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토마토

[단편소설]

 

 

바라보는 토마토

 

 

남궁지혜

 

 

 

    말이란 게 주워 담을 순 없는 거라지만, 만에 하나 그럴 수 있다면 해선은 사 년 전 늦여름의 새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당시 해선의 나이는 스물두 살로 여러 사람들과 생각 차이를 겪기도 하고 나름대로 상처도 주고받으며 관계성에 대한 자신의 주관을 확장해 나가던 시기였다. 대학 친구들은 그럭저럭 다정했고 몇몇 친구들과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진솔한 관계로 발전도 했지만, 자신에게는 모든 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13년 지기 동네 친구들이 있다는 점을 별도로 상기했다. 그에게 동네 친구들은 서로의 가정사를 고스란히 봐온 만큼 내밀한 사이기도 했고 저마다 모난 구석이 있더라도 그것을 받아 줄 수 있는 일종의 애틋함(신뢰를 바탕으로 한)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해선은 그 애틋함을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혹여 내게 상처를 주더라도 어떠한 악의도 없는 것을 미리 알고 용서하는 것, 자신의 모난 구석을 껴안고 후회하는 친구를 끊임없이 다독여 주는 것, ‘너니까 이해해’ 같은 말로 사랑해 주는 것. 해선은 그렇게 자신이 정의한 애틋함을 충분히 그들에게 나눌 수 있다고 여겼다.
    사 년 전 그날, 해선이 서은에게 무심하게 던졌던 말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로등도 몇 없는 동네의 낡은 아파트에서 술을 진탕 마셨던 새벽, 거실에 널브러진 빨래처럼 누워 있던 해선은 느닷없이 산책을 나가겠다는 서은을 따라 놀이터까지 걸었다. 둘은 노후를 보낼 실버타운에 대한 농담과 각자 보내는 유쾌한 학교생활, 중학교 때 만들었던 빼빼로까지 순서 없이 주제로 삼아 이야기했다. 그러다 대화에도 인터미션이 찾아온 것처럼 침묵했다. 한참 뒤에야 서은이 말했다.
    “너는 아무렇지 않아? 인주가 매번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
    제법 조심스러운 시도로 꺼낸 말이었으나, 내용은 직설적이었다. 밖에 나오기 전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인주를 떠올리며 해선은 정확하게 어떤 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물었다. 서은은 너도 느꼈겠지만, 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도 느꼈겠지만, 인주는 항상 우리가 이야기할 때마다 공감을 해주기보단 궁금하지도 않은 자기 생각을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편이잖니. 그렇다고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게 불쾌하더라고. 왜 너는 못 느꼈어? 해선은 목덜미를 한 번 긁어내고 선선한 여름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 뒤, 별거 아니란 것처럼 말했다.
    “뭐, 그래도 인주니까 이해해. 악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우릴 생각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잖아. 게다가 우리가 알아 온 세월이 얼마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주잖아. 나도 종종 상처 받긴 했지만 요즘엔 그냥 그러려니 해.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인주를 이해해 주겠어.”
    해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꽤 어른스러운 대답을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은연중 상처 되는 말을 듣더라도, 그 사람의 의도가 그런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 서은은 그런 해선의 대답을 듣고 무언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잠시 말을 아끼다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고, 동시에 둘은 그네에서 일어났다. 그 뒤로 인주의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서은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 년 정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돌아온 후로는 미적지근하게 취업활동을 하더니, 어느 순간 제빵학원을 등록했다는 근황을 전했다. 해선은 느슨한 마음으로 취업활동을 하며 자격증이 될 만한 학원을 알아봤지만, 마땅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진 않았다. 부모님의 눈치가 안 보인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여기저기 취업난이라고 앓는 곡소리 덕분인지 해선을 재촉하진 않았다. 