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방

[단편소설]

 

 

모피방

 

 

전석순

 

 

 

    너는 다림질 판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반으로 갈라지고 나서도 몇 번의 못질만으로 버텨 온 다림질 판이었다. 끄트머리부터 만져 나가던 손길은 움푹 들어간 자리에서 멈칫했다. 오랫동안 다리미가 누르고 지나간 자리였다. 이쯤에서 아버지 손에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켜켜이 쌓인 열기가 손끝에 닿는 것 같다.
    세탁소를 내놓기 전 아버지는 식은 다리미 같은 목소리를 냈다.
    “사글셋방도 못 구해서 여기서 잤지.”
    그러고 보니 다림질 판은 싸구려 침대처럼 보였다. 어지간히 고단하지 않고서야 잠을 설칠 수밖에 없을 침대. 몸을 뒤척이는 것마저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누웠을 자리를 가늠해 봤다. 열대야가 이어지던 밤이면 아버지는 다리미를 슬쩍 들었다. 그러면 다림질 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아래로 끌어당겼다. 옷을 빨아들여 밀착시켜 주는 바람이었다. 다림질 판 밑에는 그 시절 아버지의 몸이 한 줌쯤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이어진 목소리는 요양원에서와는 달리 수선된 바지처럼 멀끔했다.
    “그러니까 너는 다림질 판 위에서 태어난 셈이지. 그때 반으로 갈라졌어.”
    이제 다리미가 달궈질 일은 없을 것이었다. 너는 괜히 다리미를 들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세탁소에 맴돌던 희미한 온기마저 빨려 들어가자 조금 물러났다. 금방이라도 얼굴에 스팀이 닿을 것만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용돈 좀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네 쪽으로 다리미 스팀을 뿜었다. 짧게 서너 번 이어서 길게 한 번, 혹은 길게 두 번 뿜고 나서 마침표를 찍듯 짧게 한 번. 입영통지서가 나왔다거나 취직은 글렀으니 세탁소 일이나 배우겠다는 말에도 그저 다리미 스팀만 칙, 뿌릴 뿐이었다. 아내가 처음 인사드리러 왔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너는 스팀이 뿜어져 나가는 방향이나 세기, 얼굴에 닿는 감촉으로 대답을 짐작했다.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무심하고 따뜻하면서도 축축한 대화였다.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비틀거리던 너는 겨우 재봉틀 앞에 앉았다. 자세를 바로잡고 재봉틀을 돌려 봤다. 아버지는 네가 새 옷을 사오면 단추를 죄다 뜯어내고 다시 달아 줬다. 멀쩡해 보여도 잡아당기면 맥없이 풀리고야 마는 단추를 보여주며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했다. 그때처럼 세탁소와 너 사이에 툴툴거리는 재봉틀 소리가 한 겹씩 쌓였다. 그 소리에 탈수기 소리를 보태 자장가 삼아 잠들던 때가 까마득했다. 아버지가 너를 부르던 목소리도 흐리멍덩해졌다. 바닥에 부려 놓는 것 같은, 가만두면 귀에 닿기도 전에 어딘가로 흘러가 버릴 것 같은 목소리. 목소리는 네 등을 움켜쥐었다가 넌지시 흩어졌다. 아버지가 옆에 있었다면 시침핀을 꽂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아버지는 네가 재봉틀 앞에 앉지도, 다리미를 들지도 못하게 했다. 그저 위험해서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제 와선 애초부터 세탁소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간판은 스팀 속에 숨은 것처럼 뿌옜다. 세탁소 이름은 어딜 가나 하나쯤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평범했다. 글자 몇 개가 떨어져 나갔어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원래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건 너의 이름이었다. 그때 네가 고함까지 질러 가며 질색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너는 세탁소에 자식 이름을 넣으려는 아버지를 짐작해 봤다. 거의 모든 짐작처럼 뒤늦은 짐작이었다. 간판도 내려야 할 것이었다. 아내가 방을 비우는 동안 너는 아버지가 떠난 세탁소를 비워야 했다. 아내는 숟가락 하나 가져가고 싶지 않은 듯했다.

 

