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이라는 곳에 꽃을 한 무덤 꽂고 외 1편

[창작시]

 

 

꽃병이라는 곳에 꽃을 한 무덤 꽂고

 

 

성미정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를
    기다리며 꽃을 꽂았다
    어떻게 꽂아야
    질서가 있는지
    어디를 잘라야
    꽃들의 리듬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어둠 속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꽂았다
    물컹하거나 풋내가 나거나
    비린내가
    나는 꽃들을
    이름은 모르지만
    꽃인 것들을 꽂았다

 

    꽃병이라는 곳에
    꽃을 한 무덤 꽂고
    죽어버린 날들보다 슬펐다

 

    얼마나 자주 목도했던가
    나의 죽음을
    그렇다고 이 꽃들을
    나에게 바칠 수는 없다
    이제 조금 더 명랑해지기로 했고
    잊고 있던 동화책들을
    다시 펼치기로 했는데

 

    옛날 옛날 나는
    어느 동화 속 어두운 숲에
    자라는 축축한 이끼
    결코 날이 밝지 않을 것을
    모르는 척
    그저 계속해서 꽂는
    허공의 손짓이었을 뿐

 

 

 

 

 

 

 

 

 

 

기(旣)울어진 소녀들의 세계

 

 

 

 

    척추는 아름답게 휘어져 있을 것
    머릿속에 땜빵 자욱이 있을 것

 

    두 눈에는
    누구도 닦아 줄 수 없어
    더욱 투명한 방울들을 흘리고 있을 것

 

    이미 울었기에
    우글쭈글해진 얼굴들을 하고 피어나
    노파라고 불렸지만

 

    기울어진 세계에서 이름 따위
    아무려면 어때
    소녀이면 어때
    노파이면 어때
    열 마리 미친개이면 어때
    천사이면 어때

 

    기(旣)울었기에 얼지 않고
    오늘만큼은 걸어왔잖아

 

    이미 잃었기에
    이미 이룬 나의 소녀들은
    오늘도 내일을 위해 기꺼이
    울 준비를 하고 있을 것

 

 

 

 

 

 

 

 

 

 

성미정
작가소개 / 성미정

199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동시집 『엄마의 토끼』.

 

   《문장웹진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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