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는 먹어 치우지 않고 외 1편

[창작시]

 

 

종자는 먹어 치우지 않고

 

 

김복희

 

 

 

    네게 있는 것을 전부 내놔
    내
    가방 속에는 그늘에서 말린 옥수수 살구 씨 복숭아 씨
    해바라기 씨 파뿌리가 들었다

 

    내놔
    나는 신발을 벗고 겉옷을 벗고 가방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더 없어? 내놔

 

    나는 손을 내밀었다

 

    뭔가 더 없을까
    독 없는 것
    깨끗한 것

 

    손을 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신발을 신고 겉옷을 다시 입고 가방을 들었다
    그 모든 것을 하는 데 손이 없어 오래 걸렸다

 

 

 

 

 

 

 

 

 

 

병든 호랑이 만지기

 

 

 

 

    병들지 않았다면 손대지 못했을 호랑이
    오렌지 빛 부드러운 힘이 링거를 꽂고 철제 침대 위에 누워 있다
    기운을 내라고 강아지풀로 간질인다 새의 깃털로 간질인다 머리카락 한 줌으로 간질인다 이 강아지풀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 새의 깃털은 살아 있는 물새에게서 뽑은 것입니까 아니면 길바닥에 떨어진 것 그 모를 것을 주워 온 것입니까 이 머리카락은 그러니까 당신의 머리카락이 맞습니까 보세요 당신 아무도 괴롭히지 않은 것이 확실하지요 누군가 나를 간질이고 간지럼을 타는지 마취가 잘 된 건지 확인하려는 듯 겨드랑이를 만지고 허벅지를 만진다 나는 계속 간지럽다 가슴이 아프도록, 간지럽다 간지러워하면서 두꺼운 털옷 안쪽을 털어내지 못하고 땀을 조금씩 흘린다 링거를 꽂은 호랑이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바라본다 손을 대면 호랑이가 벌떡 일어나 손을 물어뜯고 내 손은 호랑이의 뱃속을 간질이러 들어갈지도 모르지 그러면 간지러운 호랑이는 빙글빙글 병상에서 뛰어 내려와 은빛으로 번쩍이는 수술도구들을 꼬리로 쳐서 다 떨어뜨리고 차갑게 빛나는 유리창을 부수고 그러고 나서도, 간지럽다 간지러워하면서 빙글빙글 돌 것이다 호랑이는 눈을 감고 있는데 신비로울 정도로 내가 기대한 호랑이 냄새가 나지 않는다 클로로포름 냄새가 짙게 나고 호랑이의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네 개의 발이 가지런히 옆으로 누워 있다 가까이 더 가까이 그대로 병든 호랑이를 만진다 의사 선생님 정말 제가 호랑이를 만져도 될까요 오렌지가 이렇게 빛나는 눈 멀게 만드는 과일인 줄 몰랐는데 이 호랑이를 만져도 제가 호랑이가 되지는 않겠지요 병든 호랑이를 뭐라고 할까요 가죽 주머니라고 할까요 뼈 주머니라고 할까요 이렇게 입에 산소마스크를 하고 누워 있는 호랑이는 산소마스크 호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원래 호랑이는 이렇게 뜨거운가요 병든 호랑이라 이렇게 뜨거운가요 저는 아프지 않아요 저는 건강해요 그런데요 뜨거운 거 지옥 맞죠 마음은 먼 데서 키우던 지옥인데요 지옥은 내가 밟은 뜰에서부터 물들여 온 마음인데요 그러나 먼 데란 얼마만큼 멀어야 먼가요

 

    스위치,
    수저 부딪치는 소리,
    새벽에 먹고 설거지하는 소리 같은 거,
    반대쪽,
    그 넓은 땅 청과물 코너에 서서 이민자 심사를 기다리는 친구의 무릎,

 

    친구가 살겠다는 나라에는 오렌지가 집집마다 열린다고 해요 겨울이 가을 같다고 해요 저는 종종 친구의 뺨을 쓸어 보았죠 저녁이면 수염 자국이 올라와서 다른 사람 같았는데 셰어하우스 뜰에서 오렌지 썩어 가는 게 그렇게 슬펐다는데

 

    먼 데,
    친구를 만졌던 손가락으로 무엇을 하냐면
    골골 백 년 해내야 하잖아요 그렇잖아요 먹고 자고 냉장고를 청소하는 간병인의 건강함을 생각하려고요 관람객이 별로 없네요 오렌지를 사왔어요 껍질을 까는 동안 호랑이가 나았으면 좋겠어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질 수 없었으면 좋겠어요 살아나겠죠 하지만 죽었을 때도 불러 주세요

 

 

 

 

 

 

 

 

 

 

김복희
작가소개 / 김복희

1986년생.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내가 사랑하는나의 새인간』, 『희망은 사랑을 한다』.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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