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의 깊이

[단편소설]

 

 

강물의 깊이

 

 

이승우

 

 

    그녀는 일주일 전에 처음 그를 보았다. 그는 강물을 향해 앉아 있었다. 강물이 그의 발끝을 핥으려고 몸을 쭉 펴서 다가왔다가 둥글게 말아 물러났다. 강물은 그 움직임을 지치지도 않고 반복했다. 그곳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고, 또 풀이 우거져 있기 때문에 멀리서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강변을 따라 잘 조성된 산책로를 걸었다. ‘이곳은 수심이 깊어 위험하니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적힌 경고판을 무시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그 경고판을 무시한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아닐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주로 해가 질 무렵에 집에서 나와 강가를 걷거나 뛰었다. 그녀에게 걷거나 뛰라고 권유한 사람은 ‘마음클리닉’의 원장이었다. “땀을 흘리세요. 뛰거나 빠른 걸음으로 걸으세요. 피곤해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그것이 그녀의 불면에 대한 원장의 처방이었다. 그녀는 피곤해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뛰거나 걸었다. 그러나 금방 숨이 차올라 오래 뛰지는 못했다. 조금 뛰고 주로 걸었다. 되도록 빠르게 걸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밖으로 나와 어두워질 때까지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를 피해 우거진 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가지런한 물살이 찰싹거리며 그녀의 걸음을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녀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이 싫었고, 뛰거나 걷는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싫었다. 그녀는 뛰거나 걸을 때 자신의 뒷모습이 뒤뚱거리는 것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뛰거나 빠르게 걷다 보면 사람들을 추월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럴 때 뒤통수에 느껴지는 따가운 기운도 싫었고, 자기를 향해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의식하는 것도 싫었다. 실제로 무슨 소리를 들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귀에는 무슨 소리인가가 들렸다. 그녀는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이 없는 길을 골라 걸었다. ‘위험’ 표시가 있는 풀밭 속으로 몇 걸음 들어가면 강에 바짝 붙어서 물살의 호위를 받으며 걸을 수 있었다. 군데군데 물에 고인 웅덩이를 건너뛰어야 할 때도 있지만 강물을 데리고 꽤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한참 가다 보면 철조망이 쳐져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그녀는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곳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무릎을 세운 자세로 앉아 물끄러미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녀는, 저기 있으면 안 되는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어처구니없어 피식 웃었다. ‘저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은 그녀 자신이기도 했다. 어차피 길이 막혀 더 갈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무언가가 뒤에서 잡아끄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져 그녀는 멈칫했다. 웬만하면 무시하려 했지만 어떤 힘이 그녀의 몸을 돌려세웠다. 미동도 하지 않고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이 그의 눈을 시리게 했다. 낯설고 익숙했다.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데 비현실적이지는 않았다. 나중에 그녀는 그때 느꼈던 그 이상한 분위기에 대해 생생한 풍경의 한 귀퉁이에 어색하게 붙은 사진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합성된 사진은 생생한 빛과 색의 현실 세계에 속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증언한다. 현실 세계가 그를 간섭할 수도 없고 그가 현실 세계를 간섭할 수도 없음을 토로한다. 그녀는 머릿속이 몽롱해지는 것 같아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낯설고 익숙한 풍경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마음의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알았다. 그 이상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려는 걸음을 막기 위해 그녀는 강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근처에 텐트가 보이지 않는데도 그런 생각을 했다.