    다림질 판에서 태어났다고 했을 때 아내 얼굴은 납작해진 것처럼 보였다. 콧대가 주저앉았고 입술은 엉성하게 꿰맨 자투리 천 조각 같았다. 다리미가 밀고 간 얼굴을 보는 기분이었다.
    “가로등이 다시 켜질까요?”
    뒤에 무슨 말을 더 이을 듯하던 아내는 한숨을 쉬곤 비껴 섰다. 오래된 다리미에서 내보내는 스팀 같은 한숨이었다. 표정은 헐렁하게 묶인 매듭 같았다. 한쪽을 잡아당기면 금방 풀려버릴 것만 같은 매듭. 돌이켜보면 아내는 내내 표정 지을 생각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은 기계로 대충 박아 덜렁거리는 단추처럼 보였다. 어느 날 눈이 툭 떨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누군가 다시 박아 주면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아내는 창가에 섰다. 너는 누가 아내를 얼룩처럼 지워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뒤에 바짝 붙었다. 힐끔거리던 너는 아내의 시선을 따라갔다. 창문 너머로 시커먼 짐승이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가로등마저 꺼져 있었다. 지난주까지는 켜져 있었던 것 같았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어쩌면 가로등은 오래 전부터 꺼져 있었을지도 몰랐다. 가로등이 있던 자리를 짐작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어디가 길이고 집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얼핏 보면 밤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밤새 어딘가로 휩쓸려 내일쯤 낯선 숲에 닿을지도 몰랐다.
    “송두리째 뽑혀 나간 건 아니겠지.”
    이어지려던 말은 삼켰다. 담이 무너지고 계단이 깨져 나간 것처럼.
    자고 일어나면 풍경이 달라졌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조금씩. 처음에는 표정만 슬쩍 바꿀 뿐이었다. 하지만 나중엔 얼굴이 덜어졌다. 이마가 한 움큼 사라졌고 뺨도 도려낸 듯했다. 눈을 반쯤 떼어 가는 날도 있었고 작정한 듯 눈썹을 싹 밀어버리기도 했다. 조용하기만 했던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창가에 바짝 붙어 눈을 부릅떠 봐도 분명한 건 없었다. 짐승이 웅크린 자세를 바꿨나 싶은 정도였다. 더 어두운 곳과 덜 어두운 곳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끝까지 버틸 줄 알았던 남자들도, 먼저 떠난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던 노파도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절대 무너지지 말자고 외쳤던 사내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아무도 언제 어떤 식으로 사라졌는지 몰랐다. 모인 사람들은 자기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눈치였다. 제일 먼저 골목을 뜰 것 같던 여인은 망설이는가 싶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녀간 후 곧바로 따라나섰다. 아직 남아 있는 줄 알았던 집도 알고 보면 빈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세간은 그대로였지만 둘러보면 변변찮은 것들뿐이었다. 당장 버려도 좋을 너절한 소파나 한쪽이 일그러진 책상, 다리 하나가 없는 의자 같은.
    철거될 거란 소문이 돌자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들이 늘었다. 나중엔 원래 살던 사람들이 두고 간 것과 구분되지 않았다. 그사이 악취는 골목을 꽉 움켜쥐었다. 악취 때문에라도 떠나야겠다는 애 엄마도 나왔다. 그러자 누군가 소문처럼 악취를 퍼뜨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고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관계자가 나와 골목을 두어 바퀴 도는 게 전부였다. 시선은 한 곳에 고정했고 걸음은 전염병이 퍼진 지역을 지나는 것처럼 재빨랐다. 조금이라도 늦추면 잡아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같았다.
    관계자 출입마저 뜸해졌을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매번 문을 두드리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가 보면 아무도 없었다. 닫으려는 순간 또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고개를 틀어 보면 옆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어두워서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빈집을 골라내는 모양이었다. 빈집을 골라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분명한 건 초인종을 누를 생각 따윈 없다는 것뿐이었다.
    거기까지 떠올렸을 때 창에 비친 아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눈을 파먹고 귀를 갉아 먹은 듯한 얼굴. 다들 비슷한 얼굴을 감추며 걸음을 옮겼을 것이었다.
    막 떼어지던 입술이 느리게 벌어졌다.
    “당신이 다림질 판에서 태어났다면…… 우리 아이는 어디서 태어날까요?”
    그때 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너는 나가 봐야 할지 아니면 모르는 척해야 할지 망설였다. 최소한 누가 살고 있다고 고함이라도 질러야 할까. 여기는 빈집이 아니라고. 그러니 들어오지 말라고. 생각과는 달리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너는 입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얼굴을 더듬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얼룩진 무스탕을 쓰다듬었던 것처럼.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니 무스탕 한쪽이 얼룩덜룩했다.
