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도움 없이

[단편소설]

 

 

음악의 도움 없이

 

 

위수정

 

 

 

    식당 종업원은 묵직한 접시들을 테이블 위에 차례로 올려놓았다. 상일은 산마늘 장아찌가 담긴 접시에 휴대폰을 대고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내가 정말 먹고 싶었던 거.
    상일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6년 전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6년 전인 줄도 몰랐다. 압구정의 시끄러운 술집에서 만나 술을 마셨던 것. 그리고 며칠 뒤 그가 집에 놀러오고 싶다고 연락해 왔지만 거절했던 기억 정도가 남아 있었다. 초라한 자취방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사생활을 공유할 만한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에 이런저런 핑계를 댔었다. 당시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진과 사업을 준비할 때였다. 그게 벌써 6년이나 됐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너는 애 같았는데. 나의 말에 그는, 완전 애였지, 라며 긍정했다. 나는 그를 흉내 내어 똑같이 말해 보았다. 완전 애였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웃었다. 마치 이제는 그때와는 다른, 아주 먼 사람이 된 것처럼. 그러나 그는 14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스타일은 조금 달라져서 빡빡머리에 테니스 공 색깔의 연두색 비니를 쓰고 손가락에는 커다란 반지 몇 개를 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는 않았다. 느긋한 태도가 몸에 배어 과해 보이는 스타일도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점이라면 그가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 국적만 달라졌을 뿐인데 나는 그 점이 좀 낯설었다.
    14년 전 우리는 대학에서 사진 실기 수업을 함께 들은 적이 있다. 영화과 전공 수업이라 타과생은 나와 상일이 유일했다. 우리는 자연스레 한 팀이 되었다. 어느 날 상일이 내게 제안했다. 우리 누드 찍어 볼래?
    우리는 모텔에서 촬영을 하기로 했다. 상일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수업을 들었을 뿐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그때 우리가 어디에 있는 모텔에 갔었는지, 누가 먼저 옷을 벗었는지, 어떤 카메라로 촬영했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장면들은 필름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어색한 공기를 바꾸기 위해 상일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음악을 고르던 장면이나 둘 다 알몸으로 취했던 포즈, 그렇게 찍었던 사진들 중 한두 장,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일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까마득히 오래전 일 같았다.
    6년 전, 그가 한국에 왔다며 만나자고 했을 때는 반가운 마음이 먼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잠깐 망설였다. 바쁘다고 할까. 그런데 주말이었고 식전인 데다 선약도 없었다. 그는 선선히 내가 사는 동네로 오겠다고 했고 나는 약속을 잡았다. 그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약속이 깨졌거나 마침 딱히 만날 사람이 없었거나.
    6년 만에 만난 우리는 6년 전 일도 14년 전 일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굴은 잘도 알아보았다. 상일은 북적이는 지하철역 앞에서 반가운 얼굴로 나를 안았다. 왜 이렇게 안 변하냐고, 예전이랑 똑같다고. 마치 칭찬하듯 서로 웃으며. 너도 그래.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왔다. 함께 걸으며 상일은 행인들의 비슷한 옷차림이나 지나치게 화려한 간판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겉으로는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일의 신발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탈리아 브랜드의 회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일부러 오래 신은 것처럼 때가 타고 낡은 스타일로 유명한 모델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신발 좀 빨아 신으라고 할 만한 모양이었지만, 보통 운동화의 다섯 배가 넘는 가격에도 인기가 높았다. 내가 전에 살던 동네는 이제 못 알아보겠더라. 완전히 바뀌어서. 상일이 말했다. 서울이니까. 나는 당연한 듯 답했지만 서울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 동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상일을 근처 카페로 데려갔다. 우리는 커피를 주문하고 테라스로 나와 앉았다. 대로변과는 떨어진 골목 안에 위치한 카페였는데도 늦은 시간까지 북적였다. 커피 맛이 괜찮군. 상일은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말했다. 무슨 인플루언서들이 종종 찾아서 유명해졌다나 봐.
    상일은 그 나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돈을 번다고 했다. 나는 상일이 디제이라는 건 알았지만 바리스타인 줄은 몰랐다. 난 구두를 팔아. 내 말에 상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있다고 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상일은 디제이를 하며 커피를 내리고 영문과를 나온 나는 구두를 파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도 SNS 덕분에 마치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 사이 같았다. 삶의 소소한 디테일까지 알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참, 다음 주말에 파티가 있어. 너도 와. 나도 디제잉 하거든.
    파티? 어디서?
    문래동. 공장 하나를 통째로 빌렸어. 이젠 트렌드…… 라고 하기에도 좀 뭣 하지. 공장 파티. 서울도 그렇더라. 문래동, 성수동…….
    성수동이라는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공장이라는 말을 할 때부터 나는 성수동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장이 좋아?