눈치껏 집안일을 도우며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잠자코 지내는 생활도 한몫했다. 그런 해선이 간만에 약속을 잡은 것은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대학 동기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 시위는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김 모 씨 국회의원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해선은 그날 아스팔트 위에 전단지 한 장을 덧대어 앉곤 주최 측의 발언과 피해자가 전해 온 편지 낭독을 들었다. 그 뒤엔 목이 터져라 개사된 노래를 부르며 종로 일대를 행렬했다. 시위에서 돌아온 후에도 다음 시위가 언제 열리는지, 후원 계좌는 어느 은행인지, 규모는 어느 정도 예상되는지 등등 모든 정보를 꼼꼼하게 찾아봤다. 서은과 만나기로 한 것은 시위를 다녀온 후였다. 근황을 묻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서은은 생각보다 바쁘게 지내진 않으나 필기시험을 곧 치를 예정이라는 말을 꺼냈다. 해선은 떨어진 피자 토핑을 주워 먹으며 자신도 슬슬 학원을 알아보거나 아르바이트라도 하나 알아봐야겠다는 둥 싱거운 다짐을 늘어놓다가 문득 시위 이야기로 주제를 돌렸다.
    “너무 끔찍하지 않아? 이번에도 제대로 처벌을 못 받는다면 난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사나 싶어. 속 터져서 죽을 것 같아.”
    “그건 그렇지. 정말 피해자라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어.”
    “정말 피해자라니. 그런 말은 좀 아닌 것 같다.”
    “아니, 내 말은…… 아직은 한 사람의 진술로만 이뤄지기도 했고, 더 지켜보지 않는 이상 일방적으로 이렇게 나오는 것도 좀…….”
    “…….”
    “그렇다는 말이야.”
    해선은 서은의 말에 곧장 반박했다. 엄연히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데, 와중에 가해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말이 되냐는 식으로 받아쳤고 서은은 느릿하지만 분명하게, 조심스럽지만 확고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의견차는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았다. 서은은 해선이 네가 어떤 것을 말하려는지 잘 알겠으나, 자신은 그저 이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네가 때론 신기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할 뿐이라고. 덧붙여서 자신은 ‘그런 것’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이 정답일 순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흥분하는 태도로 돌변하는 게 낯설어서 되도록 우리 사이엔 이런 주제를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선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런 것’은 또 무엇이냐고 따져 묻고 싶은 것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일 듯 말 듯 미세하게 흔들기만 했다. 그러곤 이내 알겠어, 라는 말 한 마디를 던지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체념, 각자 보내는 평면적인 일상생활, 고등학교 교장이 미투로 고발된 사건까지 여느 때처럼 순서 없이 주제가 흘러갔지만 해선은 그 순간 자신이 서은을 이해하려는 방식이 미묘하게 어긋날지도 모른다고 예감했다. 어쩌면 그에게 가졌던 일종의 애틋함까지도 이젠 별 볼일 없는 수고가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
    그제야 해선은 핫소스를 뿌리며 자신의 오만함을 인정했다. 4년 전 서은에게 명쾌한 정답처럼 말해 주었던 너니까 이해한다는 다정한 말이 그럴 수 없는 간극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하는지 깨달은 셈이었다. 해선은 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때로 돌아가 뱉었던 말들을 모조리 주워 담고 싶다고 생각하며 눅눅한 놀이터의 모래사장 위로 흩어진 글자들을 상상했다. 〈인주니까〉, 〈악의로〉, 〈그러려니〉, 〈이해해〉 따위의 글자들. 아마 그것들은 싸구려 종이 재질로 만들어진 전단지처럼 지금도 어디선가 굴러다니고 있겠지. 나는 회수하기 위해 이삭을 줍는 여인들처럼 허리를 굽힌 채 목을 길게 빼고 바닥을 훑을 것이다. 서은은 그런 자신을 낡은 정글짐에 기댄 채 무구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것이고. 이 얼마나 단순하고도 간절한 상상력인지. 해선은 자조적인 웃음이 담긴 콧김과 함께 고리 모양의 올리브를 빼냈다. 서은은 그런 해선을 상상 속 표정처럼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피자를 비웠다.
    그날 이후 해선은 서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