    “분명 세탁 기호대로 했는데…….”
    “그런데도 망가질 리가 있어요? 또 잘못 본 거겠죠.”
    너는 얼마간 망설이다가 한숨을 섞어 나지막한 목소리를 뱉었다.
    “그럴, 나이니까요.”
    아버지는 작은 글씨 탓에 세탁 기호를 더러 잘못 읽었다. 그때마다 옷은 변색되거나 쪼그라들었다. 뒤집어 보니 얼룩은 훨씬 굵고 또렷했다. 아버지는 무스탕을 낚아채 한쪽 끝으로 밀쳐냈다.
    “비싼 거래죠?”
    무스탕을 맡긴 여자는 딸애가 첫 월급으로 선물해 준 거라고 했다. 적어도 월급의 절반을, 어쩌면 거의 전부를 치러야 살 수 있는 무스탕이었다. 평생 아껴 입을 거라는 다짐이 이어졌다. 맑고 경쾌한 목소리로 전하는 다짐은 어느새 경고처럼 들렸다. 아버지는 세탁소 앞을 지나는 딸을 몇 번쯤 본 적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잊지 않던 딸이었다. 딸 나이를 가늠해 보면서 다리미를 들었다. 스팀이 영 시원찮았다. 뭐든 단단히 여물 시간이 필요하지. 재촉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아버지 목소리가 떠올랐을 때 다리미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야무진 스팀을 내뿜었다. 리듬을 타며 와이셔츠를 다리자 단정한 주름이 갖춰졌다. 스팀 사이로 아버지 얼굴에 음울한 표정이 퍼졌다. 표정이 울음으로 번지는가 싶을 때쯤 흐릿해졌다. 울음은 스팀의 일부였을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늘 그런 식이었다.
    “비싼 거라는 말 무턱대고 믿지 말아요. 일단…….”
    “세탁소 하는 사람이 손님을 안 믿으면 누굴 믿어?”
    목소리 끝에 아버지는 다리미를 내려놓고 돌아앉았다. 구석에 들어앉으니 아버지가 절반도 안 보였다. 거기서 더 파고들면 겨우 윤곽만 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천장에 형광등이 달려 있긴 해도 옷에 가려져 있었다. 치마나 와이셔츠 사이로 삐져나온 빛만이 세탁소 안을 채웠다. 그러니 구석구석 빛이 닿지 않았다. 어둠이 뭉친 자리까지 있으니 세탁소는 더 좁아 보였다. 너는 아버지를 피해 빛이 닿지 않는 자리를 눈여겨봤다.
    “그만 쉬시는 게 어때요?”
    아버지는 공연히 다림질 판 앞에서 서서 허공에 스팀을 칙, 뿌렸다. 너는 심통이 나서 목소리를 부풀렸다. 그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게 될 줄은 몰랐다. 철거 얘기는 계절마다 밀려드는 오리털점퍼나 교복처럼 몰려와 세탁소를 가득 채우다가 어느새 사라지는 소식일 뿐이었다.
    “구겨지지도 않은 옷을 왜 자꾸 다려요?”
    아버지의 리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괜찮아 보여도 다려 보면 알지. 숨겨진 구김이 많다는 걸. 눈으로만 훑어봐선 몰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두고두고 삶의 어느 순간, 괜찮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불쑥 떠오르곤 했다.
    너는 구겨진 자국을 찾으려는 것처럼 아버지 얼굴을 훑었다. 아버지는 와이셔츠를 행거에 걸고 다시 구석에 들어가 앉았다. 귀퉁이만 보이는 아버지는 슬쩍 네 표정을 살폈다. 눈이 마주치자 돌아앉았다. 낡은 의자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아버지의 표정이 절반쯤 드러났다. 웃는 것 같다가 이내 울상으로 변하고 곧 화난 것처럼 보였다. 더 들여다보고 있으니 얼굴은 텅 비었다. 며칠 후 무스탕 값을 물어 줘야 했을 때도 꼭 그런 얼굴이었다.
    소비자원에서 연락이 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버지는 여자가 부른 값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돈만 물어 주면 됐다. 여러 번 되물었지만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얼핏 비슷해 보여도 재질이나 단추 위치가 교묘하게 다른 모조품이었다. 세탁 기호까지 똑같이 베꼈으니 세탁 기호대로 다루면 얼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몇 번 더 따지던 여자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걸음마다 표정이 일렁였다. 딸이 무스탕을 내밀며 좋은 거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고 했다. 이어지는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빈 탈수기를 돌렸다. 거대한 굉음이 세탁소를 집어삼켰다. 그 틈에 여자의 울음소리가 묻혔다. 다림질 판 앞에서 선 아버지는 스팀을 뿜어댔다. 여자의 표정마저 지워졌다. 여자는 빛이 닿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 탈수기가 멈췄을 때 여자는 얼굴을 감추고 일어섰다.
    “돈은 됐어요. 다만…….”
    아버지는 다리미를 내려놓았다. 일순 세탁소 안은 물에 잠긴 듯 잠잠해졌다. 여자는 짐작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딸애한테는 알은체 말아 주세요.”
    여자가 나가고 나서 아버지는 너를 향해 “거봐라,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니라니까.”라고 했다. 네가 기억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여자가 세탁소에서 울었던 사람 중 제일 오랫동안 운 사람이라고 했다. 너는 또 누가 울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천장에 걸린 옷만 들춰 볼 뿐이었다. 옷 사이사이 울음을 숨겨 둔 사람처럼.
    옷으로 빼곡했던 세탁소 천장도 어느새 아버지 머리숱처럼 듬성듬성 비어 갔다. 너는 아버지도 어디선가 자식에게는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던 게 있을지 생각해 봤다. 옷을 절반쯤 내렸는데도 천장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세탁소에 들른 아내가 전하는 말에 너는 옷걸이에 걸린 사람처럼 뻣뻣해졌다. 혀를 잡아 빼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어디로 이사를 하자고?”
