이란 말에 방점이 찍힌 듯해 목구멍이 뜨거워지더라. 그런 내 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해찰을 하는데 역할 분담하듯 이번에는 네 아버지가 물었어. 아이티에 취직이 됐었던 모양이던데……? 네, 가발 만드는 회사였어요. 오너는 한국 사람인데 처음엔 중국에 공장이 있었대요. 그런데 인건비가 올라가고 사업 환경도 열악해져 아이티로 옮겼나 봐요. 전 한국인 관리자와 그곳 노동자들 사이에서 통역을 담당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업무도 맡았어요. 이번에도 질문은 짧고 답변이 길어졌어. 나를 탐색하려는 네 부모님의 질문 목록을 줄여 가기 위한 방어기제였을 거야. 그런데 왜 그만두고 나왔어요? 돈이 좀 모이면 프랑스에 가서 박사 과정까지 밟을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쯤에서 나는 말을 계속할지 말지 망설였어. 그렇지만 네 부모님을 만나기로 한 순간 참한 아이로 보이려는 노력 따윈 하지 않기로 다짐했었거든. 가래 걸린 것처럼 목이 근질거려 토하고 싶기도 했구. 우선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셨어. 그쪽 노동자들을 대하는 한국인 관리자들의 태도를 견디기 어려웠어요. 산업화 시기에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이 우리 노동자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책에서 읽었거든요. 그게 재현되고 있었어요. 야근과 특근에다 폭언과 폭행은 기본이고, 원주민을 짐승 취급하는 관리자의 태도, 그쪽 문화를 무시하고 이쪽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막무가내의 주입. 부끄러움 때문에 매일매일 도망치고 싶었어요. 뭔가 무안을 당한 사람처럼 네 어머니는 잔을 들어 차를 마시고 아버지는 나를 피해 시선을 거두더구나. 너의 부모님으로부터 나는 여지없이 낙제점수를 받게 된 거야. 하긴 나를 간보기 위해 그분들이 연락을 해온 순간 낙제하기로 결심했었는걸 뭐. 세상이 만만해 보이고 입맛대로 모든 걸 요리할 수 있다 쳐도 먹으면 안 되는 재료가 있어. 아무리 자식 또래라도 이건 무엄한 처사잖아. 마침내 결심이 선 듯 네 어머니가 묻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죠? 그 노골적인 질문엔 솔직히 힘이 좀 빠지더라. 절로 목소리가 낮아졌지.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럼 이번에도 시험을 봤겠네? 네, 떨어졌어요. 졸음 때문에. 내가 당신들을 놀린다고 생각하는지 미소를 지을 때 팬 주름이 두 분 얼굴에서 서서히 지워졌어. 그래도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름칠이 덜 된 듯한 서먹함은 가신 듯했어. 도리어 멋쩍어질 질문까지 나왔으니 엔진이 너무 잘 돈 건지도 몰라. 혹시 결혼을 생각했어요? 그 순간 나는, 결혼이요? 그렇게 물어 놓고 입을 가리며 웃었어. 본론으로 직행해 가는 저 속도를 노파심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난 말했어. 우린 잃어버린 세대잖아요. 그런 건 사치예요.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도 당돌한 대답이긴 했어. 그런데도 네 어머니의 눈가엔 미소가 피어나면서 몇 가닥 주름이 나타나더구나. 아직 청춘이니 데이트쯤이야……. 그로써 네 부모님이 듣고 싶었던 말과 하고 싶었던 말은 얼추 정리가 된 셈이었지. 원하는 방식으로 나와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너만 설득하면 된다고 여기는지 그분들은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어. 잠깐의 침묵 뒤에 하는 일 잘 되길 빈다는 덕담을 남기고 마침내 네 부모님은 자리에서 일어섰어. 그런데 그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가지 뭐야. 저도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나의 갑작스런 반응에 두 분이 천천히 몸을 돌렸지. 호기심 반 놀람 반의 표정으로. 어차피 내친김이라 난 말을 해버렸어. 두 분께선 최근에 재밌게 읽으신 소설이 있나요? 그분들은 엄격해진 눈으로 날 보았을 뿐 답변은 하지 않았어.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왔구나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돌이킬 일도 없잖아. 이상도 하지. 그때 난 네 부모뿐 아니라 너에게도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으니까. 뭐랄까, 니가 용인한 꼭 그만큼쯤 내가 무시를 당했다는 느낌. 그래, 법학대학원을 마치고 넌 변호사나 검사가 되겠지. 부모님이 인정한 사람과 몸을 섞고 번식을 하고 삼시세끼를 먹는 일이 인간사라니. 사람이 짐승과 다르다는 믿음을 우리는 다양한 논거로 확립해 왔지만 생각해 보니 부질없는 짓이었구나. 문명의 발전을 축복인 양 암송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겉치레는 현란해지고 본능과 번득임만 남은 세계로 걸어가게 되다니. 수렵, 행운을 빈다.

