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슬픔 외 1편

[창작시]

 

 

올해의 슬픔

 

 

김경인

 

 

 

    요즘은 슬픔이 유행이라더군
    바깥에 그냥 두어도 썩기는커녕
    몇 달 동안 말랑한 떡 같다더군
    주소지만 정확하게 적으면
    눈물이 마르기 직전에는 도착한다더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불탄 자리에도
    지하철의 스크린도어와
    쉴 새 없이 죽음을 돌리는 컨베이어벨트에도
    울긋불긋 눈이 터진 매 맞은 여자와
    심장이 터진 아이에게도
    집집마다 위태롭게 올려 둔
    종이 박스가 한순간 우르르 무너지는 것처럼
    딱 그만큼의 슬픔이 제공된다더군
    슬픔에도 사람마다
    피와 분노와 고통의 농도가 제각기 다른 시절도 있었다지
    암, 옛날 일이고말고
    요즘은 다 표준화되었으니까
    어제 보낸 슬픔이
    오늘 도착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더군
    배송하던 사람이 갑자기 과로사한다 해도
    고객님, 오늘은 제가 장례 중이어서
    유령이 대신 배송 완료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슬픔은 빠르게 냉동 상태로 배달된다더군
    정확하게 슬퍼하고 싶다면
    정량만을 주문하면 된다더군
    그러니 나는 이제 나 없는 슬픔에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는군

 

 

 

 

 

 

 

 

 

 

수련

 

 

 

 

    연못 가득 수련 잠들어 있다
    저토록 아름다운 잠이라니,
    꽃의 이름을 질투하면서
    나는 잠 속으로 수련회를 떠난다
    옛 친구들과 함께 둥글고 착하게 앉아
    우리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진심을 꺼내자.
    호주머니 속 자갈이나 돌멩이를
    우르르 털어내듯이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종이에 적어 보자.
    음,음,
    너랑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음,음,
    사실은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이미 너는 죽었으니까
    죽은 친구에게 이건
    무리한 부탁이니까
    친구들은 너무 미안해서 웃으면서
    한 명씩 잠에서 빠져나간다
    꿈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아이가 있다는 것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저녁 위에 상처를 꾹꾹 눌러 적는다
    저녁은 푸른 피를 떨구며 연못을 마저 훑고 지나간다
    꿈속의 수련은 언제 끝내야 하나
    진흙에 처박혀 하얀 다리는 무럭무럭 자라고
    수련은 여러 개의 손으로
    어둠을 붙들고 곤히 잠들어 있다

 

 

 

 

 

 

 

 

 

 

김경인
작가소개 / 김경인

200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한밤의 퀼트』,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가 있음.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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