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뒤 택배

[창작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한 달 뒤 택배

 

 

이희영

 

 

 

    “길 가면서 절대 한눈팔지 마라.”
    뭇국에 소고기 좀 넣지, 질겅거릴 게 하나도 없다.
    “괜히 흘낏거리지도 말고.”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고사리, 씀바귀, 시래기. 참 질기기도 하다. 전생에 소였나?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 소고기는 구경도 못 하는 건가?
    “무조건 모른 척 해.”
    갑자기 팥죽은 왜 올라온 거야. 팥죽집에서 팥죽을 먹는 건 당연하다고? 그럼 중식집은 아침부터 짜장면 먹나. 일식집은 브런치로 광어 회 떠먹고.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는 소리 나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할머니가 흘낏 내 얼굴을 곁눈질했다. 진한 회색 눈동자가 찌르듯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아침부터 왜 그래? 또 뭐야?”
    할머니의 시선이 뭇국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멍하니 팥죽을 내려다보았다. 손님들이 제발 가격 좀 올리라 해도 십 년 넘게 삼천 원이다. 그 덕에 나와 할머니가 아쉬운 소리 없이 살아간다. 눈물 나게 고마운 팥죽이지만, 솔직히 보기만 해도 물린다.
    “뭐긴 인석아. 늘 조심하라는 거지.”
    “뭘?”
    “괜한 것 보지 말고, 엉뚱한 얘기 듣지 말고, 쓸데없는 소리는…….”
    펑퍼짐한 바지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할머니가 화면을 그었다.
    “댓바람부터 전화는? 이 시간에 뭐 하겠어. 밥 먹지.”
    달갑지 않은 인사는 기어이 짜증을 불러냈다.
    “따신 밥 먹고 또 쉰 소리 하네. 괜한 입방정 떨면 두 번 다시 자네 안 본다 했잖아?”
    이 시간에 할머니에게 전화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청안댁 아주머니. 나는 콩자반을 씹으며 허공을 보았다. 오늘이 무슨 날이더라? 제삿날? 만월이 뜨는 보름? 할머니 생신? 아무리 머릿속을 굴려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누구를 거지발싸개로 아나. 뭐? 돈이 어째?”
    쩌렁한 호통소리에 씹지도 않은 밥알들이 넘어갔다. 진짜 우리 할머니야말로 생사람 잡겠네.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 하려거든 끊어.”
    글쎄 이상한 소리를 먼저 한 사람이 누군데?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컵을 집어 들었다. 할머니 말대로 오늘은 몸 좀 사려야 할 것 같다. 안 그랬다가는 소화불량에 걸릴 테니까. 할머니의 만병통치약인 사이다로도 해결 안 될 급체 말이다.
    “더 안 먹고?”
    “됐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섰다.
    “솔아.”
    그래 내 이름은 솔이다. 덕분에 칫솔부터 파라솔까지, 상처에 바르는 마데 땡솔부터 도레미파 솔까지. 별명도, 놀림거리도 다양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90년대 민중가요는 또 어떻게 찾아냈는지. 다들 그 가사의 의미나 알고서 흥얼거릴까?
    나는 몸을 돌려 할머니를 굽어보았다.
    “솔아 이 할미 말…….”
    이름만 듣고 여잔 줄 알았다나? 소나무란 뜻인가요? 묻는 사람도 있었다. 저기요? 소나무는 솔이 아니라 송입니다. 물론 진짜 대답한 적은 없지만…….
    내 이름은 거느린다는 뜻의 솔(率)이다. 우두머리가 되란 뜻으로 할머니가 지어 준 것인데, 우두머리는 고사하고 꼬리조차 되지 못했다. 거느린다? 대체 누구를 어떻게? 하! 생각할수록 한숨만 터져 나온다.
    “할매.”
    나는 입술을 막으며 쉿 소리를 내뱉었다. 할머니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입이 먼저 반응할 때도 있지 않은가. 마치 할머니처럼…….
    “할매도 무조건 모른 척해. 괜한 소리 듣지도 하지도 말고. 알았지?”
    나는 뒤돌아 벌컥 방문을 열어젖혔다. 세상은 원래 시끄럽고 복잡한 곳이다.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어른들의 말처럼 명대로 못 살 것이다.
    “학교나 가자.”
    책상 위 노트를 집어 들다 서랍을 열어 보았다. 그래, 괜한 것 볼 필요 없겠지. 나는 탁 서랍 문을 닫아버렸다.

