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편(1)

[느린 기린 큐레이션]

 

〈느린 기린 큐레이션〉
문예지 편 1

 

 

조시현, 조온윤

 

 

 

 

 

    느린 기린의 첫 번째 큐레이션은 기획자, 창작자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발행되는 ‘문예지’입니다. 지난 몇 해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독립 출판이 크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요. 덕분에 이제는 출판사에서 발행되던 기성 문예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과 기획으로 꾸려진 새로운 문예지들을 만나 볼 수 있게 되었죠. 독립 출판을 통한 문예지 발간은 기획자 혹은 창작자가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잡지라는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과 개성을 입힌 지면을 직접 만든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읽어 본 문예지 중 독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문예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기 위해 제작자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① 한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 같은 문예지, 《be:lit》

 

    음반을 만들 때 특정한 주제를 두고 한 명의 음악가 혹은 여러 음악가의 곡을 묶어 발매하는 음반을 ‘컴필레이션 앨범(Compilation album)’이라고 해요. 문예지 중에서도 여러 작가의 시와 소설이 마치 한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처럼 꾸며지는 문예지 《be:lit》(이하 비릿)이 있습니다. 최근에 새롭게 출발한 인디 출판사 ‘물(mool)’에서 반년간으로 발행되고 있죠. 지난 6월에 발행된 비릿 3호는 음악,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랑 작가를 비릿만의 특별한 기획인 ‘주제작가’로 선정해서 작가의 팬들을 비롯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어요. 이번 느린 기린 큐레이션의 문예지 취재에서 비릿 제작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비릿 제작진 여러분, 안녕하세요! 먼저 비릿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A. 비릿은 2019년 5월에 창간한 반년간 문학잡지입니다. 호별로 ‘주제작가’를 선정하고, 해당 작가의 작품 또는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필진이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 가지요. 주제작가의 신작과 인터뷰, 그리고 참여 필진의 작품을 앨범 트랙의 형태로 구성합니다. 비릿이 선정하는 주제작가란 “기성 문단 권력의 주변부에 내몰려 있음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작가, 또는 문단이 만들어 둔 틀 바깥에 있으면서 한국 문학과 독자들에게 문학적인 충격을 안겨 주는 작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참여 필진 역시 등단과 비등단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선호하는 형식의 글쓰기를 수행해 온 작가들로 구성되고요. 지난여름 3호를 발행한 비릿은 현재 4호 제작을 준비 중입니다.

 

Q. ‘비릿’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요. ‘비릿하다’는 형용사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정확히 어떤 뜻을 지니고 있나요?

A. 우선 비릿은 발음 그대로 날것으로서의 비릿함을 지향하고 있어요. 주류적으로 가공된 세련됨이 돋보이는 작품보다는 다소 거칠거나 투박한 면이 있더라도 자신의 주제를 본인만의 형식과 리듬, 태도로 형상화하고자 한 노력이 담긴 작품, 그러한 창작을 수행하는 작가를 찾고 싶죠. 또한 소문자 ‘b’로 지시되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마이너’로 규정되어 온 것들, 그리고 한자 ‘非’로 지시되는, 문학 아닌 것으로 여겨져 온 것들을 향해 관심과 애정을 보내고 있어요. 나아가 이 모든 ‘비문학성’의 ‘문학됨’을 꿈꾼다는 점에서, 비릿의 의미들은 be동사의 ‘be’로 수렴합니다. 그러니까 비릿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문학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Q. 3호부터는 인디 출판사 ‘물’에서 새롭게 발행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비릿을 만들고 있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A. 잡지가 처음 발행될 때 이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도 우리를 ‘습작생과 독자’들이라고 소개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각자의 자리에서 읽거나 쓰는 사람들로 소개하고 싶어요.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고, 현재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 비릿 만들기에 함께하고 있죠.

 

Q. 2019년에 열렸던 독립문예·출판 페스티벌 ‘텍스트 아케이드’에서 비릿을 처음 보았을 때 표지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되지 않아 재고가 다 팔려서 사지 못했던 기억이 나요. 내지 구성과 편집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예뻤고요.