    공간감 때문에 소리가 달라. 그리고 공장 냄새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거든. 힙한 거.
    공장 냄새. 그게 뭐냐고 묻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게 힙하구나.
    상일은 다음 주 토요일이라며 공연 포스터를 휴대폰으로 전송해 주었다.
    성수동에는 아버지의 구두 공장이 있다. 아버지는 제대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해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남의 공장에서 일한 지 십 년이 훌쩍 넘어 처음으로 독립해서 차린 공장이 지금의 성수동 공장이었다. 아버지의 손끝은 항상 까맸고 지문은 닳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나는 공장에 잘 가지는 않았으나 상일이 공장 냄새라는 말을 했을 때 아버지의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풍기는 본드와 고무 냄새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상일은 그런 공장이나 그런 냄새를 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버지는 사장으로 불렸으나 항상 혼자 일했고 오십대가 넘어서야 직원을 한 명 두었다. 그 직원은 나보다 네 살 많은 친오빠였다. 이제는 아버지 대신 오빠가 사장이 되었다. 성수동은 최근 몇 년간 공장을 개조한 갤러리나 카페가 들어서면서 소위 핫플레이스로 유명해졌다. 한강이 인접한 곳으로는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하철역 주위가 깨끗해졌고 주말이면 화려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얼마 전에는 골목 초입의 장갑 공장이 일본식 빵집으로 바뀐 것을 보았다. 환하게 꾸민 사람들이 빵집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목장갑을 짜는 기계소리가 하루 종일 들리던 곳이었다. 이제는 텁텁한 실 냄새 대신 고소한 빵 냄새가 진동했다. 그 장갑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작고 어두운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안쪽은 여전했다. 그곳에는 온종일 두드리고 자르고 붙이며 쪼그려 앉아 노동하는 사장들이 아직도 공장마다 한두 명씩 있었다.   
    상일은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음악에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상일은 내게 주로 무슨 음악을 듣는지 물었다. 클래식. 상일은 자기도 클래식은 잘 모른다고 했고 나는 내심 다행스러웠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를 알면 섹스 스타일도 알 수 있는데. 상일의 말에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뭐라고? 웃음기 섞인 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상일은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 내가 뭘 좀 썼는데 한번 봐줄래? 맞춤법도 맞지 않는 문장 몇 개가 영어 문장들 사이에 간혹 섞여 있는 짧은 글이었다. 이게 뭔데?
    이제 글을 좀 써보려고. 생각을.
    영어가 너무 많은데.
    십삼 년째야. 이젠 한글이 어색해. 일부러 멀리했거든.
    지금부터 십 년 넘게 다른 나라에서 살면 나도 외국 사람처럼 외국말을 하게 될까. 외국어가 익숙한 내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미 한국에서 너무 오래 살아버려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일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메모조차 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청혼을 할까 해서. 상일의 말에 나는 다시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고 상일은 전화기를 돌려달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일부러 휴대폰을 쥔 손을 높이 들었는데 상일은 너무 쉽게 빼앗아갔다. 보라면서. 내가 짐짓 억울한 척 말했다. 그만 봐. 상일은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엄마가 문제야. 너무 까다로워. 우리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너희 엄마는? 상일이 물었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 뭐?
    압박. 결혼하라거나.
    죽었잖아. 나 애기 때. 말 안 했나?
    처음 들어. 상일의 눈이 커졌다.
    한 것 같은데.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암이었대.
    미안. 상일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았다. 얼굴에 미안함이 너무 보여서 웃음이 났다. 작년에는 아버지도 돌아가셨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그때 했었나?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상일은 나를 잠깐 바라보고는 곧 시선을 돌렸다. 했지. 했었어. 사실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상일은 모텔에 비치된 컴퓨터 앞에 앉아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음악을 틀었고 나는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우리가 알몸이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사진은 열심히 찍었는데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콘돔 사올까? 상일이 갑자기 말했고 나는 뭐라고 했더라. 그때 그가 옷을 입고 있었는지 벗고 있었는지,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지. 키스를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 다프트 펑크였는지 매시브 어택이었는지.