    아내는 아까보다 더 느리게 말했다. 숫제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말투였다. 너에게는 다림질한 뒤에 세탁해 달라거나 등에 단추를 달아 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너는 아내의 말이 세탁할수록 줄어드는 옷이라도 되는 것처럼 또 물었다. 계속 묻다 보면 아내가 했던 얘기가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는 물 빠짐이 없고 보풀도 일어나지 않는 옷처럼 끄떡없었다.
    너는 옷이 아닌 건 세탁할 수 없다고 하는 심정으로 한 번 더 물었다.
    “그런 집이 있어?”
    “뭐 하러 없는 말을 지어내겠어요.”
    아내는 다림질 판에 몸을 기댔다. 시선은 네 콧잔등에 걸쳐 있었다. 너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림자에 얼굴이 숨겨졌다. 아버지가 어떻게 세탁할지 몰라 어수선하게 얽혀드는 표정을 감출 때 쓰던 방식이었다. 아버지가 숨겼을 표정을 짐작해 봤다. 아내는 네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무슨 말이든 했을 것이었다. 지울 수 없는 얼룩과 지울 수 있는 얼룩에 대해서 말할 때처럼 명쾌하게. 어디까지 지워질 수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 말할 때처럼 거침없이. 때론 지워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한 얼룩을 마주했을 때처럼 헐거운 목소리로라도.
    어딜 가든 지금 사는 방보다야 나을 것 같았다. 어쨌든 사람 살라고 만들어 놓은 집일 테니. 한편으론 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런 집을 만들고 계약하는지 궁금했다. 너는 아내의 말을 되씹어 봤다. 떠올려 볼수록 집은 멀어졌다. 손에 잡히는가 싶으면 여지없이 주저앉았다. 아내는 배가 불러오기 전에 옮기고 싶은 듯했다. 거기라면 적어도 다림질 판에서 태어나는 것보단 나으려나.
    “서둘러야 한다니까요.”
    너는 다림질 판 위에 올려놓은 서류를 봤다. 서류를 손에 쥐며 새삼 다림질 판이 누렇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다림질 판이 세상에서 가장 희고 반듯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어쩔 수 없잖아요.”
    너는 겨우 서류 앞장만 훑어봤다. 아내는 기어이 그 괴상한 집으로 들어갈 모양이었다. 여전히 너는 그것을 집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졌다. 애써 떠올려 보다가도 이내 포기하고 멀찌감치 밀어냈다.
    “여기에도 방이 있었네요? 방…… 맞죠?”
    그건 네가 아내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어린 너는 곧잘 세탁소에 딸린 골방으로 숨어들었다. 두어 번 뒹굴면 벽에 닿을 정도로 좁은, 창문도 없고 세탁소에서 건너오는 엷은 빛이 전부인 방이었다. 게다가 천장에는 세탁소에 다 걸어 두지 못한 양복, 블라우스, 원피스가 그림자처럼 걸려 있었다. 대개 금방 찾아가지 않을 옷들이었다. 봄에는 교복으로, 환절기면 코트로, 결혼식이 몰릴 때면 한복으로 더 빽빽하게 들어찼다. 세탁소는 어느 한 시절도 빠짐없이 옷으로 가득했는데 늘 벌이는 시원찮았다. 연초에는 회사 유니폼이 몰려들었다. 한 사람이 입는 것도 아닐 텐데 어느 회사든 유니폼 크기가 똑같았다. 고르게 늘어진 끝자락마다 꼬리표가 달려있었다. 꼬리표에는 요금, 작업내용, 맡긴 사람 이름, 날짜 같은 게 적혀있었다. 너는 눈짓으로 하나하나 읽으면서 옷 주인을 떠올려봤다. 그러다 보면 발끝이 간지러웠고 어느 순간 주먹을 쥐거나 잔뜩 옹송그리기도 했다. 그사이 팔다리를 쭉 뻗으면 벽에 닿을 만큼 자랐다.
    아버지는 다림질을 하다가 간간이 구부정했던 자세를 바로잡고 맨손체조를 했다. 협소한 세탁소 안에서 옷에 닿지 않으려고 신경 쓰다 보니 얼마간 위축된 동작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데다가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 맨손체조의 마무리는 골방 앞 행거에 걸린 와이셔츠를 한쪽으로 젖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선 안부를 묻는 것처럼 골방 안에 스팀을 길게 뿜었다. 그럼 너는 잘 놀고 있다는 뜻으로 슬쩍 웃었다. 스팀이 가득 들어차면 구름 위에 누운 듯 네 온몸이 뭉근하게 달아올랐다.
    요양원으로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골방에 대해 다른 얘기를 했다. 세탁기 앞에서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너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 아버지에게 밥솥이나 전자레인지 사용법은 알려줬지만 세탁기는 빠뜨렸다. 세탁기보다 훨씬 복잡한 드라이클리닝 기계도 능숙하게 조작했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세탁기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왔다. 세탁세제에 너무 오래 담가 둬서 삭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괜한 트집으로 시비 거는 사람이 있으면 “다리미 든 사람한테는 그러는 거 아니요.”라고 하던 때가, 비싼 옷이니 똑바로 세탁하라는 사람에게는 “그래 봐야 사람 입는 옷이죠.”라고 하던 때가 아득했다.
    “내가 골방을 들여다볼 때마다 넌 왜 그렇게 울상이었냐?”
    너는 아버지 표정을 떠올리려 애써 봤지만 이내 지워졌다. 매번 빛을 등지고 있었던 탓이다. 그저 아버지 얼굴이 가득 찰 만큼 좁고 어두웠다는 기억만 생생했다. 거기서 더해 봐야 재봉틀이나 탈수기 소리 정도였다.
    골방 안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사 갈 집에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일어선 너는 천장에 걸린 옷에 머리가 닿을까 봐 어정쩡한 자세였다. 지나치게 낙낙하거나 꽉 조이는 회사 유니폼을 입은 기분이었다. 그때 아내가 골방을 빠져나왔다.
    “어쨌든 이제 우리가 살게 될 집이잖아요.”

