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단편소설]

 

 

레드벨벳

 

 

김혜나

 

 

 

    탁자 위에는 차와 케이크가 놓여 있다. 피처럼 새빨간 시트 위로 미색의 치즈 크림을 살포시 얹은 레드벨벳케이크. 나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포크를 집었다. 케이크를 조금 덜어 입속으로 넣자 폭신한 질감이 입 안 가득 차올랐다.
    레드벨벳케이크는 원어민 영어 강사 해럴드가 사준 것이다. 오늘 오전 나는 그의 수업을 듣고 학원 1층에 자리한 북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있었다. 미국 작가 에밀리 프리들런드가 쓴 『늑대의 역사History of Wolves』라는 소설책이었다. 이 책을 영문 원서로 매일 한 챕터씩 읽어야 해럴드의 도서 토론 수업에 참여할 수 있기에 나는 휴대전화 영어사전 앱까지 켜두고 성의껏 읽어 나갔다. 오늘도 그의 수업이 끝난 뒤 곧바로 돌아와 해당 챕터를 읽으려 했으나 밖으로 나와 보니 부슬비가 내렸다. 나는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대로 카페에 들어가 그 책을 읽었던 것이다. 두 시간여 정도 그렇게 책을 읽다가 창밖을 바라보니 그새 비가 멎어 있었다. 나는 그만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카페 밖으로 나갔고, 거기서 해럴드와 맞닥뜨렸다. 내가 그에게 인사하고 오늘 뭐 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잠시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실 생각이라고 말했다. 예의상 ‘너도 같이 갈래?’라고 묻는 해럴드에게 나는 곧장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평소 자주 가는 카페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보이차를 판매하는 중국식 찻집에 자주 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 근처에 그런 찻집이 있느냐고 다시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도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학원 건물 밖으로 나가 길을 건넜다.
    중국식 찻집에 들었을 때 해럴드는 한동안 메뉴판만 바라보았다. 메뉴판에는 한글과 한자로 적힌 여러 종류의 보이차 이름이 있었고, 산지와 숙성 기간에 따라 다른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나는 해럴드에게 보이차의 개념을 영어로 설명해 주기가 어려워 가장 보편적인 차를 마셔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만 물었다. 해럴드가 좋다고 대답해서 내가 보이숙차 3년산을 주문하고 계산하려 들자 해럴드가 재빨리 자신의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이럴 바에는 각자 내는 게 낫겠다고 내가 말했지만 해럴드는 끝내 자기가 사겠다고만 했다. 나는 미국인인 그와 찻값을 계산하는 일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는 않아 알았다고 대답하고 주문대 옆에 놓인 케이크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해럴드가 차를 샀으니 내가 케이크라도 한 조각 사서 곁들여 먹는 게 좋을 듯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케이크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진열장 안에는 보관이 용이하고 유통기한도 긴 편인 당근케이크, 바나나케이크, 레드벨벳케이크 조각들만 있었다. 내가 해럴드에게 어떤 종류의 케이크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그가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치즈케이크는 없는데…….’ 나는 혼잣말 하듯 웅얼거렸다. 해럴드는 괜찮다고 대답하며 먼저 자리에 가 앉았다. 나도 뒤따라 자리에 가 앉자 이번에는 해럴드가 나에게 어떤 케이크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러게, 어떤 케이크를 나는 좋아했던가,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글쎄…… 레드벨벳인가?’라며 질문하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해럴드는 왜 그 케이크를 좋아하느냐고도 물어 왔다. 그때 직원이 나를 부르며 주문한 차가 준비됐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대로 가서 차판과 다구를 받아왔다. 해럴드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들고 온 차판을 받아들었다. 나는 보온주전자에 담아온 뜨거운 물을 차호 속에 부어 예열한 뒤 찻잎을 넣고 차를 우렸다. 그러자 해럴드가 나에게 다도를 배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차를 자주 마시다 보니 자연스레 익숙해진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한 시간여 정도 그와 함께 차를 마시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돌아가기로 했을 때 나는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그러고 찻집 밖으로 나오니 해럴드가 나에게 쇼핑백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야?’라고 내가 묻자 그는 그저 웃어 보이고 말았다. 쇼핑백 안에는 자그마한 종이 상자가 들어 있었다. 그 속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빨간 레드벨벳케이크 조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케이크는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나는 머쓱한 마음에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레드벨벳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훈이었다. 문학평론가인 훈은 알코올중독자 수준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 단 음식이라면 치를 떨었지만, 희한하게도 레드벨벳케이크만큼은 입에 맞는다며 즐겨 먹었다. 훈은 내가 식탁 위에 올려 둔 레드벨벳케이크를 포크로 잘라 입속 가득 집어넣고 오물거리다가 찬장에서 레드와인을 꺼내 병째로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턱밑까지 흘러내린 붉은 와인을 손등으로 슥 닦아내고 웬일로 케이크를 다 사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같이 공부하는 분이 사줬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훈은 “레드벨벳케이크는 굉장히 소설적인 것 같아.”라고 말하며 연이어 케이크를 집어 먹었다. 케이크는 순식간에 그의 입속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그는 목이 메는지 여러 차례 와인 병을 기울여 물처럼 들이마시고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이 빨간 맛은 사실 코코아 가루에서 나오는 거야.”