    아주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는 능숙하진 않았지만 조급함이 없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상일이었다. 모텔을 나와 상일을 남겨 둔 채 나는 먼저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안에서 느꼈던 감정. 그날 내가 메고 있던 알록달록한 숄더백.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왜 기억에 남아 있는지. 아마 상일이 기억하는 부분은 다른 조각일 테고 거기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쩌면 상일은 정말로 기억하는 것이 없는지도 몰랐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함께 들었고 인터넷으로나 각자의 근황을 확인했다. 아닌가. 언젠가 맛있는 샌드위치 집을 안다고 해서 함께 샌드위치를 먹은 적이 있었나. 상일은 그때도 가족 이야기를 했었고 나는 듣고만 있었던가. 별다른 대화도 없이 카페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 같은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상일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팔뚝이 굵어졌고 어깨도 더 넓어진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 것처럼 유치한 농담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우리 내일모레 마흔이다. 믿어져? 그런데 아직도 엄마 얘기나 하고 있고. 내 말에 상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대답은 예상 밖이어서 나는 과장되게 그의 팔뚝을 한번 때리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상일은 나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 물었다. 오늘은 집 구경 시켜 줄 거지?
    다음에.
    또 다음? 상일은 장난스레 입을 삐죽 내밀어 보였다. 하여간 주말 파티에는 꼭 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말로 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고 버스는 곧 도착했다. 상일은 자연스럽게 나를 안았다. 다음에는 집 구경 꼭 시켜 줘. 내 귓가에 속삭인 후 그는 버스에 올랐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려고 그를 눈으로 좇으며 계속 서 있었는데, 그는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버스는 곧 출발했고 나는 괜스레 머쓱해져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상일은 이 주 후면 다시 돌아간다고 했다. 밤공기는 아직도 꽤 서늘했지만 곧 여름이 올 것 같았다. 그런 냄새가 났다. 어느새 나무들은 꽃잎을 떨어뜨리고 초록색 잎사귀를 틔우고 있었다. 이제야 그게 눈에 보였다.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자 새 구두 냄새가 훅 끼쳤다. 나는 간만에 창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현관과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신발 샘플들을 챙겨 발코니로 옮겼다. 발코니는 오래된 구두와 잡동사니들로 이미 엉망이었다. 나는 세탁기를 돌리고 신발들을 정리했다. 쇼룸으로 가져가 세일 상품으로 팔 것들과 버릴 것들로 나누었다. 그중에는 도매시장에서 사온 신발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오빠, 아니면 어릴 적부터 알던 아저씨들이 만든 신발이었다. 여진과 나는 시세보다 공임을 조금 더 쳐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구두 가격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신발 하나를 만든다는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장에는 잘 가지 않았다. 그곳의 냄새와 쪼그려 앉아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내가 먼저 피곤해졌다. 구두에는 관심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아무도 백화점에서 신발을 사지 않았다.
    여진은 원가의 2.5배 가격으로 구두를 팔았고 대부분의 고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급 수제화를 샀다고 만족해했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의 신발도 되지 못한 채 방치된 구두들을 보고 있으니 오빠가 떠올랐다. 멍하게 낡아 가는 것보다는 헐값이라도 받고 팔려 나가 열심히 소모되는 편이 더 나은 걸까.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보다가 유행이 지난 초록색 옥스퍼드화를 발견했다. 내가 구두 모델을 하던 초창기 때 만들었던 제품이었다. 여진과 둘이서 구두를 나눠 신고 낮에는 공원이나 카페에 앉아 사진을 찍고 밤에는 포토샵을 하며 고생하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이었던가. 사업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가장 먼저 모델부터 구했다. 여진은 얼굴까지 나와야 매출이 뛴다며 예쁘장하고 날씬한 모델을 뽑았다. 여진의 말은 옳았다.
    나는 발코니 구석에 놓인 찌그러진 낡은 박스를 열어 보았다. 아, 이게 여기 있었네.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5센티 힐에 발등에는 큐빅 꽃 장식이 놓인 빨간 구두. 새 구두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큐빅은 빛을 잃어 부옇게 변해 있었다. 어찌 보면 촌스럽고 또 어찌 보면 복고풍의 멋스러운 느낌도 났다. 나는 일어서서 구두를 신어 보았다. 대학 입학 선물로 아버지가 나만을 위해 만들어준 유일한 구두였다. 그러나 빨간색이 너무 튀는 데다 큐빅 장식도 좀 나이 들어 보이는 것 같아서 박스 안에 넣어 둔 채 간혹 열어 보기만 하고 신고 나간 적은 없었다. 언젠가부터 아예 잊고 있었는데 이 구두를 선물 받은 때로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흘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까? 내가 이 구두를 신고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나는 일할 때 항상 낮은 굽의 신발만 신고 다녀서 이제는 힐이 어색했다. 사업을 시작한 후 거의 매일 여진을 태우고 공장과 시장에 다녔다. 주문을 확인하고 장부를 정리하고 직원과 나누어 댓글을 달기도 했다. 사무실에 나가 배송 체크를 하고 여진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릴 사진을 골랐다. 사람과 대면하는 일이나 SNS 홍보는 주로 여진이 해서 나는 힐을 신고 만날 사람이 딱히 없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한 탓에 눈이 조금 나빠지긴 했지만.
