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기수

[제38회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 아동문학 부문 장원🏆 〈동화〉]

 

 

백발의 기수

 

 

최영희

 

 

 


🔊 수상자의 목소리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가을 끼 발표회가 시작됐다. 강당 무대 단상 위로 붉은 색 막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다음 차례인 우리는 강당 뒤 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동선을 확인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앞 무대가 끝났는지 박수소리와 함께 함성소리가 들렸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자, 하던 대로. 알았지? 긴장하지 말고. 파이팅!”
    댄스부 선생님이 주먹을 꽉 쥐며 응원해주었다.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가 자기 자리에 섰다. 막이 쳐 있는 뒤쪽이라 어두웠다. 잠시 뒤 주위가 조용해졌다. 우리 팀 소개와 함께 막이 서서히 열렸다. 박수소리가 들렸다. 이어 우리를 향해 밝은 조명이 켜졌다.
    “신기수 파이팅!”
    꽤 앞 쪽에 자리 잡은 건지 엄마 목소리가 내 귀에까지 와 닿았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를 잠재우듯 커다란 음악소리가 우리의 시작을 알렸다. 쇼는 시작됐다.

 

    개학을 앞두고 엄마가 염색을 해 준다며 화장실에서 나를 불렀다. 늘 하던 건데도 짜증이 밀려왔다. 얼마 전부터 속눈썹 몇 가닥까지 하얗게 변해버렸다. 속눈썹까지 하얀데 머리카락 따위 염색해서 뭐하나 싶었다. 방문을 벌컥 열고 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싫어. 속눈썹도 염색 해주던가. 안 해!”
    “아, 싫으면 관둬. 누군 염색하는 게 좋아서 하는 줄 아나. 아무튼 성질은.”
    엄마도 짜증이 난 것 같았다. 방문을 확 닫았다. 거울을 봤다. 방학 사이 흰 머리카락이 늘어난 것 같았다. 오른쪽 한 움큼. 그리고 오른쪽 속눈썹 몇 가닥. 그리고 희끗희끗 얼룩진 내 얼굴이 보였다. 나는 거울을 뒤집어 치워버렸다.
    ‘그냥 할 걸 그랬나?’
    후회해도 소용없는 후회를 잠깐 했다.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뭔가 창피했다. 염색한다고 아이들이 모르지도 않았다. 영원히 머리카락이 자랄 때 마다 염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 싶었다. 아이들 놀림거리. 까짓 거. 한 번 해주면 그만이다. 댄스부만 생각하자. 나는 학교에 가기 싫어질까 봐 일부러 생각을 돌렸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교실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인규가 시비를 걸었다.
    “오, 백발의 기수. 브릿지 염색 하셨나 봐? 한쪽만 하얗게?”
    “하지 마라!”
    내가 낮게 말했다.
    “뭐야. 염색했냐고 물어보지도 못하냐? 우리 엄마는 염색했는데 내가 딱 알아보면 좋아만 하던데.”
   “우리 엄마도.”
    인규 말에 인규 짝이 맞장구를 쳤다.
   “야, 염색한 걸 어떻게 알아보냐? 난 암만 봐도 모르겠더라.”
    또 한 녀석이 끼어들었다.
   “그게 다 관심이지, 관심. 쟤는 형님의 따뜻한 관심을 저렇게 몰라준다니까.”
    인규 말에 같이 말하던 녀석들이 키득거렸다. 무시하고 내 자리로 돌아서는데 윤시아랑 눈이 마주쳤다.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지만 별 수 없다. 나는 눈길을 무시한 채 자리에 앉았다. 내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시아의 눈    동자가 살짝 스쳤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댄스부로 달려갔다.
    “와, 기수 머리 염색 안 했네? 더 멋진데?”
    댄스부 선생님이 말했다. 진심이 아닐 게 빤한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번 가을 발표회 때 할 작품이야. 동영상 먼저 보자.”
    선생님이 동영상을 틀었다. 남자 일곱 명이 방탄소년단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선생님이 앞에서 직접 춤을 추면서 동작을 하나하나 끊어서 보여줬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열심히 춤을 췄다.
    “신기수, 너 진짜 잘 춘다. 이번 공연 센터는 신기수. 불만들 없지?”
    아이들 몇몇이 웅성거렸다. 아마도 센터는 잘생긴 애가 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고 있을 터였다. 나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 뒤에서 뭐라고 하던 말던 나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얼굴 말고 춤을 보게 할 거다. 우린 아이돌이 아니다. 우린 댄스부다.
    집으로 와서 곧장 댄스부 동영상을 켰다. 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춤 연습을 했다.
