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역사에서 단 한번 있었던 화상사건 외 1편

[신작시]

 

 

동네 역사에서 단 한 번 있었던 화상사건

 

 

김병호

 

 

 

    비명은 중저음이었다. 비명은 긴 탄식으로 변했다. 헬스장 샤워기 앞이었다. 당연한 알몸이었다.
    샤워실에 들어서는 그의 눈길을 물비누 통에 써 있는 글씨가 붙잡았다. shower mate, 영어로 따지자면 쇼를(show) 하는 사람(er)이다. 그러니까 샤워는 항상 누군가 보는 사람을 전제로 한 쇼라는 생각 덕분에 물을 트는 꼭지를 부주의하게 돌렸을 수도 있다.
    그는 샤워기에서 기습적으로 쏟아진 뜨거운 물에 자지를, 그중에서도 귀한 대가리를 데고 말았다. 남자를 엄습한 고통은 인간의 역사 이래 비교할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부위, 쾌락의 선봉장이었던 신체의 일부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활화산으로 불을 뿜었다. 실질적인 사장인 헬스 트레이너의 엄마가 외롭게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는 따지지 못하고 약국으로 향했다. 엉덩이를 뒤로 뺀, 인간이 오래전에 거친 진화 과정의 자세였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여자가 품었던 의심은 추궁이 되어 현실에 등장했다. 오십이 넘었음에도 일주일에 두어 번씩 여자를 파고들던 남자의 철없는 행동이 만든 당연한 결과였다. 허옇게 껍질이 일어나고 있는 남자의 답변은 믿기에는 창피한 데다 믿을 수 없이 궁색한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여자는 남자의 단골 술집(남자는 완벽한 비밀이라 믿고 있던)을 찾아가 테이블을 두 개나 엎었음에도 여사장의 머리채는 잡지 못하고 쫓겨났다. 덕분에 남자는 여사장이 소시적 군(郡)에서 날리던 유도선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흥분한 여사장은 연락이 닿을 리 없는 남자 대신, 같이 술집을 찾았던 부동산 나쁜 손 권 사장을 찾아내 엄중한 항의를 쏟아 부었고 추상과 같은 경고로 마무리했다. 이 예고 없는 날벼락을 권 사장은 탕비실에서 보일러를 고치고 있던 기사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오래 걸린다, 비싸다, 잦다는 둥, 둥둥 떠다니는 짠소리를 쏟아내자 둘 모두의 눈은 벌겋게 충혈 되기 시작했다. 부품도 찾기 어려운 30년 된 보일러 같은 인간이라는 말을 던지고 나오기는 했으나 보일러 기사는 등에 붙은 악귀를 떼어내지 못한 채 다음 수리처인 헬스장 문을 열었다.
    대낮 헬스장은 오래된 동굴이었다. 보일러가 가진 문제는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는 밸브에 있었으나 사소했다. 수리가 끝난 보일러에는 뜨거운 물이 조금 남아 있었고 이를 중화하기 위해 찬물 밸브를 열려는 순간, 누군가 샤워실에서 물을 틀었다. 아주 짧은 순간, 굳지 않은 용암과 같은 물이 빠져나갔고, 중저음의 외마디 비명이 태고의 동굴 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떠돌다 탄식으로 변했다.

 

 

 

 

 

 

 

 

 

 

원숭이 똥구멍은 왜 울었나?

 

 

 

 

    그는 보따리를 살려달라며 물에 빠졌다. 그사이 자명종은 소리 없이 웃었다. 자명종이 재주를 피우자 곰은 돈이 되었고 주인은 나 먼저 죽지 마! 라고 외쳤다. 시시껄렁 지나던 해가 그럼 누가 먼저 우는 거야? 묻자 납땜이 녹으며 낄낄거렸다. 소리도 없었다. 소리가 죽자 꼬리가 늙어 갔고 팔월이 길어지자 치매가 왔다. 그렇게 철들자 밟혔다. 둘도 아프지 않았지만 하나는 죄를 닦아 밥을 지었다. 지랄, 귀신이 자빠지자 식은 밥이 기적소리로 지저귀고 돌부리가 빈둥거렸다. 자명종은 울지 않았나? 스스로 만들 수 있으면 울음도 아니라며 해가 가던 길을 되밟아 돌아가시자 뻣뻣해진 허공이 옆걸음으로 키득, 그때 뒤로 구르던 밤은 다리가 자라 여덟 개가 되었다. 어둔 기운은 어두웠다. 그가 허우적거리는 사이 물은 잔뜩 숨을 들이마신 보따리 귀퉁이를 할퀴고 움키며 머리를 내밀었지만 터오던 동이 다시 밀어 넣었다. 잠이 깨지는 순간 방귀 냄새의 끝자락에서 원숭이가 능수능란 숟가락으로 각질을 제거했다. 어지러워 어지른 자리 스쳐 지나간 것은 모두 지린 것, 구려야 기억이고 꿈은 지리는 일,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소리 없이 오한에 떠는 일, 자명종이다.

 

 

 

 

 

 

 

 

 

 

김병호
작가소개 / 김병호

1998년 계간 《작가세계》시 등단. 시집 『포이톨로기』외 소설 『폴픽』. 산문 『초능력 시인』 외.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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