    ‘골목부동산’의 팀장인 동생을 따라 들어오는 사람을 보는 순간 그녀는 단번에 사흘 전의 그를 알아보았다. 꽤 떨어진 거리에서 옆모습을 보았으므로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알아보게 한 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햇빛이 그의 얼굴에 부서져 눈을 부시게 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어딘가를 쳐다보았지만 그 눈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어디도 보는 것 같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 사람은 현실감이 탈색된 강가의 그 분위기를 그녀의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때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두운 물결이 거칠게 출렁거렸는데, 그것에 대해 그녀는 그 순간은 물론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를 안으로 들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그를 안으로 들이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녀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데도 자기 안의 그 요란한 흔들림이 간파당한 것 같아서 얼굴을 붉혔다. “언니. 이분이야.” 동생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를 무시하고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조용해요. 너무 조용해서 탈이지.” 동생의 큰 목소리가 닫힌 문을 뚫고 들어왔다.
    동생이 전화를 걸어 입주할 사람을 데리고 갈 거라고 한 게 15분 전이었다. “혼자고, 짐도 없어. 오래 있을 사람 같진 않은데. 일단 가서 이야기할게.” 2층은 한동안 비어 있었다. 동생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만 놀리고 세를 주자고 졸랐다. 이 큰 집에 혼자 사는 게 미안하지 않으냐고 했고, 언제까지 비워 놓을 거냐고 따졌다.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럴 마음이 없다는 뜻을 전했다. 그런데도 동생은 틈나는 대로 집을 오가며 청소하고 얼룩이 생긴 벽지를 뜯어내고 가구 배치를 새로 했다. 그러고는 2층에 있는 두 개의 방 가운데 하나만 내놓겠다고 제안해서 너 알아서 하라는 언니의 승낙을 받아냈다. 요즘은 원룸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이 동네에는 그런 집이 없어 금방 나갈 거라는 동생의 말과는 달리 꽤 여러 달 2층은 비어 있었다. 보러 오는 사람은 있었지만 계약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방 한 개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세입자들을 망설이게 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생은 그 방까지 내놓자고 제안하지는 않았다. “도배도 새로 하고 커튼도 새로 달았어요. 부엌에 냉장고 식탁 다 갖춰져 있고. 햇빛 잘 들지, 조용하지, 이런 집 구하기 어려울 거예요. 틀림없이 만족할 거라고 장담합니다.”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동생이 수다스럽다는 것과 층간 방음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가 대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마음속에서 일렁였던 어두운 물결에 대해 그녀는 자주 생각했다. 그를 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과 그를 들이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오래 생각했지만 실체에 접근하지는 못했다. 자기 안에 실체에 접근하려는 의지와 그 의지를 꺾으려는 다른 의지가 맞붙어 싸우고 있다는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떤 의지를 응원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떤 의지가 이겨야 자기가 이기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누가 이기든 자기가 지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우울해졌다. 번번이 강가에서 보았던 낯선 사람의 이상한 합성 사진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그만두었다. 그녀는 자주 머리를 쥐어짜듯 누르며, 이게 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야, 하고 중얼거렸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 그의 신경은 가는 철사처럼 날카로워졌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자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옅은 꿈을 꾸거나 환각을 보았다. 꿈을 현실로 인식하거나 실제 일어난 일을 꿈속에서 겪은 일로 착각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생겨났다. 어떤 조짐을 감지하거나 예감을 느끼는 일도 늘어났다. 가끔 그녀는 이미 겪은 일을 다시 겪었고, 곧 일어날 일을 미리 겪었다. 그런 것들은 대개 불길한 것이어서 그녀의 마음은 늘 살얼음 위에 있었다. ‘마음클리닉’ 원장의 처방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몸을 피곤하게 하면 정신도 덩달아 피곤해지는 듯했다.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그녀는 육체 못지않게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부축해야 했다. 그래도 뛰거나 걷는 것을 생략할 수는 없었다. 효과를 기대해서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그마저 중단하면 더 나빠지지 않겠느냐는 충고를 실제로 ‘마음클리닉’의 원장이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확실하지 않지만 그 목소리가 가끔 그녀의 귀에 들렸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기대도 사라지고 의문도 사라진다. 기대도 의문도 없이 하던 일을 하고 받던 치료를 받는다. 수면제 없이 며칠을 버티다 결국 더 버티지 못하게 되면 항복하듯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불러오는 게 그녀의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너무 수면제에 의지하지 마세요. 심신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위험할 수 있어요.” 