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부를 찾아주세요

[단편소설]

 

 

내 피부를 찾아주세요

 

 

이은선

 

 

 

    코드: A-20020505
    내용: 가족 내 이식의 건, 한국, S병원 피부과 임상연구센터

 

    선뜻 입을 떼지 못하는 규진에게 친구 부부는 단호한 눈매로 말을 이어 갔다. 네가 안 해주면 우리가 해. 부부가 들고 온 밀봉 식염수 비커 안에는 막 죽은 아이에게서 떼어낸 피부 편 두 장이 들어 있었다. 각각 분리해서 넣어 와야 했을 텐데,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을 보면 확실히 어디 한쪽이 마비되거나 망가져 버린 모양이라고 규진은 미루어 짐작했다. 세 살짜리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서는 어떤 단어도 무용했다. 그래도 규진으로서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구실의 말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규진은 책상에 올려 둔 티볼리 오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그 자리의 모두에게 꽤 익숙한 보사노바풍의 오래된 멜로디였다.
    충혈 된 눈으로 서 있던 친구 내외를 일단 의자에 앉히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인턴 때부터 대학원, 포닥을 밟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누구보다도 서로의 성정을 잘 안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도무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부부가 규진을 더 세게 몰아붙였고, 규진은 난데없이 날아온 진공 비닐에 온몸을 조이는 기분이었다. 이십 년의 전우애는 잠시 접어 두고서라도 이 케이스는 안 된다고 말해야 옳았다. 규진이 한층 더 완강한 목소리로 그들을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부부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과는 서로 달랐어도 마주칠 일이 많았고, 어쩌다 보니 모교에 남게 된 것이 세 사람뿐이어서 주로 랩 이사장과 학부 때 지도교수였던 병원장의 정치적 활보를 욕할 때 꽉 뭉쳤다. 가끔 만나서 식당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음식을 시켜 놓고 누구 욕하기가 세 사람의 유일한 취미였다. 끈끈했다고 말하기에는 모호했지만 최소한 누가 수세에 몰릴 때 같은 편에 서 줄 사람들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누가 궁지고, 어느 쪽이 수세인가.
    규진은 친구 내외를 일단 장례식장으로 돌려보냈다. 그들은 무언의 압박용으로 비커를 티볼리 오디오 위에 올려 두고 갔다. 음악이 크게 울릴 때마다 그 안에 담긴 액체도 함께 진동했다. 어쩔 수 없이 규진이 멸균 통 두 개를 가져와 식염수를 부은 다음에 피부 편들을 나눠 두었다. 규진은 일인시위 하는 동료를 멀찍이서 피해 돌아가는 사람처럼 오후 내내 비커가 있는 냉장고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알아서 잘 걷어온 살을 복부에 이식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말할 문제만은 또 아니어서 규진은 온종일 커피와 차를 번갈아 마셔댔다. 그러다 저녁이 되기 전에 카페인 과다로 온몸을 떨었다. 독한 럼이나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픈 생각이 간절했지만 어쩐지 오늘은 피해야만 할 것 같았다. 피부이식쯤이야 눈 감고도 했지만, 가족 내 이식과 하필 죽은 아이의 케이스는 어느 과에 보고를 해야 하는가. 병원 윤리위원회 아니면 경찰? 다행히 장례식장과 영안실, 랩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두 군데뿐이었다.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고 기증된 시신을 옮기는 길이었다. 흔히 더미 로드라 부르는 그 길을 수없이 지나던 부부와 규진은 어쩌면 오늘 그곳을 두 번은 더 오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규진의 얼굴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어도 구두 속의 발가락들이 끊임없이 달그락거렸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세 번째 마디들을 모두 들어 올려서 아이를 데려간 신에게, 그 아이의 살갗을 떼 온 그 시간 쪽으로 진한 욕을 퍼붓고도 싶었다. 의사들만 아니었어도……. 규진은 잠시 시간을 달라는 뜻을 밝히며 결정을 보류했다.
    죽은 자식의 피부를 부모 몸에 심었다는 보고는 학계나 기사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분명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논문 사이트를 뒤져도 자신이 아는 최대한의 센스와 난센스를 발휘해도 찾기 어려웠다. 자정이 넘을 때까지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랩에서 가장 후미진 곳의 수술장의 문이 열리고야 말았다. 센터장인 규진이 이미 그곳의 보안 설정을 해제한 다음이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한 더미 몇 개도 가져다 둔 상태였다. 시신을 옮기거나 생체 해부가 열리는 수술대 위에 아이 아빠가 먼저 누웠다. 엄마는 거의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이를 앙다물고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규진이 살의 매듭을 지으려고 할 적에 아이 엄마가 자기가 하겠다며 수술대 쪽으로 바투 섰다. 엄마는 최대한 정성스럽게 아이와 아빠를 꿰맸고, 그러는 동안 오염이라도 될까 싶어 얼굴에 눈물을 힘껏 가두고 있었다.
    영안실에 있는 아이의 배와 엉덩이에는 아빠와 엄마의 살이 옮겨갔다. 그 일만큼은 규진이 모두 했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자식 한 번 더 보겠다는데, 게다가 이 병원의 의료진이라 밝히니 영안실 경비들도 그들의 출입을 막지 않았다. 부모의 직함만으로도 저 문이 열렸겠지만, 센터장의 출현이 수술 중간에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시간을 더 벌어 주리라는 것을 모두 알았다. 신경과 근육, 혈관을 잇는 것이 아닌 피부이식은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체감상으로는 떨어진 단추를 옷에 매다는 시간보다도 짧았다. 예과 때부터 바느질 술기 하나는 탁월했던 규진이었다. 계란 껍질과 막을 분리해 투명에 가까운 실을 연결하던 제 손의 술기에 감탄해 마지않던 이력을 아직도 몸이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여기에 쓸 줄은 몰랐지만, 규진은 처음으로 침착함을 잃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부모를 향했더라면 차마 하지 못했을 말이 실 맨 바늘 꽂히듯이 아이 쪽으로 다가갔다.
    ‘엄마 아빠도 함께야. 너도 항상 여기 있는 거야.’
    엄마 쪽으로 옮겨간 피부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아빠의 복부가 곪아 갔다. 항생제를 바꾸어 써보아도 차도가 없었다. 부부는 밤마다 고름을 닦아내며 아이의 살이 사라질까 전전긍긍이었다. 네가 없어지면 우리도 없어진단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임상이 채 끝나지 않은 신약 항생제를 투여했다. 그 역시도 규진이 고심 끝에 내어준 약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결과가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의 마음에 농이 한가득 고인 날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아이가 바르던 상처 연고도 가져와 발라 주었다.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걸 본인도 잘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빠의 피부는 서서히 차도를 보였다. 살점을 도려내야 할 것처럼 곪아 가던 접합 부분의 괴사가 멈춘 것이었다. 그래도 이미 괴사 된 피부는 도려내야 했다. 이식된 쪽의 부족 부분은 겸자로 피부를 늘렸다. 아이의 피부였던 터라 탄력이 남달랐다.
    살이 겨우 아빠의 배에 안착하는 것을 본 이후로 규진은 그들과의 연을 끊었다. 누군가는 해주어야 할 일을 이쪽에서 먼저 했을 따름이었다. 부모보다 먼저 규진이 병원을 나왔다. 의학적인 기술 외에 더 발휘했어야 할 어떤 것을 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 이후로 집처럼 상주하던 랩에 발붙이는 일이 심드렁해졌다. 규진은 학회에서 만났던 존스홉킨스 병원의 의사 알렉스에게 메일을 한 통 보냈다.
    새살이 몸에 잘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세 살 때 떠난 아이가, 자신들에게로 와 새살로 자라고 있는 아이가 진짜로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부모의 집착이라도 좋았다.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다 받아들일 각오도 되어 있었다. 다시 아이와 한 몸으로 살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일들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대가 아무리 변해 가도 타인의 흉터에 대하여 함부로 묻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어쩌다 흉터를 보게 된 사람들에게 화상을 입었다고도, 문신을 지우다 이렇게 되었다고도 해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쓸모없는 말들이었다. 여기는 우리 아이예요. 진실을 말한 적도 있지만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도 모두 다 여자가 임신한 상태이기 때문으로 인지했다. 아이를 보낸 지 사 년째 되던 해였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배에 덧붙인 살도 떠밀려 올라갔다. 부부는 배를 볼 적마다 둘만이 아는 비밀 때문에 가슴이 저려 왔고, 또 평생 함께하게 될 거라는 마음으로 겨우 안심을 했다. 아이와 그 살점에 관해서라면 그 어떤 세월이 흘러도 무뎌지지 않았다.
    “살을 좀 더 남길 걸 그랬나.”
    아빠의 말에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배 속의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당부했다. 너는 꼭 세 살을 넘겨 살기를, 부모에게 새살을 남겨 두는 일이 없기를, 네 살, 열네 살, 마흔세 살도 넘겨 살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때마다 아랫배가 지그시 움직였다. 아빠가 누워 있는 엄마 곁으로 상의를 벗고 다가왔다. 엄마의 배 위에 아빠의 상체가 포개졌다. ‘이제 우린 네 식구야.’ 얼마 만에 갖는 안도감인지 몰라서 부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딱 한 번, 엄마의 엄마만이 이 살을 알아보았다.
    “여기 왜 이러니? 웬…… 아기살이네!”
    엄마가 흘린 눈물이 두둑하게 솟아오른 배 위로, 하필 그 살 위로 떨어졌다. 눈물이 곧장 살에 스몄다.
    규진의 사표는 세 차례나 반려되었다. 지도교수였던 병원장 결재까지 올라갔던 사직서는 쉽게 승인이 나지 않았다. 미국의 존스홉킨스 산하의 랩을 거쳐 스웨덴까지 갔던 규진은 끝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랜 진통 끝에 후임이 정해지자 규진이 자신의 파일들을 송부해 줄 것을 요청했고, 암호가 걸려 있던 파일들은 모두 해제되어 랩 내부의 검토를 거친 후에 본래의 작성자에게 돌아갔다. 그때 이 기록이 남아 있었지만 아무도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었다. 흔한 피부이식이었고 부작용이 일어났다 정도로만 적혀 있는 보고서는 학부생의 실험보고서에도 적용이 가능한, 흔하디흔한 것이었다.
    내내 싱글로 연구만 할 줄 알았던 규진이 스웨덴에서 만난 싱가포르계의 인턴과 결혼을 했을 적에는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는 아내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결혼식 피로연에서 밝혀 찬사와 야유 섞인 박수를 한꺼번에 받았다. 하객 중에 대학 동기 부부는 없었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규진이 일하는 랩으로 선물 꾸러미가 하나 와 있었다. 간만에 읽는 한글 편지가 무척 반가웠지만 바로 답장은 하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아이가 태어났다. 마흔다섯에 얻은 늦둥이 아들을 곁에 둔 규진이 얼핏 생각나는 옛일에 잠시 넋을 놓으면 아빠 쪽으로 기어온 아이가 규진의 품에 폭 안긴 채로 규진의 두 눈과 코를 두 손으로 사정없이 찔러댔다.