 

    이례적인 폭염이 예상되는 여름의 초반, 해선은 사진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의 옛날 필름 카메라를 찾아낸 것이 계기였다.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까지 같이 발견하자마자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첫 롤을 채우자마자 동네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요즘은 인화 가격이 얼마 정도 하려나.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암막 커튼이 놓인 공간과 빨간 조명 아래 필름을 건조시키는 장면을 상상했지만 예상과 달랐다. 가게는 웬만한 감성 카페 못지않게 세련되고 깔끔했다. 인상적인 것이라면 텅 빈 필름 카트리지로 가득 채운 유리관뿐이었다. 이르면 오늘 중으로 스캔본 가요. 카톡으로 보내드리니까 비밀번호는 핸드폰 뒷자리 넣으시면 돼요. 보관은 한 달이고요. 해선은 매뉴얼을 외우듯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젊은 직원의 말을 최대한 새겨들었다. 그날 저녁엔 직원의 말대로 문자 하나를 받았다. 해선은 침대에 누워 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결과물은 생각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학원이나 다닐까 봐. 농담처럼 나온 혼잣말에도 엄마는 진지했다. 그래, 혹시 몰라. 배워 두면 나중에 스튜디오라도 차릴 수 있고. 생각보다 흔쾌히 떨어진 허락이었다. 해선은 그날 새벽 내내 국비 지원이 되는 사진학원을 꼼꼼하게 알아보았다.
    정힘은 그 학원의 평일 저녁 반에서 만난 친구였다. 처음 수강 인원은 여섯 명이었지만 두 명이 이 주 만에 관두면서 밀착형 수업이 되었다. 대학교 다닐 때도 구석 자리에 앉기 위해 일찍 강의실을 찾았던 해선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부지런도 의미 없었다. 그렇다고 국비 지원으로 다니는 학원을 지각하거나 결석할 수도 없어서 졸지에 모범생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정힘은 첫날부터 한 시간이나 지각하거나 주에 한 번 결석하곤 했다. 보다 못한 원장이 ‘우리 학생님은 참 바쁘신 거 같아, 열심히 다니셔야 배운 의미가 있을 텐데’라고 한마디 하면 웃음인지 짜증인지 모를 애매한 입 꼬리만 올렸다. 해선이 그런 정힘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본 것은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만든 뒤풀이에서였다. 수강생들은 조명 수업이 끝나고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 호프집으로 넘어갔다. 옛날 통닭 세 마리와 골뱅이소면 이인분을 주문한 뒤 서로 드문드문 말을 붙이기 시작할 때, 해선도 멀뚱히 시계만 보고 앉아 있는 정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사세요? 먼 곳에서 오시는 것 같은데.”
    정힘은 잠시 귓등을 긁다가 난감한 듯 아…… 한마디 했다. 어디 사는지 묻는 게 무례한 일인가. 이 정도는 다들 물어보지 않나. 가까운 데에 사는 게 아니고서야 매번 늦을 리도 없고. 해선은 민망함에 갖가지 생각이 오갔지만 내색하지 않기 위해 절임 무를 포크로 찍었다.
    “좀 먼 것 같아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기도 하고.”
    절임 무가 푹, 하고 들어가는 순간 끝난 줄 알았던 대답이 나왔다. 이번엔 해선이 맥없이 아, 소리를 냈다.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해선은 포크에 꽂힌 무를 입에 넣으며 옆자리에서 들리는 포토샵 수업의 난이도 주제에 끼어들었다. 조금은 소리 내서 웃고, 조금은 과장된 몸짓을 했다. 시간이 흘러 원장이 건배사를 세 번 정도 했을 때, 정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는 건가. 해선은 담뱃갑을 들고 뒤따라 나갔다. 불붙이기 전에 배웅이나 해주려던 해선의 예상과 달리 정힘은 좁은 길목으로 들어갔다. 해선이 정힘 옆으로 어정쩡하게 섰다. 습관적으로 어떤 말이라도 붙이기 위해 지루하지 않으냐는 말을 꺼내려다 관두고 라이터만 꺼냈다.
    “예쁘네요, 라이터.”
    정힘의 말에 해선은 자신의 라이터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친구가 준 거예요. 예쁘다고 사준 건데 장난감 같죠.”
    “저도 그거 사려고 했어요. 한 달에 두 번만 주문 받는 곳 아닌가.”
    “인터넷에서 주문했다고는 들었는데, 저도 잘은…….”
    불을 붙이다 말고 라이터를 주제로 대화가 생겼다. 친구에게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정힘은 핸드폰을 꺼내 열심히 손가락을 누르더니 한 계정을 보여주었다. 여기 맞죠? 그 디자인. 여기서 본 것 같은데. 해선은 자신의 것과 비슷한 나비 모양의 레진 케이스 사진을 보며 웃었다. 네, 맞는 것 같아요. 사실 똑같은 디자인은 아니었으나 해선은 대충 동의했다. 낭랑한 목소리도 낼 줄 아는구나. 해선의 감상은 라이터보다 정힘에게 있었다. 이후에도 담배 한 가치를 태우는 동안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아, 그럼 제가 한 살 어리네요. 뭐, 그냥…… 그럭저럭 다닐 만한 것 같아요. 그러시구나……. 저는 그냥 배우고 싶어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카메라가 어렵긴 하죠. 네. 그냥 취미예요. 잘하진 않고요. 글쎄요. 그냥 좋아하면 잘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냥, 뭐…… 예쁘잖아요. 예쁜 건 다 좋아해서. 그냥, 예쁘면 눈이 가니까.
    정힘의 목소리는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콩나물 줄기 끝처럼 얇아졌다. 입버릇인지 ‘그냥’이란 단어가 자주 들렸고 ‘아’나 ‘음’ 같은 감탄사도 수시로 나왔다. 말투가 희한하네. 해선은 별다른 생각 없이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라이터 케이스를 만지다가 시멘트 담벼락에 담배를 지졌다. 그때 정힘의 잇새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별난 웃음소리였다.
