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자라,우리

[단편소설]

 

 

잘 자라, 우리

 

 

배지영

 

 

 

    바뀐 비밀번호 따위는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고작 세 번의 시도 끝에 알아냈다. 시시하게도 핸드폰 뒷자리 번호였다.
    비밀번호를 누를 때 안에선 개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캥캥 짖으며 잔망스럽게 현관문을 긁어대고 있었다. 들어가서 보니 요크셔테리어였다. 유난히 까만 눈깔을 가진 하얀 솜뭉치는 팔짝팔짝 뛰며 짖어댔다. 안에선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거실 한복판엔 빨래건조대가 놓여 있었다. 제대로 탁탁 털고 널지 않아서, 수건은 주름진 상태에서 굳어지듯 말랐고 바닥엔 마른 지 한참 지난 양말과 속옷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남자 팬티도 보였다. 화투가 그려진 요란한 빨간색 팬티였다.
    한쪽 구석엔 뜯어 놓은 택배 상자 서너 개가 놓여 있었다. 개껌과 개 옷, 케이지가 보였다. 개 영양제도 주문한 모양이었다.
    준비해 온 비닐장갑을 꺼내 양손에 꼈다. 걸을 때마다 솜뭉치가 계속 짖어대며 그의 발뒤꿈치를 물었다. 배를 발로 가볍게 걷어찼다. 캐캐캥 하며 나뒹굴더니 다시 발딱 일어섰다. 그러곤 맹렬히 짖어댔다. 그는 개를 화장실에 가두고 문을 닫았다. 안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못 보던 침대가 놓여 있었다. 레이스가 잔뜩 달려 있는 킹사이즈의 침대였다. 침대가 방을 채운 데다가 벗어 던져 놓은 옷들이 널려 있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 문을 열자 개는 튀어 오르듯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안방에 가뒀다. 그는 세탁기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예상대로 남자의 목장갑이 들어 있었다. 한 켤레를 조심스레 찾아 들어 올려 준비해 온 비닐 안에 집어넣었다. 주방으로 곧장 가서, 개수대에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과도도 하나 집어 들어 비닐에 넣었다.
    그는 나가려다 말고 다시 돌아섰다. 거실 구석에 놓인 초록색 소파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그곳에 벌렁 누웠다. 천장을 올려다봤다. 거실 천장의 엘이디등엔 먼지 자국이 보였다. 그것을 계속 노려보다가 눈을 감았다. 불빛의 잔상이 계속 남았다.
    그는 누운 채 팔을 두 눈에 꾹 댔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눈물이 날까 두려웠다. 곧이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랍과 걸어 놓은 옷, 가방을 뒤졌다. 현금 7만 원이 나왔다.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목장갑과 과도를 넣은 비닐을 메고 온 가방에 집어넣은 후, 밖으로 나왔다.

 

*

 

    승태가 “저기요.”라고 하자, 여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엄마라고 불러야지. 식당 아줌마도 아니고.”
    그 말이 승태에겐 용기와 기쁨을 줬다.
    “너 어렸을 때 살던 동네 기억나?”
    기억은 났지만 기억하고 싶진 않았다. 승태의 기억 속엔 ‘누나’라 불렀던 남자의 딸만 선명했다. 남자는 엄마의 동거남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남자가 딸이 있다고 하니까, 자신도 아들을 데려와야 셈이 맞는다고 생각한 것인지 몰랐다.
    엄마라는 여자가 나타나 보육원에 있던 승태를 데리고 들어간 집은, 단층짜리 적산가옥이었다. 또래로 보였던 여자 아이는 당시 다섯 살이었던 승태를 ‘아가’라고 불렀고, 승태는 ‘누나’라고 불렀다. 누나는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요구르트를 다 먹지 않고 남겨 승태에게 주었다. 한 모금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승태는 누나가 고마웠고 달게 마셨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바닥에 남아 있는 요구르트 병에, 누나는 집의 작은 뜰에서 귀뚜라미나 개미를 붙잡아 집어넣었다. 그러곤 승태에게 입구를 손바닥으로 꼭 막으라고 시켰다. 그걸 누르고 있으면 개미인지 귀뚜라미인지가 손바닥을 간질였다.
    엄마와 남자는 기억컨대 매일 싸웠다. 머리채를 잡고 이마를 벽에 찧었다. 엄마가 남자를 올라타기도 하고 남자가 엄마를 올라타기도 했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가끔은 레슬링을 하듯 뒹굴며 구르기도 했다. 옷을 안 입고 구를 땐, 누나가 그의 손을 잡고 다시 또 뜰로 나가 개미나 귀뚜라미를 잡았다.
    얼마 뒤 엄마는 그 집을 나갔다. 남자의 집을 나가는 건 좋았지만 누나와 헤어진다는 건 조금 슬펐다. 승태는 ‘우리 집’에 가는 거냐고 물었다. 엄마가 말했다.
    “우린 집이 없단다.”
    택시는 곧바로 보육원 앞에 섰다.
    “엄마가 돈이 없어서 그래. 돈만 벌면 다시 널 데리러 올게. 알았지?”
    엄마는 떠났고 승태는 다시 또 보육원에 남았다.
    그리고 며칠 뒤 보육원에서 놀이공원으로 단체로 놀러 갔다. 승태는 길을 잃었다. 엄마, 엄마, 울고 있는 미아들 틈에 앉은 승태는, 아이의 엄마란 사람, 아빠란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기가 죽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한편으론 엄마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미아였던 아이들이 하나둘, 제 엄마의 손을 잡고 사라질 때마다 승태는 어렴풋이 느꼈다. 어쩌면 영영 버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보육원에선 엄마라 불렀던, 원장 선생님이 들어와, 승태를 꼭 껴안아 주었을 때 어린 승태는 “쌤”이라며 건조하게 말했다. 울지 않았다. 승태는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
    “일부러 너랑 살던 동네로 왔어. 집은 구했으니까 가게 자리만 잘 찾으면 우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엄마는 택시 안에서도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근데 그 누나는요? 누나는 잘 지낸대요?”
    승태의 말에 갑자기 엄마는 “응?” 하고 되물었다. “누나라니. 누구?”
    “그때, 그 집에 같이 살던 누나 있었잖아요.”
    “누나? 아, 걔. 네 동생 아니었나? 글쎄다. 모르겠네. 그 인간이랑 연락을 했어야지.”
    엄마는 다리를 흔들며 손톱으로 입술을 뜯었다. 승태는 사실 엄마보다 누나의 안부가 궁금했다. 같이 살던 시간을 그나마 좋게 떠올릴 수 있다면, 엄마가 아니라 누나 때문 아니었을까 싶었다. 보육원에서 보낸 시간이 경민 형 때문에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 것처럼.
    “나,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너한텐 보육원이 더 나았을 거야. 이제부턴 걱정 마. 너 대학 가도 돼. 근데 공부는 잘하니?”
    택시 운전사가 자꾸 흘끔거리는 게 신경 쓰인 승태는 엄마가 그만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돈 많어. 걱정 마.”
    엄마는 승태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마쳤다. 엄마의 손은 차가웠다. 승태는 룸미러로 택시운전사를 노려봤다.

 

