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영화

[제38회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 산문 부문 장원🏆]

 

 

미완의 영화

 

 

오유경

 

 

 


🔊 수상자의 목소리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나는 동전 교환원이었다.
대학을 그만두고 한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게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몸이 겨우 들어가게 만들어진 부스. 허리까지 내려오는 투명 아크릴판. 얼굴 높이로 송송 뚫려 있는 구멍. 그 위에 손님들이 오가며 만들던 침 자국. 작은 책상 위 똑같이 쌓여 있던 일렬종대의 동전들. 지폐와 동전이 오고 갔던 반달모양의 창구. 혀를 내밀 듯이 미끄러져 들어오던 꾸깃한 지폐. 재빨리 밀어낸 동전의 탑. 속도를 못 이겨 쓰러지던 동전들. 동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 손가락을 훑던 축축한 손의 감촉들. 거스러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읽던 백년 묵은 소설들. 속삭이듯 들려오던 라디오 소리. 나의 노트, 노트, 노트. 뿌연 창을 통해 보이던 차와 사람들. 나와 외부가 유일하게 연결된 구멍에서 쏟아져 들어오던 햇살, 먼지. 그리고 거친 숨. 이런 것들을 열거하다보면 그는 말한다. 너의 청춘은 불운한 시대를 맞이했던 거라고. 어떤 이는 아버지를 잘못만난 탓이라고도 했다.
몇 수만에 어렵게 들어간 연극영화과였다. 어설픈 첫 단편영화를 찍었다. 기대와는 달리 교수님께 호평을 들었고, 동기들에게선 날선 시선을 받았다. 나는 내 앞에 투포환처럼 둔탁하게 떨어진 탁월이라는 단어를 툭툭 차며,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중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은 기울고 있었다. 거래처들 사이에 자잘하고 복잡한 빚을 지게 되었고, 해결할만한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 시점이었다. 그 중 한 채권자는 돈이 없다면 준비될 때까지 품삯으로라도 갚으라며 일꾼을 보내라고 했다.
정 안되면 그 집 딸이라도.
딸이라도.
오빠는 군대에 있었다. 엄마는 며칠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샜고,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임프(IMF)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학교를 쉬어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몇 친구들은 이미 제작비 마련을 위해 전공 수업을 빠지고 아르바이트에 전념하기도 했으므로, 이상할건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곳은 서울 근방의 세차장이었다. 사장은 아버지와 관련된 자동차 부품사업과 별개로 카센터와 대형 세차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새로 도입된 셀프세차장이었는데 동전을 넣으면 제한 시간동안 기계가 돌았다. 샤워-거품-헹굼-왁스로 이어지는 시간은 10분 내외. 각 코스마다 동전이 들었다. 내가 맡은 일은 지폐를 500원짜리 주화로 바꿔주는 것 이었다. 이미 입구에는 동전교환기가 여러 대 있었으나 사장의 의견은 달랐다.
동전 바꿔주는 아가씨가 있어야 세차장이 환해지지. 여직원이 있는 걸 알아야 기사들이 몰려. 만 원짜리는 기계가 바꿀 수 없잖아. 그럼 사무실로 들어와서 직접 돈도 바꾸고, 아가씨 엉덩이도 한번 쓰다듬고. 기분 좋아지면 방향제라도 하나 사고 그러는 거지. 사업이 쉬워? 음, 그래도 인물이 애비보단 낫네. 라며 그는 나의 위아래를 훑었다. 달팽이가 지나간 듯 점성이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나는 첫날 이 말을 들은 것만으로 아버지의 채무는 모두 변제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 했다. 아니, 오히려 넘쳤다. 내가 동경해왔던 영화의 세계는 현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 준 첫 장면이었다.
강렬한 인트로 이후 등장인물은 정말이지 다양했다. 지상에 존재하는 차종만큼,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이 오고 갔다. 일반 승용차부터 택시나 화물트럭, 학원버스도 있었다. 간혹 외제차를 몰고 온 연예인이나 야구선수도 보았다. 사장은 값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온 손님에게 짠돌이라며 킥킥 댔다. 그의 말대로 외부의 교환기를 이용하거나 창구에서 동전을 바꾸지 않고, 굳이 건물을 빙 돌아 사무실로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손에 지폐를 말아 쥐고 진열대에 있는 콤파운드나 왁스, 스티커 따위를 한참 보다가 나를 흘끗 보고 동전만 바꿔가곤 했다. 그러면 사장은 내게 왜 청바지만 입냐, 예쁜 치마라도 한 벌 사줘야겠다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마침 그는 여러 사업으로 바빴고, 대부분 자리를 비웠다.