    “어, 왜 웃어요?”
    “그냥…….”
    정힘이 담뱃재로 검게 물든 자국을 흘긋대며 말했다.
    “아, 그런 게 있어서요.”
    해선이 싱겁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리곤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분위기는 여전히 원장의 주도 아래 가벼워질 듯하다가도 서먹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좀처럼 친밀해지지 않았지만 다들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하는지 해산할 것처럼 부산스러워졌다. 어느 방향으로 가세요? 저는 사거리 쪽에서 탑니다. 아유, 거기 사람들 북적거리던데. 가방을 챙기는 동안 수강생들은 서로 어디서 타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물었다. 반면, 정힘은 가방을 챙기면서 핸드폰만 확인하느라 대화에 끼진 않았다. 바깥으로 나와 하나 둘씩 흩어지는 중에 정힘이 오른쪽 귓등을 검지로 긁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원장이 요란스럽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참, 얼른 가셔야지. 내일은 늦으시면 정말 안 돼요. 조리개 값이랑 노출 모르시면 의미가 없어. 진짜로! 해선은 과장된 말투와 몸짓으로 호들갑을 떠는 원장을 보며 웃었다. 사실 그렇게 웃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웃으라고 하는 말이었으니 웃었다. 정작 당사자인 정힘은 저번처럼 애매하게 입 꼬리만 올릴 뿐 별다른 표정은 없었다. 해선은 자신이 원장도 아닌데 민망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자리를 피할 생각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도 가볼게요. 정힘이 앞서 가던 길을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보폭이 맞춰졌다. 원장이 반대편으로 멀어지고 덩치가 손톱만큼 작아질 때까지도 둘 사이에 오가는 말은 없었다. 정류장이 언뜻 보일 때쯤 정힘이 말했다.
    “버스 항상 이쪽에서 타시죠?”
    “네. 좀 걷긴 해도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요.”
    “저도 그렇긴 한데 걷기 싫어서 평소엔 학원 앞에서 바로 타요.”
    “그런데 오늘은 왜 걸어요?”
    “그냥 언니도 있으시니까.”
    불쑥 들린 언니란 호칭에 해선이 어색하게 웃었다. 정힘의 잇새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생각보다 잘 웃는 것 같은데 학원만 오면 표정이 굳어지니 낯을 많이 가리는 듯했다. 해선은 나름 용기를 낸 정힘을 생각해서 대화를 이어 갔다.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존댓말 너무 오래 쓰면 못 놓더라고. 반은 진심이고 반은 농담이었다. 솔직히 정힘이 말을 놓든 말든 그건 마음 쓰일 일은 아니었다. 학원은 이제 한 달만 다니면 교육 과정이 끝나는 데다 정힘은 어딘가 의뭉스러운 구석도 있어서 썩 친하게 지내고 싶은 타입도 아니었다. 정힘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거렸다. 아, 아직은 좀. 그냥 제가 편할 때 놓을게요. 정류장 앞에서 사이좋게 걸음을 멈췄다. 해선은 그럼 자신도 다시 말을 높여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래, 편할 때 해. 431번이 멀리서 달려왔다. 정힘이 인사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해선은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에 주머니 속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닫기만 반복했다. 방금 저거 나한테도 말 놓지 말라는 건가? 섣부르게 반말한 것은 아닌지 자신의 말을 되새겨 보던 해선이 인상을 찌푸렸다. 인도 안쪽으로 물러나며 밑창을 바닥에 비볐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음날 학원에서 마주친 정힘은 해선의 옆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쉬는 시간에는 아래층 편의점을 다녀오더니 이온음료까지 챙겨 주었다. 고맙다고 하자 정힘이 말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원플러스원이에요. 어제보다 자신을 살갑게 대하는 정힘의 태도에 해선은 얼떨떨했다. 음료수는 맛있었다. 다음에는 내가 사줘야지. 해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거리를 두려던 마음을 천천히 풀었다. 그 후로도 정힘은 수업 때마다 해선의 옆자리를 고집했다. 둘은 번갈아가며 원플러스원 음료를 나눠 마셨고 돌아가는 길에는 늦은 밤까지 하는 와플 가게에서 미니 붕어빵을 사 먹었다. 해선은 와플 가게에서 한여름에 미니 붕어빵을 파는 것도 웃기고 하필이면 쑥맛인 것도 어쩐지 재밌다고 말했다. 정힘은 연두색 크림을 입술에 묻힌 채 그러게요, 세상에는 참 재밌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며 저번처럼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근데 너 그거 아니. 너 웃을 때마다 이를 꾹 닫고 웃어서 푸스스, 같은 소리가 나. 푸스스. 풍선에 바람 빠지는 것처럼. 그 말을 들은 정힘이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언니 그게 뭐예요. 아, 정말 웃겨. 활짝 펼쳐지는 정힘의 구순을 신기하게 바라본 것도 잠시 431번이 달려왔다.
    “잘 들어가.”
    “응, 언니도.”
    정힘이 손을 흔들며 뒷좌석으로 멀어졌다. 방금 저거 이제부터 말 놓겠다는 건가? 대뜸 나온 반말에 해선이 뒷머리를 긁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스무고개 같을 수가 있지. 해선은 괜히 어깨에 멘 카메라 스트랩을 비꼬았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