 

    도림천변을 걷는 대신 사육신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시험에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공시생이 꺼리는 사육신 공원 오솔길을 천천히 걸었다. 홍살문을 통과하고 불이문을 지나자 사육신 신위를 모신 의절사가 나타났지만 눈도 주지 않고 묘역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몇 잎 남지 않은 낙엽이 비선형을 그리며 떨어진다. 무덤은 도합 일곱 기. 잡초나 잡목도 없이 봉분들은 잘 관리되고 있었지만 빛바랜 잔디 때문인지 추워 보였다. 셋씩 넷씩 모여 있는 무덤을 보고 섰다가 포장된 길을 따라 돌아서는데 조망대에 이르도록 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는다. 조망대에 올라서자 빌딩에 파 먹힌 남산이 한강철교 너머로 보이고 쇠못 같은 여의도의 들쑥날쑥한 빌딩이 서강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보이는 한강은 탁하고 서늘하고 시린 빛이었다. 무덤을 보고 온 탓일까. 물에 떠서 흘러가는 사람이 보인 듯해 고개를 젓는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수초처럼 흔들리는 모습. 춥겠구나.
    생활기록표에 의하면 내가 도림천 산책에 할애한 시간은 두 시간이었다. 문제가 되는 건 학습량이 아니라 졸음이므로 너그럽기로 들면 충분히 양해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일분일초를 쪼개야 하는 공시생의 초조를 감안하면 역시 두 시간은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 무엇이 그 무모함을 감당하게 했을까. 절박함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고, 그 절박함 때문에 때로는 타인처럼 느껴지는 내가 안쓰러워진다. 떠나기 위해 노량진에 정착해 놓고 더욱 그리워진 저쪽. 이제 나는 저쪽에 찍힌 수렵과 채집의 발자국을 안다. 어제 산책을 하기 위해 그 거리에 섰을 때 푸른 멍을 들일 듯 통증이 우러나왔다. 그게 도림천변이 아닌 사육신 공원을 산책 장소로 택한 이유였다.

 