    엄마는 승태를 데리고 회전초밥집으로 데려갔다. 승태는 그런 곳이 처음이었기에, 어디에 앉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랐다. 깔끔한 복장을 한 주방장이 초밥을 꼭꼭 눌러 접시 위에 얹어 놓으면 사람들은 집어 들어 먹었다. 뷔페 같은 건가 싶어, 아무 생각 없이 앞에 놓인 것을 가져다 먹다가 벽면에 붙은 가격표를 보고 승태는 깜짝 놀랐다.
    접시 색깔마다 가격이 달랐다. 승태가 먹은 것은 그중 가장 비싼 것이었다. 슬그머니 엄마 눈치를 살폈지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로 엄마는 돈이 많은지도 몰랐다. 하지만 엄마가 멘 가방이나 구두, 옷차림을 보면 그렇지 않아 보였다. 엄마는, 아르바이트할 때 봤던 찜질방 리사 아줌마와 비슷했다. 가방은 짝퉁이 분명해 보이는, 명품 브랜드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것이었다. 파마한 중단발 머리카락 끝은 갈라져 있었고 앞니는 누랬다. 입을 벌리고 웃을 때마다 아말감으로 치료된 시커먼 어금니가 보였다. 물론 엄마는 리사 아줌마보다 훨씬 더 젊고 예뻤다. 그래도 비슷해 보였다. 가난해 보였다. 옷차림 때문이 아닌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짙은 향수 냄새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니다. 엄마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자신을 더 일찍 데리러 오지 않을 리 없다고 늘상 생각해 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먹고 싶은 거 먹어. 그럴 돈 있다니까.”
    엄마는 접시를 집어 들고 초밥을 입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우리 딱 한 잔만 마실까?”
    승태의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엄마는 한쪽 손을 번쩍 들더니 소주를 시켰다.
    “술을 끊었어. 넌 모를 거야. 정말 힘들어. 근데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딱 한 잔만 하자. 괜찮지?”
    엄마는 테이블 위에 이미 놓여 있던 유리컵의 물을 국물이 담긴 대접에 비우더니, 거기에 술을 따랐다. 엄마의 손이 조금 떨렸다. 이번에 승태가 집은 것은 유부초밥이었다. 가장 싼 노란색 접시에 담긴 거였다. 엄마는 술이 찰랑찰랑 담긴 유리컵을 두 손으로 들더니 한 모금 마셨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들이켜듯 하, 소리를 냈다. 두 번째는 조금 아껴 마셨다. 엄마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승태를 향해 다시 내뱉으며 웃었다. 술 냄새가 풍겼다. 엄마는 웃고 있었지만 이제야 진짜 웃는 듯 보였다.
    “진짜 오랜만에 마시는 거야. 끊었거든. 진짜, 나,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 거다. 근데 말이야.”
    엄마는 아까 자신이 물을 따라 부은 대접의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술이라도 마신 듯 인상을 썼다. 다시 잔에 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번엔 조금 더 과감하게 끝까지 주욱 들이마셨다. 빈 잔을 살며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만 마시고 말 거야.”
    엄마는 소주병 밑바닥에 아주 조금 남은 술을 잔에 따를까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것으로 끝냈다. 술을 마신 엄마는 더 유쾌해졌다. 말은 많아졌으며 얼굴도 훨씬 더 예뻐 보였으므로 승태도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초밥집을 나서자마자 택시를 잡았다. 얼마 안 가 금방 내렸다. 걸어가도 될 거리였기에 승태는 택시비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승태의 팔짱을 끼고 콧노래를 흥얼댔다. 승태는 엄마와 살게 될 집이 궁금했다. 어서 빨리 보고 싶었다. 다세대 주택이 빽빽이 들어선 골목길의 끄트머리에 있는 갈색 벽돌로 지은 다세대 주택 1층이었다. 낮이었는데도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외진 곳이기도 했다. 공용 대문은 열려 있었다. 대문을 지나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건물 모퉁이에 갈색으로 된 현관문이 하나 나왔다. 그 문은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힘을 줘야 겨우 열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신발장이 보였다. 낮인데도 어두웠다. 불을 켜자, 마룻바닥으로 바퀴벌레 몇 마리가 다다닥 빠르게 싱크대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엄마는 이것을 보지 못했는지, 구두를 벗으면서 윗옷을 벗고 가방을 마루에 던지며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엔 낡아 보이는 초록색 인조가죽 소파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위엔 담요 한 장이 있었다. 엄마는 몸을 던지듯 소파 위에 앉았다. 그러곤 자못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 먼저 방 골라. 엄마는 다음에 고를게.”
    승태는 운동화를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 옆으론 풀지 않은 이삿짐이 종이 박스에 담겨진 채 쌓여 있었다. 승태는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누런 합지로 된 벽지가 발라진 방은 형광등 불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붙박이장도 없고 녹슬고 오래된 갈색 창틀이 방마다 있을 뿐인데, 그나마 방 한 개는 창밖으로 회색 벽돌로 된 벽이 보였다. 방 두 개는 아주 작았지만, 방은 세 개나 됐다. 타일이 군데군데 깨진 목욕탕은 다른 곳에 비해 지나치게 넓어 보였다.
    승태는 허름하고 곰팡내 나는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집’이었으므로 흡족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밥상 위에 얹어 놓은 티브이를 켰다. 다른 짐들은 전혀 손을 안 댔는데, 티브이만은 일찌감치 신청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리모컨을 돌리며 예능 방송에 채널을 고정하더니 소파에 길게 누웠다.
    “맘에 드니?”
    승태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엄마는 졸음이 가득 찬 눈으로 승태를 올려다봤다.
    “방은 정했고?
    승태는 창밖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어두컴컴하고 좁은 방에 자신의 짐을 부려 놓았다.
    “너 먼저 씻어. 수건은 저 상자에서 찾아봐. 안 쓴 게 하나쯤 나올 거야. 이불도 뒤져 보면 나올…….”
    엄마는 하품을 길게 하느라 말을 채 마치지도 못했다.
    “먼저 잘게.”
    엄마는 씻지도 않은 채로, 소파 위의 담요를 대충 덮고 눈을 감았다. 승태는 그런 엄마를 내려다보다가 거실의 불을 탁, 껐다.

 

*

 

    승태는 엄마와 함께 마트에 왔다. 엄마는 굳이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한 마트에 도착했다. 마트 정문 앞에는 천막이 쳐져 있었고, 그곳엔 의류 행사 상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엄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옷을 보는 줄 알았는데, 매장에서 일하는 몇몇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고 싶은 거 있어?”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마트 물건이라고 눈에 차는 게 없니?”
    “그런 거 아니에요.”
    승태는 손을 활짝 펴서 강하게 부정했다.
    “그냥,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엄마가 골라 줄까?”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태는 ‘엄마’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엄마는 너무나 자연스레, ‘엄마가’라고 했다. 낯설었지만 기분 좋았다. 엄마는 승태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그 옷은 네가 산 거니?”
    승태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경민 형이 받은 첫 월급으로 사준 피케 티셔츠와 청바지다. 신경 쓴다고 입은 건데 엄마 눈엔 그렇지 않아 보이나 싶어 승태는 얼굴이 빨개질 것만 같았다.
    “이상해요?”
    “아냐. 잘 골랐어. 안목이 있는데 뭐.”
    그제야 승태는 안심이 됐다. 엄마는 그러고도 승태를 유심히 보더니 “너 좀 작다, 나이에 비해. 그치?”라고 말했다. 승태는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남자는 군대 가서도 키가 크니까.”
    엄마는 승태의 옷을 찾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어떤 여자를 보더니, 살갑게 “팀장님”이라 부르며 다가갔다. 둘은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고개를 젖혀 가며 웃었다. 천막 안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도로 옆이라 차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팀장이란 여자가 승태에게 손을 흔들었고 곁에 서 있던 엄마도 웃었다. 승태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엄마는 팀장의 손을 한 번 더 잡고 가볍게 포옹을 하더니, 승태에게 다가와 얼른 팔짱을 꼈다.
    “우리 마트 안으로 들어가자. 세일상품 말고 매장 안에 있는 걸로 보자. 거기 신상으로 사줄게.”

 

    승태가 카트를 끌었다. 엄마는 팔짱을 꼈다.
    “아들이랑 마트 장보기, 엄마는 참 하고 싶었던 거야.”
    그건 승태도 마찬가지였다. 승태는 엄마와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다. 마트 장보기 같은 것도 있지만 대개 별거 아닌 거였고 나이마다 달라졌으므로 어떤 것들은 앞으로 영원히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식료품을 먼저 사자며 지하식품관으로 향했다. 엄마는 가격도 안 보고, 유통기한을 꼼꼼히 보지도 않고 물건을 카트에 담았다. 뒤따르는 승태는 엄마가 카트 안에 넣은 물건보다, 할인이 많이 되는 다른 상품을 아쉬운 눈길로 바라봤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을 대신해 넣은 건 아니었다.
    엄마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이번엔 물건도 제대로 안 보고 마구잡이로 카트에 집어넣었다. 그러다 시식코너 앞에 멈췄다.
    “어머. 언니! 왜 여깄어?”
    엄마의 목소리엔 활기가 있었다. 승태는 엄마를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투명 입가리개를 하고 로고가 박힌 앞치마를 입은 여자의 손을 엄마는 덥석 잡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었다.
    “여긴 웬일이야. 사업한다고 하지 않았어?”
    “사업은 무슨. 그냥 작은 가게나 하나 차리려는 거지. 잠깐만, 언니.”
    엄마는 승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승태는 주뼛거리며 카트를 밀고 다가갔다. 엄마의 ‘언니’라는 여자를 향해 승태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내 아들.”
    엄마의 목소리엔 자랑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는데, 승태는 그것이 기분 좋기도 하고 어쩐지 불안하기도 했다.
    “오호. 진짜 잘생겼다. 누가 보면 아이돌 가순지 알겠어. 몇 살이랬지?”
    “열여섯!”
    엄마가 말했다. 열여덟인 승태는 가만히 있었다.
    “자기를 꼭 닮았다.”
    “그런가? 장 언니는?”
    “4층에 있을 거야. 나 한참 일을 못 하고 있었거든. 실은, 나…….”
    엄마는 여자의 말이 듣기 싫은지 얼른 말을 막았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하나 먹어 볼래? 신제품인데.”
    여자는 팬에 노릇하게 구워 놓은 조각 만두 하나를 집어 엄마의 입에 넣어 줬다. 엄마는 그걸 한 입 먹었고 그러고 난 뒤에야, 접시에 담긴 만두 조각 하나를 집어 승태의 입에도 넣어 줬다. 뜨거운 육즙이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언니, 나 몇 개만 더 담아 주면 안 돼?”
    엄마의 말에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이미 구워 놓은 만두를 작은 종이컵 두 개에 나눠 모조리 담아 줬다.
    “땡큐.”
    엄마는 그걸 곧장 승태에게 건넸다. 승태는 뜨거운 김으로 흐물흐물해진 종이컵 두 개를 한 손에 몰아 쥔 채 여자에게 인사했다. 그러곤 다시 카트를 끌었다.
    “장 언니 보고 갈게. 수고해, 그럼.”
    엄마는 여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는데, 여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승태는 알 수 있었다.

