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와 케이와 그런 여자들

[단편소설]

 

 

샐리와 케이와 그런 여자들

 

 

조남주

 

 

 

    학부모 총회라니.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유치원 가서 잘 먹고 잘 놀다 오면 되는 거 아닌가. 대체 뭘 상의하고 건의하겠다고 학부모 총회씩이나. 은주는 그런 마음으로 새봄을 영어유치원에 보낸 게 아니었다. 퇴근한 용근에게 메시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나가지 말까?”
    “왜? 가서 엄마들도 사귀고 정보도 얻고 그러면 좋지 않아? 궁금한 거 많았잖아.”
    “새봄아빠 이런 거 기겁할 줄 알았더니.”
    “그냥, 다들 모이는 자리잖아.”

 

    새봄은 세 살 가을부터 인근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녔다. 어린이집은 교회와 같은 건물이고 교단에서 운영을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좀 성대하게 하고, 부활절에 달걀을 나누어주고, 밥 먹기 전에 식사기도 노래를 부르는 정도였다.
    보육 포털에 대기했다가 차례가 되어 등록했을 뿐, 은주와 용근은 종교가 없고 어린이집은 만족스러웠다. 선생님들이 다정하고 느긋한 게 가장 좋았다. 새봄이 낮잠을 거부할 때도 숟가락질을 못할 때도 목덜미 피부가 빨갛게 일어났을 때도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흔히 겪고 지나가는 일이라고 은주를 안심시켰다. 선생님 말대로 새봄은 곧 곤히 잠들었고 숟가락질도 능숙해졌고 계절이 바뀌며 피부 발진도 좋아졌다. 게다가 정부지원금 이외에 따로 들어가는 비용이 행사비와 특별활동비 등을 다 해도 한 달에 10만 원 정도로 저렴했다.
    어린이집은 7세 반까지 있었다. 은주는 새봄의 발달 상황을 봐서 여섯 살에 유치원으로 옮기거나 쭉 어린이집에 보내다가 곧바로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생각도 있었다. 천천히 고민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봄이 네 살 되던 여름부터 같은 반 엄마들이 유치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5세 반으로 처음부터 들어가지 않으면 6, 7세 때는 증원 인원만큼만 추가 선발하기 때문에 유치원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은주의 마음도 일렁거렸다.
    용근은 출근하고 새봄은 어린이집에 간 평일 오전, 은주는 자연드림에서 채소 몇 가지와 유기농 사과주스를 사오다가 충동적으로 어린이집을 찾아갔다. 그냥 창 너머로 교실 분위기나 보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새봄이네 반 아이들이 앞마당 텃밭에 나와 있었다. 은주는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새봄을 한참 지켜봤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새봄이 늘 무리의 뒤편에서 머뭇거리다가 다른 아이가 비키고 나서야 흙을 파고 꽃향기를 맡고 열매들을 만져 본다는 것을. 그러다가 누군가 슬금슬금 밀고 들어오면 다시 멀뚱멀뚱 밀려난다는 것을. 저리 비키라고, 아니면 같이 보자고 말하는 아이들 틈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것을. 모종삽을 빼앗기고도, 분무기를 빼앗기고도 울거나 소리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고 걸음도 뒤뚱뒤뚱 야무지지 못하다는 것을.
은주는 집에 돌아와서야 눈물을 쏟아냈다. 대체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이러려고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었나.

 

