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잡기

[단편소설]

 

 

참새 잡기

 

 

정한아

 

 

 

    그날 새벽, 나는 악몽을 꾸다가 깼다. 휘가 혼자 깊은 연못으로 뛰어 들어가는 꿈이었다. 안 돼, 손을 휘젓다가 일어났는데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휘는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거실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우석과 그의 어머니 목소리였다. 사방이 고요해서 속삭이는 소리가 전부 다 귀에 들어왔다. 그들은 연휴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매번 처가에 들르지 않아도 되는 거니, 라고 어머니가 묻자 우석은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애 엄마는 친정이 없는 셈인걸요.”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집 안에 빵 굽는 냄새가 풍겼다. 허기와 앙심이 동시에 일어났다.
    우석의 말대로 나의 본가는 오래전에 산산조각 났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가기 전 해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화장터의 재가 식기도 전에 재혼했다. 아버지는 나를 할머니에게 떠맡기고 새로 맞은 부인을 집에 들였다. 그 여자와 헤어진 뒤에는 또 다른 여자를 들였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힘으로 10대와 20대를 보냈고, 30대가 된 후에는 상담사와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시간과 돈을 깨나 날려야 했다. 우석은 그 모든 일을 알고 있다. “없는 게 더 나은 가족도 있어.” 그것은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왜 그의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 박혔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석의 가족은 연휴 때마다 국내외로 함께 여행을 다녔다. 결혼 후에는 나도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올해 추석에는 바닷가에 인접한 단독 펜션으로 예약을 잡아 놓은 참이었다. 우리는 추석 전날 시댁에 도착했다. 휘는 다음날 오는 사촌형들을 기다리느라 목이 길게 늘어졌다. 종일 텔레비전을 보다가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종내는 지겨운지 다 그만두었다. 밖으로 나갈래, 내가 묻자 아이는 얼른 나를 따라나섰다. 근방의 소나무 밭을 한 바퀴 돌고, 버들치가 많이 산다는 연못을 들여다보고 나니 역시 더 할일이 없었다. 나는 아이와 같이 축대에 앉아 하릴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참새다.”
    아이의 발치에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참새 잡아 줄까?”
    “엄마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요?”
    휘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나는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덫으로 쓸 만한 소쿠리와 막대기, 실을 찾아 가지고 나왔다. 소쿠리를 막대기로 괴어 놓는데 휘가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이러면 참새가 온다고요?”
    “여기 미끼가 있잖아.”
    나는 과자 부스러기를 근처에 뿌려 놓았다. 아이와 같이 축대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새가 오는지 살펴보았다. 휘는 손으로 입을 막고 킥킥 웃었다.
    참새는 나타나지 않았다. 10분, 20분이 지나도록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땅은커녕 하늘 위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없었다. 휘는 진작 흥미를 잃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홀로 쪼그리고 앉아 텅 빈 트랩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과자 부스러기 주변으로 개미 떼만 새까맣게 몰려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밤새 새덫을 그대로 두고 잊었다. 나는 서둘러 방에서 나왔다. 우석이 웃으며 잘 잤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새덫은 텅 비어 있었다. 막대기에 매달린 실을 잡아당기자 소쿠리가 풀썩 주저앉았다. 근처에 늘어져 있던 개들이 몸을 세우며 짖었다. 자갈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진회색 suv가 도착했다. 시누이 가족이 온 것이다.
    시누이 부부는 휘에게 작은 낚싯대를 선물했다. 바다낚시를 갈 거라고 했다. 혼자 노느라 지루했던 휘는 사촌형들을 만나 신이 났다.
    여행지로 출발하기 직전 나는 우석을 구석진 곳에 데리고 가서, 아무래도 함께 가지 못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갑자기 왜?”
    “아버지한테 가려고. 할머니가 보고 싶어.”
    우석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4년 전 나는 아버지와 마음을 상하는 일이 있었고, 그 후 왕래 없이 지냈다. 명절에도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우석은 그동안 그 일에 대해 한 번도 자세히 묻지 않았다.   
    “알았어. 나도 휘와 함께 갈게.”
    “아니, 아버지가 부담스러워하실 거야. 이번엔 나 혼자 다녀올게.”
    우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게 자동차를 가져가라고 했다. 자신과 휘는 누나의 차를 타겠다고 했다.
    휘는 여행에 내가 함께 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바다낚시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이는 금세 손을 흔들고 사촌들과 달려갔다. 우석만이 우두커니 서서 내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떠났다.