 

    지하식품관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이르자, 엄마는 승태의 손에 쥐어 있던 만두를 담은 종이컵을 뺏더니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맛도 없구만.”
    엄마는 다시 승태의 팔짱을 꼈다.
    “자, 이제 네 옷을 사러 가자.”
    엄마는 계속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남성의류매장은 5층에 있었지만 엄마는 4층에서 내리더니 앞서 걸었다. 가끔 매장에 있는 누군가와 가볍게 목례를 나누긴 했지만 부러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4층은 생활용품을 파는 곳인데 가전제품 행사 매장을 크게 열고 있었다. 엄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성큼 앞서 걸었다. 승태는 그런 엄마 뒤를 쫓느라 좀 애를 먹었다.
    “언니, 언니. 나야, 나.”
    엄마는 예의 톤이 높은 목소리로 손을 흔들었다. 다른 곳에 비해 유독 한가해 보이는, 전기요 매장에 서 있던 늙은 여자가 엄마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어이쿠. 사장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떻게 오셨대?”
    늙은 여자는 엄마를 보더니, 아까 젊은 여자와 다르게 와락 껴안았다. 엄마는 발을 구르며 웃었다.
    “사장은 무슨. 아직 가게 자리도 못 잡았어요.”
    엄마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소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는 승태를 찾더니, 또 손을 흔들었다. 카트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긴 곤란했다.
    “그거 거기에 그냥 두고 일루 와.”
    엄마의 말에 승태는 쭈뼛거리며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 아들이에요, 언니.”
    엄마는 승태의 학교 성적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공부를 잘한다느니, 서울대 학생으로 과외선생을 알아보고 있으니 아들의 도움도 조만간 받게 될 거 같다고도 했다.
    “무슨 과 가고 싶어?”
    늙은 여자는 승태의 손을 잡으며 다정한 눈빛으로 물었다. 승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승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취업할 생각이었다.
    “선생님이랑 상의해서 신중하게 정하려고. 아직 시간도 있으니…….”
    엄마가 얼른 대답을 채갔다.
    “그래. 우리 아들이 그러는데, 앞으로 사라질 직업이 많다나 봐. 법학과야 지금이야 인기지, 앞으론 별 인기 없을 거라더라. 뭐,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만.”
    “그쵸. 우리 아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그치?”
    엄마는 승태의 등을 두어 번 두드리며 홍조 띤 얼굴로 웃었다. 승태는 그런 엄마가 싫지 않았다. 정말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영원한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다.
    “근데 뭘 저리 많이 샀어. 여기 멀지 않아?”
    늙은 여자는 승태가 매장 밖에 둔 카트를 보며 물었다.
    “차 갖고 왔어요.”
    “우와. 자기 진짜 유산을 많이 받은 모양이구나. 차도 뽑고.”
    “에이, 뭘요. 그냥 국산찬데요.”
    승태는 순간, 엄마가 마트 주차장에 차를 하나 사서 주차해 놓은 건가 어리둥절했다. 매장 안으로 중국말을 하며 물건을 고르는 한 무리의 손님들이 다가오자, 엄마는 승태의 팔을 잡아당겼다.
    “가자, 아들. 아주머니한테 인사해.”
    승태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가려 하자, 늙은 여자가 갑자기 승태의 팔을 잡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곤 매장 구석에 놓인 상자를 열더니 지갑을 꺼냈다. 지폐를 급히 꺼내더니 승태의 손에 쥐어 줬다.
    “내가 많이는 못 주고. 이걸루 떡볶이나 사먹어.”
    “에이, 이러지 마요, 언니.”
    엄마는 손을 내저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그러곤 둘은 인사를 하고 다시 4층 엘리베이터를 탔다. 위로 올라갈 줄 알았는데, 엄마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엄마는 승태의 손에서 돈을 빼 펴 보았다.
    “얼마니?”
    승태는 손에 있던 만 원짜리 한 장을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그걸 보더니 피식 웃으며 도로 승태에게 줬다.
    “쩨쩨하긴.”
    엄마는 물건이 가득 든 카트를 1층 엘리베이터 앞에 그냥 두곤 승태의 옷깃을 바로잡아 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이런 데 말고 백화점 가자. 거기서 네 옷이랑 운동화 사줄게. 운동화는 뭘로 사줄까? 나이키?”
    승태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마트 벽면에 붙은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승태와 엄마는 누가 봐도 사이좋은 모자 사이로 보였다.

 

*

 

    은정은 아이가 자신에게 “엄마”라고 하자, 기분이 묘했다.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감동적이었다. 뒤이어 한 말은 “부탁이 있다”고 했다.
    “뭔데? 말해 봐.”
    기껏해야 최신형 휴대폰이나 사달라는 거겠지 했는데, 뜻밖에 아들의 부탁은 그런 게 아니었다.
    “보육원에서 친형제처럼 지내던 형이 있는데요. 같이 살 수 있을까요? 직장을 다시 다니면 월세도 낼 수 있다고 했어요.”
    은정은 아이의 말에 선뜻 “그래, 데려와.”라고 했다. 그래 놓고선 그 형이란 아이에 대해 좀 더 캐묻지 않은 것에 곧 후회했으나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다. 잔소리나 괜한 걱정 따위로 아이를 옭아매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아들은 ‘친형제처럼 지냈다던’ 형을 데리고 왔다. 경민이라 했고 스무 살이라 했다. 키는 아들보다 훨씬 더 크고 몸집도 좋았다. 하지만 단단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는 아들에 비해 나약해 보였다. 잘 웃지 않는 아들과 달리 경민은 말꼬리를 흐리며 웃는 게 버릇인 듯 가끔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경민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했다. 그의 옆에서 아들은 조금 달라 보였다. 꽤나 기쁜 모양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은정은 그때 처음으로 아들의 웃는 얼굴을 본 셈이었다.
    “정말 친하게 지낸 모양이네.”
    은정이 말했다.
    “네, 사람들이 진짜 친형제로 많이들 알기도 했다고요. 저희 둘이 닮았나요?”
    경민이 말하자, 아들이 발끈했다.
    “내가 손해지.”
    “무슨 소리야. 영광이지.”
    아들은 조금 수다스러워진 듯 보였다. 이제야 십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랬을 뿐이었다. 은정은 아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치킨을 배달시키면서 맥주도 주문했다. 은정은 경민은 물론이고 아들에게도 똑같이 술을 따라 주었다. 아들이 경민보다 더 잘 마셨는데 그것도 은정은 기분 좋았다. 고작 맥주일 뿐이다. 은정은 성에 차지 않아 소주를 몇 병 더 사오라고 시켰다. 아들과 함께 마시니 더 유쾌해졌다. 머릿속은 명료했다. 이 정도는 가늠할 수 있고 조절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은정은 한 시간 정도 기억이 끊겼다. 다시 기억이 난 건 경민이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민이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음악을 재생시키곤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있었다. 은정은 소파에 기댔던 등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바라봤다. 승태는 무표정하게 그런 경민을 쳐다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안주로 사온 오징어를 씹어 먹었다.
    “다시 찾아오셨잖아. 그게 중요한 거야. 이렇게 젊고 예쁜 엄마가. 난 네가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경민은 음을 붙여 노래하듯 승태에게 말했다. 승태는 뭐가 불만인지 갑자기 경민을 노려봤다.
    “새끼야, 입 다물어라.”
    그러자 경민은 입을 다물더니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러더니 두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쥐곤 훌쩍였다.
    “이런, 우는 거야? 넌 형한테 새끼가 뭐니. 버릇없이.”
    은정이 아들을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 아들은 타는 듯한 눈길을 거두더니 밖으로 나갔다. 쇠로 된 갈색 현관문이 삐걱 소리를 내더니 쾅, 하고 닫혔다.
    “따라가지 마. 성질머리가 왜 저러니?”
    승태를 곧장 따라가 잡으려던 경민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망설이다가 자리에 앉았다.
    “넌 저 문이나 좀 고쳐 봐라. 문 여닫을 때마다 소리도 너무 시끄럽고…….”
    은정이 말을 멈췄다. 경민이 아예 소리 내 울고 있었다. 소매 춤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이 단지 귀여웠을 뿐이었다. 덩치도 큰 놈이 웃긴다고 생각했다.
    “근데, 진짜예요?”
    경민이 은정을 보며 울먹이며 물었다.
    “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진짜요?”
    은정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엔 없었으나 상관없었다.
    “그럼. 우리 아들 형인데, 내가 네 엄마지. 너 공부는 잘해? 대학도 보내줄까? 나 돈 많어. 진짜야, 진짜.”
    “진짜요? 저 대학도 보내주실 거예요, 어엄마아?”
    경민은 은정을 껴안았다. 은정은 그런 경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어유. 숨 막힌다.”라며 떼놓으려 했지만, 경민은 더 꼭 껴안더니 일어서 은정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엄마, 엄마. 고맙습니다.”
    은정은 뿌듯했다.
    다음날, 은정은 소파에서 잠에서 깼고 경민도 아들도 보이지 않았다.