    그것은 그가 이미 여러 차례 내뱉은 적이 있는 소리였다. 훈은 초콜릿케이크의 달콤함과 치즈케이크의 시큼함을 싫어하지만 그 두 가지를 적절하게 섞은 레드벨벳케이크의 균형 잡힌 맛은 좋다고 했다.
    “초콜릿 맛이 나는 레드벨벳케이크.”
    훈은 마치 시라도 낭송하는 양 과장된 발음으로 말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점과, 핵심을 붉게 위장해 놓았다는 점에서 볼 때 이거 정말 소설적이지 않아?”
    꼴에 평론가라고 갖다 붙이기는. 나는 그런 그가 정말 꼴 같지도 않아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객관적 상관물’이자 ‘낯설게 하기’, 혹은 ‘비틀기’의 전형이 아닐까? 단편소설 제목으로 한번 써보는 거 어때? 레드벨벳.”
    그렇게 말하는 훈에게 ‘아주 네가 소설을 써라’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고 평론가가 되었다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 대신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레드벨벳케이크를 좋아해?”라고 물었다.
    “전 여친이 파티시에였거든. 뭐, 말이 좋아 파티시에지, 그냥 부잣집 고명딸의 고상한 취미생활 같은 거였어. 호주에서 살 때 배워 왔다며 플라워케이크랑 마카롱만 소량으로 주문받아서 파는 가게를 운영했거든. 가게 문 열어 두고 장사하는 모습은 한 번도 못 봤고, 주문이 있을 때만 나가서 일하고 오는 작업실 같아 보였어. 케이크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기구들이 워낙에 비싸고 희귀한 것들이라 재료 산다며 한 달에 두 번씩 비행기 타고 일본에 다녀오는데, 그걸 무슨 집 앞에 편의점 다녀오듯이 하더라. 우리 어렸을 때, 집안형편 어려워서 학교 다니기 어려운 사람들이 제과 제빵 기술 배워 가지고 성공하는 내용의 드라마도 방영되고 그랬잖아. 그래서 나는 제빵사가 정말 눈물겨운 직업인 줄만 알았는데, 요새는 정반대인가 봐.”
    그러는 너도 말이 좋아 평론가일 뿐, 업이 아닌 여가로 책 읽고 평론을 쓰는 것 아니냐고, 부자인 부모님 덕에 평생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하고 국문학 박사 과정까지 공부해 놓고도 졸업 논문은 쓰지 않고 근근이 청탁받은 신간 리뷰나 쓰면서 매일 술을 마시지 않느냐고, 그래서 아직도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아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래 봤자 그의 부모님 명의로 되어 있는 집에서 나 또한 이렇게 빌붙어 살아가고 있으니 딱히 그를 비난할 만한 입장이 못 되어 매번 안으로만 삼켜버렸다.
    다음날 아침 나는 해럴드의 수업에 들어가기 전 일본식 제과점에 들러 치즈타르트 두 조각을 샀다. 그리고 학원으로 가서 교무실을 찾아가 비어 있는 그의 책상 위에 타르트 상자를 놓아두었다. 교실로 들어가 해럴드와 인사를 나누고, 습관적으로 안부를 묻는 그에게 나는 다 좋다고 대답했다. 어제 네가 준 레드벨벳케이크 덕분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도 덧붙이자 해럴드는 그것이 자신의 기쁨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내 다른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해럴드는 어제 읽은 챕터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나 기억에 남는 내용을 한 명씩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나는 소설 속에서 새로 부임한 교사 애덤 그리어슨과 그를 바라보는 학생 린다, 그리고 미스터 그리어슨이 바라보는 학생 릴리와의 삼각 구도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해럴드는 둘씩 짝을 지어 이루어 나가는 관계 속에서도 그 삼각형은 계속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는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어. 그리고 그 안에 열한 개의 장이 각각 들어 있지. 이 숫자 11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야. 그것이 왜 중요한지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단순히 소설의 내용에 대해서만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해럴드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이것이 영어 수업이 아닌 문학 수업처럼 다가와서 좋았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소설의 구조뿐만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이름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해. 애덤은 흔한 이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왜 이 이름을 사용했는지 추측해 볼까?’
    ‘혹시 에덴동산의 애덤(Adam)을 쓴 건가?’
    내가 묻자 해럴드는 맞았다고 대답하며 설명을 이어 갔다.
    ‘유대 신화에 따르면 애덤에게는 릴리스(Lilith)라는 첫 번째 부인이 있었어. 성경에 나오는 이브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이었지. 그래서 작가는 애덤과 릴리의 관계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 이름을 설정한 거야. 그럼 이제 패트라(Patra)를 한번 볼까? 린다가 베이비시터로 들어가는 집의 부부 중 남편은 레오(Leo), 아내는 패트라야. 레오는 라이언에서 유래한 이름이야. 그렇다면 패트라는 무엇에서 유래한 이름인지 유추할 수 있겠니?’
    학생들 모두 아무런 대답이 없는데도, 해럴드는 쉽게 그 답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패트리시아(Patricia)의 별명 아니야?’라고 물었다. 해럴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 하지만 아니야. 패트라가 앞에 오는 게 아니라 뒤에 오는 이름인데, 레오와 패트라, 고양이를 닮은 그 여자…….’