 

    나는 4년 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신호가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나예요, 라고 말하자 안다, 고 대답했다. 할머니를 뵈러 갈 거라고 하자 당혹스러울 정도로 한참 말이 없더니 우석과 휘도 오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혼자 간다고 했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했다. 하루 자고 올 거예요, 라고 말하자 그래라, 하고 대답했다.
    나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국도를 달리면서 지난 4년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가장 큰 사건이라면 월급 약사 생활을 청산하고 개인 약국을 연 것, 그리고 그 약국을 폐업한 것이었다. 당시 나는 10년간 월급 약사로 모은 돈에 대출까지 한껏 받아 시내의 사거리 1층 약국 자리를 얻었다. 위층 이비인후과에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꽤나 유명세를 탄 원장이 있었다. 주말에도 문을 여는 병원과 합을 맞추어 휴일도 반납하고 쉼 없이 일했다.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 시절 휘에 대한 기억은 뭉텅뭉텅 잘려 있다. 단어만 겨우 말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른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식이었다.
    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아니었다. 사내아이치고는 조용하고 세심한 축에 속했다. 혼자서 책을 읽거나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다. 약국에서 사납게 소리 지르는 애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 아이는 저런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휘는 베이비시터와 함께 자랐다. 기계처럼 일과를 수행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불가능할 정도로 분주한 나날이었다. 늘 충혈 된 눈에 반수면 상태인 나를 보고 우석은 ‘이렇게까지 해야 되느냐’고 자주 물었다.
    우석은 대학 졸업 후 시부모님이 운영해 온 전선 공장을 이어받았다. 부모님 때 저가 중국산이 밀려들면서 건설 현장을 잠식하다시피 했지만 그만큼 국내 경쟁업체도 빠져나가 국산품으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꼴이 되었다. 우석은 이러저러한 특수를 누리며 작은 규모의 회사를 실속 있게 꾸려 나갔다. 시부모님은 그에게 일을 물려준 후 지방으로 내려와 소나무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었다. 매 끼니 앞장서 식사 준비를 하는 시아버지와 근방의 노인대학에서 음악 강사로 봉사하는 시어머니 – 두 사람은 기분이 내킬 때마다 블루스 춤을 추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건 너무 과시적이지 않나’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은 평온해 보이기만 했다. 나로서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물론 할머니의 집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위기였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두운 침실, 쓰고 텁텁한 약 냄새, 환기가 안 되어 답답한 공기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본디 병약한 사람이었다. 하루 한두 차례 어린 나를 침대 옆으로 불러 끌어안아 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지막 해에는 자주 울었고, 나는 그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업을 한다고 사방으로 돌아다녔고, 여자들을 만났고, 할머니의 돈을 써댔다.
    할머니는 서울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그녀는 일찍이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봤다. 할아버지는 이름만 있는 존재였다. 그는 죽는 날까지 집 안에 틀어박혀 바둑을 두거나 책을 읽기만 했다. 할머니는 상관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상관하는 존재는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만이 할머니가 직접 싼 도시락을 먹었고, 입시고사에 할머니와 함께 동행했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검정색 포니 자동차를 선물 받았다. 다른 자식들 – 고모와 삼촌이 있었다 – 의 질투와 원망으로 2층 양옥집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버지가 사업에 연달아 실패하고, 인생이 점점 늪으로 빠지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될수록 할머니의 편애는 노골적으로 변했다. 한평생 백반과 비빔밥을 팔아 벌어들인 돈, 주변의 모두가 부러워하던 크고 작은 부동산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아버지의 사업자금으로 사라졌다. 내가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을 때는 이미 가세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자연히 고모와 삼촌이 나를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할머니에게 아버지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었지만 할머니는 듣지 않았다. 홀로 남은 할머니는 여러 차례 파산 직전까지 가 닿았고, 무일푼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할머니는 칠순이 다 되도록 식당을 그만두지 못했다. 나는 노인이 아니다, 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돈을 버는 사람, 자기 삶의 수단을 가진 사람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고.
    지난 연말 약국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할머니의 삶을 자주 복기했다. 위층 이비인후과 원장이 다른 지역으로 스카우트되어 떠나고, 새로 온 원장이 같은 층에 자신의 딸이 약사로 있는 약국을 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두어 달 사이에 벌어졌다.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약국에서 종일 약상자를 정리하고 또 정리하면서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팬데믹이 왔다. 비타민과 유산균을 사러 오던 단골들마저 씨가 말랐다. 하염없이 빠져나가는 월세와 회수할 길 없는 권리금 때문에 애를 태우다 결국 약국 문을 닫은 것이 지난 5월이었다.
    나는 휘가 태어난 후 전적으로 양육을 맡겼던 베이비시터를 해고했고, 아이와 같이 집에 들어앉았다. 그것이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쓴 근간에 내게 일어난 일이었다.