 

    학교 가는 길은 365일 우울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골목길을 걸었다. 할머니 충고대로 쓸데없이 주위를 살피지 말아야지. 시선은 언제나처럼 발끝에 단단히 붙잡아 두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하지 마라 하면 더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시작과 동시에 식욕이 폭발하고, 시험 기간에 졸음이 밀려드는 건, 바로 이 ‘마라’ 저주에 걸려서다. 먹지 마라. 가지 마라. 사지 마라. 하지 마라. 세상에 이 저주를 피해 갈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유독 시선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낯익은 교복, 보라색 카디건이라면 분명 그 학교가 맞을 텐데……. 나는 모른 척 골목길을 걸었다. 이어폰이라도 꽂으면 좋으련만 귀가 아파 그마저도 힘들다. 나는 돌이 되기도 전에 큰 열병을 앓았다 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이 뒤집혔으며 귀에서 피까지 흘러나왔단다. 그 열병 탓인지 이어폰을 꽂으면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남들은 멀쩡하게 듣는 음악조차 쉽지 않다니, 이름부터 시작해 평범한 거라고는 개미 더듬이만큼도 없다.
    “야? 너 방금 나 흘낏거렸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못 들은 척 발을 놀렸다.
    “안 들리니?”
    아니 그런데 이게 나를 언제 봤다고 초면부터 반말 시전이야? 자고로 아무에게 말 짧게 하는 사람치고 생각 깊은 사람 없다 했다. 누가 이런 명언을 남겼느냐 하면? 바로 우리 할머니 되시겠다.
    “그만두자.”
    나는 한숨을 내쉰 후 걸음을 옮겼다.
    “야 부르잖아. 너 나 엿봤지. 자꾸 흘낏거린 거 맞지?”
    보라색 카디건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덕분에 꺅! 있지도 않은 엄마를 외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날아들고 나는 이 괘씸한 보라색 카디건과 두 눈을 마주쳤다.
    “훔쳐볼 때는 언제고 왜 도망가? 이거 Y남고 교복이네. 이름 독특하다 최솔.”
    카디건이 손을 흔들며 빙긋이 웃었다. 갑자기 속이 허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식어 빠진 팥죽 한 그릇이나마 다 먹고 올 것을 그랬다.
    내가 사는 곳은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재래시장이다. 1층에는 팥죽 가게가 있고 2층이 가정집이다. 그래 맞다. 우리 할머니는 조물주도 부러워한다는 건물주다. 다 쓰러져 가는, 덕분에 귀신조차 터가 안 좋다며 손사래 칠 건물도 건물이라면 말이다. 시장은 내게 고향과도 같다. 꼬꼬마 시절에는 또래 친구들과 곧잘 어울려 놀았다. 시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진귀한 것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평범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주위에는 더 이상 함께 어울릴 또래도, 친구라 부를 만한 존재도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하나둘 나를 멀리했다. 중학교 입학 후에는 괜히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고맙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복도를 지날 때면 가끔 이런 소리가 날아들었다.
    ‘저 자식이야.’
    ‘아 그 팥죽 가게 맞지? 너도 근처 살아?’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거기 살았어.’
    ‘그런데 그 소문 진짜야? 쟤 정말…….’
    ‘그렇게 궁금하면 네가 직접 물어보던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건 그나마 예의 바른 놈들이다.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녀석들에 비하며 말이다. 그따위 헛소리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면 그만이지만, 가끔은 ‘그런 기억력으로 영어 단어나 하나 더 외워라 새끼들아.’ 한 마디 내뱉고 싶다. 뭐 그래 봐야 괜한 싸움만 되고 소문만 키우겠지. 때문에 나는 늘 학교에 있는 듯 없는 듯 반투명하게 지낸다. 물론 과목별 쌤들의 관심까지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최 솔. 너 뭐하느라 멍하니 창밖만 보니? 3번 문제 읽고 해석해 봐.”
    “창가 뒤에서 두 번째, 그래 너? 밖에 로또 번호라도 적혔니? 집중해라.”
    “저 뒤에 얼굴 하얀 애. 어딜 봐, 너 부른 거야. 나와서 공식 적어 봐.”
