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외 1편

[창작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김준현

 

 

 

    일본식 가옥을 보존해 만든 까페였다
    죽은 사람의 일본어는 갈 데가 없어서 방황하는 개가 되었다
    2층에 앉아서 보았다

 

    그 개가 돌아다니는 모양을 보며 빨대의 내부에 대해 빨대의 허기에 대해 호흡이 많이 필요한 외국어에 대해 적었다 ‘창밖에는 밤비가 속살거려’로 시작하는 메모였다

 

    윤동주의 귀를 천 원에 산 적이 있지
    작은 종이에 사인펜으로 그려져 있었다 네 번 접었다
    이 어지러운 굴곡을 수평선처럼 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년이었을까?
    문학을 많이 해서 수학이 낯설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면서 한 층을 빼기 위해 걷는 일이 전부라는 것
    삐거덕거리는 나무 계단을 디디며 몸을 굽히며

 

    창밖에는 밤비가 속살거려
    창밖에는 밤비가 속살거려

 

    타고난 라벤더 향기가 한평생인 비누처럼 오른손에만 익숙한 필기처럼 윤동주

 

    이곳을 떠나야 했다 서둘러
    바닥에 떨어뜨린 두루마리 휴지가 경사를 만날 때 귀신이 육체를 가지고 놀듯이
    심心만 남을 때까지 아래로 아래로 계속되는
    대代를 잇는 일

 

    이곳에서 나는 햇빛이 가득한 창문과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와플 사진을 남겼고
    [횡단 내내 러시아인들은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다, 해와 무관하게]라는 문장과 정신이 이어져 있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오징어 말리는 냄새를 느꼈다

 

    어둠이 오면 수평선이 사라지고
    오징어잡이 배들의 빛이 별빛의 어머니처럼 번뜩인다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노동을 멈추고 싶었다

 

 

 

 

 

 

 

 

 

 

드라카리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 여기서*
    어마어마한 양의 대게가 죽음을 맞이하고 대게 집이 대게 삶는 김이
    대게의 냄새가 바다의 냄새가
    일본어가 몸에 밴 인형과 일본어가 몸에 밴 개처럼 남아 있는 여기서

 

    해안가에 살면서 수평선 이분법이 몸에 익었지
    도망쳐 왔다, 세상으로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글의 첫 부분
    소금 김 밑에 깔린 방부제는 몇 장의 어둠을 덮고 누워 있는가?
    그들이 가벼웠기 망정이지
    호흡이 가능했기 망정이지

 

    풍선에 들어간 귀신은 자신의 피부색을 새로 타고난다 부풀리는 입을 어쩌지 못해 부푸는 마음을 어쩔 수 없는 게 도망친 사람의 특징이다
    바다 근처에만 오면 될 줄 알았다 억양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바다 근처에서
    사투리와 일하러 온 외국인들의 낯선 패션과
    사는 게 줄줄이 널린 오징어 말리는 일 한몸 같은 하루하루로부터
    솜의 숨이 죽어가는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잤다

 

    몇 장의 어둠을 덮고 누웠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바늘이 들어가도 괜찮은 혈관을 연구 중인데
    어디를 찔러도 터질 게 분명하다
    풍風이라는 병이 여기에서 왔다고 갈매기들이 한 목소리로 울었다

 

    이놈의 대게 냄새 속에서도 새벽 운동은 해야지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
    걷다가 달리다가 걷다가 달려도 어디를 가든 바닷가
    자꾸 안경에 닿는 호흡이 계란 흰자처럼 연약하게 질기게 붙었다
    껍질을 깨고 용의 새끼가 나올지도 모르지 그들은 바람을 일으키고 기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데 어선들은 출항을 준비 중이다 그물과 해초는 절박해서 한몸이 되었고
    아래가 위를 어쩔 수 없는 수평선이
    사람을 먼 데까지 가게 만들었다 이제 돌아오게 만들어줘

 

    노래가 사람의 몸에 머무는 기간이 얼마나 긴지 쓸쓸한 사람은 직접 헤아려 봐야 한다
    노래를 계이름으로도 불러 봤지만 그건 악기를 위한 통역이다
    아기를 위해 불었던 오카리나는 도도도도도미솔솔미도 솔솔미 솔솔미 도도도 흥얼거렸지만
    이건 파도로 오는 방향이지 수평선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다 오고 가는 소리 속에서 잠이 들었다
    용꿈을 꾸고 싶다

   *  구룡포

 

 

 

 

 

 

 

 

 

 

김준현
작가소개 / 김준현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2015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시), 2020년 현대시 신인추천 작품상(평론)으로 등단.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 동시집 『나는 법』. 육아를 한다.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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