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나 시 써야 해 외 1편

[신작시]

 

 

아, 맞다 나 시 써야 해

 

 

김은지

 

 

 

    김치볶음밥을 한 그릇 다 먹고
    또 한 그릇 더 펐는데
    반 그릇 남겨서
    뚜껑을 덮어 두었다

 

    나는 왜 김치볶음밥을 이토록 좋아하는 걸까
    그것이 지나온 삶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면

 

    관공서에서 받은 작은 일
    단체 카톡방,
    예술가들이 참가자들에게
    오늘의 예술 활동을 제시했을 때

 

        봄님이 나갔습니다

 

    완수 후
    입금은 완수 후라고 하셨지
    우리들은 모쪼록 작은 일이 완수되기를 바랄 뿐이야

 

    사진을 찾아 달라는 사람
    파일을 확인해 달라는 사람
    동행이 있냐고 묻는 사람

 

    나는 모두 대답해 주고 시를 쓸 생각

 

    전에 했던 말이 이 말이냐는 사람
    모르겠다가 입버릇인 사람
    진짜 모르겠냐니까 조금만 모르겠다는 사람
    업무 추가를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

 

    사람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가
    왜 저러는 거지
    이건 뭐야
    이 세 가지는 같은 말인데

 

    옛날 작가들의 이름을 외우며
    커피를 마시네

 

    메일 아래에 첨부된 이전 메일에는
    “작가님을 너무 번거롭게 해서 어쩌죠”

 

    사람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가
    다 이유가 있겠지
    저분도 너무 고생이다
    이 세 문장도 같은 말

 

    밤이 깊어 날짜 바뀌고
    읽고 싶던 시집의 비닐을 뜯어
    제목에 끌린 시를 몇 편 읽고 있다가
    아, 맞다 나
    시 써야 해

 

    반 그릇 남은 김치볶음밥

 

 

 

 

 

 

 

 

 

 

밥을 먹는다

 

 

 

 

    할 얘기가 있어 만난 저녁

 

    잘 닫혀 있는 수저통의 뚜껑을 다시 닫고
    엠보싱 티슈가 들어 있는 휴지곽을 아까 자리로 밀어 놓는다
    귀퉁이가 녹은 플라스틱 컵의 갈색

 

    물수건으로 손을 또 닦은 후
    숟가락을 든다
    한 번도
    눈은 마주치지 않으며

 

    밥을 다 먹고
    지하철 반대 방향
    각자의 길을 갈 때
    기둥 너머 플랫폼
    창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
    어느 것도 바라보지 않는 시선

 

    이런 시를 써 왔을 때
    누가 말했다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있었어요

 

 

 

 

 

 

 

 

 

 

김은지
작가소개 / 김은지 @ipparangee

2016 실천문학 신인상 시 부문 당선. 시집 『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가 있다. 『코니의 소중한 기억』,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등의 책을 출간하였다.

 

   《문장웹진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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