 

    덧나던 아이 아빠의 복부에는 켈로이드 피부처럼 자국이 남았다. 성인 손바닥 정도 되는 크기였다. 그러는 동안 모두 옛날로부터 한 뼘쯤 돋아 나왔다. 조용히 묻어 둔 어떤 것으로부터는 두 뼘 정도.

 

 

    코드 : B-20120602
    내용 : 재생 피부 연쇄살인의 건,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센터

 

    범인이 머리카락을 휘감아 들고 있던 피해자의 얼굴에서 피와 살점들이 마구 흘러내렸다. 범인이 뜯어먹어 버려서 절반도 채 남지 않은 얼굴의 상태가 매우 처참했다. 빨간 젤리처럼 흐물거리다 뚝뚝 떨어져 내리는 피부를 규진이 힘써 외면한 채로 수석 인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규진은 바닥에 떨궈진 그것이 이 랩에서 발명한 스킨인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생긴 것만 봐도, 흐르는 모양만 봐도 제가 만든 것임을 아는 개발자였다. 재생된 피부만을 뜯어 먹는 살인범 아니 좀비 혹은 이 괴물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그저 막막하게 두 발에 힘을 주었다. 범인과 랩의 인턴을 같은 공간에 둘 수는 없었다. 때 탄 탐험복 차림의 동양인이 불쑥 끼어들어 책임과 신변보호 운운하며 따지고 들자 경찰들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경찰이 규진에게 ID카드 혹은 여권을 요구했다. 여권이라니. 규진은 주머니에 있던 랩 명찰을 던지듯이 건네며 인턴 앞으로 갔다. 규진과 함께 왔던 사람은 햇빛과 이쪽의 소란을 피해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 밑에 서 있었다. 경찰과 연구소 경비들이 다가가 그에게도 신분증을 요구하려는 것을 저 멀리서 규진이 손짓으로 물러서게 했다.
    규진이 이 랩의 연구 책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찰들의 태도가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것에는 분명히 어떤 차별의 행동이 있다고 느낀 규진이었다. 인턴 역시도 아시아계가 아니었더라면 범죄자와 같은 폴리스라인 안에 서 있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까. 피해자 신변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찰들을 고발하겠다는 말과 함께 규진은 인턴 곁을 지켰다. 삼 개월 전에 입사한 수습 연구원을 편의상 인턴으로 불렀지만 엄연히 이 랩에 소속된 직원이었다. 규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수를 남발해서 은근히 미움을 사던 인턴이 어떻게 저자를 한눈에 알아봤을까 내심 기특하기까지 했다.
    복제된 피부 속 RNA와 DNA를 갈라 원심분리기에 넣던 그 간단한 술기와 눈썰미는 다른 모양이라며 속으로만 감탄했다. 인턴의 자기소개서에서 쇼핑을 좋아한다, 명품 가방의 솔기를 기막히게 알아볼 수 있는 눈썰미가 있다는 소개에 어처구니없이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랩의 수준에 걸맞게 지원자의 경력은 화려했고 아시아계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밖에 없던 규진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것이 아닌 상황을 맞닥뜨린 것 같았다. 규진은 담당 변호사가 올 때까지 경찰이 움직일 때마다 인턴의 앞과 옆을 시크릿 가드처럼 가로막았다. 그러면서 경찰들이 피해자 여인의 두상을 시신용 검은 봉투에 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나무 밑의 사람은 연구소 직원들에 의해 검은 천에 둘러싸여 햇빛으로부터 격리된 채 연구소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살인범은 이미 체포되어 수갑과 밧줄로 온몸이 묶인 뒤였지만 자해가 우려돼 입에는 마스크를 씌워 둔 채였다. 그것은 죽거나 산 사람의 얼굴 살을 뜯어 먹은 입이었다. 한 명도 아니고 보이는 족족, 재생 피부로 보이는 얼굴들만 용케 찾아다녔을 눈이었다. 규진은 절로 솟아오르는 살의를 억누르느라 온몸에 힘을 주었다. 살인범이 마지막으로 남긴 SNS에는 여자친구의 살맛이 그립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본래의 살은 제치고 재생된 피부, 인조 피부만 뜯어 먹은 사람을 살인자라고 불러야 하나 ‘뉴-스킨 컬렉터’라고 칭해야 할까 네티즌들은 설왕설래 중이었다. 같은 이름의 화장품 회사에서 대대적으로 성명을 발표한 뒤에야 ‘뉴-스킨 컬렉터’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피해자 중에서 성형을 한 사람들의 얼굴도 많았지만, 화상을 입거나 의료용 시술로 ‘파우더리 스킨’을 뿌려 재생된 얼굴들도 다수였다. 어떤 상처로부터 겨우 얼굴을 되찾아왔는데 그 일을 당해버린 것이었다. 제 애인을 집착하다 죽여 놓고 그와 비슷한 얼굴들을 찾아가서 보이는 족족 살을 뜯어 먹는 범인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필 이 랩에서 발명 특허를 낸 파우더리 스킨이 원인인 것을 알게 된 연구원들은 선정적, 악의적으로 보도되는 기사에 자괴감에 빠졌다. 그 범인이 랩에까지 진격해 온 것이었다.
    규진은 조사가 더 필요하면 담당 변호사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인턴의 팔을 이끌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정문의 보안장치가 잠금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서야 두 사람도 겨우 몸의 긴장을 해제했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들여보낸 인턴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규진은 모른 척했다.