 

    집은 표백제를 듬뿍 넣고 밤새 삶은 듯 희기만 했다.
    아내에게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비어 있을 줄은 몰랐다. 문조차 없어 전체가 트여 있다. 베란다로 나가는 곳에도 문이 없었다. 밖을 내다보면 누가 등을 떠밀 것처럼 어질했다. 오층이라고 했는지 육층이라고 했는지 헛갈렸다. 자꾸 높아지는 것 같았다.
    아내는 너를 밀치고 성큼성큼 나섰다. 그러더니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줄자로 크기를 쟀다. 세탁소에 왔을 때 “이제 이건 필요 없겠네요?” 하면서 들고 나온 줄자였다. 아내에게서 물러난 너는 잠을 쫓으려 고개를 흔들었다. 해가 지면 집을 제대로 둘러볼 수 없어 아침부터 서둘렀다. 아내는 조명도 달려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 대체 거기에 뭐가 있는 거냐고 물었다. 대답은 건조했다.
    “뭐가 있긴요. 방이 있죠.”
    조명이 없으니 어두워지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었다. 네게는 한낮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이 집을 두고 오십 평쯤 된다고 해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아내는 너의 등을 스쳐 지나갔다. 그사이 너는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조명이 있어야 할 자리엔 전선이 몇 가닥 나와 있을 뿐이었다. 전선이라도 없었으면 천장인 줄도 몰랐을 것이었다. 전선은 길게 내민 혓바닥처럼 보였다. 이럴 줄 몰랐냐며 놀리는 것 같은 혓바닥. 애써 시선을 틀어 봐도 어디부터 바닥이고 어디까지가 벽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벽이고 바닥이고 아무 무늬가 없었다.
    처음엔 너무 싸게 나온 집이라 수상했다. 은밀한 음모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내는 함정을 피하려다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동안 너는 비슷한 방식으로 가진 것을 모두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봐왔다. 그것이 너를 신중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어린애 같은 두려움과 경계심에 휩싸이게 했다. 너는 아내를 향해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턱대고 믿지 말고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한다고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현관에 들어선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집은 충분히 쌀 만했다. 이것저것 계산해 보니 도리어 비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내놓은 집이 아니었다. 그런 건 세탁소뿐이었다.
    아내가 화장실이라고 일러준 곳에는 변기도 세면대도 없었다. 그러니 다른 방들과 다를 바 없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수도꼭지도 알아볼 수 없었다. 스위치가 있어야 할 자리도 그저 구멍이었다. 문이 없으니 어느 방에 들어가든 밖이 내다보였다. 내다보이는 것마다 눈 쌓인 벌판이나 도화지를 떠올리게 했다. 너는 넓이도 짐작할 수 없는 집을 무슨 색으로 칠하고 채워야 할지 막연했다. 그사이에도 아내는 흔들리지 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들여놓고 싶던 가구와 맞아떨어지는지 가늠해 보는 눈치였다. 집값을 치르고 나면 남는 돈이 빤한데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급한 대로 변기와 싱크대를 맞추고 나면 문이나 달 수 있을까. 문을 하나만 달 수 있다면 어디여야 할까. 그러고 보니 현관문도 없었다.
    너는 한 곳에 서 있었다. 얼마 돌아다니지 않았는데도 몹시 피곤했다.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어딜 가나 휑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았던 것도 같았다. 가만히 있으니 질감과 양감이 스르륵 무너졌다. 그래서 멀리 아내를 봤을 땐 둥둥 떠다니는 줄 알았다. 아내는 슬그머니 벽에 스며들었다. 안방과 작은방이 어쩌면 문간방이 서로 뒤엉켰다. 이러다간 너도 하얗게 지워질 것 같았다.
    그사이 냉장고를 놓을 위치와 식탁 방향이 정해졌다. 정말 지금 방에 있는 건 죄다 버리고 올 생각인 듯했다. 아내는 집 안 꾸미는 일에 무심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액자를 걸어 둘 자리만 다섯 군데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 살고 있는 방에는 액자가 하나도 없었다. 너는 여전히 안방인지 화장실인지 헛갈리는 방에서 아내를 멀뚱멀뚱 건너다봤다. 그렇게 큰 냉장고는 살 수 없을 거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냉장고를 줄여서 초인종부터 달아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접었다. 그래도 계속 가만히 있는 게 무안해서 한마디 거들었다.
    “서랍장은 이쯤에 놓으면 되겠다.”
    “거긴 다용도실인걸요.”
    아내의 목소리에는 이 집으로 기울어진 마음이 얹혀 있었다. 벽지를 고르는 표정은 활달하고 단단했다. 너는 도배가 되고 가구들이 들어차고 변기가 설치되고 마룻바닥이 깔릴 집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내 말마따나 꾸미기 나름인 집이었다. 너는 그냥 이대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한동안 많은 것을 채워 넣지 못한 채 살아야 할 것이었다. 살면서 돈을 모아 창문을 달고 또 몇 달 동안 모아 타일을 붙이고 세면대나 욕조를 들여놔야 할 것이었다. 그러라고 나온 집은 아니었지만 너와 아내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계산으로 계약할지도 몰랐다.
    “어디 있어요?”
    먼 곳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흐리마리하게 울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려 봐도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딘가 얼룩이라도 묻혀 표시해 둬야 할 것만 같은 집이었다.