    어릴 때부터 머리카락 때문에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받았다. 소아백반증이라고 했다. 햇볕을 조심하라고 해서 밖에 나가 놀지도 않았다. 그래도 백반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백반증 부위는 점점 커져갔다.
    한참 춤을 추고 있는데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형이다. 형이 교복을 입은 채 들어왔다. 아직도 중학교 교복을 입은 형의 모습은 낯설었다. 말끔한 교복을 입으니 원래도 잘난 형이 더 잘나 보였다. 인정하기 싫은데 순간순간 형이 그렇게 보인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화가 치민다. 혼자만 잘생긴 형이 밉다.
    작년. 그러니까 형이 6학년이었을 때 우리 댄스부는 전성기를 누렸다. 형은 최고의 센터였다. 형의 인기는 엄청났다.
    형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 유명인사였다. 머리카락이 한 부분만 하얀 아이, 얼굴이 희끗희끗 얼룩진 아이, 엄청 잘생긴 형의 동생으로.
    사실 춤에 관심을 보인 건 내가 먼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춤보다 춤추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신기수, 춤추고 있었냐? 나도 좀 보자.”
    형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미쳤어? 형 앞에서 춤이나 추고 있게?”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 사춘기냐? 왜 그렇게 만날 사납게 말하냐, 형한테.”
    형은 내가 짜증을 내도 만날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그게 자꾸 나를 화나게 했다.
    “사춘기 아니거든!”
    나는 또 팩 소리치고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쾅 닫아버렸다.
    동영상을 다시 틀었다. 형이 알지 못하게 이어폰을 꽂고 동작을 크지 않게 하면서 다시 춤을 따라 췄다. 조금씩 동작이 내 몸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나는 자면서도 춤을 춘다. 꿈속에서도 춤을 춘다. 어떤 날은 형이랑. 또 어떤 날은 시아랑 함께.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우리 동작도 멈췄다. 엄청난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들렸다. 나는 정 가운데에 있었다. 조명 때문에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막이 닫히고도 박수와 환호성이 이어졌다. 심지어 앵콜을 외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우리는 무대 뒤에서 신이나 펄쩍펄쩍 뛰었다.
    “잘했다. 진짜 잘했다.”
    선생님이 촌스럽게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했다.
    밖으로 나오는데 무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박수를 쳤다.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하얀 머리. 기준 선배 동생이라며? 어떻게 선배보다 더 잘 추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누구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 옆줄에 있던 인규가 말했다.
    “야, 백발의 기수. 완전 미쳤던데!”
    인규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악의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인규보다 조금 앞에 있던 시아가 고개를 기웃하며 틈새로 나와 눈을 맞췄다.
    “기수야, 너 엄청 잘 추더라. 머리 염색하지 마. 그게 더 멋있어.”
    시아가 엄지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맞아, 맞아!”
    다른 아이도 말했다. 조금도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때 자리에 두고 갔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엄마랑 형이 보였다.
    “어, 형 어떻게 왔어?”
    “형 오늘 시험 봤잖냐. 끝나고 혹시나 하고 뛰어왔는데 딱 네 차례인 거 있지? 우와. 내 동생 진짜 멋지더라. 너밖에 안 보였어. 진짜야!”
    형의 잘생긴 얼굴이 여기서도 보였다. 교복 입은 모습이 이제야 내 눈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 거울모드로 나를 비췄다. 내 머리카락 한 쪽 부분이 하얗게 빛났다. 속눈썹 두어 개도 하얗게 빛났다. 나도 하얗게 웃고 있었다.

 

 

 

 

 

 

 

 

 

 

제38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수상작

구분 산문 아동문학(동화)
장원 박다은, 「지나가는 것」 오유경, 「미완의 영화」 안보라, 「친구까지 삼십 센티」
최영희, 「백발의 기수」
우수 김현진, 「달리기」 전앤, 「영화」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