 

    전쟁터에 자원을 나갔던 규진과 함께 돌아온 ‘사람’이 연구소 한쪽에 방을 얻어 자리를 잡는 동안에도 어쨌거나 실험은 계속되었다. 터전을 폭탄에 잃고 가족마저 산화된 사람이 어째서 여기까지 따라왔는가에 대한 의문은 규진이 내민 혈청 샘플이 해결해 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1/2밖에 생기지 않은, 그렇지만 면역은 일반인의 피부보다 두 배는 강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이었다. 인명을 구조하는 봉사자였다가 어쩔 수 없이 직업정신이 발휘되고야 만 규진 덕분에 이곳까지 따라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그냥 놔두었다 하더라도 어차피 그곳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던 터라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의 피부가 유전 때문인지 생후의 변형인지 알아내기 위하여 새로운 팀이 꾸려졌다.
    그 덕분에 부작용이 거의 없는 신소재 파우더가 조금 더 빨리 탄생했다. 규진의 랩은 피부 재생에 관한 특허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중이었다. 물에 넣어 재생시키는 피부, 일회용 접착 피부와 거즈처럼 붙일 수 있어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피부를 비롯하여 죽은 자들의 피부이식 합법화를 위한 국제 윤리재판소 소송이 마지막 판결을 앞둔 상태였다. 세계의 언론들은 스웨덴의 스킨 랩과 그것을 이끄는 팀을 향하여 ‘스킨 어벤저스’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랩의 홍보요원들이 물밑작업을 했겠지만 그쯤이야 뭐. 이곳에서 하는 모든 연구들이 어느 부분에서든 규진이 지나온 한국과 전쟁터에서의 기억을 소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규진은 일정 부분 그쪽에 빚을 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그림자려니 여겨야만 마음의 짐을 더는 기분이었다.
    규진의 복잡한 마음과 달리 그의 외부는 늘 바빴다. 세계 곳곳이 늘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마음이나 관계의 전쟁이 아니라 실제로 피가 튀기고 살점이 날아다니는, 모든 것들이 폭사 되고야 마는 전쟁이었다. 사실 스웨덴은 국경없는의사회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긴밀하게 접촉하는 상태였다. 그것을 알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규진이 전쟁터에 가장 많이 나가는 현장 의사가 되었다. 실전을 누비며 임상의 결과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은 전쟁터에서는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어찌 되었든 사람을 살릴 것, 부상자를 빨리 치료할 것이 그들의 정언명령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정보들이 랩의 큰 자산이 되었다. 전쟁을 치른 나라에서 자국의 식민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던 실험과도 엇비슷했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차원이 달랐다. 실험과 치료 사이를 오가다 폭사 된 부족민들 사이에서 홀로 울부짖고 있는 그를 만난 거였다. 피부가 없는, 더 정확히 말해서 진피와 근육이 몸 바깥으로 다 드러나 있는 ‘헐벗은 사람’이었다. 규진은 단박에 그 사람의 피부 조직과 세포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그 순간부터 규진은 그의 보호자이자 후견인을 자처했다.
    전쟁터에서의 피부란 단순히 살갗 그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부상자들은 일단 흐르는 피만 멈추게 해주어도 거의 다 나았다고 믿었다. 믿는 수밖에 방법이 없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스킨은 미용이 아닌 생존의 의미였기에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도, 어디서나 쉽게 공수할 수도 없었다. 그런 곳에서의 분말용 피부라니. 아직 실험 단계에 불과했지만 피폭된 살점을 드러내고 새로운 분말 피부를 뿌리는 일이 지혈과 살갗 재생에 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세계의 바이어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규진의 연구소로 돌진해 왔다. 2년 이상 걸리는 임상시험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회사들이었다. 그럴수록 규진은 계약을 미룬 채 전쟁터와 오지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투에서 얻어낸 결과물의 자료화에 매진했다. 어디에도 발설하거나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자료들이었다. 규진만이 다루고,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던 그것들은 머지않아 ‘파우더리 스킨’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 한가운데 전시 중에 데려온 사람의 돌연변이 혈청이 있다는 사실은 연구소의 기밀 사항이었다.
    업체들과의 계약은 규진의 와이프이자 이제는 랩의 책임자가 된 챠오밍이 도맡아 했다. 당연히 의료계가 1순위였고 다음은 뷰티인데 이상하게 각 나라의 뷰티 산업은 대부분 케미컬 즉 화학업체 소속이었다. 어찌하여 뷰티가 케미컬에 속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의학 바깥의 일이었으므로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밤마다 아내가 보내온 전자결재란에 클릭만 하기에도 바쁜 규진이었다. 의료계보다 뷰티 쪽이 더 열렬히 환호했다. 그 사업을 도맡느라 챠오밍이 따로 팀을 분리해야 했을 정도였다. 단박에 범죄자를 알아보던 수습 인턴의 눈썰미가 사업 쪽에서 빛을 발했다. 뭐라도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규진도 딱히 반대할 의사가 없었다. 의료 연구 기술 인력이 사업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파우더리 스킨으로 글로벌 뷰티의 지각이 변동되는 선봉에 챠오밍이 서게 되었다. 특허권과 상표권은 7:3으로 아내가 5를, 규진이 3을 가져갔다. 나머지 2는 기부에 쓰일 예정이었다. 그 20%도 꽤나 큰 금액이어서 스킨 도네이션계의 빌게이츠라 불릴 정도였다. 챠오밍과 규진 부부의 뜻이 만난 결과였으므로 두 사람은 만족했다.
    사람의 뼈와 피부는 공기 중에서 생각보다 쉽게 피폭되거나 터져 나갔다. 전쟁터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생활 방사능에 노출되어 녹아내린 살점도 많았다. 가만히 있어도 공기 중에서 피부가 녹는 사람들도 발견되었다. 일상에서의 사고는 더 말해 무엇할까. 사고는 둘째치더라도 십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해의 흔적들을 바코드라 부르는 괴상한 유행도 도는 중이었다. 그 외에도 이상한 케이스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개중에는 아예 피부가 없이 태어나는 생명체도 있었다. 연구팀은 살갗이 없이 태어나는 아이들의 얼굴에 피부를 덧붙여 줄 계획도 근사하게 세웠다. 랩에서 보면 인간계는 피부와 피부를 둘러싼 안팎의 무엇으로만 구성된 지층이었다. 파우더리 스킨은 근육과 뼈가 드러난 곳에 임상 없이 일차적으로 뿌리기에는 위험했던 터라 의학적인 치료로 아이를 몇 년 키운 다음에 재생 피부를 붙여 주는 일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이른바 자원봉사 격인 실험들이었다. 규진은 특히나 그 일에 힘을 쏟았다. 그와 동시에 규진팀은 연구소 내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온몸의 피부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이자 다짐도 해두었다. 다이버들이 아이스 다이빙을 하기 위하여 온몸을 감싸는 다이버슈트를 입는 것처럼, 온전한 피부를 입게 해주고 싶은 것이 이 연구소의 새로운 목적이 되었다. 벗고 입고 뿌릴 수 있는 피부의 모든 것이자 암묵적인 규진의 최종 목표였다.
    챠오밍의 사업적 수완과 규진의 의지와 만난 결과물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부상자 환부와 터진 혈관들이 봉합되었고, 그 위에 살점이 뿌려지자 감쪽같이 상처가 지워졌다. 물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파우더를 뿌려 주어야 했지만 응급상황에서는 그보다 더한 응고제가 없었다. 위급한 사람들은 약품에 담가 피부를 굳혔고, 덜 급한 이들은 파우더리 스킨을 이용했다. 부작용도 있었지만 거기는 부작용보다 급한 초분시를 다투는 전쟁터였다. 규진은 부작용에 관해 더 자세하게 보고서를 작성하여 랩으로 전송했다. 부작용의 사례들을 적어 둔 것이 그 이후의 임상시험의 핵심 연구과제가 되었다. 머지않아 규진은 랩의 강력한 요청으로 곧 복귀를 해야 했지만 마음 한쪽을 전쟁터와 병사들에게 남겨 두고 왔다. 그리고 터전을 뺏긴 채 가족마저 폭탄에 잃고 랩에 들어와 사는 사람의 안부를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피부가 없는 근육 밑의 내장들마저 튀어나오기 전에 규진에게 발견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대로 두었더라면 언젠가는 그 병의 합병증으로 죽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민달팽이 같은 몸에 피부를 덧붙이는 실험은 규진의 랩 제자들이 씩씩하게 해나갔지만 녹아내린 얼굴을 다시 만드는 데는 외부 인력까지 동원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파우더리 스킨과 부분 접착 스킨을 번갈아가며 뿌리거나 붙였고, 초빙된 성형외과의가 눈과 코, 입술의 모양을 살려 주었다. 페이스오프. 그에게 필담으로 누구의 얼굴을 가장 닮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그가 규진을 가리킨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몰랐다. 규진은 극구 반대했지만 연구원들은 제2의 규진을 만들어주었다. 새로운 진이라는 뜻의 뉴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어쩐지 입에 붙지 않아 그냥 이니셜로 부르는 축들도 많았다. 사람, 뉴-휴먼 즉 NH, 그러나 말하기 쉽게 뉴진.

