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방

[단편소설]

 

 

두 개의 방

 

 

문진영

 

 

 

    여행에서 돌아온 그를 산타 바바라에서 만났다. 그와 내가 같은 이름을 가진 동네의 1동과 2동에 각각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러니까 저자와 편집자가 아닌 동네 친구로서 처음 만나기로 했을 때, 그는 중간쯤에서 보죠, 하고 말했다. 중간이 어디냐고 내가 되묻자 그는 한번 알아봅시다, 라고 했다. 주말에 전화를 걸어온 그는 내게 준비가 됐느냐고 물었다. 준비 땅, 하듯 그와 나는 동시에 출발했고 나는 2동을 향해, 그는 1동을 향해 걸었다. 걸으면서 수화기 너머로 서로의 위치를 보고했다. 내가 월드 부동산을 지날 때 그는 냉면집을 지나고 있었고, 내가 새로 생긴 카페 앞을 지날 때 그는 빵집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빵집을 지날 때 그는 철물점 앞에 있었는데, 그곳은 내가 이미 지나온 곳이었다. 그와 내가,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서 마침내 같은 길로 접어들었을 때, 저 멀리 조그만 점 하나가 점점 커져서 결국 그가 되었을 때, 그곳이 바로 산타 바바라. 산타 바바라는 어느 연립주택 이름이었다.
    오래된 주택과 빌라가 많은 동네였다. 그는 자신이 사는 빌라의 이름은 아비뇽이라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청기와 빌라인데 청기와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날, 그와 나는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이름의 빌라들을 여럿 찾아냈는데, 개중에는 신혼 빌라라든지 최첨단 빌라라든지 하는 것도 있었다. ‘한 벌에 오천 원, 두 벌에 만원’이라고 붙어 있는 옷가게도 찾았고, 누군가 담장에 파란색 스프레이로 커다랗게 ‘SEX’라고 써놓은 것도 찾았다. 그리고 세탁소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문 앞에 몸집이 커다란 백구를 묶어 두곤 하던 곳이었다. 백구는 주로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 누워 있었다. 그는 백구가 세탁소 아저씨의 오토바이에 목줄이 매인 채 뛰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행복해 보여서 말리지 못했어요, 그가 말했다. 나는 어느 겨울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러 세탁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안락의자에 앉은 주인아저씨가 새끼 백구를 품에 안은 채 잠들어 있는 장면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술산책’이라고 불렀다. 걷다가 맘에 드는 가게가 나오면 들어가 술 한 잔 하고, 술이 깰 때까지 무작정 걷다가 또 한 잔하고. 그렇게 하면 밤새도록 마셔도 숙취 걱정이 없지요. 언젠가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술산책’이 다음 책의 제목으로 괜찮겠다고 말했다. 그와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술을 마신 적은 없지만, 덕분에 동네에서 재밌는 것들을 많이 발견했다. 혼자 걸을 때도 언젠가 그에게 말해 줘야지 하고 그런 것들을 수집했다. 소용은 없지만 왠지 소중한 것들을. 