    나는 구두를 다시 상자에 넣었다. 갑자기 청소할 의욕이 달아나 버렸다. 하던 일을 놓아두고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서는 사람들이 체육복을 입고 건물 안에서 열심히 달리기를 했다. 누군가를 잡으러 다녔는데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웃었다. 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말투가 거슬려서 볼륨을 죽이고 대신 음악을 틀었다. 스피커에서는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악과는 전혀 맞지 않는 리듬으로 사람들은 뛰고 숨고 뒤에서 옷을 잡아당겼다. 화면에서는 쉴 새 없이 두근두근, 개인기 폭격! 같은 원색의 자막이 튀어나왔다. 날카롭고 섬세한 바이올린 선율과 그것과는 전혀 다른 동작들 사이에서 나는 말할 수 없이 고요해졌다. 두 세계 모두 내게는 너무 멀었다. 둘 중 무엇을 꺼야 할지 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아버지는 공장 안에 항상 크게 라디오를 틀어 두었는데 지금의 오빠는 무선 헤드폰을 쓰고 무언가를 들었다. 내가 가면 헤드폰을 빼서 목에 걸었다. 아버지는 때가 타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 검은색이나 짙은 회색 계열의 낡은 티셔츠를 입고 일했던 반면, 오빠는 얇고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에이프런을 착용했다. 외양만으로 보자면 아버지보다 훨씬 전문가처럼 보였다. 사장이 된 오빠는 공장도 새롭게 단장했다. 검은 먼지로 얼룩진 벽은 베이지색 친환경 페인트로 칠했고 켜켜이 쌓인 재료들도 새 가구를 짜서 말끔하게 정리했다. 아버지가 쓰던 낡은 작업용 의자 대신 자신의 키에 맞게 주문 제작한 의자를 들여놓았다. 작은 공장은 좀 더 깔끔해졌지만 오빠의 손은 조금씩 투박해졌고 본드와 가죽 냄새는 변함없었다. 오빠에게 지나가는 말로 최근 공장 시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오빠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무심하게 답했고 정말로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이후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진과 나는 오빠와 주로 구두 얘기를 했다. 주문량, 반품 온 제품, 제작 기간, 신상품 디자인 등. 사실 나보다는 여진과 더 많은 대화를 했다. 가끔은 셋이 저녁을 함께 먹으러 가기도 했다. 오빠는 매년 공임을 조금이라도 인상해 달라고 버릇처럼 말했고 여진은 이미 너무 많이 올려 줬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셋이 헤어질 때면 언젠가부터 내가 먼저 가기를 바라는 눈치여서 먼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키가 큰 남자가 주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물총 세례를 받고 있었다. 물을 맞는 사람도 쏘는 사람도 똑같이 인상을 써가며 웃었고 나도 모르게 그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우아한 바이올린 선율 사이로 도어 록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여진의 모습이 보였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여진이 대뜸 물었다. 넌 연락도 없이 아무 때나 남의 집에 들어오고 그래. 나는 언성을 높였다. 숨길 것도 없는데 뭔가 들킨 기분이었다. 여진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머쓱해져 급히 여진을 부르러 나갔다. 그런데 바로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여진이 혀를 날름 했다. 됐지? 웃고 있는 여진의 눈가가 불그스름했다. 여진은 내게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삼각 김밥과 컵라면, 감자 칩, 사이다가 들어 있었다. 대학 시절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우리가 먹던 메뉴였다. 여진은 들어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음악부터 껐다. 우리는 여진이 좋아하는 시트콤을 틀어 놓고 나란히 앉아 삼각 김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사이다를 마신 후 여진이 트림을 했다. 역시 사이다는 칠성이야. 여진의 말에 나는 웃었다. 그러나 여진은 웃지 않았다. 너, 오빠한테 여자 있는 거 알았어?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여자?
    몰랐어? 유부녀라던데.
    여진의 목소리가 떨렸고 나는 여진에게 휴지를 건넸다. 몰랐어. ……미친놈이네.
    나는 여진을 더 위로할 자신이 없어 테이블 정리를 시작했다. 여진이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줄 겸 불편한 이야기도 피할 겸 쌓여 있던 설거지까지 일부러 했다. 설거지를 마친 후 차를 만들어 여진에게 갔을 때, 여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감자 칩을 와삭와삭 씹으며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내가 지금 진짜 웃는 거 아니야. 그리고 너, 너무 남 얘기하듯 좀, 그렇다?
    넌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지금 그게 중요해? 오빠가 유부녀 좋아한다는데. 나 오빠랑 잤단 말이야.
    내 인상이 좋지 않게 변하는 것을 눈치 챈 여진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하여간 더럽게 됐어.
    여진의 입에서 나온 오빠 이야기는 너무 낯설었다. 오빠의 사생활은 궁금하지 않았고 그렇게 살아온 지 오래되었다. 여진은 전부터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했지만 나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여진 역시 유부남이나 연인이 있는 남자를 만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오빠와 관계된 이야기를 내게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불편했다. 오빠는 자신의 연애사에 관해 내게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여진과는 왜 잤던 것일까. 내가 결국 알게 될 것이 뻔한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여진보다 오빠가 더 미워졌다. 나는 깊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진이 내 눈치를 보며 코맹맹이 소리로 작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주문 몇 개 들어왔어?