    고양이를 닮은 그 여자…… 라는 설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클레오파트라’라고 웅얼거렸다. 그러자 해럴드는 ‘정확해!’라고 외치며 손가락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학생들은 ‘뭐야, 그거였어?’라며 시답잖게 웃었고, 나는 나를 바라보는 해럴드의 모습을 지켜보며 뜻 모를 희열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해럴드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치즈타르트를 가져다준 것이 맞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준 치즈타르트를 잘 먹었고 이것이 그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었다고만 적었다. 나는 그런 그의 관찰력을 좋아했다. 타인과 사물을 유심히 지켜보고 돌아보는 그 신중한 태도와 자세는 소설을 많이 읽고 그 속의 인물과 사건을 오래도록 사유해 보는 습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소설 『늑대의 역사』에서 사건은 매우 미세하고 의뭉스럽게 진행되어 나갔다. 정확하게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인물 또한 없었다. 표현할 수 없고 표현되지 않는 감정만을 붙든 채 서로에게 엉뚱한 말을 던지고 이상한 행동만 이어 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우리는 계속해서 읽고 사유하고 토론했다. 영문 원서 소설을 처음 읽는 나로서는 본문 중에 문법적으로나 어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릴리를 바라보다가 소아성애자로 밝혀져 학교에서 해고당한 미스터 그리어슨과 그에게 편지를 쓰는 린다가 자신과 그리어슨의 이름을 여러 번 바꾸고 수정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런 린다가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집안의 안주인 패트라에게 가기 위해 카누를 타고 눈부시도록 차가운 겨울 호수를 건너는 모습, 자기가 젓는 것은 노가 아니라 패들이라고 중얼거리는 모습, 이 세상 모두가 잠들어 있지만 오직 당신만은 깨어 있다고 말하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매번 무언가 말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말을 하다 보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무엇이든 손에 잡힐 듯 명확해지리라는 예감이 들곤 했다.
    한 달간 이어지는 토론 수업이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 나는 해럴드에게 또 한 번 중국식 찻집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교실에서 그에게 묻자 그는 돌연 고개를 틀어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나와 함께 카페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그가 아내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내 안의 장기 하나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런 느낌이 들까? 나는 오래 생각했다. 해럴드를 알게 된 건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고,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우연히 만나 차 한 잔 마신 게 전부인 사십대 미국인 아저씨에게 나는 그동안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리고 해럴드는?
    나는 아무것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다만 이 상황이 억울했다. 내가 그에게 연애를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호텔에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하다못해 그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 보려 한 적 없는데, 선을 넘기는커녕 넘으려고 해본 적조차 없는데, 아무리 돌이켜봐도 친구나 사제지간 너머의 관계로 도약하기를 꿈꾸거나 시도해 본 적 없는 내가 왜 이렇게 일방적으로 차단당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다만 그와 친해지고 싶었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가 기혼의 사십대 남자이고 내가 미혼의 삼십대 여자라는 사실이 불편한 것이라면, 그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인지,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어떠한 형태인지조차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래도 나는 해럴드의 수업을 계속 수강했다. 다만 그 이후로는 그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카페에 함께 가는 일이 없었다. 한 달이 넘어가고, 새로운 수업의 공지사항에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The Story of Arthur Truluv』라는 책이 교재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날, 해럴드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 책은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달에 읽은 『늑대의 역사』와 비교해 보기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는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의 전자책 파일을 첨부해 보내주었다. 나는 그 이메일을 읽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실제로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은 차단하면서 이렇게 이메일로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호의까지 베푸는 일은 어째서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까닭이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친구이고 어디서부터 연인일까? 