나는 그에게 역 앞에 ‘사는 게 껌껌할 때 껌을 씹으세요’라고 쓴 종이를 붙여 놓고 껌을 파는 할머니의 좌판이 있다고, 핸드폰 가게 앞 뽑기 기계에 베스트 히트곡집 앨범이 들어 있는데 표지에 도통 처음 보는 노래 제목만 쓰여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어느 집 앞 화분에 화분보다 더 큰 늙은 호박이 용케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 대해, 쌀가게 앞 보도블록에 몰려드는 비둘기들이 얼마나 뚱뚱한지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런 얘기를 하며 단골 전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아저씨가 카운터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가 백팩을 뒤적거리더니 자그마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봉투 안에는 우키요에풍의 그림이 그려진, 두꺼운 종이로 된 컵 받침 두 개와 자그마한 성냥갑이 하나 들어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하나씩 봉투에서 꺼내 놓을 때마다 그는 와, 참 쓸모없네요, 하나같이 쓸데없어요, 라고 덧붙이고는 아하하 웃었다. 그렇게 웃을 때 그의 작은 눈은 완전히 사라져 하나의 곡선이 되었고 눈가에는 여러 겹의 주름이 잡혔다. 그는 확실히 잘 웃는 사람이었지만, 웃음을 그친 후에도 눈가의 주름은 사라지지 않아서 언제나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내가 출판사를 옮긴 뒤 처음으로 만난 저자였다. 그는 사라져 가는 영화관에 대한 글을 썼는데, 어느 영화 잡지가 몇 년째 그의 글을 지면에 싣고 있었고, 연재를 마칠 때쯤엔 책 한 권 분량이 되어 있었으므로 어찌어찌하다 보니 나와 만나게 된 것이다. 연재를 그만두게 된 건 그 잡지가 발행을 그만두었기 때문이지만, 아무튼. 그는 영화보다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모든 상영관이 각각의 특유한 냄새, 유일무이한 어둠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아트시네마 흡연구역에서 내려다본 국일 여관의 간판이 어느 각도로 얼마만큼 기울어져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동두천 동광극장 대기실에는 소파가 총 아홉 개 있는데 모양이 같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것도 나는 그에게 들어 알았다.
    그의 책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쇄를 다 팔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와 나는 계속 만났다. 가끔 만나다가, 자주 만났다. 주로 그가 어딘가에서 돌아온 뒤였다. 그때마다 나는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 그가 머물렀음 직한 도시의 이름을 대곤 했지만 레퍼토리는 매번 비슷했고 맞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그가 다녀온 곳이 어디였는지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물건들을 기념품이라며 내게 주었다. 이번에 그는 일주일간 남쪽에 있는 어느 도시에 다녀왔다고 했다. 거기 있는 극장이 다음 달에 문을 닫는답니다. 그가 말했다. 남아 있는 단관극장 중에 세 번째로 오래된 곳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내가 만지작거리고 있던 성냥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극장 맞은편에 있는 호프집인데, 거기도 꽤 오래된 곳이에요. 귀한 겁니다. 성냥갑에는 복고풍의 서체로 ‘사랑의 썰물, 호프&비어’라고 쓰여 있었다. 상자 안 성냥개비들은 머리가 초록색이었다. 초록색 불이 켜질 것 같아서 하나 꺼내 그어 보았다. 불은 당연히 초록색이 아니었고 계란 썩은 내 같은 황 냄새가 났다. 그때 주인아주머니가 나타나 자고 있는 아저씨의 등짝을 내리쳤다. 나는 재빨리 성냥불을 흔들어 껐다. 뭐 드릴까, 하고 아줌마가 물었다.