    고시촌을 걷고 돌돌 말린 소시지 도넛이나 삼각김밥을 먹을 때 나는 수시로 휴대전화를 열어 내 삶의 궤적을 확인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경우에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타인의 어깨에 체중을 맡기고 타임캡슐 열듯 저장된 내 행적을 들여다보았다. 휴대전화의 패턴 역시도 엄마의 생일이 힌트였다. 아홉 개의 점을 0이 생략된 키패드라 여기고 엄마의 생일에 해당하는 숫자를 연결해 몇 차례 오류를 범한 끝에 휴대전화를 열었다. 휴대전화의 패턴을 풀었을 때 맨 처음 나는 수렵에 대한 차단부터 해제시켰다.
    카톡에는 몇 백 개의 문자가 열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읽지 않은 문자의 숫자가 가장 많았던 건 필라소피러브라는 이름의 단톡방이었다. 철학연구회 출신들의 수다 공간 같았는데 대개의 단톡방이 그렇듯 방에 들어와 문자를 남기는 사람은 몇몇으로 한정돼 있었다. 개중에는 사소한 것들로 말을 걸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낄낄대는 축도 있었지만 진지한 글을 올리는 아이도 있었다. 실명인지 닉네임인지 지혜라는 아이는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밀려드는 일에 치여 살다 일주일째 코피를 흘린 끝에 손을 들고 나왔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걸핏하면 방송에서는 일자리창출 어쩌구 떠드는데 우리는 일하다 죽을 운명일까. 그런 식의 노동은 신성한 것도 행복한 것도 아니던데. 문자 말미에 그런 탄식을 쏟아 놓고 지혜는 덧붙였다. 요즘 저 어디 북구 쪽으로 나갈 궁리를 하고 있어ㅋㅋ 응원 부탁해.
    단톡방을 순례하다 러셀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애늙은이 같은 친구의 글에 시선이 머문 적도 있었다. 난생처음 지리산을 종주했다며 서두를 뗀 후 다른 아이들이 좋았겠다^^~, 혹은 이 추운 날 지리산이라니…… 그런 반응을 보이자 러셀은 지리산 산행 과정에서 깨우쳤다는 생각을 문자로 남겼다. 한국전쟁 때의 일을 생각해 보자.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 후 남쪽의 많은 사람들은 지리산에 모여들었어. 당연히 가을 옷을 입고 있었겠지. 물론 날이 추워진 다음엔 보급을 통해 보완했을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적게는 한 번, 길게는 서너 번씩 그곳에서 겨울을 났다고 생각해 봐. 끔찍한 일이지. 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 혹한 속에서 견디게 했을까. 돈을 준다고 그 짓을 할 수 있었겠어? 신념 때문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신념 때문에 목숨을 던질 줄 아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니까. 그야말로 고결함의 표징이지. 꽤나 비장한 이야기이면서 철학연구회 구성원들의 고민과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문자였다. 그런 러셀의 문자에는 많은 답글이 달려 있었다. 십억이면 도전하겠다는 사람부터 신념과 목숨을 바꾼 여러 사례들까지. 그중 채집이라는 닉네임으로 내가 남긴 댓글을 읽을 때 핏덩이 같은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인간은 사랑 때문에도 목숨을 걸지. 그밖에도 아이들의 답글은 더 이어졌는데 러셀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누가 우리에게서 신념을 빼앗아갔을까.
    종일 고시원에 박혀 휴대전화를 열람하다 삼각김밥을 사려고 시간을 확인했으나 유통기한 마감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거리를 서성이며 시간을 보낼까 망설이는데 와락 화증이 난다. 무엇 하나 먹는 일에도 주머니를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해도 시간을 따져야 하는 생활. 살아생전 외할머니는 집 앞 텃밭의 오이를 따다 제꺽 냉채를 만들어내셨지. 나이 드니 노는 일도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던 어떤 할머니의 말을 지하철 안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노는 일도 재미없다는 그때를 위해 개미굴 안쪽에 먹이를 쌓아 두는 게 성취일까. 시시하다.
    눈에 보이는 식당 아무데나 들어가 설렁탕을 먹고 고시원에 돌아왔다. 흩어진 책을 택배상자에 쓸어 담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눕는다. 휴대전화를 꺼내 익숙한 솜씨로 패턴을 푼다. 필라소피러브 외에도 문자를 주고받은 사람은 고교 동창을 포함해 제법 많았다. 프랑스 벨포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알게 된 마리라는 여자와 나눈 대화도 빈번하게 등장했다. 영어와 불어로 번갈아가며 근황을 묻고 막연한 계획 같은 걸 교환한 문자가 대부분이었다. 마리는 불어를 공용어로 쓰는 아프리카 쪽이나 퀘벡으로 넘어갈 생각을 비치기도 했는데 그녀의 문자에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아랍계와 아프리카 사람들 이야기가 많았다. 태어난 곳에서 떠밀린 그들은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떠돌고 있거나 변방에 자리를 잡는다는 이야기. 그들에 대한 연민도 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네들의 눈초리가 실은 무섭고 불편하다는 이야기.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을 증오하는 자기 모습을 깨닫게 된다는 것까지. 마리의 그런 문자 밑에 유레카를 외치듯 내가 달아 놓은 문자가 있었다. 지금 준비하는 시험을 통과하면 프랑스어권으로 나갈까 해. 아프리카에서 만나자. 수렵과 채집이 아직 가능할지도 몰라. 졸음이 날 억압하지 않는 곳. 그래, 아프리카로 가자.
    버튼을 눌러 전화기의 화면을 암전시킨 뒤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에 놓인 담뱃갑을 챙겨 방을 나선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데 공동취사장에 불이 밝혀져 있고 그곳에서 라면 냄새가 새나온다. 나는 계단을 밟고 쉼터로 올라가 즐겨 찾는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옥상 가녘에 내 키보다 높은 철제 난간이 설치돼 있는데 언젠가 공시생 하나가 뛰어내린 후 세워졌다고 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뛰어내리기 전에 그는 가슴에 담긴 온갖 이야기를 한참이나 소리쳤다고 했다. 죽음은 그렇게 날렵하고 명쾌한가. 담배를 끄고 내려와 하는 둥 마는 둥 세수를 한 뒤 불을 끄고 눕는다. 이대로 눈을 뜨지 않으면 그게 죽음이지 뭐.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전화를 찾아 패턴을 푼다. 상단에 카톡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창이 떠 있다. 카톡을 열고 들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킨다. 만나자는 수렵의 문자에 나는 커피전문점 이름과 만날 시간을 답글로 달았다.