 

    목적지 근방이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이 나온 뒤에도 인가 한 채 없는 산길이 하염없이 계속되었다. 나는 핸들을 붙잡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급하게 오느라 마땅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신경 쓰였다. 정 안 되면 봉투에 돈을 담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선물보다 현금이 훨씬 낫다는 것이 할머니의 지론이었으니까.
    세월을 이긴 듯 정정하던 할머니도 칠순을 넘기자 눈에 보이게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돈 계산이 틀리기 시작하자 장사를 더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식당을 정리해서 강원도에 땅과 공장을 사들였다. 그리고 할머니와 이곳에 정착했다. 건강식품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했는데 그 후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길 끝에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더니 마을 입구가 보였다. 남색 점퍼를 입은 키 큰 남자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였다. 집 근처에는 차를 댈 곳이 없다고, 마을회관 공터에 주차하라고 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아요.”
    “그러냐.”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그는 내 짐 가방을 들고 앞서 걸었다. 배추밭 사이로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이 나 있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곳은 전부 다해서 20호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다. 후미진 골목 끝에 다다르자 나란히 서 있는 집 두 채가 보였다. 아버지는 그중 오른쪽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의 텃밭에 길게 웃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나왔을 때, 나는 흠칫 놀랐다. 할머니가 너무 노쇠해 보였던 것이다. 염색을 그만둔 새하얀 머리카락 때문인지, 눈에 띄게 구부정해진 허리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할머니가 80대가 되었기 때문인지 몰랐다. 할머니는 손을 뻗어 나를 안았다.
    “잘 왔다.”
    쿰쿰하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아버지만을 향했던 할머니의 편애가 어떻게 내게 이양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내가 바란 적 없던 행운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데려온 나를 오래전 잃었다가 다시 찾은 막내딸처럼 받아들였다. 직접 침대와 책상을 골라 방을 꾸며 주었고, 천둥이 치는 밤이면 무서워하는 내 옆에 함께 있어 주었다.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자식들도 누려 보지 못한 호사였다. 나는 티켓 없이 일등석에 오른 사람처럼 황송했고, 어떤 식으로든 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급했다. 아버지가 개입되지만 않는다면 그런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개입되었다. 늘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너 수제비 좋아하지?”
    아버지는 할머니가 아침부터 김치 수제비를 끓여 놓았다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신을 벗고 들어갔다. 거실 바닥이 놀랄 만큼 차가웠다.
    할머니는 안방 아랫목에 나를 앉혔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명절의 가족 간 감염 예방에 대한 지침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우석과 휘가 미열이 있어 함께 오지 못했다고 거짓말했다. 할머니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4년 전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기로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네 약국은 좀 어떠냐?”
    할머니가 물었다.
    “5월에 문을 닫았어요.”
    “왜?”
    “코로나잖아요.”
    아버지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내뱉었다.
    “대기업도 문을 닫는다고요.”
    할머니는 아깝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나는 말없이 냉면기에 가득 담긴 수제비를 먹었다. 수제비 국물은 싱겁고, 뜨겁고, 조금 비렸다. 멸치 육수가 잘못된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뒤 아버지는 내게 공장에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를 따라 일어섰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립식 판넬 공장이 있었다.
    아버지는 철문에 매달린 자물쇠를 열고 들어갔다. 마른 한약재 냄새가 났다. 500평 이상 되는 공장 안에 보이는 것은 종이 상자들 – 테트리스처럼 겹겹이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엄청난 양의 상자들뿐이었다. 상자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원재료를 수입하여 한방차와 천연 약품, 건강 증진 식품을 조제하고 판매한다고 했다. 올해 초에 수입 일정이 지연되어 마음을 졸였지만 천연성분으로 만든 손세정제가 소위 대박이 났다고, 자신만은 코로나 덕을 봤다고 했다.   
    “이리 와라, 커피나 한잔 마시자.”
    아버지는 건물 한쪽 구석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기역자로 붙어 있는 책상 앞에 의자를 두 개 끌어다 놓고,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자 분말 커피를 타서 내게 건네주었다.
    “네 할머니 때문에 힘들다.”
    뜬금없이 아버지는 그런 말을 꺼냈다.
    “노인네가 최근에는 아무 의욕도 없고, 종일 누워만 있어. 나이 들어 그러고 있어 봐라 퍽퍽 늙는 거야. 퍽퍽. 너도 봤지? 나까지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나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네 고모와 삼촌은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지만, 사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나야.”
    고모는 결혼 전까지 할머니의 집안 살림을 맡아 했고, 자기만의 시간 따위는 가져 보지 못했다. 삼촌은 명문대를 나온 재원이었지만 집안에서 유령처럼 존재감이 없는 막내였다. 할머니는 그들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누굴 만나 결혼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온통 아버지 차지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피해자요?”
