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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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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국

 

 

 

    지훈의 카톡 메시지를 받은 건 이마트 캠핑 용품 코너에서였다. 어떤 게 연기가 덜 나면서도 화력이 좋을까, 궁리하며 참숯과 비장탄 들을 살피던 참이었다. ‘나 미국 가.’ 카톡 메시지는 심플했다. 그것만으로는 여행을 간다는 것인지 출장을 간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보다는 이런 시국에도 미국에 가는 일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미국은 연일 오만여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백악관 고위 인사들의 양성 판정으로 시끄러웠다. 갈 때 올 때 이주씩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면 한 달씩이나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어야겠네, 그런 생각도 잠깐 했다. 나는 스마트폰 짐벌을 켠 뒤에 라오스 비장탄 두 봉지를 카트에 담았다. 그러곤 옆에 있던 전시용 허블 체어에 앉았다. ‘언제? 얼마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답문자가 붙었다. ‘한 달 뒤에. 삼 년쯤.’ 나는 삼 년쯤이라 쓰인 부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한테 이런 얘기 한 적 없었잖아?” 대답은 없고 어딘가로 걸어갈 때 나는 소리가 한동안 자박자박 들려왔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랬지. 내가 갈 확률은 십 프로 미만이었거든. 이거 완전 대박 난 거야.” 그사이 비상계단으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소리를 죽여 말하는데도 지훈의 목소리에 울림이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그럼 나는? 하고 물을 뻔했다. 그럼 나는? 나는 어쩌라구? 삼 년이 지나면 서른다섯이야. 여자 나이 서른다섯이면,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아? 여러 말들이 머릿속에서 오갔지만, 꾹꾹 누르고 나서 겨우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질문이라기보다 질책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말해 놓고 보니, 그저 원망으로 들렸을 듯했다. 스마트폰 저쪽에서 한숨소리 같은 게 새어 나왔다. “이거 공지 뜬 지 한 시간도 안 됐어. 아직 우리 엄마밖에 몰라.” 지훈은 자신의 엄마가 보인 반응에 대해 시시콜콜 덧붙였다. 회사 동료들은 축하한다고 난린데 정작 축하해 줘야 할 사람들은 반응이 이상하다고도 했다. 그제야 언젠가 텍사스에 있다는 연구소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윗물에서 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곳.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동안, 지훈은 한 달 안에 정리해야 하는 일 처리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흥분된 목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어조였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와중에 ‘그럼 나는?’과 ‘그래 볼까?’ 사이에서 마음이 부유하는 걸 느꼈다. 텍사스가 미국의 서부에 붙어 있나 동부에 붙어 있나 생각하면서. “그런데, 캠핑은…… 오늘 어떻게 할 거야?” 지훈은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글쎄, 그게…… 아무튼 지금 나가기는 어렵게 됐어. 이따가 상황 봐서 내가…….” 하고 얼버무렸다. 나 역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고 보니 사십대로 보이는 남자가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내가 앉아 있는 허블 체어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나는 얼결에 벌떡 일어서면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곤 카트를 밀어 옆쪽 진열대 통로로 들어갔다. 인테리어 용품과 각종 공구들이 진열된 곳. 