 

    상일에게서는 거의 매일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답했다. 오빠에게는 평소대로 주문서를 보냈고 메시지나 업무 관련 통화만을 짧게 주고받았다.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화는 가라앉았지만 어색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오빠 역시 여진이 내게 말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일 때문에 공장에 가야 했을 때, 여진에게 같이 갈 것인지 물었다. 당연하지. 일은 일이고. 대신 올해 공임 인상은 얄짤없어. 여진은 차갑게 말했다. 일은 일이라며? 나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진이 지금은 저렇게 말해도 또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일이었다.
    오빠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러나 여진은 오빠와 필요한 말만 겨우 했고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이 상황이 난처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해서 벽으로 시선을 돌려 표정을 숨겼다. 오빠는 완성된 구두를 들고 나와 바닥에 하나씩 늘어놓았다. 쪼그려 앉은 오빠의 뒤통수에 흰머리 두 가닥이 유난히 도드라져 눈에 띄었다. 뽑아 줄까 하다가 말았다.
    여진은 그날따라 검수를 꼼꼼히 했다. 본드 칠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후기에 불만이 올라온다는 둥, 굽 종류나 발볼 넓힘 옵션 실수하지 말라는 둥 잔소리가 이어졌다. 오빠가 그런 실수를 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오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모습에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입 좀 닫아. 여진의 목소리가 신경을 긁었지만 이번에도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본드 냄새 때문인지 여진의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오빠의 답답함 때문인지 관자놀이가 쑤시고 속이 메스꺼웠다. 바깥 공기를 쐬러 혼자 밖으로 나왔다. 오늘 집에 올래? 나는 상일에게 충동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잠시 후에 다시 공장으로 들어왔다.
    둘은 검수를 끝내고 새 디자인에 관해 여진이 설명하고 있었다. 여진의 새된 목소리는 변함없었다. 작업대 위에 오빠의 헤드폰이 놓여 있었다. 나는 헤드폰을 써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헤드폰을 벗고 버튼을 찾아보았다. 그것은 무선 헤드폰이 아니었다. 유선 헤드폰에 전선만 뽑아버린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오빠를 보았다. 오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여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상일은 공연 팀과 미팅이 잡혀 있어 밤 열 시 이후에나 시간이 난다고 했다. 나는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상일이 오기 전까지 나는 집 정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발코니에 쌓여 있는 구두 박스를 정리해 천으로 상자들이 보이지 않게 덮어 두었다. 오랫동안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켰고 청소기를 돌렸다. 침대 위의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고 마지막으로 향수를 공중에 몇 번 뿌린 후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상일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우리는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 상일은 내가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끼고 있던 안경을 벗겼다. 안경알을 만진 적이 없는데 자꾸만 지문이 묻어 있어. 난 정말 건드린 적이 없거든. 이해돼? 내 말에 상일은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상일은 나를 만지면서도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몸에 힘을 좀 빼봐. 상일이 말했다. 나는 어떻게 힘을 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 눈을 감아 보라고 했다. 나는 상일이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일은 음악을 틀었는데 몰입은 되지 않고 전선을 빼버린 헤드폰이 갑자기 떠올라서 감았던 눈을 떴다. 상일의 상체가 눈에 들어왔다. 쇄골 아래로 길게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림도 아니고 그저 검은 선이 몸을 따라 길게. 나는 그 선을 만져 보았다. 손끝이 달아올랐다. 나는 몸을 이완시키는 방법을 기억해 냈다.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만큼이나 빨리 끝나버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이상한 순간에 끝날 것이 분명했다.
    상일은 내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청혼은 했어? 적절한 질문이 아니었다고 후회하기도 전에 상일이 무감하게 대답했다. 끝났어. 완전히. 그리고 맘에 드는 여자가 생겼는데 거절당했다. 그냥 같이 자고 싶었을 뿐인데. 아직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가 봐. 뭐가? 그런 관계가. 그런 관계가 좋아? 좋고 싫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거지 뭐.
    있잖아, 이제 너는 외국인인 거지? 너도 네가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내 질문에 상일은 답이 없었다. 잠이 들었나 했는데 한참 뒤에 상일이 대답했다.
    하여간……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거야.
    ……공연이 언제랬지?
    비누로 한번 닦아 봐.
    응?
    안경 말이야.
    상일은 잠이 들었고 나는 한참을 뒤척였다.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난 상일은 약속이 있다며 내가 만든 주스 대신 물 한잔을 마시고 씻지도 않은 채 급히 떠났다. 여진에게서 부재중 전화 세 통과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홈피 확인해 봐. 빨리.
    나는 상일을 위해 만든 주스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홈페이지에는 구두 주문 열 건과 상품 문의 열한 건, 그리고 후기 세 건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후기를 읽어 내려갔다. 여진이 연락했다면 그 때문일 것이었다. 기대가 너무 컸다거나 딱 가격만큼 한다는 둥의 시큰둥한 댓글은 이제 익숙해져서 더 이상 우리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별 네 개가 달린 후기를 클릭했다. 세세한 칭찬의 글이었다. 디자인도 맘에 들고 착화감도 좋은데 배송이 너무 느려 별 하나 빼요. 깔창 여분 주신 것도 좋았어요. 나는 칭찬 후기에 다는 댓글을 복사해서 붙여 넣고 마지막 줄에는 배송 관련 사과 멘트를 적어 넣었다. 그 아래 별표 두 개짜리 후기가 있었다. 왠지 묘하게 구림. 한 시간 정도 착화. 반값에 사실 분 연락 주세요.
    나는 한 줄짜리 후기를 반복해서 읽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잠시 후 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바람났어? 여진이 대뜸 물었다. 이거 뭐라고 해야 돼? 나는 여진의 말을 무시하고 본론을 꺼냈다. 뭐라고 하긴, 여기서 재판매는 금지라고 해야지. 인간들이 예의가 없어. 나는 그것보다, ‘왠지 묘하게 구림’이 더 거슬리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다. 구체적인 불만사항을 조목조목 설명한 후기는 흔히 봤지만 이런 식의 글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글을 삭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구매자가 항의 글을 올려 더 큰 부작용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네가 봐야 할 거 같아서 연락한 거야. 괜히 열 받지 말구, 그냥 기계적으로 응답해. 누구 맘대로 거기서 재판매질이야.
    나는 전화를 끊고 여진의 말대로 사무적인 문장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주스를 그대로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저녁에는 오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고기 먹으러 갈래?
    나는 답을 미루다가 한 두 시간 후에 답했다. 다음에.

