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타임 외 1편

[신작시]

 

 

드림 타임

 

 

김해자

 

 

 

    당신은 운전 중이시군요 하루 열다섯 시간, 대체 무엇이 당신을 계속 깨어 있게 하나요 당신 뇌 속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빛은 무력했다 암막텐트 안에서도, 자고 싶어요, 저를 밧줄에 꽁꽁 묶어 동굴 속으로 내려 줘요, 느티나무가 있던 돌각담에 올라 노란 꽃을 꺾어 주던 아홉 살이 되어 그 오월 푸르던 날 오동나무 잎새를 타고 흐르던 초생달 배를 타고 잠 속으로 흘러가고 싶어요 갯바위에 붙어 은 바다를 들이켜고 바다를 내쉬며 순하게 붙어 자는 거북손이나 군복이처럼 가시가 품은 노란 성게알 수북 담아 사랑하는 입에 넣어 주던 굳은살 박인 수저이고 싶어요 그러다 서로에게 곯아떨어지는 잠꼬대이고 싶어요

 

    엔진이 과열되었군요, 도시처럼 꺼지지 않는 불빛, 과다한 각성이라고나 할까요, 회복 불가능한 비대칭의 뇌로 진입했습니다, 질주가 운명인 운전대를 놓으세요, 자, 하나 둘 셋 넷 명부전에 들듯 숫자를 셉니다 자율신경이 무너졌어요(자율이란 말, 인간은 어디까지 자율적일 수 있을까요),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차에서 빠져나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화학분자 몇 결합했을 뿐인 위대한 물질, 알프람과 디아제팜이 당신을 드림랜드에 초대할 거예요, 신호가 약해지고 있는 게 느껴지시나요, 변비에 걸린 지성을 치료하기 위해선 약간의 향정신성 약물이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정신으로 향한다는 말이 온전한 정신을 일컫나요), 당신은 당신이 되기 위해 이제 먼 길을 돌아가야 할 겁니다 야생염소와 인간 사이를 동굴과 절벽 사이를 곰과 총 사이 초목과 벌레 사이를

 

    야만은 고정되었지요 페이지만 달라질 뿐 공포와 불안이 압도하는 어둠 한가운데서 잠시 눈을 뜨면 관들이 지나가고 지폐와 책을 태워 몸을 데피는 자막이 지나가고 실눈을 떠도 보이는 전쟁터, 굶고 있습니다 떨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로울러에 팔다리가 짓이겨지고 셔터에 머리가 끼고 있습니다, 구제할 길 없는 포스트모던한 문명, 뉴런들의 신호가 잘못 전달된 겁니다, 다 잊으세요, 스크린 위에 맺힌 환영입니다, 멀어지고 있어요, 신호가 끊어지고 있어요, 차례차례 셔터를 내린 듯 천억 개, 우리 은하계 별들과 같은 숫자의 뉴런들이 꺼지고 당신은 세계와 단절되는 데 기어이 성공할 겁니다, 행간에 숨은 적막이 방울방울 검은 포도알처럼 드리워진 얼음나라, 받들어 모실 왕도 사장도 없는 땅속에 든 신민들 속에서, 당신의 지나친 지성이 드디어 정지했군요, 축하드립니다 분리되었던 당신 뇌의 칸막이가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곰가죽 둘러쓰고 곰이 된 당신께 총을 흰두루미라 부르는 인간들이 지나가고 밥공기를 둥근 것이라 부르며 애쓰지 않고도 매가 공중에서 태어나고 먹고산다는 말을 논다고 재잘거리는 참새들이 떼로 찾아왔다, 배고프면 곰의 새끼발가락을 빨아먹었고 목마르면 발바닥을 핥았다 숲을 집과 나뭇가지가 있는 곳이라 재잘대는 산비둘기와 화약을 검은 쌀가루라 부르는 미개인이 찾아와 내가 바로 당신입니다, 최초의 인간은 시와 음악으로 이야기했지요, 털가죽을 쓴 당신이 나고 당신을 잡아먹은 내가 당신이지요, 뒷소리가 앞소리를 뒤쫓는 푸가의 멜로디 속에서 당신은 시큼한 멜론 냄새가 풍기는 품에 안겨 파도처럼 노래하며 잠드네요 바다처럼 춤추며 새근거리네요 까마귀쪽동백 이파리처럼 단정하고 갸름하게 갯까치수영 흰꽃처럼 맨드르하게 갯메꽃 땅채송화처럼 텐트 바닥에 납작 붙어서

 

 

 

 

 

 

 

 

 

 

제비원 미륵불

 

 

 

 

    저 자는 얼매나 혼쭐나는 꼴을 지켜보았기에
    천 년을 한결같이 입 다물고 자고 있나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노래하고 싸우다 뒤엉켜 자는
    민가들 지붕 위에 우뚝 서
    미동도 없는 저 미륵불이라는 화상은
    얼매나 곱디고운 자씨慈氏들을 보았기에
    천 년을 한결같이 미소 짓고 있나

 

    엊그제 작은 솔씨 받아 공동산에 던졌더니
    조리기둥이 되었구나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엊그제 서까래 눕히고 대들보 세워 에라 성주로구나
    터주신 모시고 막걸리 몇 잔 마셨더니 워너 워워나 넘자
    논둑 따라 꽃상여가 지나가네 워와리 넘자 넘어 백 년도 못 채우고
    땅속으로 들어가네 천 년의 집으로 이사 가네
    천 년 갇힌 돌 속에서 걸어 나온 솔씨 자씨
    김이박 안한최 천년만년 무명씨들
    한바탕 잘 놀다 가네

 

    해 뜨면 워리 워리 소 몰고 밭 갈고 이랴 이랴 논 갈고
    달 뜨면 타닥타닥 길쌈하고 콩 고르던 베옷의 여인네
    내동댕이쳐진 탄식과 한숨으로 금이 간 집구석들
    갑을병정이 사라지고 무기경신이 왔다들 스러져 갔네
    금세 다녀오마던 자씨들은 돌아오지 않고 무성한
    기다림의 밤들이 앞섶에 붉은 주름 몇 그어 놓았구나
    야윈 솔잎마다 이슬방울도 슬어 놓았구나

 

    입동 지난 앞산이 붉은 저고리
    속고쟁이조차 벗어 던지는데
    봄날 송홧가루 냄새 상기도 풋풋하네
    탄식에 닳은 돌가루,
    바위여 미륵이여, 돌의 입을 열어라
    당신을 기다리기엔 오십 년도 길었다네 에라 만수
    당신을 품기엔 백 년도 하세월이겠네 에라 대신이여

 

 

 

 

 

 

 

 

 

 

김해자
작가소개 / 김해자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집에 가자』, 『해자네 점집』, 『해피랜드』 등을 펴냄.

 

   《문장웹진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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