A. 디자인은, 아마도 많은 독자님께서 인상적으로 느끼는 요소인 것 같은데요. 팔 할은 디자이너의 공이죠. 우선 표지 일러스트는 매호 주제작가의 작품을 읽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해석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요. 내지의 원고 디자인 같은 경우에는 편집진이 각 원고에 어울리는 폰트 종류와 크기, 정렬 방식, 문단의 너비, 줄 간격, 나아가 전반적인 색감을 정리해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편집진 개개인도 작품에 대한 나름의 시각적 해석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각 원고 사이에 유연함이 필요할 때는 사진을 배치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사진 역시 어떤 사진을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서 디자이너에게 전달하고요. 디자이너는 그렇게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거나 아예 새롭게 재해석하기도 해요. 원고에 내포된 고유한 개성을 서로 다른 디자인 포맷으로 형상화하려니 처음에는 그게 가능할까, 금방 한계를 맞게 되지 않을까 우려도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새로운 디자인과 형식은 조금씩만 비틀어 줘도 나오는 것 같아요. 모쪼록 저희는 비릿에 수록된 모든 원고가 개별적인 트랙으로서 독립된 창작물로 읽히기를 바라고 있어요.

 

2020년 6월 30일 발행된 《be:lit》 3호. 뮤지션이자 영화감독, 그리고 작가이기도 한 이랑 작가를 주제작가로 선정했다.
ⓒ나다은

 

Q. 비릿을 계속해서 만들게 해주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인쇄되어 나온 잡지를 처음 받아 보았을 때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A. 즐거움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힘이 되어 주는 순간들이 있어요. 우선 SNS나 인터넷상에서 비릿 리뷰를 발견했을 때. 한 줄짜리 문장이라고 해도 그게 그렇게 감사할 수 없어요. 그리고 매호 원고모집 이벤트가 마무리되었을 때. 모든 작가님들께 이메일로 선정 결과를 안내해 드리거든요. 당연히 대부분의 이메일은 선정해 드리지 못한 작가님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하는 메일이 되지요. 그런데 가끔, 아니 꽤 많은 작가님들께서 이번 기회로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글을 쓰는 동안 정말 즐거웠다고 답신을 보내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했다고도 많이들 말씀해 주시고요. 그럴 때면 슬프고, 동시에 감사하죠. 한 호의 원고모집 이벤트를 매듭지을 때마다 문학잡지라는 물질적 형식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기 때문에, 사실 진행을 하면서도 매번 괴롭거든요. 이게 옳은 형식인가. 이 형식 말고 모두에게 더 나은 방향의 형식 같은 건 정말 구상될 수 없는 건가……. 결국 이 모든 괴로움은 ‘문학잡지’라는 틀을 저희가 선택한 순간 불가피한 괴로움인 것 같아요. 그러한 인식 속에서 ‘이번 원고모집을 계기로 이 글을 쓸 수 있어 좋았다’와 같은 피드백을 접할 때는 저희에게 희망적인 순간이에요.

 

Q. 비릿은 부산을 연고로 발행되는 잡지로 알고 있는데요. 지역에서 만드는 문예지가 겪는 어려움이나 특별히 느끼는 차이점이 있을까요?

A. 우선 인쇄소나 배본사, 서점 같은 출판유통시장이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 탓에 겪게 되는 부담감이 있어요.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 보니 인쇄 감리를 하러 가기도 쉽지 않고요. 잡지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SNS 활동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마켓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일도 필요한데, 이런 활동들이 주로 수도권 중심으로 활성화되다 보니까 뒤따르는 어려움이 있어요. 큰맘 먹고 참여했는데 교통비조차 벌고 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고요.그리고 비수도권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문예지를 만들다 보니, 온라인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타 작가님들과 관계 맺기 어려운 점도 있어요. 온라인상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오프라인 관계로 확장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관계 맺기의 한계점이 발생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작가님들과 적정 수준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매체를 운영하는 사람들로서의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이럴 때면 모든 단점과 장점은 각각 장점과 단점으로서 양면성을 갖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역에서 문학 관련 작업물을 생산하는 사람들로서 저희는 주변화된 것들의 시야나 감각 등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었던 편인 것 같아요. 때문에 저희들이 이야기했을 때 조금 더 호소력을 갖게 되는 메시지도 있을 테고요. 한편으론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다른 문예지로부터 어떤 동질감을 느끼기도 해요.