 

    서은에게 연락이 온 것은 정힘과 하루에 많게는 다섯 시간까지 통화하는 사이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메신저였다. 요즘 뭐 하고 사냐는 상투적인 인사가 툭하니 날아왔지만, 해선은 읽지도 않고 미뤘다. 학원은 곧 수료를 앞두고 지겨워지고 있었고, 정힘과는 대화가 잘 통해서 낮이고 밤이고 통화하는 시간이 늘었다. 정힘은 생각보다 수다스러웠으나 지인들에게만 보여주는 느슨함이었는지 학원에서는 철저하게 낯을 가렸다. 해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주말에 만나 밥 먹자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정힘은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는 애매한 말로 거절했다. 섭섭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약속을 잡는다는 것은 해선에게도 귀찮은 일이었다. 대신 밤낮 없는 통화가 둘의 간격을 좁혀 주었다. 새벽 세 시에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온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할 말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주제는 매번 비슷했다. 기껏해야 카메라 수업에 대한 불만이나 결코 마주칠 일이 없는 각자 인간관계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해선 또한 서은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 년 전 여름 새벽의 대화와 주워 담고 싶은 자신의 말들, 또 그걸 정말 상상했던 자신의 단순함과 시위를 다녀온 날의 피자집, 그리고 서은의 부재중이 쌓이는 최근까지. 정힘은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해선은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해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답답한 마음이 개운해졌다. 하지만 이런 기분도 잠시 정힘은 다른 이야기로 빠졌다. 그것도 아주 엉뚱한 이야기로.
    생각해 보니까, 언니. 그날 있잖아. 언니가 나한테 처음 말 걸어 준 날.
    시작은 평소 일상을 말하듯 단조로웠다. 응. 그날 있지. 아주 잘 있지. 그때만 해도 해선은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정힘은 아랑곳 않았다. 해선은 손톱 옆에 하얗게 일어난 거스러미를 뜯어낼 집게를 찾아다니며 핸드폰을 귀에 받쳤다. 그날 내가 웃었잖아. 언니는 그런 나한테 왜 웃느냐고 묻고. 해선이 가만가만 그날을 떠올렸다. 대충 그런 분위기였던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친해진 계기가 라이터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주문까지 기다리면서 살 디자인은 아니었는데 정힘은 유독 그 케이스를 예쁘다고 좋아했다. 그랬어, 언니. 그날 언니가 나한테 왜 웃느냐고 그랬어. 왜 그랬는지 알아? 서랍 맨 아래에 굴러다니는 집게를 발견한 해선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모르지. 너 그냥 그런 게 있다고 했잖아. 정힘이 자지러졌다. 맞아! 그랬어. 그때 언니가 담벼락에 담배를 지졌거든. 그런데 지지자마자 담벼락에 글씨가 떠다니는 거야. 그게 금연이었어. 금연. 난 너무 웃겨서, 아니 그렇잖아. 너무 웃기잖아. 그래서 그때 웃었어. 집게를 찾아다니느라 그새 대화를 못 따라간 건지 정힘의 맥락이 어딘가 이상했다. 글자가 둥둥? 해선이 귀를 의심한 것처럼 되물었다. 정힘이 말했다. 그래! 글자가 둥둥. 금연이란 글자가 둥둥. 갑작스런 농담에 해선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아니, 애초에 농담인지, 정말 그렇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해선이 말을 아끼자 정힘은 예상한 반응이었는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그냥 생각나서 나도 말 꺼내 본 거야. 언니가 지금 그 말을 꺼내니까……. 글자를 이삭 줍듯 주워 담는다니. 언니는 표현도 참 잘한다. 나도 그런 상상이나 해볼걸. 어쨌든 그게 꼭 상상으로 그치진 않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내 말은, 정말 시늉이라도 하면 혹시 모르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어서……. 정힘의 말꼬리가 치즈 늘어나듯 얇아졌다. 정말 그런 걸 봐? 해선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정힘은 유쾌하게 말했다. 진짜야. 진짜라니까! 해선은 글자보다 정힘의 높아지는 목소리가 신기했다. 이런 목소리도 낼 수 있구나. 스피커 너머의 정힘은 언제나 생동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해선은 이제 글자를 줍는 상상 대신 스피커 너머의 정힘을 상상해 보고 싶었다. 다른 건 지겨워지기도 했고 지금은 정힘이 좋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전부여서 아쉬웠다. 오로지 생동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스피커너머뿐이었고 그 외에 떠오르는 것은 굽은 목과 강박처럼 만져대는 오른쪽 귀였다. 상상은 거기서 그쳤다. 해선은 관두기로 했다. 대신 적당히 따라 웃었다. 정힘이 마침 맞지? 라고 물었다. 뭐가 맞는지도 모르는데 맞다고 했다. 다 맞다고 했다.

 

*

 