사람들은 애초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인간과 인간이 언제나 연애 감정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온라인으로 해럴드의 새로운 수업을 신청하고 그가 보내준 전자책 파일을 내려 받아 읽어 나갔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방황하는 십대 소녀 매디, 그리고 부인을 잃고 홀로 지내는 여든다섯 살 할아버지 아서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로 지난달에 읽은 『늑대의 역사』와는 주인공이 십대라는 것만 빼고 모든 부분이 다 다르게 읽혔다. 소설의 시점과 문체, 구조, 인물의 성격 등 달라도 너무 다른 소설이지만 『늑대의 역사』보다는 쉬운 문법의 3인칭 소설이라 영한사전 없이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를 읽고 해럴드의 교실에 갔을 때, 그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거취 문제부터 밝히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십 년간 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쳐 왔고, 앞으로 다른 일을 해보기 위해 이곳에서는 이번 달까지만 가르치고 떠날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그와 사적으로 만날 수 없음은 물론 그의 수업조차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마음에 또 한 번 괴로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이 상하지 않게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나이가 들어 가면서 이 삶은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견뎌 나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점차 깨달아 나갔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것이고 포기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대지에 뿌려진 씨앗들 중에는 발아하지 못하는 씨앗도 있는 법이다. 정성을 다해 물과 비료를 주고 영양분을 공급해도 발아하지 못하는 씨앗을 내가 어찌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언제나 포기하는 것뿐이었다. 무언가 포기하고 견디는 일이 매번 서럽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학생들 중 한 명이 해럴드에게 어떤 일을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해럴드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중이며 그게 무엇인지는 나중에 다시 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고 대답하는 이 모든 과정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한 달 뒤 해럴드는 결국 학원을 떠났고, 나는 그곳에 남아 영미소설 토론 수업을 계속 수강했다. 수업은 새로 온 원어민 선생님이 맡았다. 켄터키 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영어 교사 자격을 취득해 한국에 왔다는 그는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해 이 수업을 맡은 게 무척 설렌다고 말했다. 수강생들도 저마다 한 명씩 자기소개를 이어 갔다. 평일 오전의 토론식 수업이라 보편적인 직업군의 사람들보다는 대학생, 주부, 예술가, 자영업자 등 유동적인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자리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소설을 쓰고 차 마시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가오는 가을에 영국에 가서 석 달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 갈 계획이 있어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새로 온 강사는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 열의가 있기는 하나 문학에 대한 애정이나 지식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도서 토론 자료를 꼼꼼히 만들어주었고 그것을 토대로 성실하게 토론을 이끄는 편이라 나는 별다른 불만도 만족도 없이 계속 그곳에 나가서 공부했다.
    해럴드가 학원을 그만두고 석 달쯤 지나 그가 보낸 서류 봉투 하나를 택배로 받았다. 한글을 잘 쓰지 못하는 그는 모든 글자를 마치 사각형 틀 안에 채워 넣은 것처럼 반듯하게 적어 놓았다. 봉투 안에는 공책 두 권과 엽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는 엽서에 영문 필기체로 나에게 뭔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리고 첫 번째 공책에는 그가 알파벳 정자체로 직접 써넣은 영어회화용 문장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영어로 토론을 할 때에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어 이어 가고 마무리 짓는지를 적어 놓은 한 권의 교재와 같은 내용이었다.
    두 번째 공책의 첫 장에는 오직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차와 케이크, 탁자 위에 차와 케이크를 놓아두고’라는 문장이었다. 언젠가 해럴드가 수업 시간에 영어식 표현들을 가르쳐주며 ‘탁자 위에 카드를 놓다Put your cards on the table’라는 관용구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 문장은 카드놀이를 할 때 상대방에게 자신의 패를 보여주는 행위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지금까지 감춰 온 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해럴드가 중국식 찻집에서 나와 함께 마셨던 보이차와 그 이후에 서로 주고받은 케이크 조각을 떠올리며 이 표현을 대입해 쓴 것이라고 유추했다. 공책의 뒷장을 넘겨 보니 그가 직접 필사한 영시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윌리엄 블레이크, 에밀리 디킨슨, 딜런 토머스, 예이츠, 에즈라 파운드, 월트 휘트먼 등 영미 시인들 작품이었다.
