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마지노선

[단편소설]

 

 

도서관은 마지노선

 

 

백민석

 

 

 

    우리는 가끔 좀 같을 때가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갉아 먹는 좀.
    책 먹는 좀이 15년이나 살 리는 없으니까 우리가 진짜 좀은 아니다.
    우리는 Z세대 다음에 온 A세대다. Z 뒤로는 알파벳이 더 없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A가 된 것이다.
    우리는 A세대, 아포칼립스 세대다.

 

    Y와 Z세대가 우리 부모 세대다. 상이 부모님은 Y세대고 소월이 부모님은 Z세대다. 유정이는 Y와 Z의 결합에서 나왔는데, 그 Y와 Z가 작년에 갈라섰다. 유정이는 이혼하는 날에도 도서관에 나와 우리와 함께 책을 쏠아 먹었다. 저녁엔 우리 모두를 지하식당으로 데려가 잔치국수를 먹였다.
    우리는 A세대로서, 약간 장엄한 표정으로 앞선 세대의 종말을 예견하고 축하했다. 예전에는 Y세대와 Z세대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5G의 열광적인 추종자 세대였다. 4G보다 열 배나 빠른 이 5세대 이동통신이, 유치원 화단 위로 귀여운 소리를 내며 지루하게 날아다니던 지구의 꿀벌들을 멸종 위기에 놓이게 했다.

 

    우리가 아포칼립스 세대라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내 건강 상태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 가족은 용산의 20층짜리 아파트의 15층에 살았다. 나는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창문을 투명한 벽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있는 동안은 창문을 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긴 했다. 아빠는 날 베란다로 데려가 안아 올리고는, 우리 아파트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리버 뷰라며 뿌듯해하곤 했다.
    하지만 한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내 눈엔 그저 뿌연 대기 아래로 하찮게 반짝이는 오염된 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첫 번째 도서관 회원증을 끊을 즈음이었다. 지상 주차장에서 우리 집이 있는 15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빠는 우리 명수, 집 어디 있어? 찾아봐, 하고 즐거운 목소리를 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아래층부터 소리 내 세어 보았다. 1층, 2층…… 13층…… 우리가 방금 나온 리버 뷰 아파트는 희미하게 보이는 층까지 13층까지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 위론 구름이 짙게 걸쳐져 있었다.
    아빠가 자랑스러워하는 리버 뷰 아파트는 구름의 아가리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 구름이 내 삶도 삼켰다 뱉어 놓았다. Y와 Z세대로부터 무슨 전염병의 후유증을 물려받은 것도 아닌데, 초등학생이 되고부터 내 삶은 뭘 해도 심드렁하고 피곤할 뿐이었다. 내가 도서관의 좀이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15층을 집어삼킨 게 안개나 구름이 아니라는 사실은 천식을 앓기 시작하고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집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엄마를 돕겠답시고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렸는데, 그날 저녁부터 이마가 끓고 허파가 뒤집힐 듯이 기침이 튀어나왔다.
    우리 가족의 주치의는 흘깃 진료실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저게 구름 같지?”
    “네.”
    내가 답했다.
    “얘 또래면 원래 잘 아프잖아요, 저도 명수 나이 때 그랬어요.”
    아빠가 참견을 했다. 아빠는 복잡한 일을 싫어한다. 아빠는 빨리 회사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아빠는 늘 회사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저놈은 화학적 칼날을 품은 하늘의 닌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의사가 실망한 아빠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닌자가 뭔지 몰랐고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닌자는 표창 따위를 들고 다니며 몰래 사람을 찌르고 베는 암살자지.”
    의사가 슬픈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추며 설명했다.
    “저 닌자가 그날 내려와 명수의 기관지를 해친 겁니다.”
    의사가 다시 아빠에게 말했다.
    “은유를 쓰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됩니까?”
    아빠의 말에 의사는 나를 먼저 진료실에서 내보냈다. 진료실 바깥 복도에서 마스크를 쓰고 기침을 해대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료실에서 그때 무슨 상담이 오고 갔는지 알기까지 한 계절이 걸리지 않았다. 미세먼지와 스모그, 황사의 독성이 한순간에 밀어닥쳐, 아들의 기관지에 영구히 손상을 입혔다는 의사의 말에 부모님은 당장 행동에 나섰다. 리버 뷰 아파트를 전세 놓고 지금의 인왕산 산등성이의 저층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왔다. 아빠는 이삿날, 베란다로 나를 데리고 나가 같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이 용산 아파트 전세금이면 낡은 강북 아파트 세 채는 살 수 있다며 흥에 겨운 목소리를 냈다.
    그 집이 이 집이다. 초등학교도 이쪽으로 전학했다. 이 동네는 길에 차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 마음에 든다. 이 동네 도서관 가는 길에는 피자알볼로도 있다.