 

    오래전 아버지는 얼룩을 지우고 있었다. 옆에 선 너는 크레파스가 묻어도 지울 수 있냐고, 그럼 피도 지울 수 있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신이 나서 또 물었다.
    “간장이 묻어도요?”
    “지울 수 있지.”
    너는 설마 이건 어렵겠지,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오줌은요?”
    “못 지울 것 같으냐?”
    너는 아버지가 이 세상을 다 지워버릴 수 있는 마법사라도 된 듯 몸이 바짝 달아올랐다. 그때 아버지가 네 말을 가로막았다.
    “다 지울 수 있다. 커피든 흙탕물이든.”
    “어떻게요?”
    “옷감과 얼룩에 맞는 약품을 묻혀 문지르면 돼. 물에 흘려보내듯 설렁설렁 때론 빳빳한 솔로 벅벅. 비율과 물 온도만 잘 맞추면 문제없어. 똥을 묻혀 와봐라 내가 못 지우나.”
    아버지는 커다란 얼룩 같은 표정으로 너를 봤다. 표정만 봐선 사실 너도 지울 수 있다고 할 것만 같았다.
    “근데 딱 하나 못 지우는 게 있지.”
    “뭔데요?”
    아버지는 침을 삼켰다. 그러자 얼굴 전체가 출렁거렸다.
    “불에 그슬린 자국. 그건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끝에 가서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너는 받아쓰기를 할 때처럼 아버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마음에도…… 뭐가 묻든 다 지울 수 있지만 불에 그슬리면 돌이킬 수 없지.”
    “그럼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생겼을 땐 어떻게 해요?”
    “글쎄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꾸벅꾸벅 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어지는 대답이 꼭 잠꼬대 같았다. 그때는 사람들이 옷을 입고 다니는 이상 세탁소가 없어질 일은 영영 없을 줄 알았다.
행거는 뼈대가 드러났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확연히 휘어져 있었다. 여태껏 부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 게 용했다. 아버지 뼈가 휘어져 있었다는 건 얼마 전에야 알았다. 의사는 통증이 없다면 굳이 손쓸 필요까진 없다고 했다. 이제 와서 행거를 고칠 필요 없는 것처럼. 너는 아버지 뼈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옷이 걸려 있었는지 떠올려 봤다. 옷에 대한 기록은 두꺼운 장부 몇 권으로 남아 있었다. 장부마다 첫 장에는 네 치수가 적혀 있었다.
    너는 아버지에게 바지를 맡겨왔다. 세일 가격만 보고 무심코 산 바지나 작년만 해도 맞았는데 이제는 허리나 통이 작아 난감했던 바지였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너를 쓰윽 훑어보곤 줄자를 들이댔다. 치수는 그때그때 적어 놓은 게 분명했다. 아버지는 네 몸의 변화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기장이 얼만지 통은 어느 정도로 해야 편안한지. 허리가 언제 줄었고 몇 년 후 얼마나 늘었는지까지. 너는 숫자에도 온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너는 아버지 몸을 몰랐다. 아버지는 막연한 짐작보다도 훨씬 작았다. 세탁소 천장에 걸린 옷에 닿지 않을 만큼만 자라고 멈춘 것 같았다. 손목은 옷을 올리고 내리던 장대만큼 가늘었다. 이제는 다리미를 들 수도, 재봉틀을 돌릴 수도 없을 듯했다. 그쯤 아버지 얼굴마저 서서히 지워졌다. 뿌연 스팀 사이로 보는 얼굴처럼.
    기억에 오롯이 남은 거라곤 손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번번이 장갑도 끼지도 않고 약품에 젖은 옷을 만졌다. 그때마다 네가 잔소리를 섞으면 어깃장을 놨다.
    “맨손으로 만져 봐야 제대로 알지.”
    이제껏 아버지가 네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도 그런 뜻일지 몰랐다. 세탁 기호를 읽어내듯 너를 알고 싶다는. 네가 어떤 섬유인지. 면이 얼마나 들어가 있고 거기에 폴리에스테르가 얼마나 섞였는지. 약품을 넣어 빨거나 찬물에 담가 놔도 되는지. 말릴 땐 그늘에서 말려야 하는지 햇볕에 널어 놔도 괜찮은지. 자칫 쪼그라들거나 물이 빠지고 퍼져버릴까 봐 조심스러운 손길로.
    너는 아버지의 거칠고 투박한 손이 닿을 때마다 진저리를 쳤다. 약품 냄새가 들러붙어 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얗게 일어난 거스러미도 옮겨와 온몸으로 번질지도 몰랐다. 그때 일을 물어도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생각나지 않는 건지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수선 주문이 밀려들 때면 아예 시침핀을 입에 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치수나 찾아가야 할 날짜를 정확하게 전했다. 이제는 그만한 틈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미뤘던 고백이나 따로 챙겨 두지 않으면 금방 잊을 만큼 소박한 기억을 나눠도 괜찮았다. 그게 아니라면 세탁 기호라도 차근차근 일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캐물어 봐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철거될 세탁소가 꼭 남의 일인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처분하는 동안 오로지 짐작만으로 움직여야 했다. 너는 아버지가 평소 했던 말을 떠올리느라 애썼다. 거기에 힌트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명징해지는가 싶던 목소리는 매번 날선 재봉틀 소리에 끊어지고 스팀에 묻혀 뭉툭해졌다.
    너는 돌아누운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수한 마찰로 보풀이 잔뜩 일어난 몸이었다. 손끝에 미열이 잡혔다. 평생 몸에 쌓인 다리미 열기가 여전히 맴돌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온기 끝에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멸종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처럼 아무리 만져도 세탁 기호 하나 읽어낼 수 없었다. 이제 기계를 들어내고 찾아가지 않는 옷은 센터에 보내도 괜찮은지도 알 수 없었다.
    요양원에서 나온 너는 손님처럼 세탁소에 들어섰다.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 돌이킬 수 없는 옷이란 걸 빤히 알면서도 혹시 모르니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들어선 손님처럼. 그런 옷은 맡아 봐야 고생만 하고 원망이나 들을 텐데도 이따금씩 아버지는 두고 가라고 했다.
    “고치지도 못할 옷을 뭐 하러 맡아요?”
    “자기 손으로 버리고 싶지 않아서 세탁소에 오는 사람도 있어.”
    아버지는 멀리 떠난 이가 남겨 두고 간 옷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손님은 세탁소에 드나들면서도 그 옷을 찾지 않았고 아버지도 모르는 척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버리고 싶지 않아 세탁소를 네게 미루기로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닥은 거무죽죽해서 발조차 보이지 않았다. 깊숙이 파고들자 발밑에서 탈수기 소리가 우럭우럭 부풀어 올랐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불컥거렸다. 너는 탈수기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처럼 어기적거리다가 겨우 다림질 판에 기댔다. 다림질 판에는 아버지만큼의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너는 신발을 벗고 몸을 뉘었다. 다리미를 들어 올리자 너의 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순간 누군가 네 얼굴에 스팀을 뿌렸다. 짧게 한 번 곧바로 길게 세 번. 무심하지만 따뜻하고 축축한 인사였다. 한쪽에 맴돌던 온기가 번지면서 달아올랐다. 일순 네 몸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제야 오랫동안 잔뜩 구겨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쩡해 보여도 다려 보면 알게 되는 주름이, 눈으로만 훑어봐선 알 수 없던 주름이 가득했다. 앞으로 너는 몸에 꼭 맞는 옷을 고르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몸을 뒤척일 새도 없이 잠이 몰려왔다.
    간판까지 내리자 세탁소는 그저 건물에 뚫린 구멍처럼 보였다. 내일쯤 탈수기와 재봉틀까지 빠지면 이제 질감과 양감이 모두 무너진 채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그런 방이 될 것이다.