나는 손잡이에 팔꿈치를 올려놓은 채로 카트를 밀며 진열대 사이를 이리저리 맴돌았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카톡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무리하지 마. 이젠 진짜 솔캠을 해볼 때도 됐지 뭐.’ 그리고 버릇처럼 이모티콘 하나를 찾아 눌렀다. 라이언이 머리를 기울이니 바구니에 든 하트 모양 꽃잎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걸 보내고 나서, 이모티콘 옆에 붙었던 노란색 1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쿨하고 싶었는데 질척거린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스마트폰 짐벌을 켜고 나서 매장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식자재들을 주워 담았다. 2리터짜리 삼다수 두 개, 처음처럼 하나 참이슬 후레쉬 하나, 장수막걸리 하나 느린마을 하나, 한우 살치살 한 팩, 돼지 삼겹살 한 팩, 간편식 한우 대창 한 봉지, 양송이버섯, 청상추, 진라면 두 봉지, 햇반 한 묶음, 방울토마토 한 팩. 그리고 계산대로 향하다 말고 주류 코너로 돌아가 여섯 캔들이 테라 한 묶음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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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엄마 아빠가 운영하는 식당 앞에 차를 주차하고 시동이 켜진 상태에서 스마트폰 짐벌을 들었다. 캠친님들, 안녕하세요. 먹을 걸 너무 많이 샀나요? 음…… 오늘은 섬으로 떠날 거예요. 가면서 단풍도 보구요…… 바다멍 별멍도 할 생각인데, 날씨가 도와줄지 모르겠어요. 그럼 이따가 섬에서 만나요. 나는 스마트폰 렌즈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나서 짐벌을 껐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분리한 뒤에 메시지 앱을 확인했다. ‘아빠가 가겠다네. 일단 가게로 와라.’ 엄마가 보낸 카톡 메시지 이후로 새로운 건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반차를 낸 지훈의 회사 앞으로 가서 그를 픽업한 뒤 캠핑장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진짜 솔캠을 하겠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트 모양 꽃잎을 쏟아버린 라이언의 시무룩한 표정이 떠올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 캠핑을 제안했고, 뜻밖에도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어차피 가게 지키고 있어 봐야 손님도 별로 없어. 포장 손님이나 가끔씩 들르는데 정선 이모가 봐주기로 했으니까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아 보지 뭐.” 정선 이모는 육 년째 식당에서 한솥밥을 먹은 직원인데, 손님이 거의 없는 채로 서너 달이 지나니 월급 받기가 무안하다며 자진해서 휴직한 상태였다. 정선 이모에게는 이틀 치 일당을 주기로 했으니, 그만하면 갑자기 호출한 것에 대한 보상은 될 거라고 엄마가 말했다. 이런 결정들이 모두 내려지기까지 오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 운전대 위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네이버 증권 창을 열어 주식 시황을 확인했다. -2.53%. 코스피는 1% 이상 올랐는데 유독 내가 투자한 제약회사만 파란색이었다. 추정자산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팬데믹 이후에 너도나도 주식 투자에 몰려들 때는 멀뚱히 지켜보고 있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뒤늦게 뛰어들었다. 대학원을 휴학하면서 생긴 여윳돈에 강사료 몇 달치를 합쳐서 몰아넣었는데, 생각보다 수익이 괜찮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추정자산이 꾸준히 불었었는데, 코로나 백신 관련주의 수혜를 입어 볼까 싶어서 바이오 쪽 주식으로 갈아탄 게 패착이었다. 네 달 동안 올린 수익을 한 달도 안 돼 고스란히 뱉어냈다. 늪에 빠진 느낌이랄까. 많이 빠졌으니 조만간 급등할 수도 있겠다 싶어 손절도 못 하는 상황인데, 어떤 유튜버는 수량을 늘릴 기회라며 추매를 부추기기까지 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 아빠는 어느새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 계모임이나 중고등학교 동창 모임 때만 입는 외출복이었다. “올해는 글렀나 보다 했더니 딸내미 덕에 단풍 구경을 다 가게 되네!” 