    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노려보았다.
    “너는 참 여전하구나. 나를 매양 나쁜 사람 취급해.”
    그 말은 4년 전 일을 떠올리게 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다 마신 종이컵을 구겨서 버리더니 그만 나가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아버지는 집 앞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당시 나는 출근 중 교통사고를 당해 일을 쉬고 있었다. 경미한 사고였으나 뼈가 부러졌고, 회복이 더뎠다. 일을 쉬면서 개국 생각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집 근처 카페로 나오라고 했다. 발 깁스를 하고 있으니 집으로 오시라고 해도 극구 밖으로 불러냈다. 나는 발을 절룩거리며 그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는 내 꼴을 보고 치료는 잘 받고 있냐고 묻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용건을 꺼냈다. 지금 내 약사 면허가 어느 약국에 걸려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분간 일을 쉴 작정이라면 면허증을 좀 빌리자고,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 그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건 불법이에요. 적발되면 면허 정지라고요.”
    “뭘 그렇게 빡빡하게. 공짜로 쓰겠다는 거 아니다.”
    그는 목이 타는지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한 달에 200 어떠냐. 이 돈 주면 내놓는다는 사람 많아. 딸이니까 먼저 묻는 거야. 기회를 주는 거라고.”
    “그 기회 다른 사람 주세요.”
    나는 조용히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와서 손을 씻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셨다. 잠시 후 휘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왔고, 우석이 퇴근했다.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날 저녁부터였다. 할머니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면허증을 넘기라고 했다. 마치 물을 떠오라거나 책을 이리 가져오라고 말하는 투였다. 그 일은 아버지의 마지막 사활이 걸린 것이라고, 내가 돕지 않으면 그는 영영 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자식이 부모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그런 식으로는 자손들이 절대 잘 될 수가 없다고 휘에 대한 저주 비슷한 말도 했다. 할머니는 집요했다. 내가 승복할 때까지, 늦은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우석이 들을까 봐 두려워 발을 절룩거리며 화장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 일이 잘못되면 나는요? 나는 어떻게 해요?”
    내가 호소했을 때, 할머니는 냉랭한 침묵을 지켰다. 그때 깨달았다. 그녀가 나를 받아들인 것은 나를 ‘아버지에게 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인정하든 않든 나는 그 사랑에 빌붙어 살아온 존재라는 것을. 그 후로는 할머니의 전화도 아버지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지막에 내게 몇 차례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회신도 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주변은 아까와 달리 소란스러웠다. 옆집 마당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열댓 명이 넘었다. 노파 홀로 사는 집인데 명절 때마다 자식들이 저 난리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남자들이 솥과 화로를 설치하자, 여자들이 일사불란하게 고기를 삶고 구웠다. 아이들이 그 사이로 공을 차며 뛰어다녔다. 곧 술판이 벌어졌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왕왕 울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는 고모, 삼촌과 완전히 끝이 났다. 그들은 아버지와 할머니를 상속법과 관련하여 고소했다. 재판은 이리저리 늘어지면서 몇 년째 상고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와중에 그들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얼마 안 되는 농지 – 개발 제한 구역인가에 묶여 처분도 못 한다는 그 땅을 양도 받기 위해 재작년인가 이곳 집에 찾아온 적이 있다고 했다. 말 한 마디 없이 도장만 받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어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도 되냐고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듣는 데서 그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랬더니 네 고모가 나를 돌아보는데…… 그 표독스러운 얼굴을 너도 봤어야 해. 꿈에 나올까 봐 무섭다.”
    할머니는 말없이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주된 일상인 것 같았다. 나는 그녀 옆에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담요를 덮는 손길이 느껴졌다.
    해질 무렵 옆집에서 고기와 술을 가지고 왔다. 아버지는 마스크를 쓰고 나가서 지금 시국에 무슨 잔치냐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할머니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초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오늘 문을 여는 식당이 있겠어요?”
    아버지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나는 휴대폰으로 ‘추석 당일 문 엽니다’ 태그를 단 일식집을 찾아냈다. 시내까지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일식집은 규모가 꽤나 컸다. 넓은 홀에 손님은 두 팀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주문을 받으러 온 젊은 여자에게 코로나 때문에 참 힘들죠, 라고 말을 걸었다. 여자는 맹한 얼굴로 웃기만 했다. 가격에 비해 별 맛을 느낄 수 없는 초밥이었다. 할머니는 두 개만 먹고서 배가 부르다고 젓가락을 놓았다.
    나는 오래전 할머니 식당에서 먹었던 김밥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가면 주방 아주머니가 특식으로 싸주는 김밥이었는데 별다른 재료도 안 들어간 그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다 먹고도 입맛을 다셨다고, 종종 그 김밥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 여자는 작년에 죽었어.”