 

*

 

    내가 태어난 도시에도 오래된 극장들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곳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의 피카디리 극장이었다. 거기엔 늘 실제 배우들과 절묘하게 닮지 않게 그려진 간판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은미와 나는 그곳을 좋아했다. 종종 야간자율학습에서 몰래 빠져나와 그곳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 매표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한껏 무심해서 표를 살 때 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매번 근처 지하 노래방의 더럽고 좁은 화장실에서 몸을 부딪쳐 가며 사복으로 갈아입곤 했다.
    은미는 유학생이었다. 차로 한 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동네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천재 소리를 듣던 은미도 이곳에 와서는 평범했다. 아니,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그 애와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겐 같은 중학교에서 함께 진학한 친구들이 몇 있었고, 그 애들과 몰려다니느라 한동안은 은미가 교실 어디쯤에 앉아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다 2학기가 시작되어 자리를 바꾸었을 때, 은미가 내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얘기를 나눌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 애는 지각이 잦은 데다 쉬는 시간만 되면 엎드려서 잤다. 수업 시간에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여서, 뒤에서 보고 있으면 저러다 책상에 머리를 박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신경 쓰였다. 그 애의 뒷모습은 늘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고 머리끝은 뻗쳐 있었다.
    어느 날인가, 3교시가 다 되도록 앞자리가 비어 있었다. 4교시 수업이었던 담임선생님이 은미가 사는 곳이 어딘지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몰라? 누가 은미랑 제일 친해?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은미가 학교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은미는 휴대폰이 없었다. 선생님은 은미가 사는 곳의 주소를 알려줄 테니 점심시간에 누가 한번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내가 간다고 할까, 그럴까 망설이는 찰나 뒷문이 드르륵 열리고 그 애가 들어왔다. 교복 셔츠 자락이 치마 위로 비쭉 빠져나와 있었다. 어디가 아팠느냐고 선생님이 물었다. 은미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알람시계 건전지가 다 되어서 늦잠을 잤다고. 아이들이 웃었고 그 애의 얼굴은 더 빨개졌다. 은미는 빠른 걸음으로 제자리에 와서 앉았다. 뻗친 머리 아래 새빨간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대면 데일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여느 때처럼 급식소를 향해 달려가려던 나는, 미동 없이 앉아 있는 은미를 보았다. 나는 은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 애가 돌아보았다. 밥 안 먹어? 응. 그 애가 눈을 내리깐 채로 대답했다. 친구들과 밥을 먹고 돌아와 보니 은미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석식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은미의 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은미가 돌아보았다. 책 모서리에 눌려 한쪽 뺨에 길게 자국이 나 있었다. 왜 밥을 안 먹어? 이따 먹을 거야. 밥보다 잠이 더 급해. 은미가 말하고는 다시 자리에 엎드렸다. 밤에 대체 뭘 하기에 밥을 마다하는 걸까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못했다.