자고 일어났더니 알몸이었는데, 옷을 벗고 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녀가 말했을 때 원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다가 일어나 잠옷을 입은 채 자동차를 몰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며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2층은 너무 조용해서 입주자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냈는데, 사람이 사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그릇 씻는 소리나 물 내려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방음이 시원치 않은 오래된 건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틀이 지났을 때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녀의 마음속에서 일렁이던, 그녀가 그 실체를 마주하지 않으려고 했던 복잡한 기분이 무엇인지를 더는 모른 체하기 어려웠다. 그 사람은 살아 움직이는 세계의 귀퉁이에 누군가 붙여 둔 죽은 사진 같았었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눌러 가며 2층 계단을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다. 어떤 움직임도 없고 어떤 소리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가 입주해 있는 방문 앞에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 봤다. 안에 사람이 있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노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식탁 위에 머물렀다. 4인용의 사각 식탁 위에 놓인 냄비가 눈에 띄었다. 안에는 먹다 남은 라면 국물이 담겨 있었고, 냄비 뚜껑은 그 옆에 별로 단정하지 않은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젓가락 역시 별로 단정하지 않은 모습으로 흩어져 있었다. 뚜껑에 묻은 라면 국물은 라면을 뚜껑에 덜어 먹었다는 사실과 함께 라면을 먹은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추하게 했다. 그것은 사람이 머물고 있다는 흔적이었다. 안도감이 생긴 그녀는 냄비 뚜껑에 라면을 덜어 먹는 남자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녀 역시 라면을 끓이면 뚜껑에 덜어서 호호 불어 가며 먹는 편이었다. 그녀는 닫힌 방문을 쳐다본 다음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설거지를 했다. 그릇을 식기건조대 위에 올려놓고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냉장고에는 반쯤 비워진 2리터짜리 물병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1층에서 김치와 달걀을 가지고 와 냉장고를 채워 주었다.
    그녀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설거지를 하고 살금살금 움직인 것은 그가 자기 방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시간은 아니었다. 잘 시간에도 자지 못하는 그녀는 잘 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잠을 자는 사람이 부러웠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그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발자국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 수돗물 소리, 가스레인지에 불붙이는 소리를 들었다. 잠은 바깥으로 나가려는 그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그는 소리가 들리면 깨어났다가 소리가 잦아들면 다시 스르르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문득문득 시간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빛이 없다는 건 눈을 뜨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두꺼운 커튼이 쳐진 방 안은 어두워서 밤인지 낮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는 들었다. 얇은 벽을 타고 넘어오는 여자의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눈이 얼마나 많이 왔어, 그날. 세상에, 그렇게 엄청난 눈은 태어나서 처음 봤지. 앞이 안 보일 정도였잖아. 몇 번을 말해. 그런 날 차를 몰고 나가는 게 말이 돼? 말렸어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렸어야지. 다 큰애가 말을 듣느냐고? 그걸 말이라고 해? 말을 듣게 해야지. 어떻게든 나가지 못하게 했어야지. 부모가 뭔데. 그러라고 부모가 있는 거지. 그래, 고집이 보통이 아니지. 그건 변명이 안 돼. 그래도 막았어야지. 방문을 걸어 잠그기라도 했어야지. 어떻게든 했어야지……. 뭘 잘했다고 변명이야. 너 때문에 애가 그렇게 된 거잖아. 애가, 너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데, 뭘 잘했다고, 뭘 잘했다고…….” 잠은 더 이상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여자의 소리는 찌를 듯 높아졌다가 울부짖음이 되었다가 울음으로 바뀌었다. 고무줄처럼 길고 느리고 끈덕진 울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눈과 귀를 모았다. 팔에 오스스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그는 금방이라도 문이 열리고 누가 들어올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었다.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라면을 후루룩거리며 먹는 소리가 들렸다. 해물 섞인 라면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자고 일어난 그가 낮에 끓여 먹은 것과 같은 라면 냄새였다. 라면은 싱크대 위 선반에 가득 쌓여 있었다. 허기를 심하게 느낀 그는 라면 두 개를 꺼내 끓여 먹었다. 그리고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같은 라면 다섯 개와 햇반 세 개와 캔맥주 네 개를 샀다. 라면과 햇반을 선반에 넣어 두고 캔맥주는 냉장고에 넣었다.