 

    산에선 바람이 힘을 쓴다. 골바람과 산바람이 아침저녁 아파트단지를 오르내리며 살수를 품은 미세먼지와 황사 구름을 씻어 내린다.
    그렇다고 산 중턱이 강변보다 덜 암울한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거실 커튼을 젖히며 소나무 숲이 말라 죽어가는 광경과 마주한다. 이미 죽은 하얀 숲이 아직 덜 죽은 파란 산등성이를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는 내내 그 꼴을 봤다. 인왕산 숲엔 새 울음소리가 없다. 새들은 중학생인 나보다 더 허약하니까, 허파를 토하고 가슴이 뒤집혀서는 죽어버린 모양이다. 숲의 바람에서는 똥, 피, 페로몬, 동식물 썩는 냄새, 엄마가 기억하는 피톤치드, 이런 냄새도 맡아지지 않는다.
    종말은 고요다, 라고 엄마는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썼다.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거실 창 앞에 서서, 소리도 냄새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 종말이 베란다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광경을 본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은 위로다.
    도서관 창문은 이중창이고 출입문들도 이중문이다. 중앙 출입문은 앞뒤 문 사이에 에어커튼이 달렸다. 바깥에서 묻혀 들여올 수 있는 혹시 모를 위험물질들로부터 동네의 개구쟁이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우리는 개구쟁이보다는 좀에 더 가깝지만, 불만은 없다.
    불만은 어른들이 품는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도서관을 락앤락 밀폐용기처럼 만들었다는 불평이 도서관 홈페이지에 등장한 적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도서관 중앙 출입문과 홈페이지 이마에는 문명의 저장고, 라고 쓰여 있다. 누구라도 읽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게 큼지막하게 써 놨다.
    도서관이 문명의 저장고가 옳다면 이중문과 에어커튼쯤은 따지고 들 일이 아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밀폐용기다.
    문명의 저장고를 지키느라 사서들은 늘 과로다. 올봄에도 돌아가신 분이 있다. 그 사서는 등이 심하게 굽어, 멀리서 보면 목이 잘린 유령이 뒤뚱뒤뚱 걷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주변에서 소란을 피워도 늘 심드렁했고, 뭘 물어볼라치면 일단 피곤한 표정부터 지었다.
    유령이 그르렁거리는 듯한 으스스한 소리도 냈다. 나처럼 어느 대비하지 못한 순간에 기관지가 손상을 입은 게 틀림없었다. 곁을 지날 때면 폐 저 깊숙한 곳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렸다. 서늘한 열람실에서 책시렁을 끌다가도 식은땀을 흘리고, 우리에게 책을 찾아 주다가 원망스러운 눈길로 돌아보며 손목과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소연을 했었다.

 