 

    노량진에 올라온 지 일주일째. 다른 날보다 느지막이 고시원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신림역에서 내린다. 롱패딩 점퍼를 입고 내 키보다 큰 머플러로 목과 얼굴을 감싼 모습에서 사람들은 아라비아 여자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호주머니 속 안경집에는 얼굴 절반을 가리고도 남을 선글라스가 들어 있고 토트백 안에는 모자까지 모셔져 있다. 전자담배 멀티숍이 보이자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어디에 기대거나 주저앉지 않고 케피타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를 들고 이층으로 올라와 흡연실에서 멀리 떨어진 화장실 쪽 후미진 자리를 찾아간다. 점심 후의 사람들로 자리 대부분이 채워져 익명 속에 파묻히기 좋은 환경이었다. 커피를 탁자에 놓고 습관처럼 전화기를 꺼내 패턴을 푼다. 기사들을 검색하고 새로 온 메시지를 열람한 뒤 화면을 스크롤하며 놓친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갤러리에 들어가 나와 바짝 붙어 찍은 셀카 속 남자를 쳐다본다. 흰 피부와 곱슬머리에 눈이 안쪽으로 팬 스키타이족 후예의 얼굴. 고른 치열을 드러낸 남자의 웃음은 화창한 편이지만 나의 웃음은 어쩐지 찡그린 것처럼 보인다. 조만간 무슨 일이 나도 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진 속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갤러리를 나와 교보eBook을 클릭하자 그간 구매해 읽은 에세이와 소설이 순서대로 드러난다. 아무 책이나 골라 몇 문장 읽다가 음성녹음 파일을 터치한다. 지금껏 음성녹음 파일을 열고 들어간 적은 없었는데 006까지 일련번호가 찍힌 파일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어폰을 꺼내 전화에 연결하고 001을 터치한다. 경제학을 수강할 때 녹음했는지 벽을 맞고 튀는 강사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온다. 002를 지나 005까지도 강사는 경제학 용어를 설명하고 수식을 환기시키며 문제풀이에 열중한다. 그러나 006에 이르자 강사의 음성 대신 음악소리가 깔리면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벌통 속처럼 붕붕거린다. 거기에 액체를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끼어들고 여닫이문 열리는 소리가 드르륵 삽입된다. 나는 고개를 들어 흡연실을 바라본다. 여닫이문을 발견하고 그 여닫는 소리를 듣기 위해 안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때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
    살이 좀 빠졌네? 의자를 뒤로 물리는지 바닥 긁히는 소리가 나고 이어 남자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따라 나온다. 변호사 시험 준비도 해야 하고……. 니 메일을 보고 무언가가 명치를 쥐어짜는 거 같아 밥도 못 먹었어. 부모님을 설득해 볼게. 잠시 대화가 끊기고 꿀벌 붕붕거리는 소리가 틈새를 메운다. 차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지나자 내 말이 시작된다. 저들은 온갖 고전과 혁명이론까지 익히고 배운 사람들이야. 인터넷에서 얻은 모래알 같은 정보 따위완 비교가 안 될 정도지. 출간되지 않은 책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연마해 번역하고 원전 팸플릿을 이불 뒤집어쓰고 읽은 사람들이야. 동아리 선배들의 그 전설 같은 얘기 못 들었어? 매일매일 토론하고 방학이면 농활이다 공활이다 열에 들떠 뛰어다닌 사람들이야. 무슨 재주로 설득해? 녹음된 자기 목소리는 본래 어색한 법인데 냉소까지 얹혀 내 음성은 가뜩이나 낯설게 들린다. 남자의 목소리가 가녀리다면 내 목소리는 딱딱한 편이다. 남자의 목소리. 설득을 못 한다면 부모님과 의절이라도 할 거야. 꿀벌 붕붕대는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내 목소리. 어느 순간 저들은 이 세계 너머에서 시선을 거두고 말았어. 달리다 멈췄고 괴물에게 포획됐어. 기껏해야 이쪽 당이니 저쪽 당이니 하는 데 뛰어들고 남은 자들 역시 거기에 자신을 투사하고 있잖아. 니가 법학대학원에 들어가고 내가 외교관 시험을 준비하기로 한 순간 우리도 반쯤은 그물에 걸린 거야. 그래도 견디고 타협해 보려 했는데 폭탄이 터졌어. 우린 게으를 수도 없고 저 너머를 바라보지도 못할 곳에 버려진 셈이지. 난 떠날 거야…….