    한 달 전, 나는 해럴드에게 이메일을 한 통 보냈다. 새로 온 원어민 선생님은 나쁘지 않지만 그는 토론 위주의 수업보다는 설명 위주의 수업을 좋아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감상을 들어 볼 기회가 주어지질 않는다고 적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수업은 더 이상 신청하지 않고 일반 영어회화 수업에 등록하기 위해 레벨테스트를 다시 받았다. 그 결과 내가 그 학원에 맨 처음 등록할 적 받았던 것보다 훨씬 낮은 등급이 매겨졌다고 썼다. 나는 지난 반년 동안 평일 영어 토론 수업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해 왔는데 조금도 성장하지 않고 되레 퇴보한 내 영어 실력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좌절감이 밀려들고, 내가 영어를 공부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딸려 왔다. 그동안 내가 공부해 온 방식이 모두 틀렸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나는 이 모든 내용을 정리한 뒤 영어로 써서 해럴드에게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해럴드는 나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나하고는 어떤 식으로도, 어떤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그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내 일상을 살아갔다. 그런데 지금, 그가 일일이 손으로 써서 만든 영어 교재와 영시 필사본을 읽고 나니 내 안에는 기쁨이나 반가움보다는 슬픔이 먼저 차올랐다. 이렇게 정성들여 나를 위한 시집과 교재를 만들어주는 해럴드에게, 그러나 나와 대화하거나 마주하기를 원하지 않는 그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해독할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여 나는 결국 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고, 고맙다는 말조차 전하지 않았다.
    석 달 정도 지나 해럴드에게서 휴대전화 문자가 왔다. 내용을 읽어 보니 나에게만 보낸 게 아니라 예전에 그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 모두에게 보내는 단체 문자였다. 그는 2주 뒤 월요일에 영어 학원을 개원할 예정이고, 다음 주 토요일에 개원식을 하니 참석할 수 있으면 회신해 달라고 적었다. 나는 해럴드에게 답장하기 전에 영어 수업을 함께 듣는 회원들에게 연락해 그가 초대한 개원식에 갈 것인지 먼저 물었다. 해럴드와 사이가 좋았던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학생들까지 가고 싶다고 해서 나도 당연히 같이 가겠다고 하고 해럴드에게도 참석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는 역시나 답장하지 않았다.
    나는 해럴드가 문자로 보내준 주소와 학원 이름을 온라인으로 검색해 보았다. 그곳은 그의 집과 가까운 일산 주엽역 근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상가 건물로 보였다. 주소지에 표시된 홈페이지로 들어가 보니 곧 개원 예정이라는 공지사항과 함께 강사 소개와 수업시간표가 올라와 있었다. 강사 소개란에는 해럴드와 그의 한국인 아내 수지, 필리핀 출신의 강사 제인이 있었다. 수업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영미 문학작품을 읽어 나가는 토론과 회화 위주였다. 나는 학원 소개란에 있는 내부 사진까지 살펴보며 그동안 꿈꿔 온 미래를 떠올렸다. 나도 훈과 함께…… 이런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서울보다는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으로 가서 문예교습소나 독립 서점을 함께 운영해 나가는 꿈……. 훈과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만 가득 채워 놓고 자유롭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면 훈은 그곳에서 정기적인 비평 수업을 할 수 있을 테고, 나 또한 소설 창작을 가르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미래가 딱히 허황된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훈이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해 교수로 임용이 되거나 문학출판사에서 간행하는 문예지 편집위원이 되는 일보다는 쉽게 실현될 수 있는 미래라고 믿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십 년 전 소설가로 등단해 두 권의 소설집을 발표해 오는 동안 문단에서 내 작품을 주목하거나 평가해 주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등단을 하고 발표하는 단편소설로 평론가들의 이목을 끌고 문학상을 수상해 수만 부의 판매고까지 올리는 젊은 작가들이 수두룩하지만 모두 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소설가로 살아온 지난 십 년간 나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고,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소설을 청탁하거나 출간 계약을 하자는 출판사도 없었다. 여러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서 내가 쓴 소설을 잡지에 실어 주거나 출간해 줄 수 있는지 여부를 묻고 일반 투고도 해봤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대답조차 돌아온 적 없었다. 이런 내가 이제 와서 한국 문단의 스타 작가가 되거나 내 작품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져 팔려 나가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턱없이 허황되고 불가능한 꿈이었다. 이제 내가 보다 현실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자그마한 독립 서점이나 문예교습소라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훈이라면, 그와 함께라면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기대하고 상상했다. 타인으로부터 주목받고 평가받아야만 작품을 발표하고 출간할 수 있는 문단과 출판 시장에서 떠나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삶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진짜 현실을 살아가고 싶었다.