 

Q. 앞서 설명을 들었던 것처럼 구성을 마치 앨범처럼 꾸미고 있는 것 같았어요. 목차에 ‘Track’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도 그렇고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작가를 주제로 다른 여러 작가가 공동 작업한 컴필레이션 앨범 형태의 잡지를 꿈꾼”다는 소개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이잡지의 물성을 빌린 일종의 문학 앨범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특별한 기획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A. 계기를 말씀드리려면 저희가 겪은 문제를 솔직히 말씀드려야 하는데, 우선 원고료 예산이 문제였어요. 저희의 원고료 예산은 기성 문예지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럼에도 저희는 중앙 문단에서 통용되는 최소한의 원고료 기준은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야만 비수도권 지역에서 출발하는 문학잡지임에도 지역적 경계를 허물고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와 같은 원고료 기준을 맞추자니 정작 원고의 총량이 다소 적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시만 놓고 봐도 편수가 턱없이 적었고, 소설이나 비평은 매수가 적었죠. 그러니까 컴필레이션 앨범의 형식은 다분히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식이었어요. 기성 문예지의 잣대로 들이대자면 양적으로 불충분한 총량의 작품이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떤 콘셉트의 구성이 잡지를 관통해야만 어쭙잖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1호의 필진은 저희의 신분을 증명할 아무것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탁도 수락해 주시고, 원고도 기꺼이 보내주신 분들이거든요. 그분들의 귀중한 원고를 모아 놓고 어쭙잖은 잡지를 만들면 안 되잖아요. 원고들은 이미 들어온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떠올랐어요. 주제작가에 대해, 혹은 그의 주제에 대해 함께 궁리하는 컴필레이션 앨범 형태의 잡지라면 어떨까. 마침 저희는 문학장 안에 은근하게 배어 있는 장르 간의 위계에 대해서도 고민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장르별로 원고를 구획하는 기성 문예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목차를 구성하고 싶었거든요. 독자가 책을 읽기도 전에 장르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선입견에서 각 작품이 자유롭길 희망했고요. 그러한 의미에서 개별적인 트랙으로 원고를 병렬 구성하는 음악 앨범 형태의 문학잡지는 저희가 꿈꿀 수 있는 최선의 형식이었다고 봐요. 한편으론 저희 잡지의 중요한 콘셉트 중 하나가 바로 주제작가이다 보니, 아무래도 주제작가 이외의 필진은 부수적인 위치로 인식될 우려 또한 없지 않았는데, 이처럼 각 원고가 하나의 트랙 넘버를 달게 되면서 개별성과 관계성을 동시에 갖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호가 발행될 때마다 마우스패드, 성냥, 패브릭 포스터 등 다양한 굿즈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인디출판사 물

 

Q.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근에 생겨난 문예지들이 기존 문예지와 다른 독특한 기획으로 문예지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봐요. 이러한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독립’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저희가 일군의 무브먼트에 묶일 때마다 일종의 검열을 하게 돼요. 독립 문예지가 뭘까. 무엇으로부터 독립한(또는 독립하려는) 문예지일까.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독립했을까. 아니면 독립하는 중인 걸까. 혹시, 오히려 독립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미 너무 멀어져 버린 건 아닐까. 그전에, 독립은 왜 필요할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지만 대부분 선뜻 답할 말은 떠오르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독립이라는 말에 긍정하게 돼요. 왜인지 독립이라는 말이 갖는 능동성에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적어도 이제는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미에서의 능동성. 오랫동안 한국의 문학장은 기성 권력의 인정을 받아야만 문학 세계에서 거주 가능한 시민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잖아요. 지금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고요.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인정을 받는 일에 혈안이 되어야만 했을까, 왜 그러한 시스템으로부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게 돼요. 쓰고 싶으면 쓴다는 생각,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라는 생각은 사실 무척 단순한 생각인데, 이러한 생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어떤 기제가 깔려 있었던 거죠. 혹자는 그렇게 누구나 작가가 되었을 때 완성도가 떨어지는 창작물이 무수히 쏟아지게 될 텐데 그걸 독자가 왜 읽어 주어야 하느냐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질문의 전제조건에 동의할 수 없어요. 작가와 독자가 왜 구분되어야 하나요. 읽고 싶으면 읽는 거고, 쓰고 싶으면 쓰는 거죠. 저는 이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후의 문제는 이후의 문제죠. 나 자신이 언제나 독자일 수 있듯 스스로 작가일 수 있다는 능동성의 인식이 보편화될 수 있다면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바뀌어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걸 보면요.