    우리도 과도한 도서관 업무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나이다.
    “도서관이 그 선생님을 그렇게 한 거잖아요, 안 그래요?”
    우리는 상심한 얼굴로 행정지원과 과장을 찾아가 질문을 했다. 과장은 관장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사서가 하는 일도 줄어야 맞는데, 이용객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사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빨랐고, 따라서 사서 일은 갈수록 늘어났다.
    “도서관은 사람을 ‘그렇게’ 만들지 않아.”
    과장은 능글맞게 웃었다.
    “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한가하고, 평화로운 장소야.”
    과장은 동화구연 하듯 말했다.
    “대화도 하지 않고 다들 책만 읽으니 얼마나 단순해? 독서인구가 드문 우리 동네에서는 특히나 한가롭지. 게다가 평화롭기까지 해, 누가 책 따위를 먼저 빌려가겠다고 싸우겠어? 책이 사람한테 끼칠 수 있는 해라면, 나쁜 꿈을 꿔서 밤잠을 설치게 하는 정도? 그렇지 않니?”
    우리가 어리다고 깔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학생이다. 우리는 동화가 아니라 현실을, 우리 도서관의 노동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었다고요. 아침 열 시부터 허리가 굽기 시작해서 퇴근 시간이면 물음표처럼 딱 꼬부라져서 펴지지도 않았어요.”
    “할아버지라니!”
    과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친구는 겨우 서른둘이었는데?”
    돌아가신 사서가 우리 아빠보다 열 살이 젊었다. 하지만 아빠보다 열 살은 더 늙어 보였다.
    “그래, 그 친구가 겉늙긴 했지. 난 몇 살처럼 보이니?”
    알고 보니 과장도 우리 예상보다 열 살 이상 젊었다. 피부 상태만으론 사람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우리도 중학생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늙은이처럼 기침을 해대고 소월이는 피부가 누렇고 뻣뻣하다. 유정이는 벌써 새치가 돋고 있고 상이는 알레르기를 앓아 저녁 무렵이면 눈가가 짓물러 있다. 도서관 사서는 서른두 살에 쉰 살 노인처럼 골골대다가 변기에서 쓰러져 고요 속에서 숨이 끊어졌다.
    과장이 우리 주의를 흐트러뜨려 놓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누구도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쉰 살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유정이가 단호한 표정으로 주장했다.
    “우리도 내일쯤 대학생처럼 보일지도 모르잖아요!”
    상이가 갑자기 깨달은 양 외쳤다.
    “하지만 대학생처럼 보인다면 난 좋은데!”
    뒤질세라 나도 의견을 냈다.
    과장은 고개를 앞으로 기울여 우리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도서관이 사서를 늙게 만들지는 몰라도 중학생을 늙게 만들지는 않는다.”
    과장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장담하마. 너희는 아직은 아니다. 중학생은 고등학교에 가야 늙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도 도서관만큼 단순하고 한가하고 평화로운 장소는 없었다. 도서관은 학교보다 훨씬 느슨한 곳이었고, 그래서 왕따나 괴롭힘도 없었고, 학교의 일진은 도서관의 이중 출입문을 싫어했다.
    회원으로 활동하는 내내, 우리는 가끔 자신이 도서관 장서에 기생하는 좀처럼 느껴질 만큼 도서관에서 안락감을 느꼈다.
    도서관은 뭐랄까, A세대 삶의 마지막 방어선 같았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은 중학교의 마지막 여름방학이 되면서 끝났다. 도서관은 학교만큼이나 기대에 어긋나고, 기대와 무관한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도서관이라는 마지노선이 뚫리고 우리 삶에 뭔가 이상한 것들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나는 여름방학 안에 완성하기로 한 웹소설 원고를 출력해 도서관으로 갔다.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 주변 풍경에 신경을 쓸 수 없었지만 평소보다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다운로드받은 삶을 사는 노인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오천 매가 목표인데 삼천 매밖엔 못 쓴 상태였고, 개학 전에 끝낸다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주인공 노인이 다운로드받을 삶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소설을 팔아 고등학교 학원비와 용돈을 벌 생각이었다.
    나와 친구들이 도서관의 좀이 된 건 읽고 쓰는 걸 좋아해서다. 상상력이 발군인 상이는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들을 필사하고 있었다. 상이는 넷플릭스에 작가로 입성할 꿈을 품고 있었다. 학자가 꿈인 소월이는 세계의 잉여로서의 삶에 대한 논픽션을 쓰기 위해 우리와 사서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비현실적인 유정이는 동아시아 철학사를 독학하고 있다. 상화는 유튜브에 영상 시를 써서 도서관 식비를 벌고 있다.
    아빠는 내가 소설을 플랫폼에 올려 학비를 벌겠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아빠가 내 나이였을 때는 그저 공부만 하기에도 빠듯했다고 했다. Z세대에 비해 A세대는, 평균 체격이 커진 만큼이나 지적 능력도 커졌다. 뭐 당연하게,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 세대니까.
    A세대는 중학생 정도면 벌써 세상을 상대로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
    나는 바깥쪽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에어커튼 아래 잠시 서 있다가 안쪽 출입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갔다. 나는 보안검색대를 지나려다 말고 고개를 들어 도서관 로비를 살펴봤다. 어제와 다른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었지만 요즘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나는 가로막대를 밀고 들어가 로비를 가로질렀다. 2층으로 가는 계단 아래 서자 로비 저 끝에 살짝 문이 열린 사서실이 보였다. 사서 하나가 문 께를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6개월 전에 온 계약직 사서였다. 도서관을 우리보다 오래 다닌 사람은 없었다. 관장도 2년 전에 왔고, 과장은 3년 전에 왔다.
    나는 2층 제1열람실로 들어가 소월이 옆에 앉았다.
    “안녕.”
    나는 노트북과 가방에서 다 쓰기도 전에 벌써 죽어가는 소설 원고와 검정과 빨강, 볼펜 두 자루를 꺼냈다.
    “안녕.”
    소월이는 노트북으로 인터뷰 원고를 검토하면서, 한가로운 잉여들에게 도서관이란 얼마나 맞춤한 듯한 곳인가, 하고 감탄을 했다. 그녀는 내년에 논픽션 작가에 도전할 것이고, 잘 된다면 그쪽으로 생애 첫 경력을 쌓게 될 것이다.

