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외 1편

[신작시]

 

 

뱀파이어

 

 

강지혜

 

 

 

    부모들은 자신이 얼마나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반면 예술가들은 자신이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오열하는 오른 가슴을 퍽퍽 내리치며
    왼 가슴으로 너에게 젖을 물리는
    달빛조차 없는 밤

 

    너의 목덜미에
    잔인하고 거룩한 송곳니를 내리꽂지

 

    나는 뱀파이어야
    네 피를 마시며
    이 고통을 견뎌낼 거야

 

    나는 갈증으로 죽고
    네 피로 되살아난다
    너는 허기로 나를 먹고
    나에게 네 피를 준다

 

    우리는 죽고 죽음에서 일어나고 죽고 죽음에서 일어나고를 반복하는
    뱀파이어
    우리는 삶에서 죽음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뛰는
    뱀파이어

 

    서로를 더 깊이 맛볼수록 한 뼘 더 자유롭고 한 뼘 더 비참해진다

 

    너를 죽이고 너를 살리며
    너를 먹이고 너를 죽이며
    나의 어머니와 나에게서 나와 내 딸에게로 전해지는
    저주 받은 영생

 

    내 심장에 말뚝을 박아 줄래?
    떠오르는 태양 앞에 나를 묶어 줄래?

 

    하지만

 

    혈관에 네가 가득해서
    깊은 어둠 속에서도 나는 빛이 나지
    모든 감각이 열리고
    능력의 한계가 사라지지
    그러니 죽을 수가 없지

 

    안타깝게도
    오욕되게도

 

    불멸하지

   *  낸시 휴스턴, 〈소설과 배꼽〉에서

 

 

 

 

 

 

 

 

 

 

행주를 삶는다

 

 

 

 

    행주가 무심한 얼굴로 끓여지는 중이다
    저 신성한 냄비 속에서

 

    어느 때고 행주가 삶아지는 경로는 비슷하다
    남편이 아내에게 행주에서 쉰내가 난다고 타박을 하거나
    남편이 아내에게 행주가 이게 뭐냐고 성질을 내거나
    남편이 아내에게 행주 좀 내다버리라고 비아냥거리거나

 

    행주는 뜨거운 물속에서 제 물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미세한 탈락을 막을 수는 없다
    신이라 할지라도

 

    아내는 끓는 냄비 옆에서
    나쁜 페미니스트*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는다
    아내는 무엇을 준비하는가

 

    행주의 오염인자들이 끓는 물속으로 사라지면서
    아내의 독서가 깊어지면서
    남편의 무감각이 짙어지면서
    이 집의 모든 무생물에 생명이 깃든다

 

    손닿지 않는 곳에 쌓인 먼지
    가구와 벽 틈에 박힌 양말 한 짝
    제멋대로 켜졌다 꺼지는 센서등

 

    생명이 넘치고
    고독이 넘친다

 

    아내는 행주가 끓어 넘치지 않도록 가스불을 조절하고
    식탁 위에 노트를 펴고 무언가를 적는다
    무중력 의자에 누워 낄낄거리는
    남편의 뒷덜미를 보며

 

    무중력
    무방비
    무력감

 

    아내는 무방비라는 글자에 몇 번이고 동그라미를 친다

 

    너는 나를 왜 믿는 걸까
    내가 보이긴 할까

 

    이 집이
    끓고 있다

   *  록산 게이
   **  레베카 솔닛

 

 

 

 

 

 

 

 

 

 

강지혜
작가소개 / 강지혜

2013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내가 훔친 기적』과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공저)』가 있다. 2021년 3월 에세이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출간 예정.

 

   《문장웹진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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