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에서 외 1편

[신작시]

 

 

구석에서

 

 

박경희

 

 

 

    어느 이에게 사기를 당해 밤길 밟아 고향을 떠났던 당숙 누이
    스무 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에 밤길 밟아 달려왔다
    조각 난 얼굴
    어디에도 없는 눈
    엄마를 부를 수 없는 입
    마지막 아들의 얼굴은 조각난 누이의 가슴 속에서 조각난 채로 구석에서 무너졌다
    구석이 흐느끼다가 구석이 더 구석으로 밀려났다
    잘못 디디면 끝도 없이 떨어질 구석에서 누이는 끝없이 떨어졌다
    만날 때마다 늘 마지막이었던 아들은 마지막이 되어 되돌아 웃어 줄 얼굴도 없이
    저승에서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밀려난 구석이 가슴을 쥐어짰다

 

 

 

 

 

 

 

 

 

 

엉뚱한 다짐

 

 

 

 

    절에 살 때,
    고기가 먹고 싶어 스님 모르게 길을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길만 나왔다
    대숲에 휘파람새 속 모르게 지저귀고
    지난겨울 내린 눈에 찢어진 소나무는
    가시 이파리로 눈앞을 찔러대고
    청단풍 이파리 팔목을 후려쳤다
    먼 산 귀신새 소리 좇아 눈 돌리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절에 있는 동안 고기를 멀리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허기가
    마당에 든 바람으로 몰아쳤다
    읍내 가는 길은 멀고
    언덕은 몇 고개라
    다시 절로 돌아오며
    다음에는 꼭, 먹을 것이라고
    엉뚱한 다짐을
    대숲에 고래고래 질러 놓았다

 

 

 

 

 

 

 

 

 

 

박경희
작가소개 / 박경희

충남 보령 출생.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동시집 『도둑괭이 앞발 권법』,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쌀 씻어서 밥 짓거라 했더니』, 『차라리 돈을 달랑께』가 있음. 제3회 조영관 창작기금 수혜.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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