정선 이모 들으라는 듯 엄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이 박사가 효녀지.” 나는 정선 이모와 팔꿈치로 인사를 나누었다. “갑자기 이렇게 돼서……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노느니 알바도 하고 나야 좋지. 이렇게 펑크 나는 데가 더러 있어서 메뚜기처럼 툭 툭 튀어 다니면서 산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정선 이모가 웃었다. 엄마가 내다준 돼지국밥을 먹으며 들으니, 정선 이모는 외동아들이 얼마 전에 군대를 가서 오랜만에 한갓지게 지내는 듯했다. 정선 이모는 엎어진 김에 쉬어 가는 거라고 말했다. 네 명씩 앉는 테이블이 일곱 개 있는데, 그중 셋에 ‘사회적 거리두기’ 푯말이 붙었고, 나머지 네 테이블에 한 명씩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아빠는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라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어느 가게는 폐업을 했고 어느 식당은 무기한 휴업 중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이십 년 넘게 먹어 온 돼지국밥도 좀 새롭게 느껴졌다. 엄마는 종이가방에 갈아입을 옷 몇 가지와 세면도구만 급히 챙겨서 차 트렁크에 실었다. 그러면서 “식당 하는 집 딸년도 마트에서 이런 거나 사다 먹는데 식당들이 안 망하면 용치.” 하며 내 등을 후려쳤다. 금요일 오후인데도 차는 거의 안 밀렸다. 시내를 빠져나오느라 신호 정체를 한 것만 빼면 대체로 원활한 흐름이었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미세먼지가 없어서 청량했다.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하늘은 점점 더 파래졌다. 캠핑장은 섬 두 개를 거쳐서 가야 하는 곳인데, 계속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섬 아닌 섬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가 우리는 화장실에도 갈 겸해서 핫 플레이스라는 카페에 들렀다. 물론 미리 예정해 둔 코스였다. 거기는 붕어빵 카페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짐벌을 들었다. 가다가 예쁜 카페가 있어서 들렀어요. 살짝 졸려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샀는데, 머리가 완전 맑아지는 느낌? 그런데, 커피보다 카페 옆에 붕어빵 파는 가게가 붙어 있어서 이것도 한 봉지 샀어요. 보세요! 짠, 귀여운 아기 금붕어빵, 예쁘죠? 그리고 이건 대게빵, 이건 문어빵, 그리고 이건 동백꽃빵. ……완전 신박 아이템이죠? 어! 근데 이건 뭐죠? 새운가? 새우 같죠? 독도새운가? 나는 새우빵 두 개를 눈앞에 들이대고 나서 활짝 웃었다. 전국에 있는 명물 빵을 여기 다 모아 놓은 것 같아요. 여기 지나가시는 분들은 꼭 한번 들러 보세요! 이번엔 문어를 한 마리, 음…… 이것도 새로운 맛이네요. 나는 문어빵을 먹으며, 여기를 거쳐 가면 다양한 알리바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해안에서 놀고는 영덕이나 여수, 제주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엄마가 저쪽에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뭐라고 뭐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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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장에는 네 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러는 와중에 주가가 –3.57%까지 빠지는 걸 넋 놓고 지켜봐야 했다. 팔십여 만 원 돈이 날아갔고, 총평가손익이 파란색으로 바뀌어버렸다. 지훈으로부터는 메시지도 전화도 없었다. 카톡 앱을 누르면 라이언이 바구니를 기울여 자꾸만 하트 모양 꽃잎들을 바닥에 쏟았다. 네이버 지도로 보았을 때와 달리 섬은 꽤 넓었다. 파도소리가 들릴 만한 곳이려니 기대했는데, 캠핑장은 해변에서 오륙백 미터나 떨어진 솔숲에 있었다. 게다가 하필 간조 때라서 바닷물은 비닐로 된 띠처럼 멀리서 반짝거릴 뿐, 해변 쪽은 온통 펄이 드러나 있었다. 오늘은 뭔가 안 풀리는 날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 아빠는 “저기 저 갯벌 좀 봐요.” “그러게, 갯벌이네.” “이따가 조개 잡으러 갑시다.” “근데, 뭐가 있을까?” 