 

Q. 저 또한 독자와 작가를 은연중에 나누고 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인상적인 답변이네요. 앞으로 비릿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비릿 4호는 올 연말 발행을 목표로 준비 중인데, 현재로선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릿이 2021년에도,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행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요. 비릿을 안정적으로 발행하는 것, 그것 말고는 현재로서 저희가 추구하고 있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는 것 같아요. 일 년에 두 번 발행하는 잡지를 목표로 기획되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써 왔지만, 요즘에는 발행 간격을 조금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공유되고 있어요. 돈이 제일 문제고, 저희 구성원의 에너지도 문제지요. 독자 여러분도 잘 느끼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 호마다 영혼과 육신을 갈아 넣어서 만들고 있거든요. 점점 더 갈아 넣을 만한 무엇이 고갈되어 가는 걸 느껴서 요즘은 조금 슬플 때도 있습니다. 가을을 타는 건가. (웃음)

 

Q. 비릿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잡지 발행을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하셨는데, 제 욕심으로는 앞으로도 비릿의 활동이 이어져서 오래오래 읽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현실적인 문제로 발행 간격이 길어지더라도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A. 너무 많은 말씀을 드린 것 같아서 더 드릴 말씀이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에요. 다만 궁금히 여겨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3호를 발행하고 나서 특히 1년 전을 자주 돌아보게 됐어요. 1호 막 발행하고 나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객관적으로 인식되지 않던 계절들이 몇 차례 지나갔죠. 저희 모두가 일종의 패닉 상태로 1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잘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너무 많은 일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겪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찬찬히 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앞을 내다보기도 합니다. 얼마나 먼 길을 더 가야 하는지,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의 끝은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 말이죠. 1호 발행 이후 어느덧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는데요. 지금도 저희는 상상도 하지 못한 애정과 기대, 그리고 관심과 응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언제나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모든 독자님들, 작가님들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또한 오늘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인터뷰를 아낌없이 읽어 주신 분들이 부디 따뜻한 연말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② 당신의 시대와 문학에 질문을 던지다, 《시대의 사랑》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릴 문예지는 웹진과 종이잡지를 동시에 운영하며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는 《시대의 사랑》입니다. 2020년 여름 처음으로 발행되어 현재 시즌 2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유운 시인의 1인 기획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매체를 가로지르며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선보이고 있는 데다, 창작자들이 지치거나 고립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네트워킹의 창구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데요, 그렇다면 이 시대의 사랑, 《시대의 사랑》을 만나 볼까요?

 

 

Q. 안녕하세요,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시대의 사랑》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A. 《시대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문학잡지’로 정체화 하고 있지만 웹진과 문학잡지 발간을 통해 문학의 경험을 확장하고, 정형화된 문학의 형식을 비트는 복합적인 문학 플랫폼이 되고자 합니다. 문학잡지는 청탁과 투고를 통해 꾸려서 반년간 잡지로 발간하고 웹진(love-in-the-time-of.com)에서는 문학 모자이크, 댓글 백일장 등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문학 경험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1인 기획 체제이며,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어요. 참여하는 작가님들이나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은 시즌 1과 시즌 2가 조금 다른데요, 기본적으로는 프로젝트성 필진과 투고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성 필진은 제가 기획한 문학적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부합할 것 같은, 주로 신인 작가들에게 청탁을 해요. 이 프로젝트는 주로 웹진에서 진행이 되고, 종이잡지에는 무삭제 감독판처럼 조금 다른 버전이 실려요. 프로젝트가 정해지면 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시즌 전체의 큰 이미지와 주제에 따른 단락을 나눕니다. 프로젝트 필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투고 작품을 싣고자 합니다.