 

    “너 저 사람 본 적 있어?”
    소월이가 팔꿈치로 내 팔목을 슬쩍 건드리며 물었다.
    나는 노트북으로 플랫폼에 올라온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룬 소설을 훑어보고 있었다. 지구공학을 전공하는 어느 대학원생이 소일 삼아 쓴 작품이었다. 인류는 정말로 끈질겨서 종말 이후에도 살아남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명을 건설했고, 다시 한 번 지구의 거죽을 벗겨 먹고 있었다.
    “야.”
    소월이가 다시 팔목을 쳤다.
    열람실은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평일 오후 네 시의 풍경이었다. 눈부신 조명, 일부러 윤기를 죽인 나무 책상, 검은 천으로 싸인 의자 등받이들, 책장들, 사서들…… 지난달에도 지난주에도 그제도 어제도 보았던 그 풍경 가운데, 짙은 그늘이 드리운 얼굴을 책에 파묻고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저 사람,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소월이는 속삭이면서 대각선 건너편 테이블의 그 남자를 가리켰다.
    “책이 재미있나 보지.”
    우리는 곧 우리 뒤쪽 테이블에서도 그런 사람을 발견했다. 역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얼굴에 그늘이 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등을 펴고 목을 빼 열람실을 둘러봤다.
    창가 쪽 테이블에도, 어깨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과학 분야 서가 쪽 테이블에도 두 사람이 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역사 분야 서가 앞에는, 연분홍 셔츠를 입은 사람이 선 채로 역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두 손으로 책을 펼치고 있긴 했지만, 너무 낮게 들고 있어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소월이와 나는 말을 잊었다. 우리가 초등학생이었던 때부터 안락한 은신처였던 2층 열람실에 낯선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있었다. 그 사람들은 가슴 아래로 머리가 굴러 떨어질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짙은 그늘이 얼굴 전체에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걱정이 있거나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둘러보는 동안에도 낯선 사람들은 늘어났다. 화분 옆 소파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남자는, 우리가 층계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없었다.
    열람실은 여전히 단순하고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몇 나타났다고 해서 열람실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았다. 긍정적인 신호일 수도 있었다, 도서관 이용객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이틀이 지나고 나와 소월이와 상이가 열람실에 모였다. 우리가 즐겨 앉던 북쪽 창가 자리는 고개를 푹 숙인 남녀가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는 여행 분야의 유럽 쪽 테이블에 앉았다.
    “자는 걸까?”
    상이가 나직이 물었다. 상이는 건너편 테이블의, 알록달록한 카디건을 걸친 남자를 가리켰다. 책을 펼쳐 놓았지만 읽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남자는 책장에 꽂힌 책들처럼 그냥 거기 놓여 있는 정물만 같았다.
    도서관이 놀이터가 되면 전엔 몰랐던 소소한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그 하나가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실은 얼마나 많이 꼼지락대는가였다. 발을 떨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고개를 꼬고 입술을 핥고 눈동자를 굴리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입술을 달싹이지 않고는 책을 읽지 못한다.
    카디건을 걸친 남자는 손가락 하나 꼼지락거리지 않았다. 그는 정물이거나 정물의 그림자 같았다.
    “묵념하는 걸 수도 있잖아.”
    소월이가 속삭였다. 하지만 묵념을 십 분이나 할 리도 없고 묵념할 때의 숙연한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십 분을 지켜봤다. 남자는 십 분 동안 책을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 도서관에서는 원래 시간이 느리게 흐르긴 하지만, 남자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영원히 흐르지 않는 시간의 웅덩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혼자서는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우리 셋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열람실을 나왔다. 디지털자료실 쪽 복도에도 우비를 입은 여자가 책을 펼쳐 들고 고개를 숙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서울은 벌써 한 달째 해도 없으면서 비구름도 없는, 기상캐스터의 표현을 따르면 환장하게 아무것도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화장실은 괜찮아?”
    내가 들어갔다 나오자 소월이가 물었다.
    “응, 남자 화장실엔 저 사람들 없어.”
    내가 손의 남은 물기를 바지에 닦으며 답했다. 소월이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자 화장실은?”
    소월이는 화장실에서 나오며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응, 아직은.”
    우리는 한동안 화장실 앞에 서서 우비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디지털자료실에서 개나리색 와이셔츠를 입은 사서가 나왔다. 그는 곧장 우리 쪽으로 걸어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사서는 언젠가 식당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우리를 붙들고 자기 사연을 들려줬다. 계약직 사서로 9년째 이 도서관 저 도서관 떠돌고 있다고 했다. 그의 꿈은 칼럼니스트였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자기가 구독하는 매체들에 글을 싣고 싶었다. 그래서 다방면의 지식을 쌓기 위해 우리처럼 도서관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좀이 되었고, 결국엔 사서라는 위태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뭐가 부족해 칼럼니스트가 되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칼럼니스트가 되려면 일단 주장이 있어야 해.”
    사서가 말했다.
    “자기주장이요?”
    “아니, 그냥 아무 주장이라도. 난 그 주장이 없었어.”
    그렇다고 사서가 꿈을 잃은 건 아니었다. 그는 재재작년부터 카카오 브런치에 구독자가 30명이나 되는 반려식물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우리는 반려식물 칼럼니스트 사서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여자분 얼마나 서 있었는지 알아요?”
    사서는 별걸 다 궁금해 하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더니, 콧김을 한 번 내뱉고는 우비의 여자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순간 우리는 가슴이 덜컹 하고 머리가 아찔했다.
    “도와드릴까요?”
    정물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말을 건네면 어떻게 나올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 예. 딸아이 기다리고 있어요.”
    우비의 여자가 고개를 들더니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사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우릴 한번 돌아보고는 디지털자료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다 함께 여자가 고개를 드는 모습을 봤다. 입을 열고 또박또박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늘에 뭉개져 있던 표정을 봤다.
    우비의 여자가 하나도 놀랍지 않은 우리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크게 놀랐다.
    그렇지만 사서가 사라지자 여자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고, 어깨도 다시 처졌다. 짙은 그늘이 흘러 내려와 그녀의 뺨을 다시 뭉갰다.