 

    어느덧 허리춤까지 자란 아들이 차올린 축구공에 복부를 맞는 일이 잦았지만 전쟁터에서 팔다리가 터지고 부서진 뼛조각이 날아드는 것에 비교하면 안전한 시간들이었다. 상처에 피부 분말을 뿌리는 연구로 상을 받으러 간 엄마 대신 아이와 함께 단둘이 보내야 하는 날도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엄마는 허락하지 않는 밤샘 게임을 하게 해주자 아이는 엄마가 자주 집을 비우기를 대놓고 바랐다. 물론 그것이 다 엄마 아빠의 계획 중의 일부였다는 것을 아이가 알 리가 없었지만.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규진과 그의 아내는 죽죽 자라나고 있는 아이의 맨살을 만져댔다. 이건 진짜인 살들이었으니까. 인체와 거의 흡사한 신소재 파우더만 만지다 보니 아이의 감촉을, 맨살의 느낌을 잊은 것 같은 날에는 특히 더 세심하게 아이와 신체 접촉을 하려고 애썼다. 아이가 잠들면 부부는 오랫동안 서로의 몸을 만져댔다. 태생부터 진짜인 살을 만져야만 버틸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다.

 

 

    코드: H-20250324
    내용 : 부작용에 관한 건, 전쟁과 전쟁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빨리 터질 줄은 몰랐다. 전쟁터와 랩에서 수많은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워낙에 다양한 인종과 모두 다른 신경관과 세포 결손, DNA의 결합체가 피부인 셈이니 ‘모두에게 맞는’이라는 말은 맞지 않았다. 그보다는 ‘모두에게나 그나마 부작용이 덜한’이라고 표기해야 옳았다. 그러나 곳곳에서 걸려오는 몇몇 클레임은 랩의 직원들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뷰티 쪽에서 특히 심했고, 일주일에도 몇 건씩 세계 곳곳에서 의료 소송이 걸려오기도 했다. 그래도 랩과 전체 연구소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정식으로 구입한 정품 파우더에서 나온 것이 아닌 가짜 파우더의 혼입이 낳은 결과도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정품을 구입해 바르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과용량의 사용이 문제가 되었다. 랩의 변호인 측은 그 부분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홍보팀은 정품 사용의 정확한 예시에 관한 광고를 만들어 세계 곳곳으로 송출했다. 뷰티에 대한 열망은 부작용을 가뿐히 넘어섰다. 연구진의 예상보다도 빠른 수치였다.
    연구 외적인 것은 챠오밍 쪽에서 맡아 주었다. 그런 점들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류의 뷰티에 대한 애정과 집착에 대하여 혀를 내두를 지경이 되자 연구소에서는 급기야 뷰티 쪽의 사업을 따로 분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혹은 아예 접어버리거나. 그러나 챠오밍의 생각은 달랐다. 부작용도 과정이라는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뷰티에서 창출되고 있는 돈의 단위가 의학계와는 얼마나 차원이 다른가를 그려 놓은 그래프가 회의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허공에 뜬 레이저 글자들을 본 사람들은 말을 진행시키는 법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언론에서 한 번씩 크게 다뤄질 때마다 랩의 주가가 폭락했고, 온갖 악성 댓글이 도배가 되었다. 법원의 판단은 늘 언론보다 느렸고 제값을 치르지 않고 파우더를 산 사람들은 슬그머니 숨었다가 손가락 워리어가 되어 파우더리 스킨을 비방해 댔다. 아시아 쪽의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스트 아시아, 차이나 계열 짝퉁 시장의 범례는 몇 페이지가 넘어갔다. 법원의 그나마 신속한 판단 같은 것은 애초에 연구소 편이 아니었다. 주가가 하락을 거듭하고 연구소의 재정이 흔들릴 지경이 되어서야 무혐의 결론이 나기를 여러 차례. 규진은 그때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개발 중인 것들과 그들의 연구 성과물을 필요로 하는 곳은 악플러보다 많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처음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연구소 한쪽에 아예 자리 잡고 살고 있는 뉴진의 혈청을 이용하여 새로운 피부 접착제를 만드는 일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다. 여러 실험군 중에서 뉴진의 혈액과 피부는 인간의 살과 인공의 살 그 중간의 성질을 띠었다. 연구원의 시선으로는 어쩌다 이런 보물을 발견했는가 싶었지만 간혹 사람으로서 할 짓인가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챠오밍이 내민 돈을 뉴진은 거절했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었지만 규진만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챠오밍은 이제 잊은 것일까. 둘은 뉴진의 대우와 거취를 놓고 여러 차례 언쟁을 했다. 뉴진과 규진의 마음은 이곳보다 전쟁터와 죽어간 부족민들 쪽에 조금 더 가 있었다. 챠오밍으로서는 가정과 연구소보다 전쟁터를 생각하는 남편이자 선배 연구원을 이해하려다가도 못 하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접착된 파우더리 스킨이 녹아내리자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심한 사람들은 혈관과 뼈가 드러났고, 패혈증 및 피부 괴사에 시달리던 이들의 항의와 고소장을 받은 후에야 특허권 소송 및 제약, 화학약품 회사와의 협의가 재조정되었다. 그러나 갖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끝내 다른 색과 질감의 피부를 갖고 싶어 했고 그 욕망에 따라 화학, 뷰티, 의학, 패션계가 움직였다. 흑백황으로 나눌 수 있는 한계가 점점 옅어진다는 점에서 인종 차별 논란은 전보다 줄어들었다. 미용계 중에서도 타투 협회 쪽에서 간혹 항의를 해오기는 했지만 인조 피부 위에서 타투의 색이 더 오롯하게 빛난다는 점을 발견한 이후로는 타투 협회와도 손을 잡았다. 내내 어두운 쪽에서 사람들 몸에 색을 입히던 것으로만 인식되던 타투가 어떤 장막을 열고 툭 튀어나오자 뷰티와 패션의 동향이 또 한 차례 거대한 웨이브를 탔다. 패션 쪽에서 손을 뻗어온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니면 한 발 늦었거나.