 

    토요일 오전 나는 강남역으로 가서 영어 수업을 함께 수강하는 연경 씨와 송이 씨를 먼저 만났다. 선물은 미리 돈을 모아 대형 화분을 주문해 놓았던 터라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해럴드의 학원으로 배송될 예정이었다. 그 외에 나만의 선물을 따로 준비해 볼까 싶었지만 공연히 눈에 띄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연경 씨의 차를 타고 일산으로 가는 동안 나는 뒷자리에 홀로 앉아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일산이라는 도시에는 살아 본 적도 가본 적도 없었다. 그곳으로 가는 도로는 어쩐지 육지와 바다를 잇는 대교와 같은 인상을 주었고, 길을 가는 내내 바다를 건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차가 어느새 일산 시내에 들어섰는지 도로 양옆으로 신도시 특유의 대형 건물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어느 한 군데 빈 곳 없이 빽빽이 들어찬 건물 숲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신대륙에 들어선 듯한 느낌도 들었다. 고층건물에 둘러싸여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서울 시내하고도 확연히 다른 그 풍경은 어떤 신도시에 가보아도 다 똑같아 보였다.
    해럴드의 학원은 주엽역에서도 꽤 먼 거리에 있었다. 차는 번화한 시내 안쪽의 아파트 단지에서 한참 돌다가 어느 상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 함께 2층에 자리한 학원 안으로 들어가니 해럴드의 아내 수지 씨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녀는 해럴드보다 훨씬 어린, 내 또래의 여자로 보였다. 작고 마른 체형에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땋아 놓은 차림새 때문에 더욱 어려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딸아이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해럴드의 아내보다는 그의 늦둥이 딸이라는 에마가 궁금했다. 해럴드는 수업 중에도 스스럼없이 에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학원에서 일하는 동안 에마가 너무 보고 싶어 괴롭다는 하소연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가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분신이 나는 궁금했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우면 저럴까, 홀로 상상까지 해볼 정도였다. 수지 씨는 나의 물음에 아이가 지금 응접실에 있다며 다 같이 가보자고 대답했다. 수지 씨를 따라 응접실 공간으로 들어가니 그녀가 “꺄악!” 하고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모두들 놀란 상태로 멈춰 서서 응접실 안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손님들에게 대접하려고 차려 놓은 기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딸 에마가 탁자 한가운데로 올라가 양손으로 케이크를 움켜쥔 채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것은, 레드벨벳케이크였다. 에마가 움켜쥔 손에서 선지같이 시뻘건 케이크 덩어리가 떨어져 나왔다.
    수지 씨는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에마를 들어 올리고 식탁에서 내려오게 한 뒤 그 얼굴과 옷에 묻은 케이크 조각을 털어냈다. 내 옆에 있던 송이 씨가 가방에서 휴대용 물수건을 꺼내 에마의 손과 얼굴에 묻은 치즈 크림을 닦아 주고, 연경 씨는 흐트러진 식탁 위를 정리해 주었다. 낯선 이들과 마주한 에마는 갑자기 소리 내어 울었고, 수지 씨는 그런 에마를 들어 올려 어르고 달래던 중에 식탁을 정리하는 연경 씨를 보더니 바닥에 떨어진 케이크 부스러기도 치워 달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연경 씨를 도와 바닥 청소를 함께했지만 수지 씨는 에마가 울음을 그친 뒤에도 계속 아이만 끌어안은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해럴드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와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가버렸다. 다들 경황이 없어 해럴드하고는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어질러진 자리를 치우고 정리하기에만 바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자리가 정돈되고 나자 사람들은 탁자 앞으로 가 앉았다. 나는 마음을 좀 가라앉히려 벽면에 놓인 소파에 가 앉았다. 해럴드는 왜 그냥 나가버린 것일까? 그는 이곳을 찾아온 손님들과 인사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밖으로 나가더니 좀체 돌아오질 않았다.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아주 늦지는 않을 텐데……. 함께 온 사람들은 식탁 앞에 앉아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이렇게 소파에 앉아 있다가 해럴드가 돌아오면 그와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가 멍하니 앉아 있는 동안 해럴드의 딸 에마가 내 곁으로 다가와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두었던 내 가방을 집어 들었다. 에마는 가방을 번쩍 들어 올렸고, 그러자 그 안에 담아온 내 물건들이 소파 위로 쏟아졌다. 소설책, 필통, 일기장, 카드 지갑, 휴대전화, 파우치 등 다소 두서없이 담아온 것들이었다. 