하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캠핑장 입구로 진입한 뒤 데크 옆에 주차하는 영상은 아빠가 먼저 내려서 찍어 주었다. 지난 두 번의 캠핑에선 지훈이 그렇게 해주었었다. 데크에 바짝 붙이려고 전진과 후진을 하는 동안 엄마는 내내 “배운 게 아깝다. 차라리 역사 강의 같은 걸 하면 뽀대나 나지, 이걸 하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하고 잔소리를 했다. 잘만 하면 이게 그것보다 나아요, 하는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말았다. 그런 말은 참아야 좋은 말이었다. 엄마 아빠는 볕이 좋은 데크 난간에 나란히 앉아서 맥주 한 캔씩을 비우고 나서 “우린 조개나 잡아 올란다.” 하며 바닷가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내 유튜브 영상은 솔캠이라서 어차피 텐트를 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곤란했다. 영상으로 편집될 분량도 미리 뽑아 놔야 해서 엄마 아빠와는 약속된 사항이기도 했다. 나는 관리동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종량제 봉투를 받아다가 데크 가장자리에 걸쳐 두었다. 그리고 데크 한가운데 서서 스마트폰 짐벌을 켰다. 여기는 솔향기 바다 캠핑장이에요. 솔숲과 바다가 모두 있다는 뜻이겠지요? 음……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기 솔향이 장난 아니에요. 흐음…… 피톤치드 냄새. 아닌 게 아니라 진한 소나무 향이 폐부 깊숙이 들어와 폐포를 씻어 주는 느낌이었다. ……이 캠핑장은 데크들이 완전 넓어요. 삼사인용 텐트를 두 개 쳐도 넉넉할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좀 그렇지만, 코로나 지나가고 나면 두 가족이 조인해서 와도 되겠어요. 자, 그러면…… 타프 먼저 쳐볼게요. 여기가 소나무 밑이라서 햇볕은 그렇게 강하지 않은데, 이런 데는 수액이 장난 아니게 떨어지는 거 아시죠? 그리고 지금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오늘 밤에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유비무환이잖아요. 나는 데크가 한눈에 조망되는 곳에 스마트폰 짐벌을 옮겨 놓고 삼발이를 펼쳐서 고정했다. 그리고 데크 위에 타프를 활짝 펼쳐 놓고 메인 폴대를 조립해 가운데에 배치했다. 양쪽 스트링이 웬만큼 팽팽하게 잡아 주기 전까지 메인 폴대는 여러 번 넘어졌다. 불안불안하면서도 결국 혼자서 해내는 걸 보여주는 게 포인트 아닐까? 지훈의 말이 떠올랐다. 여자들도 그러잖아. 남자들한테 터프하면서도 여린 감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거. 이율배반적으로. 자, 타프는 짱짱하게 잘 설치가 되었고…… 요기다가 이 방향으로 텐트를 칠게요. 나는 일인용 텐트를 꺼내 데크 바닥에 펼쳐 놓았다. 폴대를 잇대어 붙이고 나서 슬리브에 쭉쭉 밀어 넣었다. 웬만큼 모양이 만들어지자 두 손으로 번쩍 들어 방향을 잡아 주고, 가이로프를 잡아당겨 데크용 팩에 고정시켰다. 나는 스마트폰 짐벌을 텐트 안으로 옮겨 놓았다. 아쉽게도 여기서는 바다가 바로 보이지는 않아요. 저쪽인데…… 그냥 저기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야겠어요. 음…… 이거 말 되나요? 저기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 있다! 재밌네요! 자, 이번에는 테이블을…… 나는 너무 수다스러운 것도 정신 사납겠다 싶어서 묵묵히 롤 테이블을 조립해 놓고, 릴랙스 체어를 끌어다가 테이블 앞에 놓았다. 괜찮은 프레임일 듯했다. 텐트 입구가 살짝 보이는 가운데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옆에 바다 방향으로 앉아 있는 내가 함께 보일 테니까. 자, 텐트 치느라고 고생한 저를 위한 힐링 타임! 나는 아이스박스에서 캔맥주를 꺼내 스마트폰 근처에 들이대고 고리를 땄다. 칙― 한 모금을 쭉 들이켜고 나서는 카―. 그리고 상표가 보이도록 맥주 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혹시 알아? 협찬이나 광고가 붙을지도 모르니까, 다양하게 상표를 노출시키는 전략이 필요할 것 같아.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줘야 영상을 보는 사람도 맛을 상상할 수 있을 거 아냐. 나쁜 새끼! 잘 도착했냐고 전화라도 한번 해주면 손가락이 부러지나! 나는 바다가 저쪽에서 출렁거릴 걸 상상하며 캔을 들고 그쪽을 응시했다. 그렇게 하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