    의학계에서도 자체 피부이식의 경우와 시신에서 주로 걷어오던 이식 두 차례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비한 임상이 통과된 지 이미 오래였다. 피부의 사후 기증에 따른 박테리아의 번식이 줄어든 결과는 특히나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썩지 않는 피부, 매장 시에 굳이 떼어내지 않으면 뼈와 함께 내내 남아 있는 그 피부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젊은이의 죽음일수록 뼈와 함께 살도 지켜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만은 아니었겠지만, 그 반대의 이유로 화장을 하는 수도 급격히 늘었다.
    연구소의 입장에서는 전 세계 온갖 곳에 살점들을 뿌려대는 시기였으니 말 그대로 제대로 붙어 있던 살점들이 날아다닐 정도로 바빴다. 꼭 좋은 일에만 이 스킨이 쓰인 것은 아니어서 몇 번이나 윤리적인 실험대에 오르고, 언론의 가십거리가 되었지만 그 역시도 곧 지나갔다. 파우더리 스킨의 기본은 사람의 살을 재생시킨다는 가장 근본적인 것에 뜻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담 변호인들이 끊임없이 전쟁터의 부상병들을 위한 치료를 연구소가 가장 중요시하던 일이라는 사실을 수없이 피력했다. 연구소가 온갖 소송과 비방에 시달리다 못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금까지는 가만히 있는 것 같던 전 세계 의료진들이 탄원을 하기 시작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스웨덴에서 연구의 손을 놓으면 다국적 기업들이 이 콘셉트를 가져가 돈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려놓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규진의 연구팀은 무엇보다도 그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하여 매 순간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균열이 생길 때마다 공기 중을 흐르던 미세한 파우더 입자들이 규진의 마음을 메워 주었다. 그것에만큼은 부작용이 파고들 공간을 내어주지 않기로 한 것처럼 치밀하고도 흡착력이 좋은 마음의 분말이었다. 새살이 붙어 가는 것처럼 규진의 연구 또한 나날이 성과를 거두었다. 뉴진은 연구소에서 요구하는 대로 충실하게 따라 주었다. 하지만 파우더가 막지 못한 마음이 터진 때도 있었다. 오래 두고 뿌려 왔던 지점이 아예 송두리째 갈라져 버린 것이었다.
    챠오밍과 오랜 협의 끝에 이혼을 한 날이었다. 일이 바쁘다거나 다른 사랑이 생겼다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결혼생활이 멈추었고, 아이가 조기 유학을 위하여 다른 나라로 떠나자 그 둘은 다가오는 수순처럼 결혼을 중지시켰다. 이유를 대라면 분말보다 더 많은 입자들로 채워진 말들을 할 수 있었겠지만 둘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갔던 규진이 등에 상처를 입고 돌아온 날이었다. 아이가 하늘로 쏜 화살이 대기권 어디쯤을 찍고 내려오면서 하필 규진의 등을 스친 것이 화근이었다. 칼자국이라기에는 얕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기에는 자국은 분명 자국인 어떤 스침이 남아버렸다. 물론 고민 따윈 되지 않았다. 그들의 멋진 발명품인 상처 재생용 스킨 파우더가 있었으니까.
    챠오밍은 규진의 등에 파우더를 뿌리며 이제 그만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다. 객관적인 친구가 되자고, 우리는 좋은 동료임에는 분명하다고. 등을 치료받으며 들어야 하는 말 중에서 가장 나쁜 말이었지만 규진은 아내의 뜻을 반대하거나 그 말을 무시할 만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문제였다. 그러나 이미 엄마와 아이 사이에 모종의 말들이 오간 뒤였다. 어떤 관계들을 복원하는 데 붙여 줄 수 있는 촉매 파우더라도 발견해야 하나. 직업의식이 쓸데없이 그런 곳에 들러붙었다. 아내는 자기 탓이라고 했다. 규진 또한 제 탓도 크다며 말을 이어 갔다. 둘은 겉으로 상처가 나지 않았어도, 어떤 파우더가 있더라도 답은 같을 것이라는 생각에 의외로 쉽게 도달했다. 분말이 몸에 달라붙는 시간처럼 빠르고 신속한 결정의 시간이었다.
    사업 파트너로서의 관계는 유지할 것, 아이가 방학을 맞이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사흘에 한 번은 만나서 저녁 식사를 같이하고 연 2회 2박 3일 휴가를 가족이 다 같이 떠나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꼭 나쁘다거나 혹은 좋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마무리였다. 다음 세기에는 결혼 같은 제도는 없었으면 좋겠어, 어차피 죽으면 다 가루가 되잖아. 이미 온갖 가루들이 결혼이라는 생활을 뒤덮었던 것인지도 몰라. 우린 덧뿌려 주는 것 대신에 본성대로 흩어지는 걸 선택한 거야.
    파우더리 스키너들다운 생각이었다. 레스토랑 테이블에 마주 앉은 그들이 부부로서 마지막으로 부딪친 잔 속으로 어떤 미세한 입자들이 흩뿌려졌는데 그것이 미련인지, 이혼 이후에 시작될 사랑에 대한 예언의 표식인지 알 수 없었다. 파우더리 스킨의 부작용에 매달리다 보니 결혼생활에 틈입하여 점점 더 사이를 벌려 놓은 가루들을 미처 치우지 못했다는 생각은 들었다. 가루 혹은 어떤 분말보다 더 미세한 것들이 있다면 마음일 터였다. 결혼에 대한 마음, 결혼을 중지시킨 마음. 뭐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옆 테이블에서는 상대방이 화장실이나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뜰 때마다 휴대 용기에 담긴 스프레이 스킨으로 얼굴과 팔뚝을 뿌려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렇게까지 많이 뿌려대는 것을 보면 상대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라고, 우리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던 챠오밍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 역시도 마지막임을 짐작하고 뿌리고 나온 파우더 화장 탓에 눈물이 흐르기도 전에 피부에 흡수되었다. 규진과 챠오밍은 묵묵히 저녁을 먹었다. 마지막까지도 오늘 참 예쁘다는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러워서 챠오밍은 그날 밤 혼자서 오래도록 와인을 마셨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어버린 맨얼굴 위로도 쉴 새 없이 눈물이 나왔다. 아무것도 바르거나 뿌리지 않은 얼굴 위로 몇 년간의 세월이 흘러내렸다.