 

*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승태는 방학 때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보육원을 나가는 날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 두는 편이 나았다. 열아홉이 되면 월세 보증금 대기에도 부족한 돈이 손에 쥐어질 뿐이었다. 장학금을 받아 대학 갈 머리가 안 된다 싶으면 얼마간의 돈이라도 벌어 두는 편이 나았다. 승태는 공부엔 소질이 없었다.
    부모가 버젓이 살아 있지만, 같이 살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가출청소년들과 함께 주유소에서 일하기도 하고 찜질방에서 청소와 허드렛일을 돕기도 했다. 승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고용주는 아이들을 믿지 않았다. 돈을 훔쳐 달아나거나 사고를 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불성실한 아이들에게 당할 만큼 당한 고용주는, 잠재적 범죄자 대하듯 아이들을 대했다.
    승태는 자신을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새끼 거북 같다고 생각했다. 부화되어 나오자마자, 게와 바다뱀, 물수리 등 온갖 천적을 피해 바다에 간신히 다다른 새끼 거북 말이다. 임금을 떼먹히기도 하고 흠씬 두들겨 맞은 것과 다름없는 폭언에 찔끔 눈물 흘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았다. 남자 아이의 몸을 탐하는 변태나 같잖은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폭행을 일삼는 어른의 손길에선 어쨌든 비껴갈 수 있었다. 응징도 했다. 승태는 알고 있었다. 가차 없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하이에나 같은 어른들을, 그리고 곧 그런 어른으로 성장할 아이들을. 물론 바다로 나가면 더 무서운 천적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아직은 살아남았다. 지금 이 세상에 살아남은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승태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경민은 엄마에게 월세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꽤 큰 자동차 정비업체에 들어간 경민은 일 잘한다, 칭찬 받는다 자랑하더니, 몇 개월 못 가 그만뒀다. 회식이 문제였다.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꼭 이상한 지점에서 꼭지가 돌았다. ‘경민 씨는 손톱이 이쁘네요’라는 말에 화를 냈다고 했다. “그게 왜?”라고 묻자, 경민이 대답했다.
    “그거 무시하는 거잖아. 손톱 새에 시커멓게 기름때가 꼈다고.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승태는 이해할 순 없었지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씨발, 그래도.”라며 경민의 뒤통수를 장난치듯 슬쩍 때렸다. 경민은 “후회는 없다.”라며 이마를 승태의 가슴팍에 쿵쿵 내리찧더니 승태를 껴안았다. 벗어나려 애쓰는 승태를 경민은 놓지 않았다. “미안, 미안. 욕 안 할게.”라고 하자 그제야 슬쩍 팔을 풀어 줬다.

 

    경민은 같이 살게 되면서, 전셋집을 고치고 꾸미는 데 애를 썼다. 엄마가 손 좀 보라는 현관문은 물론이고 벽지와 풀을 사다가 바르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허술했다. 현관문이 닫힐 때마다 소음이 심하고 문이 너무 급하게 닫힌다 해서 도어 클러저를 사서 달았는데, 이번엔 문이 잘 닫히질 않았다. 속도 조절 밸브가 원래부터 문제였는지 아니면 잘못 조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손가락 두어 개 정도의 틈을 남겨 두고 문이 닫혔다. 마지막까지 문을 밀어 닫지 않으면 열린 채였다. 불량을 산 거 같다면서 반품한다더니 결국엔 반품 시기를 놓쳐서 그 상태로 둬야 했다. 벽지도 수량을 잘못 구매하는 바람에 한쪽 벽 끄트머리는 다른 벽지를 써야 했다. 하필 샀던 벽지는 품절이 되는 바람에 똑같은 건 구할 수 없다고 했다.
    “난 왜 하는 것마다 이 모양 이 꼴이지?”
    경민은 진심으로 속상해하며 말했다. 승태는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맞는 말이기도 했다. 경민은 소년원도 갔다. 망 봐준 것에 지나지 않거나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건에도 꼬리가 잡혔다. 간혹 이상한 유도심문에 발끈하는 바람에 별 시답지 않은 증거로 죄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그때마다 승태는 도움이 되어 주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딱 한 번 도움이 되어 준 적이 있지만 그건 제 일이기도 했기에 대단치 않게 생각했다.
    직장에서도 잘리고 있을 곳도 없어 노숙하고 있다는 경민의 이야길 들은 승태는 엄마를 떠올렸다. 경민이 아니었다면 엄마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편지를 썼다. 몇 장이나 구구절절 쓰다가 다 찢어버리고 몇 줄로 다시 적었다. 엄마의 허락을 구걸할 필요 없다, 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리 따져 봐도 잘못한 건 엄마인데, 승태는 눈치가 보이고 주눅이 들었다.
    ‘엄마가 저를 데려가 주신다고 했잖아요. 이번에 그러시면 안 될까요?’
    그 문장도 승태는 지웠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승태는 한숨이 나왔고 전화를 걸기로 했다가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가 결국엔 다시 또 종이에 글을 끄적댔다.
    오랜 망설임치고 엄마의 결정은 빨랐다. 편지를 받자마자 엄마는 승태에게 연락했다. 승태는 엄마의 연락에 정말 기뻤다. 돌이켜보니, 승태가 가장 벅차게 기뻤고 웃었고 가슴 떨렸던 때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순간이었다.

 

*

 

    은정은 보험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매달 어딘가에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은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나마 수입이 규칙적으로 들어왔던 때는 마트에서 일했던 몇 년이 전부였다. 수입도 지출도 늘 불규칙했다. 그렇기에 닿지 않은 미래를 위해 매달 일정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은, 규칙적인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잊고 지냈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망 보험금을 남겼다고 했을 때 그래서 어리둥절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명예를 중시 여긴다고 말하곤 했지만 은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족을 끝까지 책임졌어야 했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보험금을 남겼다고 했을 때 몇 번이나 진짜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새여자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자신에게 보험금을 남겼다니 이상했다.
    아들을 데려오기로 한 순간, 은정은 난생처음 ‘어른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처럼 승태도 먼 훗날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됐다.
    그러나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평생 받아 본 적 없는 목돈이 통장에 입금된 순간, 은정은 로또에라도 당첨된 듯 굴었건만 이젠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돈은 어디로 간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단한 것에 돈을 쓴 기억은 없었다. 기분 내려고 산 브랜드 옷 몇 벌과 승태 운동화밖에 없는 거 같았다. 그 외는 다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대개는 식비였던 거 같다. 옷가게라도 내려고 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민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들어오고 난 뒤,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정도가 아니라 지출이 배로 늘었다. 경민은 어디 하나 번듯한 자리에 오래 박혀 있질 못했다. 며칠 만에 그만뒀다. 밥이나 축내는 꼴이 너무 보기 싫어 징그러울 정도였다.
    매달 드는 생활비에 새로 든 보험료까지 내려니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간 아버지에게 받은 보험금도 바닥이 날 게 뻔했다.
    마트 일을 다시 알아볼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큰소리치고 그만둔 데를 다시 기어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데라도 알아볼까 싶었지만 일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마트 안의 건조한 공기도,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인간들의 비위나 맞추기도 싫었다. 승태가 일을 하게 되면 일을 줄일 수도 있으니 예전부터 해온 노래방 일이나 잠깐 할까, 했다. 휴대폰에 김 전무의 연락처가 있었다. 연락하지 않은 지 5년도 넘어서 당연히 번호가 바뀌었으리라 생각했다. 결정을 맡겼다. 번호가 그대로라면 노래방 일을 시작하리라고. 통화버튼을 눌렀고 김 전무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그는 은정의 연락을 크게 반겼다.

 

*

 

    승태는 엄마의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또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울리지 않은 핸드폰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경민의 코 고는 소리가 닫힌 문 밖으로도 크게 울렸다. 승태는 몇 번이나 대문 밖으로 나가 밖을 살폈다.
    엄마와의 마지막 문자는, “할릴이만아연락못해”였다. 술에 취해 있는 게 분명했다. 문자를 받자마자 곧장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안 됐고 얼마 후엔 아예 꺼져 있었다.
    그날 밤은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발장 앞이나 방구석에 몸을 구부리고 자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되리라 여겼다.
    누군가 몸을 흔드는 바람에 눈을 뜨니 경민이었다.
    “오늘도 안 오신 거야?”
    속옷 바람의 경민이 승태에게 물었다. 티브이는 계속 켜져 있었고 선득한 한기에 승태는 재채기가 나왔다. 경민은 핸드폰을 들고 엄마에게 연락했다.
    “꺼져 있네.”
    경민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승태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건 엄마가 술을 마시고 어딘가에서 곯아떨어졌다는 걸 뜻했다.
    승태와 경민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불안할 정도로 잘 대해 줬다. 쇼핑하고 맛집을 다니고 같이 요리를 만들고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갔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엄마는 변심한 애인처럼 굴었다. 밤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했다. 전화는 잘 받지도 않았고 문자는 대개 씹었다. 어떤 날은 집에서 종일 술만 먹고 다음날은 잠만 잤다. 승태는 엄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주 코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댔다. 엄마한테선 역한 술 냄새가 풍겼으나, 승태는 다행이다, 안도했다.

