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의 자세 외 1편

[신작시]

 

 

수족관의 자세

 

 

송미선

 

 

 

    뿔테 안경을 검지로 밀어 올리는 구피가 처방전을 넘보며 수납창구를 보고 있다

 

    번호표를 뽑은 L은 대기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갈라진 아랫입술에 침을 바른다 민물에도 바닷물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구피처럼 L은 밤낮없이 부대꼈지만 물의 온도가 문제였다 맹물과 짠물의 해석법이 달라 혓바늘이 돋았고 스타카토 기법으로 튀는 심장을 억눌렀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일면 거울 앞에 서서 빨간약을 바른다는 버들치의 쉰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녹슨 쇳가루가 떨어진다 덧난 상처는 검붉게 성이 났다 더는 견딜 수 없다며 수면 위로 고개만 내밀고
    숨을 몰아쉬는 물고기들

 

    대기번호 알림벨은 초침처럼 째깍째깍 번호표를 쥔 사람들이 수초처럼 일렁거린다
    의자는 빈틈이 없고 물거품이 하나 둘 인다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날숨이 가쁘다 로비수족관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구피가 물간 눈동자를 쓸어 모아 휴지통에 던진다 알코올 냄새를 비집고 물 위로 떠오른 수초 몇 줄기가 알림벨 소리에 걸어 나오고

 

    누군가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다 휴지통을 걷어찬다 축 처진 물풀이 피 묻은 약솜 사이로 고개를 든다

 

 

 

 

 

 

 

 

 

 

그림자를 키우느라

 

 

 

 

    토끼 꼬리 닮은 곶을 깎아버린 게 한 달 전이네요
    힐긋 본 친구의 지도는 매끈해서
    삐죽뾰죽 날이 선 해안선을 사포로 사정없이 문질러 버렸지요
    등대도 불빛을 버리더군요
    그저께는 새벽부터 만灣을 메웠어요
    밀짚모자 눌러쓴 외발 허수아비에 깃털과 진흙을 섞었어요
    파도의 성질을 무시하고
    한 줌씩 한 줌씩 바다로 던졌거든요
    오늘은 강줄기를 바꾸려고요
    삼각주 한 토막을 강 가운데로 옮겨 심을까
    모래톱에 감자를 심을까요
    도마질 할 때 하나 둘 셋 세며 고명으로 얹을 대파를 쓸다 보면
    지도가 매끄러워지는 것 같아
    칼등의 리듬에 집중했어요
    점심은 구포국수로 해결했지요
    목울대에 걸린 국숫발처럼
    강줄기가 울컥하네요

 

    이제 남은 건 산 하나인데
    간밤부터 흐르던 코피가 멈추질 않네요
    낮잠 깨기 전에 우공의 왼쪽 신발을 훔쳐왔거든요
    집착은 잠꼬대와 닮아서
    반환점을 잃어버린 메아리가 달아날 길을 만들어주려고요

 

    멈추려 애쓰는 팽이 옆구리를 후려치는 채의 기분처럼
    멀미가 도질 때마다 별똥별이 달려드네요
    서너 걸음 가다가 돌아서는
    그림자를 키우느라
    함부로 보내버린 계절이 맴돌고 있네요

 

 

 

 

 

 

 

 

 

 

송미선
작가소개 / 송미선

경남 김해 출생. 2011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 「다정하지 않은 하루」(2015년),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2020년).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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