    할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주방 여자 말이다. 아들을 셋이나 의사로 키웠는데 당뇨로 죽었다.”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갑자기 그곳에 한시도 더 앉아 있을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사케를 시켜도 되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도 마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벚꽃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그 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술이었다. 몸이 따뜻해지자 모든 게 좀 더 견딜 만해졌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계산을 하려 하자 아버지가 막아섰다. 나는 순순히 물러섰다.
    “지은아, 나 겨울 코트를 한 벌 사줘라.”
    거리로 나와서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데,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코트를 한 벌 사줘. 좋은 것으로.”
    “네, 사드릴게요. 그럼요.”
    나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코트를 사주고 싶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비싼 것으로, 눈앞에 있다면 얼마든지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문을 연 가게는 한 군데도 없었다. 술집 한두 군데 말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 거리가 죽은 것처럼 고요했다.
    할머니는 차에 오르자마자 잠들었다. 아버지는 집에 오는 동안 고모, 삼촌에 대한 욕을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자기들끼리는 모임도 하고, 여행도 가고, 단톡방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안에 두 일가가 모여 희희낙락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잠자코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속으로는 그것이 당연한 결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그들에게 너무했다. 자식들을 낳아 나란히 세워 두고 모두 빤히 보는 앞에서 한 사람의 입에만 포도알을 넣어 주었다. 나머지는 계속 입을 벌리고 기다리다가, 입 속에 먼지가 차고 거미줄이 쳐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끝끝내 주린 배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 지경이 되면 누구라도 병든다. 원한이 생기는 법이다.
    할머니는 집에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첫 차와 막차 승객을 모두 받기 위해 온종일 식당 문을 열고 나가 있었다. 한 솥 가득 밥을 짓고, 매일 여덟 가지가 넘는 반찬을 만들면서도 정작 식구들의 끼니는 한 번도 챙기지 못했다. 그녀는 평생 배차 시간에 쫓겼다. 도로 위에 사는 것과 다름없는 인생이었다. 늦은 밤 집에 올 무렵이면 할머니는 완전히 소진되어 있었다. 그런 때면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할머니는 부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침대까지 걸어가서 무너지듯 주저앉곤 했다. 그녀의 허리에 채워져 있던 돈주머니. 그 안에서 그 집의 모든 필요가 나왔다. 그녀는 한 번도 주머니를 꺼뜨린 일이 없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이자 가장이었다. 다만 어머니로 실패한 순간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졌을 뿐이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내게 한 잔 더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쟁반에 맥주 두 병과 땅콩을 담아왔다. 그때까지 옆집은 파장을 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사람들의 소리가 더욱 크게 담을 넘어왔다. 소음이 시끄러웠지만 그 소리마저 없었다면 아버지와 마주 앉아 있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말없이 맥주만 마셨다. 그러다가 문득 휘가 몇 살이지, 라고 물었다. 여덟 살 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요즘 애들이 제일 불쌍하다고 뜻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약국 일이 그렇게 되어 안됐지만 아이가 크는 사이 잠시 일을 쉬는 것도 좋을 거라고, 남편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고, 이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빠져나갈 나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뱅뱅 돌고 나서야 그는 어렵게 본론을 꺼냈다.
    “그래, 네 자격증 말이다. 그걸 이제 빌려줄 생각이 있니?”
    나는 기가 막혀 그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굴을 마주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아뇨, 라고 말했다.
    “나는 네가 그 이야기를 하러 온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얼떨떨하게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길 왜 온 거냐?”
    “그러게요.”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따라했다.
    “내가 여길 왜 왔을까요.”
    아버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실 공장을 움직이지 못한 지 반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거래처는 줄줄이 도산하고, 직원들은 떠나고, 수입처는 갑자기 말도 안 되게 단가를 높여 제품 출시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는 – 지난 세월 익히 들어 온 이야기였다.
    “그래도 손 소독제 말이다, 그건 정말 재미를 봤어. 라이센스만 있으면 다른 라인도 살릴 수 있어. 의약품 승인만 받으면 떼돈을 벌 수 있단 말이다. 코로나 시대 아니냐.”
    달빛 아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부진을 만회할 수 있단 말이다. 나는 자신 있어.”
    얼룩이 묻은 남색 점퍼를 입은 그는 막무가내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기도 했고, 빈약하고 초라한 노인 같기도 했다. 술을 더 마시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정말 맥주 딱 한 병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얼른 자라, 아버지는 먼데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옆집에서 한 여자가 아이에게 야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몇 신데, 종일 휴대폰만, 어떤 인간이 되려고, 쓰레기 같은, 쓸모없는…… 여자가 속사포처럼 몰아붙이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소리가 휘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았다.