 

    일요일이 지나고 나와 소월이와 상이와 상화가 모였다. 유정이는 폴란드로 새아빠와 함께 가족여행을 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상화는 2층과 3층의 열람실들을 둘러보고는, 이 낯선 독서가들이 착한 아이들 눈에만 보이는 허깨비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냈다.
    우리는 어린이 열람실에서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둘이나 발견했다. 이제 낯선 이들은 1층 로비에서도 발견됐고, 지하식당에서도 몇 자리 차지하고 있었고, 3층의 썰렁한 소극장 객석에도 앉아 있곤 했다. 책은 꼭 펴놓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읽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동네 이웃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누구고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우비의 여자는 아직도 디지털자료실 쪽 복도에 서 있었다. 그녀 옆에는 딸아이 같은 작은 여자애가 패랭이꽃 무늬 우비를 걸치고 서 있었다. 한 손으론 엄마의 손을 꼭 쥐고, 한 손으론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우리는 커다란 의문을 품고는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사서 선생님더러 또 말을 시켜 보라고 하자.”
    상이가 우리 손을 끌고 디지털자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도 정물 같은 사람들이 몇이나 앉아 있었다. 우리는 사서석으로 몰려갔다.
    “선생님.”
    상화가 부르자 사서가 고개를 들었다.
    “바깥에 우비 입은 아주머니 있잖아요.”
    사서가 고개를 들자 그늘 한 꺼풀이 스르륵, 그의 턱 아래로 흘러내려 사라졌다. 그의 동공은 놀란 사람처럼 열려 있었지만, 두 눈에선 아무런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를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귀찮아, 뭐 그런 책을 다 읽니? 같은 도서관 사서들이 가장 잘 짓는 눈빛도 느껴지지 않았다.
    청구기호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책 같았다. 도서관 책장에 청구기호 없는 책은 꽂혀 있으면 안 된다.
    “응?”
    사서가 웅얼거렸다.
    “우비 입은 아주머니 말이에요.”
    “응?”
    우리는 사서의 눈과 목소리가 점점 영혼의 소실점 너머로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 걸 어떻게 느끼느냐고? 그것도 떼로? 우리는 A, pocalypse 세대다. 소실이니, 소멸이니, 종말이니 하는 따위에 민감한 세대다.
    우리는 사서를 버려두고 디지털자료실을 나왔다. 나오며 돌아보니, 수그린 그의 얼굴 위로 다시금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2층 열람실 구석 테이블에 모여 의견을 나눴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에겐 뭐가 잘못되었는지 파악해 말로 표현할 능력이 없었다. 속닥속닥거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우리 테이블 맞은편에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리 네 명 중 누구도 그 남자가 우리 테이블에 앉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의 얼굴 아래엔 벽돌처럼 두꺼운 양장본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용기를 내자.”
    상화가 어깨를 폈다. 그녀는 이 상황이 꿈도 아니고, 저 사람들이 허깨비도 아니고, 이 모든 게 귀신의 장난도 아니라면 우리가 어째서 무서워해야 하는데? 하고 물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이유는 없지.”
    소월이가 꼿꼿이 등을 펴며 말했다.
    “우리는 무섭지 않아.”
    상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테이블을 돌아 남자에게 다가갔다.
    “뭐 읽으시는지 물어봐도 돼요?”
    상이의 도발적인 질문에 우리는 모두 숨이 막혔다.
    부러질 것같이 떨궈져 있던 남자의 고개가 움찔거렸다. 남자는 왼손을 들어 책등이 보이도록 책을 세웠다. 그러고는 상이가 제목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잠시 붙들고 있었다. 그가 펴놓은 책의 제목은 『사고의 본질』이었다. 아마 누군가 이 상황을 봤다면, 지루한 책을 억지로 읽다가 잠깐 상념에 빠진 아저씨를 도서관의 철부지들이 괴롭힌다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열람실을 나왔다. 상이가 앞장을 섰다. 우리가 떼로 미쳤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이번엔 복도의 우비 모녀에게로 돌진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진짜 궁금해서 여쭤 보는 건데요.”
    소월이가 상냥하지만 집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비도 안 오는데 우비는 왜 입고 계신 거예요?”
    우비를 입은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베일이 벗겨지듯 여자의 얼굴에서 그늘이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비는 왜 오지 않는 걸까요?”
    우비의 여자는 책에 쓰인 문장을 읽듯 또박또박 되물었다.
    그러고는 딱히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여자는 우리 넷과 차례로 눈을 맞췄다. 그늘이 그녀의 공허한 눈동자 속에 암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왜냐하면 날이 가무니까요.”
    내가 바보 같은 대꾸를 했다.
