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 외 1편

[신작시]

 

 

질식

 

 

정덕재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인사를 놓치는 경우가 잦아졌고
    이목구비 중에서 구비가 사라지니
    입과 귀로 전하는 문학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다

 

    마스크에 익숙해지면서
    알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얼굴에
    멋쩍은 눈인사를 건넸고
    보이지 않는 입과 보이는 눈은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눈으로 전하는 얘기들이
    100와트 전등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깊은 밤에는 눈에서 빛나는 등불이
    어둠을 밝혀 나갔다

 

    상악골만 드러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입에서 나오는 열 마디 중에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것은 한 마디뿐
    뱉은 말을 다시 삼키느라
    질식사 당하는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흰 수염 얼굴

 

 

 

 

    흰 수염이 부쩍 늘어난다
    힘에 부친 것들은 색을 잃어 간다
    거꾸로 자라는 고공의 멀미로
    수염은 탈색이 되고
    거울은 어두워진다

 

    한 달 동안 수염을 기르고
    작은 수영장에 갔다
    나는 늙어 가는 흰긴수염고래라고
    주문을 걸며
    얕은 물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구경꾼 하나가 작살을 던지면`-`
    수염만 기른 포유류 한 마리는
    긴 비명을 지르며
    이십 분 남짓 허우적거리다가
    생애를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흰 수염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거울을 보는 횟수가 많아진다
    작살을 잡은 구경꾼 하나 찾느라
    종종 두리번거리다가
    긴 수염에 걸려 휘청거린다

 

 

 

 

 

 

 

 

 

 

정덕재
작가소개 / 정덕재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and332@hanmail.net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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