 

    약국 문을 닫고 처음에 나는 그간 못 한 일들을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직접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 집 안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는 일, 휘의 숙제를 봐주는 일……. 나는 아침에 일어나 시간표를 만들고 그에 따라 움직였다. 몸이 바쁘니 잡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 번도 내 것으로 누려 본 적 없던 부엌에서 느끼는 만족도 있었다. 아이에게 간식으로 핫도그를 만들어주고, 그것을 다 먹는 동안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모든 게 가짜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집 안에서 동동거리며 돌아다니는 나 자신에게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매일 베갯잇을 삶아 햇볕에 말리는 내가, 직접 생선의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하는 내가, 휘에게 끝도 없이 긴 책을 읽어 주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가짜의 나를 진짜의 내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난 몇 년 새 휘는 눈에 띄게 덩치가 커졌다. 이제 무거워서 무릎에 앉힐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 애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개처럼 짖거나 고릴라처럼 포효하는 흉내를 냈다. 조용히 있다가도 갑자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거나, 막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는 뜻이었다. 제발 그 소리 좀 내지 마, 내가 애원하면 더욱 그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이에게 무슨 장애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더럭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휘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다. 평범하고 낯선 아이.
    밥을 먹다가 휘의 앞니가 벌어진 것을 보면 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옆에 들러붙을 때는 뭉근한 체온을 참을 수 없어 뒤로 물러났다. 무엇보다 그 애의 발작적인 웃음소리를 견딜 수 없었다. 마치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사람의 체온, 숨소리를 느낄 때처럼 불쾌한 감각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나는 아이를 향해 억지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매 순간이 히스테릭한 연극 같았다. 시간이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흘렀다. 나는 5분마다 한 번씩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그 이유였다. 시시각각 분열되는 나를 참을 수 없었다.
    우석이 출근하고 나면 휘의 점심을 준비하고, 숨겨 두었던 술을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휘는 컴퓨터로 수업을 듣고, 게임을 하고, 만화를 보았다. 내가 간섭하지만 않으면 온종일이라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주로 조리대에 서서 술을 마셨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허락했다. 오후쯤 되면 온몸의 감각이 아득해지면서 팔다리를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내가 소파나 침대에 늘어져 있는 사이 휘는 아침에 만들어 놓은 식은 밥과 과자를 먹었다. 가끔 아이가 내 몸을 흔들거나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해가 진 뒤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그리고 주변을 수습하는 수순이었다. 휘는 그 생활에 그런대로 만족했다. 아이는 비밀을 잘 지켰다.
    우석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추석 바로 전 주였다. 이전 베이비시터가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나는 그 여자가 휘를 만나러 집에 왔었다는 것도, 아이가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도 몰랐다. 여자는 소리 없이 집에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본 후 돌아갔다. 그 여자는 우석에게 휘가 안쓰럽다고, 내가 걱정된다고 했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복직이었다.
    우석은 그 일에 대해 짧게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빚을 떠안고 약국 문을 닫은 뒤 내가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갖지 못했던 것이 스트레스를 키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필요한 것이 다만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일회성이 아닐 가능성, 지속적으로 아이를 방임하고 술에 취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의심이 든다고 해도 곧장 떨쳐버렸을 것이다. 불안은 그의 영역이 아니었다.
    우석은 내게 홀로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있는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내게 일말의 언어가 남아 있었다고 해도, 그에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어디선가부터 잘못되었다고, 나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을 후회한다고.