 

    상일이 말한 파티는 토요일 밤이었는데 금요일 저녁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오면 못 간다고 할 작정이었는데 막상 연락이 없으니 궁금했다. 토요일이 되었고 무심결에 자꾸 휴대폰에 눈이 갔다. 파티는 여덟 시부터였다. 여덟 시가 넘어가자 나는 갑자기 조급해졌다. 상일에게선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나는 마치 누가 부른 것처럼 급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화장을 하고 오랫동안 입지 않은 짧은 가죽 핫팬츠와 몸에 붙는 탑을 꺼내 입었다. 입으면서도 그 차림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고, 그저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었다. 현관의 전신 거울에 비친 모습은 역시 과하고 어색했다. 나는 탑을 벗고 옷장을 뒤져 헐렁한 흰 셔츠로 갈아입었다. 무슨 신발을 신을까 고민하다 아버지가 만든 빨간 구두를 꺼내 신어 보았다. 핫팬츠와 복고풍의 힐은 완벽하게 어울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꽝도 아니었다. 어중간한 힐보다는 하이힐이나 워커, 아니면 아예 스니커즈를 신는 게 훨씬 잘 어울리고 편안할 게 분명했다. 그냥 전처럼 신어만 보고 다시 넣어 둘 생각이었지만 다른 신발로 바꿔 신는 대신 자꾸 구두 신은 모습을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 보게 되었다. 나는 빨간 구두를 그대로 신고 가기로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문래동으로 향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거울을 꺼내어 화장을 고쳤다. 주말 저녁이라 차가 막혔고 나는 자주 휴대폰을 보았다. 문래동이 젊게 바뀌었다고 하나 여전히 거리에는 공장지대 특유의 서늘하고 음습한 기운이 깊게 배어 있었다. 문을 닫은 공장들이 늘어선 길은 적막했다. 낯선 탓도 있겠지만 성수동과는 또 다른 좀 더 차갑고 묵직한 어둠이었다.
    파티가 열리는 곳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정도 높이의 오래된 공장 건물이었다. 미림철강. 건물 위에는 글자가 몇 개 떨어진 낡은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파티는 이미 시작되었고 음악소리가 건물 밖까지 들려왔다. 문 앞에 검은 모자를 쓴 남자와 긴 머리의 여자들이 보였다. 한 손에는 맥주병을, 다른 손에는 전자 담배를 들고서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여진이라도 불러서 함께 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오랜만에 구두를 신어서인지, 꼭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좀 작은 건지, 걸을 때마다 뒤꿈치가 아팠다.
    출입문 옆에는 종이 포스터가 여러 장 붙어 있었고 출연하는 디제이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상일의 닉네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 뒤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 때문에 웃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그냥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랬다가는 저들이 정말 내 얘기를 할 것 같았다. 상일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문 앞에는 표를 파는 사람도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예상대로 안은 어둡고 시끄러웠지만 크게 넓지는 않았다. 내부는 천장이 통째로 뚫려 있어 볼륨을 한껏 높인 음악이 크고 깊게 쿵쿵 울렸다. 실내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화려한 차림의 사람들이 내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비트에 맞추어 색색의 조명이 깜빡였다. 디제이 박스는 무대 중앙에 있었고 사람들은 박스를 둘러싼 채 술을 마시거나 팔을 들고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었다. 디제잉을 하고 있는 사람은 상일이 아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내부의 모습이 좀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벽에는 나무 박스나 철제 조형물이 걸려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원래 공장에 있던 물건들은 아니었다. 일부러 공장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가벼운 재질로 흉내 내어 장식해 둔 것들이었다. 지나치게 반짝이는 쇠사슬이 걸려 있거나 빈 맥주병을 담은 와인 박스가 놓여 있는 식이었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구석의 바로 가서 맥주를 주문하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천장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기계 돌아가는 소리 대신 비트가 강한 음악이 흐르고, 작업복 대신 미니스커트와 힐, 고급 운동화와 핫팬츠 차림의 젊은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몸을 흔드는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내 시선은 천장 대들보 끝 구석에 길게 늘어져 묶여 있는 밧줄에서 멈추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거의 가지 않는 구석지고 어두운 공중에. 그것은 예전부터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조명이 보라에서 파랑으로, 빨강에서 노랑으로 바뀌는 찰나마다 밧줄에 목을 매달고 죽어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그냥 사람 모양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깜빡 해보았다.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피하고 싶었는데 맥주를 마시며 고개를 들 때마다 자꾸만 바라보게 되었다.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나는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진짜 너네? 혼자 왔어?
    상일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뭐라고 소개를 해주었는데 음악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서 그저 알아들은 척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컬러렌즈를 낀 회색 눈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 앞에서 나는 갑자기 늙은 기분이 들었다. 상일은 내 옷차림을 과장되게 훑고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여기 괜찮지? 상일은 딱히 대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왠지 묘하게 구린데. 그러나 상일은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네 차례는 끝났어? 내가 큰 소리로 묻자 상일은 자신이 세 번째이고, 이 다음이라고 대답했다. 넌 무슨 이름 써? 내 질문을 금방 알아듣고 상일은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댔다. 사일런스. 그리고 멋쩍은 듯 과장되게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손가락으로는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그의 이가 조명을 받아 파랗게 빛났다. 상일은 새로 딴 맥주를 내게 건넸다. 여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상일이 나를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갑작스레 입을 맞추었다. 그의 혀가 빠르게 내 입으로 들어와 무언가를 남겨 놓고 사라졌다. 동그랗고 씁쓸한 알약. 내가 놀라서 바라보자 상일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재밌을 거야. 나는 그것을 뱉는 대신 맥주와 함께 삼켰다. 