    테이블 위에 짐벌을 세워 놓고 나서 화로대에 비장탄을 반 봉지쯤 넣고 토치로 불을 붙였다. 설명서에 적힌 것처럼 불이 금세 붙어서 그 위에 비장탄 몇 개를 더 올려 주고 솔숲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들도 수북하게 올렸다. 이런 장면에서는 멘트가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군더더기였다. 나는 멍하게 앉아 불꽃이 나뭇가지와 비장탄으로 옮겨 붙는 걸 한동안 지켜보았다. 잉걸불은 껌뻑껌뻑 불꽃을 사르며 탁 탁 소리를 자잘하게 냈다. 나는 화로대 위에 석쇠를 올리고 나서 한우 살치살을 한 장 한 장 펼쳐 놓았다. 지글거리는 ASMR은 빠뜨릴 수 없는 요소. 나는 짐벌을 들어다가 살치살 옆에 바짝 들이댔다. 그리고 집게로 한 장 한 장 뒤집어 다시 올렸다. 치익― 치익― 불이 좋아서 그런지 고기는 번들거리는 육즙을 뿜으며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나는 캠핑용 도마 위에 살치살을 옮겨 놓고 그 옆에 구운 양송이를 곁들였다. 오늘은 느린마을로 천천히 시작해 볼까요? 나는 시에라 컵에 막걸리를 따른 뒤에 스마트폰 렌즈를 바라보며 쭉 들이켰다. 나도 유튜브 영상을 여러 개 봤는데, 솔직히 캠핑은 먹고 마시면서 수다 떠는 재미가 절반 이상이잖아. 구독자들도 그런 걸로 대리만족하는 거고. 경치는 사실 삼사 초만 넘어가도 지루해지는 거 같아. 그런데 솔캠이니까 수다 떠는 데도 한계가 있고, 준비해 온 술을 혼자서 다 먹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한두 잔씩 여러 종류를 마시면서 분량을 뽑아야겠더라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종이 워낙 다양하기도 하고. 그런데 제 솔캠 영상에도 구독자가 생길까요? 이런 영상은 아무래도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서 아직 좀…… 아무튼, 구독 좋아요 안 누르신 분들은 영상 보시는 중에라도 꼭 눌러 주세요. 이런 말은 아무래도 낯간지러운 멘트 아닐까. 나는 오늘 영상 중에는 편집해야 할 부분이 많겠다, 하고 생각했다. 대학 다닐 때 산악회 활동을 조금 했어요. 캠핑하는 재미도 그때 알게 되었구요. 주말마다 등반 일정이 빼곡하게 잡혀 있었는데 따라간 건 손에 꼽을 정도? 아르바이트가 많았거든요. 아빠 엄마 하시는 식당 일은 기본이고, 과외도 하고 편의점 파트타임도 뛰고. 대학 가면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동동거리고 뛰어다녀도 성적은 잘 안 나오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동기 녀석한테 툴툴거렸더니, 하는 일이 없으니까 되는 일이 없지, 그러는 거 있죠. 나는 정말로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 말을 해준 녀석이 한 달 뒤에 미국 간대요, 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막걸리 두 잔 먹고 벌써 술이 취했나, 웬 넋두리? 이 부분도 편집하자면 애먹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잔을 더 따라 마셨다. 뒤늦게 캠핑을 시작한 건, 어쩌면 한이 맺혀서일지도 몰랐다. 친구들이 색색깔의 옷을 입고 시외버스터미널로 우르르 몰려다니던 게 부러웠는지도. 대리 직함을 받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그래서였을까? 집에서 겨우 이십 분 떨어진 곳에 원룸을 얻어 독립한 것도…… 화로대에 비장탄 세 개를 더 넣었다. 불꽃이 일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다가 어느 순간 뭉근해지는 불덩이를 이따금씩 헤집으면서 나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언젠가 유튜브로 이 영상 저 영상을 잇대어 보다가, 우리 생을 관장하는 신이, 그러니까 전생과 이생과 다음 생을 관장하는 절대자가 AI처럼 우리 생에 관여를 한다면, 내 인생 옆에 붙여 줄 추천 후생으로 어떤 걸 붙여 놓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 너는 방황하고 주저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바쁘게 동동거리면서도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인생을 즐기는구나! 이렇게 판단하고 그 비슷한 것들만 연달아 붙여 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런 데로 한번 빠져들면……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저기요.” 하고 불렀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데크 밖에서 와인 병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더 그랬지만, 한참만에야 나는 와인 오프너 있으면 빌려달라는 말인 걸 눈치 챘다. 나는 그런 건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다가, 배낭 깊숙한 곳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 드렸다. 아쉬운 대로 칼에 작달막한 와인 오프너가 달려 있었다. 아저씨는 금방 돌려주겠다 말하고는 정말로 일 분여 만에 돌아오더니 대여료라면서 와인 한 병을 데크 끝에다 올려놓았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마트에서 원 플러스 원으로 막 파는 거니까.” 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저기서 잠깐 보니까 무슨, 촬영을 하는 거 같던데…… 맞죠? 유튜브 방송.” “아니에요. 그냥…… 제가 아직…….” “방송 이름이, 아! 채널명이 뭐예요? ……아니, 무슨 유튜버가 이렇게 수줍음을 많이 타요? 