 

    옆집이 마침내 모든 소란을 멈춘 것은 새벽 한 시 무렵이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다. 집 안에 충분한 공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텐트에 들어가자 주변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나는 술을 좀 더 찾기 위해서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반주를 즐기는 사람이니 어딘가 소주나 맥주가 좀 더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 안 어디에도 숨겨 놓은 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늘진 구석마다 먼지와 누더기, 곰팡이가 손에 잡힐 뿐이었다. 벽 곳곳에 금이 간 자국, 검게 부식된 얼룩이 보였다. 내일 이대로 풀썩 주저앉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고 오래된 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예전 할머니의 집이 떠올랐다. 여섯 개의 방과 2층의 테라스, 연못이 딸린 정원이 있던 집. 밤에 모든 방의 불을 밝히면, 대양을 항해하는 거대한 함선처럼 보였던 집. 온 동네의 시기어린 눈길이 머물던 집. 마지막에 그 집은 빨간 딱지와 경매로 공중분해 되었다. 할머니는 빈손으로 내쫓겨나다시피 했다.
    장사꾼이었던 할머니가 어째서 아버지한테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나는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할머니만큼 용의주도하지도, 계산이 빠르지도 않았다. 도리어 그는 눈에 띄게 수가 얕은 사람이었다. 모든 이가 비웃는 그 유약함과 무구함을 할머니는 불쌍히 여겼다. 기이하게 편향된 연민이었다. 할머니 당신도 배가 기우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늘 집에 와서 한 차례 앓는 소리를 하고 돈을 챙겨갔다. 그가 다녀간 후 할머니는 늘 지치고 망연자실해 보였다. 자신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머니는 내게 자주 말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할머니는 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다. 나는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할머니가 인기척을 느끼고 나를 돌아보았다.
    “가려고?”
    “아니오, 아침 먹고 갈 거예요.”
    “애가 기다릴 텐데 어서 가야지.”
    할머니는 휘가 얼마나 컸는지 궁금해 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아이의 최근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수영장에서, 놀이터에서, 자장면을 먹으면서,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 달려가면서, 미끄러지면서 웃는 아이의 모습. 그것은 내가 두려워할 필요 없는 박제된 순간의 아이였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
    할머니는 휘의 사진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뭔가를 기억하는 듯, 뭔가가 떠오르는 듯 했다. 어쩌면 할머니는 당신의 아이들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당신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던 때. 그녀가 내 나이였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언젠가 내가 그녀처럼 노화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 역시도.

 