 

    엄마가 연락 없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승태와 경민은 찾아 나서기도 했다. 집 근처 술집이나 노래방 그리고 파출소도 찾아다녔다. 문을 열 때마다 그곳에 엄마가 있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없기를 또 간절히 바랐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승태는 파출소에 간 적이 있다. 엄마 얼굴엔 마른 피딱지가 붙어 있었다. 눈도 부어 있었다. 곁에 있는 중년의 사내 얼굴은 더 엉망이었다. 그의 얼굴엔 선명한 손톱자국대로 피딱지가 붙어 있었다. 두피 어딘가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지 고함을 지를 때마다 피가 눈썹 아래까지 조금씩 흘러내렸다.
    “저년이 날 이 꼴로 만들었다고. 내가 피해자야, 피해자.”
    사내의 지인이라는 남자가 왔다. 그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사내를 달랬다. 경찰은 엄마와 승태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엉망진창으로 취했으면서도 엄마 말투는 멀쩡했다.
    “다 너 때문이야.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겠니? 우리 가족도 날 버렸어. 벌레 취급 하면서. 네 아빠라는 새끼는 말로만 책임진다 어쩐다 하더니 한 달도 안 돼 도망쳐 버렸다고. 근데 왜 나한테만 지랄이냐고. 왜?”
    엄마는 악을 쓰며 계속 자기 말만 했다. 나중엔 승태의 얼굴을 마구 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파출소에 간 것도,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사람을 때렸다는 것도.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반주로 딱 한 잔만 했다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승태에게 엄마는 능청스런 표정으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승태도 경민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승태는 중고로 사온 낡은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마트에서 사온 봉지 김치가 반쯤 남아 있었고 언제 해놓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 노란 기름이 둥둥 뜬 미역국이 담긴 냄비와 딱딱하게 굳은 백설기 한 덩이, 검은 곰팡이가 핀 당근과 갈색으로 물큰해진 양파 두어 개가 있었다.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건, 죄다 배달해서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였다. 종이 상자에 벌건 양념 자국이 남아 있는 치킨 몇 조각, 뼛조각이 더 많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족발이 담긴 스티로폼 도시락, 노란 단무지를 담아 꽁꽁 묶어 놓은 작은 비닐봉지들, 그리고 알 수 없는 검정 비닐봉지에 담긴 것들.
    “냉장고 청소 좀 해야겠어.”
    승태의 말에 경민은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승태는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다 꺼냈다. 엄마를 따라 몇 번 변기에 남은 음식을 버렸다가 막힌 걸 뚫느라 고생을 하고 난 뒤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따로 사뒀다. 엄마는 여전히 버릇을 고치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으니 용량이 꽤 큰 것인데도 불구하고 2개가 가득 찼다.
    “먹고 하라니까.”
    경민은 라면을 끓여 놓곤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배 안 고파. 형이나 먹어.”
    승태는 주방세제로 거품을 묻힌 행주로 냉장고 선반의 얼룩을 문질러 닦았고 여러 번 행주를 빨아 헹궈 가며 냉장고 안을 말끔하게 닦았다. 냉장고 안은 처음 중고로 샀을 때처럼 비었다. 치킨을 시키면서 받은 캔 콜라 두 개와 엄마가 남긴 소주 반 병, 그리고 1.5리터짜리 생수 두 병을 냉장 칸에 집어넣었다.
    승태는 냉장고 청소를 다 하고 나자 이번엔 집 안을 청소했다. 청소의 기본은 바닥에 놓여 있는 물건을 없애는 거였다. 어디든 집어넣고 쌓아 놓고 걸어 놓으면 됐다. 그리고 버리는 것. 그게 정리의 기본이다.
    승태는 청소가 좋았다. 바닥이 많이 드러나면 날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봐야 19평짜리 다세대 주택의 냄새나는 집이 넓어질 리 없겠지만.
    그는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갰다.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수건은 ‘호텔식’으로 갰다. 걸레를 빨아다가 바닥을 닦고 먼지가 쌓인 티브이와 냉장고를 닦았다. 그러다 승태는 소파 아래 기대어 앉은 경민을 돌아봤다. 눈이 마주치자 경민은 흐흐흐 웃었다.
    “그만 하고 승태야 여기 앉아. 같이 티브이나 보자.”
    경민이 이어 말했다.
    “엄마는 아직 젊잖아. 연애도 하셔야 한다고.”
    “그래서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모르겠어.”
    경민은 승태의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승태를 껴안았다. 그러곤 들어 올려 아기를 어르듯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자장, 자장, 우리 아기. 풀어, 풀어. 맘 풀어. 응?”
    “아이 씨, 짜증 나. 저리 가.”
    승태는 소리를 지르며 버둥댔다. 경민은 어어헝, 웃으며 더 힘껏 안았다. 갑자기 승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경민은 우뚝 서서 승태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경민은 “화났어? 아니지?” 하면서 승태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려 주었다.

 

    다음날도 승태는 부옇게 밝아 가는 거실 창을 바라보며 여전한 엄마의 부재를 확인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또다시 버려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다섯 살 승태의 호주머니에 쪽지를 넣어 줬다. 엄마는 택시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승태는 엄마가 새로 사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보육원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택시는 바로 출발했다. 그동안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던 보육원이,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승태는 멀어져 가는 택시를 뒤돌아서서 바라봤다.

 

*

 

    은정은 김 전무의 전화에 잠에서 깼다. 온몸이 쑤시듯 아팠다.
    “우리 은정 씨, 성질이 보통 아니다. 정치나 하지. 대쪽같이 잘했을 텐데.”
    빈정대던 김 전무는 은정이 손님을 폭행한 건에 대해 쏟아내듯 말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은정은 기억나지 않았으므로 남의 이야기라도 듣듯 건성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품이 나온 건 어쩌다 그런 건데, 김 전무는 말을 뚝 멈추더니 “다음 일은 없어. 다른 데서 알아봐, 쌍년아.” 하기에 은정은 콧방귀를 뀌며 전화를 끊었다.
    은정이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은정 역시 노래방 도우미 일은 이제 못해먹겠다는 생각이었다. 확실히 일이 더러워졌다. 예전에 했을 때만 해도 손님들은 점잖은 편이었다. 만지려면 팁을 더 줬지 막무가내로 대하진 않았다. 3만 원, 5만 원에 이럴 거면 차라리 몸을 팔러 다니는 게 낫지 싶을 정도였다. 싸움이 크게 나서 파출소까지 끌려갔다고 하는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승태가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 같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녀석도 에미가 저를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고 다니는지 안다면 다행이었다.
    은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밤에 벗어 던진 옷들은 방구석에 허물처럼 놓여 있었다.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녀의 방엔 미처 풀지 않은 택배 상자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은정은 그 가운데 상자 하나를 열었다. 상하의 한 벌로 된 트레이닝복이다. 카피 제품이라곤 하지만 A급이라 진품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것을 비닐에서 꺼내 입어 보았다. 전신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은정은 그것을 입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거실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은정의 빨래는 잘 개켜져 방문 앞에 놓여 있었다.
    은정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개 같은 진상을 만난 건 확실했다. 세수를 하니 얼굴 전체가 따끔거렸다.
너무 허기가 졌다. 가스레인지 위엔 미역국이 있었다. 한 번 더 끓여 놓았는지 따끈했지만 은정은 얼큰한 해장국이 먹고 싶었다. 백화점에서 산 에르메스 선글라스를 썼다. 모자도 하나 꺼내 푹 눌러썼다. 동네에 새로 개업한 해장국집에서 한 그릇 먹고 오는 게 낫지 싶었다. 밖으로 나갔다. 다세대 주택은 비탈진 곳에 위치한 탓에 등기상으론 반지하이지만, 현관문 쪽은 1층이고 반대편 쪽은 막다른 골목의 담장이었다. 현관을 열면 곧바로 담이었다. 담을 끼고 조금 더 걸어야 공용 대문이 나왔으므로 집은 늘 어두컴컴했다. 밖으로 나오니 날은 매우 화창했다. 길을 걸으며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은정의 기분이 나아졌다. 누가 봐도 잘나가는 20대 여성 같았다. 월차를 낸 직장여성 같았다. 이 정도면 괜찮았다. 그러자 절망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은정에겐 아들이 둘이나 있다. 걔네들이 돈을 벌어오면 그만이었다.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다. 그전까지만 버티면 됐다.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됐다. 이런 당연한 생각이 왜 이제야 났는지 은정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은정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해장국집에 갔을 땐 브레이크타임 20분 전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은정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전 10분이면 충분해요. 빨리 먹을게요.”라며 졸랐다. 망설이던 종업원은 그녀를 자리로 안내했다. 소주를 한 병 시키려 했지만 종업원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곧이어 뜨거운 해장국이 나왔다. 은정은 선글라스를 벗고 후후 불어 가며 천천히 먹었다.
    고개를 드니 건너편에 앉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소주 한 병도 이미 다 마신 듯했는데, 은정을 흘끔대느라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은정은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종업원이 여러 번 눈치를 주는데도 굴하지 않고 공깃밥의 밥알을 싹싹 긁어먹고는 느긋하게 계산을 하고 나왔다.
    당연히 자신의 뒤를 쫓아올 줄 알았던 남자는 오지 않았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오지 않았다. 뒤를 흘긋 돌아봤지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은정은 김이 샜다.
    은정은 복권판매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앞으로 그녀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밖에 없었다. 시시하게 1억이나 2억으론 안 됐다. 10억이나 20억 정도는 있어야 조금 쓸 만하다 할까. 아니다. 100억이나 200억 정도는 되어야 했다.
    은정은 지갑에 남은 돈으로 복권이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안으로 들어갔다. 첫 장은 자동번호로 하고 나머지는 번호를 고르기로 했다. 은정은 종이 몇 장을 더 꺼내 거기에 숫자를 썼다. 처음엔 자신의 생일을 적었다. 다음엔, 승태의 생일을, 그리고 휴대폰 번호를 조합해 보았다. 아무렇게나 쓴 숫자를 차례대로 체크를 하고 나니, 이번엔 뭐든 될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긁지 않은 즉석복권 다섯 장을 은정 앞으로 밀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해장국집에서 본 남자였다. 남자는 싱글거렸다.
    “긁어 볼래요? 십만 원 이상 나오면 그냥 가지시고요. 음, 만 원 이상 나오면 나랑 만납시다.”
    수작이 유치했다.
    “됐어요.”
    은정이 말하자, 남자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런 복권은 천 원도 어쩌다 운 좋아야 나오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애걸하듯 말하며 오백 원짜리 동전을 은정의 손에 쥐어 주었다. 복권판매소 사장이 자꾸 쳐다보며 히죽거렸다. 은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복권을 긁었다. 한 번에 쓱쓱 긁었더니 첫 장은 꽝이었다. 남자가 동전과 복권을 뺏었다.
    “아이 참, 이렇게 긁으면 안 되죠. 법에 저촉된다고요.”
    그러더니 남자는 당첨 금액부터 긁었다.
    “당첨 금액이 짜짜잔, 오 10억입니다. 10억. 자,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남자는 술 냄새를 풍기며 익살맞게 주절댔는데 그 모습이 밉지 않았다. 복권 넉 장은 꽝이었고 한 장은 500원이 나왔다. 500원 당첨된 복권을 그 자리에서 다른 한 장으로 바꿨지만 그것마저 꽝이었다.
    “아,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지? 몇 장 더 사야겠다.”
    남자는 몇 장을 더 사서 긁었고 다 꽝이 나왔다. 은정은 체킹을 한 종이를 바꿔 지갑에 챙겨 넣었다. 남자는 긁은 즉석복권을 내려다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은정은 옆을 지나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술이나 살래요?”