    짧고 총기 없는 대화가 끝나자 우비의 여자는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여자의 손을 꼭 잡은 조그만 아이는 우리를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유정이가 가족여행에서 돌아왔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우리만의 망상인지 알고 싶어, 일부러 유정이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불안한 눈으로 지하 1층 식당을 둘러보며 유정이가 속삭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오도카니 식당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기는 처음이었다. 스테인리스 테이블에 코를 박고 있는 그들 앞에는 과자봉지도 식판도 책도 놓여 있지 않았다. 주방 안을 들여다보니 세 분 아주머니 가운데 한 분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설거지통 앞에 서 있었다.
    “웬 도서관에 사람이 이렇게 많아?”
    유정이가 지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층계 중간에도, 식당으로 내려가다가 그만 걷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유정이는 놀란 눈으로 다가가 똑바로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 아저씨 무섭다, 그치?”
    유정이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로비에도 어느 순간 갈 방향을 잃고 멈춰 선 듯한 사람들이 다섯이나 있었다.
    유정이는 좀 전까지 폴란드가 부럽다고 떠들고 있었다. 바르샤바에 작은 서점들이 얼마나 많은지, 백 년씩 된 도서관들은 얼마나 멋진지, 그리고 책을 읽는 폴란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에게 알려줬다. 아마 그녀 엄마가 학구열을 부추기기 위해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끌고 다닌 모양이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위기였다. 이용객이 줄고 줄어 어느 요일, 어느 시간에든 열람실 좌석이 3분의 2 이상 차 본 적이 없었다. 도서관에 대한 사랑이 식게 된 데에는 밀레니얼 세대의 지적 활력에 깊은 상처를 남긴 세계적인 유행병도 한몫했다.
    새 책은 꾸준히 들어왔지만, 서류인간의 얘기로는 많은 책들이 대출기록 한 번 없이 지하 창고로 보내지고 있었다. 서류인간은 어느 날 종이 한 장을 흔들며, 지난 십 년 동안 서울에서 폐쇄된 도서관들의 리스트라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서울이니까 그나마 나았다. 전국에서 도서관이 죽어가고 있었다. 교육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문을 닫기 전에 도서관의 문을 먼저 닫았다.
    서류인간은 1층 문화교실의 담당자로, 늘 서류에 치여 살아 우리가 붙인 별명이었다. 그는 평소에는 각종 공무로 산더미 같은 서류 작업을 하다가, 이따금 관장의 지시가 내려오면 문화교실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작가와의 만남”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곤 했다. 그는 도서관에 둘밖에 없는 정규직 사서였다.
    놀랍게도 이제 도서관은, 우리가 초등학생이었던 무렵만큼이나 사람이 많았다. 열람실에도 식당에도 로비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돌아온 과거는 과거 같지 않았다. 사람은 말고 숫자만 돌아온 것 같았다.
    유정이는 1층 가장 구석에 있는 문화교실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녀는 서류인간과 가끔 떡볶이도 먹는 사이였다. 그녀는 반쯤 열려 있는 출입문을 벌컥 열어젖히더니, 안으로 뛰어들려다 말고 숨이 멎는 소리를 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나쁜 일들은 많았다. 우리는 소방훈련을 하듯 이미 그런 것들을 다 한 번씩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 우리도 유정이 옆에 서서 숨이 멎는 소리를 낼 수밖엔 없었다.
    문화교실에서는 서류인간이 정말로 서류 더미로 변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사서에게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물을 수는 있었다.
    “선생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서류인간은 유정이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움직움직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정수리에서 A4용지가 서너 장 펄럭이며 떨어져 내렸다. 어제만 해도 얼굴이었을 것에서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눈이 있었을 자리에는 그저 쌓아 놓은 종이 더미 사이의 빈틈 같은 것이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서류인간의 입이 있었을 자리가 서서히 벌어지더니 인간의 말소리가 아닌, 그러니까 종이가 부스럭대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정수리와 어깨에서는 A4용지 몇 장이 흘러내렸다. 그가 내는 부스럭 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어쩐지 점차 애처로운 기운을 띠어 가는 것만 같았다. A4용지들도 계속 떨어져 내렸다. 책상과 걸상 아래에는 다양한 양식의 서류들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흩어졌다.
    “군것질하러 가자는 얘기 같아.”
    경악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유정이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서류인간이 우리 때문에 더욱 곤란해질까 봐 겁이 났다. 도서관에서 종종 벌어지는 사고가 지금 그에게 일어날 수도 있었다. 복사기에 복사 용지를 넣으려다 용지 뭉치를 바닥에 쏟아버린다든지, 서가에서 책을 빼려다가 와르르 책들이 무너져 떨어진다든지, 책시렁이 엎어져서 바닥이 책들로 난장판이 된다든지 하는 사고 말이다.
    누가 살짝 밀기만 해도 서류인간은 문화교실 바닥에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수천 장은 될 A4용지를 우리가 다시 걸상 위에 쌓아 놓는다고 해도, 그것이 도로 서류인간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서류들을 결합해 쌓아야 인간이 되는지 전혀 모른다.
    우리는 가만히 뒷걸음질 쳐 서류인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유정이가 마지막으로 문화교실의 출입문을 닫았다.
    우리는 마침내 말할 수 있었다, 마지노선은 무너졌다.