 

Q. 문학잡지와 웹진을 같이 운영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오는데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올해 초,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교 수업 등 일정이 미뤄지고 일자리도 잃으면서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러던 와중에 경기문화재단의 예술 지원 사업을 알게 되어 평소에 하고 싶었던 ‘문학 싸이월드’ 같은 키치한 웹진 기획서를 제출했는데 운 좋게도 선발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문학으로 어느 시대까지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요즈음 들어 삶의 반경에 변화가 많이 생기면서, 과연 우리는 무슨 시대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이 시대에 문학은 어떤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시대’를 콘셉트로 잡고 싶었어요. 문학잡지 발간은 계획에 없었는데, 문단 내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글을 개인 SNS 계정에 올리면서 비슷한 부조리한 관행을 겪은 신인 작가들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이런 부조리나 불공정한 관행을 지적할 때, 무언가를 잃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지면을 주고 싶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잡지도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사랑 로고.
©시대의 사랑

 

Q. SNS에서 로고와 디자인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판형이나 디자인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궁금해요.

A. 가장 중요한 것은 활자 피로도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형도 조금 크게 해서 활자 크기나 여백을 넉넉하게 하려고 했고요. 나머지 구체적인 디자인은 디자이너분들께 맡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반응이 좋았던 표지 디자인은 김환희 일러스트레이터가 수고해 주셨는데요, 시즌 1의 프로젝트 필진이었던 저와 김지우 극작가, 박소현 소설가, 이원석 시인의 작품을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로 자유롭게 작업해 주신 거예요. 되도록 이런 이미지화 작업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평소에 작업 스타일을 눈여겨본 작가님들께 자유롭게 작업을 맡겨서, 그 디자인 또한 《시대의 사랑》을 구성하는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하려고 합니다.

 

Q. 문예지를 만드는 데 겪는 어려움은 없었나요? 종이잡지와 웹진이라는 두 가지 매체를 동시에 기획하며 느끼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A. 아무래도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다른 독립 문예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자본입니다. 《시대의 사랑》은 아직 ISSN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이고, 문예지 지원 사업 등에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화보나 영상 촬영, 댓글 쓰기 같은 문학 ‘경험’을 계속 기획하는 이유도 일차적으로는 제가 원해서지만, 문예지 발간 사업에 지원할 수는 없으니 다른 방면으로 지원 사업에 신청하고자 하는 것도 있거든요.웹진과 종이잡지를 동시에 운영하는 것은 다양한 기획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지만, 그래서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웹진과 종이잡지가 《시대의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묶일 수 있는 연결성이 있어야 하는데, 두 매체가 워낙 특성이 다르다 보니까 웹과 종이 지면 모두에서 장점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획을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워요. 예를 들어, 저번 시즌 1에서의 문학 모자이크가 그랬습니다. 문학 모자이크는 작가들이 결말이나 절정 부분을 비워 놓고, 댓글로 독자들이 자유롭게 그것을 채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획이었는데요, 웹진에서는 댓글 기능이 있으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종이잡지에 싣게 되었을 때, 작품 전체를 볼 수 있으면서도 이 부분이 원래 빈칸이었다, 그리고 두 명의 작가가 어떻게 다른 글을 썼다, 라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편집 방향을 고민해야 했어요. 웹진의 장점이 있고 종이잡지의 장점이 있는데, 그 장점 둘이 서로를 가리지 않는 기획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1인 체제로 운영하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기획을 자유롭게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얻는 즐거움도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 이 일을 계속하게끔 하는 힘을 주나요?

