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외 1편

[창작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신준영

 

 

 

    옆구리를 스쳐간 두 개의 칼자국이 좋아

 

    우리 중에 나만 아는 폐허

 

    나만 만질 수 있는 어둠이 좋아

 

    두 자루의 손목이 지나간 피의 길을 따라가

 

    밤의 허리를 관통한 침묵의 총성이 좋아

 

    우리 중에 나만 아는 골짜기

 

    나만 통과할 수 있는 응달의 미래가 좋아

 

    두 그루의 연필이 자라는 벼랑의 잠을 좇아가

 

    우리들의 뾰족함이 밤의 귓불을 찢고

 

    진주처럼 박히면 어쩌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살아

 

    발부터 젖는다 너를

 

    생각하면

 

 

 

 

 

 

 

 

 

 

구름 스캔들

 

 

 

 

나는 발명가이며 조련사다 오늘까지 일만 육천 삼백 스물여섯 개의 감정을 발명했고 이것으로 매일 나를 길들여 왔다 어둠을 응시하는 백만 개의 눈동자였고 목에 걸린 방울이었으며 잠 속까지 좇아가는 그림자였다 나는 불이었고 연기였고 한숨이었는데 이것들을 소화하며 마침내 괴물에 이르렀다 이 흉측하고 아름다운 것을 내가 낳았구나 이것은 자각몽이 아니다 밤에 낳은 부끄러운 감정의 얼룩들을 닦아내는 아침의 거울 속도 아니다 직립의 기억을 버린 나무는 물속을 유영하고 물을 버린 물고기는 산을 오른다 오늘까지 발명된 감정들은 밤새 뒤척이며 지상에 떨어뜨릴 기억의 각질 내 안에서 방목한 당신이 나를 삼키면 나는 당신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배설물 이 흉측하고 아름다운 것을 내가 또 낳는구나 당신을 버린 나는 신나서 꽃처럼 뭉게뭉게 피어나 마침내 내가 나를

 

 

 

 

 

 

 

 

 

 

신준영
작가소개 / 신준영

대구 출생. 2020년 《실천문학》 등단

 

   《문장웹진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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