    한 손에 머그컵이 놓인 쟁반을 들고 다른 손엔 휴대전화를 든 남자가 계단을 올라와 실내를 일별한다. 눈이 패고 곱슬머리가 더부룩한 채 사흘쯤 깎지 않은 듯 코밑과 턱에 세모의 음영이 드리워진 남자였다. 나는 목에 두른 스카프를 턱밑까지 추켜올리고 토트백에서 모자를 꺼내 머리에 눌러쓴다. 선글라스를 쓸까 했으나 도리어 사람들 시선을 자극할 것 같아 잔을 들어 입 아래를 가린 채 남자를 흘끔거린다. 남자는 찾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듯 흡연실 쪽으로 걸어가 등을 보이고 앉는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휴대전화로 무언가 검색하는지 탁자에 시선을 두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다시 실내를 둘러본다. 때로 그는 손을 들어 긴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는데 행동이 조신하고 단정해 보였다. 동작이 빨라 보이진 않지만 대신 크게 놀라거나 허둥대지도 않을 사람 같았다. 입맞춤을 했을까. 어디 허름한 모텔이나 고시원에서 잠도 잤을까. 하룻밤에도 몇 번씩 핥고 쓰다듬고 교접했을까. 호흡이 가라앉기도 전에 상대의 귓바퀴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우린 수렵과 채집이라고 속삭였을까. 시약을 잘못 떨어뜨린 것처럼 가슴 아래 우묵한 곳에서 쓰라림이 번져 온다. 그는 명치를 무언가가 쥐어짜는 것 같다고 했었지.
    이어폰을 뽑아 호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에 들어가 사람이 있는지 살펴본다.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나는 화장실 출입구를 조금 열어 문틈으로 바깥을 내다보며 전화기 키패드를 두드린다. 신호음이 전달되고 흡연실 쪽 남자의 뒷모습이 짧게 움찔대더니 여보세요, 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이 목소리였구나. 녹음 파일과는 다르게 심장의 방망이질과 호흡까지도 생생히 전달되는 목소리. 이쪽의 응답이 없자 상대는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고 조금 다급해진 음성을 타전한다. 그러나 대답이 없자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커다란 눈으로 실내를 훑기 시작한다. 문 뒤에 몸을 숨기고 혹시라도 남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는지 찰나의 순간을 복기해 보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대고 호흡을 고른 나는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와 탁자 위의 토트백을 낚아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온다. 눈물을 감추려고 선글라스를 쓴 채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역에서 내려 고시촌 골목을 걸었다. 저 앞에서 캐리어를 끌며 다가온 남자가 나를 스쳐간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은 흙빛에 가까운데 계절이 바뀐 것도 모르는지 옷차림이 추워 보인다. 캐리어 바퀴소리가 멀어졌을 때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의 어깨가 노역에 시달린 사람처럼 내려앉아 있다. 수도승 같은 존재들이 머무는 이곳 고시촌과 속세를 연결해 주는 육교를 지나 아무래도 그는 고향에 내려갈 모양이다. 캐리어를 끌고 골목을 빠져나가는 자들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 시험이 끝난 이맘때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 또한 택배상자를 꾸린 걸로 보아 유령 같은 그림자가 되어 어둠에 스밀 생각을 한 모양인데 그렇게 고향에 내려간 사람들은 무얼 하고 살까. 고시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초췌한 얼굴의 남자가 침대에 앉아 있다. 나를 발견한 남자가 잠긴 소리로 말한다. 이제 그만 내려갑시다.