    해선은 오랜만에 동창을 만났다. 그는 며칠 전 취직에 겨우 성공했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해선은 부럽다는 말로 그를 축하해 주며 자신의 근황도 털어놓았다. 카메라를 배우고 있어. 생각보다 재밌더라. 이러다가 취업이 안 되면 사진관이나 차릴까 봐.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로맨스 찍기도 딱 좋잖아. 동창이 빨대를 휘젓다 말고 머리를 앞으로 내밀어 속삭였다. 그래. 이왕이면 열 살 정도 차이 나는 연하로 사귀어. 영화 속 심은하 같은 청순한 스타일로. 알지? 한술 더 뜨는 동창의 농담에 해선이 테이블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었다. 한번 시작된 농담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기분 좋았던 술자리는 그렇게 길어졌다. 새벽이 된 길목은 어두웠고 해선은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정힘에게 전화 걸었다. 연결음이 얼마 가지도 않아서 정힘이 받았다. 해선은 기다렸다는 듯 오늘 자신과 동창이 나눴던 농담을 꺼냈다. 나는 가끔 이런 실없는 이야기야말로 살아가는 원동력 같더라. 마지막 말은 나직하게 말했다. 정힘이 음, 소리를 냈다.
    “언니. 농담인 건 아는데 열 살 연하라느니, 어린 게 역시 좋다느니 그런 말은 너무 갔다.”
    정힘이 진지하게 나올 줄 몰랐던 해선은 창에 기댔던 이마를 뗐다.
    “누가 진짜로 사귄대? 그냥 장난친 거지.”
    “그건 아는데, 언니도 나이 많은 남자 싫어하면서 그런 농담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할 말이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억울한 마음이 앞섰다.
    “한석규도 심은하랑 러브라인인데, 나는 왜 농담도 못 하냐.”
    “아, 언니도 참 언니다.”
    언니도 참 언니다……. 해선은 그 말에 뭉근한 충격을 받았다. 그 한 마디에 내재된 옅은 멸시가 자신에게 영원히 각인될 것만 같았다.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은 싫었다. 이만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말했다.
    “내가 좀 지나치긴 했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호프집에서의 정힘이 떠올랐다. 절임 무를 찍는 동안 아무 말 없던 입, 온통 세상이 낯선 것처럼 굴었던 움츠린 어깨, 줄곧 핸드폰만 살피던 둥근 정수리까지. 해선이 입술을 달싹였다. 스피커 너머로만 번듯하게 말할 줄 아는, 그런 네가 이런 사소한 농담도 불편하게 여길 수 있는 곳이 어디 따로 있냐고 묻고 싶었다. 웃으라고 하는 말에 웃을 줄도 모르는 네가, 원장이 일찍 오라고 사정을 해도 배우려는 의욕도 없이 무표정한 네가, 그럴 수 있는 곳이 있느냐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것 또한 간혹 네가 본다는 글자 따위의 신기루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해선은 떠오르는 대로 이것저것 묻고 싶었으나 관두었다.
    야, 그런데…… 누구나 다 그렇게 살진 않아. 그렇게 살 수도 없고.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닿지도 않을 변명이었다. 정힘은 어느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해선은 문득 서은이 생각났다. 그가 남긴 부재중과 투박한 안부. 쓸데없이 많았던 토핑 올리브와 이상하게 쓰기만 했던 콜라. 그리고 식은 피자처럼 눅진했던 서은의 얼굴까지. 그날의 분위기와 배경이 차례대로 해선의 머릿속에 테트리스처럼 쌓여 갔다.
    “언니, 내 말 듣고 있어?”
    정힘이 물었고 해선이 대답했다.
    “응, 응.”
    해선이 칫솔을 들었다. 아파트 앞에 내려 현관문을 열고 옷을 갈아입고 욕실에 들어서기까지 대화의 주제가 여러 번 바뀐 모양이었다. 정힘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했고 해선은 피로했다. 나 지금 또 뭐 봤다니까. 내 침대 밑에 딱 보여. 연필은 오 분 조리 후 섭취래. 이번 건 좀 이상하다. 저번 글자는 좀 그럴싸했는데. 해선이 감흥 없이 말했다. 그래. 나 이 좀 닦을게.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

 