 

    챠오밍의 마지막 동의를 얻어 그녀가 쓰던 방으로 뉴진을 데려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책임질 수 있다면 끝까지 뉴진을 책임지고 싶은 규진이었다. 집에 온 첫날이라 그런지 뉴진의 방에도 오랫동안 불이 켜져 있었다.

 

 

    코드 : G-20300620
    내용 : 임상 결과의 분말 유리문

 

    피부를 바꾸어 살겠다는 사람들의 오래된 염원을 위해 생겨난 태닝 산업이 스웨덴 파우더리 스키너들의 도움으로 전환기를 맞았다. 태닝기에 빛 대신 분말을 넣어 뿌리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혼 후 특허권과 뷰티 사업체를 가지고 떠난 챠오밍의 첫 번째 야심작이었다. 사업 수완이 뛰어난 그녀의 촉이 유일하게 틀린 것이 있었다면 규진과의 결혼일 텐데 그녀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 아빠와의 관계도 원만했고, 사업하다가 만난 영화배우와도 즐거운 연애 중이었다. 굳이 가정을 꾸리거나 2세에 대한 집착 없이 가벼운 연애만 할 수 있고 각자의 비즈니스와 사생활은 터치하지 않는 연애야말로 챠오밍이 바라던 관계였다. 일과 사랑을 굳이 다 잡을 생각이 없었는데, 파우더 스킨이라는 신소재의 개발 사업과 재단의 자선활동을 유지하다 보니 남자들이 따라왔다.
    공기 중의 분말처럼 날아와 붙었으면 오히려 털어내기 좋았을 텐데 그들은 조금 끈끈하게 다가왔다. 들척하게 들러붙는 것들을 떼어내고 나면 저 먼 데서 옛날들이 손짓을 했다. 두어 번쯤 참다가 홀연히 스웨덴으로 날아와 전남편을 만나고 돌아갔다. 유학 중인 아이도, 남편이었던 사람도 별다른 불만은 없어 보였다. 아이가 남편의 연구를 이어받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는 아차 싶었지만 그 역시도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책임질 수 있는 마음이 내린 결정은 무조건 지지해 주어야 했다. 다만 아빠처럼 외골수로만 빠지지 않기만을 바랐고, 자신처럼 돈에 현혹되지 말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욕심이었다. 챠오밍은 아직은 미성년인 아이와 맥주잔을 부딪치며 그래도 여름휴가 2주간은 엄마와 함께 보내줄 것을 다짐을 받는 선에서 아들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챠오밍의 사업들이 날로 번창해 나가는 것에 대한 규진의 마음은 그저 응원 혹은 우려 섞인 환호에 불과했다. 여러 부작용들이 속출하는 중이었고 국제 소송도 수십 건이었다. 실력 있는 법무팀을 배경처럼 두르고 다니는 엑스 와이프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러기에는 규진도 랩과 자선사업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또 뉴진의 피부를 이어 줄, 파우더리 스킨이 아닌 진짜 피부를 되살려 줄 실험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연구와 봉사, 돈과 어떤 관계들이 지겨워질 때면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불법과 우정을, 부모의 사랑을. 그때는 그것이 집착 같기도 했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긴 뒤로는 마음이 바뀌었다. 스웨덴의 랩이 개발한 신소재 분말에 규진 팀이 직접 인체의 조직을 갈아 넣은 분말들을 뿌리고 나서부터는 그 기억이 더 진하게 들러붙었다.
    지금만 같았어도 아이의 피부를 재생시킨 파우더를 듬뿍 뿌려 주고 상처가 깊게 팬 부모의 마음에도 두꺼운 피부를 밴드처럼 붙여 줄 수 있을 텐데. 연락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듯싶었다. 옛일을 떠올리거나 입에 담았다가 또 상처를 받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스웨덴으로 와서 자신이 아이를 낳을 무렵에 그들도 두 번째 아이를 가졌고, 지금은 세 번째 아이까지 모두 합쳐 네 식구가 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세상에는 끝내 없애고 싶지 않은 흉터도 있는 법이어서 부모의 배와 팔뚝에는 여전히 그 아이가 살아 있을 것이라 믿으니 어쩐지 지구 반대편이 물렁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들로부터, 그때로부터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올 거리에 서 있으면서도 그 느낌만은 여전했다. 규진은 종종 그 생각에 사로잡혔다. 결국 이 연구를 끝까지 하게 만든 그 징한 십오 분간의 모종의 일들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은 자신으로서도 손쓸 수 없게 되어버린 분말들에 관하여. 그러나 모래바람처럼 불어왔다 가는 분말 파도가 세계를 휩쓴 그다음의 일에 대해서는 어쩐지 이제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코드 : G-20320718
    내용 : 새로운 피부와 뉴진

 