    앞자리가 또다시 비어 있던 날, 나는 망설이다가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가서 담임선생님에게 은미가 사는 곳을 물었다. 그리고 교탁 안에 들어 있는 컴퓨터로 선생님이 적어 준 주소를 검색했다. 종이의 빈곳에 대략의 약도를 그렸다. 뭐 하냐, 친구 녀석 하나가 곁에 와서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아니거든. 나는 황급히 검색창을 닫았다. 숨길 일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점심시간에 볼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친구들을 먼저 급식소로 보내고, 나 홀로 은미의 집을 찾아갔다. 극장 뒷골목 어느 구석에 있는 허름한 집이었다. 대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다지 좋지 않은 냄새가 끼쳐 왔다. 마당 한쪽에 박스와 폐지 같은 것이 잔뜩 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계세요, 은미야, 은미야, 하고 불렀더니 제일 끝에 있는 작은 문이 열리고 그 애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났다. 너 어디 아파? 내가 물었다. 아니. 시계가 고장 났나 봐. 은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건전지 갈았어? 그 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느릿느릿 방에서 빠져나온 은미는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나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처마에 커다란 마늘 다발과 썰어 말린 무언가가 잔뜩 담긴 초록색 망이 네다섯 개쯤 달려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루들, 각종 항아리, 역시 그 안에서 뭔가가 말라 가고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마당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먼저 가. 금방 갈게. 은미가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됐어. 그럼 잠깐만 있어. 교복 입고 나올게. 은미가 그렇게 말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누구 집이야? 내가 문 닫힌 방에 대고 물었다. 주인 할머니. 근데 지금 안 계셔? 응, 박스 주우러 다니시는데. 근데 팔지는 않고 저렇게 쌓아 놓기만 한다? 웃기지. 교복으로 갈아입은 은미가 방에서 나왔다. 냄새 지독하지. 할머니 방에 메주 있어. 은미가 코를 싸쥐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우리 할머니도 저랬는데, 그 애는 그렇게 말하더니 배시시 웃었다. 학교로 돌아가는 언덕길에는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은행잎을 발로 툭툭 차며 말없이 걷는데 은미가 점심은 먹었어?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은미가 말했다. 너도 못 먹었잖아.
    점심시간이 십 분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교실 가까이 갔을 때 은미는 갑자기 나더러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수업 종이 쳤는데도 그 애가 나타나지 않아서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있는데, 선생님과 동시에 그 애가 들어왔다. 손에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은미의 머리카락 끝에 작은 물방울 맺히는 것을 지켜보는 사이 수업이 끝나버렸다. 은미가 봉지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내게 건넸다. 슈크림이 들어 있는 빵이었다. 같이 먹어,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 애는 의외로 거절하지 않고, 눈을 내리깐 채 의자를 반쯤 돌려 비스듬히 내 쪽을 향해 앉았다. 짧지만 숱이 짙은 속눈썹, 입술 위에 난 작은 점이 보였다. 나는 빵을 반으로 잘라 그 애에게 건넸다. 어색함에 말없이 빵을 뜯어 먹었다. 그때 그 애가 문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밤에 알바를 하거든. 정말? 무슨 알바? 고깃집. 고등학생도 알바 시켜 줘? 내가 물었다. 원래는 안 되는데, 사정을 말했더니 사장님이 시켜 줬어. 할머니는 학비와 월세만 겨우 보내주시고, 밥값이랑 용돈은 자기가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새벽 두 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는 낮에도 일한다고 했다. 다음 달엔 휴대폰도 살 거야. 그리고 대학 등록금도 좀 모아 놔야 해. 그 애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공부는 언제 하냐. 학교에서 해야지. 근데 너 만날 자잖아. 그러자 그 애가 쿡쿡, 하고 웃었다. 그건 그래, 하면서. 이거 비밀이야. 알지? 그 애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