당당하게 밝히고 구독과 좋아요 눌러 달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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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쯤 갯벌 가장자리나 걷다가 올 줄 알았는데 여섯 시가 다 되도록 엄마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정작 전화벨 소리는 차 뒷좌석에서 울렸다. 두 사람의 휴대폰이 다 그랬다. 지훈으로부터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이미 마감된 주식 시황을 이리저리 살피고, 유럽 증시의 개장 상황까지 두루두루 살폈다.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어 보였다. 오를 건 오르고 내릴 건 내렸는데, 하필 내가 투자한 데가 많이 내렸을 뿐이었다. 아까 피웠던 불은 어느새 하얗게 사위어 화로대 바닥에 납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인 가족 한 팀이 세 데크 건너에 텐트를 치고 나서 시끌벅적 저녁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맹이 형제는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하며 지구는 자기가 지킬 거라고 우겨댔다. 아까 와인을 주고 간 아저씨 데크에서는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따금씩 큭큭큭 웃는 소리만 나직하게 건너왔다. 비슷한 연배의 남자가 셋이었는데 저런 조합도 나쁘지 않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금요일인데도 스무 개가량 되는 데크에 세 곳만 캠핑 손님이 들었다. 나는 일인용 텐트를 옆으로 조금 옮기고 나서 빈 공간에 삼사인용 텐트를 서둘러 쳤다. 그리고 자충 매트 두 개와 겨울용 침낭 두 개를 넣어 두고, 베개에도 단단하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사인 가족 텐트에 불이 켜지고 이어 아저씨 셋이 든 텐트에도 불이 켜졌다. 볕이 들 땐 몰랐는데 어두워지는 건 순간이었다. 엄마 아빠는 정말로 캄캄해지고 난 뒤에야 마실 다녀오는 사람들처럼 나타났다. 무슨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이제는 찾으러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초조하게 헤드랜턴을 찾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이런저런 조개가 반쯤 든 비닐봉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아이구야! 소리부터 냈다. “봐라, 이렇게 많이 캤다. 어릴 적에 쪼끔 해봤던 감각이 아직 남았는지 손에 착착 붙더라. 거 신기하데. 니 아빠는 산골 사람이라 그런지 신통찮은데 나는 긁을 때마다 걸려서 아주 신나게 캤다.” 갈증이 났던지 엄마 아빠는 장수막걸리를 따자마자 한 잔씩 서둘러 들이켰다. 나는 곁에 섰다가 “휴대폰이라도 좀 들고 가지…… 사고 난 줄 알았잖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고는 무슨, 조막만 한 섬에서. 아무튼지 섬 구경 한번 잘했네. 내가 대고 아니라는데도 니 아빠가 저쪽 길이 맞대잖어. 쪼끔 가다 보면 나오겠지 하구 가보면 아니여. 비슷하기는 해도 완전히 다른 길이여. 그것두 산길이라구 숲에 들어서니까 방향감각이 사라지데. 그렇게 쪼끔만 더 가보까 하구 가다 보니까 어느새 이 섬 꼭대기더라. 저 위에까지 이만한 오솔길이 나 있어. 제기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저짝으로 아예 넘어가 봅시다, 손바닥만 한 섬인데 어째도 반 바퀴만 돌면 아까 거기가 나오겠지. 그러구 저쪽으로 넘어가서 이리로 돌아왔다. 좋더라. 오면서 바다도 원 없이 보고, 해 떨어지는 것두 보구. 너두 여기서 봤지? 해 떨어지는 거.” 나는 해가 떨어지는 건 보지 못했다. 언제 해가 떨어진 줄도 모르게 캄캄해졌다. 아빠가 “됐어. 잘 찾아왔으면 된 거지.” 하고 말했다. 우리는 서둘러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갯벌에서 잡아온 조개들은 개수대에서 물을 받아다가 해감을 시켰다. 엄마가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바비큐”라고 해서, 아빠가 화로대에다 숯불을 만들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우리 식당 메뉴에 구이 종류들이 있었다. 삼겹살, 목살, 돼지갈비, 소갈비, 꽃등심…… 아빠가 “그때는 숯불 피우는 게 징글징글하더니 이젠 소꿉놀이 하는 것처럼 재밌네.” 하고 말하니, 엄마는 “원래 맛집은 단일 품목으로 승부를 봐야 돼. 내가 돼지국밥으로 정리하길 잘했지.” 하고 맞받았다. 그렇게 셋이 수선을 피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에 고기와 야채가 수북하게 쌓였다. 나는 상추에 고기를 싸서 엄마 입에다 넣어 줬다. “야, 야, 왜 이러냐?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넌 공부나 잘하면 된다. 그게 효도야. 남들 하는 것 같은 효도는 하지 마라.” “남들 하는 거, 뭐?” “해외여행이나 명품백 그런 거 말이야.” “꼭 해달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아서라. 기분 좋은데 노래나 한 곡 뽑을까?” “안 돼, 엄마. 여기서 그러면 잡혀가.” 그런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먹고 마시고 웃었다. 전에도 늘 그랬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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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가을용 침낭은 좀 서늘했다. 얇은 발포 매트 한 장을 깔아 두고 어떻게 되겠지 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조금만 버텨 보자 생각하다가, 배낭을 뒤져 오래된 핫팩 한 개를 침낭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떤 데는 제법 따시고 어떤 데는 여전히 서늘했는데, 없는 것보다는 한결 나았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전체적으로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조개를 캐느라 고되었던지 엄마 아빠는 저녁을 먹자마자 텐트 속으로 들어가 이내 잠들어 버렸다. 