    평소라면 대놓고 멍을 때리는 바보짓은 안 했을 것이다. 어느 분 말씀처럼 오늘 일진이 영 꽝인 모양이다. 할머니가 액운 낀 손자의 하루를 꿰뚫어본 건지, 아니면 그 예언을 쫓아 내 하루가 꼬여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디 조심하라는 경고는 맞는 것 같다. 왜 안 좋은 예감은 현실이 될 확률이 높은 걸까? 만약 좋은 예감의 적중률이 높다면, 매주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수는 엄청날 것이다.
    나는 습관처럼 창밖을 내다보았다. 복도에 시선을 두며 화단에 핀 꽃들을 쳐다보았다. 대체 내가 뭐 하는 걸까? 퍼뜩 정신을 차리면 어김없이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아이들의 비웃음이 또르르 코앞까지 굴러왔다. 나 원래 반투명한 인간인데, 오늘따라 되게 몹시 그리고 아주 많이 눈에 띄는 짓만 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모든 수업이 끝났다.
    평소보다 열 배 아니, 백 배 피곤한 몸으로 교문을 나서는데…….
    “야. 빨리 좀 나와라. 무슨 애가 시간 아까운 줄 몰라?”
    등 뒤에서 이보다 더 불길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른 척 전 속력으로 뛰어 볼까? 그래 봤자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따라오라는 눈빛을 남긴 채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그러게 말이다. 진즉에 흘낏거리지 말 것을 그랬다. 스스로가 바보라는 건, 세상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굳이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된다. 그런 쓸데없는 친절은 정중히 사양하겠단 말이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임대문의라 써 붙인 문 앞에 멈춰 섰다. 전에 뭘 하던 곳인지 알 수 없지만,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내가 이 보라색 카디건을 으슥한 골목 끝까지 데려온 이유는 바로…….
    “진짜 미안. 쳐다봐서 진짜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이렇듯 두 손 모아 싹싹 빌기 위해서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이 짓을 했다가는 단번에 시선을 모을 테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늘 있는 듯 없는 듯 반투명하게 사는 게 삶의 철학이자 인생 목표다. 사실 내가 이 보라색 카디건을 훔쳐본 건 특별한 이유가 있긴 했다. 뭐 그것까지 일일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목하야.”
    뭐?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보라색 카디건이 싱긋 웃었다.
    “내 이름 강 목하라고. 덕분에 평생 강목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그게 뭔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열여덟이다. 너 열일곱이지? 내가 누나야 응?”
    참, 이 상황에서 누나 동생을 찾다니. 무슨 말만 하면 나이 들먹이는 대한민국답다.
    “어쨌든 내가 미안하게 됐어. 그러니까 우리 없었던 일로 하자.”
    “싫은데?”
    “싫으면 뭐 어쩌라고?”
    나는 최대한 사납게 노려보았다. 목하가 두 번째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네가 먼저 나를 빤히 쳐다봤잖아. 무슨 뜻인지 몰라?”
    그래 먼저 쳐다본 건 내 실수였다. 절대 흘낏거리거나 훔쳐봐서는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동그란 얼굴형에 긴 속눈썹 도톰한 아랫입술까지 젠장, 가까이에서 보니 더 많이 닮았다. 왜 하필…….
    “처음 실수는 내가 했어. 그러니 사과할게.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쳐다보는 일…….”
    “그럼 사과의 의미로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됐거든. 보다시피 나는 열일곱 고딩이야. 네 부탁 들어주고 할 만큼…….”
    “너도 할 수 있는 일이야.”
    목하가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을 보자 또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내 입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뭔데?”
    물론 전혀 예상치 못했다. 목하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만약 알았더라면, 절대 결코 NEVER EVER FOREVER 묻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간단한 거야.”
    목하가 산뜻하게 어깨를 들썩였다. 덕분에 녀석의 부탁도 저렇듯 가벼울 것이라 믿었다. 그래 솔직히 인정한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바보가 맞는 것 같다.