    “앞으로 화요일, 목요일은 차 가지고 나가지 마.”
    “무조건?”
    “응. 무조건. 새봄이 발레 다닐 거야.”
    “예쁘겠다.”
    물론 새봄은 예쁘겠지만 은주는 그저 딸 예쁘라고 코앞에 문화센터 두고 차로 15분 거리에 비용이 두 배가 넘는 전문 발레 스튜디오를 찾아 등록한 것이 아니다. 자세를 바로잡고 뼈와 근육을 단련해 결과적으로 키도 키우고 자신감도 키우려는 것이었다. 새봄이 11월생이라 체격에서 밀리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판단했다.
    기관도 고민이 됐다. 새봄이네 반은 원아 15명에 선생님이 두 분인데 원아 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5세가 되면 한 반에 원아 15명, 선생님 한 분이다. 발달 속도가 천차만별인 아이들을 선생님이 모두 섬세하게 챙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럼 당연히 늦되는 아이가 방치되다 처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방치되는 아이가 새봄이라고 생각하면 은주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입술을 꾹 물고 은주의 말을 듣고만 있던 용근이 말했다.
    “옮기자. 새봄이한테는 첫 번째 사회생활이고 뭐든지 첫 경험인데 의기소침하게 물러서는 것부터 배우면 되겠어? 그러다 애 성격 버려.”
    “사실 1, 2월생하고 비교하니까 늦어 보이는 거지 월령으로 치면 새봄이 하나도 안 늦어. 딱 제때 걸었고 제때 말했고 기저귀 떼는 건 조금 늦었지만 대신 한 번도 실수를 안 했잖아. 새봄이가 신중하고 정확한 스타일이야. 발레 선생님도 그러시더라. 한번 자세를 잡아 주면 그대로 유지를 한다는 거야, 네 살이. 초등학교 언니들도 그렇게 못 한다고 놀라더라니까?”
    “나 중학교 때까지 육상 했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무튼 케어가 잘 되는 데로 옮겨야겠어. 일반유치원은 지금 어린이집보다 나을 게 없고 놀이학교나 영유로 알아보고 있어.”
    “그래. 돈 생각은 하지 마. 내가 밤에 대리라도 뛸 테니까.”
    후보는 셔틀버스로 30분 거리의 ‘열매 자연학교’와 걸어서 5분 거리의 영어유치원 ‘키즈클럽’으로 좁혀졌다. 두 곳 모두 교사당 원아 수는 일반유치원의 절반 수준으로 비슷했고 비용도 일반유치원의 세 배 정도로 비슷했다. 열매 자연학교는 넓은 놀이터에 옥상정원까지 있어서 야외 활동이 많고 특히 일주일에 하루는 근처 수목원에서 꽃과 나무를 관찰하며 실컷 뛰어논다는 점이 좋았다. 키즈클럽은 무엇보다 집에서 가깝고 각 교실과 강당, 조리실까지 CCTV가 설치되어 부모가 휴대폰으로 자녀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안심되었다. 영어야 뭐, 잘해서 나쁠 것 없고.
    은주와 용근은 긴 대화와 고민 끝에 키즈클럽으로 결정했다. 열매 자연학교에 다니려면 아직 어린 새봄이 왕복 한 시간 넘게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키즈클럽의 한국인 담임선생님들이 모두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키즈클럽에 오래 근무했다는 점도 믿음직했다. 영어야 뭐, 일찍 시작해서 나쁠 것 없고.

 

    새봄은 키즈클럽에 잘 적응했다. 아침마다 선생님들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반겨 주신 것이 한몫했다. 은주가 자주 CCTV를 확인했는데 확실히 새봄은 어린이집 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새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반찬이 맛있다고 하면 계속 계속 더 주신다는 걸 보면 밥도 잘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든 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거슬리는 딱 한 명을 빼면.
    어느 날 갑자기 화면 속의 흐릿한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몸을 조금씩 뒤틀거나 두리번거리긴 해도 대체로 정해진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아이만 교실 뒤켠 놀잇감 앞에서 놀고 있었다. 어느 날은 한 친구에게 딱 붙어 앉아 쳐다만 보고 있고 어느 날은 혼자 서 있고 어느 점심시간에는 선생님이 돌아다니는 그 아이를 붙잡아 밥을 먹이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쟨 뭐지. 은주는 묘한 불안과 불쾌감에 휩싸였다.
    조심스럽게 새봄에게 물었지만 새봄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런 친구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있지만 상관없다는 것도 아니고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겠단다. 아이들이란 이렇구나.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예 모를 수도 있구나. 그렇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진짜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나 사고가 발생해도 아이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대처하지 못할 테니까.
    특별활동이 있던 날, 일부러 조금 일찍 새봄을 데리러 가서 담임선생님께 그 아이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렇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유쾌하게 웃으며 그 친구가 11월생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요맘때는 한 달 한 달이 크잖아요. 아, 새봄이가 똘똘하고 빠르니까 모르실 수도 있겠다. 암튼 11월생인 데다 약간 늦돼요, 그 친구가. 어머니 보시기에도 좀 어리죠? 그래도 누구 방해하거나 괴롭히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어요. 그 친구 어머니가 워낙 경우 바른 분이고요, 저도 늘 신경 쓰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은주가 CCTV로 보기에도 딱히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알겠다고 하고 말았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걸리는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담임이 그 친구에게 늘 신경을 쓴다면 다른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덜 살피게 되지 않을까. 또 애 엄마가 경우 바른 것이 아이가 산만한 것과 대체 무슨 상관일까. 다른 학부모들은 아무도 모를까. 아무도 유치원에 항의하지 않았을까. 이후로 은주는 CCTV를 볼 때마다 새봄이 아니라 그 아이를 지켜보게 되었다.

 