 

    우리 다섯은 도서관의 맨 위층부터 지하층까지 구석구석 다녀 봤다. 괴상하고 난해한 광경이긴 했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자리에 붙박여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정물 같은 사람들이 누구에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도서관의 낯선 독서가들은 늘어나고 있었다. 늘어나는 속도도 빨라졌다. 어딘가의 둑이 터져 도서관 안으로 끊임없이 어둑어둑한 그늘 같은 사람들이 밀려들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도서관이 음울하고 음침한 얼룩 같은 그늘에 침수되고 있다고 확실히 느꼈다. 도서관은 이제 어딜 가나 그늘 같은 사람들투성이였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소변기 앞에 선 채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아저씨도 있었다. 민망하고 혐오스러워서 여자 아이들한텐 말도 하지 못했다. 여자 화장실에도 똑같이 여자들이 앉아 있을 것이다.
    1층 열람실은 이제 우리가 앉을 자리도 없이 고개를 푹 수그린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2층 열람실에는 빈자리가 좀 있었지만 우리는 절대 섞여 앉고 싶지 않았다. 관장실에도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리는 관장이 커다란 원목 책상에 앉아 고개를 꺾고 정물처럼 굳어 있는 모습을 봤다. 두 턱이 눌려 세 턱이 되어 있었다.
    이제 저녁 7시였고 배가 고팠다. 집에는 도서관에서 학교 공부를 한다고 아까 전화를 해놓았다. 우리는 로비를 가로질러 도서관 출입문을 향해 섰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도서관은 평일에는 아침 9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았다. 우리는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우리는 문을 열고 나가 골목을 지나 평소처럼 마약김밥집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란 희미한 예감이 들었다.
    소월이가 안쪽 출입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엄마가 어디서 뭘 하든 저녁은 꼭 챙겨 먹으랬어.”
    우리는 반대하지 않았다. 소월이에게는 언제든 떠날 자유가 있었다. 우린 스스로 떠날 결정을 할 만큼 성숙했고, 친구의 의사를 존중해 줄 만큼 충분히 민주적이었다.
    “갈 테면 가! 물보단 피가 진한 법이니까!”
    내가 소리 질렀다. 그러자 아이들은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실은 나도 무슨 생각이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넌 정말 저녁 한 끼를 못 굶는 아이구나!”
    상이도 질책을 했다.
    “엄마가 친구들을 서운하게 하랬어?”
    유정이도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친구를 울렸다. 소월이가 울면서 문을 열고 나가자 우리는 서운함보다 깊은 후회로 몸을 떨었다.

