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길의 안과 바깥 외 1편

[신작시]

 

 

저 길의 안과 바깥

– 석남사

 

 

정이경

 

 

 

    1

    나는 달밤에 흰 코끼리가 들려준
    어떤 숲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어
    그것은 시가 되기에 충분한 이야기
    새벽까지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지

 

    숲에서 흰 코끼리로 태어난 엄마는
    눈매 깊은 바닷가 남자를 만난 이후부터
    꿈속에서도 숲을 찾아들었다고
    긴 밤이 바다를 건너고 숲의 정령이 되고
    내가 들은 이야기에는
    온통 새로운 모티브나 오브제가 곳곳에 가득했어
    이것은 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

 

    2

    속가의 큰딸 집에 잠시 들러 ‘좁은 등에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네 그러나 절대로 삶이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 보면 그 끝은 보이리라’며 몰래 남긴 쪽지는 한동안 이국을 떠돌던 아버지 안 계신 집안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지

 

    1965년 그 겨울, 날리던 흰 눈과 함께 가볍게 가신 우운友雲스님* 발자국 희미해져도 인연의 집 한 채 가지산 아래 두렷한 석남사 있지 육갑자를 두 번이나 돌아도 끝나지 않은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고개 끄덕이며 받아 적는 육갑자를 겨우 지난 내가 저 길고 긴 인연의 집에 영원처럼 살고 있지

 

    이것은
    저 길의 안과 바깥을 몰랐다면
    끝내 시가 되지 않았겠다

   *  우운스님 : 1912년 석남사를 중수하신 분으로 白象月이란 법명을 가진 엄마의 부친이자 나의 외조부임.

 

 

 

 

 

 

 

 

 

 

그의 두근거림에

 

 

 

 

    도시의 학교를 졸업한 그는 드디어 시인이 되었다

 

    분교가 있는 시골 마을에서
    달밤독서회를 열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이틀씩에다 방점을 찍는다
    가을볕 아래 잘 여문 나락 같은 남학생 일곱에
    여자아이들 제 엄마 손 잡고도 겨우 마을경로당에 들어선다면

 

    그의 두근거림은 일상이 된 지 오래이지만
    매번 상처가 남는데도
    끊임없이 달에게 갔다 오거나 별을 줍는 밤이 있다
    또 어떤 간식거리를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는 나
    일찍이 그의 두근거림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속이 없다구요?
    아니지요
    당신과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인걸요

 

    아직 뚜렷한 건 없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끝난 일도 아닌걸요
    자주 작동되는 그의 두근거림에 대하여
    왈가불가하지 마세요
    단지 노련한 기술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어떤 높이에 다다르지 못하고
    어떤 자리 하나 떠억하니 차지 못 했다고 해서
    그의 두근거림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또 무례하게 굴지 마세요

 

    우리가 견디는 건 단지
    낡아 가는 시간을 자꾸 새롭게 하는 일이란 걸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정이경
작가소개 / 정이경

경남 창원(진해) 출생. 1994년 시 전문지 『心象』 신인상 등단. 시집 『노래가 있는 제국』, 『비는 왜 음악이 되지 못하는 걸까』 외 발간. 제1회 경남시인협회상·경남 올해의 젊은 작가상·경남문협 우수작품집상 수상.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창작기금 수혜.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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