    총회 장소는 새봄의 돌잔치를 했던 한식당이었다. 물론 돌잔치는 15명 정원의 작은 룸을 빌려서 양가 직계 가족끼리 간소하게 치렀다. 그래도 은주는 돌상 차리고 한복 빌리고 스냅사진 예약해서 찍느라 바빴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직원이 먼저 키즈클럽이세요? 하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복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세미나실들이 있는데 그중 ‘A 세미나실’로 들어가시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식품 캐리어가 부지런히 이동하는 좁은 복도를 따라 걸으며 여기 세미나실이 다 있구나 두리번거렸다. 돌잔치를 했던 방은 17번 룸이었다. 새봄이 생일이 11월 17일인데 딱 17번 룸이라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하다 은주는 문득 의아해졌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보자마자 키즈클럽이냐고 묻지? 내가 유치원생 엄마같이 생겼나? 역시 이런 모임에 오는 게 아니었다. 은주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이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같은 부류로 묶인다는 것에 조금 당혹스럽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약간 멍한 상태로 복도 끝까지 가서 막다른 벽 앞에 섰다. 그때 누군가 은주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샐리 어머니, 맞으시죠?”
    “아, 네.”
    “저 제이크 엄마예요. 하원할 때 몇 번 마주쳤는데.”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그럼요. 총회 오신 거 맞죠? 같이 들어가요.”
    은주는 제이크 엄마와 출입문 쪽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서로 친분이 있는지 꽤나 시끄러운 테이블도 있고 다들 입을 꾹 다물고 물만 마시는 테이블도 있었다. 조용한 곳은 주로 신입생 엄마들로 구성된 테이블이었다.
    죽과 샐러드가 모두의 자리에 놓이고 직원이 문을 닫고 나가자 가운데 앉아 있던 엄마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제가 연락드렸던 헬렌 엄마예요. 올해부터는 케이 엄마고요.”
    케이 엄마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우우 환호와 박수, 휘파람이 쏟아졌다. 은주도 눈치를 보다 같이 박수를 치긴 했는데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환영? 응원? 축하? 대체 왜 다들 박수를 치는 거지?
    이런 게 어려웠다. 엄마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상식, 행동, 의사소통 방법 같은 것들. 주변의 다른 첫째 엄마들은 모두 잘하던데 은주는 계속 겉돌았다. 그동안 평범하게 진학하고 취직하고 이직하면서 많은 인간관계를 경험해 보았지만 이렇게 적응이 안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여러 생각을 했다. 나랑 안 맞나 보다, 그사이 사회성이 떨어졌나 보다, 엄마들의 문화라는 게 좀 특이한 데가 있나 보다…….
    박수와 환호가 잦아들자 케이 엄마가 말을 이었다.
    “저한테 연락처가 대부분 있어서 이번엔 제가 연락드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모임 유지해 갈지는 오늘 천천히 다시 얘기해 봐요. 먼저 식사하시면서 서로 인사부터 나누시고요.”
    케이 엄마가 자리에 앉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냥 자기가 계속해! 그러자 동의합니다, 맞아요, 고마워, 같은 추임새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현 케이 엄마, 구 헬렌 엄마는 작년까지 키즈클럽의 학부모 대표였다. 학부모 총회가 쭉 있었던 것은 아니고 대표라는 것도 공식 직함은 아니다. 3년 전, 헬렌 엄마가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엄마들을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헬렌 엄마는 일 년에 두어 번 모임 연락을 돌리고 회비를 걷고 장소를 섭외했다. 또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 선물을 챙기고 졸업식에는 졸업생 선물을 챙겼다. 회비로 다 소화할 수 없는 일들이라 헬렌 엄마가 말없이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그러면서도 생색을 내거나 부담을 주는 법이 없었다. 농담처럼 다들 헬렌 엄마를 키즈클럽 학부모 대표라고 불렀고 헬렌 엄마도 적당히 받아들였다. 헬렌은 지난 2월 키즈클럽을 졸업했지만 다섯 살이 된 헬렌의 동생 케이가 3월에 새로 키즈클럽에 입학했으니 엄마들 말처럼 헬렌 엄마가 하던 역할을 계속하면 될 일이었다. 이제 헬렌 엄마가 아니라 케이 엄마 자격으로.
    같은 테이블의 6세 반 지나 엄마가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소곤소곤 케이 엄마가 변호사잖아, 하고 덧붙였다. 케이 아빠는 유명 로펌 소속의 변호사이고 케이 엄마도 같은 로펌에 다녔는데 지금은 퇴직한 상태라고 한다. 아이들 때문이다. 뭐든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 육아와 교육도 허투루 하지 않는 것이란다. 물론 언제든 다시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이라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 지나 엄마의 생각이었다.
    “케이 엄마도 변호사라는 거예요?”
    은주가 묻자 지나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같은 로펌에 다녔다니까요.”
    “아니, 로펌이라고 무조건 변호사는 아니죠. 여러 업무 영역이 있으니까. 회계라든가 경영이라든가, 뭐.”
    “나 케이 엄마랑 가끔 커피 한 잔씩 하고 그러는 사이예요. 케이 아빠랑 동료였다더라고. 동, 료.”
    지나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은주를 빤히 보았다. 은주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로펌에서 일하는 사람이 변호사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꾸역꾸역 변호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스스로가 이상하기도 했다. 변호사면 어때서. 변호사가 뭐라고.
    은주는 케이 엄마를 멍하니 보았다. 분위기의 중심이 케이 엄마에게 있다고 느꼈다. 분명 말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케이 엄마를 향했다. 그리고 하늘색 블라우스. 은주도 비슷한 블라우스가 있었다. 케이 엄마의 블라우스는 칼라 깃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고 끝이 둥글어 귀여운 느낌을 주는데 은주의 블라우스는 평범한 기본 칼라였다. 명품까지는 아니어도 꽤 고가 브랜드의 옷이었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아껴 입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케이 엄마가 은주 쪽을 돌아보았다. 은주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아차, 후회했다. 그냥 시선만 피했어도 되는데.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건네면 가장 좋았겠고. 회사를 그만둔 후로 사람들을 너무 못 만나고 지내선지 현대인의 생활 매너를 다 잊은 것 같다.
    “샐리는 유치원 재밌대요? 올해 개구진 애들이 많이 들어왔다는데.”
    후식으로 나온 얼린 홍시를 오물거리며 제이크 엄마가 물었다. 혹시 그 문제의 원아 얘기를 꺼내고 싶은 건가. 은주는 뭐라고 대답해야 어린애 험담이 아니라 정보 교환으로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하다 되묻기로 했다.
    “샐리는 11월생이라 그런지 아직 애기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더라구요. 제이크는 뭐래요?”
    “남자애들은 말 안 해요. 고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이나 아들은 똑같지 뭐.”
    “네, 그렇죠.”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은주는 대충 대꾸하고 말았다. 궁금은 한데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 이거지? 은주도 같은 마음이므로 이해는 하지만 너무 얄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거면 묻지나 말지.   
    후식 다 먹고 매실차도 마시고 슬슬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내내 담백한 음식을 먹었는데도 갈증이 나서 은주는 물을 또 한 컵 가득 따라 마셨다.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고 싶은 말도 사실은 있었다. 하지만 아무 소득도 즐거움도 없는 모임이었다. 헛헛한 마음으로 세미나실을 나서는데 물을 많이 마셔서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주변의 엄마들에게 인사를 하고 복도 반대편 끝 화장실에 들렀다.
    세면대에서 케이 엄마가 손을 씻고 있었다. 은주를 알아보았는지 케이 엄마가 먼저 고개를 까딱여 인사를 건넸다. 은주도 웃어 보였다. 케이 엄마는 어깨에 살짝 스치는 길이의 머리칼을 귀 뒤로 꽂았는데 다 넘긴 것은 아니고 한 움큼 정도 자연스럽게 흘렀다. 은주는 그게 어쩌다 만들어진 스타일이 아니라 섬세하게 손질한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주가 볼일을 마치고 칸에서 나왔을 때 케이 엄마는 이미 없었다. 허전하고 쓸쓸했다. 케이 엄마가 손을 씻던 자리에서 자신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슥슥 빗어 넘기며 은주는 케이 엄마를 생각했다. 호감 가는 외모, 단정한 태도, 우아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 그런데 정말 변호사일까.