 

    우리는 지하식당으로 내려가 아무도 지키지 않는 판매대에서 있는 대로 빵과 음료수를 집어왔다. 식당은 어깨를 부딪칠 만큼 사람들로 붐볐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들어 우리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사이에 상이가 사라졌다.
    남은 유정이와 상화와 나는 로비 귀퉁이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배를 채웠다. 그러는 사이에도 낯선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우리가 딴 데로 고개를 돌리면 좀 전까지 바라보던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나타났다. 출입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나타났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운동 삼아 다시 3층부터 지하층까지 순찰을 돌았다. 이제 고개를 수그린 정물 같은 사람들은, 도서관의 모든 책걸상과 화분과 보드마커와 텀블러와 머그잔을 다 합친 것보다 수가 많아졌다.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아직은 책의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191,200여 권의 장서가 있고, 도서관 입장객이 장서보다 수가 더 많을 수는 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도서관의 장서는 서울 용산구 전체 인구보다 살짝 적은 정도였다.
    “아직 희망은 있어.”
    내가 혼잣말을 했다.
    “무슨 희망?”
    상화가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책.”
    하지만 책이 무슨 희망이 될지는 아주 먼 훗날에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이 우리 인생에, 이 세상에 어떤 희망이 될지는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될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지금처럼, 도서관의 좀처럼, 훗날에도 계속 책을 읽고 독서가로 살아간다면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밤 9시 30분이 되었다. 방송이 나왔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됐으니 읽던 책을 서가에 도로 꽂고 자리를 정리해 달라는 방송이었다. 컴퓨터에서 알람처럼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녹음파일이었다.
    우리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로비를 지켜봤다. 30분 후면 다들 도서관을 나가야 한다. 그리고 경비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출입문을 점검하고 나가면 도서관은 텅 비게 된다. 그래야만 한다. 10분이 지나갔다. 2층과 지하로 통하는 층계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도 무질서하지만 어쨌거나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는 낯선 이들이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도서관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고개를 푹 수그린 그대로 도서관을 나서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서관이 문 닫을 시간에 이용객들이 집에 가는 건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선 당연했다.
    오히려 집에 갈 생각은 않고 로비를 지키고 있는 우리가 상식 밖의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집에 안 가?”
    상화가 물었다.
    “소월이랑 상이는 아까 아까 갔잖아.”
    유정이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백 퍼센트 사람 같지는 않지만, 도서관은 다시 낯선 이들로 붐비게 되었다. 이용객이 늘어난다는 건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도서관의 죽은 서가마다 다시 따뜻한 피가 돌게 될 수도 있다.
    도서관 밖으로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개는 그대로였다. 그들은 안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정물 같은 느낌으로 주택가의 밤거리로 흩어지고 있었다. 도서관 마당을 나가 오른편으로 가면 아파트단지가 나오고, 왼편으로 가면 연립주택 단지가 나오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또 다른 아파트단지가 나온다.
    우리 셋도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10시까지 5분 남았다. 평소라면 경비원 아저씨가 지하에서 쿵쾅거리며 올라와 사무적인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내쫓을 것이다. 우리는 고개를 수그린 사람들의 행렬 맨 끝에 섰다. 돌아보니 서류인간이 A4용지를 꾸준히 뒤로 떨구며 문화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요새 얼마나 과로에 시달리는지 A4용지 500장 분량 정도는 살이 빠진 것 같다.

 

 

 

 

 

 

 

 

 

 

백민석
작가소개 / 백민석

단편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수림』,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공포의 세기』, 『교양과 광기의 일기』, 에세이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 『헤밍웨이』가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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