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판 외 1편

[신작시]

 

 

모판

 

 

한경숙

 

 

 

    쌀 몇 가마 못짐 지고
    논둑 쪽으로 이앙기 허리가 휘청한다
    중심을 잡는가 싶더니
    여섯 줄 가지런히 논흙의 살점 더듬는다
    모판 아래로 하얗게
    뻗어 나온 뿌리의 기억
    거세당한 모는
    잘림으로 꼿꼿하게 논바닥을 버티고 있다

 

    산 하나를 담고도 좁지 않은
    논물 위로 해거름 마을길이 놓여 있다
    산그늘이 바닥에 쌓이고 있다
    온갖 들풀들 속에서
    벌레들의 웃음이 저녁의 불빛처럼 튀어 나온다
    그 소리 위로 모는 쑥쑥 뻗쳐 오른다
    논에 모두 물을 내주고 바닥난 저수지
    수위, 다시 방방해지면
    한 포기 꿈이 두 홉 쌀로
    당신의 아버지가 촘촘하다

 

 

 

 

 

 

 

 

 

 

달의 뒷면

 

 

 

 

    네일 샵에 갔다.
    바다에 무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덤지기들은 한결같이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다
    늙은 어부가 잘록한 부레를 만지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살아 있으므로
    뒷면이 부풀어 있다
    사라짐으로 공룡은 신비를 갖는 것처럼
    수억의 시공을 돌 틈에서 긁어서
    하얀 뼈마디가 바스라진
    화석 안에 밀폐된 공룡들이 단단한 흔적을 남길 때
    사람은 개미처럼 작아지고
    공룡은 신비 속에서 잠을 깨고 일어난다
    자신의 눈을 떠돌며 태어나는 새들처럼
    도시의 네온, 콘크리트 원시림 속으로
    새 떼가 날아오는 밤
    까만 손톱 밑에도 새 떼가 가득 들어 있다
    나는 그들을 아직 붙잡지 않았다
    쑥 잎 같은 안개가 자욱한 밤,
    안개는 구린내 나는 하수구를 기어 나와
    새벽까지 강줄기의 오물들과 엉켜
    잠을 뒤척이고
    햇살에게 잡목처럼 우거진 슬픔을 맡기고 사라지는 공기
    안개의 손길이 닿지 않는 바다에 간다

 

    강폭처럼 좁아진 성년의 바다 위를
    등대가 되어 떠다니는 언어의 산송장들
    바다에서 죽음도 다시 태어난다
    김발을 잡아맨 어린 말뚝에서
    해마다 나이테가 늘어 간다
    단단해진 그녀의 손톱 위에 새 떼가 떠 있다
    달을 찾아 입을 벌리고 날아오른다

 

 

 

 

 

 

 

 

 

 

 

 

 

 

 

한경숙
작가소개 / 한경숙

2019년 《딩아돌하》 등단.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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