    잠시 후 여자의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와서 그를 긴장하게 했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그래, 라면, 라면이 넘어가냐고. 배가 고파? 네가 사람이야? 이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밥 먹을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배가 고플 수가 있어. 어떻게 라면을 처먹을 수가 있어.”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섬뜩한 목소리에 이어 다시 울음이 이어졌다. 길고 느리고 끈덕진 울음은 이 세상의 천장을 찢고 들어온 다른 세상의 손가락처럼 여겨졌다. 그는 그 손가락이 자기를 가리키며 흔들며 다그치는 상상을 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아 천장을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천장에 구멍이 뚫리고 무엇인가가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날더러 어쩌라고? 그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았다. 내가 어쨌다고? 그는 천장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싶은 욕구를 힘들게 이겨냈다. 바깥의 울음소리가 조금 더 이어졌다면 참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울음은 잦아들었고,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현관문을 빠져나갔을 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오래 참은 한숨을 뱉어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나온 그는 뚜껑이 열린 냄비 안에 먹다 남은 라면이 반 이상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입주한 다음날 아침 그가 식탁에서 발견한 것과 같았다. 그는 그 집에 막 들어왔으므로 식탁에 놓인 라면 그릇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막연히 다른 입주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심각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현실감을 상실한 채 이곳에 왔고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난 후 깨끗이 치워진 식탁을 보고도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그의 시야가 현저하게 좁아진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다시 잠들었다.
    잘 시간이 아닌 시간에 잠을 잔 건 사실이었다. 그는 한 달 월세를 미리 내고 그 집에 들어온 다음 곧바로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자기가 얼마나 오래 잤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그 방에 들어온 것은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잠을 자야겠다는 욕구에 짓눌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 방의 입주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방에 들어오자마자 잠부터 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눕자마자 잠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는 처음 잠을 자는 사람처럼 잤다. 그는 마지막 잠을 자는 사람처럼 잤다. 두꺼운 커튼이 쳐진 방은 가느다란 빛도 들어오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끝도 없이 잠이 몰려왔다. 잠깐 깨었다가 곧 다시 스르르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일이 반복됐다. 잠은 구불구불하고 깊은 동굴과 같았다.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려웠고, 나온 듯했으나 곧 빨려 들어갔다. 어떤 소리를 듣고 깨었지만 어떤 소리에도 불구하고 잠들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뭘 잘했다고 변명이야? 누군가를 다그치는 크고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그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소름을 돋게 하는 으스스한 울음소리가 공기 속에 떠다녔지만 누가 왜 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엷은 잠 속에서 꾼 여러 개의 꿈들과 뒤섞여 분간이 되지 않았다. 막연해서 꿈인 듯했지만, 선명해서 꿈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그 어느 시점에 잠에서 깨어난 그는 몽유병 환자처럼 움직여 라면을 끓였다. 라면은 싱크대 위 선반에 가득 쌓여 있었다. 끓인 라면을 식탁에 놓고 먹는데 그 자리에 먹다 남은 라면이 놓여 있었던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것은 언제였을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을까? 아니면 꿈이었을까? 모든 것이 흐릿했다. 생각은 도중에서 툭툭 끊어지고 끊어진 생각은 달아나 버려 다시 잡기 어려웠다. 라면을 몇 젓가락 집어 먹는데 그의 입에서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입안에 라면을 가득 문 채 울었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네가 사람이냐? 그 목소리는 어디서 들리는 것일까? 막연해서 꿈인 듯했지만 선명해서 꿈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그는 소리 질렀다. 그의 말은 울음에 묻혔다.