 

    “학생 거기서 담배 피면 큰일 나. 자칫 불날 수도 있어.”
    골목 입구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아니요. 담배 안 핍니다.”
    남자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남긴 채 뒤돌아섰다. 교복 입은 남고딩은 골목에 서 있지도 못하나? 저도 여기에 삽니다. 이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팥죽집 주인이 바로 우리 할머니라고요. 나는 쳇 소리를 내뱉으며 돌멩이를 걷어찼다. 귓가에 까르르 웃음소리가 날아들었다. 내 찌릿한 시선에 목하가 날름 혀를 내밀었다.
    “미쳤냐? 그건 어디까지나 범죄야.”
    “야 그게 왜 범죄야. 내가 내 꺼 돌려받는다는데?”
    녀석이 성큼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미 네 손 떠났잖아. 이제 네 꺼 아니야.”
    “아직 도착 안 했잖아. 그러니 내 꺼야.”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스스로가 멍청하게만 느껴졌다.
    “그 물건이 더 이상 네 것이 아니라는 건.”
    “…….”
    “목하 네가 더 잘 알잖아.”
    4 더하기 3은 7이라는 공식만큼이나 명징했다. 목하의 얼굴 위로 회색 구름이 내려앉았다.
    “부탁이야 제발.”
    목하가 또다시 두 손을 모았다. 그 순간 문득, 이 녀석이 더 나이가 들면 어떤 얼굴이 될까? 이상한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아직 도착 안 한 거 확실해?”
    목화의 얼굴이 금세 화창한 봄날로 되돌아갔다.
    “응, 이틀 뒤에 도착해. 토요일이고 너 학교도 안 가잖아.”
    “몇 시?”
    “내 예상으로는 1시에서 2시 사이쯤이지 싶은데. 더 자세한 건 알아볼게.”
    내가 이 녀석을 쳐다본 것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절대 아니라는 것에 내 팔을 걸겠다.
    “대체 뭐가 들었는데.”
    “여자 장지갑.”
    “지갑?”
    “해외직구로 시킨 거야. 한 달 정도 걸린다 했어.”
    목하가 말을 멈추고는 반짝 두 눈을 밝혔다.
    “야, 그거 나름 유명한 브랜드야. 명품까진 아니더라도 제법 비싸. 국내에서 사려면 그 가격에 십만 원은 더 줘야 하는데, 그거 너 줄게.”
    “여자 지갑을 내가 왜?”
    “중고시장에 팔아.”
    미쳤냐? 다른 것도 아닌 그런 지갑을. 빽 소리치려다 간신히 참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택배가 한 달 가까이 도착 안 했다고? 그런데 해외직구라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 우리 반 어떤 녀석도 해외직구로 산 여름 티셔츠가 가을 되어서야 도착했단다. 최소 이삼 주에서 한 달, 최악은 삼 개월까지 걸린다 했다.
    “문 앞에 놓아도 택배 아저씨가 벨 누른단 말이야.”
    “괜찮아. 그 집에 아무도 없어.”
    목하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 내가 아니었다.
    “뭐야? 왜 사람 눈치를 봐?”
    “아까 담배 어쩌고 한 아저씨를 보니까 갑자기 아파트 오지랖 아줌마가 생각나서.”
    내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불행을 예감하는 능력이다. 더불어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저주는, 불행을 예감함에도 척척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무지다. 갑자기 내 눈을 피하는 목하를 보자 이상한 불안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끝내 침묵했다. 그래 나는 정말 바보 그 자체였다.
    “내 손으로 처리하고 싶은데. 알잖아 내가 요즘 좀 바쁜 거.”
    목하가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까르르 웃었다. 농담인지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저런 녀석에게 된통 걸린 건지. 정말 눈물이라도 쏟고 싶었다.

 

    가게가 환하게 불을 밝혔다. 왜 이 시간까지 문을 열어 놓았을까. 할머니는 5시면 팥죽집을 연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시장 상인들과 혹여 모를 새벽 손님들의 허기를 달래 주기 위해서다. 새벽 장사가 끝나면 2층에 올라와 아침을 먹는다. 점심 장사는 오후 8시면 모두 끝을 맺는다. 늦은 밤 팥죽을 먹으러 오는 사람도 없거니와 다음날 장사 준비를 위해 팥을 불리고, 새알심을 만들며 동치미를 담가야 하니까.
    오늘 하루가 적잖이 고되신 모양이다. 솥에 눌어붙은 팥죽처럼 싹싹 긁어버릴 고민이라도 생겼나? 나는 는적는적 가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형님 덕분에 금은방 김 씨 말예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살렸지 뭡니까. 세상에 그렇게 건강한 총각이 위암이었다니. 모르고 넘겼다가는 큰일 날 뻔했어요. 다행히 초기라 간단하게 수술 끝냈대요.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열린 문틈으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식탁 위에 소주 한 병과 두부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 빈 잔에 술이 차올랐다. 청안댁 아주머니는 일 년 전까지 호프집에서 주방을 담당했는데 허리 수술을 받은 후로는 그만두셨다. 지금은 하루 너덧 시간 팥죽집에서만 일하신다. 모든 영업이 끝난 후 할머니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든든한 동료이자 좋은 친구다. 아침 일찍부터 괜한 용건으로 전화만 걸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몇 배 더 돈돈해질 우정이겠지만 말이다.
    “아니 김 씨 친구가 일 년 넘게 시름시름 앓는다잖아요. 병원 가도 딱히 병명도 모른다니. 그 친구가 그리 부자라네요. 병만 고쳐 주면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고…….”
    할머니가 딱!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문 밖까지 들릴 정도다. 괜한 얘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 같은데 졸지에 나까지 흠칫 놀랐다. 청안댁 아주머니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알았어요. 내 이놈의 입 쫑쫑 꿰매 놓을 테니까 역정 좀 그만 내셔.”
    “그냥 지난번에 팥죽 먹으러 왔는데, 영 안색이 안 좋아서 그랬어.”
    대단한 명의 나셨네요. 그런 할머니가 급체한 손주한테는 사이다 한 잔 따라 주는 것으로 끝냈습니까? 덕분에 난생처음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나저나 할머니의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시장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이제 곧 솔이 생일이죠. 올해로 열여섯인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서던 다리가 주춤 멈춰 섰다.
    “열일곱.”
    문틈 사이를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간 빠르네. 그 녀석 보면 볼수록 피부도 하얀 것이 곱상하게 생겼어요.”
    “누굴 닮았겠어?”
    할머니의 목소리가 힘없이 풀어져 버렸다. 술병 기울이는 소리와 잔이 비워지는 소리, 쓰디쓴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까지, 삶의 노곤함과 피로가 밤 골목으로 멀리 퍼져 나갔다.
    “그럼 또 절에 가시겠네요.”
    “가서 뭐 해.”
    할머니는 남들 다 쉬는 명절에도 팥죽집을 연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겐 명절이 더 허기진 법이라며, 평소보다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한다. 그런 할머니가 유일하게 가게를 닫는 날이 있었으니 바로 내 생일 다음날이다.
    “한 해가 다 저물어 가네. 어째 올해는 안 좋은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픈 일들이 많았지.”
    차가운 바람이 시장 한 귀퉁이를 할퀴고 지나갔다. 낡은 천막들이 펄럭거렸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몸을 떨었다. 벌써 11월이다. 청안댁 아주머니 말대로 한 해가 다 저물었다.
    ‘나 때문에 많이 아프잖아. 그게 싫어.’
    바람을 타고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목하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 때문에 누군가 아프고 힘든 것, 상상조차 끔찍했다. 아주머니의 웃음소리가 멍한 정신을 깨웠다. 나는 뒤돌아 2층 계단으로 올라섰다.