 

    “요즘 모피방으로 많이들 하시죠.”
    “그런가요?”
    “취향에 맞춰 직접 인테리어 하는 추세니까요. 여기는 수납공간으로 쓰실 거죠?”
    담당자는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너는 머뭇거리기만 했다. 담당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단지 하얀 덩어리가 뭉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 뭘 놓아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무거나 놓아도 상관없을 듯했고 동시에 무엇이든 이물질처럼 보일 것 같았다.
    “……글쎄요.”
    여전히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집이었다. 창문이 있어야 할 곳은 아직 뚫려 있었다. 아내는 서둘러 창호를 골랐다.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을 때부터 목소리에 부쩍 탄력이 붙었다. 무늬와 재질을 선택할 때도 거침없었다. 세탁소를 비워내자 보증금과 기계 값이 네 앞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빈집에 문도 못 달고 도배도 건너뛴 채로 살지 않아도 됐다. 겨우 변기와 세면대만 놓고, 좀 더 무리해서 임시로나마 싸구려 싱크대를 맞춰 놓고 차차 채워 가자고 다독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철거와 인테리어 공사가 맞물렸다. 세탁소 출입문이 맥없이 뜯겨 나가는 동안 견고한 현관문이 달렸다. 작업에 속력이 붙었지만 이삿날까지 마치려면 빠듯했다. 밤에도 공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불안정한 임시 조명까지 끌어다 써야 했다. 다들 비슷한 사정인지 복도는 자정까지 환하고 소란스러웠다. 이대로라면 날짜를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세탁소가 쪼개지고 잘게 부수어지는 동안 이사 갈 집은 구색을 갖출 것이었다.
    한쪽에서 아내가 나타났다. 벽 틈을 비집고 솟아난 것 같았다.
    “수납공간 맞고요, 선반은 양쪽에 두 개씩.”
    “저쪽은 에어컨이죠?”
    “그리고 옆에는 공기청정기요.”
    주고받는 목소리가 가볍게 튀어 올랐다. 아내는 종종걸음으로 방마다 어디에 무얼 놓고 설치할지 일러줬다. 서너 번쯤 들은 얘기인데도 너는 자꾸 잊었다. 여기에 침대를 놓는다고 했던 것도 같았고 반대편에 붙박이장을 짜 넣는다고 했던 것도 같았다. 샤워기나 방문 손잡이도 일일이 보여줬는데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바닥은 뭐로 한다고 했더라. 강화마루였나.
    “가습기 놓을 자리예요.”
    아내는 네가 짚고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숨은 가습기에서 흘러나오는 증기마저 뚫지 못했다. 간단한 운동도 신중해야 할 때였다. 그나마 거동이 수월했을 땐 까치발을 하고 장대를 들어 올렸다. 평소 자주 하던 동작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허공을 쿡쿡 찌르는 것도 같았고 멀리서 보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봐야 천장에 걸어 둘 옷도, 손님에게 내줄 옷도 없었다. 그쯤이 아버지가 가장 활달하던 때였지 싶다. 나중에는 이름표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침대에 누웠다. 너는 침대에 붙은 이름표를 힐끔거렸다. 어느 순간 이름표는 세탁소에 걸린 옷마다 달려 있던 꼬리표처럼 보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세탁소에 걸린 외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언제라도 장대로 아버지를 바닥에 내려놓을 것만 같았다.
    커튼 사이로 흐릿한 빛이 번졌다. 빛이 어둠에 잠길 때쯤 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인 것도 몰랐다. 네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지나간 다음일 수도 있었다. 너는 눈을 부릅뜨고 아버지의 입술을 노려봤다. 가습기에서 나오는 증기가 입술을 지웠다. 손을 휘저어 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예금은 그 정도니까 꼭 찾아…….”
    목소리가 끊어질 때마다 물러났던 증기가 우르르 몰려왔다.
    “참, 비밀번호! ……잊지 말고.”
    아버지는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일러줬다. 찾으러 올 날짜와 요금을 일러주는 것처럼 또박또박. 집에서 억지로 지우느라 더 번진 얼룩이나 세탁 기호도 제대로 보지 않고 빨아 줄어든 스웨터를 앞에 둔 것처럼 뾰족한 목소리로. 이어서 처음 보는 얼룩을 마주한 것처럼 얼버무리다가 지울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지울 수 없다고 단정 지은 듯 단호하게. 목소리는 세탁소 안과 다르지 않았다. 너는 그것이 평생 아버지가 말해 온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서 아버지는 빌려준 돈과 그중에 안 받아도 그만인 돈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세탁소 철거 날짜가 정해진 날이었다.
    너는 숨을 몰아쉬었다. 두텁게 쌓여 있던 스팀이 사라지자 아버지 얼굴이 또렷해졌다. 그동안 세탁소에서 지워냈던 얼룩이 전부 쌓이면 저럴까. 예전에 너는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생겼을 땐 어떻게 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글쎄다…… 그러니까…….” 하면서 뜸을 들였다. 어느새 눈까지 반쯤 감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꾸벅꾸벅 조는 사람처럼 보였다. 포기하고 돌아설 때쯤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꼭 잠꼬대처럼.
    “모르는 척하는 거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얼룩을 안 보면 돼.”
    “에이, 그게 뭐예요.”
    “그럼 이건 어떠니?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세상에 얼룩 있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수두룩하잖니.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하면서 입고 다니는 거야.”
    네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아버지는 이번엔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 헛기침 끝에 목소리가 굵어졌다.
    “아니면 수를 놓거나 천을 덧댈 수도 있지. 최대한 옷과 비슷하게. 눈여겨보지 않으면 티 나지 않도록.”
    그건 좀 그럴듯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너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섰다. 더 좋은 방법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할 말이 바닥난 사람처럼 눈을 굴리던 아버지는 굼뜨게 입을 열었다.
    “이참에 그냥 갖다버리고 새로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세상에 옷이 그거 하나뿐이냐.”
    대답이 맘에 차지 않던 너는 볼우물을 만들며 째려봤다. 아버지는 키득거리면서 다시 다리미를 들었다.
    너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언제부턴가 세탁소는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된 것 같았다. 모르는 척할까. 세탁소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니면 세상에 사라진 세탁소는 많으니까 그냥 받아들일까. 너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세탁소가 있던 자리에 수를 놓고 천을 덧대듯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면 나을까.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냥 갖다버리고 새로 구하는 건 어떨까. 너는 세탁소나 얼룩 대신에 다른 것들을 하나하나 넣어 봤다. 이를테면…….
    쓴웃음이 퍼진 너는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봤다. 기장을 줄일 때 매서워지던 눈은 어느새 둥글둥글해졌다. 저런 눈으론 옷감을 잘라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시침핀 하나 제대로 꽂을 수나 있을지.
    증기가 얼굴을 남김없이 뒤덮을 때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적어서 그러냐? 그 정도면 세탁소 하는 거치곤 꽤 모은 거야.”
    너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입을 다물었지만 남은 웃음이 입술 끝에서 새어 나왔다. 아버지는 고개를 네 쪽으로 돌렸다.
    “그럴 거 없다. 다 괜찮아.”
    이제 너는 알고 있었다. 괜찮아 보여도 다리미로 다려 보면 다르다는 걸. 반쯤 일어서다 말고 아버지를 내려다봤다. 이제는 네가 눈으로만 훑어봐선 모르는, 숨겨진 구김을 찾아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일어서자 현기증이 일었다. 너는 벽에 기댔다. 얼굴에는 겨우 빛 몇 점만이 낙엽처럼 툭툭 내려앉았다. 어디선가 증기가 잔뜩 몰려와 네 몸을 감쌌다. 가습기를 줄여도 잦아들 줄 몰랐다. 어쩌면 그동안 아버지 몸에 켜켜이 쌓였던 게 빠져나온 것일지도 몰랐다. 너는 허공으로 조금 떠오른 기분이었다. 현기증은 부풀어 오르기만 했다. 그새 아버지는 코를 골았다. 몸속에 남아 있던 탈수기 소리나 재봉틀 소리마저 내보내듯. 여전히 세탁소 안에 있는 건지도 몰랐다. 증기에 가려진 표정이 꼭 그때 같았다. 그것만으로 아버지를 기억해도 좋을 표정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커튼을 닫았다. 너는 아버지가 골방을 들여다보며 너와 눈을 마주쳤던 때가 떠올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와이셔츠를 커튼처럼 젖히고 네 얼굴을 구석구석 살피던 아버지. 앞으로는 네가 커튼을 열고 아버지 얼굴을 들여다볼 차례였다.