 

    새봄이가 위아랫니 네 개씩 여덟 개의 자국이 선명하도록 팔뚝을 물렸다. 은주가 화를 낼 새도 없이 선생님이 먼저 상처를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고, 이후 어떤 조치를 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사고를 예방할 것인지 안내했고, 울먹이며 사과까지 마쳤다. 정말 정말 너무 죄송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는 선생님께 은주는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때린 것도 아니고 물다니. 한두 살도 아니고 다섯 살이나 된 애들이 친구를 물고 그러나. 은주는 그 이빨 자국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아이가 떠올랐다. CCTV 속 산만하게 유치원 곳곳을 돌아다니던 그 아이.
    “누가 물었어요?”
    “저희가 그 친구 어머니께도 분명히 말씀드렸거든요.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약속하셨어요.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원을 옮기든, 아무튼 샐리 어머니 원하시는 대로 한다고요. 그러니까 한 번만, 누군지 묻지 말고 이번 한 번만 저희한테 맡겨 주시면 어떨까요?”
    은주는 CCTV를 계속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이후로 한동안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온종일 작은 화면 속의 새봄만 지켜봤다. 그러다 몸살 기운이 돌아 감기약을 먹고 잠깐 낮잠을 잤던 날, 하필 그 순간, 이번에는 새봄이 등을 물렸다. 얇은 체육복 한 겹만 입은 상태였고 살점이 조금 떨어져 나갔다. 은주가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새봄은 소아과 대기실에 앉아 울고 있었다. 의사는 상처 부위가 작고 피도 많이 나지 않았다며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여 두었으니 금방 아물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많이 놀랐을 테니 자다가 경련하지는 않는지 잘 지켜보라고 당부했다.
    해열제를 먹어서인지 너무 화가 많이 나서인지 은주는 온몸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옆에 의사와 간호사가 있든 말든 선생님에게 따지듯 물었다.
    “걔죠? 지난번 걔. 혼자 교실 돌아다니고 딴짓 하고 그러는 애 맞죠? CCTV에서 다 봤어요.”
    눈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선생님에게 은주가 계속 캐물었다.
    “그동안 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없었을 것 같지 않은데. 계속 이렇게 유치원에서 감싸 주셨어요? 왜요?”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사과하실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새봄이 집에 가자고 보채는 바람에 대화는 그냥 그렇게 끊겼다. 새봄은 오후 내내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었는데 잘 시간이 되자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은주는 새봄을 폭 안고 자장가를 부르며 등을 토닥여 재웠다. 새봄이 갑자기 훌쩍훌쩍하더니 곧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눕히고 보니 새봄의 눈가에 하얗게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원하는 대로 처리해 주겠노라고 약속했었다. 모든 학부모에게 사고에 대해 밝히라고 할까. 반을 바꿔 달라고 할까. 유치원에서 내보내라고 할까. 아직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그렇게 매몰차도 괜찮을까. 잠든 새봄을 내려다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 아이의 엄마가 사과를 하고 싶단다.