 

    아파트에는 현관 비밀번호가 없었다. 덕분에 외부인이 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오히려 안 좋은 상황이었다. 목하에게는 차마 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약속을 어기면 한동안 귀찮아질 테니까. 어쩔 수 없이 녀석이 알려준 아파트까지 찾아오고야 말았다.
    102동 1204호라 했지? 우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택배 배송시간은 1시쯤이라 했다. 시계가 12시 40분을 가리켰다. 아파트로 이동할 시간이었다.
    ‘13층 계단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어. 택배기사님이 맨 위층부터 차례로 내려오시거든.’
    일은 간단하다 못해 단순했다. 기사님이 1204호에 물건을 배달 후 초인종을 누르면, 상자를 들고 튀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명백한 절도행위이자 범죄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도 모른다니까. 택배를 주문한 사람이 없는데 누가 분실신고를 하겠어?’
    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목하의 말을 믿을 수밖에. 그렇게 13층 계단에 앉아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택배요.” 한 마디가 울려 퍼졌다.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범죄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이 이런 기분일까.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솔아, 아주 간단해. 그냥 택배를 가방에 넣고 내려오면 돼. 아무도 몰라. 건물 안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집주인도 없어. 택배가 왔는지조차 모른다니까.’
    목소리가 내 것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도둑질이 아니다 절도가 아니다 몇 번을 되뇌지만, 계단을 내려가는 다리가 제멋대로 비틀거렸다.
    나는 넋 빠진 얼굴로 바닥에 놓인 택배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저 속에 목하의 근심이 들어 있다는 뜻인가? 단순히 그 녀석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든 저 택배가 없어져야 여러 사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러니 내 손으로 근심 덩어리를 없앨 수밖에. 그렇게 상자에 손을 뻗는 순간 딸깍 문이 열리더니, 앞머리에 헤어 롤을 한 아주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동시에 내 심장은 좌심실 우심방이 서로에게 안녕을 고하기 시작했다. 드라큘라에게 흡혈 당한 듯 온몸에 피가 빠져나갔다.
    “그 집 아무도 없는데? 학생 누구예요?”
    그러게요?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딜까요?
    “저…… 저는…… 조카예요. 이모가 택배 좀 찾아 달라고 해서.”
    헤어 롤 속으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던 아주머니가 쏙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금방에 주저앉을 듯 비틀거렸다.
    ‘빨리 지금이야.’
    상자를 가방에 구겨 넣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목하가 오지랖 얘기를 꺼냈을 때, 그 아주머니가 바로 옆집 이웃이란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러니 바보란 소리를 듣지.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눈앞이 뱅글뱅글 돌고 두 다리가 제멋대로 휘청거렸다. 이제 오지랖 아주머니는 고사하고 저승사자가 쫓아온다고 해도 도망갈 힘이 없었다.
    “젠장.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야?”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1층에 내려섰다. 그리고 결국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저승사자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 상대는 다름 아닌…….
    “학생, 잠깐 나 좀 볼까요?”
    바로 아파트 경비아저씨였다.