    학원의 사진 강의를 수료하는 날 간단한 시험을 보았다. 국비 지원금으로 학원을 다닌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시험이라 정힘은 안 올 것 같았지만 예상 밖의 등장이었다. 원장은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하고 제시한 사진과 똑같이 나오도록 찍으면 통과라고 했다. 사람들은 서로 머리를 모아 저마다 조명을 여기저기 두기도 하고 사물을 움직여 보기도 했다. 정힘만 요지부동이었다. 원장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눈치를 보는 것은 해선의 몫이었다. 저번 시간에 안 와서 잘 모르지? 내가 좀 알려줄까. 해선이 정힘 옆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정힘이 난처한 기색의 해선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다 희미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아…… 나 잘 모르겠어. 시험을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으나 뒤이어 나온 말은 달랐다. 포토샵이나 재밌지. 이런 건 재미없네. 정힘의 태도는 어딘가에 배설하고 떠나는 것처럼 홀가분하면서도 제멋대로였다. 시험은 그럭저럭 끝났다. 정힘은 나머지 수강생들을 보고 얼추 구도와 조명을 맞춰 사진을 찍었다. 원장은 더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오늘이 마지막이니 좋게 끝내고 싶었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해선은 학원을 나가기 전, 포토샵 선생님과 어색하게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는 정힘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포토샵 수업에는 출석도 잘하고 진도도 잘 따라오긴 했었지. 십 분여 걸리는 정류장까지 나란히 걸을 때 해선이 물었다. 아까 네가 그랬잖아. 이런 건 재미없다고. 사진 찍는 거 말하는 거야? 정힘이 SNS로 들어가 피드를 새로 고침하며 무심히 말했다. 응. 배워 보니까 알겠어. 난 사진 찍는 거 별로 안 좋아해. 피드에는 여러 개의 화려한 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정힘의 손가락은 거침없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 먼 곳을 봤다. 정힘이 그런 해선을 의식했는지 손가락을 움직이다 말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 있는데 볼래?”
    “보여주면 좋지.”
    인도 한가운데에서 걸음을 멈췄다. 정힘이 들어간 계정의 이름은 메이 블랜칫이었다. 프로필에는 사이트 주소와 메일 주소가 있었고 프로필 사진은 비어 있었다. 정힘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면서 두 개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사막에서 선인장처럼 각자 다른 키로 우뚝 서 있었고 머리에는 뇌 대신 풍선이 들어 있는 작품이었다. 정힘이 손가락으로 그 풍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가 나한테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고 했잖아. 이거 생각나서 웃었어. 너무 절묘하지 않아? 정힘이 신난 사람처럼 떠들었다. 해선은 절묘하고 말고를 떠나서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다. 풍선이 든 머리와 그런 어른들의 어깨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귓속에 바늘을 꽂고 있는 아이들. 그림도 아니고 사진을 합성한 작품이라 그런지 무척 실제 같았다. 그래서 괴기했다. 다른 하나는 의사가 어느 여자의 입속을 들여다보고 있고 그 입속에 있는 작은 남자가 목젖을 톱질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들켜서 당황한 듯 놀란 표정이었으나, 입만은 웃고 있어서 이것 또한 미묘하게 불쾌감만 남기는 작품이었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정힘의 핸드폰에 눈을 가까이 두었던 해선이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이런 사진작가가 있는지도 몰랐네. 해선은 좋다, 나쁘다 같은 감상 대신 통상적인 대답을 했다. 차라리 그림이면 이질감이라도 느껴서 하나의 아트를 보는 기분으로 끝나겠지만 이건 합성된 사진이라 그런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진이라 좀 무섭긴 하다.”
    “왜. 난 다큐멘터리 사진이 더 무섭던데.”
    “그게 왜?”
    “아니, 그건 너무…… 너무 실재 같잖아.”
    정힘이 어색하게 웃었다. 자기가 뱉어 놓고도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힘은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다큐멘터리 사진을 놓고 실재 같아서 무섭다는 말이 황당하게 느껴질 것을 알면서도 어떤 변명도, 해명도 없었다. 해선 또한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그저 길목을 다시 걸어 정류장에 멈췄다. 여러모로 유별난 하루구나. 해선이 일정한 패턴 속 헐거운 보도블록의 틈으로 앞코를 찔러 넣었다. 정힘은 그런 해선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묻지 않는 정류장이었다. 오로지 전광판만 반짝이고 있었다. 해선이 타는 411번이 짐시 후로 바뀌었다. 픽셀 몇 십 개가 망가져 얼떨결에 출생해 버린 ‘짐시’가 ‘잠시’마냥 박혀 있었다. 아마 저렇게 한 달이 넘도록 있어도 짐시는 적당히 잠시로 여겨지겠지. 아니, 그렇다면 조만간 사라질 잠시는 어디서 또 나뒹굴게 될까. 변색된 앞코를 빼냈다. 정힘이 말했다.
    “언니, 나 지금 언니 입술에 토마토 보여.”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해선은 개의치 않고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진짜야. 바라보는 토마토.”
    “너는 어떻게 보이는 글자도 그렇게 뒤죽박죽이야. 말이 안 되게.”
    “말이 되면 오히려 무섭잖아. 저번처럼 절묘한 건 웃겨도.”
    “무서울 것도 많지.”
    짐시 후라던 버스가 왔다. 해선이 올라타며 손을 흔들었다. 정힘은 손을 흔들지 않았다. 좌석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노래를 고르던 해선은 정힘의 말버릇 하나를 별안간 깨달았다. 정힘은 서두마다 ‘진짜’라고 곧잘 붙여 왔다. 생각해 보니까 골 때렸다. 사진도 말도 안 되는 것만 좋아하는 애가, 말버릇은 진짜를 달고 살고……. 글자 목격담을 말할 때마다 ‘진짜야, 진짜. 언니, 나 진짜로 봤어.’라고 말하던 것도 이제 와서 보니, 조금 웃기고 조금 슬펐다. ‘금연’부터 해서 ‘썩은 개’, ‘이불 한 단에 오만 원’, ‘연필은 오 분 조리 후 섭취’, 그리고 이제는 ‘바라보는 토마토’까지. 그것을 말할 때의 가죽인 듯 가면 같았던 그의 목소리를 되새김질하던 해선은 버스에서 내리면서 생각했다. 나야말로 그에게 농담 같은 존재였나.

 

*

 