    뉴진이 고향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연구소에 온 지 이십여 년 만의 일이었다. 둘은 함께 점심을 먹은 뒤에 간만에 햇빛 좀 쐬기 위해 뉴진을 자외선 차단막이 점퍼에 둘둘 싸맨 채 연구소 정원으로 데리고 나왔을 적에 들은 말이었다. 고향은 어떻게 변했는지, 혹시 그 당시에는 찾지 못했지만 후에라도 살아 있는 사람을 발견한 일이 있는지 물어 온 것은. 뉴진은 내친김에 이제는 돌아가도 되지 않느냐는 말까지 해왔다. 새로운 피부를 이식받느라 입을 벌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아 필담으로 이어진 대화였다. 언젠가 닥쳐올 일이었지만 규진으로서는 내심 듣고 싶지 않던 말이기도 했다. 이제는 혈청 공여자와 연구진을 넘어선 관계라 믿었다. 아내와 아들이 떠나고, 다시 새로운 연구 과제를 맡게 되기까지 뉴진의 존재가 힘이 되었던 것도 사실인 터라 규진은 적잖이 당황했다. 감정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 규진이 당황한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자 뉴진이 더 미안해하며 볼펜을 놓았다. 그러고 보니 뉴진도 많이 변해 있었다. 표피가 없다뿐이지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간 너무 연구 대상으로만 여겨 온 것은 아닌가 규진은 오래 묵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아니었지만 뉴진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가보고 싶을 따름이라고, 몸이 아파 올 때마다 목욕을 하던 물웅덩이와 기도를 하던 나무에서 나오던 수액을 한 모금만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규진에게 함께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 왔다. 그로서는 얼마나 오래 참아 온 말일까. 뉴진이 이곳에 와서 먹을거리나 입을 것 외에 거의 처음으로 규진에게 한 요청이었다. 뉴진으로서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규진은 폭사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숨만 붙어 있던 뉴진을 꺼내온 전쟁터로 가는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지만 그 후로 그곳의 소식을 들은 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거된 마을에서의 유일한 생존자가 뉴진이었기 때문이었다. 뉴진과 여생을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은 규진의 욕심이었을까. 텅 비어 가는 마음과 허탈해지는 생각을 추스르며 연구소 정원에 규진 혼자서 밤이 될 때까지 앉아 있었다.

 

    태닝기에 넣은 파우더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3D 샤워기 아래서 맞는 새로운 파우더리 스킨에서는 문제가 생겼다. 고루 분사되지 않은 파우더리 스킨이 덧난 피부처럼 달라붙어 고착된 것이었다. 입는 피부가 거의 임상을 끝내 가던 단계였다. 설상가상으로 피부에 고착된 상태로 큰 부작용이 나타났다. 전례 없던 일에 연구소가 분주해진 사이에 피부를 떼어내다 괴사 직전까지 간 사람들이 줄이어 소송을 걸어왔다. 진피층으로 침투한 파우더 성분이 환자의 자가면역 질환으로 확대되기까지 했다. 기계 쪽의 잘못인지 샤워 파우더기 안의 파우더들이 오염된 것인지 몰라 연구소에 비상이 걸렸다. 기계의 발명자와 관리자, 규진의 랩 연구원들, 광고사가 들러붙어 각축전을 벌였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해결은 곧 본래대로의 피부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피부가 재생되지 않았다. 표피에 굳은 파우더를 떼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표피가 까지고 진피까지 드러났다.
    미용시술을 위하여 간단히 파우더를 뿌리러 왔던 발랄한 20대는 졸지에 중환자가 되었고, 어느 곳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판단하기도 전부터 SNS가 난리가 났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같은 시기에 생산된 파우더와 기계를 사용한 모든 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SNS의 파급력으로 이만큼 큰 회사였고 이러저러한 글들이 전 세계적으로 돌아다니는 판에 그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 착오였다면 착오랄까. 챠오밍이 곁에 있었더라면 데미지가 덜했을까.
    작은 불씨에 불과할 것 같았던 부작용은 규진의 랩이 특허권과 연구의 권한을 다국적 기업에 넘기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전신 성형을 요구했던 피해자들의 입은 당연히 돈이 막았다. 뒤늦게 챠오밍에게 스카이프 영상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잡음만 공허하게 랩 안을 울렸다. 규진은 더 이상의 데미지나 피해 운운하는 일들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막 신임연구원이 된 아들에게 다른 곳에 가서 수련을 더 해올 것을 권했다. 인턴 목걸이를 막 책상에 내려놓은 몰리가 아버지의 말을 등 뒤로 가볍게 넘기며 뉴진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규진도, 몰리도 모두 다 알고 있는 공간이지만 섣불리 어쩌자고 말을 하지 못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챠오밍의 지원이나 특허권의 적립금으로 간신히 유지되던 것들도 이제는 거의 끝이 보였다. 규진은 뉴진과의 마지막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영광과 부가 한풀 지나가고 결국은 이곳에 자신과 함께 남은 것은 이곳과 뉴진 그리고 몰리뿐이었다.
    겨우 연락이 닿은 챠오밍의 비서에게서 그녀가 애인과 함께 우주에서의 스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무중력 상태에서의 분말 고착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미리 실험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녀라면 일과 더불어 애인과의 우주여행까지도 해내는 중일 터. 규진은 무중력 상태에서 마음껏 떠다니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뉴진이 누워 있는 병실 문을 열었다. 무엇을 어쩌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었다. 뉴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한 다음 주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피부 괴사를 막기 위한 신약이 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할 뿐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새로운 항생제와 면역억제제를 먹으며 연구소의 실험 대상이 된 까닭이기도 했다. 진짜 피부였더라면 안색의 변화와 수축된 혈관의 모습을 더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까. 사실 뉴진으로부터 혈청을 얻지 않은 지 꽤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랩의 일원처럼 생활하는 중이었다. 누구도 선뜻 뉴진의 자리를 치울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규진의 눈치를 살핀 탓이었다. 규진은 문득 뉴진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그곳의 생활을 잊은 지 너무 오래인 상태에서는 둘 다 이방인일 것이 뻔했다. 고향을 떠나온 뒤로 내내 이방인 혹은 실험 대상군으로 살아야 했던 뉴진에게 다시 한 번 그 굴레를 덧씌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규진의 몸 상태 또한 전처럼 활력이 없었다. 그동안 너무도 많은 방사능과 수천 가지 종류의 실험 및 화학약품에 무방비 상태였던 탓이었다.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온 몰리가 아버지의 벗은 등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어쩌면 스킨 파우더 덕분일지도 몰랐다. 규진은 자신의 병색을 숨기기 위하여 매일 스킨 파우더를 듬뿍 뿌리고 출근을 했다. 급하게 나가야 할 때는 식탁에 있던 파마산 치즈통과 헷갈린 적도 있었다. 온몸에 치즈를 뒤집어쓰면 어떤 벌레들이 먼저 다가올까 싶었지만 어떤 농담을 하기에도 늦은 날이었다. 모든 것들이 늦었다고만 느껴진 것은 몸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게스트룸 욕실에 수건이 떨어져서 아버지의 욕실로 가서 문을 연 순간 몰리가 본 것은 이미 속에서부터 괴사가 진행 중인 피부들이었다. 인턴인 몰리 자신이 보아도 그 살의 병세는 완연했고, 돌이킬 수 없어 보였다.
    위대한 발명품인 그들의 스킨 파우더는 그것마저도 덮을 수 있었다. 평생을 남의 피부만 연구한 사람의 말로치고는 조금 빤한 감이 없었지만 몰리의 마음에 분말 폭탄이 내리는 듯했다.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다는 엄마와는 여전히 연결이 되지 않아 언제 확인할지 모르는 메시지만을 남겨 두었다.
    – You must Come back Home! Hurry!
    몰리가 어릴 적에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다고 했을 때도 하지 않던, 오래 참았던 말이기도 했다.