불멍을 하며 이런저런 고민거리들을 털어놓을까, 생각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셈이었다. 저녁에 마신 술도 적지 않았다. 바로 옆 텐트에서 두 사람이 경쟁하듯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혼자서라도 별멍을 해야겠다 하고 기다렸지만, 비구름이 지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 대신 듣게 된 빗방울 듣는 소리도 나쁘지는 않았다. 소리에 가만히 집중하고 있으려니 먼 데서 바닷물 밀려드는 소리도 아련했고, 투두둑 툭 툭 빗방울이 타프에 떨어지는 소리도 경쾌했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빗방울 소리, 그리고 엄마 아빠의 코 고는 소리. 저기에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여기에 있었다. 귀를 열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런 소리들을 들으며 누워서, 나는 내가 찍은 영상들을 정말로 유튜브에 업로드하게 되는 날이 올까, 생각했다. 이전의 솔캠 영상들은 편집되지 않은 채로 컴퓨터에 고스란히 저장만 해두었다. 도무지, 솔캠이라니. 어쩌다 이쪽으로 오게 되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텍사스라는 데가 어디 붙어 있나 검색해 보았다. 거긴 동부도 서부도 아닌, 미국에서 제일 남부에 있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여기는 제법 따뜻하기는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퍼뜩 잠에서 깬 건 구급차 소리 때문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러니까 0.5초쯤 웨에엥 하는 소리가 들렸다가 바로 멎었는데, 뇌리에서는 그 뒷부분의 소리가 엥엥엥엥 하고 이어졌다. 잘못 들은 소리는 아닌 듯했다. 캠핑장 저 아래로 예닐곱 집 되는 조그마한 동네가 있는데, 그쪽 어딘가에서 초록색 불빛이 한참 어른거리다가 멀어졌으니까. 이 새벽에 구급차라니. 이 섬에서 응급실이 있는 도시까지 가자면 꽤 먼 거리일 텐데, 위급한 환자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까 생각하며, 나는 날이 희붐해질 때까지 깨어 있었다. 그리고 곧 날이 밝으리라는 느낌이 들 즈음, 스마트폰 짐벌을 들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비가 오랜 시간 내리지는 않았던 듯, 길이 푹 젖어 있지는 않았다. 나는 해변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길에서 멈춰 섰다. 거기 차를 타고 들어올 때 보았던 ‘솔향기 바다 캠핑장’을 알리는 표지가 조그마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또 다른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저기 제 뒤쪽으로 보이는 정상까지 올라가 볼 거예요. 별로 높아 보이지는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이래봬도 왕년에 산악부원이었잖아요. 제법 구불구불한 길이 한참을 이어지다가 산으로 붙었다. 그런데 정말로 엄마 아빠가 이 길로 지나간 게 맞을까 싶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오솔길이 쭉 이어져 있는 게 맞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인지 아닌지 애매한 데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한참 더 가서는 잘게 부서져 있는 사암들 때문에 제법 미끄러운 구간들이 나타났다. 그런 구역을 벗어나면 뾰족하게 날 세운 바위들이 길을 가로막았고, 거기를 에둘러 돌아가면 이번엔 비탈이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식이었다. 편하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어서 짐벌을 켜고 영상에 담을 여유는 많지 않았다. 아무튼 위로만 올라가 보자는 심정으로 간신히 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오르기는 했다. 별건 없었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여유롭게 앉아서 쉬기엔 너무 울퉁불퉁하고 미끄러운 바위에 사람 키보다 나지막한 소나무 하나가 뿌리를 박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찬 바람이 있었다. 먼 바다 수평선 위로 구름이 짙게 끼었는데, 오래지 않아 그 속에서 해가 안간힘을 쓰듯 올라왔다. 여러분, 신기하지 않아요? 서해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게. 멋지네요. 캠친님들도 저하고 같이 보시죠. 나는 그곳에서 소나무를 붙잡고 해가 완전히 구름을 벗어날 때까지 서 있었다. 산에서 내려올 땐 그래도 한결 수월했다. 방향을 잘 잡아서라기보다는 얼마쯤 가면 이런 데가 나올 거고 얼마쯤 더 가면 오솔길이 보일 거다 하는 예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안선을 따라 섬을 에두를 수 있는 길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건지, 그런 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일곱 시 반이 넘어 있었다.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캠핑장은 적요했다. 오랜만에 등반다운 등반을 했기 때문인지 텐트에 들어가 침낭 속으로 파고들자마자 허벅지와 종아리가 우리하게 아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

