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외 1편

[창작시]

 

 

종이

 

 

이기성

 

 

 

    밤이 오는 동안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어둠의 형상으로 녹아내리는 촛농처럼
    밤의 검은 입술을 빌려서

 

    당신은 창백한 의지를 만들고
    가벼운 신념을 만들었어요

 

    헐렁한 고무신처럼 그걸 신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철벅철벅 웅덩이의 물을 튕기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웅덩이의 물이 말라붙고

 

    다시 밤이 오는 동안
    당신은 무엇을 만듭니까?

 

    오래된 질문이
    촛농처럼 뚝뚝 녹아내리고 다시

 

    밤이 오는 동안
    검은 밤의 입술을 모아서

 

   봄비가 내리는 동안
    옛 애인이 늙어 가는 동안

 

    그것은 희게 굳은 얼굴로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당신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계속 말해야 한다. 무대 위의 광대처럼 밤의 원숭이처럼 말이다. 기쁨의 반대는 슬픔이라고. 그런데 왜 슬픔인가. 슬픔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출렁이는 검은 강 저편 뜨겁게 손을 흔드는 저것은 누구인가. 늙은 광대와 원숭이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우리는 슬픔의 젖은 입술을 벌려 무엇을 애타게 찾는가. 시간의 검은 바늘로 꿰매 놓은 슬픔의 가죽부대가 찢겨져 펄펄 끓는 노을처럼 목구멍에 흘러내릴 때까지, 계속…… 말해야 한다. 슬픔의 저편에서 끔찍한 아름다움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이기성
작가소개 / 이기성

《문학과사회》 등단. 시집 『불쑥 내민 손』, 『동물의 자서전』 외.

 

   《문장웹진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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