 

*

 

    승태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멘 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차 한 대가 따라오고 있었다. 유난히 큰 엔진 소리가 거슬렸다. 골목길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었다. 적당히 알아서 지나가야 했다. 승태가 벽에 바짝 붙어 가는데도 차는 계속 승태 뒤를 따르듯 쫓아왔다. 뒤돌아보니, 차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은 경민이었다.
    “너 참 둔하다. 지금 내가 몇 미터를 쫓아왔는지 알아?”
    승태는 얼른 문을 열고 경민이 앉은 운전석 옆에 앉았다.
    “뭐야? 이거?”
    “훔쳤어.”
    승태가 경민을 노려봤다.
    “걱정 마. 그냥 좀 타다가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을 거야. 차 주인이 석 달간 여행 간다고 했거든.”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전화 통화하는 걸 들었어.”
    “미쳤군. 감방을 가려면 좀 좋은 차를 훔쳐라. 이런 고물 말고.”
    “고물이라 안 걸릴 수 있는 거야.”
    경민은 라디오를 크게 틀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집으로 가자.”
    경민은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말랬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손님이 오셔서.”
    “손님?”
    경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이란 작자가 누군지 알 만했다. 작은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라 했지만, 일용직 노가다 꾼이 분명해 보였다. 남자에게도, 엄마에게도 술 냄새가 풍겼다. 처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손엔 검은 비닐봉지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술병과 마른안주, 과일이 들어 있었다. 승태와 경민은 남자에게 인사했다. 남자는 당황한 듯 비닐봉지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멍하니 바라봤다.
    “말했지. 우리 아들들. 잘생겼지?”
    엄마는 비틀거리며 승태의 팔짱을 꼈다. 남자는 “어어엉. 그러네. 생각보다 아들이 크네.”라고 했다.
    엄마는 승태와 경민 사이로 쏙 들어오더니 갑자기 두 사람의 팔짱을 끼고 두 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봐.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그제야 남자는 웃었고 경민도 따라 웃었다. 엄마도 웃었다. 승태만 웃지 않았다.
    남자는 그날은 그냥 갔다. 남자가 사온 술과 안주는 경민과 엄마가 먹어 치웠다. 다음날엔 경민과 엄마, 남자 셋이 술을 마셨고 경민의 방에서 자고 갔다. 다음날, 엄마는 경민에게 짐을 승태의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남자는 엄마와 술을 마신 날 밤, 경민의 방에서 잠을 잤다. 며칠 뒤엔 엄마와 함께 안방에서 둘만 술을 마시고 자고 갔다. 방에 있어도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다 들렸다. 승태는 일부러 음악을 크게 틀어 놨다. 경민은 그러든지 말든지 잠이나 쿨쿨 잤다.

 

*

 

    편의점 밖 파라솔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 경민을 보니 승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9월 초라 해도 밤은 제법 쌀쌀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털이 듬성듬성 난 허벅지가 멀리서 봐도 시뻘겠다. 팔을 들어 올려 어깨 참에 코를 닦는 꼴이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뭐 하냐, 여기서.”
    승태의 말에 경민은 웃으며 다리를 떨었다.
    “한잔할래?”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이러고 다닌 거야?”
    “갈 거야.”
    “어디로?”
    경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자꾸 화를 냈다. 주로 경민에게 하는 말이지만, 승태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경민은 어떻게든 엄마 눈에 들고 싶어 해장국을 끓이고 청소를 하고 집안 살림을 고쳤다.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월세도 냈다. 배달 일도 시작했다.
    가게를 내는 대신 투자를 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남자와 함께 스크린 경마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래 놓고선 자신의 불운도 가난도 경민 탓으로 돌렸다. 승태가 보기에 경민은 제법 잘 견뎠다. 승태가 알고 있는 경민이라면 사달이 났을 법한 모든 순간을 묵묵히 참았다. 대신 승태의 마음속엔 어떤 문 같은 것이 차츰 닫히고 있었다.
    “엄마가 나가래?”
    승태의 물음에 경민은 곧바로 대답을 못 하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냐. 내가 먼저 나가겠다고 했어.”
    승태는 경민이 남긴 소주병의 술을 마셨다.
    “어디에 있을 건데?”
    “찜질방이나 피씨방에 좀 있다가.”
    “그다음엔?”
    “뭐 그담엔 어떻게든 되겠지. 걱정 마.”
    그러곤 경민은 또 술을 마시고, 흐흐 웃었다.

 