    방을 얻을 계획은 없었다. 잠을 자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잠은 다른 세상에서 자게 될 거라는 예감이 그의 내부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곳에 오기 전 그는 몇 년간 살던 방을 비웠고, 그동안 그의 몸을 가려 주던 몇 벌의 옷과 넝마 같은 이불을 버렸다. 그날은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날이었다. 다친 허리와 다리가 아직 불편해서 그는 걷거나 움직일 때 몸에 힘을 주지 못했다. 그는 지쳤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병원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던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의 삶에 아무런 미련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특별하고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절망이나 좌절과는 달랐다. 가끔 죽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만큼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생각하면 몸이 떨리고 무서웠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생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을, 그 마음이 크면 클수록 생에 대한 의지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절망도 분노 못지않은 에너지라는 것을,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는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생에 대한 미련이 한 줌이라도 남아 있으면 죽지 못한다는 것을, 생에 대한 미련이 한 줌도 없이 사라진 완벽한 무기력의 순간 비로소 알았다.
    특별히 부지런하거나 성실하다고 자처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애쓰며 산 것 같은데 밑바닥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한때 그와 성인 피시방을 같이 운영했던 윤은 그의 씀씀이를 탓했다. “돈이 들어오면 들어온 대로 다 쓰냐? 그럼 돈이 안 들어올 때는 안 써야 할 거 아냐. 근데 넌 그때에도 들어올 걸 예상하고 쓰잖아. 들어올 게 없어도 쓰고 보잖아.” 그는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 억울해서 내가 명품을 사냐, 룸살롱을 다니냐, 하며 항의했다. 동업자였던 윤은, 비교할 걸 해야지, 우리 주제에 무슨 명품이며 룸살롱이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몇 달 후 윤은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다며 자기가 댄 보증금을 빼내어 떠났다. 윤의 몫을 채우느라 빚을 얻었는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손님이 끊어졌다. 성인 피시방이라니, 피시 보급률이 인구수를 상회하는 데다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나 몇 번의 클릭만 으로 포르노를 쉽게 다운할 수 있는 세상에 성인 피시방이 뭐야, 하고 혀를 끌끌 찬 사람은 그의 가게에 가끔 들르던 손님이었다. 나름 단골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자기 생에서 그때가 그나마 나았던 거라고 그는 회고했다. 몇 달 더 버티다 문을 닫았을 때 늘어난 빚은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어 있었다. 빚 독촉을 받으면 빚을 갚기 위해 이자가 더 높은 빚을 냈다. 이 일 저 일 한다고 했지만, 그가 버는 돈은 그가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빚 무서운 줄 알아야지, 지나친 채무는 고통의 시작입니다, 그런 격언 몰라? 라는 말은 거의 협박조로 연체금 상환을 독촉하는 대부업 직원이 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발버둥은 수렁의 진흙을 뒤집어쓰게 했다. 대리운전을 하러 나간 첫날 사고를 내서 두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됐을 때, 그에게 대리운전이라도 해보라고 자기 삼촌 회사를 소개해 준 중학교 동창이, 너같이 재수 없는 놈은 없을 거야, 라고 말했다. 그 동창은 다섯 명이 작당해서 벌인 커닝에 그 혼자 걸려 일주일 정학 맞은 옛날 일을 끄집어냈다. 그를 보호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기억을 불러내 신나게 떠벌리자 그는 참지 못하고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을 발로 찼다. “그런 이야기를 왜 해? 재수 없게.” 쓰레기통에 들어 있던 음식물 찌꺼기가 친구의 바지에 붙었다. 동창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아, 진짜, 하고 짜증을 내더니, 너처럼 재수 없는 새끼가 있을까, 하고는 떠나버렸다. 그는 떠나가는 친구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 친구가 떠나면 자기에게 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재수 없는 새끼, 라는 말이 그의 귀에서 웅웅 울렸다. 보호자가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사실이 이제까지의 그의 삶에 대한 판결문처럼 들렸다. 외로움이 살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핸드폰 주소록을 뒤적거리다가 자기에게 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절감했다. 몸의 회복과는 상관없이 그는 점점 어두워지고 침울해졌다. 어떤 관심도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한시도 그를 놓아 주지 않던 생활에 대한 걱정과 돈에 대한 염려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걱정과 염려가 삶에 대한 의욕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것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감정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티끌만큼의 원한도 절망도 없는 철저한 무기력이 그를 찾아왔다. 병원에서 그는 의식이 없는 환자처럼 누워서만 지냈다. 방전된 핸드폰을 충전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의 몸을 나무토막처럼 굴리거나 짐처럼 싣고 물리치료실을 오갔다. 병실을 나설 때 그는 거의 유령처럼 보였다.