    “놔둬. 지가 다 알아서 잘할 텐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래. 언제는 우리가 쟈 하는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했었나? 가만 놔둬두 지가 알아서 제 갈 길 찾아갈 텐데.” “나이가 꽉 찼는데 시집갈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그러지.” “요즘 애들은 우리 때하고 다르다더만. 가만 놔둬. 지가 알아서 하게.” “부모가 돼서 뭐 하나 변변히 밀어주질 못하니 그러지.” 텐트 밖에서 비슷한 레퍼토리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대학원을 휴학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잠에서 깼는지 모르게 나는 비몽사몽간에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식당에 붙어 있던 단칸방이 떠올랐다. 아침이면 식당 주방에서 나누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가 방 안에까지 들려오곤 했다. 쟈가 오늘 학교에서 뭐가 필요하다던데, 그건 저기 준비해 놨고, 그보담 뭘 내야 된다고 그러던데, 그건 저기 봉투에 담아 놨어, 같은 대화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불 속에 옹그리고 누워 삼사십 분쯤 더 꿀잠을 자곤 했었다. 나의 하루를 위해 누군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은 행복하고 나른한 것이었다. 나는 텐트 밖으로 스마트폰 짐벌을 슬쩍 내놓았다. 엄마 아빠가 테이블 곁에 마주 앉아서 아침 식사를 만들고 있었다. 된장 끓는 냄새. 도마에 칼 부딪는 소리. 타프 아래로 햇살이 비쳤고, 나는 재채기를 했다. “야 야, 일어났으면 이리 나와라. 밥 먹자.” 텐트 밖으로 나와서 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호박이며 감자, 고추가 든 된장찌개가 버너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거기에다 엄마가 한우 대창과 조개를 듬뿍 집어넣었다. “이걸 넣고도 맛이 없으면 사기지. 다른 건 저기 텃밭에서 다 구했는데, 두부는 못 구했다.” “삼십 년을 돼지국밥 만든 손인데…… 소고기하고 조갯살까지 넣었으니 어련하려고.” 나는 엄마가 내준 수저를 받아 들고 테이블로 바투 다가앉았다. “이건 뭐냐? 바지에다가 웬 흙을 묻혔어?” 아빠가 물어서, 나는 왼손으로 툭툭 털어냈다. 된장찌개에 햇반을 말며 이젠 제대로 된 백패킹이나 야간산행을 시작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점을 다 먹고 나서, 아빠는 설거지를 하고 나는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우리는 오래도록 바다 쪽을 바라보며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이따금씩 허벅지를 주무르면서. 나는 집까지 가자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스마트폰에서 티맵을 눌렀다. 예상 시간 1시간 29분. 두어 군데에서 약간의 정체가 예상되었지만 대체로 원활해 보였다. 밤사이 유럽 증시는 소폭 올랐고, 미국 증시는 1% 넘게 하락 마감했다. 한국은 장이 서지 않는 토요일. 지훈으로부터는 전화도 메시지도 없었다. 나는 데크가 한눈에 조망되는 곳에 스마트폰 짐벌을 옮겨 놓고, 타임리스 기능으로 설정해 놓았다. 우리는 데크를 돌아치며 부산스레 텐트를 걷었다. 침낭과 매트를 둘둘 말아 가방에 넣고 폴대를 풀어 텐트와 타프를 가라앉힌 뒤에 착착 접는 과정들이 한순간에 지나갔다. 체크아웃한 뒤에 데크 옆에서 출발해 캠핑장을 빠져나가는 영상은 아빠가 찍어 주었다. 나는 한참을 달리다 말고 되돌아가서 아빠를 픽업해 다시 내려왔다. ‘솔향기 바다 캠핑장’ 표지판이 붙은 세 갈래 길에서, 나는 여기가 어제 산으로 올라갔던 거기냐고 물었다. 엄마는 “여기? 글쎄다, 여기 같지는 않은데…… 저기 쫌 더 위에서 저쪽으로 빠지지 않았나 싶은데.” 하고 대답했다.

 

 

 

 

 

 

 

 

 

 

원종국
작가소개 / 원종국

1972년 충북 제천 출생.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용꿈」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용꿈』, 『그래도』, 르포집 『그날 그들은 그곳에서』(공저)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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