    엄마의 말은 달랐다.
    “글쎄 나보고 미친년, 씨발년, 욕을 해대더니. 저거 봐. 설거지하던 그릇을 바닥에 던져버리더니 밖으로 나갔어. 미친 새끼.”
    엄마는 분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씩씩거렸다.
    “엄마가 뭐라고 하셨어요?”
    “아침까지 늘어지게 자길래 정신 좀 차리라고 했다. 못할 말 한 거 아니잖아. 그랬더니 나보고 씨발년아 내가 잠을 자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이야. 그러더니 저 그릇을 나한테 던졌어. 내가 잘 피했기에 망정이지.”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라는 둥 뭐라 했다.
    “그럴 리 없어요.”
    승태가 단호하게 말했다.
    “뭐?”
    “형은 욕을 하지 않아요.”
    “참 내.”
    엄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형은 욕을 했다고 파양 당했어요. 가족에겐 절대 욕을 하지 않는다구요.”
    “미친. 걔가 내 새끼냐?”
    그 말을 듣자, 승태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짐을 싸기 시작했다.
    “너도 나가려고?”
    “네.”
    “왜?”
    “그 아저씨랑 같이 살고 싶은 거잖아요. 귀찮아진 거잖아. 우리가 필요 없어진 거잖아. 안 그래요?”
    승태는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별안간 엄마가 크크큭, 입을 틀어막으며 웃기 시작했다. 처음엔 의아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던 승태의 표정이 차츰 일그러졌다.
    “어, 미안 미안. 너, 목석같은 아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네. 아냐, 아냐. 너가 귀찮아진 거 아냐.”
    승태는 그런 엄마의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을 들여다봤다. 웃음을 참는 듯 실룩거리는 입술, 푸르스름한 눈썹 문신 옆에 작은 점, 얼룩진 기미가 보이는 오른쪽 볼이 역겹게 느껴졌다.
    “아, 우리 승태 사춘기라 그런가? 그 아저씨는 비즈니스야. 같이 사업하는 사이라고.”
    승태는 엄마를 향했던 고개를 돌리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봤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너 내년까진 보육원에 있어도 되잖아. 그래. 너 거기 가 있어. 차라리 그게 낫겠어. 여기 있으면 그 아저씨 신경 쓰느라 너 공부도 안 되고. 내년에 나올 땐 원룸 하나 얻어 줄게.”
    엄마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씨발년.”
    승태는 짐을 싼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곤 씹어내듯 말했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엄마는 흥분하며 승태의 팔을 잡았다. 승태는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개 같은 년.”
    승태는 엄마를 돌아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기가 막혀. 이 새끼, 너, 다신 여기 기어 들어올 생각 마. 이제껏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어디 감히!”
    승태는 운동화를 신고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야! 네가 나간 거다. 후회해도 소용없어!”
    엄마의 악쓰는 소리를 들으며 승태는 공용 대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5개월하고도 6일을 함께 살았다, 엄마와. 그 시간이 승태는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그토록 바라던 날들이었는데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했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버틴 것이 용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길게 느껴진 것은, 집도 없이 지내야 하는 고작 보름의 시간이었다. 승태는 경민과 함께 생활했다. 피씨방에도 갔다가 찜질방에서도 잤다. 학교에는 지각을 하고 수업시간마다 졸았다. 그래 봐야 걱정할 사람은 없었다. 학기 초에 담임은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상관 않을게.”라고 했다. 원산지가 적힌 상자를 바꾸던 식당 사장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문득 어른이 곤란해질 문제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보육원 아이들은 두 부류라 했다. 문제를 일으켜 관심받고 싶어 하는 아이, 착하게 행동을 해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 결국 모두 사랑을 받고 싶어 할 뿐이라고. 그러나 승태는 안다. 그건 보육원 아이들만의 성향은 아니라고. 모든 아이들은 다 같았다. 그러니 상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러다 돈이 떨어졌다. 승태는 딱 한 번 문자를 보냈다. 돈 좀 부쳐 달라고 하자 엄마에게서 처음 전화가 걸려왔다.
    “야, 내가 돈이 어딨니. 먹고 죽으려도 없다. 너 땜에 들어 놓은 보험료 내려고 지금 나 일하고 있는 거 몰라? 너도 양심 좀 있어 봐라.”
    어디서 지내냐 묻지도 않고 집으로 다시 들어오란 소리도 없었다. 바꿨다는 현관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의 일이란 건 스크린 경마장이나 술집을 드나드는 것일 게다. 아들과 같이 살려고 얻어 놓은 집으로 돌아와, 남자와 치고 박고 싸우거나 술이 떡이 되어 뒹굴다 잠이 드는 것일 게다.
    경민이 자동차를 다시 훔쳤다. 차 안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다. 낮에 경민은 또 엄마를 만나러 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렸건만 말을 듣지 않았다. 경민은 술에 취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디서 넘어졌는지 이마와 콧잔등에 벌겋게 쓸린 상처도 보였다.
    “그냥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어.”
    술에 취한 경민이 더듬더듬 말했다.
    “이번엔 엄마랑 딱 마주친 거야. 근데 나 웃긴다. 진짜 기쁜 거야. 엄청 반가운 거야. 내가 ‘엄마아’불렀거든. 그니까 엄마가 뭐라는 줄 알아?”
    “…….”
    “나보고 호모새끼래.”
    “미친…….”
    “지난번엔 거지새끼라더니.”
    경민은 또 입을 크게 벌려 웃었다.
    “나보고 꺼지래. 다, 다 용서할라구 했는데. 그냥 아들이라고만 불러주면…….”
    승태는 체한 듯 속이 답답했다. 경민은 히죽대며 웃는가 싶더니 별안간 코를 골았다. 승태는 한숨을 내쉬며 보조석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남겨 둔 거랬어.”
    발을 핸들 위에 불편하게 얹어 놓은 경민이 잠꼬대라도 하듯 한참 뒤에야 말을 이었다.
    “절대 버린 게 아니랬어.”
    “뭔 소리야?”
    “그때 그때……, 엄마가…….”
    경민은 하품을 하더니,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밥풀떼기를 주워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했대. 그래서 그래서. 거기에 남겨 둔 거래. 근데 네가 안 울어서 늦게 발견된 것뿐이라고, 그랬어. 버린 게 아니라 남겨 둔 거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곤 경민은 다시 코를 골았다. 승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조리사 선생님이 원장 선생님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다섯 살 때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오자, 화를 내며 엄마를 욕하는 소리였다. 승태는 그것이 자기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아니길 바랐다.
    보조석 의자를 다시 당겨 앉은 승태는,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엄마와 닮은 이목구비가 한심했다. 웃음이 나왔다. 경민은 입을 벌려 숨을 몰아쉬었다. 술 냄새가 났다. 덮으라고 준 점퍼를 목에 둘둘 감곤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일어나 봐. 말해 봐.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승태는 경민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찰싹찰싹 소리가 났는데 경민은 좀처럼 잠에서 깨질 못했다. 인상만 찌푸리고 볼이 빨개져도 그냥 “흐흐흥” 하며 울음인지 웃음인지 이상한 소리만 낼 뿐이다.
    승태는 일어나 차 밖으로 나갔다. 철거를 하다 만 반쯤 무너진 건물 앞 공터라, 주변은 깜깜하고 폐건축 자재와 누군가 버리고 간 쓰레기들 때문에 냄새나고 지저분했다. 승태는 구석진 곳으로 가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 버려진 것과 남겨진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남겨진 것은 회복될 수 있는 것인 줄도 몰랐다.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 둔 것이라 생각했다. 승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봤자 결과는 같았다. 추웠다. 밖은 이토록 추운 것이다. 이런 곳에 남겨 둬선 안 됐다. 그건 버린 것보다 더 악질인 것이다. 그는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경민이 올려놓은 발을 내려놓고 시동을 걸었다. 히터를 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론 지낼 순 없었다. 보험금 생각이 났다. 엄마가 그토록 생색을 내던 것이니 좀 더 일찍 받아야겠다고. 그 방법밖엔 없었다.

 

*

 

    “빨리 끝내는 게 좋아. 알았지?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경민의 표정은 약간 넋이 나간 듯했지만 승태의 얼굴은 생기가 넘쳤다.
    “내가 다 준비해 놨으니까 끝내고 나오기만 해. 보일러는 최대한 높은 온도로 올려놓고. 장갑은 절대 벗으면 안 돼. 알지?”
    “알았다니까.”
    경민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한텐 전화하면 안 돼.”
    “이런 일은 내가 더 잘 알아.”
    경민은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를 한 잔 죽 들이켜더니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승태는 맥주를 한 잔 더 시키려는 경민을 막았다.
    “형, 정신 똑바로 차려.”
    “정신 똑바로야. 이상한 건 너야.”
    경민의 말에 승태는 그를 흘겨봤다.
    승태는 자주 꿈을 꾸었다. 그의 앞엔 항상 높고 커다란 문이 있었다. 열리지 않는 문이기도 했고 열릴까 두려운 문이기도 했다. 문 밖으론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승태는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문이 덜컹거렸다. 힘껏 문을 밀어 막아섰다. 문 밑으로 검은 물이 새어 나왔다.
    “내가 할게. 아무래도 안 되겠다. 형을 괜히 끌어들인 거야.”
    승태가 말했다. 경민은 이번엔 아무 말이 없었다. 아까처럼 펄쩍 뛰며 자신이 하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 이제 앞만 보고 살자. 내년엔 나도 취업해서 돈 벌고. 그러면 생활도 괜찮아질 거야. 아니다, 우리 집 얻지 말고 장사나 해볼까?”
    승태가 제법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너, 촉법소년 아니라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경민이 말했다.
    “그땐 네가 내 죄를 뒤집어써 줬지만.”
    “뒤집어쓰긴 누가? 내 일이었잖아.”
    “그게 왜 네 일이야?”
    “나도 괴롭혔던 놈이야.”
    불판을 닦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단가가 조금 더 좋았다. 담배를 사다 주던 김씨 아저씨는 술에 취한 경민의 바지를 벗기려 했고 말리는 승태를 때렸다. 차이가 있다면, 경민의 손이 닿는 곳에 과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때 일은 말하지 않기로 했잖아.”
    승태는 달래듯 말하며 모처럼 빙긋 웃었다.
    “형, 계획대로만 하면 돼. 완벽하다고.”
    경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승태야, 이건 달라.”
    “그리고 상관없어. 이미, 난…….”
    승태는 말을 삼켰다. 원장 선생님은 늘, 인간의 명은 하늘에서 이미 정해 놓은 거라 했다. 승태는 이미 정해진 나이를 넘어 너무 오래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 천적들뿐. 잡아먹히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세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고달팠다. 사자의 습격을 받을 때 겅중겅중 뛰어 도망가던 얼룩말이 어느 순간 뛰는 걸 멈추고 순순히 사자의 공격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잡히는 심정이 조금은 이해됐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자의 기분도 되어 보았다. 전의를 상실한 얼룩말을 물어뜯을 때의 심정에 대해서도. 사자의 기분도, 얼룩말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고, 어느 날은 얼룩말이 되었다가 사자가 되었다가 했다. 이번 일만 잘 되면 앞으론 사자로 살 것이라고 승태는 다짐했다. 새끼 거북도 아니고 얼룩말도 아니고 포식자가 되겠다고.