 

 

    코드 : E-20310815
    내용 : 임상 종료, 끝과 시작의 그림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받기에는 아직 학위 기간이 남아 있었고 어머니의 사업을 배우기에도 역시 몰리의 어린 나이가 문제였다. 몰리는 아버지의 책상을 정리하며 그가 그동안 어떤 연구를 해왔는가, 어찌하여 피부를 재생하는 일에 온 평생을 바쳤는가에 대하여 골똘해졌고 그러느라 뉴진의 침대에서 코드 블루 사인이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알았다 하더라도 아직 의대 학부생에 불과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입원한 아버지에게 대신 뉴진을 돌보는 일을 부탁받았다. 그러나 워낙에 병원의 훌륭한 인력들이 뉴진을 성심껏 돌봐주고 있던 까닭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환자의 마지막 부탁인 고향 마을을 찾아서 로드뷰를 보여주는 일이 가장 핵심적인 일과였는데, 뉴진은 동서남북, 위아래를 턱짓으로 가리켜 가며 곳곳을 헤집듯이 보여주기를 원했다. 아버지가 여기에 있었다면 아마도 그를 들쳐 업고서라도 고향에 데려다 놓았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뉴진이 찾는 고향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규진이라면 얼마간 속였겠지만, 몰리의 반은 챠오밍에게서 온 것이었다.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을 하자 뉴진은 쉽게 수긍하며 대신 그려 줄 것을 요청했다. 자신의 뇌리에 선연하게 남아 있는 것을 몰리가 재현해 주기를 원했다. 시작이 어려웠지 몰리는 점점 뉴진의 고향을 3D 영상으로 재생하는 일에 푹 빠져들었다. 고향 주변의 사진들을 구글 로드뷰로 샅샅이 헤집은 다음 뉴진이 비슷한 나무라고 부르는 것의 표본들을 모두 모았다. 그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질 때는 물론 분말 모양의 어떤 것이 허공과 땅에서 사라지게 하는 포인트도 잊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작업 끝에 뉴진의 뇌리에 있는 고향의 모습이 병실 모니터에 재생되었다. 뉴진은 그것을 보고 또 봤다. 간간이 정신을 잃었다 깨어날 때도 그의 눈앞에는 고향 마을이 떠 있기를 바랐다.
    오전에는 뉴진에게, 오후에는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는 일이 몰리가 하는 일이었다. 우주를 떠도는 엄마와 간혹 연락이 닿았지만 언제 지구로 귀환할지 모른다는 말만 전해 올 따름이었다. 엄마가 원격으로 섭외해 준 세계 최고의 의료진들이 뉴진과 규진 곁에 잠시 다녀갔다. 결국 몰리는 자신이 오롯이 이 둘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연구와 연구 그리고 또 연구 외에는 지독하게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은 아버지의 심플한 삶에서 겨우 뻗어 나온 가지인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골몰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아버지의 연구 성과를 가지고 기하학적인 돈을 벌었지만 아버지가 했듯이 기부를 한다거나 전쟁터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열중하지 않았다. 엄마는 뒤늦게야 전화를 한 통 해왔는데, 우선 그 분야의 권위 있는 의사를 알아보겠다는 말뿐이었다. 곧 오겠다고도 했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몰라서 몰리는 입을 다물었다. 뉴진은 말은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언제부터인가 규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더더욱 입을 떼지 않았다. 마을의 영상을 볼 때만 심박 수의 변동이 있을 따름이었다. 몰리가 아버지 쪽으로 가서 뉴진의 상태를 전달했지만 그 역시도 외부의 반응에 무감해진 지 오래였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 둔, 뉴진이 마지막으로 입어야 할 옷 아니 그러니까 입어야 할 전신 피부 샘플을 몰리에게 맡겼다. 끝까지 마무리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실습을 나가서 몇 번 정도 꿰매 본 적은 있었지만 아버지로부터 다시 술기를 배우다 보니 몰리의 손동작은 몰라볼 정도로 섬세해졌다. 본래부터 예민한 손짓을 타고나지는 않았어도 부모의 영향력이 얼마간은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규진도 몰리가 처음 꿰매 둔 계란 막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몰리는 묵묵히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했다. 어렸을 적에 게임을 배우거나 수학 문제를 풀어야 했을 때 도움을 받은 뒤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와 단둘이 무엇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남은 시간을 생각하니 그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드디어 엄마가 왔다. 아주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그보다 더 환한 옷을 입은 채로 활짝 웃으며 병실로 들어왔다. 우주인이 지구로 귀환하듯이 짜잔 하고 등장했지만 몰리는 쉽게 웃을 수 없었다. 대신 내내 무표정이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웃었다. 그러다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뉴진에게 다녀와야 했다. 엄마가 웃는 소리가 병실 밖으로도 튀어나왔다.

 

    이것을 입으라는 아버지의 말을 전하자 뉴진의 가슴에 연결된 오실로스코프의 그래프가 널뛰었다.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어도 귀는 충분히 몰리와 아버지의 뜻을 알아들은 뉴진이었다. 그날 저녁에 규진이 먼저 숨을 거두었고 밤에는 뉴진의 심장이 멎었다. 평생을 맨몸으로 살던 뉴진에게 전신 피부가 입혀졌다. 강제로 입히다가 솔기가 터져버린 피부는 몰리가 봉합해 주었다. 뉴진의 침대 모니터에는 여전히 고향의 오래된 나무가 떠 있었다.
    스킨 파우더의 아버지가 사망한 소식은 짧은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뒤늦게 가해진 윤리적인 비난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부작용과 실험 윤리에 관한 대목이었다.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해낸 것들이기도 해서 랩의 직원들과 챠오밍, 몰리는 그 비난을 모두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그 이후의 실험은 계속 진행 중이었고, 세상은 이제 한물간 파우더리 스킨 대신 무중력 공간 안에서의 피부 재생 및 미용 효과를 실험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가 버렸다. 실험과 부작용, 성과들 사이를 살다 간 아버지였다. 몰리는 우주 먼지에 불과한 사람의 생과 한낱 얇은 살갗에 불과한 피부에 대하여 고심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버지의 실험을 물려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연구소 측에 전달했다.

 

    집으로 돌아온 몰리가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한국에서의 흔적들 역시 여러 서류 뭉치들과 함께 박스에 밀봉되었다. 아버지의 연구 자료들 및 사적인 기록들을 평생 모아 두니 거실의 절반이 넘게 박스들이 쌓였다. 엄마가 거절한 아버지의 자료들을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몰리는 박스 하나하나에 파우더 스킨을 뿌린 후에 소각하기로 했다. 재활용 박스에 넣는 것보다 박스를 소각하는 것이, 재로 남겨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이 어쩐지 더 어울릴 것 같은 마무리였다. 소각로까지 박스들을 옮기는 것도 큰일이었지만 몰리는 그것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끝까지 혼자 다 했다. 집에 남아 있던 아버지의 파우더리 스킨들도 박스에 하나하나씩 뿌려 주었다.
    불은 종이박스보다 파우더리 스킨에 먼저 들러붙었다. 불티와 함께 화르륵 날아가던 파우더들이 공기 중에 오래 머물렀다. 귀를 조금만 기울이면 대기 중에 떠 있는, 얼마간은 우주로 날아가 버린 분말들이 살포시 머리 위로 내려앉는 소리가 들려오는 밤이었다.

 

 

 

 

 

 

 

 

 

 

 

 

 

 

 

이은선
작가소개 / 이은선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코끼리」가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소설집으로는 『발치카 NO.9』와 『유빙의 숲』이 있으며,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테마 소설집 『호텔 프린스』와 『소설 제주』, 『파인 다이닝』에 공저로 참여했다.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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