 

    하룻밤 지나고 나니 은주의 마음도 조금 가라앉았다. 약속 장소로 천천히 걸으며 몇 가지 상황들을 예상해 보고 그에 맞는 반응도 준비해 두었다. 상대가 상식적인 사람이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주의를 부탁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은주도 강경하게 나갈 작정이었다.
    카페에 거의 도착했는데 통창 너머로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하는 밝은 갈색 머리칼. 설마. 은주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창 앞에 서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카페의 창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바람이 훅 불어와 은주의 긴 머리가 사방으로 날렸다. 구름이 걷히는지 은주를 올려다보던 여자의 얼굴에 순간 햇빛이 쏟아졌고 여자가 눈을 감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케이였다니. 케이 엄마였다니. 은주는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은주가 자리에 앉자 케이 엄마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리려고 왔어요. 용서해 달라, 한 번만 넘어가 달라, 그런 말 하려고 나온 게 아니라 정말 너무 죄송해서…….”    케이 엄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샐리 괜찮은가요? 정말 죄송해요. 샐리가 무서울 것 같아서 일단 오늘은 케이 유치원 안 보냈어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
    케이 엄마는 원하는 조치가 있다면 뭐든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 정작 이렇게 나오니 은주는 할 말이 없었다. 되레 은주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더듬더듬 괜찮다고, 앞으로 이런 일 안 생기게 주의하자고, 내일부터 케이 유치원 보내시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케이 엄마가 옆자리에 둔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몰라서, 드려도 될까 계속 고민했어요.”
    은주는 쇼핑백을 받지도 못하고 뭔지 모르니 밀어내지도 못했다. 케이 엄마와 쇼핑백을 번갈아 보는데 케이 엄마가 말했다. 티셔츠예요. 비싼 선물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말라는 뜻인 듯했다. 셔츠를 하나 사려고 단골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보다가 엄마와 딸의 커플티가 눈에 띄었단다.
    “케이 데리러 갔다가 샐리 몇 번 봤거든요. 이 옷 보는데 샐리 생각이 딱 나는 거예요. 정말 다른 뜻은 없어요.”
    백화점 명품관만 갈 것같이 생겼는데 옷을 인터넷으로 산다니. 은주는 케이 엄마가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졌다. 받아도 될지 모르겠다, 샐리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고 인사하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자리를 마무리했다.
    카페를 나서며 케이 엄마가 은주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은주가 동아 1차에 산다고 대답하자 케이 엄마가 자신도 동아 1차에 산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반가운 건 잠깐이고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좁고 시끄러운 대로변 인도를 나란히 걸으려니 어색하고 불편해 은주는 내내 도망가고 싶었다. 대로를 벗어나 주변이 조용해지자 케이 엄마가 은주에게 물었다.
    “근데 우리 예전에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네?”
    “나는 샐리 엄마가 되게 낯이 익은데. 이 근처에 계속 사셨어요?”
    “아니요. 결혼하면서 이사 왔어요.”
    “그러셨구나.”
    그리고 또 잠시 어색한 침묵. 이번에는 은주가 말했다.
    “저는 85예요.”
    “저는 86이긴 한데 빠른 86이라 85하고 학교는 같이 다녔어요.”
    “그럼 뭐, 거의 동갑이네요.”
    “그러게요.”
    “뭐 어디서 만났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게요.”
    102동 앞에 도착해 은주가 말했다.
    “저는 다 왔어요.”
    케이 엄마는 고개를 들어 102동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인사했다. 케이네는 더 가야 하나 보다. 단지 입구 쪽에 작은 평형이 모여 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은 평형이다. 은주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저기, 샐리 엄마!”
    은주가 공용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케이 엄마가 불렀다. 그리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서는 입술을 뜯으며 머뭇거렸다. 은주가 물었다.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혹시요…….”
    “네.”
    “미진여고 나오셨어요?”
    은주는 순간 관자놀이에서 와사삭 얼음 조각들이 터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살점이 뜯기도록 물린 새봄 앞에 섰을 때처럼 서늘한 기운이 몸을 훑고 내려갔다.
    “미진여고 나오셨어요?”
    은주도 똑같이 물었고 케이 엄마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맞구나, 혼잣말을 하더니 꾸벅 인사하고는 총총 뛰어서 멀어졌다. 은주는 찰랑이는 케이 엄마의 갈색 머리칼을 보면서 한참 서 있었다.

