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외 1편

[창작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이현승

 

 

 

    단체사진 속 움직이다 찍힌 심령사진 같은 얼굴 양치하다 말고 연습해 보는 수줍고 대담한 표정의 얼굴 새로 산 물건을 엉뚱하게도 코로 가져가 킁킁거릴 때의 얼굴 한 손으로 택배 상자를 들고 흔들어 볼 때 상자 속으로 거의 들어가 버린 표정의 얼굴 가령 제 전두엽을 노려보는 듯한 눈동자와 최대한 작게 오므린 입술 그것도 아니면 맹렬하게 손톱 끝을 갈거나 물어뜯는 얼굴 무의식적인 표정의 얼굴 남들은 다 아는 얼굴인데 나에게만 낯설고 생소한 얼굴 내가 모르는 내 얼굴 웃음기를 걷어낸 표정이 아니라 완전한 무표정인 얼굴 필라멘트가 나가버린 전구 같은 얼굴 잔인, 비열, 살기, 탐욕, 분노가 얼비치는 것 같은 얼굴 갑작스레 답을 궁리할 때의 순수하게 골몰한 자의 저 얼굴

 

 

 

 

 

 

 

 

 

 

지상에서 영원으로

 

 

 

 

    옥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 앞에서 생각한다. 영원은 창밖 하늘 끝 멀리 있지 않고 번지점프대의 낭떠러지처럼 발끝 바로 앞에 있다. 뛰어내리면 바로 도착한다. 그래서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지. 영원이란 무엇인가? 로드킬 당한 고라니가 달려오는 트럭의 헤드라이트에서 본 것?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문득 멈춰 뒷사람들을 도미노처럼 넘어뜨린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찾던 교통카드 같은 것? 그것이 무엇이든 영원에는 어떤 정지의 이미지가 있다. 급격하게 정지하는 열차 바퀴의 마찰음이 있다. 떨어지는 단풍잎이 팔랑 몸을 뒤집을 때 나던 빛의 신음 같은 것이, 몸이 없어서 시도 때도 없이 재생되는 망자의 음성 같은 것이, 삶이 끊긴 계단처럼 눈앞에 버티고 있을 때 나갈 수도 멈출 수도 없이 밀리고 있을 때 불쑥 들이닥치는 무엇이 있다. 운동력을 급격히 잃을 때의 관성과 쏠림이 있다. 수술 후 마취 깰 때 이 악물고 참아 보려 했지만 참을 수 없었던 한 시간 같았던 십 분처럼, 혹은 십 분처럼 흘려보낸 하루. 영원에는 표정이 없다.

 

 

 

 

 

 

 

 

 

 

이현승
작가소개 / 이현승

199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김춘수시문학상 수상. ​

 

   《문장웹진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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