 

    네가 안방이나 작은방에서, 어쩌면 화장실일 수도 있는 방에서 헤매는 사이 아내는 너를 두고 나갔다. 인부가 싱크대 방향을 물었을 때였다. 순간 너는 어디가 나가는 곳인지 헷갈렸다. 아내가 사라진 방향마저 짐작하기 어려웠다. 문이 없으니 그냥 뚫린 곳으로 나가면 됐다. 하지만 죄다 하얘서 어디가 뚫려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저쪽인가 싶어서 가보면 벽이었다. 벽을 짚으면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있는 기분이었다.
    “당신 어디야?”
    “거실에 있어요. 역시 소파가 들어가기엔 좁겠네요.”
    아내의 목소리는 선명했다. 그래도 방향까지 가늠할 순 없었다. 어디로 나가야 할까. 어디 한 군데는 분명 뚫려 있었다. 일단 한쪽으로 계속 밀고 나갔다. 그러다 보면 분명 출구가 나올 것이었다.
    “좀 나와 봐요.”
    아내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차근차근 아내가 있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모를 일이었다. 다시 찬찬히 벽을 짚어 봤다. 아까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질감이 불분명했다. 어딘지 모르게 말랑말랑한 듯도 했다. 벽이 아니라 다림질 판을 짚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순간 조명이 꺼졌다.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밖에서 서성이던 어둠이 방 안으로 빠르게 침입했다. 어둠이 채워지자 방은 순식간에 좁아졌다. 누군가 표정을 지으면 가득 찰 만큼.
    네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몸집을 키웠다. 그중에서 아내의 것을 찾아내려 애썼지만 도드라지는 목소리는 없었다.
    “당신 괜찮아?”
    네 목소리에 답하듯 탈수기 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인 것 같았다. 돌아보자 오른쪽 귀퉁이에서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한 겹씩 쌓이고 있었다. 어슴푸레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스팀이 뿌옇게 올라와 시야가 흐려졌다. 천장에는 금방 찾아가지 않을 옷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알록달록한 카디건이나 스팽글이 촘촘하게 달린 원피스가 몰려 있었다. 어린 네가 누우면 시선이 닿는 자리였다. 아이를 위한 모빌 하나 사는 일마저 주저해야 했던 시절,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네가 세탁소를 비우는 동안 알게 된 것들이었다.
    고개를 틀자 멀리 가느다란 빛줄기가 보였다. 그쪽으로 방향을 틀자 촘촘하게 걸린 와이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나가는 곳은 저기쯤일 것이었다. 그 너머에서 옷깃을 솔로 벅벅 문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와이셔츠를 커튼처럼 헤집고 나서면 다사로운 스팀이 닿을 것이었다. 탈수기를 돌려놓은 아버지는 오랫동안 몸에 밴 리듬으로 다림질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몸을 재게 놀렸다. 입구는 가까워지지 않고 도리어 더 멀어지는 듯했다. 어느 순간 행거에 걸린 와이셔츠가 천천히 젖혀졌다. 그 사이로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빛을 등지고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길게 혹은 짧게 여러 번 뿜어지는 스팀이 두툼해졌다. 스팀 사이로 번지는 표정이 보였다. 온몸이 뭉근하게 달아올랐다. 너는 고개를 들고 활짝 웃었다. 이번엔 울상처럼 보이지 않도록.

 

 

 

 

 

 

 

 

 

 

전석순
작가소개 / 전석순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회전의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1년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로 오늘의작가상을 받았다. 장편소설로 『거의 모든 거짓말』, 중편소설로 『밤이 아홉이라도』가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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