 

    내 앞에 앉아 모둠전에서 청양고추를 골라내고 있는 그에게, 혹시 모 시에 있는 피카디리 극장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알고 있다고 했다. 작년에 우연히 그곳에 방문했을 때 가보았다고. 시간이 멈춰 있던데요, 그가 말했다. 요금표에 쓰여 있는 금액이 칠천 원이었어요. 몇 조각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간판도 그대로고요. 친구랑 야자 땡땡이치고 자주 갔었어요, 하고 내가 말하자 그래요? 하며 그가 웃었다. 내부가 궁금했는데 잠겨 있었어요. 어땠어요? 그가 물었다. 어땠었더라. 영화관이 다 비슷비슷하죠 뭐, 하고 대답하려다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은미와 나는 극장 앞에 서 있다. 간판 그림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품평하고 깔깔거린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매표소라고 쓰인 작은 푯말 아래 아치 모양으로 뚫린 유리가 있었고, 화난 듯한 표정의 아주머니, 향수 냄새가 진하게 풍기던 손……. 나는 그에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영화표에도 향수 냄새가 남아 있었다고. 붉은 천이 깔린 계단. 나무로 된 상영관 문 앞에는 짙은 자주색 융단 커튼이 달려 있었고, 상영관 안에서는 묘한 냄새가 났다고. 한데 뒤섞인 땀 냄새와 곰팡내, 락스 냄새 같은 것들……. 좌석은 인조가죽으로 되어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다고.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되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가 말했다. 그런가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내게 물었다. 선영 씨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나요? 뭐랄까, 내가 뭔가를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나 말고도 몇 사람 있었는데, 누군가는 아주 잊어버리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서 내가 마지막 남은 한 명이면 어쩌지, 하구요. 해본 적 없어요, 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뭐랄까, 나한테는 이상한 강박이 있어요. 결국 나마저 잊어버리면, 이미 사라진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이상하죠? 그가 말했다. 그치만, 모두가 잊어버렸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뇨, 난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대화가 끊겼다. 어느새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둑이 무너진 것처럼 웅성거림이 우리의 침묵 위로 쏟아졌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그가 말했다. 나갑시다. 2차 가야죠.
    우리는 대로변을 따라 직진했다. 2차에 도착할 때까지 2차가 어디인지 모른다는 게 술산책의 매력이죠. 그는 말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느직한 발걸음이 아니었다. 왠지 목적 없이 가는 것 같지가 않은데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들켰나요? 하고 그가 또다시 와하하 웃었다. 저기 곱창 골목에 알곱창을 기가 막히게 하는 곳이 있거든요. 선영 씨도 꼭 가봐야 해요. 그가 말했다. 곱창 골목으로 접어들자 아주머니들이 분주히 호객했다. 한 아주머니가 그를 보더니 반색했다. 왔어? 네, 하고 그는 순순히 대답했다. 알곱창 2인분? 아주머니가 말했고 그는 네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이 다섯 개 정도 있는 작은 가게였다.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은 간소했다. 알곱창, 야채곱창, 막창, 고추장 불고기. 여기가 제일 맛있는데 왜 손님이 없지? 이상해요. 그가 말했다. 그래요? 내가 되묻자 사실 다른 집은 안 가봤어요, 하고 그가 웃었다. 알곱창이 그만이지만 고추장 불고기도 맛있습니다. 연탄불에 굽거든요. 그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알곱창은 맛이 기가 막혔다. 우리는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시고 고추장 불고기도 시켰다. 배는 불렀지만 기분이 좋았다. 3차도 가나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하고 그가 대답했다. 3차는 어딘데요, 하고 묻자 그는, 이번에는 정말 모릅니다, 진짭니다, 하고 대답했다. 곱창집에서 나와 대로변을 따라 걸었다. 금요일 밤이라서인지 종로 거리는 어딘가 들떠 보이는 사람들로 붐볐다. 없을 것 같은데 은근히 많은 데가 어딘지 아세요? 갑자기 그가 물었다. 네? 무슨 말이에요? 그가 어느 건물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원이요. 건물 3층에 기원이 있었다. 저기도요. 그가 다른 건물을 가리켰다. 거기에도 있었다. 종로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대꾸했다. 그런 것 같지만, 버스 타고 다닐 때 한번 찾아보세요. 없는 데가 없다니까요. 그가 말했다. 아, 전당포도요, 하고 그가 덧붙였다. 걸으면서 그가 가리키는 곳마다 기원과 전당포가 있었다. 그동안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나는 어머, 어머, 하며 감탄했다. 걷다 보니 광화문 광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잠시 담배를 피우겠다며 커다란 빌딩 뒤쪽에 있는 흡연구역으로 갔다. 그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저기 빌딩 사이 바닥에서 옅은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가보았다. 유리 바닥 아래 유적 같은 것이 보였다. 옛 집터라고 했다. 누가 살았을까 싶게 엄청나게 작은 집이었다. 그가 다가왔다. 구수한 담배 냄새가 났다. 나란히 서서 같이 그걸 들여다보았다. 처음 봤어요. 내가 말하자 이 근처 곳곳에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했다. 근데 여기 누가 살았을까요. 이렇게나 좁은데. 내가 말했다. 조선시대 고시원 아닐까요, 그가 말했고 나는 피식 웃었다. 재미없네요. 내가 말했다. 그쵸, 재미없네요. 그가 따라했다. 근데 이걸 보니까 갑자기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어요. 그가 말했다. 이번엔 정말 모른다면서요. 내가 말했다. 지금 생각난 거예요. 이런 게 술산책의 묘미죠. 문득 생각나는 곳으로 가는 거. 말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하고 내가 큭큭거렸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게 어딘데요? 내가 묻자 시간이 멈춘 곳을 알아요, 하고 그가 말했다.