 

*

 

    대문에 이마를 댄 채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는 경민을 보며 승태는 애가 탔다. 새벽 3시 27분이었다. 누구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단박에 의심 갈 만했다. 승태는 손을 휘저었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이윽고 훔친 차 안에 있는 승태를 향해 경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에 맞춰 놓은 알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들여다보며 승태는 다리를 떨었다. 경민이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일을 마치면 계획대로 남자가 쓰던 장갑과 칼에 피만 묻혀서 나오면 됐다. 간단했다. 지난밤에도 둘이 욕설을 퍼부어대며 시끌벅적하게 싸우는 소리가 담장 밖에서도 들렸다. 새벽 3시 10분쯤 남자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전화를 걸어 유인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잘 되려니 술술 풀렸다. 이제부턴 간단했다.
    알람이 울렸다. 모든 일이 다 끝나야 했다. 알람을 중단시키고 나서도 5분이 지났다. 시시티브이도 없으니 한번 가볼까 싶었으나 재수 없게 다세대 주택 안 누구라도 나오다 승태를 발견하면 안 됐다. 초과 시간이 15분 가까이 되자, 승태는 결국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차갑고 알싸한 가을녘 새벽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승태는 성큼 걸었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곧장 열린 공용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흘깃 주변을 둘러본 뒤 어두운 골목처럼 뒤로 돌아야 보이는 현관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잘 닫히지 않던 현관문이었다. 5센티 정도 열려 있었다. “반드시 문을 꼭 닫아야 해.”라는 승태의 말에 경민은 따분하다는 듯 “당연하지.”라고 했었다.
    그는 문 곁에 바짝 다가가 섰다. 웅얼거리는 경민의 목소리가 났다. 아직도 일을 해치우지 않은 건가. 승태는 기가 막혔다. 안을 들여다보니, 솜털뭉치 같은 요크셔테리어가 바닥에 뭉쳐져 있었고 빨간 피 웅덩이가 보였다. 옆엔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뒤로 돌려 묶은 손목도 입에도, 얼핏 봐도 엉성하게 테이프를 감아 놓은 듯했다. 저러다 떼어지지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승태는 참았다. 대신 현관문을 쿵 소리 나게 닫았다. 경민은 이 소리마저 눈치 채지 못하는 듯했다.
    “어떻게 우리를 쫓아내고 개새끼를 키워요. 네?”
    경민이 말을 할 때마다 테이프로 막은 입에서 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정확했으나 말소리가 다 들렸다.
    “네가 우리 아들 꾀어냈지, 이 양아치 새끼.”
    마침내 테이프가 떨어졌는지, 은정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우, 우리, 아, 아들?”
    경민이 갑자기 말을 더듬는 것을 보니, 그 말이 경민의 신경을 건드린 게 분명했다. 경민은 말을 더듬으며 너무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우리 승, 승태를 두 번이나 아니 세 번이나 버려 놓고선. 우리 아들? 우리 아들? 그리고 나, 난? 어, 엄마라면서. 어떻게, 어떻게 그래요?”
    승태는 현관문을 두드렸다. 한 번 톡, 두 번 톡톡, 그리고 세 번째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흔들듯 쾅쾅 여러 번 내리쳤다. 그 소리에 안에서 꿈틀거리던 소리는 더 거세어졌고 나불대던 경민의 목소리는 멈췄다. 대신 은정의 목소리가 커졌다.
    “살려 줘, 살려 줘. 밖에 승태니? 살려 줘, 승태야. 이 미친 새끼가.”
    “아, 알았어. 내가,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차, 차에 가 있어.”
    승태는 경민의 말에 돌아서서 나가려다 다시 돌아왔다. 가만히 현관문 앞에 섰다.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 미안해요. 엄마 아프시죠? 죄송해요. 죄송해요.”
    경민이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그러곤 갑자기 우당탕 거실에서 무너지듯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경민의 짧은 비명이 들렸다. 윽윽, 윽윽 하는 소리가 여러 번 났다. 승태는 잠바 주머니에 한쪽 손을 넣었다. 그러곤 현관문 문고리를 다른 한 손으로 잡았다.
    “이 미친 새끼야!”
    씩씩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악을 쓰는 목소리는 은정이었다.
    곧이어, 무언가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말마의 비명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절박했다. 으윽, 하다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둔탁하게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이윽고 문고리를 잡았고 문을 열려 애를 쓰고 있었다.
    “제발, 문 좀.”
    경민의 애원하는 목소리였다. 승태는 주머니에서 짧은 칼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꼭 쥐었다. 그러곤 현관문이 열리지 않도록 등으로 버티고 선 채, 두 다리를 쩍 벌렸다.
    “밖에 승태야? 문 좀 열어 봐. 제발.”
    은정이 헐떡이며 속삭였다. 귓전에서 들렸다. 뜨거운 입김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건 무슨 소릴까. 뭔가 묵직하고 커다란 물건이 부딪히더니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와 여자의 신음소리가 엉켰다.
    “치, 치워.”
    이건, 경민이었다. 그러더니 돌연 침묵이 이어지더니 현관문을 향해 누군가 탕, 하고 머리를 부딪치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 같았다. 현관문 사이로 충격과 진동이 그대로 전해졌다. 남자와 여자의 신음이 엉키면서, 현관문이 두 번, 세 번, 있는 힘껏 밀쳐졌다. 걸쇠가 잠긴 상태라 현관 문고리를 돌리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승태는 혹시라도 문이 열릴까 봐 있는 힘껏 등으로 버텼다.
    “주, 죽어.”
    잔뜩 목이 쉰 여자 목소리인 듯했지만, 경민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주, 죽어.”
    이건 엄마 목소린가? 또다시 현관문이 들썩여댔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몸무게를 싣고 있는 칼이 몸을 쑤시고 있었다. 승태는 제 몸이 찔리기라도 하듯 문이 덜컹일 때마다 움찔했다. 뼈가 부딪혔다가 멀어지는 소리, 생명력이 빠지면서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바닥으로 툭 나둥그러지는 묵직하고도 절망적인 마찰음이 들렸다. 그리고 승태는 엄마가 사준 나이키 운동화 아래로 시커먼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천천히 바라봤다.
    안에선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그리고 낮게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문을 열고 확인을 해야 했지만, 문을 막아선 등이 도무지 떼어지지 않았다.

 

*

 

    소녀는 아기의 손가락을, 작은 발가락을 입에 넣었다. 그렇게 한 번씩 쭉쭉 빨았다. 그러곤 털실로 짠 카디건으로 아기의 몸을 몇 겹인가 더 쌌다. 종이 상자에 아기를 넣었다. 박스는 작았는데 아기는 더 작았으므로 크기는 충분했다.
    소녀는 옷을 입은 채 변기에 앉았다. 아기를 담은 종이 상자는 발밑에 두었다. 아기는 두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소녀는 다리를 덜덜 떨며 입고 온 잠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연기를 후, 내뱉으며 여전히 눈을 꾹 감은 아기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몇 번이고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댔지만, 통화 연결음만 들릴 뿐이었다.
    “개새끼. 전화를 안 받겠다 이거지.”
    소녀는 문자를 계속 보냈다. 온갖 욕설을 다 담았다. 문자를 확인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역시나 아무 연락이 없었다.
    ‘짐승만도 못한 새낀 너야.’
    아기 사진을 찍어 문자와 함께 전송했지만 답이 없었다.
    그러고도 소녀는 한참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담배 한 개비만 더 피우고도 연락이 없으면 나가리라 다짐했다. 소녀는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기다렸다. 여전히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소녀는 변기에서 일어섰다. 엉덩이가 뻐근했다. 소녀는 뚜껑을 열어 담배를 던지곤 물을 내렸다. 그러곤 발로 아기를 담은 종이 상자를 휴지통 쪽으로 조금 더 쓰윽 밀어 넣었다. 휴지통 바로 옆에 놓여서 얼핏 보면 누군가 버린 택배 박스나 옷상자같이 보였다.

 

    소녀가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아기는 차가운 타일 위, 종이 상자 안에서 눈을 떴다. 울지는 않았다. 화장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아기의 눈엔 세상의 빛으로 느껴졌다. 어느 화장실 칸에서 오줌 누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었다. 손을 씻으며 ‘으구, 춥다 추워’ 하는 소리를 들었다. 담배 연기를 마셨다. 구석진 화장실 칸으론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는 화장실 문 앞에 ‘고장’이라고 써진 종이를 붙여 놓았다. 아기는 울지 않았다. 원래 잘 울지 않는 아기였다.

 

    이윽고 분주한 소리가 났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줌마가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욕설이 들렸다.
    “어떤 년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 거야.”
    거칠게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물을 붓는 소리, 솔로 타일을 문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무섭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했다. 코끝을 찌르는 세제 냄새가 아기는 좋으면서도 불쾌했다.
    타일을 문지르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기는 배가 고팠다. 아기는 추웠다. 아기는 무서웠다. 두려웠다. 불안했다.
    검은 물이 화장실 문 아래로 새어 들어왔다. 물은 종이 상자 밑을 적시고 스웨터를 적셨다.
    문이 열리기를 기대했다. 문이 열릴까 봐 무서웠다. 문이 절대 열리지 않을까 봐 그는 슬펐던 것도 같다.

 

 

 

 

 

 

 

 

 

 

배지영
작가소개 /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며 등단.
소설집『오란씨』,『근린생활자』, 장편소설『링컨타운카베이비』,『안녕, 뜨겁게』, 방송에세이『이미 넌 고마운 사람』이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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