몇 달이 지나자 내게도 차차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행이랄까,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장의 생각대로 다 음흉한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도 나도 아닌 전혀 다른 사람. 주변과 동떨어진 완전 모르는 자에게 무언가를 털어놓을 공간이 필요한 이들이 오곤 했다. 가장 자주 오던 사람은 택시기사였다. 남편의 병 때문에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허스키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여자로서 택시를 모는 게 어떤 것인지 나는 생생히 들었다. 과연 나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30대 초반의 전직 간호사였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결국 그만 둔 것인데, 아내는 아직 모르고 있다고. 어린 딸도 있는데 앞으로 어찌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매일 출근하는 척 차를 타고 나와 거의 하루 종일 세차장에 있다가 해질 무렵 돌아가곤 했다. 그의 차에는 점점 먼지가 쌓여갔다. 다른 이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여자가 있다고 했다. 트럭 아저씨는 그날 떼어온 생선이 다 팔리지 않아 내다 버리러 가는 길이었고, 50대의 가장은 트렁크에 번개탄을 싣고 다닌다고 중얼거렸으며, 한 청년은 먼 나라를 그리워했다. 그들은 돈 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많아 보였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정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억지로 하거나, 안 되는 걸 붙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현실과는 별개로 마음에는 각자의 다른 시공간을 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단지 동전을 바꾸러 온 사람들과 어떻게 그런 이야기까지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나에게 지폐 말고 다른 것을 주었고, 내게서 동전 외에도 어떤 것을 가져갔다.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20대 초반임에도 너무도 과분한 고백을 받고 있었다. 난 피에타의 성모상이라도 된 기분으로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묵묵히 동전을 내 주었다. 불과 몇 달 사이 인생을 통째로 알아버린 것 같았다. 모든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사장을 포함하여 모두 등장인물로 손색이 없었고 입체적이며 살아있었다. 나는 틈틈이 글을 썼다. 고치고 또 고쳤다. 그들의 이야기를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캠코더를 가져와서 한 명씩 인터뷰를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화면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흔쾌히 렌즈 앞에 서 주었다. 대강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나는 학교에 돌아가면 친구들과 꼭 영화로 찍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부풀었다.
그 후 난 그곳에서 2년간 더 있었다. 오빠는 제대하고 닥치는 대로 일했고, 엄마 역시 고군분투 중이었다. 내가 세차장에서 돌아온 마지막 날, 아버지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게 나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본인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부도로 생긴 짐을 너희들이 나눠드는 일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술병을 스스로에게 기울이며 극강의 아이러니한 장면을 연출한 아버지는 모든 책임이 다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걱정하는 듯 했다. 시간이 정지한 듯 아무것도 달라져 있지 않았고, 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또 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력서를 내밀면 언제나 반복되는 물음. 대학을 그만두고 한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동전교환원이었어요. 시대를 잘못 만났네요. 아버지를 잘못 만났던가. 아닙니다. 무능한 사람이나 시절 탓을 하겠죠. 가족들 탓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 탓도 아닌, 정확히 책임소재를 따질 수도 없고 따질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전교환이 나쁜 일도 아니고요. 누구든 젊다고 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먹거나 계획한 그대로 살수 없는 것 아닐까요. 그저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대면했던 것만으로 귀중한 경험이었어요.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면접관이 만족하면 그걸로 좋다.
동전 탑 뒤로 열린 반달의 창구에 아직도 필름이 돌아가고 있다. 내가 인터뷰 한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언젠가는 화면에서 볼 수 있을지. 밤마다 캠코더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리와인드.

 

 

 

 

 

 

 

 

 

 

제38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수상작

구분 산문 아동문학(동화)
장원 박다은, 「지나가는 것」 오유경, 「미완의 영화」 안보라, 「친구까지 삼십 센티」
최영희, 「백발의 기수」
우수 김현진, 「달리기」 전앤, 「영화」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