 

*

 

    은미가 살던 작은 방에 다시 찾아간 적이 있다. 몇 해 전 연휴의 끄트머리였다. 부모님 댁에서 설을 쇠었는데 하루 종일 먹기만 했다. 배가 너무 불러 잠깐 걷기로 했다. 햇볕을 조금 쬐고 싶었는데 겨울 해는 야속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도시가 좁아진 걸까. 예전에는 한참씩이나 떨어져 있던 것들이 대개 가까웠다. 널따란 대학 정문을 지나, 향교를 지나, 걷다 보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벽돌담이 나왔다. 하지만 학교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이제 그곳은 시청의 임시청사가 되어 있었다. 시청은 피카디리 극장 바로 앞에 있었는데 건물을 새로 짓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교문 안을 빼꼼 들여다보니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있던 목백합이 그대로인 게 보였다. 그 목백합은 학교의 상징이어서 교복에 배지로까지 달아야 했는데 그것만 두고 갔다는 것이 이상했다. 워낙 뿌리가 깊어서 옮기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다시 보니 예전보다 조그맣게 느껴졌다. 분식집도 만화방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었다. 은미와 함께 걷던 언덕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새로 짓고 있는 시청 건물의 거대한 골격이 보였다. 그런데도 피카디리 극장은 여전히 썰렁하고 낡은 모습 그대로였다. 극장이 문을 닫은 것은 벌써 십 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 건물이 도통 팔리지 않는 건가, 혹은 주인이 아예 팔 생각이 없는 건가 싶었다. 극장 앞 유리로 덮인 게시판 안에 붙어 있는 빛바랜 포스터를 보았을 때, 은미와 내가 함께 보았던 마지막 영화가 생각났다. 크게 흥행했던 조폭 코미디 영화의 후속편이었다. 그 시간대에 볼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빤한 웃음코드에도 우리는 깔깔거렸다. 어느 순간 나 혼자 웃고 있어 고개를 돌려 보니, 은미는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스크린의 불빛에 그을린, 그 애의 잠든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애에게 어깨를 빌려주지도, 그 애를 깨우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은미의 집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몇 번밖에 찾아간 적이 없는데도 길이 익숙했다. 놀랍게도 그 집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대문은 닫혀 있었지만, 담장이 낮아 발뒤꿈치를 들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예전과 달리 마당은 깨끗했다. 처마에 걸려 있는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으니 더 누추하고 썰렁해 보였다. 바로 그때, 작은 방 창문에 불이 켜졌다. 순간 마음이 선득했다. 은미가 아직도 거기 살고 있을 리는 없었는데도.
    그 애는 내게 비밀이라고 강조했지만, 사실 그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가족들과 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은미를 본 아이들도 여럿이었고, 담임선생님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은미의 사정을 고려해 용인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은미는 정말로 휴대폰을 샀다. 그걸 사러 갈 때 나도 함께였다. 공중전화 부스까지 가지 않고도 할머니랑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며 그 애는 기뻐했다. 나는 은미네 고향집 번호를 단축번호 1번에 저장해 주었다. 그러자 은미는 내 번호를 2번에다 저장했다. 그게 기뻤다. 방학 동안에도 자율학습은 계속되었다. 또다시 자리를 바꾸게 되어 은미와 나는 교실의 양 끝으로 멀어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휴대폰으로 계속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걸 다 종이에 썼다면 구구절절한 편지 몇 통이 되었을 것이다. 은미랑만 붙어 다녀서 그전에 몰려다니던 친구들과는 사이가 서먹해졌다. 그 애들은 은미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애에게서 어떤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어른의 냄새, 진짜 생활의 냄새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겨울의 어느 주말,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사소한 일로 엄마와 말다툼을 벌이고 집을 나왔다.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헤매다가 오후 서너 시쯤 되어 무작정 은미가 일하는 고깃집으로 찾아갔다.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은미는 짧은 머리를 애써 하나로 묶고 앞치마를 두른 채, 테이블 앞에 앉아 마늘을 다듬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당황한 은미와, 역시 어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던 나를 번갈아 보던 사장 아저씨는 친구? 하고 은미에게 물었다. 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왔어? 은미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섭섭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은미는 내게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밥 같이 먹어, 원래 이때쯤 밥 먹는 시간이야. 은미가 말했다. 곧 정신없이 바빠져. 그렇게 말하는 은미가 왠지 낯설었다. 그 애는 옅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은미가 쟁반에다 반찬 몇 가지가 담긴 접시들과 공깃밥 두 개를 담아 가져왔다. 사장 아저씨가 펄펄 끓는 된장찌개 뚝배기를 집게로 집어 와 테이블 위에 내려놓더니, 나를 향해 사이다 마실래, 하고 물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도 그는 사이다 한 병을 가져왔다. 