 

    책장을 거의 엎다시피 했는데 졸업앨범이 보이지 않았다. 은주는 새봄이 올 때까지 앨범을 찾다가 밤에 새봄을 재워 놓고 또 집안을 구석구석 뒤졌다. 앨범은 책장 위, 새봄이 어린이집 활동 파일과 보험 증서 같은 것을 모아 놓은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단톡방에서 케이 엄마의 프로필을 눌러 보니 ‘헬렌&케이맘_이서영’이라고 이름을 등록해 두었다. 앨범 뒤편의 주소록을 펼쳐 ‘이서영’을 찾았지만 없었다. 은주는 1반부터 페이지를 넘기며 다시 살폈는데 이서영이라는 이름도 케이 엄마로 보이는 얼굴도 없었다. 앨범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케이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첫 페이지, 첫 번째 사진부터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6반에서 자신의 사진을 발견했다. 당황스러울 만큼 이목구비며 분위기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 약간 포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내 사진도 알아보기 힘든데 남의 사진을 알아볼 수 있을까. 게다가 거의 20년 전 사진을.
    은주는 오히려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같은 반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얘는 수능 망쳤다고 눈 밑에 딱지가 생기도록 울었던 애, 얘는 눈썹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반 애들 눈썹을 다 다듬어 주었던 애, 얘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문제집 풀던 애, 얘는 배우 되겠다고 매일 오디션 보러 다녔던 애…… 같은 해에 태어나 비슷한 지역에 살며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하루를 보내던 아이들. 지금은 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은주는 대부분 자신처럼 아름답지도 슬프지도 않은 일상을 살아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 애들도 지금 행복하지 않을지.
    마지막으로 7반의 졸업 사진들을 살피는데 학생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친했던 친구는 아니다. 3학년 첫날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타났는데 수술 자국이 너무 짙고 선명해서 전교생에게 각인되어 버린 아이다. 선생님들이 이름 대신 쌍꺼풀, 쌍꺼풀, 부르며 그 친구의 머리를 쥐어박곤 했다. 고3이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쌍꺼풀 수술이나 하고! 졸업 사진에도 수술 흔적이 역력했다. 퉁퉁 부은 눈과 젖살이 퉁퉁한 양볼, 그보다 더 퉁퉁한 표정. 이름이 이, 자, 영. 맞아, 얘 이름이 이자영이었지.
    한참 이자영의 사진을 보는데 이상하게 슬프고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 마음은. 이, 마음은. 그리고 이 눈, 코, 입매, 턱선은 뭐지. 이 익숙한 사람은 누구지? 이자영, 이자영, 이자영…… 이, 서영? 은주는 팔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케이 엄마다. 케이 엄마가 그때 그 쌍꺼풀이었구나. 알아채고 보니 분명하게 보였다.
    은주는 덜덜 떨리는 두 팔로 앨범을 끌어안고 주방으로 나왔다. 식탁에 앨범을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 급히 땄다. TV를 보던 용근이 은주 쪽을 돌아보며 맥주 마셔? 하고 물었다. 은주는 식탁에 기대어 선 채로 맥주를 꿀꺽꿀꺽 넘기고는 뒤늦게 응, 대답했다. 용근이 가볍고 빠른 발걸음으로 식탁으로 뛰어왔다. 어깨를 들썩이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고 선반에서 견과 한 봉지를 꺼냈다. 은주는 용근의 맞은편 의자를 빼고 앉아 졸업앨범을 펼쳤다. 이자영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얘 어때 보여?”
    용근은 앨범을 당겨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쌍꺼풀 수술을 한 거야?”
    “응. 그래서 별명이 쌍꺼풀이었어.”
    “되게, 되게 뭐랄까, 쎄게 생겼네.”
    용근은 검지로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누르면서 인상을 찌푸렸고, 은주는 이자영에 대한 몇 가지 소문들을 떠올렸다. 이자영이 다른 학교 여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이자영의 남자친구가 달려와 상대 여학생들을 죄다 패준 적이 있다. 이자영은 학생이라 어찌어찌 넘어갔는데 남자친구는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들었다. 서른도 넘은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동네 건달이다, 노래방 사장이다, 말이 많았다. 아, 노래방을 하는 건 이자영네 엄마랬나. 아, 노래방에서 일하는 게 이자영이랬나. 이자영은 눈썹을 아주 가늘게 밀고 다녔다. 크흐흠, 하고 깊게 가래를 끌어올려 뱉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그때 은주는 역시 무서운 애구나 생각했었다.
    “유치원 엄마더라고.”
    “우와. 세상 좁네.”
    “변호사라는 게 말이 돼? 얘가?”
    “변호사래?”
    “그냥 소문이야.”
    “근데 쌍꺼풀 수술이랑 변호사인 거랑 상관은 없지 않나.”
    “자기가 몰라서 그래. 얘가 고등학교 때 어땠는지.”
    “친했어?”
    “그건 아닌데…….”
    은주는 남은 맥주를 단숨에 마셨다. 학부모 총회 날 그랬던 것처럼 계속 갈증이 났다. 변호사인 건, 그래, 알 수 없다고 치자. 나머진 사실이다. 이자영은 남편이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이고, 은주보다 더 넓은 평형에 살며, 두 아이를 모두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낸, 우아하고 성실하고 경우 바른 엄마가 되었다. 그때 그 쌍꺼풀이. 은주는 케이 엄마에게 혼자 느꼈던 호감마저도 수치스러웠다.