    그 강을 목적지로 정하고 집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거기 와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는 무엇에 끌려온 것처럼 느꼈다. 어쩌면 그곳에 이르기 위해, 그곳에 이르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그를 이끄는 힘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는지 모른다. 그는 강가에 앉거나 누워 있었다. 그곳에서 그가 한 일은 앉거나 누워서 건너편을 물끄러미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눈길이 그쪽으로 가 있었을 뿐 무엇을 보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며칠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병실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때 자주 멈춰 있던 이름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몇 번 그 이름을 누를 뻔했다. 그러나 다른 힘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그가 정학을 맞을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아무도 그를 보호해 주러 오지 않았다는 동창의 기억은 사실이었다. 그 기억은 그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이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호되게 야단을 쳤을 뿐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창피해했고, 자기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애물단지 취급을 했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화가 났을 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이틀이나 사흘 집에 들어가도 그를 찾지 않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음식점 일이 한눈팔지 못할 정도로 바빠서라고 했지만, 아들에게 신경 쓰는 것을 한눈파는 일로 표현하는 어머니의 말은 사춘기 아들의 마음에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의 가출은 습관이 되었고, 마침내 어머니가 주방장과 살림을 합친 사실을 알게 된 열다섯 살에 집을 나온 그는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에도 몇 년에 한 번씩, 주로 명절날 잠깐씩 얼굴을 보이기만 했다. 그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창피해하지 않거나 애물단지로 여기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그는 언젠가 사정이 너무 급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에게 돈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긴 한숨과 불만 섞인 한바탕의 훈계 후에 그가 부탁한 금액의 절반을 송금했다. 그때 들은 어머니의 훈계가 대부업 직원에게 들은 협박보다 더 고통스러웠으므로 그는 자신의 무능을 한탄하고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마지막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을 때 왜 그 이름 앞에서 마음이 오락가락했을까? 그 완전한 무기력 상태에서 왜 어머니가 떠올랐을까? 전화할 수만 있다면 마지막을 지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러니까, 마지막을 지연시키기를 원하는 마음이, 어떤 미련도 다 벗어버린 철저한 무기력 상태, 라고 간주했던 그 상황에서도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 질문에 아니라고, 단호하게 고개를 젓지 못했다. 그것은 이상한 예감이고, 아슬아슬한 염원과 같았다. 그 예감과 염원은 실패했다. 그런데 무슨 미련이 그를 이곳으로 데려다 놓은 것일까? 그는 미련한 자신을 탓하며 창피해하며 어떤 기대도 없이 강변에 앉아 건너편을 노려보았다. 생각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의식의 반은 거의 물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과 같았다.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를 발견한 사람은 마침 경비정을 타고 그곳을 지나가던 순찰대원이었다. 그곳은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는 구간이었다. 경비정이 경고음을 울리며 다가갔으나 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빨리 나가세요.”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순찰대원이 목까지 물에 잠긴 그를 붙잡아 끌어올렸지만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것처럼 태연했다. 순찰대원은 그 사람이 술에 취했거나 약을 먹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경비정을 강가에 정박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는 5분도 되지 않아 도착했다. 그러나 물에서 나온 사람은 차에 타려고 하지 않았다. 구급대원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구급대원은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야 하고, 그러려면 지구대든 파출소든 가는 것이 좋겠다고 거듭 말했지만 그 사람은 손을 내저었다.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도 말을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답하지 않았다. 구급대원과 순찰대원은 목소리를 낮춰 의견을 나누었다.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하고 구급대원이 말했다. 순찰대원이 말을 이어받았다. “왜냐하면 여기는 수심이 깊고, 수영이 금지된 곳이고, 낮에는 괜찮지만 밤이 되면 기온이 떨어지고, 어쨌든 여기는 출입금지구역, 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구급대원이 몸을 다 가릴 수 있는 큰 타월을 건네고 돌아갔다. 순찰대원은 그에게 술을 마셨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순찰대원은 집이 어디냐고 다시 물었다. 그의 시선은 강 건너편을 향해 있었다. 순찰대원은 그가 바라보는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물결이 건너편을 향해 출렁거렸다. 설마 여기서 저기로 걸어서 건너려고 했다는 거야? 순찰대원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향해 피식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 다음, 구급대가 아니라 파출소에 연락을 해야 했어, 하고 중얼거렸다. 순찰대원이 파출소에 연락을 취하고 있는 동안 그는 정신을 차린 듯 일어나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물이 흥건했다. 당황한 순찰대원은 통화를 하면서 달려갔다. “잠깐 기다리세요. 파출소에서 사람이 올 거예요.” 그 사람은 파출소에서 왜 사람이 온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순찰대원은 그 사람을 붙잡고 일단 파출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파출소에 가서 뭐든 이야기하세요. 도와줄 겁니다.” 순찰대원이 말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 갈 겁니다.” 그가 입을 열어 분명한 의사를 표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순찰대원은 일단 파출소부터 가야 한다고 다시 말했다. “지금 데리러 오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러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순찰대원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로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났다. 그럴 때는 되도록 상대방의 사정을 알려고 하지 말 것. 알게 되면 무슨 행동인가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불편해질 테니까. 몸에 붙은 처세술이 그가 할 행동을 가르쳤다. “괜찮겠어요?” 순찰대원은 그의 안색에서 괜찮지 않은 것을 확인했지만 상관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그는 큰 타월을 원피스처럼 걸치고 터덜터덜 걸어갔고, 순찰대원은 붙잡지 않았다. 괜찮은 것 같지 않은데,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뒤뚱거리며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조금씩 멀어지면서, 멀어지는 만큼 희미해져 가는 그 사람이 불안해 보였지만 그는 순찰대원으로서 자기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곳을 벗어났다.