 

    ‘거봐요. 내가 수상하다고 했죠? 그 집에 지금 택배가 온다는 게 말이 돼요. 내가 십 년 넘게 이웃이었는데, 조카라고 찾아온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어. 내가 재빨리 경비실에 신고해서 잡았지, 안 그랬으면 다른 아파트도 죄다 털렸을 거라고요.’
    목하는 틀렸다. 옆집 아주머니는 생각 이상으로 오지랖이 넓었다. 아니 투철한 시민정신이라고 해두자. 우리 아파트는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사명감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이곳이 과연 어디인고 하니…….
    “이봐 학생. 보호자 연락처 알잖아. 엄마나 아버지 전화번호 말해 빨리.”
    바로 경찰서 되시겠다. 그러니까 나는 택배 절도 현행범으로 그 즉시 경찰에 넘겨졌다. 한 마디로 X된 거라 볼 수 있겠다.
    “없어요, 엄마 아버지.”
    경찰이 굵은 눈썹을 움찔거렸다. 너 같은 놈 내가 수백 명은 알지 싶은 표정이었다.
    “그래 봤자 다 알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서로 기운 빼지 말고…….”
    “방금 1204호 그 집 주인이랑 연락됐어요. 하여간 그놈의 보이스피싱. 경찰서라는 말만 해도 끊어버리더니 강 목하라고 하니까 바로 온대요.”
    나는 끈질기게 발끝에 시선을 두었다. 고개를 들어 봤자 야유 섞인 눈빛밖에 없으니까.
    “이봐 학생, 학생 맞지? 솔직히 말해. 오늘 처음 아니잖아. 몇 번이나 택배 훔쳤어?”
    “훔치지 않았어요.”
    피로 섞인 한숨이 들려왔다. 나는 꽉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훔친 게 아니면, 이 택배가 발이 달려서 학생 가방 속으로 점프했나?”
    “부탁받은 거예요.”
    “누구한테. 아 그래 혼자 한 게 아니다? 그럼 네 친구들 누군지 말해 봐. 괜히 의리니 어쩌니 입 꾹 다물고 있어 봤자 너만 독박 쓰는 거야. 친구들을 어둠의 길에서 구원해 주는 것도 진짜 의리다. 알아?”
    애초에 친구라 부를 만한 애들은 없었다. 물론 그 택배를 가방 속에 넣은 건, 내가 틀림없다. 하지만 결단코 나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그 물건 주인한테요.”
    “뭐? 누구?”
    “강 목하요. 목하가 그 택배를 가져다 달라…….”
    “야 인마!”
    탕 책상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걸쭉한 욕설도 날아들었다.
    “이 새끼가 오냐오냐 했더니. 야! 누가 뭘 부탁해. 이 자식 이거 안 되겠네? 말이 되는 소리 좀 해 새끼야. 이 물건 주인 강 목하 학생.”
    나는 잔뜩 흥분한 경찰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그 주인 뭐요?
    “죽었어. 알아? 한 달 전에 친구 만나고 돌아오다가 술 취한 운전자 때문에 차에 치여 죽었다고. 그런데 누가 뭘 부탁해?”
    물론 알고 있었다. 목하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학교 바로 옆 여고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학교와 시장까지 하얀 팥죽 연기처럼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자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강파른 몸과 움푹 파인 눈, 핏기 없는 얼굴과 하얗게 불어 튼 입술.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 말이다.
    “우…… 우리 모…… 목하 앞으로 뭐가 왔다고요?”
    입술 사이로 찝찔한 피 맛이 느껴졌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혼령과 눈이 마주치면 절대 안 되는데 그만 보고 말았다. 너무 닮아서 나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가버렸다.

 