 

    새봄은 무심코 웁스, 쌩큐, 굳 좝, 엑설런트, 같은 말을 뱉었다. 그러다가도 은주가 영어로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영어유치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종종 새봄이 영어 한번 해봐라 했지만, 그럴 때면 더욱 굳게 입을 다물었다. 딱히 영어 실력이 느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영어만 생각하고 보낸 건 아니니 상관없었다.
    새봄은 같은 반 엠마와 친해져서 발레를 함께 다니게 됐고, 은주는 제이크 엄마와 친해져서 종종 오전에 커피를 마셨다. 친해지고 나서야 제이크 엄마는 케이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케이 엄마 입김 아니었으면 유치원에서 케이를 그렇게 그냥 뒀겠어? 말을 말자. 내가 이렇게 억울한데 샐리 엄마는 오죽하겠니.”
    “케이 치료받아야 할 것 같지 않아요? 같은 엄마로서 저렇게 둬도 되나, 병원은 가봤나,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자기는 마음도 좋다. 지금 케이 걱정할 때야?”
    “샐리는 이제 상처도 다 아물고 괜찮으니까요. 근데 언니, 혹시, 케이 엄마 있잖아요…….”
    은주는 뭔가 묻고 싶었다. 알고 싶고, 확인하고 싶고, 넌지시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끝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케이 엄마가 왜? 뭐?”
    “음, 그러니까,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죠? 케이 상태에 대해서?”
    “믿고 싶지 않을 수는 있지.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부모가 둘 다 그렇게 잘났는데. 케이 누나도 엄청 똑똑하고 야무진가 봐.”
    은주는 더 말하지 않았다. 케이 엄마의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짜릿하기도 답답하기도 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케이 엄마가 먼저 미진여고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밝혔다는 점이다. 그러다 은주가 정말 동창이라면, 자신을 기억해 내면 어쩌려고 그랬을까. 부끄럽지도 않나. 그 불편하고 의아한 마음만 빼면 나쁘지 않았다. 새봄도 잘 지냈고.
    그런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케이가 또 새봄을 물었다. 이번에는 목덜미 아래 승모근 부분이었고 발레복을 입으면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새봄의 뒷모습을 보고 발레 선생님이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케이를 유치원에서 내보내 달라고 말하자 원장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분명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했었다. 원장이 먼저 그렇게 말했다. 벌써 세 번째다. 은주는 이 정도 상황이라면 요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놀이치료 받고 있대요.”
    원장은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케이가 놀이치료를 받으면 뭐? 그럼 새봄이 물렸던 일이 없던 일이라도 되나? 은주는 화가 났지만 계속 새봄을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입장이라 원장과 감정이 상해 봤자 좋을 건 없었다. 샐리가 불안정한 상태다, 아직도 밤이면 경련을 하거나 울면서 깬다, 나도 케이가 안타깝다, 하지만 피해 아동의 안정이 우선 아니냐, 고 최대한 케이를 깎아내리지 않는 선에서 의견을 전했다. 그래도 원장은 머뭇거리기만 했고 은주가 물었다.
    “선생님, 뭐 할 말 있으세요?”
    케이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할 줄 알았다. 두 아이를 모두 믿고 보내주신 분이고, 유치원 일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협조해 주신 분이고, 그간의 신뢰와 애정이 있어서 차마 나가라고 할 수 없다는 그런 말들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원장은 예상 밖의 이유를 댔다.
    “이 동네 엄마들이 말이 좀 많잖아요.”
    “네?”
    원장 모임에 나가서 얘기를 들어 보면 유독 서영동 엄마들이 잘 모이고, 그러다 보니 뒷말도 많고, 요구사항도 많다는 것이다. 교육열이 더 높다는 동네도 안 그렇고, 전업 엄마들이 많은 동네도 안 그렇다는데 이유를 모르겠단다. 말하면서 원장은 샐리 어머니는 그런 엄마들하고 안 어울려서 잘 모르시겠지만, 하고 은주와 그런 엄마들 사이에 선을 그었다. 기분이 나쁘기도 좋기도 했다.
    “다 곤란해질 거예요. 저희도, 케이도, 그리고 샐리도요. 잘못한 거 없어도 그렇더라고요. 그러니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거죠.”
    은주는 잠시 흔들렸다. 여자애네 엄마가 남자애를 내보내라고 그랬다며?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한테 뭐 그렇게까지 해? 애들이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 아니야? 여자애들은 툭하면 울고 이르고 아주 골치가 아프다니까? 그런 말들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견딜 수 있을까. 그 숱한 뒷말과 지레짐작, 헛소문, 비난들을. 그렇다고 새봄의 상처를 그저 보고 있을 자신도 없었다. 게다가 그게 케이, 이자영의 아들에 의한 것이라면.