 

*

 

    한강을 끼고 차는 올림픽대로를 따라간다. 승용차 뒷좌석에는 책과 잡동사니를 담아 둔 상자와 캐리어, 이불 보따리가 실려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통풍구에서 나와 차 안은 아늑했고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지 않도록 볼륨 조정이 돼 있었다. 면도를 하지 않아 푸르스름한 남편의 턱 선은 그새 반쪽이 돼버린 것 같았다. 그는 어금니를 문 것처럼 힘이 들어간 얼굴이었다. 한남대교 교차로에서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와 남편이 고속도로로 차를 끌고 들어간다. 그날 이후 말을 잃은 사람처럼 우린 입을 여는 일조차 버거워했다. 채집이란 닉네임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던 아이가 엄마 생일을 맞아 집에 내려와 유행가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더니 영영 일어나지 않던 그날 이후로. 그러니 남편의 얼굴은 힘이 들어간 게 아니라 허물어지는 중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톨게이트를 지날 무렵 중국 어느 도시에서 발병했다는 폐렴 유사증상을 시사프로 진행자가 설명한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뭔가 말을 해보라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곳 노량진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무엇을 알아냈는지. 생때같은 아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떠나갔는지 알아낸 게 있으면 말을 해보라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할 기력도 없었다. 알아낼 거야. 그리고 복수할 거야. 뭔가에 안도한 내가 문제였다면 그런 나마저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간신히 입을 떼어 말하자 내 옆얼굴을 주시하던 남편이 저 먼 도로 위에 무기력한 시선을 내려놓는다. 그런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최근에 재밌게 읽은 소설 있어? 그건 답변을 듣고자 한 질문이 아니었고, 나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광재
작가소개 / 이광재

1989년 무크지 『녹두꽃2』에 단편 「아버지와 딸」 발표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 『수요일에 하자』와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가 있음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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