은미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진짜로 웬일이야? 그 애가 물었다. 그냥 오면 안 되냐? 내가 대꾸하자 은미는 아무 말 없이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나 가출했어. 왜? 엄마랑 싸웠어. 그러자 은미는 피식, 하고 웃었다. 추운데 그냥 들어가. 싫어, 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 어쩔 건데. 은미가 말했다. 오늘 네 방에서 자면 안 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은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대꾸 없이 숟가락으로 된장찌개를 떠서 입에 가져갔다. 은미의 침묵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때 사장이 다시 나타나서는 구워서 자른 고기가 담긴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그는 은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서 마늘을 다듬기 시작했다. 손님이 들어오자 은미는 태연히 밥을 먹고 사장이 뛰어가서 주문을 받았다. 밥을 다 먹고 나자 은미는 내게 열쇠를 건네주며 언니처럼 말했다. 돌아다니지 말고 방에 가 있어. 전기장판 켜고 있어.
    나는 가게 문을 나섰다. 돌아보니 은미가 사장과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나는 심술 난 아이처럼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더는 갈 곳이 없었다. 극장에 들어가서 혼자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왔는데도, 은미가 돌아올 시간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주인 할머니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숨죽인 채로 은미의 방으로 갔다. 어둑한 방 안은 온기 없이 썰렁했다. 전등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형광등 불빛에 방 안이 창백해졌다. 손때 묻은 벽지와 빗물에 여러 번 젖었다 마른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구석에 흐트러진 이부자리가 있었고, 그 밑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문제집이 몇 개 쌓여 있는 게 보였다. 한쪽에는 동그란 탁상거울과 몇 가지 로드샵 화장품이 놓여 있었다. 내가 모르는 브랜드의 향수도 하나 있었다. 뚜껑을 열어 보니 달콤한 냄새가 났다. 은미의 교복이 다른 옷들과 함께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입은 것을 본 적 없는 원피스도 두어 벌 있었다.
    나는 전기장판을 켜고 이부자리 밑에다 다리를 집어넣었다. 작지만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나는 늘 여동생과 방을 나누어 써야 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따뜻한 물로 씻고 침대에 들어가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문틈으로 찬바람이 계속해서 새어 들어왔지만 엉덩이 밑은 따뜻해서 나른해졌다. 차가운 기운에 잠에서 깼을 때, 방 안은 깜깜했다. 은미가 부스럭거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숯불에 그을린 고기 냄새가 났다. 왔어, 하고 내가 말했다. 응. 제대로 누울래? 은미의 말에 나는 고분고분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애 옆에 이불을 덮고 똑바로 누웠다. 등은 따끈한데 코끝이 아릿했다. 커튼이 달려 있지 않은 작은 창으로 가로등 불빛인지 달빛인지가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은미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럴 수 없었다. 그때 선영아, 하고 은미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응? 그때 있잖아. 언제? 그때, 나 깨우러 왔을 때. 응. 나 그때, 계속 자고 싶었거든. 잠이 다 깼는데도 그냥 계속 계속 누워 있고 싶었어. 은미는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은미야, 하고 불렀잖아. 응. 누가 내 이름 그렇게 부르는 게 엄청 오랜만이었어. 우리는 어둠 속에 잠시 말없이 누워 있었다. 은미야. 은미가 응, 하고 대답했다. 은미야. 응. 은미야. 응. 그렇게 몇 번인가 부르다가 언젠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겨울방학이 끝나 갈 무렵이었다. 은미가 아르바이트하는 가게 사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었다. 극장 앞에서 웬 나이 많은 남자의 차에 타는 걸 보았다거나,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거나 하는 그런 얘기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웠고 그래서 은미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은미는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나는 그 애 역시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은미가 그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나는 그것을 줄곧 고민했지만 은미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곧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었고, 그 애와 나는 다른 반이 되었다. 나는 은미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으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유일하기를, 유일하지 않기를. 그 애는 줄곧 혼자인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인가 쉬는 시간에 그 애의 교실로 찾아가기도 했지만, 그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은미는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