얼마나 재미있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여자가 돌아와서 상일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홀로 술을 마시며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어디든 좀 앉아서 구두를 벗고 싶었다. 신발 한쪽을 벗어 보았다. 발끝이 발갛게 부어 있었다. 사람 발이 계속 자란다고 했던가. 발이 아니라 코였나. 어떤 부분은 죽을 때까지 계속 자란다고 했는데.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나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소리는 지나치게 컸고 리듬은 단조롭게 반복되었다. 그러나 가슴과 머리를 심장 박동처럼 울리는 그 리듬과 지나치게 큰 볼륨이 싫지 않았다. 얼마 후에 볼륨이 조금 줄어들었고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상일이 디제이 박스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상일은 팔이 드러난 민소매 셔츠에 연두색 비니를 쓰고 있었다. 그는 허리를 살짝 굽히고 디제잉을 시작했다. 아주 신중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움직이다가 중간 중간 머리를 흔들거나 팔을 들어 관객들의 흥을 돋우었다. 가볍게 춤을 추며 음악을 트는 그의 모습이 낯설어서 내가 아는 상일 같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의 움직임이 슬로 모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몸의 움직임을 따라 잔상이 사진처럼 한동안 남아 있었다. 무대에는 멈춰 있는 조금씩 다른 모습의 상일과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상일이 동시에 보였다. 소리는 점점 더 깊게 몸 안으로 들어와 쿵쿵 울렸다. 나는 몸을 움직여 보았다. 잔상이 따라다니는 상일의 몸처럼 나도 여러 겹으로 나뉘고 깊어졌다. 나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나는 만질 수 없고 볼 수만 있었다.
    나는 반복되는 비트에 맞춰 어깨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발이 아팠지만 몸을 흔들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팔은 여러 개로 나뉘어 충실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팔을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집요하고 정확하게 따라왔다. 오래된 빨간 구두는 조명을 받아 색깔이 조금씩 바뀌었다. 왠지 묘하게 구린가?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다가 혼자 히죽거렸다.
    등 뒤로 진한 향수 냄새와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춤을 추며 천천히 몸을 돌렸는데 키가 크고 귀에 검은 피어싱을 한 앳돼 보이는 남자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그런데 남자는 계속 다가왔다. 그가 내 귀에 대고 혼자 왔냐고 물었다. 향수 냄새가 너무 독해서 얼굴이 찌푸려졌다. 내가 시선을 피하고 등을 돌리자 그는 내 등 뒤에 붙어서 은근히 스킨십을 하기 시작했다. 술에 취했는지,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그랗고 씁쓸했던 알약 때문인지 고작 스무 살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남자가 내게 그러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우스웠다. 음악에 묻혀 웃음소리 같은 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나는 고개를 들고 마음껏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다 대들보에 걸린 밧줄에 시선이 갔다. 시체가 걸려 있었는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게 진짜가 아닌 줄 알기에 시선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좀 더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남자는 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몸을 조금씩 밀착시켰지만 나는 천장 구석에 매달린 시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것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으나 상일이 음악에 비트를 줄 때마다 팔다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시체의 눈은 검은 동공일 뿐이었는데도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일부러 남자의 팔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우리가 밀착해서 함께 몸을 움직이자 시체도 점점 크게 흔들렸고 좌우로 발이 흔들릴 때마다 빨갛게 물이 들었다. 그 빨간 것이 조명 같기도, 피 같기도, 구두 같기도 했다. 이어서 나는 그것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치아도 없고 혀도 없는 그저 검은 구멍이 나를 향해 점점 크게 벌어졌다. 마치 나를 알아본 듯이. 오싹해진 나는 급히 몸을 돌리다가 남자의 발을 밟았다. 허리가 휘청했다. 발을 밟힌 남자가 순간 미간을 찡그렸다. 남자는 내 허리를 감싸 안아 내가 넘어지는 것을 막아 주었다. 그러나 내가 균형을 잡았는데도 그 팔을 풀지 않았다. 내가 밀어내도 그는 팔에 힘을 주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 가볍게 투, 하고 침을 뱉었다. 허리를 감았던 손이 금방 풀렸다. 그의 퉁퉁한 얼굴이 황당한 표정에서 순식간에 화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는 뺨이라도 한 대 맞을 줄 알았는데 그는 좆같은 년이 어쩌고 하며 욕을 한바탕 퍼붓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가까운 곳에서 상일의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눈빛으로. 상일은 여전히 어깨와 머리를 흔들며 열심히 디제잉 중이었다.
    나는 구석으로 가서 벽에 등을 기댔다. 취기 때문인지 음악소리에 머리가 더 크게 울렸다. 반복되는 리듬과 그 속에서 조금씩 어긋나는 몸짓들. 그가 만들어내는 멜로디와 비트에 나는 자꾸 무언가 기대하게 되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귀를 막아도 음악이 눈과 피부로 침투해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순간 웅 하는 공기의 압력만이 머리를 채웠다. 음악이 멈추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고 늘어진 밧줄만이 쓸쓸하게 조명을 받아 색을 조금씩 바꾸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귀를 막은 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상일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그들의 리듬이, 모두 이해되었다. 아무런 감정 없이 마치 신문이나 사전을 읽는 것처럼. 나는 이 장면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아 두고 싶었다. 그런데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도 자꾸만 희미해졌다. 점점 멀어졌다. 이러다가 결국 내가 무엇을 이해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될 거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후 나는 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길에는 여전히 몇몇 사람이 이야기를 하거나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똑바로 걷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자꾸 힘이 빠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따라붙었다. 노란색 스니커즈를 신은 외국인이 담뱃불을 손으로 튕겼다. 담뱃불이 직선으로 바닥에 내리꽂히며 반짝, 몇 개의 불꽃을 퍼뜨렸다. 사일런스? 나는 작게 속삭이고 크게 웃었다.