    그녀는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자기 안에서 일어났던 혼란스러운 감정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내부에서 설명할 의무를 가진 그녀와 설명을 들을 권리를 가진 그녀가 나뉘어 싸웠다. 설명할 의무를 가진 그녀가 의무 이행을 회피하기 때문에 그녀는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 교묘한 회피는 외부의 간섭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의 동생인 ‘골목부동산’의 팀장은 산책에서 돌아오는 언니의 모습이 보이자 가게 문을 닫고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돼지등뼈찜이 든 플라스틱 통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언니의 팔짱을 끼고 걸으며, 뼈밖에 안 남았다는 둥, 밥이 보약이라는 둥, 나이 들수록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는 둥 수다스럽게 지껄이다가 갑자기 그 말을 했다. “근데, 언니. 2층 말이야, 닮지 않았어?” 그녀의 가슴 안쪽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애써 회피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합성한 사진 같은 부자연스러운 이미지, 그리고 영철이. 그녀는 영철이를 발견하지 않으려고 합성 사진에 골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탄성을 질렀으나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은 언니의 벌린 입만 볼 수 있었다. 동생은 자기 입을 때리는 시늉을 했지만, 곧 어떤 종류의 사명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누르고 있던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런 거 공연히 쉬쉬하고 피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언니 상담하는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잖아. 직면해야 한다고. 그래야 살지. 언제까지 죄인 노릇 할 건데? 언제까지 죽은 사람처럼 살 건데? 며칠 전에도 영철이한테 갔다 왔지? 그거 영철이도 원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앞만 보고 빠르게 걸었고, 동생은 갑자기 걸음이 빨라진 언니의 팔을 잡고 따라 걸으며 말을 이어 갔다. “오늘은 나도 말을 좀 해야겠어. 그래, 슬프지. 인정하기 힘들고. 미칠 것 같고, 그렇지. 나도 그래. 그래도 일어난 일이잖아. 일어난 일에 대해 왜? 왜? 하면 뭐 해? 이거 그 상담사 선생님도 한 말이잖아. 왜? 하고 자꾸 과거의 동굴 속으로 돌아가 숨지 말고, 이제 어떻게 할까? 하고 미래를 설계하라고. 그만 하면 됐다, 할 만큼 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얼마나 해야 할 만큼 하는 거겠어? 아무리 해도 할 만큼 할 수는 없지. 그러니까 계속해.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하자고. 영철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지금 언니가 하는 것 말고 영철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걔가 언니가 죽기를 바라겠어? 근데 언니는 그때 이후로 산 적이 없어. 내 눈에는 그렇게 보여.” 동생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동생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언니의 걸음도 빨라졌다. 언니보다 키가 작은 동생은 한 손에 돼지등뼈찜이 든 쇼핑백을 들고 다른 손으로 언니의 팔을 붙잡고 걷느라 잰걸음을 해야 했다. 집이 있는 골목을 지나쳐 엉뚱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지만 언니나 동생이나 그걸 의식하지 못했다. 이제 동생은 멈출 수가 없었다. 어두운, 무덤 속과도 같은, 과거의 동굴에서 언니를 빼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녀를 북돋웠다. “그 사람 봤을 때 기분이 진짜 이상했어. 그날 바로 언니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언니 기분이 영 아닌 것 같아서, 눈치 보느라 못 했어.” 동생은 그 사람을 언니의 집으로 데리고 가게 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 방 두 개짜리 집을 보여주고 오는데, 어떤 사람이 커다란 샤워용 타월을 몸에 걸치고 터벅터벅 걸어오더라고 그녀는 말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타월을 걸친 것이 아니라 그냥 헐렁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고 운동화도 젖어 있었다. 걸음걸이도 좀 불안하다고 그녀는 느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렸지만 그 사람은 그런 건 의식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의 불안한 걸음이 그녀의 가게 앞에서 멈췄다. “물론 우연이었겠지. 하지만 왜 그런 우연이 하필 내 앞에서 일어났을까?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몸이 굳는 것 같았어. 나한테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 같은 거야. 그 사람이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한 건 아니야. 근데 그런 기분이 들었어. 왜인지는 몰라. 사람이 입으로만 말하는 건 아니잖아.” 그녀는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그 눈길이 ‘골목부동산’의 간판에 멈춰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진 순간 그녀는 더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순순히 그녀를 따라 들어왔는데,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보여준 인상으로 볼 때 의외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장은 특별한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깨달은 그녀는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내가 왜 그 사람을 데리고 들어갔겠어? 그 사람은 또 왜 나를 따라 들어왔겠어? 이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야?” 그는 그녀가 따라 주는 물을 두 잔이나 마셨다. 그녀는 냉장고 안의 두유와 조각 케이크를 꺼내 주었고, 그는 그걸 다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 붙일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손님과 상담을 하다가 돌아보았을 때 그는 소파에 앉아 졸고 있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떨어뜨린 채 졸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녀는, 세상에 참, 어쩌면, 하고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그때까지도 언니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그녀는 불편하게 잠든 남자의 까칠한 얼굴을 지켜보기만 했다. 월세방을 구하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나가 방을 보여주고 들어왔을 때 그 사람이 눈을 뜨고 물었다. 잠을 잘 수 있는 방이 있을까요?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입에서, 있지, 있어요, 하는 말이 튀어나왔어. 영철이가 찾아온 건가, 그런 생각이 왜 들었을까? 그 애가 쉴 곳이 필요하구나, 그런 마음이 왜?” 그는 며칠 잠을 잘 곳이면 된다고 했고, 그녀는 딱 맞는 곳이 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녀는 자기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했다. “바로 그 사람 데리고 가면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리를 보던 언니 표정 잊을 수 없어.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그냥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잖아. 언니도 한눈에 알아본 거지, 그렇지 않아? 그래, 어떻게 못 알아볼 수가 있겠어.” 동생은 언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언니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동생은 말을 멈추지 않았고, 언니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마침내 달리는 것처럼 되었고, 동생은 언니의 팔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흡사 도망가듯 저만치 앞서 가는 언니를 향해 소리쳤다. “같이 가, 언니.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빨라.”