    남자가 와락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도톰한 입술을 보니 목하의 아버지임에 틀림없었다.
    “이 새끼야. 차라리 잘못했다 빌면 그냥 넘어갈 수 있어. 그런데 뭐? 누가 너를 찾아와. 목하가 너를 찾아갔다고. 이게 터진 입이라고 어디 함부로…….”
    “엄마 생신에 줄 지갑이라고 했어요. 3개월 가까이 돈을 모았다고, 엄마 지갑이 너무 낡아서 바꿔 주고 싶은데, 미용실에서 잡지를 보다가 엄마가 예쁘다 한 게 있어서 그걸로 했대요. 해외직구로 사면 십만 원 정도 싸게 살 수 있다고…….”
    목하는 엄마 생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미리 상품을 주문했다. 배송 기간이 한 달 가까이 되었지만 그만큼 저렴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 사이 어떤 비극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하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허무한 운명이겠지만.
    “너 뭐야? 우리 목하랑 아는 새끼야? 남자친구라도 돼?”
    “그날 오 분만 오 분만, 하다 늦었다고 했어요. 엄마 말처럼 오 분이 오십 년이 됐다면서…….”
    “너 이 새끼가.”
    “여보, 안 돼.”
    주먹과 비명이 동시에 부딪혔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멍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우리 목하 남자친구 없어. 걔 성격상 있으면 제일 먼저 나한테 말했을 거야.”
    “…….”
    “맞아. 미용실에서 내가 잡지 보면서 지갑 예쁘다 했어. 그날…… 마지막 통화할 때…….”
    경찰서에 돌덩이 같은 고요가 내려앉았다. 고성과 소란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책상에서 떨어진 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꿀꺽 삼킨 마른침이 바위 굴러가는 소리를 냈다.
    “내가 목하한테 그랬어. 네 오 분은 오십 년이냐고. 그건 나랑 목하만 아는 얘기야.”
    내 목을 틀어쥔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여자의 시선이 깊게 폐부를 찔렀다.
    “정말 우리 목하가.”
    “…….”
    “너를 찾아갔구나?”
    ‘더 이상 우리 엄마 까맣게 말라 가는 거 못 보겠어. 아빠는 어떻고, 가뜩이나 힘든데 혹시 엄마가 무서운 생각이라도 할까 봐, 혼자도 못 있게 해. 그래서 이모네 있는 거야. 벌써 한 달이 지났잖아. 곧 엄마 아빠 집으로 돌아올 거야. 와서 내가 주문한 택배라도 봐봐. 우리 엄마 또 얼마나 무너지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깟 해외 배송 절대 시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 목하가 찾아왔었다. 보라색 카디건 교복 차림은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남들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바꼭질을 하다 골목에 앉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은 긴 머리 누나도 봤다. 건물 꼭대기에 서 있는 아저씨와 집 안을 빠끔하게 엿보는 아기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위험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기에게 엄마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전혀 몰랐다. 그들이 모두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49일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들은 미쳤다며 하나둘 나를 피했다. 내 과거를 알고 있는 어른들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혹시 우리 목하가 지금 여기에 있니?”
    나는 간절한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머니 옆에 목하가 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여자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맴을 돌았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딸을 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느끼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목하야, 너 거기 있니?”
    나는 고집스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너무 끔찍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절대 아니었다. 할머니 말을 들었어야 했다. 절대 혼령과 눈을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다. 목하가 아무리 나를 쫓아다녀도, 수업시간 내내 혼이 나도 그냥 끝까지 모른 척했어야 했다. 그런데 결국 참지 못하고 녀석에게 말을 걸어버렸다.
    “나쁜 계집애. 너는 어쩌면 끝까지 이기적이니?”
    여자가 중얼거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왜 엄마가 이 택배 보면 또 울까 봐, 슬퍼할까 봐, 그렇게 네 손으로 치워버리려 했어?”
    목하는 엄마가 아픈 게 싫다 했다. 자신을 잊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말했다.
    “그래 엄마 슬퍼. 죽을 만큼 아파.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아. 그런데 이것아.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엄마 슬퍼하는 것도 못 하게 해.”
    여자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딸과 이야기를 하듯 따뜻하고 다정했다. 이토록 비현실적인 모습이 나는 점점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금씩 옥죄어 왔다.
    “엄마 슬퍼할 만큼 슬퍼할 거고. 아파할 만큼 아파할 거야. 아마 평생 그렇게 살 거야.”
    누군가 훌쩍 코를 들이마셨다. 큼큼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게 엄마 권리자 의무야. 그러니까 멋대로 너 잊으라는 말 하지 마.”
    “…….”
    “선물 고마워 목하야. 잘 쓸게. 우리 딸 최고다.”
    마지막으로 여자는 웃었다. 아주 환하고 밝은 모습으로.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에 눈물만큼 아픈 미소가 있다는 것을, 웃음이 저토록 슬플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에이 씨 진짜.”
    나는 꽉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고마워.” 귓가에 목하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이것으로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경찰서까지 끌려갔지만, 후회되진 않았다. 아까운 토요일을 왕창 갉아먹은 것이 조금 아쉽긴 했다. 너무 길고 고단한 하루였다. 나는 경찰서를 나와 터벅터벅 시장으로 향했다.