 

    그곳에 가기 위해 우리는 모 대학 앞의 번화가를 지나야 했다. 상점의 불빛이 찬란했고,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해 나란히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나보다 두 발짝 정도 앞서 걸었고, 나는 그의 구부정한 등을 보며 말없이 따라갔다. 이윽고 골목으로 접어들자 이번에는 아파트촌이 이어졌다. 길은 한적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나보다 앞서 걷고 있었다. 점차 거리의 소음이 멀어지고, 그와 내가 타박타박 걸음을 내딛는 소리가 들려올 만큼 고요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범죄 예방을 위한 24시간 순찰, CCTV 녹화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로 검은 구멍이 뚫린 집들이 솟아 있었다. 그는 찢어진 가름막을 들추고 그 안으로 몸을 굽혀 들어갔다.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건물 사이로 좁고 가파른 계단이 나 있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계단 끝에는 폐허가 있었다. 어떤 집은 무너져 잔해로 남아 있었고, 아직 무너지지 않은 집들은 창문이 사라진 자리에 네모난 어둠이 들어차 있었다. 철근이 드러난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에 누군가 웃는 얼굴을 그려 놓았다. 한쪽 눈으로는 윙크하고, 혓바닥을 살짝 내밀고 있는 얼굴. 집집마다 붙어 있는 포장이사 광고 스티커. 잔해와 뒤섞인 채 버려진 가재도구들. 깨진 사기그릇, 숟가락, 효자손, 짝 없는 운동화. 사라진 문 안을 들여다보면, 반쯤 무너진 벽 너머로 맞은편의 폐허가 보였다. 남아 있는 벽에는 8년 전 달력이 걸려 있었다. 그런 풍경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이어졌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곧 언덕 아래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드물게 불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 밑에서 그가 멈춰 섰다. 잠깐 쉴까요? 그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불 좀 빌려줄래요, 하고 그가 말했다. 없는데요. 내가 대답하자 그가 한쪽 손을 내밀며 사랑의 썰물, 하고 말했다. 나는 가방에서 성냥갑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왠지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담배 맛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도 아무데나 걸터앉았다. 언덕 아래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는 동안 언덕 위는 아무런 저항 없이 어두웠다.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은 마치 커다란 검은 구멍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먼 미래에는, 여기도 유리로 덮어씌워질까요? 그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고 나는 웃었다. 그는 따라 웃지 않고 말했다. 여기가 내 방이었어요.
    그는 간간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물론 집을 떠나 혼자 산 지 오래였지만, 내 방은 예전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옷장 안에 고등학교 때 교복까지 그대로 걸려 있었죠. 가끔 집에 오면 아버지는 마치 내가 어제도 그제도 거기 있었던 것처럼 굴었어요. 예전처럼 별 대화 없이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고, 자러 들어갑니다. 침대에 누우면 먼지 냄새가 나요. 아무도 청소를 안 해서요. 나는 왔을 때 그대로 침대보만 덮어 두고 다시 떠나곤 했죠. 아버지랑 나는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지내왔거든요. 치우기 싫으면 어지르지 말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그게 우리 모토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저녁 식사 후에, 설거지를 하고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아버지가 따라 나오셨어요. 한 대만 줘봐라, 그래서 드렸죠. 아버지는 오래전에 끊으셨거든요. 요리하는 사람은 담배 피우면 안 된다고 어머니가 하도 잔소리를 해서요. 아버지는 거의 삼십 년 동안 해장국을, 해장국만, 끓이셨어요. 한참을 뻐끔뻐끔 연기만 내뿜다가,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 동네가 재개발 구역이 되었다구요. 아버지의 가게는 저쪽에 있었어요. 걸어서 십 분 거리였죠. 집과 가게 모두 철거 예정 지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버틴 사람들은 아버지를 포함해 열 명도 채 되지 않았어요. 이제 와 다른 곳에 가게를 열자니 보상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아버지는 늙고 지쳐 있었죠. 사실 난 아버지가 그만두기를 바랐습니다. 장사도, 부질없는 싸움도 전부. 아버지가 용역들에게 끌려 나갈 때마다 저는 여기 없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수화기에 대고 아버지를 설득했죠. 아버지가 아무것도 어지르지 않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셨으면 했어요. 우리의 모토대로요. 내가 한 말은 결국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죠.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저는 집에 있던 가구와 물건들을 조금씩 내가 사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천막 안에 꼿꼿하게 앉아서 눈을 꼭 감은 채로, 불러도 대답도 안 하셨어요. 철거일이 되었을 때, 저는 이리로 올라와서 포클레인이 집들을 하나씩 부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건 꽤 현실감이 없는 일이어서, 우리 집 차례가 되었을 때도 나는 그냥 멍하니 보고 있었죠. 몇 번의 타격 끝에 마침내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을 때, 액자가 보였습니다. 해바라기를 그린 조악한 유화였어요. 그건 아마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자리에 걸려 있었을 겁니다. 액자 안의 해바라기가 햇볕 아래 무방비로 드러났을 때, 그때부터 내 강박이 시작된 것 같아요. 바로 그 순간에요. 그게 거기 있었다는 걸, 나는 정말 완전히 잊고 있었거든요.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아까 지나온 캠퍼스 쪽에서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성악과 여학생인 듯한 누군가가 아리아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곡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와 나는 조용히 귀 기울였다. 그때 가로등 불빛이 몇 번 깜빡거리더니, 꺼졌다. 사위가 완전히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 두 귀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치익, 하고 그가 성냥 하나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게 그것을 건넸다. 나는 손끝이 뜨거워질 때까지 불빛을 들여다보다가, 후, 하고 입김을 불어 그것을 껐다. 그 작은 불빛이 꺼지자 뭔가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괜찮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문득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려가서 해장국 한 그릇 할까요? 그가 말했다. 술산책은 해장 필요 없다면서요. 내가 대꾸하자 그가 하하 웃더니 말했다. 갑자기 먹고 싶네요. 좋아요, 나는 대답했다.

 

 

 

 

 

 

 

 

 

 

 

 

 

 

 

문진영

작가소개 / 문진영

2009년 제3회 창비 장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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