    그녀는 강을 따라 걷다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다. 강은 여전히 흐르지만 얼기설기 엮은 철조망이 길을 가로막아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그는 그곳에 여전히 잘못 합성된 사진처럼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가 집을 나간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이상해할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2층은 언제나 조용했다.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전에 잠깐 머뭇거렸다. 그녀의 입술이 무슨 말인가를 할 것처럼 달싹였지만 실제로 무슨 말이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 몸을 돌렸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도중에 뒤를 돌아본 것은 조금 전에 그를 그곳에서 보았다는 사실이 갑자기 의심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그 사람이었을까? 키 큰 풀들만 살랑거릴 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확인하기 위해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몇 걸음 걸었다. 그때 강물을 가르며 경비정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녀는 경비정에 탄 사람이 큰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다. “어이, 또 당신이야? 거기 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위험해요, 위험해. 빨리 나가요.” 경비정 위에 서서 남자가 새를 쫓는 것 같은 손짓을 했다. 그가 그곳에 실제로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이 반가웠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만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경비정 위의 남자가 뭐라고 투덜거리더니 경비정의 엔진을 껐다. 강가에 닻을 내리고 뛰어내린 순찰대원은 여러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남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순찰대원의 손에 잡혀 일으켜 세워지는 그는 허수아비 같았다.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벌써 몇 번이야, 진짜. 정말 짜증나네.” 순찰대원은 그의 허리를 잡고 경비정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그의 저항의 몸짓은 순찰대원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너무나 잘 전달되었다. 그녀는 쿵쿵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가슴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녀는 강물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잠깐만요.” 순찰대원은 그녀가 다가올 때까지 동작을 멈추고 기다렸다.왜요? 하는 표정이 적나라했다. 그녀는 그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물었다. 순찰대원은 그녀를 위에서 아래까지 한번 훑어보고는, 일단 파출소로 데려갈 거라고 했다. “여러 번 경고했는데, 아무래도 사고 칠 것 같아서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는 혹시 이 사람, 알아요? 하고 물었다. 순찰대원에게 허리를 잡힌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출입 통제 지역인데,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데, 자꾸 여기를……. 이 사람 어디 사는지 알아요?” 이번에도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찰대원은 잠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그럼 이 사람 집에 연락을 좀 해달라고 물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대답했다. 순찰대원은 수첩을 꺼내 들고 인적사항을 적었다. 그녀는 자기 이름과 주소를 불러 줬다. “당신 이름은?”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받아 적은 순찰대원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고 느꼈다. 이름이요, 이름, 하고 순찰대원이 볼펜으로 수첩을 탁탁 칠 때 그녀는 그 사람이 자기 가슴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영철이, 최영철이에요.” 최영철, 이라고 따라서 발음하며 순찰대원이 수첩에 이름을 적었다. 전화번호는? 하고 묻자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전화번호를 불러 줬다. “여기 못 나오게 하세요. 부탁이에요.” 그 말을 남기고 순찰대원은 배에 올라탔다. 곧 부르릉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경비정이 앞으로 나가면서 큰 물살을 뒤로 밀어냈다. 강물이 금방이라도 넘어와 발을 적실 것 같았다. 강물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자.”

 

 

 

 

 

 

 

 

 

 

이승우
작가소개 / 이승우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1981년 계간지 《한국문학》으로 등단. 『생의 이면』, 『지상의 노래』, 『캉탕』 등의 장편소설과 『사랑이 한 일』, 『모르는 사람들』, 『미궁에 대한 추측』 등의 단편집이 있음. 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 등 수상.

   《문장웹진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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