 

    여진은 성수동에 있다고 했다. 내가 공장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는데 둘은 족발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가자마자 구두를 벗어던졌다. 뒤꿈치가 피가 날 정도로 까진 것을 보고 여진은 인상을 썼다가 곧 깔깔대며 웃었다. 이 촌스런 구두는 뭐야? 역시 바람이 난 거야. 여진이 오빠를 보며 말했지만 오빠는 말없이 구두를 챙기고 슬리퍼를 던져 주었다. 내가 오빠를 아는 게 싫다, 정말. 여진의 말에 오빠는 잔을 들었고 둘은 건배를 했다. 싸운 사람들 같지 않았다. 나는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족발을 집어 먹었다. 달짝지근하고 고소했다. 이런 맛이었구나, 족발이. 젓가락질을 하다가 고기가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진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고 오빠는 떨어진 고기를 주웠다. 오빠. 내가 부르자 오빠가 나를 보았다. 오빠는 어떤 음악 좋아해?
    음악? 오빠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뭔 음악? 여진이 옆에서 물었다.
    있잖아, 음악이…… 그거래.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서 멈추었다. 왜 저래. 그게 뭔데? 나는 답을 하지 못한 채 배를 부여잡고 꺽꺽대며 웃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속이 부대끼고 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웃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입안에서 본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보고 있는 둘의 표정이 굳어졌다. 얘 완전히 갔네. 여진이 말하는 순간 나는 공장 밖으로 튕겨지듯 뛰쳐나와 하수구에 주저앉아 토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따라 나와 등을 두드려 주었다. 눈알이 뻐근해질 정도로 토악질을 하고 겨우 일어섰는데 뒤에 오빠가 서 있었다.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 표정을 보자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나 오늘 엄마 봤어.
    오빠는 미간을 찌푸렸다. 뭘 봤다고?
    엄마. 우리 엄마 말이야. 목 매달았잖아. 오빠는 봤어? 나는 봤어.
    오빠 옆으로 여진이 놀란 눈을 하고 다가왔다. 지금 쟤가 뭐라는 거야?
    오빠는 팔짱을 끼고 섰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기대하던 반응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돼? 자기 목도 마음대로 못 매달아, 엄마는?
    오빠의 나직하고 차가운 음성이 내게 와서 박혔다. 나는 일부러 둘 사이를 거칠게 뚫고 집으로 향했다.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다. 오빠, 쟤가 지금 뭐라는 거야? 진짜 어머님이, 하는 여진의 말에, 아니야. 저건 술만 처먹으면 꼭 한 번씩, 하는 오빠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게 사실이 될까 봐.
    나는 어둡고 좁은 공장 골목을 슬리퍼를 일부러 찍찍 끌며 빠져나왔다. 밤공기에 따뜻한 나무 냄새와 퀴퀴한 공장 냄새가 섞여 있었다. 술에 취한 아저씨가 움찔거리며 걷고 있었는데 위협적인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보았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조금 전에 내가 있었던 공간과 보았던 장면들이, 몸을 울리던 음악소리가 까마득하게 여겨졌다. 기억나지 않는 옛날처럼. 상상할 수 없는 미래처럼.
    아직도 상일은 거기에 있을까. 문득 다시 문래동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남자들이 만지면 눈을 감을까. 그러다가 목을 맨 시체가 보이면 무서운 만큼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를 것이다. 택시를 잡을까. 돌아가서 상일의 여자가 보는 앞에서 상일의 목을 끌어안아 볼까. 아무것도 참지 않고 최선을 다해 불청객이 되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보았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꽤 무성해져 있었다. 그 위로 밤인데도 캄캄하지 않은 서울 하늘이 보였다. 이제 그게 눈에 보였고, 그건 너무 무표정해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위수정
작가소개 / 위수정

2017년 《동아일보》 중편으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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