 

    “네가 웬일로 팥죽을 다 먹냐?”
    “액운 쫓으려고 그런다 왜?”
    청안댁 아주머니가 퇴근한 후, 나는 할머니를 도와 가게 문을 닫았다. 입안에 진한 팥죽 향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 나 밉지 않아?”
    그릇을 정리하던 할머니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밉지 인석아.”
    엄마는 나를 낳은 지 하루 만에 사망했다. 갑작스러운 쇼크로 인한 심정지,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 후 아버지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로부터 3일 뒤, 할머니에게 전화 한 통이 날아들었다. 경찰서였다. 아이를 부탁한다는 쪽지가 바지주머니 속에서 나왔다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은 죽음으로도 끊어 놓을 수 없을 만큼 길고 단단했던 것이다.
    그날 할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신당을 부숴버렸다. 더 이상 세상을 떠도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신을 거부한 후, 시장 한 귀퉁이에 팥죽집을 차렸다. 그러나 질기디 질긴 운명은 할머니에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 손자는 곧잘 엉뚱한 말들을 내뱉었다. 폐렴으로 죽은 노인과, 옥상에서 실족사한 남자와, 소아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꼬마까지, 손자는 이 모든 혼령들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팥죽집을 피해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저 할머니 과거 무당이었대. 신기가 보통이 아니었다며? 그 피를 손주가 고스란히 이어받은 거지. 엄마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죽고, 아버지는 부인 따라서 스스로…….’
    ‘어쩐지. 그 아이 보면 괜히 등허리가 다 오싹하더라. 얼굴도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잖아. 두 눈이 유독 크고 까만 것이 뭔 고양이처럼 생기지 않았어? 어릴 때 크게 한 번 앓았다고 하던데. 그게 다 신내림 받으려고 그런 거잖아.’
    ‘어린애한테 차마 할 말은 아니지만. 할머니부터 엄마 아버지까지 말이야…….’
    사람들은 둘만 모여도 수군거렸다. 부모를 잡아먹고 태어난 아이가, 엄마를 대신해 신의 선택을 받았다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저주받은 아이로 통했다.
    나는 눈을 들어 할머니의 진회색 눈동자와 마주했다.
    “그럼 할매, 나 마음껏 미워해.”
    “…….”
    “그게 할매의 권리자 의무야.”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엄마와 아버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겠지. 할머니도 딸과 사위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랬다면.
    할머니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그럼 너무 밉고 미워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다. 알아 인석아?”
    할머니에게 나는 마음껏 미워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내가 엄마와 아버지를 마음껏 원망할 수 없는 것처럼.
    “할매. 올해는 절에 같이 가.”
    나는 한 번도 절에 간 적이 없었다.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엄마의 죽음의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까. 어느 날부터 엄마 아버지는 내게 금지어가 되었다. 내가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었다.
    똑똑똑 싱크대에서 물이 떨어졌다. 할머니의 입가에 허탈한 미소가 머물렀다.
    “솔아.”
    “…….”
    “너도 마음껏 원망하고 또 마음껏 그리워해라. 아들이잖아.”
    “…….”
    “그게 네 권리 아니겠냐.”
    나는 뒤돌아 가게를 빠져나왔다. 계단에 올라서는데 허방을 짚듯 어지러웠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내 방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책상 서랍 문을 열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건 젊은 시절의 엄마와 아버지였다. 내가 찾아오기 전, 두 사람의 행복한 시절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었다.
    목화의 얼굴이 엄마를 닮지 않았다면, 괜스레 흘낏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직 이생에 남아 있는 혼령과 눈을 마주치지도, 엉뚱한 일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죽음으로 태어난 생명이었다.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 나란 생각뿐이었다. 엄마를 찾아가는 것조차 미안했다. 그리워할 자격조차 없다 믿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음껏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싶었다. 이 모든 아픔이 남겨진 자들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그래야 또 살아갈 힘을 갖게 될 테니까.
    나는 액자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닌 척해도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랑, 설렘, 아픔 그리움 같은 것 말이다.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배시시 웃었다.
    “정말 할매 말대로 나 엄마 닮은 것 같네?”
    그 순간 문 밖에서 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여편네가?”
    누군가 또 할머니에게 사주팔자 얘기를 꺼낸 모양이었다.
    “내가 그 집 딸이 시험에 붙을지 어찌 알아. 공부한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열심히 했으면 붙고 아니면 떨어져. 됐어? 나는 팥죽 쑤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전화 끊어.”
    팥죽집 문이 닫혔다. 세상도 시나브로 어둠 속에 잠겨 들어갔다. 또렷한 경계와 형태가 사라지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서서히 잠에서 깨기 시작한다.
    “나도 목하한테 고마워해야겠네.”
    시간이 걸렸지만 택배는 결국 원주인에게로 돌아갔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사진 속 두 사람이 나를 향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희영
작가소개 / 이희영

2013년 제1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대상·2014년 제13회 5·18문학상 소설 부문·2018년 제1회 브릿G 로맨스릴러 문학상 대상·2018년 제1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 『썸머썸머 베케이션』(살림출판사), 『너는 누구니』(황금가지), 『페인트』(창비), 『왜 자꾸 나만 따라와』[공저](자음과모음).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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