A. 친구들. 친구들이 쓰는 글들. 그리고 그것을 읽는 마음이 힘이 됩니다. 함께 글을 쓰는 동시대의, 신인 작가들의 메일링 서비스를 많이 구독하고 있어요. 그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아, 이런 글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메일링 서비스를 읽다가 《시대의 사랑》의 방향성과 맞는다고 생각하면, 청탁을 하기도 합니다. 신인 작가들, 특히 비등단 작가들에게 열려 있는 지면은 거의 없어요. 그렇지만 그들이 쓰는 글들은 너무 멋지고, 명랑하고, 빛이 나요. 더 많은 사람이 그런 글들을 함께 읽으면 얼마나 더 재밌겠어요. 저는 그런 재밌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가지 파트로 기획되었던 웹진 《시대의 사랑》의 모자이크 글쓰기.
©시대의 사랑

 

Q. 텀블벅의 소개 페이지에서는 “지금 시대의 문학은 과연 무엇일까? 왜 작가들은 자신의 글이 실릴 지면을 선택할 수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어요. 시대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이상적인 창작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요?

A. 어려운 질문 같아요. 왜냐면 ‘이상적인’이라는 말이 붙으면 모든 것이 너무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올해 안에 되었으면 하는 일은 모든 청탁서에 고료를 표기하기, 더 많은 문예지에서 투고 시스템을 활성화하기, 두 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가 남은 두 달 안에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비현실적이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들이 자신을 갉아먹지 않으면서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문학도 시대에게서,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습니다. 과연 그것의 쓸모가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작가들은 끊임없이 대답하려고 한 것 같아요. 너무 지나칠 정도로요. 저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들 조금이나마, 그리고 가끔은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썼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의 발간 일정이나 준비 중인 이벤트, 프로젝트 등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현재 ‘문학 싸이월드-신체화된 문학’이라는 프로젝트로 시-화보와 희곡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11월 안으로 모두 공개가 될 텐데, 특히 시-화보의 경우 미공개 화보 사진으로 굿즈를 제작하고 있어요. 가을에는 ‘2020-퀴어 말듣쓰’라는 행사를 통해 비남성 퀴어 창작자 간의 네트워킹을 진행했는데요, 이번 겨울에도 이런 네트워킹 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사랑》이 창작자들에게 일종의 소속감을 제공했으면 좋겠어요. 언제든 함께 읽고 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그런 네트워킹 행사들을 기획해 보려고 합니다.

 

Q. 정성껏 답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이 시대의 저만의 사랑을 가지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소개나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전해 주세요!

A. 《시대의 사랑》 시즌 1에 작품을 실은 작가 DB입니다. 차례대로 작가명-《시대의 사랑》에 실은 작품명-이메일 주소입니다. 눈여겨보시고 그들의 작품을 읽어 주세요.

김계피 「벼랑 끝의 세계」 kim_kyepi@naver.com
김겨울 「갈 곳 잃은 탕진」 winterbookstore@gmail.com
김지우 「코끼리 카스테라」 iamalexakim@gmail.com
나하늘 「망한 세계에서 발견한 첫 번째 편지」 neulbaud@naver.com
류휘석 「나 말고 네가 도망치는 시」 dhqpdl3@naver.com
박소현 「인간은 최선의 꿈을 꾸는가」 summerwanes@kakao.com
백인경 「멸종이 확선된 동물 24선」 elvira43@naver.com
송정원 「최영주, 김신아, 민재희, 박연수, 하연지, 손미리, 정세연의 싸움」 sjw8542@gmail.com
오영미 「답은 늘 정해져 있고 너는 예쁘게 입 다물면 돼」 kumomi@naver.com
이원석 「잊지 않는 방안」 bluefeet@hanmail.net
이유운 「복수형의 세계들」 withwho_@naver.com
조연지 「두드리는 여기에서」 purepuree@naver.com
차유오 「어떤 사랑」 dbdh1803@naver.com
최예은 「허기진 상실」 movieyeeun@gmail.com
*본 작품들은 모두 《시대의 사랑》 시즌 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조시현

작가소개 / 조시현

2018년 실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
2019년 현대시 상반기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조온윤

작가소개 / 조온윤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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