    아침 식사는 내가 준비했다. 국을 뜨는 할머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묻자, 아버지는 염려할 것 없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파킨슨병이 아닌가 해서 검사를 받았는데 별 이상 없단다. 3개월에 한 번씩 추적 검사만 받으면 돼.”
    아버지는 조금 침울해 보였다.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두통이 심하다고 했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그 집 텃밭의 잡초를 뽑았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내내 나를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노란색 패딩 파카를 입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오래전 내가 입던 옷이었다. 그 옷을 입고 대학 면접을 치르러 가고, 남자친구와 처음 겨울 바다에도 갔다. 그 옷은 까마득한 과거에 내가 벗어버린 허물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그 옷에 깃든 정령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떠날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짐을 꾸리고 집을 나서기 전에 나는 할머니에게 돈이 든 봉투를 건넸다. 코트는 좋은 것으로 사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을 하면서 문득 다시는 할머니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나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몇 년간 할머니를 외면했던 것, 결국 코트를 사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겨울이 올 때마다 할머니를 그리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일과 상관없이 나는 살아갈 것이다. 휘가 죽는 것 말고 나를 뿌리째 뽑아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할머니와 무관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날 아침 휴대폰으로 할머니에게 휘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전날 만들었던 새덫을 찍은 사진들이 연달아 나왔다. 나는 할머니에게 그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저한테 참새 잡는 법을 알려줬잖아요.”
    “내가?”
    할머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뒤져 봐도, 감감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는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나는 장례식 내내 울지 않았다. 어머니가 너무 아픈 모습만을 봤기 때문인지, 슬픔이 극에 달하면 그런 건지, 단지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아무 감정도 없이 메마른 마음으로 상을 치렀다. 아버지는 숨 가쁘게 집안 살림을 정리하고, 내 짐을 꾸렸다. 앞으로는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될 거라고 했다.
    할머니의 집은 그전에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었다. 크고 황량한 집이었다. 내가 정원에 서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버티자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더니 홀로 떠나버렸다. 할머니가 나와서 내게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내가 울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가 나를 쓸모없는 가구처럼 해치워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유일하게 나를 염려하던 사람, 가냘픈 팔로 온 힘을 다해 나를 끌어안던 사람, 죽기 전까지 내게 미안하다고 사죄하던 사람은 이제 세상에 없었다. 사라졌다.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흐느껴 울었다. 할머니는 나를 달래지 않았다. 뭐라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서 있기만 했다. 두 시간쯤 울자 차츰 눈물이 그쳤다. 할머니는 그만 집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으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무슨 대결을 하듯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 땅만 바라보고 있으니 목이 떨어질 것처럼 아팠다. 발 옆으로 참새들이 날아와 종종거렸다. 할머니가 가만히 날 보더니 참새 잡아 줄까, 물었다.
    할머니는 집에 들어가서 형광 연두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가지고 나왔다. 그것으로 덫을 만들어 참새를 잡았다. 막대기로 소쿠리를 괴어 놓았다가 새가 미끼를 먹으러 온 사이 순식간에 가두어버린 것이다. 참새 다리에 실을 묶은 할머니는 그것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 손에 담긴 작은 새 – 보드라운 깃털, 세차게 뛰던 심장박동, 숨죽이고 있다가 갑자기 파닥이는 날갯짓 –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해가 저물 무렵 나는 할머니를 따라 집에 들어갔다.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새 요에 누워 잤다. 방에서 낯선 냄새가 났는데 너무 피곤해서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잠이 나를 낚아챘다. 푸르르, 진저리가 쳐질 만큼 길고 눅진한 잠이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는 모든 게 괜찮아져 있었다. 전날 잡은 참새가 떠오른 나는 정원으로 달려 나가 보았다. 연두색 소쿠리가 하늘을 향해 뒤집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전날 밤 새를 풀어 주었다고 했다.
    “잘하셨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나의 교활함 – 생명력에 감탄했다. 할머니도 나의 그런 면을 인정해 주었다. 그녀가 나를 딸로 받아들인 것은 바로 그 이유라는 걸 나는 안다.
    연두색 소쿠리 이야기를 하자, 할머니는 그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 곳에서 뭔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반짝이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그렇듯 그 순간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전날의 산길을 훨씬 능숙하게 운전했다. 처음 계획과 달리 나는 우석과 휘를 태우러 가기로 했다. 한나절을 달려야 도착하는 먼 거리였지만 내게는 바로 그런 길이 필요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릴 수 있는 멀고 먼 길.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에도 들르지 않고 계속 차를 몰았다. 어느 순간 차와 내가 한 몸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목적지까지 35km 남짓 남았을 때, 전화가 왔다. 휘였다. 아이는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했다. 전날에는 내내 허탕만 쳤는데 오전에 놀래미 몇 마리를 잡았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환희에 들떠 있었다.
    “아빠가 그러는데 크기가 너무 작은 것들은 놓아 줘야 한대요. 맞아요, 엄마?”
    “맞아.”
    “왜요?”
    “그래야 네가 편안히 잠들 수 있을 테니까.”
    “저는 원래 곰처럼 잘 자는데요.”
    옆에서 우석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정말 감사한 일이야.”
    휘는 한숨을 내쉬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말했다. 노을이 지면서 하늘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표지판을 올려다보았다. 서두르면 완전히 캄캄해지기 전 바다를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조금 늦어도 괜찮다. 흑암처럼 검은 바다라고 해도 그곳에는 여전히 솟구치고 부서지는 파도가 있으리라. 아이와 나란히 서서 파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정한아
작가소개 / 정한아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2016년 김용익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달의 바다』 『리틀 시카고』,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애니』가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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