에마는 소파 위로 쏟아진 내 물건을 바라보더니 곧장 책부터 집어 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 영역본으로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었다. 독서를 좋아하는 제 아빠를 닮아 에마도 책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라고 생각한 순간 아이가 책장 한쪽을 거침없이 죽 찢었다. 나는 무언가 말하거나 생각해 보기도 전에 오른손을 들어 에마의 머리통을 후려치려고 했다. 아무런 의식도 생각도 없이 아이를 때리려는 내 손바닥을 바라보며, 가까스로 의식의 끈을 붙들고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손을 내려놓았다. 내가 그런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책장을 찢었다. 내 몸에서 영혼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는 영혼 없이 텅 빈 몸속에 들러붙어 있어야 했다. 의식이, 정신이, 영혼이 모두 털려 나간 채로 존재해야만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만일 아이를 때렸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나에게는 해럴드의 아이보다 내 책이 더 소중하다고, 그의 아이는 내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아니지만 책은 나의 소중한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이라고, 그보다 더 귀한 존재라고 말하면,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진짜 미친년으로 여기지 않을까?
    아이 엄마인 수지 씨는 자기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케이크 크림을 물수건으로 닦아내는 중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닦이지 않는지 양쪽으로 땋아 놓았던 머리 갈래 한쪽을 모두 풀었다가 다시 땋느라 정신이 없었다. 에마는 계속해서 책장을 찢었고, 나는 제발 수지 씨가 아이의 행동을 제지해 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새카만 곱슬머리를 뒤로 꽉 묶은 여자와 그의 아들로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이 학원의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필리핀 출신 원어민 교사 제인이었다. 수지 씨는 그녀와 이미 친분이 있는지 에마의 손을 잡고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에마가 찢어 놓은 책장을 집어 책 사이로 끼워 넣었다. 찢어진 책장은 다시 이어붙일 수 없고 누구에게도 내보일 수 없었다.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온라인 서점에서 똑같은 책을 한 권 더 주문하고만 싶었다.
    나는 찢어진 책과 함께 소파 위로 흩어져 있던 내 소지품을 챙겨 가방 속으로 넣었다. 그때, 응접실 한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필리핀 영어교사 제인과 함께 온 남자 아이가 소리 내어 울면서 제 엄마를 부르고, 에마가 그 남자 아이의 얼굴을 거침없이 내려치는 중이었다. 남자 아이는 울면서 에마가 계속 자기 얼굴을 때린다고, 너무 아프다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제인은 조금 전의 나와 같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로 나와 똑같이 영혼이 모두 털려 나간 얼굴로 에마에게 맞고 있는 자기 아들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수지 씨가 말했다.
    “아유, 우리 에마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래.”
    해럴드는,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내와 아이가 저 지경이 되도록 그는 도대체……. 나는 당장이라도 해럴드에게 달려가 그의 멱살을 붙들고 소리치고 싶었다. 네 딸에게 맞고 있는 저 아이 좀 보라고, 누군가 네 딸을 때리면 너도 네 아내처럼 말할 수 있느냐고, 도대체 너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왜 하필 저런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느냐고 소리쳐 묻고만 싶었다. 그러나 해럴드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이 현실에서 나는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 거짓말 같은 상황에서조차 아무런 말도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혼자서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낯선 동네에서 정처 없이 돌아다닐 수도 없고, 일행을 놔둔 채 나 혼자 서울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서 차가운 생수를 하나 사고 출입문 앞에 놓인 간이의자에 가 앉았다. 그곳에서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난 뒤 생수병을 잡고 있는 내 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나는 자꾸만 술을 마시는 훈이 싫은 게 아니라, 술을 마시기만 하면 나를 때리는 그가 싫은 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레드벨벳케이크에 익숙해지고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내가 즐겨먹는 음식이 레드벨벳케이크가 되어버린 현실에 화가 났다. 