    해선의 예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학원에 나가지 않은 이후에도 정힘과는 두 달이 넘도록 연락하고 지냈다.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기기 전날에도 세 시간 오십이 분을 통화했다. 심지어 처음으로 정힘의 입에서 밖에서 만나 밥이라도 먹자는 말이 나왔다. SNS 계정을 서로 팔로우까지 한 상태여서 간편하게 여러 맛집 게시물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다 전국구 맛집까지 눈여겨보게 됐고 나중에는 고향이 서로 어디인지 묻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주제였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오 전라도 광주? 경기도 광주?’라고 보낸 해선의 메시지가 그들이 주고받은 마지막 글자였다. 이런 게 손절이라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관계란 게 차단이라는 기능 하나로 끊어질 수 있나. 정말 못 보면 끝인가. 황당하고 허망했다. 서은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얼굴을 봐야겠다고 말했다. 문자 같은 거 말고 얼굴을 봐야겠다고, 어두운 놀이터든 시끄러운 피자집이든 어디든 우선 얼굴을 봐야겠다고. 나는 너를 봐야겠다고. 그동안 부재중으로 돌려 뒀던 서러움이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쉬지도 않고 말했다. 일순 해선은 꼭 연인 사이에나 할 법한 대사 같다고 생각했다.
    “전화로 해, 그냥.”
    “답답하게 무슨 전화야. 그냥 나와.”
    별안간 그렇게 잡힌 약속이었다. 인주도 나중에 합류한다는 말에 그날과 동일한 피자집에서 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막상 피자집에서 마주 보고 있자니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해선은 잔 옆에 고이는 물기로 손가락을 지그시 눌러 표면장력을 만들어냈다. 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유심히 바라봤다.
    “너 그날 나한테 뭐 화났었지?”
    손가락을 테이블에 비빈 해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분명 서은과 자신 사이에 무언가가 어긋난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그날 무슨 피자를 먹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모든 게 흐릿했다. 그저 올리브를 계속 빼냈던 손가락과 이상하게 쓰기만 했던 콜라, 식은 피자처럼 눅진했던 서은의 얼굴만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사실 그건 아무래도 좋은 기억이었다. 놀이터. 해선에겐 그 어떤 것보다 놀이터가 먼저였다. 애초에 그날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사 년 전에 놀이터에서 내가 너한테 한 말 기억나?”
    서은은 뜬금없이 나온 사 년 전 이야기에 입으로 가져가려던 마카로니 뻥튀기를 검지에 끼웠다.
    “우리가 그때 뭐 했는데?”
    “여행 갔잖아. 강원도로. 너랑 나랑 둘이서만 놀이터 나가서 말도 하고.”
    “아, 맞아. 그랬지. 기억난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와?”
    서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카로니 뻥튀기도 입에 덥석 들어갔다.
    “그때 내가 인주니까 이해한다고 그랬잖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말에.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인주를 이해해 주냐고……. 그러려니 하게 된다고.”
    해선은 몇 번이나 주워 담는 상상을 했던 그 글자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토씨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간직해 왔기에 곡해된 말은 없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날의 오만은 해선에게 수치 그 자체였다. 서은이 턱을 짚고 고개를 반쯤 내린 채 멀뚱히 어딘가를 보더니 음, 하는 입소리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랬던 거 같긴 한데, 기억이 잘 안 나. 왜? 그때부터 내가 실수했어?”
    서은이 당시처럼 무구한 눈으로 물었다.
    “아니, 내가 너한테 그랬잖아. 그러니까……. 인주니까 이해한다고, 너네라서 이해한다고. 그런데 나도 내가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 그게 그날 피자집에서 문득, 아주 문득 미안하고 불편해져서…….”
    해선이 천천히 입을 닫았다. 서은은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힘의 눈에 비친 나도 이런 표정을 지었을까. 입술에는 ‘바라보는 토마토’ 매달고? 웃음이 나왔다. 됐다, 관두자. 서은이 다시 마카로니 뻥튀기를 손에 한가득 쥐고 입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아무튼 너 별거 아닌 거지? 애초에 그 자리에 없던 사람처럼 구는 서은의 태도에 해선은 맥이 조금 빠지기까지 했다. 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자리는 인주의 합류로 예전처럼 분위기가 돌아왔다. 언제나 호탕하고 솔직한 인주의 화법은 셋의 간격을 좁히는 데에 한몫했다. 여러 가지 주제도 오갔다. 연금 없는 노후에 대한 푸념, 각자 보낸 생존기 같은 사회생활, 요즘 좋아하는 젊은 아이돌까지. 순서 없이 엉키던 주제는 해선의 근황으로 옮겨갔다. 인주가 열심히 먹다 말고 포크를 연필처럼 손가락에 끼우고 입을 가렸다. 야! 너무 웃겨. 정말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고? 옆에 앉은 서은의 어깨도 거칠게 때렸다. 다리까지 동동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여기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서은도 마찬가지인지 해선이 보여준 메시지 창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정말 그러네. 진짜 궁금하다. 연락을 갑자기 왜 끊었을까. 차단한 거 맞지? 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이나 웃어 목이 탄 인주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이 맞다니까. 전라도 광주라고 해서 그런 거야. 원래는 광주광역시라고 해야 맞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게 하루아침에 연락을 끊을 정도는 아니잖아.”
    “그거야 모르는 거지. 이러나저러나 너무 궁금하다! 제발 연락 왜 끊었냐고 물어봐 주면 안 돼? 가기 전에 그것만이라도 알려주고 가라고.”
    인주의 말에 서은이 손뼉을 치며 폭소했다. 해선은 웃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웃으라고 한 말이었으니 웃었다. 인주는 덕분에 배터지게 웃었다며 건배나 하자고 잔을 들었다. 서은이 너무 웃어 젖어버린 눈 꼬리를 훔쳐내며 잔을 맞댔다. 해선도 사이다 병을 맞댔다. 탄산이 입안에 가득 찼다. 해선은 볼 안쪽이 따갑게 느껴지는 찰나 동안 정힘을 생각했다. 그럴 수 없는 그가 마침내 그럴 수 있는 세계도 상상했다. 부유하는 글자들과 그것을 줍고 다니는 사람들, 머리에는 풍선이 들어 있어 웃을 때마다 푸스스, 소리가 나는 사람들, 그러나 웃으라고 하는 말엔 절대 웃지 않는 괴이한 사람들. 농담을 모르는 농담 같은 사람들. 이 얼마나 기묘하고 사실적인 상상력인지. 그제야 정힘을 아주 떠나보낸 것만 같은 극심한 쓸쓸함이 사무쳐 왔다. 해선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

 

 

 

 

 

 

 

 

 

 

남궁지혜
작가소개 / 남궁지혜

201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신다」 로 등단. 2020 테마 소설집 『보라색 사과의 마음』 내 단편 「당신을 가늠하는 일」 수록.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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