    “케이 엄마한테 전해는 주세요. 샐리가 많이 힘들어 한다고.”
    유치원에 온 김에 은주는 창 너머로 새봄이네 교실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방금 힘들어한다고 말한 게 무안할 정도로 새봄은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옆자리 친구와 색종이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케이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좀 더 쭉 빼고 교실을 살폈지만 장난감 앞에도 창문 앞에도 없었다. 오늘 케이가 안 왔나. 그때 교실 앞 의자에 앉은 담임과 그 무릎에 앉은 케이의 모습이 보였다. 둘이 함께 색종이를 접고 있었다. 도대체 케이한테 왜 저렇게 각별한 건데? 저런 애정은 우리 새봄이한테 쏟아야 하는 거 아니야?
    한숨을 쉬며 유치원을 나서는데 성격 급한 제이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얘기 했어? 원장이 뭐래? 어떻게 하기로 했어?”
    “샐리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뭘 힘들어 하는지, 그런 얘기 했어요. 남의 자식 얘기 해서 뭐 해요. 제가 유치원 그만둬라 마라 할 것도 아니고.”
    “그래, 잘했어. 케이 엄마가 그동안 귀찮은 일, 돈 드는 일, 다 챙겼는데 케이 나가 봐. 그거 누가 해? 케이 나가는 거 엄마들 아무도 환영 안 할걸?”
    은주는 화낼 기운도 없었다. 이제 운전해야 한다고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저녁 동안 케이 엄마에게 몇 번이나 전화가 왔지만 은주는 받지 않았다. 그러자 케이 엄마는 미안하다, 사과하려고 전화했다, 원한다면 케이가 유치원을 옮기겠다고 톡을 보내왔다. 은주는 여기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정작 케이가 유치원을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원장과 제이크 엄마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은주가 새봄을 등원시키고 나오는데 건물 입구에 케이 엄마가 있었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고, 무작정 기다리며 서 있는 케이 엄마의 모습에 왜인지 은주가 서러웠다. 케이 엄마가 섰던 자리에 서서 케이 엄마가 보던 거울을 들여다보던 거울 속 자신의 얼굴과 자세와 표정을 기억한다. 은주는 그때의 자신이 지금의 케이 엄마 같았을까 생각했다.
    커피 한 잔 하자는 케이 엄마에게 은주는 바쁘다고 대답했다. 그럼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아서 잠깐만 얘기하자는 것도 거절했다. 케이 엄마의 입 꼬리가 떨렸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것 같네.”
    은주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게 이자영이지.”
    깊게 생각하고 뱉은 말은 아니었다. 불쾌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까지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은주는 너무 후회됐지만 그렇다고 사과하기도 싫어 그냥 팔짱을 끼고 시선을 피했다. 케이 엄마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목울대가 출렁이는 것이 다 보이도록 침을 꿀꺽 삼키더니 은주에게 물었다.
    “이자영이 어떤데? 어떤 게 이자영인데? 너 이자영이랑 친했어? 나는 고등학교 때 너랑 한 번도 말해 본 기억이 없는데?”
    흥분해 말하다 말고 이자영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다. 미안해. 사과하려고 온 건데.”
    은주도 지쳤다. 이자영을 향한 결이 다른 여러 마음들을 이제 모두 접고 싶었다.
    “알겠어. 그만 하자.”
    “그래. 미안해. 그만 하자. 그런데 그 말들 다 사실 아니야. 고등학교 때도, 지금도. 너무, 너무 지겨워. 지긋지긋해.”
    은주는 대꾸 없이 먼저 돌아섰다. 지긋지긋하기는 은주도 마찬가지였다. 샐리 엄마도, 새봄 엄마도, 그런 여자들 중 하나로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생활도, 그런 여자들을 둘러싼 그런 여자들의 말들도 오해도 적의도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자신도 사실은 그런 여자인 것을.
    은주는 스스로의 마음이나 욕망 같은 것은 남기지 않기로 했다. 새봄만 지키면 된다. 새봄만이 중요하다. 어떤 말들도 상관없다. 은주는 아무래도 케이를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연드림에 들러 가지와 애호박과 유기농 사과 주스를 샀다.

 

 

 

 

 

 

 

 

 

 

조남주
작가소개 / 조남주

2011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 『고마네치를 위하여』, 『82년생 김지영』, 『사하맨션』, 『귤의 맛』과 소설집 『그녀 이름은』이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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