훈은 나쁜 사람이 아닌데, 사실은 아주 착하고 어리숙한 사람인데, 다만 사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질 않아서, 자기 마음 하나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술을 마시고 자기도 모르게 나를 때리는 것이었다. 나는…… 달라지겠지, 맞춰 가야지, 견뎌내야지, 하며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이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내가 너무 무서웠다. 매일 술을 마시는 훈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이루고 싶은 미래를 포기하고, 나 자신마저도 모두 포기한 채 그저 견디는 이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다는 말인가?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해럴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의 손에 하얗고 네모난 상자가 들려 있는 것도 보였다. 그는 편의점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알아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둘러 걷지는 않았다. 평소와 같은 보속과 보폭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를, 그런 그가 쥐고 있는 새하얀 상자를 나는 내내 노려보았다. 이내 내 앞에 선 해럴드가 손에 든 상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까 그 케이크가 망가져서……’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가 하지 않은 말 속에 ‘그래서 네가 먹지 못했잖아’라는 소리가 딸려오는 듯했다. ‘이것은 네가 좋아하는 케이크잖아’라는 말도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상자 안에 든 것은 보나마나 레드벨벳케이크일 것이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나는 해럴드가 들고 온 케이크 상자를 빼앗아 땅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새빨간 레드벨벳케이크를 두 발로 짓뭉개버리고 그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 따위 레드벨벳케이크 따위는 집어치우고 진짜 너를 보여 달라고, 진짜 네 자신을 이야기해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까짓 레드벨벳케이크로 진실을 위장하고 외면하지 말라고, 비유니 은유니 상징이니 비틀기 따위나 들먹이는 소설은 다 집어치우고 실재하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소설만 쓸 뿐, 실제로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입구로 가자 해럴드는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다시 학원으로 들어가니 해럴드의 딸 에마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에마는 해럴드의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를 받아들고는 조심스럽게 응접실로 걸어갔다. 응접실 안에는 나와 함께 온 사람들과 수지 씨의 손님까지 더해져 꽤 많은 사람들이 복작이고 있었다. 필리핀 강사 제인과 그녀의 아들도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기쁘거나 즐거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속상하거나 우울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모두들 아주 멀쩡한 얼굴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나도 그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같이 멀쩡한 얼굴로 탁자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럴드의 딸 에마는 미친 듯이 행동하던 아까와는 달리 차분하고 능숙한 손길로 상자의 포장을 뜯어 그 안에 든 케이크와 플라스틱 칼을 꺼냈다. 수지 씨가 그 곁으로 다가가 “아유, 우리 딸 잘하네. 옳지, 그렇지, 그렇게 길게 잘라 봐.”라고 말하며 에마의 행동을 북돋아주었다. 그러자 에마는 보란 듯이 케이크를 여덟 조각으로 나누고 접시에 옮겨 담아 손님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해럴드는 케이크 조각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나에게 왔다. 내가 그 접시를 받아들자 그도 내 옆자리에 앉아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그러나 그가 내 옆에 앉아 있는 지금, 어쩐 일인지 나는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말없이 포크를 손에 쥐고 내 앞에 놓인 레드벨벳케이크를 먹었다. 그것은 너무 달지도 시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아주 적당하게 균형 잡힌 레드벨벳케이크. 붉고 부드러운 융단 같은 케이크 조각이 내 혓바닥 위로 한가득 차올랐다.

 

 

 

 

 

 

 

 

 

 

 

 

 

 

 

김혜나

작가소개 / 김혜나

1982년 서울 출생. 2010년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제리』, 『정크』,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 소설집 『청귤』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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